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가릴 것 없이 공천의 한가운데에서
꽤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벼랑에 몰린 여당은 어떻게든
인당수에 바칠 심청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고,
떡을 눈앞에 둔 야당은 온갖 고을서
몰려온 이들의 밥그릇 다툼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표밭에서만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여야의 불모지에서 자갈부터 줍는 이들입니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과 민주통합당의 김부겸 의원이 그들입니다.
오랫동안 말뚝만 박아도 당선이 된다는 광주와 대구에서
그들은 오늘도 한국정치의 길을 열기 위해 날마다 전쟁을 치릅니다.
1985년 2월12일 12대 총선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치 1번지는 세 곳이었습니다.
서울만 아니라 광주와 대구까지 경쟁을 벌이며
이 나라의 걸출한 인재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지역정당으로 굴러떨어진 지난 17년 동안
더 이상 정치 1번지의 영예는 고사하고
더 이상 광주와 대구에서 인재들이 나오질 않습니다.
지역균형발전은 노대통령만의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어느 대통령이든 그에 도전했지만
끝내 임기말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산 배정의 문제도 수도 이전의 문제도 아닙니다.
광주와 대구를 다시 정치 1번지로 만드는 길만이 해법입니다.
오늘도 그 해법을 풀기 위해 정치인생을 던져 싸우는
이정현 의원과 김부겸 의원께 찬사를 보내며
코리아글로브 님들과 함께 마음으로 성원하고자 합니다.
아래에 두 의원의 글을 싣습니다.
한 분 글은 짧고 한 분 글은 길어 고민을 했는데,
두 분 모습이 그래도 묻어난다 싶어 그냥 싣습니다.
글 쓸 시간마저 아끼고 무조건 현장에 파묻혀 사는 분.
조분조분 설득하다 때로는 화끈하게 포효하는 분.
바쁘시더라도 읽어보시길 청합니다.
~~~~~~~~~~~~~~~~~~~~~~~~~~~~~~~~~~~~~~
호남예산 지킴이, 광주시민이 지켜주십시오
- 이정현의원, 광주시민에게 진정성 담은 편지로 호소 -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무등산 봄소식’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홈페이지(http://www.leejh.or.kr) 발언대를 이용하여 ‘호남예산 지킴이, 광주시민이 지켜달라’는 내용의 편지글을 올렸다.
편지글에는 지난 2004년 총선 때 낮은 득표율로 당선되지 못했지만,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4년 동안 예결위 4번, 계수조정위 2번 참여하면서 묵묵히 호남예산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앞으로 고향을 위해 더 큰 일, 더 많은 일 하게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서남해안 관광산업, 광주문화사업, 광주전남 첨단산업으로 호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에는 당 보다는 인물을 봐 달라고 진정성을 담아 호소하고 있다.
이의원은 “그 동안 공천장 넣으면 당선증 받는 자판기 의원들이 공단 하나, 신도시 하나 제대로 해놨나요?“ 라며 ”광주에 정치경쟁을 살려야 합니다. 광주시장이, 전남지사가, 신안군수 여수 시장이 예산 철이면 찾아갈 여당의원 방 하나가 필요합니다. 노란 일색 땅에 파란 싹 하나만 틔워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무등산 봄소식 3
대한민국 민주화를 종결한 광주!
위대한 시민! 위대한 광주시민이여!
한사람은 보내 주십시오.
노란 일색 땅에 파란 싹 하나만 틔워주십시오.
광주시장이, 전남 지사가, 신안군수, 여수시장이
예산 철이면 찾아갈 여당의원 방 하나만 부탁합니다.
제발 이번에는 당 보다 인물을 봐 주십시오.
호남 예산 지킴이, 광주시민이 지켜주십시오.
4년 동안 예결위 4번, 계수조정위 2번 참여한 사람.
당에서는 호남출신이라고, 호남에서는 민주당 아니라고,
27년간 모진 냉대와 온갖 설움, 눈물을 삼키며 참았습니다.
묵묵히 호남 예산을 지켜 온 사람, 광주시민이 지켜주십시오.
호남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습니다.
서남해안 관광산업, 광주문화산업, 광주전남 첨단산업으로
호남의 새 시대를 맞을 준비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속는 셈 치고, 버린 셈 치고 한 석은 뽑아주십시오.
말꾼 29명을 부끄럽게 만들 자신 있습니다.
탕평인사에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실정은 지역차별 인사입니다.
편파편중 인사는 고문보다 더 사악한 인권 유린입니다.
실상을 낱낱이 알기에 저는 훨씬 더 분노합니다.
지역차별 없는 탕평인사 감시에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미운오리가 아닙니다.
