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가 나라를 먹여살릴 수 없는 몇 가지 이유
-제대로 의사 노릇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2012년 7월18일(수) 14:25:29 [조회수 : 113]
권복규(이화여대 의대 교수, 의학박사) webmaster@socialdesign.kr
의료에 대해 우리나라 여론 주도층의 시각은 둘로 갈립니다. 하나는 김대호 소장님과 같은 “의료산업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공공재론”입니다. 전자는 우리 의학을 발전시키고, 심지어는 의료에 대한 자본의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해외 환자를 유치하고 내수를 확대하며, 신의료기술을 발전시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주장이며, 후자는 교육과 함께 의료를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보아 의료의 전면 무상화를 통해 질병으로 인해 빈곤해질 가능성을 없앤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두 시각은 모두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크게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의료는 "기본(필수)의료"와 "의료상품"으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외상치료나 분만과 같이 기본적인 권리로서, 또는 예방접종이나 전염병치료와 같이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누구나 받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의료이며, 후자는 미용성형, 라식수술, 비만치료와 같이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의료입니다. 그런데,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이 둘이 딱 갈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위암치료의 경우, 1~2기에서 절제수술과 항암화학요법은 기본의료로 여겨질 수 있지만, 4기 이상의 환자에 대한 별로 효과가 없는 항암화학요법은 기본의료로 여겨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기본의료이며, 무엇이 선택인가에 대한 결정은 의학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결정입니다.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심정으로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고가의 치료에도 매달리게 됩니다. 공공의료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그러한 치료에 대한 결정을 윤리수준이 높은 의사집단이 쥐고 있습니다. "효과 없는"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싶어도 의사가 거절하면 못 받는 것이고,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환자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기본의료"에 대한 급여는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환자의 요구가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를 억제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는 이름으로 효과가 분명하지 않은 진단과 치료가 시술되고 있으며 그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보호자가 합니다.
의료가 공공재임을 주장하는 무상의료논자들은 국가가 아무리 보장성을 높여주어도, 결국 이 함정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새로 나온 항암제가 환자의 50%에서 평균 2개월 생존을 연장시켜주는 대가로 2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할 때 이것을 “무상”으로 국가에서 감당하게 해야 할까요? 아마 그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돈 내서라도 이런 치료를 받겠다는 환자 많습니다. 그러면 국가는 이런 요청을 금지시켜야 할까요?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결국, 무상이라는 건 허울에 불과해질 공산이 높은 겁니다. 어떤 재정도 의사의 전문직업정신과 환자/국민의 양식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이러한 진료비의 확장성을 전부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미용성형이나 비만치료가 아닌 "기본의료"의 영역에서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원가보전율은 74%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를 하라고 국가가 강요하는 시스템입니다. 때문에 의사들은 기본의료 보다는 의료상품의 영역으로 건너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산부인과입니다. 분만 숫자가 전체적으로 줄은 탓도 있지만, 현재 보험수가로는 산과 분만실의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70%의 산부인과가 분만을 포기하고 여성성형이나 비만치료 등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의사에 대한 도덕적 비난만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의학교육은 물론, 의료기관의 개설에 공적 지원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의사가 어떤 진료를 하는가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본의료 영역에서는 원가보전도 못 하여 망하게 생겼는데(실제로 개원 의원의 10% 이상이 매년 폐업합니다), 의료상품 영역으로 가면 경쟁에서 승리만 하면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면 누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의료상품의 영역은 사실상 무궁무진합니다. 미용성형, 피부미용, 비만치료, 남성성기확대, 학습장애, 스트레스 관리 등 원래 의학의 주변부에 있던 각종 아이템들이 주류로 들어옵니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은 전체 진료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40세 이상 국민에 대해서는 건강검진을 의무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검사 수치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나오면 또 의료의 과소비로 이어집니다. “불안” 마케팅입니다. 