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에 날아온 풍선 이야기
2006/08/30 강철환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바다이야기’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바다이야기는 횟집인 줄 알았다”는 누구의 말처럼 저도 진짜 횟집인 줄 알았습니다.
남쪽의 바다이야기는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 이야기이지만 북쪽의 풍선이야기는 그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남쪽과 연계된 이야기죠.
1985년 7월경, 요덕수용소 구읍지구에 난데없는 남조선 삐라들이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위원들은 정치범들을 비상소집하고 집주변과 산골짜기에 떨어진 삐라들을 모두 수거해 바치라고 명령했지요. 사실 남조선 삐라를 처음 봤을 때의 심정은 한마디로 두근거림이었습니다. 발전된 남한의 모습이나 망명자들의 풍족한 생활을 담은 내용을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으니까요.
찢어도 찢어지지 않고 비에 젖지 않았고, 불에 넣어도 잘 타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질긴 특수삐라를 처음 보면서 “남조선 놈들 참 기술도 발전했네” 하면서 감탄 했었지요.
하도 자주 뿌려지니까 보위원도 정치범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발견되면 바치는 정도가 됐습니다.
하루는 수백명의 젊은 정치범들이 요덕수용소 3작업반 다리 건설에 동원됐습니다. 손씨로 기억되는 새로 들어온 정치범이 도로 옆 숲속에 들어갔다가 아마 삐라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삐라는 절대 보지 말고 무조건 바치라는 수용소 규정대로 이 사람은 주은 삐라를 옆구리에 감추고 보위원에게 달려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뭣 모르고 오버한 것입니다.
아직 수용소에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너무 순진했던 것이죠.
그는 “보위원동지, 남조선 삐라를 주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면서 삐라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삐라를 보는 보위원의 얼굴이 갑자기 험하게 굳어졌습니다. “쎄끼 뒈지고 싶어?” 하면서 쌍욕을 퍼붓더니 몽둥이로 사정없이 손씨를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나중에야 손씨가 왜 매맞았는지 밝혀졌습니다. 수용소에서 삐라는 정치범들이 화장지로 널리 쓰였는데, 한 정치범이 길 옆 숲속에서 뒤를 보면서 삐라를 화장지로 쓰고 길 옆 숲속에 버린 것을 다시 주어 그대로 보위원에게 바쳤으니 그 광경은 가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위원이 삐라를 펴는 순간 냄새와 함께 변이 묻은 삐라를 보았으니까, '꼭지'가 돌만도 했구요. 그날 손씨는 죽지않을 만큼 매를 맞았습니다.
다음해부터인가 풍선에는 삐라 뿐 아니라 속옷, 양말, 약품, 라면, 볼펜 등 북한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비닐은 워낙 질겨 창문유리 대용(代用)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풍선을 매단 밧줄은 또 워낙 질겨 소몰이 用이나 나무끈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삐라는 정보의 역할을 하고 풍선 자체까지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의 보물인 셈이죠. 정치범들은 해마다 풍선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풍선이 뜨면 그것을 먼저 잡으려고 산속으로 달리다가 보위원에게 잡혀 고문당하는 사람들도 생겼구요.
한번은 새벽에 촛불을 든 정치범들이 주변에 떨어진 집체만한 풍선에 접근해서 풍선 바람을 빼려다가 수소가스에 불에 붙으면서 폭발해 3~4명의 정치범들이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1987년 요덕수용소에서 석방돼 요덕군 읍에 배치받고 생활을 시작하는데 또 삐라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요덕군 읍 광장에서 군민(郡民) 전체가 모여 정치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 위에 남조선 삐라가 뿌려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슬렁거리고 동요가 아주 심각했지요.
1989년 동유럽에서 한국에 망명한 유학생들의 사진도 모두 삐라에 담겨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남조선 노래를 부르거나 라디오를 듣다가 발각돼 위험해지면 탈북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삐라에 담긴 유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요덕군에서는 이미 풍선 잡는 사람은 보물을 얻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산에 떠 있는 풍선을 잡기 위해 몇 개의 산을 넘는 것은 흔한일로 됐구요. 풍선에서 떨어진 내의를 입고 다니다가 단속돼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없어서 못입을 정도였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백양 제품에(BYC)라는 영문이 있어 남조선제라는 것이 쉽게 알려져 드러내놓고 입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풍선덕분에 요덕수용소는 물론, 요덕군 인민들도 많은 덕을 봤습니다.
