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하시길...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고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結社’로서
[Korea&Globe]를 창립하고자 하는 게 아래 초안의 요지입니다.
아직 합의가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한 세기를 함께 할 결사의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당장 손에 쥔 게 없는데 미래를 거론하는 건 공허하다는 이야기,
무엇이 되든 함께 할 것이니 어서 결론을 내라는 이야기,
서두르지 않고 상반기 정론 생산 역할을 재개하며
조직전망은 찬찬히 살피자는 이야기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여러 님들의 생각은 어떠하오신지...
~~~~~~~~~~~~~~~~~~~~~~~~~~~~~~~~~~~~~~~~~
(案) [Korea&Globe] 창립 취지문
함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 동안 많은 고뇌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지난 아홉 해에 이르는 길고 긴 만남의 끝에 서 있는 지금,
민주주의를 우려하고 민족의 장래를 고뇌하며 국가사회의 책임으로 긴장했던 우리 집단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 정말 갈 수 있을 것인가 / 그토록 간절한가
거듭 되는 覺悟와 懷疑로 심신이 지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왕 우리들이 나눈 긴한 속내를 잊을 수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百年之大計를 세우고자
우리 스스로 10년을 아낌없이 내어놓자는 重千金의 一言.
하여 다시금 흩어진 기운을 추스르고 뜻을 세워봅니다.
단재와 백범 장준하 이래로 맥이 끊어진 한국의 보수,
몽양과 죽산 이래로 역시 자생하지 못하는 한국의 진보.
그들에게 이 나라의 장래를 맡겨둘 수 없을뿐더러
이미 의미를 상실한 20세기의 개념에 미래의 상상력을 가둬둘 수는 없습니다.
평양의 급변사태를 대비하기는커녕 핵 정치에 끌려 다니는 작금의 현실,
유라시아경영의 일 변수인 한미동맹에 국가의 안위를 통째 위탁하는 미필적 고의의 사대성.
10년 뒤 올 수도 있을 난쟁이 모계사회의 이북과 현금부재 ATM기 이남이란 ‘역사의 퇴행’,
그를 염두에 두고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고려하는 안목이 보이질 않습니다.
제조업 공동화는 아랑곳 않고 월스트리트 성장신화를 추종하는 지식인들,
자산계층의 반발에 편승해 ‘거품경제의 몰락’ 징후에도 대증요법으로 일관하는 엘리트집단,
‘권위의 대체’가 아닌 ‘권위의 해체’에 본격 접어든 지금
철 지난 ‘도구의 권위’로 사회갈등을 무마하려는 자들의 ‘독선의 개혁’.
그로 인해 국가시스템을 一新하기는커녕 기회비용만 늘렸던 ‘잃어버린 10년’이 길어집니다.
지행일치 이전에 언행일치도 아랑곳 않는 상황논리가 윤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미래의 핵심 엘리트집단을 준비해야 합니다. 백년을 기다린 士林도 있질 않습니까.
나노와 바이오의 Post Digital 문명에 관한 진지한 담론이 나오지 않는 사회,
인류의 미래를 예측치 않고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을 준비할 수는 없습니다.
식량과 자원, 미디어와 금융의 독점으로 갈수록 왜소해지는 국민국가와 정부의 현실은
공존공영을 갈망하는 인류의 염원을 어둡게 하는 묵시록의 징조입니다.
세계화의 추세만 조망하고 국가의 활로를 찾는다면
영원히 태평양 양식장의 반도국가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란 자아도취가 아닌 ‘누군가’란 운명의 결단으로 ‘덧없는 生’을 걸고자 합니다.
지난 10년을 기다려왔습니다.
누가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분법을 아우르고 몽양과 장준하를 넘어
헌정사의 줄기를 바로잡고 민족이 함께 읽을 현대사를 제시했습니까.
누가 반미와 반 김정일의 앙칼진 길거리에서 두 눈 부릅뜨고
10년 뒤 민족의 이익과 작금의 국익을 함께 생각하라 사자후를 토했습니까.
누가 전문가논리에 깃든 아집을 꿰뚫고 특권화한 한국판 노멘클라투라와 정면으로 맞서며
군중에게 돌 맞으면서도 독선의 개혁가들을 질타하는 광야의 요한이 되고자 했습니까.
