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 권> China 배우기

by KG posted Dec 22, 2012
<1> <추악한 중국인>, 장독에 빠진 중국인의 노예근성을 질타하다



<추악한 중국인>, 보양(柏楊) 지음, 김영수 옮김, 창해(2005). 355쪽..........(중국 톺아보기 10)

개인마다 특징적인 성격과 취향이 다르듯 국가와 민족에게도 보편적 인성이 있을까? 한 사회의 성원들의 성정(性情)의 특징을 한두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관찰자의 주관에 따라 매우 피상적인 표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공통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오랜 동안 더불어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든 사회 성원 간에 유사한 인성과 특징이 드러나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우리가 보통 국민성, 민족성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국민성과 민족의 기질은 오랫동안 축적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문화 행태적 특징을 보여주는 과거의 산물일 수 있지만, 그 사회 성원들의 미래의 사고나 행동을 예측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비평적 차원에서 한 국가의 국민성을 진단해 보면, 그 사회의 문화적 기질을 파악하여 그 사회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미래의 행동 방식까지 전망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 누구나 다른 나라와 민족의 특징적 기질에 대해 나름대로 피상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국민성, 민족성을 대놓고 이야기 하는 건 항상 조심스럽다. 자칫 민족 차별주의의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기 나라와 민족의 기질에 대해선 좋은 점만을 강조하고, 고질적인 나쁜 심성이나 폐단은 감추는 게 상례이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비평가 보양(柏楊)은 이런 금기를 단번에 깨부순다.  

보양은 중국 386세대를 이끈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받는 지식인이다.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거북한 중국의 민족성에 대해 신랄하게 자아비판했다. 그가 관찰한 중국의 민족성은 한마디로 ‘추악한 중국인’으로 규정된다. 이 책이 루쉰의 『아Q정전』 이후 가장 통렬한 중국인, 중국문화 비판으로 중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유는 중국 사회의 저변에, 중국인의 심성과 행태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치부를 직설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양은 중국인들의 심성을 폐병 3기 환자와 같은 상태라고 진단한다. 썩을 대로 썩은 나쁜 병폐의 장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고 힐난한다. 중국인이 감추고 싶은 상처를 아프게 찌르는 그의 독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그가 중국인들에게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똑바로 보라고 다그치는 저변에는 단순히 중국인의 품성을 모독하려는 독한 마음보다, 중국인이 나쁜 사고와 행동방식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가려져 있는 중국인의 총명함과 저력을 제대로 발휘하라는 애틋한 염원이 깔려있다.  

보양이 진단하는 중국인의 추악한 품성과 행태는 어떤 것일까? 중국인의 첫 번째 특징은 ‘더럽고 무질서하고 시끄럽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경험적으로 수긍하는 대목이다. 또 단결정신이 강한 일본에 비해 자기들끼리 싸우는 ‘내분’이 많다는 점이 중국인의 두 번째 특징이다. 중국인은 내면적인 단결의 중요성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한 사람만 떼어놓고 보면 돼지 같은 일본인이 세 사람이 모이면 용이 되”는 데 반해, “한 사람의 중국인은 모두 훌륭한 용이지만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돼지, 벌레가 된다"는 것이다. 서로 다투는 이런 나쁜 근성에 대해 일찍이 쑨원(孫文)도 중국인은 ‘쟁반에 흩어진 모래알’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유대인처럼 부지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근면한 덕성마저 문화대혁명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체면을 중시하여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대표적인 중국인의 나쁜 근성이다. 사과할 줄 모르는 것은 중국인이 잘못을 인정하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은 사과는 커녕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고 더 많은 죄과를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과장하여 허풍을 떠는데 익숙하며 동족에게 살벌하고 끔찍한 말을 퍼붓기 좋아하는 습성도 지적한다. “중국인은 쉽게 부풀어 오르는 민족이다.”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평등에 대한 관념도 희박하다. 저자가 더욱 통탄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노예적 근성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두려워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하고 시비를 가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기서 보양은 중국문화의 뿌리 깊은 유교적 폐습의 영향을 지적한다. 후한시대(25~220년)에 “모든 지식인의 발언이나 변론, 문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승(師承)’의 규정으로 인해 중국 지식인들의 상상력과 사고력이 말살되었다고 말한다. 이런 문화의 영향으로 공자 이후 2천년이 넘도록 한 사람의 사상가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교의 ‘사승’의 통제가 나쁜 중국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학설에 주를 달거나 그 제자들의 학설을 해석할 줄만 알았지 자기만의 독립된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깊이 고인 물에서 생존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 문화가 바로 저자가 말하는 ‘장독문화’이다. 장독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중국인을 못나고 속 좁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양은 중국인의 자질은 결코 나쁘지 않았지만 장독문화가 이런 자질을 소멸시켰고, 봉건전제의 우민(愚民)정책이 지식인의 사고력을 더욱 쇠퇴시켰다며 오천년 중국문화가 남긴 것은 전제와 공포정치, 내분과 노예근성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 통치 기간이 중국인의 가장 열악한 품성이 유감없이 빛났던 시기”라고 비판한다. 나쁜 민족성의 형성에 유교의 통치이념에 의한 전제정치와 공산당의 전제정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듯하다.  