정보도 얻고 생필품과 의약품도 서민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엔 더 이상 풍선이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요덕수용소의 정치범들에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번 수해로 인해 북한에 2300억원의 대규모 지원을 한다고 해서 차라리 풍선으로 보내자고 했더니 일부 독자들이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가 없다고 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수해난 북한인민들을 돕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이 더 간절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해를 구실로 남한에서 보내준 쌀과 구호품들은 보나마다 권력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풍선이 효과적이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구호품에 대해 모니터링 할 의지도 없습니다. 때문에 북한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절대로 구호품이 주민에게 안간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것은 수십년간 북한에서 살아온 경험으로 터득한 것입니다.
구호품을 보내자면 현지 피해 파악이 가장 중요 합니다. 피해지역을 남측에 보여주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도와야 할 지 다 알게 되는데 한국정부는 정확한 피해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민간단체가 북한에 삐라를 보내기 위해 비닐풍선에 수소를 넣는데 7kg을 날리는 풍선에 약 3~5만원의 수소 가스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원시적인 장치를 달아 보내는데 내용물을 포함해 2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듭니다. 휴전선 인근, 멀리 날아가면 평양부근까지 날아간다고 합니다. 최근 남북 회담때 북한측에서 민간단체에서 보내는 풍선을 트집잡았다고 하니, 효가가 꽤 큰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부적 차원에서 요덕에 날아왔던 풍선처럼 수해지역에 가벼운 라면이나 의약품, 의류 같은 것은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풍선으로 보내는 것이 김정일정권에게 직접 주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든다고 할지라도 북한주민들은 풍선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타락한 김정일 위원장을 거치지 않고 대대적인 풍선 날리기 운동을 한다면 아마 북한에 도움을 주고 싶은 국민이 지금보다는 100배 더 많아질 것입니다.
풍선 효과는 단순히 먹거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지만 정보 전달의 효과가 아주 크고, 주민들을 김정일의 우상화에서 깨어나게 하는데 이만한 수단은 없다고 봅니다.
북한을 도와도 인민과는 무관한 이유
2006/08/23 강철환
탈북자들은 對北지원이 증가 할 수록 북한인권은 더 악화되고 북한정권만 수혜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는 첫째, 북한이 1995년 이후부터 배급제가 붕괴되고 인민들이 알아서 사는 체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공급체계에서 버림받은 인민은 장사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해야 살아가는 세상이 됐다. 현재 정부의 공급체계 안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국가권력 기관의 기관원들과 군대, 평양시민 등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지탱시켜주는 이들이 굶어서 무너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때문에 모든 것이 궁핍한 북한에서 외부지원은 배급제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 우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지원물자가 넘쳐나서 남으면 인민에게 갈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대북지원은 군대도 먹이기 힘든 량이다.
김정일이 군대와 관리만 굶기지 않고 잘 해주면 충견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인민을 억압하게 된다. 정권이 무너지거나 약화되야 인민의 자유는 그 반대로 확대된다.
관리들과 군대가 먹을 것이 없고 정권으로 부터 받는 혜택이 줄어들어야 정권에 충성하지 않고 인민의 편에 서게 된다.
두 번째는, 관리들의 최악의 부패상황이 외부원조가 필요로 하는 주민에게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정가격(국가에서 정한 가격)으로 물건을 빼내 시장가격(10배 이상 폭리)으로 파는 사람들이 능력 있는 자로 평가받았다. 권력이 있어야 국가 물건을 국정가격에 빼내 시장에 되팔아 폭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운동화 한 켤레에 3원50전이면 시장에서는 25~40원에 팔 수 있다. 국가경제가 무너지던 1980년대 후반부터 생필품이 귀해지자 간부들은 너도나도 물건 빼내기에 혈안이 됐었다.
국가에서 생산하는 물건이 거의 없어진 지금 능력있는 자들은 해외원조 물품을 값싸게 빼돌릴 수 있는 자들이다. 통전부(노동당통일전선부)와 군부(軍部) 등이 외부원조를 전담 관리하면서 대남관련 간부들과 이와 결탁한 고위층들 속에서 백만장자가 속출하고 있다.
남한에서 오는 모든 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적에서 보내주는 물건의 유형에 따라 장사 패턴도 달라진다고 한다. 식량은 주로 군부에서 관리하는데 시장에서 유통되는 외부지원 식량은 모두 시장가격에 팔리고 있다. 무상 지원되는 식량은 단 1kg도 없다.
