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첫 비나리, 참성단의 다섯 제물

1> 임진년 첫 날 머리뫼로 떠나다
단기 4344년(서기 2011년) 12월23일(금).
영하 11도, 체감온도 20도. 날이 말 그대로 오지게 추웠다.
아침 9시. 세상은 성탄 분위기로 흥청이는데
코리아글로브의 다섯 사람은 머리뫼(마니산)로 떠난다.
까닭은 다만 하나. 오늘은 임진년의 첫 날.
어제는 한 해 가운데 해가 가장 짧은 동지이고
오늘부터 다시 해가 길어지는 첫 날이다.
원래 로마에서는 이 날부터 한 주일을 태양의 축제로 하였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적당한 날로 잡은
성탄절이 그 태양의 축제를 대신한 것이다.
코리아글로브는 그와 달리 임진년 비나리 하러
하늘 굿(天祭)을 올리기 위해 머리뫼로 나선다.
다음 해 임진년은 임진왜란 이래 일곱 갑자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이다.
예로부터 북반구는 모든 기준이 북두칠성이고 남반구는 남두육성이다.
하여 불가가 들어오기 훨씬 앞서부터 사람이 태어나면 3-7일이요,
저승에 가면 7-7일 즉,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흑룡의 해라…
굳이 풀이를 한다면 북방의 기운이 다시 살아남을 뜻하리라.
올 초는 3월13일 열도의 세 재앙으로 비롯하였고
마무리는 단군 이래(이럴 때 쓰는 것이다) 하나뿐인 살인마의 죽음이었다.
임진년에는 더 위쪽에서부터 비롯하겠지. 다들 지난 천년처럼
나라 안의 쟁패에 눈이 멀어 그 누가 임진년을 대비하리.
2> 참성단에서 올린 삼육대례
만주에서 한반도까지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자취가 서린
모든 곳이 곧 솟대이고 소도일진대 굳이 머리뫼를 갈까.
이는 곧 셋한(三韓)의 지정학이자 지경학이다.
고려 뒤로 황해를 서해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때와 달리
그 앞서의 때에는 황해는 곧 코리아 역사공동체 즉,
셋한의 가운데 바다(地中海)였다. 그 곳에서 보라.
그 한가운데가 강화곶이고(지금은 섬) 그 솟대가 머리뫼다.
오시(午時/11:30~13:30)를 맞추러 서둘렀다.
원래 오시는 11시부터지만 조국 근대화의 일념으로
서기 연호를 들이신 박통께서 표준시까지 동경에 맞추는 바람에
일행을 30분을 벌어 가까스로 서울과 인천에서 오는 차량이 만나
참성단에서 오시가 지나기 앞서 하늘 굿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제 조국 근대화도 끝났으니 통일되면 다시 표준시를 맞춰야지)
차가운 공기, 그러나 바람은 잦아들고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았다.
열려있는 참성단에서 일행은 겁도 없이 감히 삼육대례를 올렸다.
삼육대례는 아무나 올리는 것이 아닌 태왕, 칸만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그 전통을 잇는 곳이 없다는 핑계로 올렸다.
위험천만. 적어도 8천만을 등 뒤에 두고 올리는 거라
그 하늘 굿의 꿈과 뜻과 길을 잊어버리면 경을 칠 노릇이다.
삼육대례는 어떻게 올리는 것인가.
1배3고, 2배6고, 3배9고, 그리고 일행 모두가 올리는 4배10고다.
3叩는 3才로 곧 시간이다. 지나간 날과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날이다.
6叩는 6合으로 곧 공간이다. 위와 아래,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이다.
9叩는 3才6合으로 곧 시공간을 아우른 것이다. 우주에 가득 찬 기운이다.
이까지는 제주가 올리는 것이며 마지막 4배10고는 일행이 함께 올린다.
10은 완전수로서 이때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함께 읊는다.
다섯 일행은 어쩔까 하다가 1배에서 4배 사이에 한두 사람씩
초헌과 아헌 및 종헌을 하는 때를 넣는 것으로 머리를 썼다.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컸던 분은 제주를 맡은 양승태 선생님이셨다.
모두들 묏등 타는 차림으로 나타났는데 홀로 정장에 구두였다.
나름 어쩔까 하시다가 제주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한복 대신
양장의 정장을 하시고 오신 것이었다. (넥타이는 빼고)
그 덕분에 내려가실 때 엉덩방아를 대여섯 번 찧으셨지.
모두들 마음이 꽉 찼다. 흠잡을 데 없는 참성단의 모습.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제단에 신단수와 우물이 어우러졌다.
