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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 선생님의 "집담회 녹취해제 요약본을 읽고"

by 최배근 posted Apr 26, 2003
  한반도 비전그룹 <일굼>
  제4차 집담회 녹취해제 요약본을 읽고

  
   =세계인식은 주체와 대상을 명확하게 하고
    <든든한 가슴으로 힘차게 나가야 합니다>


우선 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건국대학교 정문 앞에서 흔히 말하는 사회과학서점을 하는 인서점의 주인입니다. 저는 43년 생이며 심범섭입니다. 인서점(人書店)은 1982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이며 저는 지금 현재 서울지역 <인문사회과학 서점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는 것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저는, 일굼을 함께 이끌고 계시는 것으로 짐작되는 최배근 교수님의 인사말과 함께 이 '메일진'을 받았습니다. 귀중한 글을 보내주신 <일굼>의 사무처와 언제나 잊지 않고 우정을 두텁게 이끌어 가시려는 최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 국가사회의 현안에 대한 기탄 없는 의견을 말씀해주신 집담회 토론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일굼의 이번 제4차 토론의 주제가 지금 전개되고 있는 나라 안팎의 역사현장이라는데 주목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토론자의 현실을 보는 시각과 세계관은 물론 개인적 품위와 대안 능력까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더구나 곧 그 결과가 들어 나기 때문에 매우 부담스럽고 긴장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집담회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기탄 없이 자신의 견해를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점이라고 봅니다. 대개의 토론이 현실을 외면하고 뜬구름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좋은 인사말로 끝내는 것이 이즈음의 책임 있는 지식인사회의 토론 행태라고  한다면 좀 지나친 폄하라고 질책 당할지 몰라도 저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생산능력이 항상 낮게 평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굼의 이 토론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
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 또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일굼>의 이번 제4차 토론에 대하여 토론자 여러분의 토론분위기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저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또한 위에서 간단하게 저를 소개한바와 같이 저는 정치 또는 경제학의 문외한이지만 제가 살아온 과정에서 아프게 체험한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지극히 상식적인 견해로 말씀드리는 것임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그 토론의 주제들이 이미 현실적 실효성을 넘기고 있다는 점에서 토론의 주제와 토론 내용에 대한 비현실적인 견해보다는 오히려 <일굼>이 헤쳐나갈 이후의 토론에 대한 토론의 환경과 그 요소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일굼>의 토론이, 토론에 앞서 총무님께서 밝혔듯이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비전으로 제시될 '한반도 문제, 리더쉽, 국가전략 등의 싱크탱크'의 역할을 위한 의견도출을 목적한 것이라고 할 때 더구나 그 도출된 의견이 시민사회의 발언 수위를 넘어서는 전문지식이라고 할 때, 저는 이 토론자체가 이미 세계를 향해 발전해 가려는 우리나라의 주체성과 자주성 같은 상당한 자기 정체성의 확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일굼이 추구하는 이미 규정된 토론의 틀거리가 집담의 내용은 물론 토론자의 인식을 엄격하게 그리고 강하게 틀거리의 좌표 안팎을 제어할 때 비로소 일굼의 목적이 분명하게 들어 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간략히 말씀드리면
  첫째.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더구나 일굼의 목적이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집답이라고 했을 때, 세계와 대한민국 그리고 미국과 동북아 및 민족 분단구조와 관계된 시말의 열강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체가 분명히 드러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대한민국의 자주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9.11 테러이후 작금의 세계는 미국이 힘의 논리를 강화하면서 미국의 힘 앞에 세계가 굴복하기를 내놓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머지않아 미국은 엄청난 역사의 도전 앞에 시련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는 하이에나처럼 물고 뜯는 미국의 무차별적이 폭력 앞에 시달려야 할 것이 뻔합니다. 더구나 미국은 우리의 오랜 친구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그 폭력 앞에서 자주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지혜라고 할 것입니다. 