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해 사상 최고의 인명피해 54,700여 명
지난 7월 14-16일간에 걸쳐 퍼부은 집중호우로 남북한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남한은 강원도, 경기도, 충청남북도의 피해가 심했고, 북한은 강원도, 황해남북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지역에 걸쳐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이번 수해로 북한은 역사상 최대 피해로 기록된 1967년의 1만 7천여 명 사상자보다 무려 3배가 넘는 5만 5천여 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수해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난 7월 말경에서야 피해 실태의 대략적인 윤곽이 파악되었는데, 피해 상황은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 수해 사상 최악이었다. 인명 피해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도합 5만 4천 7백여 명에 이르며, 이재민은 250여만 명, 농경지 유실 및 침수는 최대 곡창지 중 하나인 황해도를 포함해 수십 만 정보에 이른다. 이번 수해로 끊어진 다리는 철교까지 포함하여 231개 정도가 되며, 임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 정도가 심한 상태이다. 특히 수십 만 정보의 논밭이 유실되거나 침수되어 “올해 농사는 거둘 것이 없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대동강 상류지역, 인명피해 특히 심해
이번 수해로 가장 인명피해가 심각한 곳은 평안남도 양덕군, 신양군, 성천군, 맹산군 등 대동강 상류지역으로, 사망자 및 실종자가 약 3만 여명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피해가 심한 양덕군은 양덕-고원 사이의 지수역, 양덕역, 내동역 구간의 50여리에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과 철길, 도로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양덕군은 주변 4개 산(백산, 연두봉, 박죽산, 자하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도시인데, 이곳은 고도가 높고 경사가 심한 산악지형이라 산 중턱 곳곳에 계단식 뙈기밭을 개간할 때부터 산사태 위험으로 논란이 되던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 밖의 집중호우로 인해 주변 산의 토사가 한번에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양덕군의 대형 참사가 발생하게 되었다. 신양군도 둑이 터져 물길이 읍내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시내 절반이 큰물에 휩쓸렸다. 한마디로 말해 지도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수해로 인한 지형 변형이 심한 상황인데, 북한 당국은 양덕군의 인명피해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군대를 동원해 주민의 통행과 차량 통행을 엄격히 통제하고 지역자체를 봉쇄했다.


양덕군, 새벽의 산사태로 상당수 주민 매몰
양덕군에서는 갑작스런 무더기 폭우로 5층 아파트가 산사태에 묻히는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이 잠을 자다 매몰되는 참극을 당했다. 집중 폭우가 쏟아지던 당일 새벽 3-4시 경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 잠을 자던 주민들이 순식간에 참변을 당했는데, 3층까지 감탕(진흙)에 잠길 정도로 많은 토사가 쏟아져 내려와 온 가족이 한번에 매몰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잠을 자다 참변을 당한 사체가 감탕 밑에 가득한데도 그 양이 엄청나 아직 파낼 엄두를 못 내고 있어 사체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독가족(독신자가족)의 피해는 실종 신고마저 없어 사망 여부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사체는 감탕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데도 복구 장비와 지원이 열악해 수해복구가 언제 마무리 될지 기약이 없다.
다행히 살아남은 주민들도 창졸지간 잠자던 속옷차림으로 새벽녘에 황급히 빠져나오거나 진흙탕 물에 쓸려 내려와 몰골이 처참한 지경이다. 지원도 못 받기 때문에 몸에 걸칠 옷 한 벌 변변치 않아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지내다보니, 여성들의 이차 피해가 발생하는 등 차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굴삭기만 있었더라도 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물을 뽑아낼 수 있는 기계나 장비가 없어 충분히 구조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방치된 채 그대로 죽어간 상황이다. 구조반이 들어가도 장비가 없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양덕지구는 아직도 감탕에 묻힌 사람들을 건져내지 못하고 있다. 감탕을 제거하면 아마도 사망자 수가 1-2천 명 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양덕 복구에 참가했던 북한의 한 관리는 “굴삭기가 단 몇 대라도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회한의 한숨을 쉬었다. 한편, 집중 폭우로 수해가 발생한 직후 유엔기구에서 양덕군 가기 전의 한 지역을 시찰하고 피해 상황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 지역은 가옥 피해가 발생한 곳으로 피해 정도가 심한 곳이 아니었다.