보양은 중국에도 당연히 ‘민주(民主)‘가 있지만, ’너는 민(民), 나는 주(主)‘만 있다고 자조한다. ‘당은 국가 아래 있어야 하고, 인민과 정부는 권리와 의무의 관계여야 한다’는 명제를 현실에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공산당이 국가 위에서 군림하며 인민을 우민화 해왔음을 질타하는 것이다.  

죽은 물은 흐르지 못하는 데다 증발하기 때문에 오염의 농도는 더욱 짙어만 간다. 중국의 장독문화가 더욱 깊고 짙어진 것은 관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봉건사회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장이 독 바닥에 고인 상황이 중국인을 의심 많고 자기만 아는 존재로 변질시켰다. 나아가 중국인의 고루한 사상과 판단, 좁은 시야가 장독을 벗어나지 못했고, 중국인 대다수가 시시비비를 가릴 능력과 도덕적 용기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장독문화에 갇혀있던 중국인을 처음으로 일깨운 건 아편전쟁(1840~1842)이었다. 보양은 이 국치(國恥)야말로 중국의 장독문화에 가해진 강력한 충격이었다며, 그런 충격이 없었더라면 중국인은 장독 밑바닥에 깊이 박혀 질식사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나마 아편전쟁 이후 서양문명의 수용을 통해 민주, 자유, 인권, 법치의 새로운 관념을 접할 수 있었고, 새로운 물질문명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독문화가 너무나 깊고 지독해서 자기 감정에만 빠져 새로운 문명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능력을 상실한 중국인들은 서구의 합리적인 문물과 정신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서양의 좋은 점을 본받자고 주장하면 ’서양을 숭배하고 외세에 꼬리친다‘는 ’숭양미외(崇洋尾外)‘로 몰아붙였다. 보양은 서양의 합리적 생활방식과 언행, 민주적 제도들을 배우려하지 않고 ’숭양미외‘의 언어폭력을 퍼붓는 중국인의 삐뚤어진 고질적인 근성을 한탄한다.  

저자는 여러 대목에서 유교의 전통이 만들어낸 부정적 민족성을 지적한다. 공자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공자가 조상숭배와 정치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과거에 의탁해서 제도를 개혁한다’는 ‘탁고개제(托古改制)’의 관념은 중국인 머리 위에 떨어진 최초의 재앙이라는 것이다. 조상숭배 자체는 영성이 충만한 행위지만, 무조건적인 숭상과 복종의 관념이 늘 중국인을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하게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나 창조적 개척정신을 저해했다는 것이다.

보양은 중국인의 미덕은 아주 많지만 안타깝게도 모조리 책 속에 있을 뿐이라고 조롱한다. 표방하는 이상을 정작 현실에 구현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중국인들의 자기 기만적 습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구나 무엇이든 다 과거에 있었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전수되어 5천년 역사를 들먹이며 천박하고 허풍만 떠는 교만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폐습과 민족성이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이나 청나라 말기 100일 유신 등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며 애석해 한다.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해온 봉건제의 유습이 만들어낸 나쁜 관념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군주는 곧 아버지와 같다는 군부(君父)사상과 재상에서 보잘것없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잘못이라도 하면 끌고 가서 곤장을 치고 갖은 고문을 가하는 정장(廷杖)이다. 정장과 군부사상의 결합이 중국인의 자존심을 거의 절멸시켰다는 것이다. 인권을 멸절시킨 잔인한 형벌은 현대의 중국 공산당에까지 전수되었지 않은가?

중국문화를 형성하는 역사상 다른 나라에 없는 기이한 현상은 또 있다. 다름 아닌 ‘관장(官場)’이다. 즉 과거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관료사회’, ‘관료판’이다. 이들이 충성하는 대상은 국가나 통치지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자리를 마련해준 사람에 대해서만 충성할 뿐이다. 왕조와 정부가 바뀌어도 관료사회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굴복하여 달라붙는다. 민족의식이니 인간의 존엄성이니 하는 것은 전부 내팽개친다.”  

