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심리

by 永樂 posted Sep 18, 2006
허황심리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보면 그가 지독한 경쟁심리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얼마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경제회복을 위한 ‘뉴딜’을 제안하면서 재계와의 화해를 약속했을 때였다. 김 의장은 그 표시로 재계 인사의 사면을 약속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정작 지난 8·15사면에서 일부러 경제인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김 의장에 대한 경쟁심리의 발동이었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매년 6%의 경제성장률을 공약하자 노무현 후보는 대뜸 7%를 내걸었다. 절대로 상대방에게 질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 집권기간 3년 평균 경제성장률은 3.9%에 머물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발표한 ‘월드 팩트 북’에 따르면 2005년도 한국의 성장률은 세계 114위였다.

요즘 들어 노 대통령의 경쟁심리가 발휘되는 곳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세워질 ‘용산민족공원’이다. 노 대통령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건설한 청계천 수로공원이 서울 시민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용산민족공원을 통해 청계천을 능가해 보려는 경쟁심리가 작동하는 듯하다. 시민의 휴식 공간 하나 마련하면서 거창한 ‘민족공원 선포식’까지 연 것도 이런 까닭이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용산미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데만 1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청계천 복원이나 뚝섬의 서울숲 조성에 3000억원씩 쓰였다니 이런 공원을 3개나 건설할 수 있는 예산 규모다. 건교부는 민족·역사·자주를 상징하는 시설물들을 대거 건립할 방침이라지만 과연 서울 시민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울창한 숲을 원할지, 아니면 김일성 동상이나 주체탑 등이 즐비한 것을 원할지 조금이라도 고민해 봤는지 궁금하다.

노 대통령은 돈을 1조원씩 공원에 들이면 청계천 따위는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1조원이 얼마나 큰 돈이고 귀중한 세금인지를 놓고 고민해본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찌된 일인지 노 대통령은 나랏돈 쓰는데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다. 세수(稅收)가 얼마나 필요하든 간에 일단 쓰고보자는 식이다. 이쯤 되면 경쟁심리가 아니라 허황심리다.

노 대통령의 허황심리는 이미 국가채무 급증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새로 발생한 국가 빚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김대중 정부까지의 54년간 쌓인 액수보다 많다. 국가채무 규모는 내년에 드디어 300조원을 돌파할 기세다. 현 정부에서 늘어난 빚만 150조원을 넘는다.

현 정부처럼 닥치는대로 대형 국책사업을 남발하는 정권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재원 마련을 위한 대책은 국민이 알아서 세워주길 바랄 뿐이다. 이 정부가 발표한 주요 국책사업만 돌아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주국방을 위한 전력증강, 미군부대 이전, 국가균형발전계획, 행정중심복합도시 및 혁신도시 건설 등만 해도 당장 540조원이 필요하다.

이들 계획과는 별도로 발표된 것이지만 현 정부의 미래전략 보고서 ‘비전 2030’은 더 압권이다. 현 정부의 포부에 따르면 한국은 가만 있어도 앞으로 25년 후에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의 3배인 4만9000달러에 이르고 일자리 걱정은 완전히 사라진다. 사교육비도 한푼 안들어간다. 65세 이상 노인은 3분의 2가 풍족한 연금으로 노후걱정을 덜게 되며 질병에 걸리면 국가가 무상으로 치료해준다. 그야말로 후천개벽이요, 천년왕국의 재림이다.

다만 한가지 조건이 있다.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추가로 1100조~1600조원쯤 더 쓰자고 한다. 이쯤되면 결코 허황심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뭔가 심각한 통치장애 현상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일국의 지도자라면 응당 온 힘을 다해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국부를 늘려나갈 책임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히려 절제없이 낭비할 줄밖에 모른다면 그 나라의 재화는 곧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개인의 경쟁심리나 허황심리가 이토록 국정을 왜곡해서야 곤란한 것 아닌가. 임기가 1년반이나 남았다는데 그 사이에 또다시 무슨 뚱딴지같은 ‘국가대계’가 등장할는지 더럭 겁부터 난다.

[[이신우 / 문화일보 논설위원]]  

기사 게재 일자 2006/09/18

* 다 좋은데 글에 감정이 조금 실려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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