요덕군과 고원군 수동노동자구에서도 사상자 수천 명 발생
함경남도 요덕군과 고원군 수동노동자들의 피해도 이미 수천 명에 이른다. 요덕군의 경우 단층집들은 자취도 없이 완전히 쓸려나간 상태이며, 구읍리 아파트는 기둥만 서있는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긴급 지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행불자들의 생사여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북한 미사일 관련 유엔 결의안이 발표된 이후 군대는 준전시 상태 아래 거의 갱도 안에서만 생활하는 바람에 군 막사가 붕괴되고 침수되는 것조차 몰랐었는데, 지난 7월 30일 이후 갱도 밖 활동이 허용된 이후부터 무너진 군영을 복구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 금강군에서는 저수지 제방 둑이 터져 그 아래 마을과 논밭이 모조리 잠기면서 없어졌는데, 이 곳 역시 수천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이처럼 예상했던 것보다 심한 것은 북한의 살림 가옥 구조에 있다. 살림집 대부분이 바닥은 시멘트 바닥이지만 건물 골조는 목조이기 때문에 집중호우와 이로 인한 산사태에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피해규모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민심 동요 우려해 수해 소식 차단
북한 당국은 수해로 인한 인명 피해를 집계하기 위해 접수대를 만들고, 각 인민반별로 접수자, 행불자, 사망자 등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등록하도록 했다. 밖에 책상을 두고, 마을마다 접수처를 만들어 접수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복잡한 민심이 더욱 소란해질까봐 수해 피해 실태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상세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수해 피해가 알려지면 민심이 크게 동요하거나 국제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 있으니 관련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통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이재민들의 이동을 막고 전국의 민심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출장, 여행증 발급까지 제한했다. 대신 전국 각지에서 수재민 구제 사업으로 숟가락, 젓가락, 이불, 담요, 냄비, 밥솥 등 생필품은 물론 수재의연금 2천 원씩을 거두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해복구 소식 외에 피해상황에 대한 공식보도는 없었으나, 주민들이 수재 지원 물품을 걷는 과정에서 피해 관련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평양시만 하더라도 대동강이 넘치는 바람에 흙모래 감탕(진흙)이 시내에 쓸려 들어와 주민들이 수해 복구 작업에 동원되고 있는데 감탕층은 50cm이상에 이른다. 서해갑문, 미림갑문, 봉화갑문 등을 설치하고 상류에 대동강댐과 남강댐을 설치해 수해방지 대책이 가장 잘 되었다는 평양 시내가 이 정도이니 다른 지역의 형편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민들은 이번 수해로 논밭이 수십만 정보가 없어져 올해 농사는 거둘 것이 없다고 벌써부터 수심이 깊다. 아직까지 행불자(실종자)들의 생사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일 발사 소식 통제에도 온갖 소문 무성
북한 당국이 미사일 발사를 주민들에게 공식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 미사일 발사 이유는 국제 사회의 압력과 국내 인민의 이목을 돌리려는 목적에서 북한 당국이 일부러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미국대통령이 각국 대통령들을 초청하는 것을 겨냥해 조선의 위력을 시위하기 위해 7월 5일에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또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 본토를 지나갔는데, 그 중 한 개는 500km 넘어간 지점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국경 연선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중국으로 주민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두만강 주변 잠복근무 외에 대대, 연대, 기동순찰대를 요소마다 배치해 저녁 10시~아침 5시까지 사이에 통행자들을 철저히 확인하는 등 경계 근무를 철저히 하고 있다. 또한 안전보위부와 보안서는 문제가 제기되는 사람들과 세대들에 대해 추방을 하거나 처벌하는 등 주민동향 감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더욱이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중국과 소련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왜곡 선전하면서, 우리는 전쟁으로 제국주의 압력과 제재에 맞서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소식이 빠른 주민들은 유엔 안보리이사회에서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손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사일은 왜 발사해서 가뜩이나 힘들고 못사는 우리를 더 못 살게 만드는가? 