관료에게 나라의 멸망보다 자신의 자리 보존이 더 중요한 관심사였다. 만주족이 한족 사대부의 비굴하고 영악한 불치병을 간파하고 과거제도를 유지시켜 통치할 수 있었던 것도 관장의 문화를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족이 어떤 민족이든 포용했다고 자랑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중국문화의 기이한 관장문화와 소수 이민족 통치자들의 야합이 만들어낸 현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양은 60년대부터 중국 문화의 병리현상과 관료의 추악한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했고, 1968년 ‘인민과 정부의 감정을 도발’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소위 ‘집행되지 않는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었다. 1977년 출옥 이후에도 중국 전통문화의 병폐와 대만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비판을 그치지 않았고, 1985년 『추악한 중국인』을 출간하여 중화권에서 엄청난 파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곧바로 중국 공산당에 의해 금서(禁書)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야 해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뒤늦게 출판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보양이 지독한 독설을 쏟아낸 지 20여년이 지났다. 그가 적나라하게 해부한 중국인의 부끄러운 국민성의 다양한 맨얼굴은 중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루쉰의 ‘오염된 항아리문화’를 계승하여 ‘장독문화’를 제기했다. 루쉰이 문학적 작품과 평론을 통해 비유적으로 중국인의 노예근성을 비판했지만, 보양은 전면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에 내재된 열악한 근성을 거침없이 공격했다.  

보양이 중국인을 장독문화에 찌든 ‘추악한’ 민족이라고 지탄한 이유는 중국인의 나쁜 근성을 뿌리뽑아버리는 진정한 문화혁명을 희구한 때문이었다. 처절한 자기 성찰이 없으면 결코 새로운 중국문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보양을 5.4운동 정신의 계승자로 재평가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보양이 명쾌하게 지적한 중국인의 추한 근성이 이제 그들의 내면에서 완전하게 추방되었을까? 한때 일었던 중국 사회의 문화적 자성은 중국 전통문화의 병통을 얼마나 치유했을까?  

중국의 봉건왕조는 수천년 동안 전제적 문화와 전제적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존속되어 왔다. 그 와중에 보양이 설파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장독문화를 만들어냈다. 아편전쟁이후 서구문명과의 조우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문물로 현대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 중국의 전통문화가 긍정적으로 측면으로 변모하는 부분도 많겠지만, 중국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고질적 근성도 적지 않게 남아있을 듯싶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보양도 간간이 지적했듯이 중국 공산당의 전제적 ‘관장’ 지배 아래에서는 중국인이 타고난 총명함과 미덕을 발휘하기가 더욱 힘들 것이란 점이다.


<2>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중국 공산독재정권에 맞서는 류샤오보의 외침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 류샤오보 지음, 김지은 옮김, 지식갤러리(2011, 2쇄), 419쪽.........(중국 톺아보기 11)

                 중국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 류샤오보

중국의 화려한 경제성장의 외피에 가려진 열악한 인권의 개선과 전체주의 정치체제의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한 인간이 있다. 류샤오보(劉曉波)! 그는 중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2008년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08헌장' 서명을 주도했다가 국가전복선동 혐의로 2009년 크리스마스에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텐안먼 사태로 처음 수감된 이후 네 번째다.

노벨상위원회는 그가 랴오닝(遼寧)성 판진(盤錦) 감옥에서 복역 중일 때 중국의 기본인권 수호를 위해 오랫동안 비폭력투쟁을 벌인 공로를 인정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그가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서방세계는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중국내 인권탄압의 종식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당혹스러웠다. 복역중인 죄인에게 상을 주는 것은 노벨상에 대한 모욕이자, 서방세계의 정치적 음모라며 강력하게 반발하며 류샤오보나 그의 가족은 물론 다른 나라 인사들의 수상식 참석까지 저지하여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13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연명으로 류샤오보 부부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주석에게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일당독재체제의 유지가 최우선 목표인 중국 공산당이 전체주의의 해체와 민주화를 주장하는 류샤오보의 주장을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 사각지대인 중국에서 20년간 외로운 민주화 투쟁을 하고 있는 류샤오보가 말하는 중국은 어떤 모습인가? 왜 그는 그토록 현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는 중국의 정치, 중국 사회와 문화, 중국과 세계의 관계, 중국의 민주화 운동의 실상에 대한 류샤오보의 냉철한 인식의 실체와 비판의 근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과격한 혁명가는 아니다. 지나친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현실의 불법과 부조리를 치열하게 고발하면서 한 걸음씩 사회변혁을 희구할 뿐이다. 중국 공산당의 막강한 권력을 비판하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민간 사회의 의식을 일깨우려 애쓴다. 그가 단시일 내에 중국 공산당의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비폭력 개혁을 통한 정권의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그를 왜 그렇게 두려워할까 의구심이 생길만큼 온건하다.