누가 홍익인간의 백년지대계를 세우며 문명의 미래와 종의 정체성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족의 내일을 함께 그려나갔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숨은 賢者의 집단’이 되고자 합니다.
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맥박이 뛰는 종지그릇으로 미래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기존 지식에 안주해 지혜를 구하는 渴求가 없는 ‘지적인 게으름’은 무책임의 표상입니다.
가족과 지인의 작은 바램과 불편함에 맥을 못 추는 ‘爵位의 公人’은 대사를 그르칩니다.
할 말을 상황논리로 바꾸고 두려움에 말문을 닫는 새가슴으로는 장래를 기약하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들의 고뇌는 세상을 담기에 역부족이고
우리들의 수양은 이웃조차 못 움직이는 절름발이며
수시로 年富力强했던 과거를 뒤돌아보는 소심증에 시달리지만,
賢者는 賢者만 찾아오기에 늘 긴장감을 갖고 부단히 스스로 연마하고자 합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십니까.
누군가가 필요한데 굳이 자신이 나서고 싶지 않으신 분은 후원만 하셔도 좋습니다.
모두의 십시일반이 절실하지만 그보다 더 긴요한 것은 운명을 함께 할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필요한데 하필 우리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떠나셔도 좋습니다.
우리 집단에 공공 활동을 하는 무수한 이들이 있고 그들은 또한 중견입니다.
우리가 비슷한 캠페인과 단기 프로젝트를 하려면 그들을 여기까지 모실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신다면 함께 結社합시다.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늘 긴장하고 살아가는 公人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언행일치입니다. 물론 점차 지행일치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째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수준 여하를 떠나 스스로를 난파선을 대체할 생명선으로 내어놓지 못할
이들이 結社한다면 그야말로 백면서생들의 대동계를 넘어서겠습니까.
앞서 말한 우리들의 바램은 집단의 취지와 목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간절함은 結社가 되어 집단의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고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結社’로서
[Korea&Globe]를 창립하고자 합니다.
Korea는 국가이자 동시에 민족의 표현입니다.
Globe는 백년지대계의 기반 그 자체인 시공간의 차원입니다.
結社는 정당, 회사, 종교단체, 클럽 등 20세기의 그 무슨 조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Korea&Globe]로, 성격을 結社로 표현함은 우리의 한계이자 목적입니다.
그를 넘어서 간명하게 개념을 거론하고 안팎에 용납된다면
우리의 바램은 일찍 현실이 될 것입니다.
당면하여 ‘1국가 2국민을 아우를 통합의 리더쉽’과 ‘10년의 민족 이익과 당면한 국익의 조화’
그리고 ‘한국 및 PanKorea 인재지도의 작성’과 ‘Post Digital과 국민국가의 미래’ 등이,
우리의 첫 과제가 될 것이며 프로젝트가 되고 正論의 줄기와 연구주제가 될 것입니다.
지난 일굼은 ‘한반도문제 의견그룹’에서 출발해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정론집단’으로
드디어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고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結社’로까지,
스스로 자청해 험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길만이 몽양과 장준하를 넘어서며 ‘87년 체제’의 결박을 뛰어넘는 길이라 믿습니다.
지난 한 세기 게오르규와 타고르의 메시지에 위안 받아야 했던 ‘극단의 벼랑’을 겪었으니
이제는 不可測과 不可解의 ‘不感의 불구덩’으로 끌려가는 인류사회에
메시지를 갚아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며 또한 그래야 우리의 살길도 열릴 것입니다.
자. 이제 신화보다 먼 여행을 떠나봅시다.
우리가 浮萍草같은 인생의 가벼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를 집어삼킨 시온의 매트릭스에 상상력을 가두지 않으며,
금융자본의 일극 체제와 인접한 블랙홀의 틈새에서 사위어 가는 한반도를
명실상부한 새로운 문명의 발상지로 탈바꿈하고 共存共榮의 인류사를 새로이 쓰겠다는,
結社의 뜻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대에 아니면 우리 후대에
그 누군가 반드시 멈춰서버린 역사의 시계바늘을 다시 돌릴 것입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고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結社’로서
[Korea&Globe]를 창립하고자 하는 게 아래 초안의 요지입니다.
