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02
인간다움을 순식간에 궤멸하는 원시 고통 ‘배고픔’, 이것이 북한의 현실
영화 ‘겨울나비’ 김규민 감독 인터뷰

영화 ‘겨울나비’ 김규민(37) 감독은 북한 황해북도에서 태어나 7살 때 처음으로 공개 총살장면을 목격했다. 공개처형이 끝난 후 그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해 친구들과 함께 현장을 빙빙 돌며 뛰어 놀았다. 그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기억이었지만 탈북 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세상은 인간 세계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북한에서 탈출(1999년 탈북 2001년 입국)한 후 단편영화 ‘착각’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탈북 1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업영화 ‘겨울나비’를 내놓았다. 겨울에 태어나 날갯짓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눈밭에서 죽어가는 가냘픈 나비는 그가 탈북하기 전 목격한 한 모자의 실제 모습이다.
굶주림으로 아버지와 형을 잃은 소년 진호는 산에서 벤 마른 나무를 팔아 병든 엄마를 모시고 사는 가장이다. 어느 날 산에서 부상을 당하고 길을 헤매면서 비참한 현실은 지옥으로 돌변한다. 진호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날이 늘수록 병든 엄마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배고픔으로 생사를 넘나든다.
그러던 중 진호는 다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온다. 모자는 상봉했지만 더 이상 곡식과 바꿀 나무는 없다. 끝을 알 수 없는 굶주림이 이어지면서 지옥은 현실에 안착한다.
주린 배를 물로 채우다 급기야 흙을 씹어 먹고 종이를 먹는 엄마의 모습은 북한의 현실인 동시에 남한의 판타지다. 죽음과 맞닿은 배고픔을 모르는 이들은 이 장면을 현실을 극대화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여길 테지만 김 감독은 이것이 바로 북한의 현주소라고 강조한다.

북한을 표현하기 위해 김 감독이 ‘배고픔’을 선택한 이유는 인간다움을 순식간에 궤멸하는 원시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단 한 끼도 배부르게 먹어보지 못한 주민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으로 여기고 그 사진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굶주림은 이 비극적인 현실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혹독한 배고픔에 허덕이다 끔찍한 결말로 치닫는 모자의 운명을 김 감독은 담담하게 영상으로 풀어냈다.
북한을 담았지만 영화에서는 북한 말을 접할 수 없다. 배우들은 서울 표준어를 구사하며 극을 이끌어 간다. 서울 표준어와 북한 참상의 묘한 결합은 스크린에 비췬 저 곳이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의 어느 귀퉁이가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관객을 영화 깊숙이 빠져들게 하는 이 착각은 처참한 결말에서 강력한 충격으로 돌변한다.
오는 7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 감독을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배급사 ‘웃기씨네’ 사무실에서 만났다.
“원하는 만큼 받아들이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8년 전부터 구상했다. 한국에 와서 첫 단편을 찍을 때 ‘겨울나비’의 마지막 부분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지만 뭔가 부족했다. 다른 작품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감정에 북받친 김 감독은 이틀 동안 울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감독의 목소리는 커졌고 말은 빨라졌다. 세 가지로 구분해 쏟아내고 난 후 그는 ‘좀 흥분했다’며 멋쩍어했다. 하지만 그 흥분은 정당했고 날카로웠다. 아래는 김 감독의 말이다.

“어떤 분은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의 현실이 50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라. 북한만 그런 것 아니다 우리도 그랬으니 뭐 괜찮다는 식이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가 50년 전의 이야기라면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 이것은 현재 일어나기 때문에 가슴 아프고 참혹하다.
김정일이 중국을 들어간다고 하니까 모든 언론이 다 떠들더라. 하지만 토끼풀 먹다 죽은 여자에 대해서는 ‘그런 일도 있었느냐’는 반응이었다. 김정일과 김정은도 중요하지만 그 밑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국민들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권력층이 아니라 그 밑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이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말할 때 자기의 이익에 맞는 만큼 자신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 걸러낸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이해관계에 따라 딱 그 만큼의 북한만 이해하려고 한다. 원하는 만큼 받아들이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말하고 싶은 만큼만 말하는 것도 진실은 아니다.”
김 감독은 ‘겨울나비’의 힘이 진실성에 있다고 말했지만 영화에 담은 진실은 70%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남한에서는 북한처럼 민둥산을 찾을 수 없었고, 배우들에게 하루에 한 끼만 먹게 한 후 촬영해도 굶주린 북한 주민의 얼굴빛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

탈북 10년째, 굶어죽을 일이 없다는 것이 여전히 행복하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북한에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열흘 동안 굶어 본 적이 있다는 김 감독은 북한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굶어 죽을 일이 없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 후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러 대전에 내려가기 전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다. 형사는 ‘뭘 그런 걸 다 묻냐’고 귀찮아하며 ‘어디를 가든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된다. 사고만 치지 말라’고 했다. 당시 뭔가에 꽁꽁 묶여 있다가 풀린 느낌이었다. 행복으로 포만감을 느꼈다”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탈북 후 10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감동’ 속에서 살고 있었다. 굳이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행복하다고 소리치는 듯 했다.
김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북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부모에게 감사하길 바란다고 했다. 6.25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모든 이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자가 내가 될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