그가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최소한의 개혁의 방법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박한 주제일 수 있지만, 전체주의 체제의 중국 사회에서는 절박하고 불온하다. 류샤오보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존엄성을 보장해주는 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고, 나약한 노예근성을 버리고 독립적인 시민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들이 독재정치를 제어하기 위해 자유주의 가치를 견지하고 당당하게 자유를 갈구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래로부터의 점진적 변화야말로 중국을 자유민주주의로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중국 변혁 가로막는 민족주의와 패악들

류샤오보는 중국 사회의 변혁을 가로막는 악폐중의 하나로 편협한 애국주의를 지목한다. 마오쩌둥이 건국하면서 ‘인류해방’의 국가주의를 주창했지만, 중국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상은 국가주의가 아닌 민족주의였다고 간파한다. 애국심으로 포장된 중국의 민족주의는 나약한 열등감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전통적 천하주의와 결합되어 오만한 권력과 천하에 군림하려는 맹목적 자만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형적 민족주의는 공격적이고 전투적일 수밖에 없다. 류샤오보는 최근의 일중 갈등, 미중 갈등의 저변에 서양 패권을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중국의 출격’을 지지하는 전투적, 폭력적 애국주의가 깔려있다고 본다. 류샤오보가 비판의 날을 더욱 곧추세우는 이유는 비이성적 애국주의를 중국 공산당 독재체제가 은밀하게 선동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전투적 애국주의가 중국의 발전을 제약할 최대 걸림돌이자 붕괴요소라고 지적한다.

류샤오보는 중국 인민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억압하는 공산당 독재체제의 패악을 여러 사례를 들어 고발한다. 토지와 사유재산을 국유화한 정책이 농민의 삶의 터전을 잃게 한만큼 토지소유권과 농업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농민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라고 역설한다. 또 독재의 야만성이 낳은 생명 경시 풍조에 대해서도 개탄한다. 산시성 불법 벽돌공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수백명이 불법 납치되거나 인신매매되어 강제 노동착취를 당했지만, 업주들과 결탁한 관료들의 묵인으로 수많은 부모들이 분통을 터트렸지만 끝내 실종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중국 사회를 옥죄는 최악의 상황은 역시 철저한 언론통제이다. 류샤오보는 ‘분서갱유(焚書坑儒)’에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까지 끈질기게 언론을 탄압해 온 ‘문자옥(文字獄)의 나라’ 중국을 질타한다. 인권 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탄압하고, 언론의 철저한 검열은 물론 인터넷 ‘만리장성’을 쌓아 사이버상의 정보 유통마저 완벽하게 감시한다. 언론의 자유와 인권보장을 호소하는 지식인들과 반체제인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런 억압적 상황에 류샤오보는 분노한다. 바로 ‘법률은 있지만 법치는 없고, 헌법은 있지만 헌정은 없는’ 중국 정치의 현주소이다.

이 책은 류샤오보가 인터넷과 잡지에 기고한 글을 묶은 책이다. 이미 철저한 검열을 거친 글인지라 그의 내면의 활화산 같은 비판과 질타를 충분히 표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간절히 열망하는 중국 사회의 변혁을 향한 충정을 감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특히 그는 중국 정치 개혁뿐만 아니라 저열한 중국 사회와 문화의 혁신을 주장하는 대목에서 문예학 박사다운 사색의 깊이와 통찰을 보여준다.

류샤오보는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천박한 상업문화와 배금주의, 저급한 향락주의로 흐르는 중국의 사회 문화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 독재정권을 유지해주는 사회적 기능의 하나로 이를 조장하고 악용하는 행태에 분노한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인들에게 물질적 욕망을 부추기고 이를 충족하는 상업문화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영혼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결국 전체주의 체제의 모순에 눈 감게 하는 고도의 정치공작에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공자 타도 운동을 벌이던 중국 공산당이 다시 공자의 부활과 유교의 부흥을 주도하는 것도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독재정권의 천하주의를 더욱 다지는 문화 권력 장악의 일환이라고 냉소한다. 이는 유가가 황권 독재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해 온 역사적 경험이 입증한다.

류샤오보는 중국 역사에서 지식인이 권력의 비호를 받지 못할 때는 ‘상갓집 개(喪家拘)’ 로 전락했다가 권력의 관심을 받는 순간 ‘문지기 개’가 되었던 비굴한 운명을 상기시키며 이를 경계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인을 갈구하는 그와 독재권력에 기생하는 천박한 지식인을 양산하고 공자마저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드는 공산당 일당 독재정권은 결코 양립하기 어려울 듯싶다.

