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는 개혁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개혁은 낡은 권위를
해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낡은 권위들은 붕괴되고 있는데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위기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 사회는 개혁의 필요성에서 한 걸음
나아가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를 묻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재벌체제의
개혁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경제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한 예로 출자총액제한제를 중심으로
한 재벌정책과 해외자본의 성격이 SK사태를 계기로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다.
이는 소위 개혁진영의 의견 차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적 보수집단과
민족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좌(파)가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주장이 “국내 상당수의
재벌개혁론자들과 월가를 중심으로 한 해외금융자본이 같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주장과 대립하고 있다. 과거 개혁이라는 화두로 시각을 공유하던 진영들이 대립적으로
분화되고 있고, 오히려 서로 대립의 축에 있던, 그래서 결코 화해가 불가능할 것 같던
좌파 및 민족자본주의론자들이 재벌세력들과 시각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이라크전 파병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야당과 같은
시각을 공유하였듯이, 재벌개혁에 대한 시각에서도 탈구분짓기 현상이 발견된다. 이것은
결코 비극이 아니다. 평행선을 달릴 것 같던 좌파 및 민족자본주의자들과 재벌이 시각의
공유점(?)을 찾을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희망’이 아닌가?
우리의 언어로 읽는 재벌
개혁은 우리 사회의 질(質)과 대다수 사회구성원의 행복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재벌체제의 개혁도 그런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고 질주하는 중국의 경제성장 앞에 우리 사회가 3~5년 뒤에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문제 때문에 정부는 동북아중심경제국가의 건설을 화두로
던지고 있지 않은가? 그런 관점에서 재벌총수의 지배력 약화 및 해체로 압축되는
재벌체제의 개혁이 개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과제와
부합하는지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개혁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치유하는 것이기에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고 그에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재벌개혁을 보면 우리의 문제를
다른 사람의 언어와 시각으로 접근하는 문제(지식의 식민성 문제)를 갖고 있다. 비유하자면
영미학자들은 재벌이 자기들의 대기업과 다르다 하여 자기들 언어로 이해하지
못하고 ‘chaebol'로 이해하는 반면, 우리는 이를 영미 대기업의 언어로 영미의 그것과
다른 ‘chaebol'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대기업에 비교해 재벌이 갖는
차이들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재벌개혁에 대한 시야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중심을 갖는 논리이다. 그러나 재벌은 전근대성 못지 않게 현대화된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의 많은 재벌기업들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에게
위협의 대상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재벌개혁론자들이 지적하는 재벌의 문제는 조금 거칠게 정리하면 ‘방만한 차입경영’,
즉 ‘문어발식경영(비관련다각화)+높은 부채비율’로 요약된다. 그러나 이것은 재벌문제의
본질도 아닐 뿐 아니라 한국경제 환경의 역사적 산물이고 세계 대기업들과 맞설 수 있는
재벌기업의 경쟁력의 원천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방만한 차입경영은 시장부재와 압축성장
그리고 은행중심의 금융시스템의 산물이다. 1960년대, 아니 7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경제는 시장을, 즉 다양한 연관산업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였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1962년에 87달러에 불과했고
중화학공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1972년까지도 316달러에 불과하였다. 자본시장이란 것은
제도적으로 존재하였어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제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자본시장이 육성되지 않은 후발공업국들이 선택한 은행을 통한 자금의 중개방식은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들이 근검생활을 통해 저축한 재원은 정부가 소유한
은행으로 집중되었고 은행으로부터 금융자원이 기업들로 배분되었다.
30여 년만에 일인당 국민소득이 100배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들의 높은 투자율로
가능하였고, 높은 투자는 은행들로부터의 차입에 의해 가능하였던 것이다.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이 없었다면 높은 투자율도 불가능하였고 고도성장도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의 한국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높은 성장률에
비교하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었다. 일본, 프랑스, 독일이 비슷한 규모였고 북유럽국가들은
우리 기업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공업화를 경험한 선진경제들 중에서 주식을 통해
기업이 필요한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미국과 영국만이 우리 기업들보다 의미 있는 수준에서
낮은 부채비율을 가질 뿐이다.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은 차입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부채비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실, 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과 국민경제 혹은 기업들의
성과와는 이론적으로 어떤 상관관계도 확인할 수 없다.
‘그들만의 잔치’에서 국민기업으로 재벌의 위치 찾기
우리의 경우 정부 그리고 정부가 소유한 은행이 기업들과 협력하여 경제를 성장시킨
사회총력체제였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재벌기업은 내용상 국민기업의 성격을 갖는다.
