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무언, 김재록...

by 永樂 posted Apr 05, 2006
“盧정권 들어서는 한 일 거의 없어”
김재록씨와 함께 근무했던 간부 단독 인터뷰
이헌재 부총리·진념 장관에게 아이디어 제공… 브리핑하면 재벌 총수들 뿅 갔다
기획예산처 등 실무급과 친분 만들어… 공무원들보다 두 발 앞섰다 평가 받아
너무 잘난 척 한 게 탈이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는 제대로 수주한 게 없다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김재록 게이트’ 사태의 본질은 뭘까. 이를 위해 「이코노미스트」는 그간 사건의 핵심 인물들 추적과 함께 주변 인사들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 김재록씨와 인베스투스글로벌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간부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2년 가까이 이 회사에서 일했다. 인베스투스글로벌은 2002년 8월에 설립돼 약 3년7개월 된 회사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독자들에게 생생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그의 발언 내용을 가감 없이 싣는다. 편집자

가장 가까이서 함께 일했던 사람으로서 잘 아는데 김재록 회장(현재는 비상임고문)은 현대·기아자동차에서 비자금을 받아 로비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다만 유력인사들에게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주는 (중매)역할을 아주 잘했다. 누가 뭘 필요로 하고 목말라 하는지를 잘 파악했다. 그렇지만 그가 직접 돈을 갖다주는 행동 등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사람도 아니다. 그는 나와 긴밀하게 일했다. 하지만 뒷돈을 받은 적도, 받으려고 한 적도 없었다. 대신 그는 컨설팅이나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그는 정몽구 회장과 친했다. “정몽구 회장이 불러서 갔다 왔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가끔씩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 사장급 인사는 “정몽구 회장은 김재록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사기꾼들은 다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
한마디로 그의 인간관계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정몽구 회장이 불러서 갔다 왔다”

어쨌든 기획력 하나는 탁월하다. 내가 알기에는 이헌재 전 부총리, 진념 전 장관을 많이 도와줬다. 돈이나 이런 걸로 도와준 게 아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했다. 그러나 김재록 회장은 대가성 청탁을 하지는 않았다. 그 사람만의 특징이다. 그래야 지속적인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헌재 전 부총리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보기에는 김재록 회장보다 이헌재 전 부총리가 머리로는 더 약다. 당시 소문에는 ‘이헌재 펀드’를 맡으려고 한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잘못된 것이다. 이헌재에게는 똑똑한 친척을 비롯해 핵심인물들이 있다. 이헌재는 그들 이외에는 안 믿는다.

그가 일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언제인가 김재록 회장이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인적 네트워크를 잘 맺으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참고하라. 아서앤더슨에서 정부 조직 진단을 할 때다. 나는 높은 사람이 아니라 실무 부서의 국·과장급 사람들을 허물없이 잘 사귀어놨다. (진념 장관이 있던) 기획예산처 같은 곳 말이다. 그런 뒤 어떤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싶으면 기획서를 작성해 그들에게 먼저 갖다줬다. 그들도 당연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어서 반가워하곤 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실제로 김재록 회장은 기획력에 있어서는 탁월했다. 내가 보기에도 관련 공무원들보다 ‘두 발’은 앞서가는 것 같았다. 한 3년 가까이 함께 근무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로비스트는 아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박해춘 사장이 LG카드 발령을 받았을 때다. 그는 인베스투스글로벌에 3일이나 출근했을 정도였다. LG카드의 재무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아이디어를 달라고 김재록 회장에게 왔었다.