이제 의료는 “소비자”들의 “불안”과 “희망”을 먹고 사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고통”과 “장애”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그쪽이 원가보전이 안 되다 보니 국민들의 불안과 희망을 부추깁니다. 결국 미용성형 등 의료상품 영역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실제 의료민영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유일하게 가능한 분야가 미용성형이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이 있었으니까요. 미용성형이라면 영리법인화 해줘도 좋았을 것입니다만, 의료민영화와 영리법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정치적으로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습니다. 진보진영은 의료기관 민영화를 기본의료를 민영화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리고는 빈곤층으로 추락한 암환자 이야기 등 눈물 나는 스토리를 쏟아내며 불안감을 조성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본의료는 현 상태대로 두고 미용성형 등 의료상품들만을 내세워 영리법인을 만들고 이러한 의료를 수출하면 좋을까요? 기본의료 영역과 의료상품 영역의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곳이 우리나라인데 후자를 키워주게 되면 의료계 인재들은 모두 이 영역으로 쏠리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흉부외과를 전공하면 월급 5백만원 받으면서 취직할 곳도 얼마 없는데 성형외과를 전공하면 그 5-10배를 벌 수 있다고 하면 대체 누가 흉부외과를 하겠습니까?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수를 대폭 증가시키면 된다구요? 의사 수를 아무리 늘려도 이 상태에서는 거의 대부분 "의료상품"영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의료상품 영역은 무한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여성의 피부 관리 시장이 한계에 달하면 남성까지 이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인간의 불안과 욕망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그쪽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원래의 전공을 떠나 의료상품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만, 기본의료 영역에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추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이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미용성형 등의 산업화도 더 큰 문제만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의료의 산업화에 대한 요청은 아마도 병원이 다수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1천 병상의 병원은 대략 1천5백개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천 병상 당 900명 정도의 일자리밖에 유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1980년대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은 수치입니다. 당시에는 1천 병상 당 1천7백명 정도가 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는 저수가 정책 때문입니다. 부족한 일자리를 환자 “보호자”와 보호자가 사적으로 고용한 간병인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의료수가를 10% 인상하면 대략 10만명 정도의 일자리를 당장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수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병상 수는 52만개 정도로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늘 병원에는 환자가 미어 넘치는 것으로 보일까요? 소위 5대 대형병원을 비롯한 대형 대학병원들이 환자들을 다 쓸어모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소형병원은 매년 11%가 폐업을 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작은 병원은 가지 않고 큰 병원으로만 몰린다는 뜻입니다.
의료는 모든 재화 중에서 소위 가격유연성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합니다. 아무리 비싸다 해도 환자들은 "최고, 최선"만을 고집합니다. 1분 진료에 불평하면서도 저명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기득권을 가진 대형 5곳 병원에는 새벽까지 MRI를 찍어야 할 정도로 환자가 흘러넘치고, 나머지 병원은 유지비도 안 나와 폐업을 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병상과 일자리를 늘일 방법이 없습니다. 이 "최고, 최선"을 고집하는 의료문화가 지속되는 한, 공공의료를 확충시킨다 해도 그 병원에는 가지 않습니다. 최근에 충주의료원이 새로 신축하여 최신 시설을 갖추었지만, 다수의 그 지역 환자들은 간단한 수술도 거기서 받지 않고 승용차로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서울 아산병원에 갈 것입니다. 5대 대형병원의 무대는 이미 전국으로 확장되어, 지역 대형 의료기관들도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병상의 확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의료의 산업화를 조장하는 정책은 이 대형병원들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며,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더 창출할 수도 없습니다.
의료산업화와 더불어 이야기되는 것이 제약산업과 의료기산업 등 관련 산업부문의 발전입니다. 특히 생명공학(BT)과 맞물려 미래의 성장동력이자 먹거리 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요. 그러나 제약산업은 모두 거대 다국적 회사들이 주도하는 산업으로 자국의 고유 제약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유럽, 미국, 일본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 제약회사가 동아제약인데 연간 매출액이 1조원쯤 됩니다. 반면 세계 1위인 화이자의 연 매출액은 700억 달러 정도로 동아제약의 80배쯤 됩니다. 매출액의 6%정도를 연구개발비에 쓰는데 이것만 해도 동아제약 매출액의 다섯 배쯤 되는 것입니다. 규모의 경제 자체가 다릅니다.