재벌체제 문제의 본질은 성장의 배분이었다. 성장은 국민총력지원체제로 가능했던 반면,
이익은 재벌집단과 정치권력집단이 대개 독점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 그리고 정부의
대리인인 은행을 통해 (재벌)기업들의 실패(한국은행에 의한 특별융자나 직접적인
이윤보전이나 공적자금 투입 등에 의한 부실기업 정리 등)를 떠 안았던 반면, 성장의 결실은
대개 재벌집단과 정치권력집단 등 그들만의 잔치였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외국자본을 적대시하고 재벌총수들을 옹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논란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역할과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 자본이 제조업자본이냐 아니면 금융자본의 성격이 강하냐
이다. 제조업에 유입되는 자본은 과거 종속이론이나 좌파에서 주장하는 부정적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많은 긍정적 측면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융자본은 그 성격이 다르다. 70년대 이후 세계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제조업에서 이탈한 세계금융자본들이 대개 단기수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SK의
최대주주가 된 소버린 자산운용이 “SK를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모델기업으로 변모”
시키고 나아가 그 결과로 “국제 및 국내경제계에 한국이 일류 경제국가로의 노정에
접어들었다는 확실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경제학자들은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들의 투자목표에는 못사는 나라들의
경제를 일류경제로 만들기 위해 후진경제들의 ‘후진’ 기업들(?)들을 ‘모델기업으로
변모’시키는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고 가르쳐야 할 판이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재벌문제를 해결하자
해외자본(헤지펀드)들의 단기수익 추구는 국내기업들이 시설투자 공시 후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로 주가가 하락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해외 투자자들이 단기 실적관리에 매달려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중장기투자를 하는 기업들을 기피하는 탓이다. 기업은 총수들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와 함께 가야 할 파트너로서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다. 변화하는
기술 및 경제환경에서 새로운 산업에 진출할 계획도 필요하고 개술 개척도 해야 한다.
국민경제의 미래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서는 중장기 투자가 필요한 반면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해외 헤지펀드들은 기업의 여유현금흐름을 장악하고 중장기투자를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기업의 투자부진과 중국의 질주가 결합되어 한국경제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해외펀드들이 주식에 투자하고 주가상승에 따른 차익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영권 위협을 통한 비정상적 수익 획득이나 기업의 사회적 가치가
무시되는 현실은 심각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를 국수주의로 비난한다면
개방은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재벌개혁과 관련된 출자총액제한, 사외이사제, 소액주주운동 등 모두 주주가치를 중시하는
미국기업 모델에서 나온 사고들이다.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제 강화나 시민단체들의
소액주주운동 등은 재벌그룹의 계열사 통제를 배제시키는 것으로 외국자본이 요구하는
기업인수권 시장(M&A)의 활성화 요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기업조차 일반 상품처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게 함으로써 기업거래를 통한 수익 추구를 원하는 해외
금융자본에게 상호주식보유와 내부거래를 통하여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업집단(재벌)체제는
장애가 된다.
출자총액제한제의 연장에서 거론되는 금융계열사 분리 역시 재벌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은행의 민영화와 대형화로 상징되는 은행 구조조정 관련 정책으로 국민경제의
장기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은행구조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이미지 때문에 정부는 시장에서 퇴장하고, 수익성 논리로 은행은 기업과의 유기적
관계를 단절시키고, 재벌해체는 기업집단의 경쟁력을 훼손시키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경제개혁은 과거 <정부-은행-기업>의 유기적 협력에 기초한 성장시스템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해체한 이후의 모습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이 검증되지 않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정부나 개혁적인 시민운동단체들에서는 주주가치 지향적인 법규정(1주1표) 논리에 빠져
재벌해체 정당성을 주장할 지 모르나 현실의 법이나 제도 자체가 모두 수입하고 이식한
것이 아닌가? 사실, 글로벌 스탠더드로 행세하고 있는 주주가치 지향적인 법규정은
영미권에서만 일반적인 것이 아닌가? 많은 유럽국가들이 기업집단 구조를 유지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외국자본의 위협에 대항해 경영의 안정을 보장해주고 있지
않는가? 재벌개혁을 둘러싼 혼란은 바로 우리 현실에 맞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데서 비롯한 것이다.
한편, 이런 우려 때문에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피라미드형 그룹구조를 유지하도록
재벌들에게 허용하면서 동시에 황제경영의 폐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주회사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주회사 자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소유구조 및
계열사 간 조직형태와 관계된 것일 뿐이다. 국가와 사회의 감시체제가 전제되지 않는
한 지주회사 체제 역시 과잉중복투자의 폐해나 경제력 남용의 문제, 무엇보다 재벌문제의
본질에 대한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
재벌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면 재벌기업의 국민기업적 내용을 현실화, 제도화시켜야
한다. 재벌에 대한 경영의 안정권 보장은 기업과 국민경제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벌과 국민경제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배분의
측면에서 재벌의 몫은 자신의 소유지분과 기업성장에 대한 기여분(플러스 α) 정도로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재벌은 재벌기업이 사실상 국민기업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노동운동진영은 우리의 재벌기업이 또 하나의 기업집단을 이루는
유럽기업들과 차이가 있다면 우리의 경우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유럽 기업집단들의 경우 노동자가 자본가를 제외한 주요 이해관계자라면
우리의 경우 압축성장의 탓으로 농민을 포함하여 전체 국민의 희생과 참여 속에서 기업과
국민경제가 성장하였다는 점에서 이해관계자 중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오히려 일반국민 모두가 기업의 이해관계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할 수가 있다.
기업의 성과가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면 재벌에게 경영의
안정성 보장은 문제가 될 사항이 아닌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우리 사회는 시급히 대타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