나라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라는 불평이 늘고 있으며, “백성이 잘 살고 나라가 잘 살면 자연히 국가 위신도 올라가겠는데 그것도 모르고 백성들만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한편 일반 병사들은 이번 준전시체제 선포로 갱도진지에서 대기 근무를 했는데, 이 기간이 다른 때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평상시보다 더 잘 먹을 수 있고 근무가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매일 한 덩어리도 안 되는 밥에 각종 건설 및 농사일에 내몰리고 훈련에 동원되어 고생이 많다가, 갱도 진지에 들어오면서부터 공급을 제때 받게 돼 먹는 걱정을 덜게 되자, 병사들 대부분이 전쟁이 나서 죽을 때는 죽더라도 이렇게 편안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대들의 전투준비 태세는 7월 30일 해제되었는데, 준전시상태가 풀린 것이 아니라 갱도에서 못 나가게 했던 것이 풀렸다. 29일까지 갱도 안에서 못 나가게 해 군영의 피해복구도 못하다가 이후부터 무너진 군영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8월 수해 이후 식량 가격 급상승
수해피해와 미사일 발사 후 유엔 안보리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결의되면서 시장에서 식량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수해 피해로 교통 사정이 더 악화되어 식량 유통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식량 값이 급등하고 있다. 수해 이후 북한 주민들은 수해로 수많은 농토가 유실되거나 황폐화되는 바람에 올해 식량생산이 거의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수해가 없는 북쪽 지역에서조차 가뭄으로 곡식들이 마르고 있어 작년에 비해 수확량이 대폭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북한 정부의 강경정책으로 유엔과 한국정부의 식량 지원이 중단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식량 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다른 물품의 시장가격은 7월 초와 거의 차이가 없으나, 다음 표에서 보다시피 일부 지역의 식량가격은 상승추세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던 것이 8월에 들어서면서 쌀값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1천 원을 다 넘기고 있으며, 옥수수 값이 아직은 싸다고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지방은 400원을 넘고 수해지역은 500원을 넘긴지 오래이다.
지난 7월 14-16일간에 걸쳐 퍼부은 집중호우로 남북한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남한은 강원도, 경기도, 충청남북도의 피해가 심했고, 북한은 강원도, 황해남북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지역에 걸쳐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이번 수해로 북한은 역사상 최대 피해로 기록된 1967년의 1만 7천여 명 사상자보다 무려 3배가 넘는 5만 5천여 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수해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난 7월 말경에서야 피해 실태의 대략적인 윤곽이 파악되었는데, 피해 상황은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 수해 사상 최악이었다. 인명 피해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도합 5만 4천 7백여 명에 이르며, 이재민은 250여만 명, 농경지 유실 및 침수는 최대 곡창지 중 하나인 황해도를 포함해 수십 만 정보에 이른다. 이번 수해로 끊어진 다리는 철교까지 포함하여 231개 정도가 되며, 임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 정도가 심한 상태이다. 특히 수십 만 정보의 논밭이 유실되거나 침수되어 “올해 농사는 거둘 것이 없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대동강 상류지역, 인명피해 특히 심해
이번 수해로 가장 인명피해가 심각한 곳은 평안남도 양덕군, 신양군, 성천군, 맹산군 등 대동강 상류지역으로, 사망자 및 실종자가 약 3만 여명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피해가 심한 양덕군은 양덕-고원 사이의 지수역, 양덕역, 내동역 구간의 50여리에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과 철길, 도로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양덕군은 주변 4개 산(백산, 연두봉, 박죽산, 자하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형 도시인데, 이곳은 고도가 높고 경사가 심한 산악지형이라 산 중턱 곳곳에 계단식 뙈기밭을 개간할 때부터 산사태 위험으로 논란이 되던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 밖의 집중호우로 인해 주변 산의 토사가 한번에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양덕군의 대형 참사가 발생하게 되었다. 신양군도 둑이 터져 물길이 읍내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시내 절반이 큰물에 휩쓸렸다. 한마디로 말해 지도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수해로 인한 지형 변형이 심한 상황인데, 북한 당국은 양덕군의 인명피해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군대를 동원해 주민의 통행과 차량 통행을 엄격히 통제하고 지역자체를 봉쇄했다.