신약개발이요? 신약개발에 투자한지 2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발해서 해외에 수출하여 이익을 보고 있는 약은 아직 없습니다. 오리지널 신약 한 종을 개발하는데 평균 2억달러 정도가 들어가는데 이걸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라 1970년대 이후 R&D투자가 급증하면서 제약회사들 간의 인수합병이 유행하였습니다. 야후, 구글, 페이스북이 차례를 지어 강자로 등장한 IT쪽과 달리 신규로 세계 시장에 주요 플레이어가 된 제약 회사가 하나도 없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BT는 기초과학 수준으로 보면 선진국의 20%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IT/전자 응용 부문은 80-90%이고, 기초 부문도 50-60%는 될 겁니다). 이러한 격차는 하루아침에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BT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의과대학과 병원의 연구기능은 한 쪽에서는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환자를 많이 봐 수지를 맞추라는 병원 경영진의 압력에 치이고, 다른 쪽에서는 돈 많은 의대에 뭐하러 연구비를 주느냐는 주장에 치입니다. 그나마 뭔가 아이템을 개발한다 해도 이를 상품화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집니다.
예컨대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해서 이것이 바로 약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에게 적용하는 임상시험을 하여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야 하고, 국내외의 규제기구(FDA등)의 심사를 통과해 승인을 받아야 하며, 기존의 치료보다 뭔가 장점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고, 국내외 마케팅에 성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난마와 같은 각종 규제와 법률이 있습니다. 배아줄기세포치료제와 같은 것은 예컨대 미국에서는 강력한 사회적 반대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절차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능력과 경험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일부 원료물질을 개발해서 특허를 받고 다국적 회사에 팔든지, 특허가 만료된 약품의 제네릭 약품을 생산해서 수출하든지 하는 방법 밖에는 생존의 길이 없습니다. 의료기산업은 제약보다는 좀 형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기계와 IT분야에서 우리 기술이 가진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결국 전자/기계/화학 산업이지, "의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상상력을 발휘해서 송도나 부산에 병원 영리법인을 설립하고 외국인 "고객"들을 유치한다고 해 보지요. 누가 이곳을 찾게 될까요? 이미 우리나라는 물가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아 쿠바나 태국, 인도와 같은 경쟁자들에 비해 별로 경쟁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태국 같은 곳은 불법 장기매매도 성행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인 환자들이 태국에 오면 저렴한 가격으로 장기이식 받고 몇 달 편안하게 요양하다가 귀국할 수 있습니다. 의료관광은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술이나 자국에서는 금지되어 있거나 한 시술이 아니라면 환자들에게 별 매력이 없습니다. 아니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자랑하든지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찾는 환자들은 우리나라 사람 포함하여 모두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단기간에 효과를 봐야 하는 시술이라면 자국보다는 저렴해야 하데 우리나라의 의료비는 결코 태국보다 낮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관광과 요양에 대한 매력이 태국에 비해 훨씬 떨어집니다.
얼마 전 자국의 의료시스템에서 시술을 거부당한 캐나다 여성이 우리나라에 와서 지방흡입술을 받았는데 이런 드문 환자들 말고는 의료관광 고객을 유치하기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우리 의료수준이 특별이 높다고도 할 수 없으며, 이미 현대 의료는 표준화되어 제대로 교육받은 의사라면 세계 어느 나라의 의사든 대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영어 잘 하는(말이 잘 통하는) 의사들이 더 나을텐데 이것도 우리는 인도에 비해 별로 경쟁력이 없습니다. 역시 중국/일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성형(이건 우리나라 의사가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경험을 쌓아서요)이 아니고는 굳이 찾아오겠다는 환자는 없을 것입니다.
