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루 잘 사는 세상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도 오랜 세월 빈곤에 허덕이다가 반세기 전부터 머리끈 동여매고 경제발전을 이루어 잠깐 사이에 빈곤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더니 어느 틈에 여유가 생겨 ‘복지’를 외치며 허리끈 풀고 둘러앉아 나눠 먹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까지나 배고픔을 참고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더구나 부유한 자는 사치가 극심한데 가난한 자는 사람다운 품위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 약자를 보살피고 보호하는 장치가 있어야 그 사회가 균형을 잡고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산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자의 책임을 들면서, “그 생업을 골고루 마련하여 다 함께 살아가도록 할 수 있는 자라야 군주요 목민관이며, 그 생업을 골고루 마련하여 다 함께 살아가게 할 수 없는 자는 군주나 목민관의 책임을 저버린 자이다”(「田論(1)」)라고 역설하였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자는 더욱 빈곤해져서 부자의 땅은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기도 하다. 부유한 집에서는 애완견도 전용미용실에서 치장시킨다는데 가난한 자는 집을 잃고 길바닥에서 노숙하기도 하는 우리 시대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찌 가난한 자의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은 타고나면서 얼굴이 다르고 환경이 다를 뿐만 아니라, 기질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 원래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그 차이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왜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동일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회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집안의 가족이거나, 한 마을의 이웃이거나, 한 나라의 국민이거나, 한 지구의 인류라는 공동체임을 각성하게 되면, 이에 따라 유대감이 생겨나고 서로에 대한 우애와 의무감으로 서로 돕고 화합하게 된다. 유대감이 강하면 무엇이든지 함께 공유할 수 있지만, 유대감이 약해지면 뿔뿔이 흩어져 이기심만 내세우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의 꿈과 웃음을 앗아간 주범, 불균형과 불평등
다산은 정치란 같은 나라의 백성들 사이에 격차가 심하게 벌어져 유대감이 깨어졌다면, 분배를 고르게 하여 바로잡아주는 것이라 보았다.(「原政」) 그는 심한 격차가 일어나 공동체의 유대감을 깨뜨리는 중요한 대목으로 다음의 다섯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생업의 기반인 토지소유의 불균형이다. 토지소유의 격차가 심하여 균형이 깨어지면 백성에게 토지를 고르게 나누어주어 바로잡는 것이 정치라 한다. 요즈음은 토지가 아니더라도 취직을 못해 생업의 기반을 잃고 있는 젊은 층에게 직장을 제공해주는 것이 고르게 하는 과제일 것이다.
둘째는 지역에 따라 생산되는 산물의 불균형이다. 산물의 지역적 차이가 심하면 서로 유통을 원활하게 하여 바로 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중간상인이 유통구조를 어지럽혀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과잉생산되어 가격이 폭락하는 것도 해소해주는 것이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과제일 것이다.
셋째는 폭력으로 약탈이 일어나는 힘의 불균형이다. 난폭한 세력이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 폭력은 무력을 동원해서 제압하여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바로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우리시대에도 조직폭력배가 서민을 갈취하여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 허다하고, 이 폭력이 어린 학생들 속에까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은 균형과 유대감을 파괴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넷째는 사회기강의 붕괴에 따른 불균형이다. 난폭한 자가 득세하고 선량한 자가 고통받는 법질서의 붕괴는 법률의 집행을 엄정하게 하여 바로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거액의 뇌물을 받아도 모른다고 잡아떼고 증거가 없다고 무죄로 판결되는데, 힘없는 시민의 사소한 과오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면 누가 그 법질서에 승복할 수 있겠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는 불문율이라면, 어떻게 법 앞에서 평등한 국민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는 인사의 공정함을 잃은 불균형이다. 능력과 업적에 따라 지위가 오르지 않는다면 파벌을 없애고 공정한 원칙을 확립하여 인재를 기용함으로써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오늘은 당쟁이 심하던 조선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줄을 잘 서야 승진도 하고 권력자의 측근이라야 이권을 차지하는 요직들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고서 균평함이나 정의로움이 실현될 수 있을까.