우선 편한 대로 무릎 착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우리는 물론 세계와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국가패망의 위기 앞에서도 당당히 이에 맞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그리고 팔레스타인 등의 이슬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들은 21세기의 관문에서 인류가 만들어 가야할 문명사회를 위해 밑거름으로 썩어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들의 무모하리만치 당당한 비현실적인 맛섬의 전철을 밟아도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열강의 지배구조로 생성되었고 유지되면서 오늘에 이른 우리의 민족분단의 상황논리에 빠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막 이라크를 침공하고 승리한 미국이 바라는 힘의 논리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약소국입니다. 힘으로 미국과 대결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세계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힘만으로 성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군사력은 정치력 앞에 그리고 정치력은 경제력 앞에 또한 경제력은 문화의 힘 앞에 봄눈이 녹듯 그 힘을 상실해 가는 시기를 맞아 무력해지면서 역사는 좀더 낳은 긍정의 시대
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 물결의 힘이 사라지듯 대상부정의 물리적인 힘은 대상긍정의 화학적인 힘 앞에 포획되면서 용해의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수처럼 날뛰는 지금의 미국이 언젠가는 그런 인류역사의 큰 흐름과 가치 앞에 굴복하리라고 하는 강한 믿음으로 설득하여야 할 것입니다.    
  넷째. 노무현 참여정부의 탄생은 우리역사가 긴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와 맞이한 우리의 이상과 희망이 담긴 모처럼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역사에게 주어진 이 변화 발전의 모처럼의 기회를 국운 상승의 절호의 찬스로 인식하고 알차게 준비하는 신이 준 선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약화시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굴러 들어온 복을 내치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섯째. 세계와 그 역사의 발전을 기호와 논리로 인식하는 과학적 논리를 개척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세계와 우주 그리고 그 역사의 발전현상은 물론 나아가 생명현상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이루고 있는 능동성의 주체가 어떤 법칙을 가지고 대상과 다투어 적응하면서 발전해 나가는가의 논리와 법칙을 개척해 내는 것이 대단히 필수적인 가치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철학과 개별학문의 자기영역에서의 과제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무책임한 학문에 기댈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회현상의 영역에서 필요에 따른 자기논리의 인식으로 연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일굼>이 추구하는 목적에 요구되는 세계인식의 논리를 일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자신의 집과 마당 텃밭은 물론 오고 가는 길들과 세간들을 스스로 창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작업주체의 의지에 관한 것입니다. 작업자 즉 토론자는 담론자체와 지식의 풍부한 전문성은 말 할 것도 없겠지만, 그 담론의 주체 스스로의 정서를 깊이 가지는 것과 그리고 의지의 견고함을 가지는 것 또한 절대적인 요소라고 보여집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정과 정성 애정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식인들에게 약간의 회의를 갖는 것이 이런 점인데 이것은 지난 시기에 늘 지식인들이 보여준 친일 친미 친독재 등의 해바리기성 생존방식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역사적인 빛나는 혁명사에서 전문적인 지식이나 아무런 지위도 없는 청년학생과 노동자 그리고 민중들이 보여준 그냥 진리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가치에 순수한 마음으로 뭉쳐 역사의 판을 뒤집어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반면 지식인들은 오히려 그들을 이용하거나 심지어는 배신하는 일을 허다히 보아왔던 것입니다. 동학농민봉기나 각종의 민란과 우리현대사의 여러 장들이 모두 지식인들에 의하여 주도된 것이 아니라 대중에 의하여 그들의 엄청난 눈물과 피를 뿌림으로서 이루어졌던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이런 주체의 정서나 의지 같은 것은 입담이나 전문적인 지식보다도 더 가치 있는 담론의 주체적 요소임을 인정하고 지식인들이 겸허하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다가서야 할 가치가 아닌가 합니다.  
  
최교수님!!
다시 한번 교수님의 우정에 감사 드리며, 저는 오늘 제가 늘 존경하는 교수님께 그냥 저의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적어 보내며 교수님께서 한결같은 우정을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이 글을 거의 세시간이 넘게 적고 나서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어보고 정리 할가 망서리다가 오히려 그러는 것이 교수님과 저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바로 발송합니다.  
* 저는 이 글을 <일굼>과 최교님께 묶어서 썼습니다.
   발송은 최교수님께만 합니다.  
               2003년 4월 25일   인서점에서 심범섭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