의학은 공학이 아닙니다. 의학은 가치와 문화가 너무나 깊게 개입된 영역입니다. 게다가 의학은 불완전합니다. 아무리 연구비를 퍼부어도 공학은 연구비에 비례해 성과가 나오는데 비해 생명공학은 전부, 아니면 무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전혀 없습니다. 의료가 공공재라구요? 그렇다면 의사들의 개원비용을 공적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어느 교사가 학교를 자기가 세우고 교육을 합니까? 학원은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학원 교습비를 국가가 정합니까? 이것이 우리 의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즉 모든 투자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가격만은 국가가 거의 일방적으로-원가 이하로- 정합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요? 한때 "최고의 인재"였다가 지금은 피부/비만관리 하며 돈 버는 의사들은 설사 돈 좀 만진다 해도 대부분은 회한에 절어 있습니다. 의사의 본령은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오로지 돈 때문에 그런 영역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의료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래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대로 의사 노릇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야-
2012년 7월18일(수) 14:25:29 [조회수 : 113]
권복규(이화여대 의대 교수, 의학박사) webmaster@socialdesign.kr

의료에 대해 우리나라 여론 주도층의 시각은 둘로 갈립니다. 하나는 김대호 소장님과 같은 “의료산업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공공재론”입니다. 전자는 우리 의학을 발전시키고, 심지어는 의료에 대한 자본의 투자를 활성화함으로써 해외 환자를 유치하고 내수를 확대하며, 신의료기술을 발전시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주장이며, 후자는 교육과 함께 의료를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보아 의료의 전면 무상화를 통해 질병으로 인해 빈곤해질 가능성을 없앤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두 시각은 모두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을 크게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의료는 "기본(필수)의료"와 "의료상품"으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외상치료나 분만과 같이 기본적인 권리로서, 또는 예방접종이나 전염병치료와 같이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누구나 받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의료이며, 후자는 미용성형, 라식수술, 비만치료와 같이 선택 가능한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의료입니다. 그런데,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이 둘이 딱 갈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위암치료의 경우, 1~2기에서 절제수술과 항암화학요법은 기본의료로 여겨질 수 있지만, 4기 이상의 환자에 대한 별로 효과가 없는 항암화학요법은 기본의료로 여겨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기본의료이며, 무엇이 선택인가에 대한 결정은 의학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결정입니다.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심정으로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고가의 치료에도 매달리게 됩니다. 공공의료를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그러한 치료에 대한 결정을 윤리수준이 높은 의사집단이 쥐고 있습니다. "효과 없는"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싶어도 의사가 거절하면 못 받는 것이고,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환자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건강보험은 대부분의 "기본의료"에 대한 급여는 보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환자의 요구가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를 억제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는 이름으로 효과가 분명하지 않은 진단과 치료가 시술되고 있으며 그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판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보호자가 합니다.
의료가 공공재임을 주장하는 무상의료논자들은 국가가 아무리 보장성을 높여주어도, 결국 이 함정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새로 나온 항암제가 환자의 50%에서 평균 2개월 생존을 연장시켜주는 대가로 2천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할 때 이것을 “무상”으로 국가에서 감당하게 해야 할까요? 아마 그러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돈 내서라도 이런 치료를 받겠다는 환자 많습니다. 그러면 국가는 이런 요청을 금지시켜야 할까요?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요? 결국, 무상이라는 건 허울에 불과해질 공산이 높은 겁니다. 어떤 재정도 의사의 전문직업정신과 환자/국민의 양식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이러한 진료비의 확장성을 전부 감당해내지 못합니다.
미용성형이나 비만치료가 아닌 "기본의료"의 영역에서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원가보전율은 74%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밑지는 장사를 하라고 국가가 강요하는 시스템입니다. 때문에 의사들은 기본의료 보다는 의료상품의 영역으로 건너갑니다. 대표적인 것이 산부인과입니다. 분만 숫자가 전체적으로 줄은 탓도 있지만, 현재 보험수가로는 산과 분만실의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70%의 산부인과가 분만을 포기하고 여성성형이나 비만치료 등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의사에 대한 도덕적 비난만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의학교육은 물론, 의료기관의 개설에 공적 지원이라고는 전혀 없으니 의사가 어떤 진료를 하는가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본의료 영역에서는 원가보전도 못 하여 망하게 생겼는데(실제로 개원 의원의 10% 이상이 매년 폐업합니다), 의료상품 영역으로 가면 경쟁에서 승리만 하면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면 누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의료상품의 영역은 사실상 무궁무진합니다. 