돈이 없어 당장 굶어 죽게 된 주민들에 외부 원조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용천폭발사고 때 한적에서 많은 지원물자를 보냈지만 남조선 상표를 보고 놀랄 지방 사람들을 감안해 평양시민들이 쓰던 옷가지와 이불 등을 모아서 농촌으로 보내고 남한제품은 평양시민에게 싼 가격에 팔았다는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다. 용천이라는 작은 마을에 한국돈으로 421억의 어마어마한 지원물자가 보내줬는데, 제대로 투입됐다면 용천은 순식간에 지상 천국으로 변했을 것이다.
용천엔 북한산 시멘트나 목재, 등을 지원하고 돈이 되는 한국산 물건들은 간부들이 착복하거나 되팔아서 돈을 번다. 용천을 빙자한 당(黨) 외화벌이와 간부 배불리기가 용천 대북지원의 결과다.
이번 수해 때 피해가 집중된 평남 양덕, 신양, 성천, 함남 요덕 등은 산악지방이면서 인민군 군부대가 밀집된 지역이다. 양덕, 신양은 군대 반(半) 민간인 반(半)이 있을 정도로 군인 세상이다.
양덕에는 인민군 8군단 야전지휘부와 원유탱크, 군부대 막사와 무기고가 집중배치 된 곳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이 양덕이 물 폭탄을 맞아 8군단 軍시설들이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무기고까지 여러 곳 파괴됐다고 하니 군대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중장비와 시멘트 등 지원물자는 軍시설물 복구에 우선 사용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선군(先軍)시대에 민간보다 군이 우선하는 것은 선군이라는 말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수해로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국가지도자인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 후 40여 일 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찾아간 곳이 또 군부대다. 수해현장은 고사하고 어디서 무슨 짓을 한지는 알 수 없지만, 고위탈북자들은 7~8월 한반도에서 가장 시원한 백두산 근처 삼지연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민은 수해로 떼죽음을 당하는데 지도자는 휴가나 다니는 그런 한심한 나라에 도움을 준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안의 가장이 가정에 관심이 없는데 그 가장에게 가족을 돌보라고 돈을 주면 술먹고 도박하고 가정을 더 불행에 빠뜨리는 불량 가장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다.
수해 피해가 엄청나든 말든, 김정일은 자기의 안위와 군대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민가가 수백 채 떠내려가도 노예나 다름없는 주민들을 쥐어짜 다시 지으면 되는 것이다. 무너진 다리, 도로는 할 일 없는 주민들을 무보수로 내몰면 금방 복구된다. 이미 평양시민 3천명이 조직돼 양덕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력이 곧 비용인 남한과는 달리 북한 인력은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냥 상부의 지시면 모든 주민이 수해복구에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대 시설과 장비들은 돈이 필요하다. 질좋은 시멘트며 철강, 중장비는 우선 군부대 복구에 우선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같은 동포로서 수해를 입은 북한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기본적인 피해규모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특히 인명피해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구호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난 구조는 첫 발생시기에 신속한 현지 접근에 달려있다. 인명구조가 우선돼야 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현지에서 파악이 돼야 도움도 제대로 줄 수 있다.
게다가 모니터링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북지원만 주장하는 것은 인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정권만 돕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정부가 북한의 정확한 피해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수해를 구실로 대규모 지원을 개시하는 것은 미사일 발사로 어쩌다가 든 채찍의 의미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풍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햇볕정책 이전에 고성능 풍선을 북한에 대대적으로 보냈었다.
수용소가 있는 특수지역을 겨냥해 진행된 대북 심리전이었다.
풍향계(風向計)가 달린 이 풍선은 약 40kg의 무게를 북한 중부지방까지 정확히 보내졌다.
삐라는 북한주민들에게 주요 정보지가 됐고 생필품들은 요긴하게 쓰였다.
1985년 경 요덕수용소에 있을 때 남한에서 보낸 풍선에 담긴 라면과 의약품, 의료품들을 접한 적이 있다. 정치범들은 처음엔 풍선을 보고 기겁해서 도망쳤지만 그 내막을 파악한 뒤로는 풍선만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옷가지들과 의료품들은 큰 도움이 됐다.
종이가 없어 화장지조차 못쓰는 정치범들에게 삐라는 외부정보로도 이용되고 화장지로도 이용됐다. 보위원들은 풍선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됐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건들은 막을 수 없었다.
1997년 이후 햇볕정책을 시작하면서 풍선 날리기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지금부터라도 피해지역에 사랑의 풍선 날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인 심리전이 아니라 사랑의 풍선을 날려야 할 진짜 시기가 온 것이다.
