화성 하늘에 종이비행기 날리기

by 永樂 posted Dec 07, 2005
 화성 하늘 위로 종이비행기 날리는 김재환 교수“종이 위에 글씨만 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 ‘기능성 재료로서의 종이’가 새롭게 주목받는 시대가 올 겁니다.”

오래 전, 가위와 풀만 있으면 로봇이나 비행기,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종이접기 장난감이 어린이들 사이에 인기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내 온 이들이라면 ‘스스로 움직이는 종이 로봇’은 언뜻 감이 잘 잡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하대 김재환 교수는 종이로 로봇이나 비행기를 만드는 기계공학자다. 단순히 ‘종이를 접어서 비행기 모양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정교하게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비행기다. 그것도 기계의 투박한 움직임이 아니라 마치 곤충이 날갯짓하듯 섬세한 움직임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김 교수팀이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한 전기작동종이(EAP, Electro-Active Paper)다. 셀룰로오스를 주성분으로 하는 전기작동종이는 변형이 쉽고 작동전압과 전력소모가 낮으며 저렴한 가격에다 자연계에서 분해가 가능하다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다른 전기작동고분자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초경량·소형 장치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소재다.

전기작동종이의 응용 범위는 매우 넓다. 김 교수는 “로봇이나 소형 비행기뿐만 아니라 습도·온도 센서로 쓸 수도 있고,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 기술을 응용하면 전자책(e-paper)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10원짜리 종이 한 장이 10만, 100만원의 가치를 갖는 날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김 교수가 기능성 종이를 가리켜 ‘제2의 종이의 발견’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장이 아니다.

1961년생인 그는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사 온 뒤로 지금까지 내내 인천에서만 살아왔으니 인천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1981년 인천의 명문 인하대에 입학한 그는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1987년 신도리코 기술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김 교수는 여기서 종이 로봇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심심풀이로 종이에 전기를 걸어봤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마치 근육이 떨리는 것처럼 진동했어요.”

199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다음해 3월 귀국한 그는 모교인 인하대 교수로 부임해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전기를 흘려주면 실제 근육처럼 구부렸다 폈다하는 재료인 ‘전기작동폴리머’(EAP) 개발이 시작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연구소에서의 발견을 생각해내고 ‘강한 전기장을 걸면 종이가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껌종이, 마분지, 셀로판지 등 갖가지 종이를 다 가져와 실험해 봤죠. 잘라 보고, 풀도 붙여보고….”

수천 번의 실험 끝에 마침내 그는 셀룰로오스 함량이 높은 종이가 가장 잘 떨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실험을 계속한 끝에 종이가 떨리는 이유를 알아냈다. 전기를 진동으로 바꿔주는 ‘압전효과’와 종이 내부의 결정구조와 비결정구조 사이에서 움직이는 전하를 힘으로 바꾸는 ‘이온전이현상’ 때문이라는 것.

‘종이가 전기로 움직인다’는 연구에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뉴 사이언티스트’지를 비롯해 외국에서 먼저 관심을 보였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공동연구 제의가 왔다. 종이 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면 대량으로 생산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우주 탐사에 이용할 수 있다.

렌즈를 달고 무선으로 동력을 받아 화성 곳곳을 누비는 소형 종이 정찰기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몇 년 뒤면 김 교수팀의 종이비행기가 화성 상공을 하얗게 덮게 될지도 모른다.

전기작동종이 위에 마이크로파를 받아 직류전원으로 변환하는 장치인 렉테나(rectenna)를 붙이면 무거운 배터리 없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연구팀은 렉테나의 주파수 대역을 10GHz까지 높여 받을 수 있는 전력량을 늘리는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렉테나가 아무리 얇아도 종이에 비하면 무겁다. 최근 김 교수팀은 종이 위에 미세회로를 직접 그려 넣는 ‘미세가공’(microfabrication) 기법을 이용해 0.15mm 두께의 렉테나를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종이와 렉테나를 융합시키면 무선으로 동력을 받아 스스로 움직이는 ‘작동기(actuator)’ 로봇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기작동종이는 힘이 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 전도성 고분자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종이 위에 입혀 출력을 더 키우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진동에 민감한 실험이라 힘든 부분도 있다. 연구실 아래층에서 공사가 있어 드릴 작업이라도 하면 그만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셀룰로오스의 원료인 펄프도 국내에선 생산하는 곳이 없어 수입해다 쓰는데 이마저도 2주는 걸린다.

그래서 가끔 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재료를 직접 사오기도 하는데, 공항 세관에서 통관이 안 돼 곤혹스러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고. 김 교수는 재료비 외에도 고가의 실험 장비들 때문에 “실험 하느라 돈이 줄줄 샌다”며 웃었다.

김 교수는 “전기작동종이 연구는 외로운 길”이라며 “관련 연구자들이 더 많아져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재환 교수는
김재환 교수는 1985년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신도리코 기술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9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인하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소 방문교수를 지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창의연구단 생체모방종이작동기 연구단장과 국제 학술지 ‘Smart Materials and Structures’ 편집위원, ‘SPIE's Smart Structures and Materials’ 조직위원을 맡고 있다.

미래의 과학도에게 한마디
생체모방종이작동기연구단은 기계공학, 재료공학, 화학이 함께 결합한 다학제적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과학기술에서 가장 주목받을 분야도 이런 다학제적 분야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틀 안에서만 자신을 계발하려고 하지 말고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현재의 전공분류 안에서만 진로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맞춰 20년 후에 어떤 분야가 유망할 것인지 생각하는 사고력과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그런 틀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글/이상엽 동아사이언스 기자 narciso@donga.com (2005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