          공산당 독재정권의 통치전략에 맞서는 민주화 과제

중국 공산당 독재정권의 통치전략 5가지를 폭로하는 류샤오보의 통찰은 중국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뒤에 숨은 공산당의 흑심(黑心)을 예리하게 벗긴다. 첫 번째, 중국 공산당은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대국굴기를 부르짖으면서 반미, 반일, 타이완 독립 반대 등의 민감한 문제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두 번째, 원시 자본주의가 중국 사회에 팽배하자 중국 권력자들이 돈의 노예로 전락했다. 이익이 이데올로기를 대신해서 사회 전체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관료의 정치적 충성과 업적 및 통치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공권력 남용을 통한 부패행위가 만연한 이유이다.

세 번째, 시장에 사치품을 끊임없이 방출하면서 사치를 조장하고, 허영과 거짓으로 포장된 천박한 문화가 문화시장을 주도하고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와 결탁하여 광기에 휩싸인 악습과 잔인한 야만성을 드러내는 향락주의를 만들어 낸다.

네 번째, 정치이견을 일체 엄금한다. 특히 조직적인 민간의 도전을 엄금한다. 결사와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간 자치조직의 형성을 철저히 금지시키는 이유이다.

다섯 번째, 지식 엘리트를 매수하여 무력으로 협박하고 물질로 달래는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중국 지식계를 비이성적 냉소주의로 변질시켰다. 물질적 유혹과 공포정치의 위협으로 지식엘리트를 정권의 꼭두각시로 만든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음험한 통치전략에 맞서는 류샤오보의 민주화 투쟁의 이념과 주장은 그를 감옥에 가게 한 ‘08헌장’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함께 서명한 300인의 민주화 인사들이 천명한 이념은 인류보편적 가치들이다. 자유, 인권, 평등, 공화, 민주, 입법의 이념이다. 이들이 제시한 중국 공산당 독재체제의 개혁 방안 19가지는 자유민주주의로 견인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공민의 인신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하는 인권보장 제도의 개혁, 법치를 위협하는 공산당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 각급 입법기구의 직선제 등 입법민주의 실행, 공산당 이외의 다른 정당의 집권을 금지한 ‘당금(黨禁)’의 폐지, 언론 ․집회의 자유 보장과 사유재산권 보호 등이 핵심이다. 이들 개혁방안을 관통하는 관념은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해체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지향한다.

실로 요원한 일이지만 류샤오보는 이러한 정치민주화 없이는 중화민족의 발전은 물론 인류의 평화와 인권에 기여하는 세계대국으로의 굴기는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류샤오보는 법정의 자기변호를 통해 이런 주장을 펼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자신의 기소 자체가 ‘문자옥(文字獄)‘이며, 국제사회가 인정한 인권준칙을 위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그의 주장이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의 전복을 추동할 수 있음을 두려워한다. 이런 까닭에 류샤오보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중국 공산당에 굴종하지 않는 한 석방되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류샤오보는 중국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이다. 그에겐 감옥의 차디찬 바닥보다 화려한 삶을 보장받는 굴종이 더 견디기 어려운 것 같다. 그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신념은 굳건하고,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열망 또한 식지 않을 듯싶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비폭력 저항을 견지하는 그의 고귀한 정신은 세계인의 경의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의 석방을 위한 국제인권단체들의 호소와 노력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 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텐안먼 민주화 운동 10주년을 맞아 쓴 그의 시 ’시간의 저주 속에서‘의 한 구절이 생생한 울림으로 남는다.

’50년의 눈부신 영광에는
공산당만 있고,
신중국은 없었다.‘


<3>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克中을 위한 미국의 생존전략을 촉구하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피터 나바로․그렉 오트리 지음, 서정아 옮김, 지식갤러리(2012). 392쪽..........(중국 톺아보기 7)

미국인에게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유독성 저질 제품으로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며, 환율 조작으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늘리고, 제조업의 기반을 붕괴시키며, 군사력의 강화로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에서 끌어내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가공할 힘을 가진 고삐를 걸 수 없는 티라노사우루스쯤 될까?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피터 나바로가 고발하는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휘두르는 추악한 행태와 가공할 횡포는 정치, 경제, 군사적 부문 등 전방위적이다. 그는 중국인과 중국의 악행에 미국이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를 입증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생존전략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원제: Death by China: Confronting The Dragon - A Global Call to Action)은 중국이 무자비하게 살포하는 위협이 여러 영역에 걸쳐 다양한 양태로 전개되고 있음을 고발하면서 미국인, 나아가 세계인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중국을 제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직접 경험하였거나, 대략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내용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어 공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들이 많다.

도대체 미국 대륙을 덮치고 있는 중국의 죽음의 그림자는 무엇일까? 우선 중국산 저질 제품의 대량 공급으로 미국과 전 세계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피해사례를 소개하며 암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치명적으로 해로운 납이나 카드늄 등이 기준치 이상 함유된 수많은 제품들이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분유에 산업용 멜라민 넣기, 혈액응고제 헤파린에 과황산화 콘드로이틴 황산 넣기, 사과 농축액에 중금속 물타기, 플라스틱 합성수지로 가짜 쌀 만들기, 수출어류에 일산화탄소 처리하기, 납과 중금속을 함유한 다양한 공산품, 검 스트립이 들어가지 않은 타이어 제작 등 중국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기상천외한 품질 사기 실태를 고발한다.