다만 우물은 자취만 있을 뿐 태백산 천제단과 달리 말라있었다.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주고받은 말. “우리라도 우물을 살리자.”
“반드시 강화군수와 태백군수만은 도지사 급 이상으로 전략공천 하는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 없음, 머쟎아 코리아글로브가 만들자.“
내려올 때 엉덩방아 말고는 마음이 솜털같이 가벼웠다.
큰 숙제를 마친 아이들 같다고나 할까. 말할 까닭 없이
앞으로는 더 큰 숙제가 기다리겠지만 걱정 없다.
비나리에서 우리가 올린 말씀의 알갱이는 다음과 같다.
“저희가 비나리의 사람으로 거듭 나게 하옵소서.”
우리는 모두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다가올 날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기로 한 것이다.
3> 저녁노을 그리고 농막에서의 하룻밤
가벼이 음복을 마치고 내려와 흥왕리에 자릴 잡았다.
조개찜을 더해 남은 음복을 함께 하면서 모두들
나라 걱정 지구마을 걱정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덧 강도와 화도의 바다는 시뻘건 해를 삼키다.
그 절경이야. 누리의 그 어느 주안상이 견줄 수 있으랴.
이어지는 저녁상. 빛깔이 다르다.
젓갈과 두부가 어우러진 바다의 찌개.
농익은 막걸리 잔이 춤을 추고 임진년의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다 함께 다잡아 나가자고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을 모은다.
갈 길이 바쁜 길손들을 뒤로 하고 들어가는 농막에
새하얀 하늘의 손님들이 내려앉는다. 눈송이 다발이다.
아름답다. 귓불이 새빨개져도 손끝이 아려도 대수랴.
그렇게 강화에서의 밤은 저문다.
불청객을 기꺼이 품어주신 해양학계의 별.
최중기 인하대 교수님께 깊이 고마움을 드린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판소리로 풀어젖힌 산악인 박기성 여자만 사장님.
그 모든 분들과 어울린 밤은 아름답다.
이 날 아침까지 몸부림치다 끝내 오지못한
1700리 통영의 딸 순례단 오찬석 선생께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음력 나라 연 날 酉時에 밤산행의 왕고생을 하며
이 날 길을 미리 닦아놓은 烏猫 박경호, 人村 박효정
두 분 집행위원께도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이 날 다섯 사람은 다음 비나리의 마당으로
임진년 어천절 즉, 한임금(단군)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날에
태백산 천제단에 올라 하늘굿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4345년(2012년) 음력 3월15일(4월5일) 목요일입니다.
마음을 내실 분은 미리 비워두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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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4/12/23, 아침9시 출발
임진년맞이 첫 해의날 참성단 하늘굿 (12:30)
참가: 訥雲 양승태, 알타이 박기성, 永樂 김석규, 烏金 김지호, 治憂 강성룡
제주: 양승태
이동: 자가용 (운전 박기성)
만남: 합정역8번출구 SK주유소 앞
1박: 마니산 농막 (책임 박기성, 최중기 교수 댁)
합류: 김지호
비나리&제수: 김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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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4년 12월23일
임진년 맞이 첫 해의 날
머리뫼 참성단 하늘굿
<비나리>
코리아 하늘겨레가
한어버이께서 내리신
무등의 꿈을 잊고
한스승께서 가르친
홍익인간의 뜻을 저버렸으며
마침내는
한임금께서 여신
공존공영의 길마저 접었노라.
요순을 그리워하고
이세민을 따라 배우며
같은 하늘겨레를
오랑캐 왜놈이라 얕보더니
끝내 그 업보로
일곱 갑자를 죽어 지내더라.
이제 머리를 들어
무등의 한어버이를 내려받고
가슴을 열어
홍익인간의 한스승을 품어안으며
두 손 두 발로 지구를 부둥켜
같이 살고 함께 먹는 길을 주신
한임금이 모두 되리라.
오늘 해가 길어지는
첫날에 때 맞추어
머리뫼 참성단에 올랐습니다.
셋이 하나이며 하나가 곧 셋인
하느님을 뵈오며
두려움 가득 하늘굿을 올리나니
셋한을 되살리려는
어린 선비들의 모임
코리아글로브가
지난 열 해에 미련두지 말고
하느님의 꿈과 뜻과 길을 펼치는
새터로 거듭 나도록 이끌어주소서.
더불어 뭇 거룩하신
어른들께 비옵나니
이 자리에 함께 한 어리석은 아들딸
양승태 박기성 김석규
김지호 강성룡 다섯 사람이
임진 계사 갑오 을미
흔들림 없이 비나리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보살펴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1> 임진년 첫 날 머리뫼로 떠나다
단기 4344년(서기 2011년) 12월23일(금).