아직 합의가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한 세기를 함께 할 결사의 이야기가 있는 반면,
당장 손에 쥔 게 없는데 미래를 거론하는 건 공허하다는 이야기,
무엇이 되든 함께 할 것이니 어서 결론을 내라는 이야기,
서두르지 않고 상반기 정론 생산 역할을 재개하며
조직전망은 찬찬히 살피자는 이야기까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여러 님들의 생각은 어떠하오신지...
~~~~~~~~~~~~~~~~~~~~~~~~~~~~~~~~~~~~~~~~~
(案) [Korea&Globe] 창립 취지문
함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 동안 많은 고뇌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지난 아홉 해에 이르는 길고 긴 만남의 끝에 서 있는 지금,
민주주의를 우려하고 민족의 장래를 고뇌하며 국가사회의 책임으로 긴장했던 우리 집단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 정말 갈 수 있을 것인가 / 그토록 간절한가
거듭 되는 覺悟와 懷疑로 심신이 지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왕 우리들이 나눈 긴한 속내를 잊을 수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百年之大計를 세우고자
우리 스스로 10년을 아낌없이 내어놓자는 重千金의 一言.
하여 다시금 흩어진 기운을 추스르고 뜻을 세워봅니다.
단재와 백범 장준하 이래로 맥이 끊어진 한국의 보수,
몽양과 죽산 이래로 역시 자생하지 못하는 한국의 진보.
그들에게 이 나라의 장래를 맡겨둘 수 없을뿐더러
이미 의미를 상실한 20세기의 개념에 미래의 상상력을 가둬둘 수는 없습니다.
평양의 급변사태를 대비하기는커녕 핵 정치에 끌려 다니는 작금의 현실,
유라시아경영의 일 변수인 한미동맹에 국가의 안위를 통째 위탁하는 미필적 고의의 사대성.
10년 뒤 올 수도 있을 난쟁이 모계사회의 이북과 현금부재 ATM기 이남이란 ‘역사의 퇴행’,
그를 염두에 두고 국익과 민족의 이익을 고려하는 안목이 보이질 않습니다.
제조업 공동화는 아랑곳 않고 월스트리트 성장신화를 추종하는 지식인들,
자산계층의 반발에 편승해 ‘거품경제의 몰락’ 징후에도 대증요법으로 일관하는 엘리트집단,
‘권위의 대체’가 아닌 ‘권위의 해체’에 본격 접어든 지금
철 지난 ‘도구의 권위’로 사회갈등을 무마하려는 자들의 ‘독선의 개혁’.
그로 인해 국가시스템을 一新하기는커녕 기회비용만 늘렸던 ‘잃어버린 10년’이 길어집니다.
지행일치 이전에 언행일치도 아랑곳 않는 상황논리가 윤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미래의 핵심 엘리트집단을 준비해야 합니다. 백년을 기다린 士林도 있질 않습니까.
나노와 바이오의 Post Digital 문명에 관한 진지한 담론이 나오지 않는 사회,
인류의 미래를 예측치 않고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을 준비할 수는 없습니다.
식량과 자원, 미디어와 금융의 독점으로 갈수록 왜소해지는 국민국가와 정부의 현실은
공존공영을 갈망하는 인류의 염원을 어둡게 하는 묵시록의 징조입니다.
세계화의 추세만 조망하고 국가의 활로를 찾는다면
영원히 태평양 양식장의 반도국가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란 자아도취가 아닌 ‘누군가’란 운명의 결단으로 ‘덧없는 生’을 걸고자 합니다.
지난 10년을 기다려왔습니다.
누가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분법을 아우르고 몽양과 장준하를 넘어
헌정사의 줄기를 바로잡고 민족이 함께 읽을 현대사를 제시했습니까.
누가 반미와 반 김정일의 앙칼진 길거리에서 두 눈 부릅뜨고
10년 뒤 민족의 이익과 작금의 국익을 함께 생각하라 사자후를 토했습니까.
누가 전문가논리에 깃든 아집을 꿰뚫고 특권화한 한국판 노멘클라투라와 정면으로 맞서며
군중에게 돌 맞으면서도 독선의 개혁가들을 질타하는 광야의 요한이 되고자 했습니까.