중국인의 이런 추악한 행태에 식품위생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죽음을 연상하는 위협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저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되는 데 여럿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파렴치한 중국기업인, 각종 환경 및 안전 기준 등에서 글로벌 기준을 무시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 수입품 안전 감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미국 규제 당국이 그들이다. 저자는 결국 저질 중국 상품을 신뢰할 수 없고, 중국 제조업체에 하청을 맡기는 미국 기업도 믿을 수 없다며, 중국산 또는 중국 원자재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철저한 확인과 예방조치를 주문한다.

중국산 제품이 미국인의 일상을 위협하지만, 저자가 더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제조업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수많은 미국인의 일자리가 빠르게 소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25%에서 오늘날 10%에 불과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 시키는 주범으로 중국의 극심한 자국이익 중심의 중상주의 정책과 보호무역 정책을 지목한다.

이를 중국의 ‘일자리 파괴 8대 무기’라며 신랄하게 공격한다. 각종 불법 수출 보조금 지급, 환율 조작, 저작권 침해, 약탈적인 가격정책과 덤핑, 보호주의 만리장성, 국제표준에 못 미치는 근로자 보건 안전 기준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중국이 자유 무역의 외양을 갖추었지만, ‘자유’가 없는 국가자본주의가 빚어내는 무차별 악행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저자가 이를 강력히 규탄하는 이유는 구체적이다. 미국의 연간 무역적자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가까이 되고, 석유수입분을 제외하면 75%에 이른다. 미국이 영업일 하루 당 중국에 대해 기록하는 무역적자는 10억 달러에 달하니 천문학적 숫자다. 중국의 환율조작을 ‘환율 핵폭탄’이라며 공포감을 드러내는 이유가 이해될만 하다.

하지만 모든 책임이 중국에만 있을까? 저자는 “도둑에게 명예심을 기대할 수 없다“ 며 중국의 무자비한 중상주의 공격을 비난하지만, 더 나쁜 행위자는 미국의 ‘변절기업’이라고 힐난한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의 치명적 매력에 이끌려 생산시설의 중국 이전 및 총체적인 아웃소싱인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광범위하게 시행하는 미국의 기업가들이야말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방만한 환경 안전 정책을 더욱 부추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을 이길 수 없으면 중국과 손을 잡아라“는 유행에 빠져있는 미국 기업가들에게 중국의 거대 시장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촉구한다. 중국 공산당의 자주혁신 정책에 명시된 3개 보호주의 조항의 피해자가 될 것임을 경고한다.

중국의 전략수순은 이렇다. ① 소수 지분 합작을 통해 합작 기업의 모든 영업기밀과 정보에 접근하도록 하고, ② 강제 기술 이전을 명시하여 중국 합작 업체에 지적 재산을 넘겨주도록 하며, ③ 강제 기술 이전에 보호주의를 첨가하여 연구개발 기술과 시스템을 수출하도록 강제한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의 이런 외국 기업의 유치 전략 속에 숨은 음험한 술수의 함정을 읽지 못하면 결국 미국 기업의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중국식 중상주의 전략의 미끼에 넘어간 전형적인 미국의 ‘변절 기업’으로 중국에 원자로 4대를 건설한 웨스팅하우스, 항공 전자 산업을 이전한 제너럴 일렉트릭, 굴착기 생산 공장을 이전한 캐터필러, 태양 발전 시설을 이전한 에버그린 솔라 등을 든다. 저자는 이들 기업이 중국으로 공장, 관련 업체, 연구개발 시설을 옮기면서 미국의 일자리가 날아가고, 공장 폐쇄 비용마저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개탄한다.

이들 기업들이 개별 기업차원에서 단기적 이익을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중국의 중상주의 전략의 희생양이 되어 결국 핵심기술을 중국에 모두 빼앗기고, 이전 받은 기술로 중국이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게 될 상황을 간파하는 저자의 통찰은 날카롭다.

한국도 경험이 있지 않은가? 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가 쌍용자동차의 SUV 기술을 쏙 빼어가면서 ‘먹튀’ 논란까지 빚었다. 하지만 저자의 미국 기업의 근시안적 행태에 대한 신랄한 질타에도 불구하고, 오프쇼어링의 폐해가 쉽게 줄어들 것 같진 않다. 개별 기업에게 아무리 애국심을 촉구한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고 마는 현실이다. 값싼 노동력을 치명적 매력으로 치장한 중국의 유혹이, 장기적인 중국의 음험한 전략, 즉 기술 빼가기에 대한 경계심을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중국에 대한 분노가 더 큰 두려움으로 변하는 영역은 군사 분야이다. 중국이 항공모함 등 원정형 해군 무기를 증강하고,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첨단 전투기를 대량 생산하며, 미국의 위성시스템을 마비시킬 우주를 기반으로 한 5차원 무기체계 개발의 실상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중국의 가공할 군사력의 약진에 공포감을 전달한다.