영하 11도, 체감온도 20도. 날이 말 그대로 오지게 추웠다.
아침 9시. 세상은 성탄 분위기로 흥청이는데
코리아글로브의 다섯 사람은 머리뫼(마니산)로 떠난다.
까닭은 다만 하나. 오늘은 임진년의 첫 날.
어제는 한 해 가운데 해가 가장 짧은 동지이고
오늘부터 다시 해가 길어지는 첫 날이다.
원래 로마에서는 이 날부터 한 주일을 태양의 축제로 하였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적당한 날로 잡은
성탄절이 그 태양의 축제를 대신한 것이다.
코리아글로브는 그와 달리 임진년 비나리 하러
하늘 굿(天祭)을 올리기 위해 머리뫼로 나선다.
다음 해 임진년은 임진왜란 이래 일곱 갑자 만에 돌아오는 임진년이다.
예로부터 북반구는 모든 기준이 북두칠성이고 남반구는 남두육성이다.
하여 불가가 들어오기 훨씬 앞서부터 사람이 태어나면 3-7일이요,
저승에 가면 7-7일 즉,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흑룡의 해라…
굳이 풀이를 한다면 북방의 기운이 다시 살아남을 뜻하리라.
올 초는 3월13일 열도의 세 재앙으로 비롯하였고
마무리는 단군 이래(이럴 때 쓰는 것이다) 하나뿐인 살인마의 죽음이었다.
임진년에는 더 위쪽에서부터 비롯하겠지. 다들 지난 천년처럼
나라 안의 쟁패에 눈이 멀어 그 누가 임진년을 대비하리.
2> 참성단에서 올린 삼육대례
만주에서 한반도까지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자취가 서린
모든 곳이 곧 솟대이고 소도일진대 굳이 머리뫼를 갈까.
이는 곧 셋한(三韓)의 지정학이자 지경학이다.
고려 뒤로 황해를 서해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때와 달리
그 앞서의 때에는 황해는 곧 코리아 역사공동체 즉,
셋한의 가운데 바다(地中海)였다. 그 곳에서 보라.
그 한가운데가 강화곶이고(지금은 섬) 그 솟대가 머리뫼다.
오시(午時/11:30~13:30)를 맞추러 서둘렀다.
원래 오시는 11시부터지만 조국 근대화의 일념으로
서기 연호를 들이신 박통께서 표준시까지 동경에 맞추는 바람에
일행을 30분을 벌어 가까스로 서울과 인천에서 오는 차량이 만나
참성단에서 오시가 지나기 앞서 하늘 굿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제 조국 근대화도 끝났으니 통일되면 다시 표준시를 맞춰야지)
차가운 공기, 그러나 바람은 잦아들고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았다.
열려있는 참성단에서 일행은 겁도 없이 감히 삼육대례를 올렸다.
삼육대례는 아무나 올리는 것이 아닌 태왕, 칸만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그 전통을 잇는 곳이 없다는 핑계로 올렸다.
위험천만. 적어도 8천만을 등 뒤에 두고 올리는 거라
그 하늘 굿의 꿈과 뜻과 길을 잊어버리면 경을 칠 노릇이다.
삼육대례는 어떻게 올리는 것인가.
1배3고, 2배6고, 3배9고, 그리고 일행 모두가 올리는 4배10고다.
3叩는 3才로 곧 시간이다. 지나간 날과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날이다.
6叩는 6合으로 곧 공간이다. 위와 아래,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이다.
9叩는 3才6合으로 곧 시공간을 아우른 것이다. 우주에 가득 찬 기운이다.
이까지는 제주가 올리는 것이며 마지막 4배10고는 일행이 함께 올린다.
10은 완전수로서 이때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함께 읊는다.
다섯 일행은 어쩔까 하다가 1배에서 4배 사이에 한두 사람씩
초헌과 아헌 및 종헌을 하는 때를 넣는 것으로 머리를 썼다.
누구보다 마음고생이 컸던 분은 제주를 맡은 양승태 선생님이셨다.
모두들 묏등 타는 차림으로 나타났는데 홀로 정장에 구두였다.
나름 어쩔까 하시다가 제주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한복 대신
양장의 정장을 하시고 오신 것이었다. (넥타이는 빼고)
그 덕분에 내려가실 때 엉덩방아를 대여섯 번 찧으셨지.
모두들 마음이 꽉 찼다. 흠잡을 데 없는 참성단의 모습.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제단에 신단수와 우물이 어우러졌다.
다만 우물은 자취만 있을 뿐 태백산 천제단과 달리 말라있었다.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주고받은 말. “우리라도 우물을 살리자.”
