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동계올림픽은 창바이에서” 中영토 도장찍기

중국 지린 성 바이산 시 푸쑹 현 쑹장허 진에서 동남쪽으로 10.6㎞ 떨어진 곳에 건설되고 있는 백두산 공항 건설 현장. 옌볜=하종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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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중국명 창바이·長白 산)이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고 있다. 산기슭에선 공항과 철로, 도로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등산로 입구엔 대규모 숙박시설과 휴양레저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개발의 삽질로 제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동계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대규모 스키장도 들어선다. 중국은 5년 안에 백두산 관광객을 150만 명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관광과 주변 산업을 활성화해 10년 안에 주민소득을 1인당 3000달러 정도의 샤오캉(小康·중류생활) 사회로 진입시키고 백두산 주변이 중국의 영토라는 사실도 세계인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겠다는 이중 포석이다.》
▽산자락 곳곳이 건설현장=1일 오전 지린(吉林) 성 바이산(白山) 시 푸쑹(撫松) 현 쑹장허(松江河) 진에서 백두산 천지 쪽으로 10.6km가량 떨어진 백두산국제공항 건설현장.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산 자락의 공사현장엔 땅고르기 작업이 한창이다. 창바이산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창바이산관리위)의 자료에 따르면 115∼130명이 타는 B737 소형 여객기가 주로 뜨고 내리는 공항이라지만 공사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다. 길이와 너비가 각각 5∼7km, 2∼3km는 돼 보인다. 활주로 길이가 2.6km로 설계돼 점보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 있다.
공사현장 곳곳엔 굴착기와 트럭, 불도저가 수십 대씩 서 있다. 건설인부 가운데엔 민간인뿐 아니라 인민해방군 공군 제8공정 총대(總隊)의 부대도 보인다. 공사 관계자들과 인근 주민들은 ‘유사시 군사용 공항으로 쓰일 것’이라고 쑥덕거렸다.
[화보]중국 '백두산 공정' 현장을 가다
3억980만 위안(약 373억 원)이 투입되는 이 공항은 베이징(北京) 올림픽 직전인 2008년 8월 초 개항한다. 연간 수용능력은 54만 명.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안투(安圖) 현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진에서 쑹장허 진으로 가는 도로 중간엔 얼다오바이허 진과 허룽(和龍) 시 구간을 잇는 철로 공사가 한창이다.
100km 남짓한 이 철로가 연결되면 지린 성의 성도인 창춘(長春)에서 지린∼옌지(延吉)∼허룽∼백두산(얼다오바이허)∼바이산∼퉁화(通化)로 이어지는 중국 동북동부 철도가 순환선처럼 하나로 연결된다.
백두산의 북, 서, 남 3곳의 등산로 외곽을 연결하는 얼다오바이허∼쑹장허∼만장(漫江)∼창바이 구간의 도로는 현재 곳곳에서 확장 포장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 서, 남 3곳의 등산로 입구(산문·山門)를 연결하는 백두산순환도로는 현재 설계 단계. 자가용을 몰고 오는 관광객을 위해 창춘∼쑹장허 구간 등 고속도로 3개 노선이 추가로 건설된다.
중국은 얼다오바이허, 둥강(東崗), 만장 등 3진(鎭) 지역을 백두산 관광객을 위한 숙박 및 편의시설 지역으로 집중 개발할 예정이다.
백두산순환도로를 축선으로 허핑(和平) 지역은 휴가시설, 싼화(三花) 지역은 건강휴식시설, 워룽(臥龍) 지역은 국제회의시설, 츠시(池西) 지역은 교통축선으로 특화해 관광객의 만족도를 최대한 높인다는 구상이다.
또 창바이산관리위는 3일 왕톈어(望天鵝)에 국제스키장을 만들어 2018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관리위는 왕톈어 스키장을 기지로 삼아 10년 동안 얼음과 눈을 주제로 하는 백두산 관광브랜드를 키워 나가고 각종 국제회의, 동계 스포츠대회 등을 계속 열어 인지도를 높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백두산을 ‘청정녹색 브랜드’로=중국의 백두산 활용은 단순히 관광산업에 그치는 게 아니다. 인삼, 광천수부터 약초, 지열, 녹색식품 판매까지 전방위적이다. 현재 개발하려는 녹색산업 브랜드만 20여 종.