국군의 협조만 얻으면 첨단 장비를 이용해 양덕일대의 주민들에게 충분한 약재와 의류품들을 대거 보낼 수 있다. 북한당국을 거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가 됐다.
2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보내봐야 인민에게 돌아갈 몫은 거의 없다. 이 정부가 정말 북한인민들이 불쌍하게 생각되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풍선으로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2천억이 아니라 200억이면 풍선 수만개를 날려 수해지역 주민들을 살릴 수 있다. 피같은 국민세금을 수천억을 검증없이 마구 쓰는 것은 남북한 인민에게는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의 스파이들도 못하는 일
2006/08/13 강철환
요즘 북한의 대남(對南)부서는 한국의 친북 주사파들이 일들 하도 잘해서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대남부서의 최고 목적인 對北지원도 남쪽에서 못해줘서 안달이 났고, 김정일 정권의 최대 목표인 미군철수도 눈앞에 보이고 있다.
전교조는 노골적으로 친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남조선의 젊은이들은 인민을 수백만이나 굶겨 죽인 김정일을 우리민족이라고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김정일을 몰아세우면 마치 김정일이 약자인 듯 불쌍해한다.
진보단체의 허울을 쓴 친 김정일 세력들은 평택기지에 몰려가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의 운명을 판가름할 전시작전권 문제까지 난데없이 불거져 나왔다.
김정일의 대남전략은 남한에서 반미세력을 추동해 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의 현금과 자원을 흡수해 군부를 살린 후 무력 또는 남한 내 친북세력과 연합해 연방제공화국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연방제는 허울만 연방이지 사실상 김정일을 통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대남적화통일을 의미한다.
미군철수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작통권 환수와 같은 韓美 이간질이다.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워 마치 미국이 한민족의 적(敵) 인 듯 남한의 젊은 세대를 유도한 후 김정일을 돕는 것이 우리민족을 돕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선군정치’ ‘총대정치’ ‘사탕보다 총알이 더 좋다’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통일은 바로 무력 통일이다.
이 무력통일을 위해 북한경제는 폐허가 됐다. 총탄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인민이 수백만이 굶어죽어도 개의치 않는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을 만나보면 인민군 내에서는 아직도 국군을 우습게 보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6.25전쟁 때 미군만 없없다면 국군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미군만 없으면 남조선은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만심에 차있다. 한국의 경제기적과 국군의 질적 향상에도 불구하고 인민군의 자신감은 상당한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훈련강도에서 인민군이 국군을 압도한다. 겨울철 동기훈련 때 인민군 병사들은 쌀 배낭을 메고 백두산에서 3.8선까지 산속에서 먹고자며 이동훈련을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민간 부대와 지역별 모의 전투를 치르며 수개월간 눈 속에서 지낸다. 훈련 기간 동안 1개 사단에서 수십 명씩 동사해 죽어 나아가도 노동신문에 기사 한 줄 나가지 않는다.
북한군이 아무리 무너져 있다고 해도 전투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38선 인근에 배치된 장사정포는 유사시 미군의 화력이 선제타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서울 -경기 일대는 쑥대밭을 만들 수 있는 막강 화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군이 자랑하는 비밀병기는 화학무기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정치범들을 마음대로 가져다 실험한 각종 생화학무기들은 한반도에 어떤 끔찍한 일을 벌여놓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군은 항공부분에서 북한을 압도할 뿐 해상-육상 모두에서 북한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한발 물러선다면 인민군의 무식한 강경파들이 한 번에 쓸어버릴 것 같은 자신감이 발동하게 되고 우리민족의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국가의 안보는 지나칠 만큼 강조해도 득이 된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내부 불만은 갈수록 확산되고 개혁 개방의 지연으로 북한경제는 소생의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미사일과 핵으로 한반도를 위협하는 이때 미군과의 공조를 더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한반도의 위급 상황이 오면 자동으로 개입되는 미군의 역할을 스스로 막겠다는 것은 김정일의 스파이들이나 할 짓이다.
우리가 흘릴 피를 대신 함께 흘려줄 혈맹을 이런 위험한 시점에 배척하겠다는 것은 나라를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006/08/30 강철환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바다이야기’로 온통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바다이야기는 횟집인 줄 알았다”는 누구의 말처럼 저도 진짜 횟집인 줄 알았습니다.
남쪽의 바다이야기는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 이야기이지만 북쪽의 풍선이야기는 그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남쪽과 연계된 이야기죠.