미용성형, 피부미용, 비만치료, 남성성기확대, 학습장애, 스트레스 관리 등 원래 의학의 주변부에 있던 각종 아이템들이 주류로 들어옵니다. 게다가 건강보험공단은 전체 진료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40세 이상 국민에 대해서는 건강검진을 의무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검사 수치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나오면 또 의료의 과소비로 이어집니다. “불안” 마케팅입니다. 이제 의료는 “소비자”들의 “불안”과 “희망”을 먹고 사는 산업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고통”과 “장애”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그쪽이 원가보전이 안 되다 보니 국민들의 불안과 희망을 부추깁니다. 결국 미용성형 등 의료상품 영역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실제 의료민영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유일하게 가능한 분야가 미용성형이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이 있었으니까요. 미용성형이라면 영리법인화 해줘도 좋았을 것입니다만, 의료민영화와 영리법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정치적으로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습니다. 진보진영은 의료기관 민영화를 기본의료를 민영화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그리고는 빈곤층으로 추락한 암환자 이야기 등 눈물 나는 스토리를 쏟아내며 불안감을 조성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본의료는 현 상태대로 두고 미용성형 등 의료상품들만을 내세워 영리법인을 만들고 이러한 의료를 수출하면 좋을까요? 기본의료 영역과 의료상품 영역의 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곳이 우리나라인데 후자를 키워주게 되면 의료계 인재들은 모두 이 영역으로 쏠리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흉부외과를 전공하면 월급 5백만원 받으면서 취직할 곳도 얼마 없는데 성형외과를 전공하면 그 5-10배를 벌 수 있다고 하면 대체 누가 흉부외과를 하겠습니까?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수를 대폭 증가시키면 된다구요? 의사 수를 아무리 늘려도 이 상태에서는 거의 대부분 "의료상품"영역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의료상품 영역은 무한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여성의 피부 관리 시장이 한계에 달하면 남성까지 이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인간의 불안과 욕망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그쪽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원래의 전공을 떠나 의료상품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만, 기본의료 영역에서는 도저히 수지를 맞추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이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미용성형 등의 산업화도 더 큰 문제만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의료의 산업화에 대한 요청은 아마도 병원이 다수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1천 병상의 병원은 대략 1천5백개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천 병상 당 900명 정도의 일자리밖에 유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1980년대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낮은 수치입니다. 당시에는 1천 병상 당 1천7백명 정도가 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는 저수가 정책 때문입니다. 부족한 일자리를 환자 “보호자”와 보호자가 사적으로 고용한 간병인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의료수가를 10% 인상하면 대략 10만명 정도의 일자리를 당장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수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병상 수는 52만개 정도로 이미 공급 과잉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늘 병원에는 환자가 미어 넘치는 것으로 보일까요? 소위 5대 대형병원을 비롯한 대형 대학병원들이 환자들을 다 쓸어모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소형병원은 매년 11%가 폐업을 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작은 병원은 가지 않고 큰 병원으로만 몰린다는 뜻입니다.
의료는 모든 재화 중에서 소위 가격유연성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합니다. 아무리 비싸다 해도 환자들은 "최고, 최선"만을 고집합니다. 1분 진료에 불평하면서도 저명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기득권을 가진 대형 5곳 병원에는 새벽까지 MRI를 찍어야 할 정도로 환자가 흘러넘치고, 나머지 병원은 유지비도 안 나와 폐업을 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의 병상과 일자리를 늘일 방법이 없습니다. 이 "최고, 최선"을 고집하는 의료문화가 지속되는 한, 공공의료를 확충시킨다 해도 그 병원에는 가지 않습니다. 최근에 충주의료원이 새로 신축하여 최신 시설을 갖추었지만, 다수의 그 지역 환자들은 간단한 수술도 거기서 받지 않고 승용차로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서울 아산병원에 갈 것입니다. 5대 대형병원의 무대는 이미 전국으로 확장되어, 지역 대형 의료기관들도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병상의 확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의료의 산업화를 조장하는 정책은 이 대형병원들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며, 결과적으로 일자리를 더 창출할 수도 없습니다.
의료산업화와 더불어 이야기되는 것이 제약산업과 의료기산업 등 관련 산업부문의 발전입니다. 특히 생명공학(BT)과 맞물려 미래의 성장동력이자 먹거리 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요. 그러나 제약산업은 모두 거대 다국적 회사들이 주도하는 산업으로 자국의 고유 제약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는 유럽, 미국, 일본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 제약회사가 동아제약인데 연간 매출액이 1조원쯤 됩니다. 반면 세계 1위인 화이자의 연 매출액은 700억 달러 정도로 동아제약의 80배쯤 됩니다. 매출액의 6%정도를 연구개발비에 쓰는데 이것만 해도 동아제약 매출액의 다섯 배쯤 되는 것입니다. 규모의 경제 자체가 다릅니다.