복지나 분배는 경제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여 다 같이 나누어 먹자고 국솥 앞에 모두 숟가락 하나씩 들고 둘러앉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있는 불균형·불평등의 온갖 격차를 해소하여 우리가 같은 나라 국민이라는 서로의 유대감을 견고하게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로잡는 정치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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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도 오랜 세월 빈곤에 허덕이다가 반세기 전부터 머리끈 동여매고 경제발전을 이루어 잠깐 사이에 빈곤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더니 어느 틈에 여유가 생겨 ‘복지’를 외치며 허리끈 풀고 둘러앉아 나눠 먹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까지나 배고픔을 참고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더구나 부유한 자는 사치가 극심한데 가난한 자는 사람다운 품위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 약자를 보살피고 보호하는 장치가 있어야 그 사회가 균형을 잡고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산은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자의 책임을 들면서, “그 생업을 골고루 마련하여 다 함께 살아가도록 할 수 있는 자라야 군주요 목민관이며, 그 생업을 골고루 마련하여 다 함께 살아가게 할 수 없는 자는 군주나 목민관의 책임을 저버린 자이다”(「田論(1)」)라고 역설하였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자는 더욱 빈곤해져서 부자의 땅은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기도 하다. 부유한 집에서는 애완견도 전용미용실에서 치장시킨다는데 가난한 자는 집을 잃고 길바닥에서 노숙하기도 하는 우리 시대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찌 가난한 자의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람은 타고나면서 얼굴이 다르고 환경이 다를 뿐만 아니라, 기질도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 원래 사람마다 제각각이니 그 차이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왜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동일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회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집안의 가족이거나, 한 마을의 이웃이거나, 한 나라의 국민이거나, 한 지구의 인류라는 공동체임을 각성하게 되면, 이에 따라 유대감이 생겨나고 서로에 대한 우애와 의무감으로 서로 돕고 화합하게 된다. 유대감이 강하면 무엇이든지 함께 공유할 수 있지만, 유대감이 약해지면 뿔뿔이 흩어져 이기심만 내세우기 쉬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사회의 꿈과 웃음을 앗아간 주범, 불균형과 불평등
다산은 정치란 같은 나라의 백성들 사이에 격차가 심하게 벌어져 유대감이 깨어졌다면, 분배를 고르게 하여 바로잡아주는 것이라 보았다.(「原政」) 그는 심한 격차가 일어나 공동체의 유대감을 깨뜨리는 중요한 대목으로 다음의 다섯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생업의 기반인 토지소유의 불균형이다. 토지소유의 격차가 심하여 균형이 깨어지면 백성에게 토지를 고르게 나누어주어 바로잡는 것이 정치라 한다. 요즈음은 토지가 아니더라도 취직을 못해 생업의 기반을 잃고 있는 젊은 층에게 직장을 제공해주는 것이 고르게 하는 과제일 것이다.
둘째는 지역에 따라 생산되는 산물의 불균형이다. 산물의 지역적 차이가 심하면 서로 유통을 원활하게 하여 바로 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중간상인이 유통구조를 어지럽혀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과잉생산되어 가격이 폭락하는 것도 해소해주는 것이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과제일 것이다.
셋째는 폭력으로 약탈이 일어나는 힘의 불균형이다. 난폭한 세력이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 폭력은 무력을 동원해서 제압하여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바로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우리시대에도 조직폭력배가 서민을 갈취하여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 허다하고, 이 폭력이 어린 학생들 속에까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은 균형과 유대감을 파괴하는 사회적 질병이다.
넷째는 사회기강의 붕괴에 따른 불균형이다. 난폭한 자가 득세하고 선량한 자가 고통받는 법질서의 붕괴는 법률의 집행을 엄정하게 하여 바로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거액의 뇌물을 받아도 모른다고 잡아떼고 증거가 없다고 무죄로 판결되는데, 힘없는 시민의 사소한 과오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면 누가 그 법질서에 승복할 수 있겠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는 불문율이라면, 어떻게 법 앞에서 평등한 국민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다섯째는 인사의 공정함을 잃은 불균형이다. 능력과 업적에 따라 지위가 오르지 않는다면 파벌을 없애고 공정한 원칙을 확립하여 인재를 기용함으로써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정치라 한다. 오늘은 당쟁이 심하던 조선시대도 아닌데 여전히 줄을 잘 서야 승진도 하고 권력자의 측근이라야 이권을 차지하는 요직들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고서 균평함이나 정의로움이 실현될 수 있을까.
복지나 분배는 경제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여 다 같이 나누어 먹자고 국솥 앞에 모두 숟가락 하나씩 들고 둘러앉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있는 불균형·불평등의 온갖 격차를 해소하여 우리가 같은 나라 국민이라는 서로의 유대감을 견고하게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문제를 바로잡는 정치의 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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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