1985년 7월경, 요덕수용소 구읍지구에 난데없는 남조선 삐라들이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위원들은 정치범들을 비상소집하고 집주변과 산골짜기에 떨어진 삐라들을 모두 수거해 바치라고 명령했지요. 사실 남조선 삐라를 처음 봤을 때의 심정은 한마디로 두근거림이었습니다. 발전된 남한의 모습이나 망명자들의 풍족한 생활을 담은 내용을 보니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으니까요.
찢어도 찢어지지 않고 비에 젖지 않았고, 불에 넣어도 잘 타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질긴 특수삐라를 처음 보면서 “남조선 놈들 참 기술도 발전했네” 하면서 감탄 했었지요.
하도 자주 뿌려지니까 보위원도 정치범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발견되면 바치는 정도가 됐습니다.
하루는 수백명의 젊은 정치범들이 요덕수용소 3작업반 다리 건설에 동원됐습니다. 손씨로 기억되는 새로 들어온 정치범이 도로 옆 숲속에 들어갔다가 아마 삐라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삐라는 절대 보지 말고 무조건 바치라는 수용소 규정대로 이 사람은 주은 삐라를 옆구리에 감추고 보위원에게 달려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뭣 모르고 오버한 것입니다.
아직 수용소에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너무 순진했던 것이죠.
그는 “보위원동지, 남조선 삐라를 주었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면서 삐라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삐라를 보는 보위원의 얼굴이 갑자기 험하게 굳어졌습니다. “쎄끼 뒈지고 싶어?” 하면서 쌍욕을 퍼붓더니 몽둥이로 사정없이 손씨를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나중에야 손씨가 왜 매맞았는지 밝혀졌습니다. 수용소에서 삐라는 정치범들이 화장지로 널리 쓰였는데, 한 정치범이 길 옆 숲속에서 뒤를 보면서 삐라를 화장지로 쓰고 길 옆 숲속에 버린 것을 다시 주어 그대로 보위원에게 바쳤으니 그 광경은 가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위원이 삐라를 펴는 순간 냄새와 함께 변이 묻은 삐라를 보았으니까, '꼭지'가 돌만도 했구요. 그날 손씨는 죽지않을 만큼 매를 맞았습니다.
다음해부터인가 풍선에는 삐라 뿐 아니라 속옷, 양말, 약품, 라면, 볼펜 등 북한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풍선 비닐은 워낙 질겨 창문유리 대용(代用)으로 요긴하게 쓰였고, 풍선을 매단 밧줄은 또 워낙 질겨 소몰이 用이나 나무끈으로 아주 좋았습니다.
삐라는 정보의 역할을 하고 풍선 자체까지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하나의 보물인 셈이죠. 정치범들은 해마다 풍선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풍선이 뜨면 그것을 먼저 잡으려고 산속으로 달리다가 보위원에게 잡혀 고문당하는 사람들도 생겼구요.
한번은 새벽에 촛불을 든 정치범들이 주변에 떨어진 집체만한 풍선에 접근해서 풍선 바람을 빼려다가 수소가스에 불에 붙으면서 폭발해 3~4명의 정치범들이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1987년 요덕수용소에서 석방돼 요덕군 읍에 배치받고 생활을 시작하는데 또 삐라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요덕군 읍 광장에서 군민(郡民) 전체가 모여 정치행사를 하고 있는데 그 위에 남조선 삐라가 뿌려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슬렁거리고 동요가 아주 심각했지요.
1989년 동유럽에서 한국에 망명한 유학생들의 사진도 모두 삐라에 담겨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남조선 노래를 부르거나 라디오를 듣다가 발각돼 위험해지면 탈북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삐라에 담긴 유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요덕군에서는 이미 풍선 잡는 사람은 보물을 얻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산에 떠 있는 풍선을 잡기 위해 몇 개의 산을 넘는 것은 흔한일로 됐구요. 풍선에서 떨어진 내의를 입고 다니다가 단속돼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없어서 못입을 정도였습니다. 좀 아쉬웠던 것은 백양 제품에(BYC)라는 영문이 있어 남조선제라는 것이 쉽게 알려져 드러내놓고 입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풍선덕분에 요덕수용소는 물론, 요덕군 인민들도 많은 덕을 봤습니다.
