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로 시작된 탈냉전… 10·9에서 막 내렸다
한 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보니 그 시대가 좋았다. 공산주의가 몰락했고 자유시장 민주주의가 확산됐다. 미국의 우위 속에 안정이 유지됐다. 그 속에서 중국과 인도가 평화롭게 성장했다. 미국도 번영했다. 유럽은 자유 유럽으로 하나가 됐다. 물론 9·11테러가 있었고 보스니아 사태가 있었다. 석유 국가의 독재자도 부상했다. 이걸 하찮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그러나 냉전시대의 광범위한 억압적 상황이나 핵 대결과 비교하면 탈(脫)냉전 시대는 훨씬 더 휴머니티가 넘쳤다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탈냉전시대가 끝나는가 보다. 언젠가 역사가들은 탈냉전시대는 ‘11·9’에서 시작돼 ‘10·9’에서 끝났다고 말할지 모른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탈냉전시대가 시작됐고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으로 탈냉전시대가 끝나고 훨씬 더 문제투성이인 ‘포스트 탈냉전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포스트 탈냉전시대는 다음 세 가지로 규정된다. 첫째, 핵무장한 아시아.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하는데 일본 대만 한국이 언제까지 비핵 국가로 남을 것인가. 둘째, 핵무장한 중동. 이란은 북한의 선례를 따를 것이다. 시아파 페르시아 국가가 핵무기를 갖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같은 수니파 아랍 국가가 언제까지 비핵 국가로 남을 것인가. 셋째, 아랍 세계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이라크의 분열. 유가의 불안정과 테러의 확산을 초래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말하고 싶다.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탈냉전시대에 비해 포스트 탈냉전시대가 그들의 번영에 더 큰 위협이 됨을 깨닫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훨씬 더 위험하고 불안정한 시대에 접어들 것이다.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힘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생각을 벗어 던질 수 있다면, 또 부시 행정부가 이란과 북한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생각을 털어낸다면 탈냉전시대는 계속 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다룰 때 빠져야 한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그들의 핵 모험을 멈출 수 있는 혼자만의 제재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이란과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뿐이다.
중국이 북한을 향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지 않으면, 또 유엔 핵 사찰을 허용하지 않으면 에너지와 식량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힌다면 김정일은 굴복할 것이다. 그는 자멸을 택할 사람이 아니다.
중국이 북한에 아주 명확히 위협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핵무장한 북한, 핵무장한 아시아가 될 것이다. 이런 사태가 중국의 향후 발전에도 좋지 않다는 것은 말하나 마나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을 향해 “핵 프로그램을 고집하면 가장 강력한 유엔 경제 제재가 실시될 것이고 우리도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다면 아야톨라(최고 성직자)들은 뒤로 물러설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해야 유럽 국가들이 확신을 갖고 제재를 밀어붙일 수 있고 테헤란은 세계의 일치된 압력에 겁먹게 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 태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부시 행정부 내의 강온파가 내부 대립을 극복하고 한목소리로 북한과 이란의 정권 교체보다는 행동 방식의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또 북한과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할 경우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준비를 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정권 교체와 행동 변화 추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북한의 핵실험 덕분에 우리는 진실의 순간(a moment of truth·투우사가 마지막으로 소의 급소에 칼을 꽂는 순간에서 유래된 말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최후의 순간을 말함)에 서 있다. 그렇다. 우리 미국이 먼저 마음을 잡아야 하지만 모스크바와 베이징(北京)도 마음을 잡아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자적(多者的) 해결책을 주장해 왔다. 그들이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적 옵션을 필요 없게 만들 다자적 제재안에 서명할 것인가. 탈냉전시대가 계속되길 원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무임승차자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 일방주의를 거부한 그들이 자국에 큰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다자적 제재마저 거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도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그렇게 한다면 상대적으로 좋았던 탈냉전시대는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계속 무임승차자로 남아 있으려 한다면 우리 모두가 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길은 더 험해지고 있는데 미국은 이제 이 버스를 혼자 움직일 수 없다.
버스는 여기서 멈추고 만다.
정리=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토머스 프리드먼
퓰리처상을 3차례 수상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이다. 중동문제 연구로 미국 브랜다이스대에서 학사학위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뉴욕타임스에 입사해 베이루트 및 예루살렘 특파원, 미 국무부 백악관 출입기자를 거쳐 수요일과 금요일에 주로 국제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세계화 문제를 다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상은 평평하다’ 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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