문서 작성·브리핑 능력 뛰어나

아서앤더슨에 있을 때 고위 관료의 자식들을 끌어들였다고 하는데 강봉균 장관 딸이 잠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절대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높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그는 기획력뿐 아니라 브리핑도 잘했다.
몇 년 전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이 문제된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한국투자신탁은 인수를 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 이런 좋은 물건이 외국으로 나가면 안 된다”면서 재정경제부 모 국장에게 기획안을 만들어 가지고 갔다. 그런데 나중에 입찰할 때 보니까 거의 김재록 회장이 제안한 방안 그대로 진행됐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나중에 우리가 유럽계 금융업체인 크레디리요네(CLSA)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 입찰했는데 떨어졌다. 김재록 회장이 외국계에 주면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재경부에서 김 회장의 보고서를 곧이곧대로 진행하는 바람에 그만 우리 발목이 잡혔던 것이다. 그만큼 김재록 회장의 페이퍼 작성 능력은 뛰어났다.

같이 일?해 본 사람으로서 그의 판단력과 감각, 그리고 브리핑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몽구 회장 등 재벌 오너들이 왜 그를 선호했겠는가.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판세의 핵심을 집어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브리핑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재벌 오너들이 그의 브리핑을 받으면 거의 뿅 간다”고 표현했다.)

“그는 대학 못 간 恨이 있었다”

김재록 회장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금오공고에서 1등을 도맡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못해 “지금도 한(恨) 비슷한 것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형제는 4남1녀다. 김재록 회장이 장남이고, 차남은 서울대 농대를 나온 김재갑으로 알고 있다. 그 밑으로 남동생 두 명과 여동생 한 명이 있다. 차남인 김재갑은 서울대 농대 시절 핵심 운동권으로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친했다. 천 장관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시절 그를 불러 원내대표실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지난번 총선 때 성남에서 열린우리당의 예비경선에 나갔으나 떨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중에는 밥값 할 사람들”

그의 어머니는 김재록보다 차남인 재갑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재록은 재승덕(才勝德·재주가 덕보다 뛰어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동생인 김재갑은 형보다 인품이 더 있다. 형제 사이도 의지는 하지만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인베스투스글로벌 시절 동생도 회사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김재록 회장은 세동회계법인의 전략연구소장으로 있을 때부터 ‘실력’ 발휘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건지, 잘난 체를 워낙 세게 했다. 대표적인 게 반말 투다. 김회장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였지만 아무에게나 반말 투로 얘기를 해서 괜한 반감을 샀다. 이런 행동이 안하무인격으로 보여 듣지 않아도 될 욕을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도 많았던 것이다. 제발 조심하라고 몇 번을 충고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두고 “성격이 더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이헌재 전 부총리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대들었다.

“형님(이헌재 전 부총리)이 젊은 나한테 잘 보여야지, 어떻게 내가 형님한테 잘 보입니까?”하고 대들었다. 그래서 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성질 더러운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제대로 뭘 한 게 없다. 내가 청와대에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걸 김재록 회장이 잘 알기 때문에 일이 생겼다면 나한테 연락을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한때 매니저급(부장급)이 30명쯤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에는 4명밖에 남아있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4명도 사장, 부사장, 상무 2명이었다. 인베스투스글로벌은 그동안 건축 컨설팅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신촌역사 컨설팅 얘기가 나오는 걸 보니 회사 사정이 너무 어려워 손을 댔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사업이 잘 안돼서 ‘자산운용사’로 전환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우리은행이 이 과정에서 연관됐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워낙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이라 몇 년 내에 재기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재록 회장은 2004년 ‘이헌재 사단’의 오호수씨를 상임고문(올 3월 10일 회장으로 임명)으로 영입했다. 그때 자신은 비상임고문으로 자리를 내줬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사석에서 “어느 날 보니 오호수와 김재록이 엄청나게 친하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호수씨의 경영능력은 별로였다는 게 내부의 평가였다, 당시 오호수씨 밑에 있던 임원들이 “연봉을 몇억원씩 받아가면서 일은 못한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그때마다 김재록 회장은 “나중에 다 밥값 할 거야”라고 달랬다고 한다.

현재 인베스투스글로벌 측은 김회장이 이 사태의 본질이 아닌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고위 임원은 “우리는 김재록 회장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적극적인 대응도 하지 않겠다.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



서광원 기자 (araseo@joongang.co.kr)   [832호] 2006.04.0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