정보도 얻고 생필품과 의약품도 서민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모릅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엔 더 이상 풍선이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요덕수용소의 정치범들에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이번 수해로 인해 북한에 2300억원의 대규모 지원을 한다고 해서 차라리 풍선으로 보내자고 했더니 일부 독자들이 비용이 많이 들고 효과가 없다고 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수해난 북한인민들을 돕고 싶은 것은 탈북자들이 더 간절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해를 구실로 남한에서 보내준 쌀과 구호품들은 보나마다 권력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풍선이 효과적이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구호품에 대해 모니터링 할 의지도 없습니다. 때문에 북한을 경험한 탈북자들은 절대로 구호품이 주민에게 안간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것은 수십년간 북한에서 살아온 경험으로 터득한 것입니다.
구호품을 보내자면 현지 피해 파악이 가장 중요 합니다. 피해지역을 남측에 보여주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도와야 할 지 다 알게 되는데 한국정부는 정확한 피해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민간단체가 북한에 삐라를 보내기 위해 비닐풍선에 수소를 넣는데 7kg을 날리는 풍선에 약 3~5만원의 수소 가스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원시적인 장치를 달아 보내는데 내용물을 포함해 2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듭니다. 휴전선 인근, 멀리 날아가면 평양부근까지 날아간다고 합니다. 최근 남북 회담때 북한측에서 민간단체에서 보내는 풍선을 트집잡았다고 하니, 효가가 꽤 큰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부적 차원에서 요덕에 날아왔던 풍선처럼 수해지역에 가벼운 라면이나 의약품, 의류 같은 것은 얼마든지 보낼 수 있습니다. 풍선으로 보내는 것이 김정일정권에게 직접 주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든다고 할지라도 북한주민들은 풍선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타락한 김정일 위원장을 거치지 않고 대대적인 풍선 날리기 운동을 한다면 아마 북한에 도움을 주고 싶은 국민이 지금보다는 100배 더 많아질 것입니다.
풍선 효과는 단순히 먹거리를 제공하는 효과도 있지만 정보 전달의 효과가 아주 크고, 주민들을 김정일의 우상화에서 깨어나게 하는데 이만한 수단은 없다고 봅니다.
북한을 도와도 인민과는 무관한 이유
2006/08/23 강철환
탈북자들은 對北지원이 증가 할 수록 북한인권은 더 악화되고 북한정권만 수혜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는 첫째, 북한이 1995년 이후부터 배급제가 붕괴되고 인민들이 알아서 사는 체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공급체계에서 버림받은 인민은 장사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해야 살아가는 세상이 됐다. 현재 정부의 공급체계 안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국가권력 기관의 기관원들과 군대, 평양시민 등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지탱시켜주는 이들이 굶어서 무너지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때문에 모든 것이 궁핍한 북한에서 외부지원은 배급제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 우선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지원물자가 넘쳐나서 남으면 인민에게 갈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대북지원은 군대도 먹이기 힘든 량이다.
김정일이 군대와 관리만 굶기지 않고 잘 해주면 충견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인민을 억압하게 된다. 정권이 무너지거나 약화되야 인민의 자유는 그 반대로 확대된다.
관리들과 군대가 먹을 것이 없고 정권으로 부터 받는 혜택이 줄어들어야 정권에 충성하지 않고 인민의 편에 서게 된다.
두 번째는, 관리들의 최악의 부패상황이 외부원조가 필요로 하는 주민에게 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정가격(국가에서 정한 가격)으로 물건을 빼내 시장가격(10배 이상 폭리)으로 파는 사람들이 능력 있는 자로 평가받았다. 권력이 있어야 국가 물건을 국정가격에 빼내 시장에 되팔아 폭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운동화 한 켤레에 3원50전이면 시장에서는 25~40원에 팔 수 있다. 국가경제가 무너지던 1980년대 후반부터 생필품이 귀해지자 간부들은 너도나도 물건 빼내기에 혈안이 됐었다.
국가에서 생산하는 물건이 거의 없어진 지금 능력있는 자들은 해외원조 물품을 값싸게 빼돌릴 수 있는 자들이다. 통전부(노동당통일전선부)와 군부(軍部) 등이 외부원조를 전담 관리하면서 대남관련 간부들과 이와 결탁한 고위층들 속에서 백만장자가 속출하고 있다.
남한에서 오는 모든 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적에서 보내주는 물건의 유형에 따라 장사 패턴도 달라진다고 한다. 식량은 주로 군부에서 관리하는데 시장에서 유통되는 외부지원 식량은 모두 시장가격에 팔리고 있다. 무상 지원되는 식량은 단 1kg도 없다.