신약개발이요? 신약개발에 투자한지 20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발해서 해외에 수출하여 이익을 보고 있는 약은 아직 없습니다. 오리지널 신약 한 종을 개발하는데 평균 2억달러 정도가 들어가는데 이걸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라 1970년대 이후 R&D투자가 급증하면서 제약회사들 간의 인수합병이 유행하였습니다. 야후, 구글, 페이스북이 차례를 지어 강자로 등장한 IT쪽과 달리 신규로 세계 시장에 주요 플레이어가 된 제약 회사가 하나도 없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BT는 기초과학 수준으로 보면 선진국의 20%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IT/전자 응용 부문은 80-90%이고, 기초 부문도 50-60%는 될 겁니다). 이러한 격차는 하루아침에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BT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의과대학과 병원의 연구기능은 한 쪽에서는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환자를 많이 봐 수지를 맞추라는 병원 경영진의 압력에 치이고, 다른 쪽에서는 돈 많은 의대에 뭐하러 연구비를 주느냐는 주장에 치입니다. 그나마 뭔가 아이템을 개발한다 해도 이를 상품화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떨어집니다.
예컨대 줄기세포를 만들었다 해서 이것이 바로 약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에게 적용하는 임상시험을 하여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해야 하고, 국내외의 규제기구(FDA등)의 심사를 통과해 승인을 받아야 하며, 기존의 치료보다 뭔가 장점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고, 국내외 마케팅에 성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난마와 같은 각종 규제와 법률이 있습니다. 배아줄기세포치료제와 같은 것은 예컨대 미국에서는 강력한 사회적 반대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절차들을 원만하게 해결할 능력과 경험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일부 원료물질을 개발해서 특허를 받고 다국적 회사에 팔든지, 특허가 만료된 약품의 제네릭 약품을 생산해서 수출하든지 하는 방법 밖에는 생존의 길이 없습니다. 의료기산업은 제약보다는 좀 형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기계와 IT분야에서 우리 기술이 가진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결국 전자/기계/화학 산업이지, "의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쨌든 상상력을 발휘해서 송도나 부산에 병원 영리법인을 설립하고 외국인 "고객"들을 유치한다고 해 보지요. 누가 이곳을 찾게 될까요? 이미 우리나라는 물가수준이 세계적으로 높아 쿠바나 태국, 인도와 같은 경쟁자들에 비해 별로 경쟁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태국 같은 곳은 불법 장기매매도 성행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인 환자들이 태국에 오면 저렴한 가격으로 장기이식 받고 몇 달 편안하게 요양하다가 귀국할 수 있습니다. 의료관광은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술이나 자국에서는 금지되어 있거나 한 시술이 아니라면 환자들에게 별 매력이 없습니다. 아니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자랑하든지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찾는 환자들은 우리나라 사람 포함하여 모두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단기간에 효과를 봐야 하는 시술이라면 자국보다는 저렴해야 하데 우리나라의 의료비는 결코 태국보다 낮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관광과 요양에 대한 매력이 태국에 비해 훨씬 떨어집니다.
얼마 전 자국의 의료시스템에서 시술을 거부당한 캐나다 여성이 우리나라에 와서 지방흡입술을 받았는데 이런 드문 환자들 말고는 의료관광 고객을 유치하기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우리 의료수준이 특별이 높다고도 할 수 없으며, 이미 현대 의료는 표준화되어 제대로 교육받은 의사라면 세계 어느 나라의 의사든 대개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영어 잘 하는(말이 잘 통하는) 의사들이 더 나을텐데 이것도 우리는 인도에 비해 별로 경쟁력이 없습니다. 역시 중국/일본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성형(이건 우리나라 의사가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경험을 쌓아서요)이 아니고는 굳이 찾아오겠다는 환자는 없을 것입니다.
의학은 공학이 아닙니다. 의학은 가치와 문화가 너무나 깊게 개입된 영역입니다. 게다가 의학은 불완전합니다. 아무리 연구비를 퍼부어도 공학은 연구비에 비례해 성과가 나오는데 비해 생명공학은 전부, 아니면 무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전혀 없습니다. 의료가 공공재라구요? 그렇다면 의사들의 개원비용을 공적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어느 교사가 학교를 자기가 세우고 교육을 합니까? 학원은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학원 교습비를 국가가 정합니까? 이것이 우리 의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즉 모든 투자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가격만은 국가가 거의 일방적으로-원가 이하로- 정합니다. 이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요? 한때 "최고의 인재"였다가 지금은 피부/비만관리 하며 돈 버는 의사들은 설사 돈 좀 만진다 해도 대부분은 회한에 절어 있습니다. 의사의 본령은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의사 노릇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오로지 돈 때문에 그런 영역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의료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래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