저자는 중국의 무기 확충 방식의 야비함을 더 힐난한다. 러시아 Su-27 전투기를 그대로 카피한 선양 J-11B, Su-33 전투기를 모방한 함재기 선양 J-15의 탄생비화를 보자. 당초 중국이 러시아와 Su-27과 Su-33에 대해 러시아와 구입 계약 및 라이선스 사용 계약을 체결하고, 수호이를 받자마자 이를 분해해서 설계도를 파악하자, 곧바로 계약을 해지해버렸다. 러시아가 격분했음은 물론이다. “도둑과 폭력단에게는 지켜야 할 명예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두 J-20 스텔스 전투기 역시 1999년 세르비아에서 격추된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잔해에서 기본적인 스텔스 기술을 얻어냈다. 중국이 최초로 생산한 항공모함 바랴크(Varyag) 역시 홍콩에서 전직 중국군 장교들이 가공회사를 만든 후 마카오의 대형 해상 카지노를 개조한다는 명목으로 수입토록 한 뒤, 마카오가 아닌 다렌항으로 빼돌려 개조한 것이다. 저자는 중국이 첨단 무기의 개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런 저열한 행태를 막아내지 못하는 미국의 무능을 질타한다.

우주 개발에서의 중국의 부상도 가공할 수준이다. 미국이 빈 라덴 잡기에 골몰하고 있는 동안, 중국은 미국의 GPS체계를 무력화 할 수 있는 위성 공격용 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전자기 펄스 폭탄으로 전자 인프라를 마비시키는 계획은 물론 우주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기술 개발까지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주항공 분야에서 미국의 군사력에 비대칭전 기법으로 대응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은 평화적인 부상이라는 포장 뒤에 날카로운 비수를 숨겨두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의 이면에는 미국을 상대로 벌이는 중국의 광범위한 첩보활동과 붉은 해커 여단의 무차별적 사이버 테러가 자리하고 있음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고발한다. 중국이 스파이망을 통해 훔쳐낸 기술과 공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지스 유도 미사일 구축함의 하부 시스템, 중성자 폭탄의 내부 설계도, 우주왕복선 설계도, 항공모함 추진시스템, ICBM 유도 장치 시스템 등 핵심 군사기술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붉은 해커 여단이 사이버 스파이 활동의 선두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 정부의 은밀한 비호를 받고 있는 대규모 해커들이 미국정부, 기업, 연구소, 군 등의 네트워크를 넘나드는 기술은 물론 요로의 컴퓨터에 꼭두각시 칩을 심을 능력을 갖고 있어 미국의 전력망 등 국가중요시설을 일시에 마비시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가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한마디로 총성 없는 첩보 전쟁에서 미국이 처참하게 패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첩 활동은 방만하며, 정치권은 중국의 불법 행위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고, 대다수 연구기관들과 국민들은 중국의 경제 발전을 찬양할 뿐 미국의 고급 정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의 스파이망의 경악할 활동에 무지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중국 비판은 겉으로는 직접 미국에 위해를 주지 않을 것 같은 중국 내부의 문제에 까지 치고 들어간다. 극심한 환경오염, 티베트, 신장 위그르, 네이멍구 등 소수민족의 말살정책 및 인권 침해, 열악한 노동자 생활 실태 등을 고발한다. 저자는 이는 중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만들어내는 ‘지구 공유지의 비극’은 환경 분야에서 더욱 심각하게 노정되고 있다. 에너지 수요의 75%를 석탄에 의존하여 이산화황 배출의 90%를 차지한다. 강, 호수 등 70%와 지표수의 90%가 오염된 이유는 중국의 제조업체들이 끊임없이 유해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의 심화로 티베트-칭하이 고원의 빙하가 매년 7%씩 녹아내리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중국이 지구 온난화에 제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이 초래하는 환경 재앙이 ‘지구 행성의 종말’을 재촉할 수 있음에도 중국 공산당은 전혀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저자는 3가지 이유로 분석한다. 중국 공산당이 ‘성장 우선, 보호는 나중에’라는 근시안적 정책의 불문율을 갖고 있고, 악질적으로 수자원과 땅에 페수와 폐기물을 방출하는 대다수 존재가 국유 기업이란 점이다. 게다가 환경을 철저히 무시하는 그릇된 전통적 자연관이 환경오염의 비극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오쩌둥 주석의 영도아래 파종 곡식의 피해를 막는다며 수백만명의 농민을 동원하여 참새잡이에 나서게 했던 웃지못할 사례도 그 예이다.