<자료: 산사태가 일어난 양덕군, 사진 구글어스 제공, (사)좋은벗들>

<자료: 수해 전과 수해 후의 평남 신양읍 중심부 주택, 건물 수몰 모습(연합뉴스)>
양덕군, 새벽의 산사태로 상당수 주민 매몰
양덕군에서는 갑작스런 무더기 폭우로 5층 아파트가 산사태에 묻히는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이 잠을 자다 매몰되는 참극을 당했다. 집중 폭우가 쏟아지던 당일 새벽 3-4시 경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 잠을 자던 주민들이 순식간에 참변을 당했는데, 3층까지 감탕(진흙)에 잠길 정도로 많은 토사가 쏟아져 내려와 온 가족이 한번에 매몰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잠을 자다 참변을 당한 사체가 감탕 밑에 가득한데도 그 양이 엄청나 아직 파낼 엄두를 못 내고 있어 사체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독가족(독신자가족)의 피해는 실종 신고마저 없어 사망 여부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사체는 감탕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데도 복구 장비와 지원이 열악해 수해복구가 언제 마무리 될지 기약이 없다.
다행히 살아남은 주민들도 창졸지간 잠자던 속옷차림으로 새벽녘에 황급히 빠져나오거나 진흙탕 물에 쓸려 내려와 몰골이 처참한 지경이다. 지원도 못 받기 때문에 몸에 걸칠 옷 한 벌 변변치 않아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지내다보니, 여성들의 이차 피해가 발생하는 등 차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정도이다.

<자료: 양덕시내와 주변 지형, 구글어스 사진 제공, (사)좋은벗들>

<자료: 매우 가파른 급경사 산비탈인 A구간, 구글어스 사진 제공(사)좋은벗들>

<사진: 양덕 주변의 헐벗은 야산 B구간, 구글어스 사진 제공(사)좋은벗들>

<자료: 뙈기밭으로 변해버린 산 C구간, 구글어스 사진제공(사)좋은벗들>
“굴삭기만 있었더라도 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물을 뽑아낼 수 있는 기계나 장비가 없어 충분히 구조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방치된 채 그대로 죽어간 상황이다. 구조반이 들어가도 장비가 없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양덕지구는 아직도 감탕에 묻힌 사람들을 건져내지 못하고 있다. 감탕을 제거하면 아마도 사망자 수가 1-2천 명 가량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양덕 복구에 참가했던 북한의 한 관리는 “굴삭기가 단 몇 대라도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회한의 한숨을 쉬었다. 한편, 집중 폭우로 수해가 발생한 직후 유엔기구에서 양덕군 가기 전의 한 지역을 시찰하고 피해 상황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 지역은 가옥 피해가 발생한 곳으로 피해 정도가 심한 곳이 아니었다.
요덕군과 고원군 수동노동자구에서도 사상자 수천 명 발생
함경남도 요덕군과 고원군 수동노동자들의 피해도 이미 수천 명에 이른다. 요덕군의 경우 단층집들은 자취도 없이 완전히 쓸려나간 상태이며, 구읍리 아파트는 기둥만 서있는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긴급 지원조차 없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행불자들의 생사여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북한 미사일 관련 유엔 결의안이 발표된 이후 군대는 준전시 상태 아래 거의 갱도 안에서만 생활하는 바람에 군 막사가 붕괴되고 침수되는 것조차 몰랐었는데, 지난 7월 30일 이후 갱도 밖 활동이 허용된 이후부터 무너진 군영을 복구하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 금강군에서는 저수지 제방 둑이 터져 그 아래 마을과 논밭이 모조리 잠기면서 없어졌는데, 이 곳 역시 수천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가 이처럼 예상했던 것보다 심한 것은 북한의 살림 가옥 구조에 있다. 살림집 대부분이 바닥은 시멘트 바닥이지만 건물 골조는 목조이기 때문에 집중호우와 이로 인한 산사태에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피해규모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민심 동요 우려해 수해 소식 차단
북한 당국은 수해로 인한 인명 피해를 집계하기 위해 접수대를 만들고, 각 인민반별로 접수자, 행불자, 사망자 등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등록하도록 했다. 밖에 책상을 두고, 마을마다 접수처를 만들어 접수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복잡한 민심이 더욱 소란해질까봐 수해 피해 실태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상세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이번 수해 피해가 알려지면 민심이 크게 동요하거나 국제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 있으니 관련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통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이재민들의 이동을 막고 전국의 민심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출장, 여행증 발급까지 제한했다. 대신 전국 각지에서 수재민 구제 사업으로 숟가락, 젓가락, 이불, 담요, 냄비, 밥솥 등 생필품은 물론 수재의연금 2천 원씩을 거두고 있다. 