세계시장의 57%를 차지하고 있는 창바이산 인삼은 가격이 한국 인삼의 20% 안팎에 불과하지만 ‘청정’의 백두산 이미지가 추가될 경우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백두산 생수는 지린 성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브랜드. 지린 성은 최근 백두산 생수를 유럽 알프스산 생수, 러시아 캅카스 산맥에서 나오는 청정수와 함께 세계 3대 생수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지린성은 이미 창바이 산 광천수 산업발전 추진 팀까지 꾸린 상태다.
▽북한과 협의 거의 전무=이처럼 중국은 백두산을 대규모로 개발하면서도 백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한과 거의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백두산 프로젝트에는 북한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게 적지 않다. 먼저 백두산순환도로는 북한 구간을 연결하지 않으면 완성이 불가능하다. 남쪽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는 정상에 오르더라도 북한 땅으로 발을 옮기지 않으면 천지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북한의 협조 없이 백두산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중국은 단독 개발을 강행하고 있다. 북한을 끌어들일 경우 백두산을 중국과 북한이 함께 소유하는 것으로 비치는 게 싫은 데다 중국이 단독으로 백두산을 세계유산에 등록하는 데도 방해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백두산=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30년 보장받았는데 나가라니…”
최근 백두산이 집중 개발되면서 그 불똥이 백두산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해 온 여행사와 숙박업, 교통운수업 관계자들에게 튀었다.
특히 백두산 북쪽 등산로 산문(山門) 안으로 들어가 거액을 투자한 한국인 기업가들은 창바이산관리위의 갑작스러운 철수 요구에 할 말을 잃은 상태다.
지난해 백두산 관광객은 50만 명가량. 이 중 한국인은 7만∼10만 명이다. 그동안 관광객들은 90% 이상이 옌볜 조선족자치주 주도인 옌지 시의 공항을 거쳐 백두산에 올라갔다. 옌지에서 백두산 북쪽 등산로 입구까지는 248km 안팎, 천지까지는 273km다.
그러나 현재 건설 중인 백두산공항에서 서쪽 등산로 입구까지의 거리는 겨우 9.4km. 옌지공항에서 산문까지 4시간가량 걸리지만 백두산공항에서는 단 10분이면 된다.
따라서 이들은 백두산공항이 문을 열면 옌볜의 관광수입이 현재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동포의 생활상을 보려는 한국인을 제외한 중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모두 신공항으로 발을 돌릴 게 뻔하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의 여행사는 70여 개, 관광업 종사자는 1만여 명에 이른다.
더구나 백두산에 투자한 한국인 투자자들은 중국 지린 성 정부로부터 20∼30년씩 운영 기간을 보장받고 300만∼700만 달러의 거액을 투자했지만 창바이산관리위가 올해 4월 갑자기 철수를 요구해 더욱 황당해 한다.
창바이산관리위 측은 세계유산에 등록하려면 관광지에 숙박시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세계유산에 등록된 관광지 가운데 호텔 등 숙박시설이 있는 곳도 적지 않다. 특히 투자자들은 호텔에 최첨단 오염방지 시설을 갖추었는데도 철거를 강행하려는 처사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화보]중국 '백두산 공정' 현장을 가다
백두산=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中 ‘백두산 공정’ 현장을 가다…노골화하는 역사-문화 왜곡 |
[동아일보] 《백두산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숨결을 떼어내려는 중국 정부의 ‘백두산(중국명 창바이·長白 산) 공정’이 최근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지난해부터 백두산 개발에 힘을 쏟기 시작하면서 백두산에서의 ‘한민족 흔적 지우기’가 노골화하는 느낌이다. 중국은 이 같은 ‘역사 및 문화 세탁’을 거쳐 백두산을 세계유산에 등록함으로써 영토분쟁이 끝나지 않은 백두산 지역을 확고부동한 중국의 영토로 세계에 알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 노골화하는 역사, 문화 세탁
올해 들어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의 안투(安圖) 현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진과 창바이(長白) 조선족자치현 등 백두산 자락의 한글-한자 도로표지판은 한자-영문 표지판으로 줄줄이 교체됐다.
당초 조선족 자치지역이어서 반드시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도록 돼 있는 간판을 모두 바꾸고 있는 것. 중국은 백두산 관리권이 조선족 자치지역에서 창바이산보호개발관리위원회로 넘어온 만큼 이제는 한글을 병기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백두산 자락은 조선족이 30∼65%에 이를 정도로 한민족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따라 고구려가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규정되면서 고조선시대부터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한민족의 활동공간이었던 백두산의 주류세력도 한민족에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 대신 백두산을 만주족과 한족의 역사무대로 장식하려는 연구는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백두산 주변 시와 현은 다투어 창바이산문화연구회를 조직했다. 올해 6월 초엔 창춘(長春)에 창바이산문화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문화박물관에 걸려 있는 백두산 산신령은 만주족의 산신령이다.