중국에 대한 저자의 전방위적 비판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위기의 심각성을 웅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저자에게 포착되는 중국은 사기와 위선이 판치고, 국가자본주의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자유’가 없는 불완전한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기이한 나라다. 갖가지 위법과 부조리가 만연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악몽을 경계하기 위해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접수해 나가고 있는 사례가 중국의 세계 지배의 전초적 활동이다. 과거 10년 동안 중국인들은 75만명이나 아프리카로 진출해 정착했다. 중국은 차관 제공의 유인책으로 아프리카의 지하자원을 쓸어 담아가고 있다. 중국은 원자재와 자원을 제공받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산 완제품을 수출하는 이중의 이익 창출로 해당 국가를 경제적 예속으로 떨어뜨린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중국식 식민주의’라고 규탄한다.

문제는 중국의 마수가 아프리카 등 독재자가 지배하는 불량국가들에서 호주, 브라질, 남아공 등 민주주의가 확립된 신진 산업국에까지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과정에서 미국이 과거 전 세계에서 보여준 ‘소프트 파워’가 상실되고 있음을 통찰해 낸다. 미국의 퇴조 속에 중국이 세계 곳곳의 희귀자원들을 독식해 가면서 신흥 식민 제국으로 질주해 나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때리기가 저자의 핵심 목적은 아닌 듯하다. 그는 중국의 위법, 탐욕, 위선을 세계인들에게 경고하는 한편,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며 생존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미국의 정치가, 기업가, 개인들에게 중국과 공존하기 위한 생존지침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둔다.

이 책의 말미에 중국산 저질 제품과 독극물에 의한 죽음을 피하는 법, 중국의 일자리 파괴 무기를 해제시키는 법, 중국의 스파이와 사이버 전쟁 대처법,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법, 중국이 자국민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법 등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이 부족한 미국의 정치지도자들과 미국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데 주력한다.

제2차 대전 당시 독일이 세계 최고의 기술과 무기 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대규모 공업생산력을 갖고 있던 미국의 물량 공세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교훈을 잊지 말자고 호소한다. 현재 중국이 미국에 비해 첨단 기술력에서 다소 뒤지고 있지만, 중국이 막대한 공업생산력으로 미국을 압도하고 있어 과거 독일과 미국과의 경우처럼 양이 질을 압도하는 결과가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중국의 부도덕하고 야비하고 치밀한 전략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선악을 떠나서 이렇듯 미국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중국의 거대한 국가권력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미국인의 공포가 단순한 엄살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웃인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모든 악행의 여파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입장도 아니다.

특히 우리는 저자가 미국이 처한 작금의 위기가 미국 내 ‘중국 옹호론자 연합’의 잘못된 행태에서 초래된 점이 많다며 각성을 촉구하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중국을 민주화시킨 다음에 길들이자’는 잘못된 포용론을 펴는 진보주의자들이나, ‘자유 무역 원칙만 준수하면 중상주의라도 상관없다’는 보수파의 잘못된 맹신 모두를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들이 중국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국민들이 똑바로 보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질타했듯이 중국인을 묵인하고 열렬히 옹호하는데 앞장서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파리드 자카리아, 톰 프리드먼,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행태나, 자유 무역 원칙을 맹신하며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묵인하는 카토 연구소, 해리티지 재단의 연구자, 하버드 대학의 맨큐 교수, 스탠버드 대학의 맥키넌 교수 등의 허술한 이념도 모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중국에 굴종적 자세를 취하는 지식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우리 현실과 유사하여 마치 우리에게 중국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 위해가 되는 인적 인프라부터 정비하라고 조언하는 듯하다.

미국 조야와 전문가, 국민들에게 죽비를 내리치듯 하는 저자의 일갈은 정확한 상황 진단에서 나온 만큼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하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국인의 각성과 정책적 변화를 촉구하는 저자의 인식은, 문제의 근원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을 한국에 대입해 보면, 중국의 영향력의 위력을 나날이 실감하는 한국인, 한국의 전략적 방향의 시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은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착한 국가’로 진화할 수 있을까? 현재 세계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낳고 있는 중국 전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한, 정보와 기술, 권력, 부를 독점하고 철저히 통제하는 반 시장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사악한 ‘빅 브라더(big brother)’의 흉측한 모습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중국인 스스로 지금의 체제 속에서 이룬 경제적 성장이 만들어내는 자부심에 취하여, 중국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결과물들이 세계인에게 어떤 위협과 악영향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 모두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께 추천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http://pinepark.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