그러는 사이 수해복구 소식 외에 피해상황에 대한 공식보도는 없었으나, 주민들이 수재 지원 물품을 걷는 과정에서 피해 관련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면서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평양시만 하더라도 대동강이 넘치는 바람에 흙모래 감탕(진흙)이 시내에 쓸려 들어와 주민들이 수해 복구 작업에 동원되고 있는데 감탕층은 50cm이상에 이른다. 서해갑문, 미림갑문, 봉화갑문 등을 설치하고 상류에 대동강댐과 남강댐을 설치해 수해방지 대책이 가장 잘 되었다는 평양 시내가 이 정도이니 다른 지역의 형편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민들은 이번 수해로 논밭이 수십만 정보가 없어져 올해 농사는 거둘 것이 없다고 벌써부터 수심이 깊다. 아직까지 행불자(실종자)들의 생사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일 발사 소식 통제에도 온갖 소문 무성
북한 당국이 미사일 발사를 주민들에게 공식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 미사일 발사 이유는 국제 사회의 압력과 국내 인민의 이목을 돌리려는 목적에서 북한 당국이 일부러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미국대통령이 각국 대통령들을 초청하는 것을 겨냥해 조선의 위력을 시위하기 위해 7월 5일에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또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 본토를 지나갔는데, 그 중 한 개는 500km 넘어간 지점에 떨어졌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국경 연선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중국으로 주민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두만강 주변 잠복근무 외에 대대, 연대, 기동순찰대를 요소마다 배치해 저녁 10시~아침 5시까지 사이에 통행자들을 철저히 확인하는 등 경계 근무를 철저히 하고 있다. 또한 안전보위부와 보안서는 문제가 제기되는 사람들과 세대들에 대해 추방을 하거나 처벌하는 등 주민동향 감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더욱이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유엔 안보리 이사회에서 중국과 소련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왜곡 선전하면서, 우리는 전쟁으로 제국주의 압력과 제재에 맞서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소식이 빠른 주민들은 유엔 안보리이사회에서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손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미사일은 왜 발사해서 가뜩이나 힘들고 못사는 우리를 더 못 살게 만드는가? 나라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라는 불평이 늘고 있으며, “백성이 잘 살고 나라가 잘 살면 자연히 국가 위신도 올라가겠는데 그것도 모르고 백성들만 더 힘들게 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한편 일반 병사들은 이번 준전시체제 선포로 갱도진지에서 대기 근무를 했는데, 이 기간이 다른 때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평상시보다 더 잘 먹을 수 있고 근무가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매일 한 덩어리도 안 되는 밥에 각종 건설 및 농사일에 내몰리고 훈련에 동원되어 고생이 많다가, 갱도 진지에 들어오면서부터 공급을 제때 받게 돼 먹는 걱정을 덜게 되자, 병사들 대부분이 전쟁이 나서 죽을 때는 죽더라도 이렇게 편안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군대들의 전투준비 태세는 7월 30일 해제되었는데, 준전시상태가 풀린 것이 아니라 갱도에서 못 나가게 했던 것이 풀렸다. 29일까지 갱도 안에서 못 나가게 해 군영의 피해복구도 못하다가 이후부터 무너진 군영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8월 수해 이후 식량 가격 급상승
수해피해와 미사일 발사 후 유엔 안보리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결의되면서 시장에서 식량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특히 수해 피해로 교통 사정이 더 악화되어 식량 유통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식량 값이 급등하고 있다. 수해 이후 북한 주민들은 수해로 수많은 농토가 유실되거나 황폐화되는 바람에 올해 식량생산이 거의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수해가 없는 북쪽 지역에서조차 가뭄으로 곡식들이 마르고 있어 작년에 비해 수확량이 대폭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북한 정부의 강경정책으로 유엔과 한국정부의 식량 지원이 중단되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식량 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다른 물품의 시장가격은 7월 초와 거의 차이가 없으나, 다음 표에서 보다시피 일부 지역의 식량가격은 상승추세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던 것이 8월에 들어서면서 쌀값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1천 원을 다 넘기고 있으며, 옥수수 값이 아직은 싸다고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지방은 400원을 넘고 수해지역은 500원을 넘긴지 오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