○ 겉과 속 다른 백두산 공정
중국 정부가 드러내 놓고 추진했던 동북공정과는 달리 백두산 공정은 실체를 찾기가 쉽지 않을 만큼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 정부나 백두산 관련 기관의 공식 문헌을 아무리 찾아봐도 ‘백두산(또는 창바이 산) 공정’이란 용어 자체가 없다. 동북공정의 후유증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한민족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은 매우 치밀하고도 총체적이다.
먼저 백두산에 대한 소개부터가 다르다. 남북한은 주봉을 병사봉(장군봉)으로 치지만 2004년 지린 성의 창바이산관리국이 출간한 ‘중화명산 창바이 산’에는 주봉을 백운봉(白雲峰)이라고 써놓았다. 해발 2744m(북한 주장 2750m, 중국 주장 2749.5m)인 병사봉은 백두산 최고봉으로 북한에 있다. 반면 해발 2691m인 백운봉은 중국에 있다.
백두산의 역사와 문화 왜곡은 더욱 노골적이다. 남북한은 백두산을 한민족의 발상지로 고조선부터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민족의 역사무대로 여기지만 중국은 만주족(여진족)의 발상지로 중국 동북지역의 다양한 소수민족 정권이 활동한 무대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백두산에서의 한민족 역사를 19세기 중엽 이후의 간도개척사만을 인정한다.
○ 개혁개방 이후 백두산 중시
당초 백두산을 중시하지 않던 중국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1980년대부터다.
집권 기간 내내 백두산을 찾지 않은 마오쩌둥(毛澤東)과는 달리 덩샤오핑(鄧小平)은 1983년 8월 백두산에 올라 ‘長白山(장백산)’과 ‘天池(천지)’라는 휘호를 남겼다. 그의 휘호는 현재 북쪽 등산로 입구와 천지의 비석에 새겨져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은 1995년에,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은 지난해 백두산을 찾았다.
“백두산엔 문화가 없다”며 백두산을 경시했던 학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1994년 백두산 자락의 바이산(白山) 시가 처음 주최한 제1차 전국창바이산문화연구토론회는 점차 발전을 거듭해 2000년 10월 지린 성 차원의 ‘창바이산문화연구회’로 정식 출범했다. 문학예술 역사 고고 관광 등 다양한 각계 인사 및 학자 220여 명이 참여하는 매머드 학술단체다. 매년 출간되는 연구 논문만 60여 편으로 중국의 ‘백두산 공정’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한다.
○ 백두산 영원히 잃을 수도
이미 중국 정부는 2008년 백두산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중국이 백두산을 자연유산이 아니라 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백두산 종합개발의 총책임자인 스궈샹(石國祥) 창바이산보호관리위원회의 당서기 겸 주임 등이 “창바이 산을 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것”이라고 사석에서 자주 강조했다는 것.
고구려연구회 이사장인 서경대 서길수 교수는 “중국이 백두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서 한민족 색채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총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철저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백두산=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中, 역사 왜곡” 메아리없는 외침
백두산에서 한민족을 떼어내려는 ‘백두산 공정’에 대해 중국의 조선족들은 못마땅해하면서도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백두산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조선족 학자들은 현재 중국의 백두산 개발과 문화연구에서 대부분 소외된 상태다.
그러나 이들의 학문적 입장은 확고하다. 백두산은 한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아버지 환웅(桓雄)이 3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온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이며, 부여와 고구려, 발해의 첫 도읍지가 모두 백두산 자락이라는 것.
또 중국이 고구려를 9개의 다민족 국가로 규정하면서 한민족은 그중에서도 ‘지배적 다수’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선족 학자들은 “고구려를 한민족의 역사에서 분리하려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발해 역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 국가이긴 하지만 당시 선진 문화를 이루었던 고구려의 정체성을 그대로 계승한 국가라는 것.
특히 조선족들이 19세기 중엽 이후 들어가 황무지를 개척한 간도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 현장도 모두 백두산 자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이름이나 신분을 드러내길 꺼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실명이 거론될 경우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한국 정부나 학자들에게 감정적인 정치적 대응을 자제해 줄 것을 주문했다. 연변대의 한 조선족 학자는 “한민족 문화는 백두산과 절대 갈라놓을 수 없는 문화”라며 “역사적 근거를 갖고 얘기하면 중국 정부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옌지=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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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9월 4일(월) 3:00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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