돈이 없어 당장 굶어 죽게 된 주민들에 외부 원조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용천폭발사고 때 한적에서 많은 지원물자를 보냈지만 남조선 상표를 보고 놀랄 지방 사람들을 감안해 평양시민들이 쓰던 옷가지와 이불 등을 모아서 농촌으로 보내고 남한제품은 평양시민에게 싼 가격에 팔았다는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다. 용천이라는 작은 마을에 한국돈으로 421억의 어마어마한 지원물자가 보내줬는데, 제대로 투입됐다면 용천은 순식간에 지상 천국으로 변했을 것이다.
용천엔 북한산 시멘트나 목재, 등을 지원하고 돈이 되는 한국산 물건들은 간부들이 착복하거나 되팔아서 돈을 번다. 용천을 빙자한 당(黨) 외화벌이와 간부 배불리기가 용천 대북지원의 결과다.
이번 수해 때 피해가 집중된 평남 양덕, 신양, 성천, 함남 요덕 등은 산악지방이면서 인민군 군부대가 밀집된 지역이다. 양덕, 신양은 군대 반(半) 민간인 반(半)이 있을 정도로 군인 세상이다.
양덕에는 인민군 8군단 야전지휘부와 원유탱크, 군부대 막사와 무기고가 집중배치 된 곳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이 양덕이 물 폭탄을 맞아 8군단 軍시설들이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무기고까지 여러 곳 파괴됐다고 하니 군대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중장비와 시멘트 등 지원물자는 軍시설물 복구에 우선 사용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선군(先軍)시대에 민간보다 군이 우선하는 것은 선군이라는 말로 입증되기 때문이다.
수해로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는데 국가지도자인 김정일은 미사일 발사 후 40여 일 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찾아간 곳이 또 군부대다. 수해현장은 고사하고 어디서 무슨 짓을 한지는 알 수 없지만, 고위탈북자들은 7~8월 한반도에서 가장 시원한 백두산 근처 삼지연 별장에서 휴가를 보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인민은 수해로 떼죽음을 당하는데 지도자는 휴가나 다니는 그런 한심한 나라에 도움을 준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안의 가장이 가정에 관심이 없는데 그 가장에게 가족을 돌보라고 돈을 주면 술먹고 도박하고 가정을 더 불행에 빠뜨리는 불량 가장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다.
수해 피해가 엄청나든 말든, 김정일은 자기의 안위와 군대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민가가 수백 채 떠내려가도 노예나 다름없는 주민들을 쥐어짜 다시 지으면 되는 것이다. 무너진 다리, 도로는 할 일 없는 주민들을 무보수로 내몰면 금방 복구된다. 이미 평양시민 3천명이 조직돼 양덕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인력이 곧 비용인 남한과는 달리 북한 인력은 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냥 상부의 지시면 모든 주민이 수해복구에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대 시설과 장비들은 돈이 필요하다. 질좋은 시멘트며 철강, 중장비는 우선 군부대 복구에 우선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같은 동포로서 수해를 입은 북한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기본적인 피해규모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고, 특히 인명피해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구호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난 구조는 첫 발생시기에 신속한 현지 접근에 달려있다. 인명구조가 우선돼야 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현지에서 파악이 돼야 도움도 제대로 줄 수 있다.
게다가 모니터링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북지원만 주장하는 것은 인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정권만 돕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
정부가 북한의 정확한 피해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수해를 구실로 대규모 지원을 개시하는 것은 미사일 발사로 어쩌다가 든 채찍의 의미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풍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햇볕정책 이전에 고성능 풍선을 북한에 대대적으로 보냈었다.
수용소가 있는 특수지역을 겨냥해 진행된 대북 심리전이었다.
풍향계(風向計)가 달린 이 풍선은 약 40kg의 무게를 북한 중부지방까지 정확히 보내졌다.
삐라는 북한주민들에게 주요 정보지가 됐고 생필품들은 요긴하게 쓰였다.
1985년 경 요덕수용소에 있을 때 남한에서 보낸 풍선에 담긴 라면과 의약품, 의료품들을 접한 적이 있다. 정치범들은 처음엔 풍선을 보고 기겁해서 도망쳤지만 그 내막을 파악한 뒤로는 풍선만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옷가지들과 의료품들은 큰 도움이 됐다.
종이가 없어 화장지조차 못쓰는 정치범들에게 삐라는 외부정보로도 이용되고 화장지로도 이용됐다. 보위원들은 풍선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됐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건들은 막을 수 없었다.