누가 홍익인간의 백년지대계를 세우며 문명의 미래와 종의 정체성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족의 내일을 함께 그려나갔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숨은 賢者의 집단’이 되고자 합니다.
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맥박이 뛰는 종지그릇으로 미래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기존 지식에 안주해 지혜를 구하는 渴求가 없는 ‘지적인 게으름’은 무책임의 표상입니다.
가족과 지인의 작은 바램과 불편함에 맥을 못 추는 ‘爵位의 公人’은 대사를 그르칩니다.
할 말을 상황논리로 바꾸고 두려움에 말문을 닫는 새가슴으로는 장래를 기약하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들의 고뇌는 세상을 담기에 역부족이고
우리들의 수양은 이웃조차 못 움직이는 절름발이며
수시로 年富力强했던 과거를 뒤돌아보는 소심증에 시달리지만,
賢者는 賢者만 찾아오기에 늘 긴장감을 갖고 부단히 스스로 연마하고자 합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십니까.
누군가가 필요한데 굳이 자신이 나서고 싶지 않으신 분은 후원만 하셔도 좋습니다.
모두의 십시일반이 절실하지만 그보다 더 긴요한 것은 운명을 함께 할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필요한데 하필 우리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면 떠나셔도 좋습니다.
우리 집단에 공공 활동을 하는 무수한 이들이 있고 그들은 또한 중견입니다.
우리가 비슷한 캠페인과 단기 프로젝트를 하려면 그들을 여기까지 모실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간절히 원하신다면 함께 結社합시다.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늘 긴장하고 살아가는 公人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언행일치입니다. 물론 점차 지행일치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째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수준 여하를 떠나 스스로를 난파선을 대체할 생명선으로 내어놓지 못할
이들이 結社한다면 그야말로 백면서생들의 대동계를 넘어서겠습니까.
앞서 말한 우리들의 바램은 집단의 취지와 목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간절함은 結社가 되어 집단의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여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고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結社’로서
[Korea&Globe]를 창립하고자 합니다.
Korea는 국가이자 동시에 민족의 표현입니다.
Globe는 백년지대계의 기반 그 자체인 시공간의 차원입니다.
結社는 정당, 회사, 종교단체, 클럽 등 20세기의 그 무슨 조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Korea&Globe]로, 성격을 結社로 표현함은 우리의 한계이자 목적입니다.
그를 넘어서 간명하게 개념을 거론하고 안팎에 용납된다면
우리의 바램은 일찍 현실이 될 것입니다.
당면하여 ‘1국가 2국민을 아우를 통합의 리더쉽’과 ‘10년의 민족 이익과 당면한 국익의 조화’
그리고 ‘한국 및 PanKorea 인재지도의 작성’과 ‘Post Digital과 국민국가의 미래’ 등이,
우리의 첫 과제가 될 것이며 프로젝트가 되고 正論의 줄기와 연구주제가 될 것입니다.
지난 일굼은 ‘한반도문제 의견그룹’에서 출발해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정론집단’으로
드디어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를 설계하고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結社’로까지,
스스로 자청해 험로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길만이 몽양과 장준하를 넘어서며 ‘87년 체제’의 결박을 뛰어넘는 길이라 믿습니다.
지난 한 세기 게오르규와 타고르의 메시지에 위안 받아야 했던 ‘극단의 벼랑’을 겪었으니
이제는 不可測과 不可解의 ‘不感의 불구덩’으로 끌려가는 인류사회에
메시지를 갚아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며 또한 그래야 우리의 살길도 열릴 것입니다.
자. 이제 신화보다 먼 여행을 떠나봅시다.
우리가 浮萍草같은 인생의 가벼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를 집어삼킨 시온의 매트릭스에 상상력을 가두지 않으며,
금융자본의 일극 체제와 인접한 블랙홀의 틈새에서 사위어 가는 한반도를
명실상부한 새로운 문명의 발상지로 탈바꿈하고 共存共榮의 인류사를 새로이 쓰겠다는,
結社의 뜻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대에 아니면 우리 후대에
그 누군가 반드시 멈춰서버린 역사의 시계바늘을 다시 돌릴 것입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