“반드시 강화군수와 태백군수만은 도지사 급 이상으로 전략공천 하는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 없음, 머쟎아 코리아글로브가 만들자.“
내려올 때 엉덩방아 말고는 마음이 솜털같이 가벼웠다.
큰 숙제를 마친 아이들 같다고나 할까. 말할 까닭 없이
앞으로는 더 큰 숙제가 기다리겠지만 걱정 없다.
비나리에서 우리가 올린 말씀의 알갱이는 다음과 같다.
“저희가 비나리의 사람으로 거듭 나게 하옵소서.”
우리는 모두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다가올 날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기로 한 것이다.
3> 저녁노을 그리고 농막에서의 하룻밤
가벼이 음복을 마치고 내려와 흥왕리에 자릴 잡았다.
조개찜을 더해 남은 음복을 함께 하면서 모두들
나라 걱정 지구마을 걱정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덧 강도와 화도의 바다는 시뻘건 해를 삼키다.
그 절경이야. 누리의 그 어느 주안상이 견줄 수 있으랴.
이어지는 저녁상. 빛깔이 다르다.
젓갈과 두부가 어우러진 바다의 찌개.
농익은 막걸리 잔이 춤을 추고 임진년의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다 함께 다잡아 나가자고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을 모은다.
갈 길이 바쁜 길손들을 뒤로 하고 들어가는 농막에
새하얀 하늘의 손님들이 내려앉는다. 눈송이 다발이다.
아름답다. 귓불이 새빨개져도 손끝이 아려도 대수랴.
그렇게 강화에서의 밤은 저문다.
불청객을 기꺼이 품어주신 해양학계의 별.
최중기 인하대 교수님께 깊이 고마움을 드린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를
판소리로 풀어젖힌 산악인 박기성 여자만 사장님.
그 모든 분들과 어울린 밤은 아름답다.
이 날 아침까지 몸부림치다 끝내 오지못한
1700리 통영의 딸 순례단 오찬석 선생께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음력 나라 연 날 酉時에 밤산행의 왕고생을 하며
이 날 길을 미리 닦아놓은 烏猫 박경호, 人村 박효정
두 분 집행위원께도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이 날 다섯 사람은 다음 비나리의 마당으로
임진년 어천절 즉, 한임금(단군)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날에
태백산 천제단에 올라 하늘굿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4345년(2012년) 음력 3월15일(4월5일) 목요일입니다.
마음을 내실 분은 미리 비워두시길 바랍니다.
~~~~~~~~~~~~~~~~~~~~~~~~~~~~~~~~~~~~~~~~~
4344/12/23, 아침9시 출발
임진년맞이 첫 해의날 참성단 하늘굿 (12:30)
참가: 訥雲 양승태, 알타이 박기성, 永樂 김석규, 烏金 김지호, 治憂 강성룡
제주: 양승태
이동: 자가용 (운전 박기성)
만남: 합정역8번출구 SK주유소 앞
1박: 마니산 농막 (책임 박기성, 최중기 교수 댁)
합류: 김지호
비나리&제수: 김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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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4년 12월23일
임진년 맞이 첫 해의 날
머리뫼 참성단 하늘굿
<비나리>
코리아 하늘겨레가
한어버이께서 내리신
무등의 꿈을 잊고
한스승께서 가르친
홍익인간의 뜻을 저버렸으며
마침내는
한임금께서 여신
공존공영의 길마저 접었노라.
요순을 그리워하고
이세민을 따라 배우며
같은 하늘겨레를
오랑캐 왜놈이라 얕보더니
끝내 그 업보로
일곱 갑자를 죽어 지내더라.
이제 머리를 들어
무등의 한어버이를 내려받고
가슴을 열어
홍익인간의 한스승을 품어안으며
두 손 두 발로 지구를 부둥켜
같이 살고 함께 먹는 길을 주신
한임금이 모두 되리라.
오늘 해가 길어지는
첫날에 때 맞추어
머리뫼 참성단에 올랐습니다.
셋이 하나이며 하나가 곧 셋인
하느님을 뵈오며
두려움 가득 하늘굿을 올리나니
셋한을 되살리려는
어린 선비들의 모임
코리아글로브가
지난 열 해에 미련두지 말고
하느님의 꿈과 뜻과 길을 펼치는
새터로 거듭 나도록 이끌어주소서.
더불어 뭇 거룩하신
어른들께 비옵나니
이 자리에 함께 한 어리석은 아들딸
양승태 박기성 김석규
김지호 강성룡 다섯 사람이
임진 계사 갑오 을미
흔들림 없이 비나리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보살펴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