1997년 이후 햇볕정책을 시작하면서 풍선 날리기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지금부터라도 피해지역에 사랑의 풍선 날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인 심리전이 아니라 사랑의 풍선을 날려야 할 진짜 시기가 온 것이다.
국군의 협조만 얻으면 첨단 장비를 이용해 양덕일대의 주민들에게 충분한 약재와 의류품들을 대거 보낼 수 있다. 북한당국을 거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가 됐다.
2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지원을 보내봐야 인민에게 돌아갈 몫은 거의 없다. 이 정부가 정말 북한인민들이 불쌍하게 생각되고,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풍선으로 얼마든지 보낼 수 있다.
2천억이 아니라 200억이면 풍선 수만개를 날려 수해지역 주민들을 살릴 수 있다. 피같은 국민세금을 수천억을 검증없이 마구 쓰는 것은 남북한 인민에게는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의 스파이들도 못하는 일
2006/08/13 강철환
요즘 북한의 대남(對南)부서는 한국의 친북 주사파들이 일들 하도 잘해서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대남부서의 최고 목적인 對北지원도 남쪽에서 못해줘서 안달이 났고, 김정일 정권의 최대 목표인 미군철수도 눈앞에 보이고 있다.
전교조는 노골적으로 친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남조선의 젊은이들은 인민을 수백만이나 굶겨 죽인 김정일을 우리민족이라고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이 김정일을 몰아세우면 마치 김정일이 약자인 듯 불쌍해한다.
진보단체의 허울을 쓴 친 김정일 세력들은 평택기지에 몰려가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의 운명을 판가름할 전시작전권 문제까지 난데없이 불거져 나왔다.
김정일의 대남전략은 남한에서 반미세력을 추동해 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의 현금과 자원을 흡수해 군부를 살린 후 무력 또는 남한 내 친북세력과 연합해 연방제공화국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연방제는 허울만 연방이지 사실상 김정일을 통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대남적화통일을 의미한다.
미군철수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작통권 환수와 같은 韓美 이간질이다.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워 마치 미국이 한민족의 적(敵) 인 듯 남한의 젊은 세대를 유도한 후 김정일을 돕는 것이 우리민족을 돕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선군정치’ ‘총대정치’ ‘사탕보다 총알이 더 좋다’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통일은 바로 무력 통일이다.
이 무력통일을 위해 북한경제는 폐허가 됐다. 총탄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인민이 수백만이 굶어죽어도 개의치 않는다.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을 만나보면 인민군 내에서는 아직도 국군을 우습게 보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6.25전쟁 때 미군만 없없다면 국군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미군만 없으면 남조선은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만심에 차있다. 한국의 경제기적과 국군의 질적 향상에도 불구하고 인민군의 자신감은 상당한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훈련강도에서 인민군이 국군을 압도한다. 겨울철 동기훈련 때 인민군 병사들은 쌀 배낭을 메고 백두산에서 3.8선까지 산속에서 먹고자며 이동훈련을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민간 부대와 지역별 모의 전투를 치르며 수개월간 눈 속에서 지낸다. 훈련 기간 동안 1개 사단에서 수십 명씩 동사해 죽어 나아가도 노동신문에 기사 한 줄 나가지 않는다.
북한군이 아무리 무너져 있다고 해도 전투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38선 인근에 배치된 장사정포는 유사시 미군의 화력이 선제타격을 가하지 않는다면 서울 -경기 일대는 쑥대밭을 만들 수 있는 막강 화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군이 자랑하는 비밀병기는 화학무기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정치범들을 마음대로 가져다 실험한 각종 생화학무기들은 한반도에 어떤 끔찍한 일을 벌여놓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군은 항공부분에서 북한을 압도할 뿐 해상-육상 모두에서 북한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한발 물러선다면 인민군의 무식한 강경파들이 한 번에 쓸어버릴 것 같은 자신감이 발동하게 되고 우리민족의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국가의 안보는 지나칠 만큼 강조해도 득이 된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내부 불만은 갈수록 확산되고 개혁 개방의 지연으로 북한경제는 소생의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있다.
미사일과 핵으로 한반도를 위협하는 이때 미군과의 공조를 더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한반도의 위급 상황이 오면 자동으로 개입되는 미군의 역할을 스스로 막겠다는 것은 김정일의 스파이들이나 할 짓이다.
우리가 흘릴 피를 대신 함께 흘려줄 혈맹을 이런 위험한 시점에 배척하겠다는 것은 나라를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