2004년 선거 때 저는 미운오리였습니다.
그러나 의원 되고 호남예산 제가 챙겼습니다.
고향 위해 더 큰 일, 더 많은 일 하게 해주십시오.
미운오리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저는 백조입니다.
23년 호남 여당을 심판합시다.
호남차별 문제는 광주시민도 다 압니다.
그것 바로 잡으라고 국회의원 시켜줬는데
공단 하나, 신도시 하나 제대로 해놨나요?
못하면 심판해야 민주시민입니다.
광주 선거혁명을 일으킵시다.
광주가 먼저 선거혁명을 일으킵시다.
경상남도는 도지사가 김두관이고,
권영길, 강기갑, 조승수는 진보성향 의원,
부산 조경태, 김해 최철국은 민주당입니다.
광주에 정치경쟁을 살립시다.
85년 고귀남, 이영일 2등 당선이 끝입니다.
일당독점, 일당독식이 23년째입니다.
그 결과 독선, 오만으로 군림하고 시민 무시합니다.
경쟁시켜야 시민이 대접받고 지역이 발전합니다.
약체 호남정치를 살립시다.
공천장 넣으면 당선증 받는 자판기 의원은 약체입니다.
2012, 2017 유력한 호남출신 대선주자 있나요?
지도부에 호남은 4등 한 명, 도로 열린당 됐습니다.
호남 5선 대신 충북 3선이 국회부의장을 합니다.
광주 의인 1만 명께 도움을 청합니다.
싹쓸이는 광주민주화의 퇴보 아닐까요?
광주 의인 1만 명이 일어섭시다.
바다가 갈라진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선거기적도 기적입니다.
의식 있는 광주시민 1만 명이 나서서
10명씩 만 설득하면 선거기적 일어납니다.
무등산에 새 봄 오면 기적의 꽃망울은 터지고 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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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 김부겸 / 김의겸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김부겸 의원과 알고 지낸 지 꽤 됐는데도 가끔씩 이해가 안 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일 때다. 이선실 간첩사건으로 호되게 당해놓고도 그는 엉뚱하게 한나라당과 합의처리를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갈라져서 멱살잡이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한가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란 결국 세 싸움인데, 쯧쯧….” 난 혀를 차고 말았다. 그 뒤로 그는 싸움만 나면 말리려 들었고, 타협안이랍시고 내놓았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론을 내놓았을 때 중뿔나게 혼자만 환영하고 나섰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전설 속의 김부겸’은 전혀 달랐다. 1980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사자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서울의 봄을 열어젖힌 야전사령관이 김부겸이었다. 특히 심재철이 이끌던 학생회가 서울역 앞 10만 군중을 해산하려 들자 “여기서 흩어지면 신군부가 나선다”며 끝까지 싸우자던 게 그였다. 실제 그의 말대로 서울역에서 흘리지 못한 피는 사흘 뒤 광주에서 흘리게 된다.
이런 차이를 놓고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그런 혐의는 그의 마당발 친화력 때문에 더 짙어졌다. 모난 돌멩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보니 반들반들한 조약돌이 된 듯한 느낌 말이다. 사실 여의도 바닥에서 가장 흔한 말이 상생과 통합이다. 희생이나 고뇌는 실리지 않은 채 빈껍데기로만 돌아다니니 가장 진부한 단어가 돼버렸다. 김부겸의 상생·통합도 으레 그러려니 한 거다.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그의 대구 출마 소식을 접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그냥 군포에 눌러앉아 있으면 4~5선은 무난할 것이고, 국회의장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옛날 디제이가 자주 하던 말대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대구로 내려간다니, “아! 순정이었구나”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부겸은 항시 양쪽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 경계인이었다. 지역적으로는 경북고를 나온 티케이 성골이면서도 호남이 뿌리인 민주통합당에 몸담고 있다. “그 넓은 민주당사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자가 나 말고 딱 두명 더 있더라”는 게 그의 푸념이었다. 이념적으로는 정통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속 터질 정도로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 또 그는 항상 비주류였으면서도 주류 사회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이 약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이쪽저쪽 친구가 많은 이유다.
그는 이렇게 늘 이쪽에 완전히 발 담그지도 못하고 저쪽에 몸을 싣지도 못하는 어정쩡함 속에 살아왔다. 좋게 보면, 양극단의 정서와 논리를 이해하니, 이를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힘 있을 때 얘기다. 힘없으면 양쪽으로부터 몰매 맞기 십상이다.
그는 끼어서 눈치보며 국회의원 선수나 늘려가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군포에서 4선을 하면 그건 월급쟁이다. 영화 <친구>를 보니 주인공이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아서 사실대로 털어놓고 중형을 받는다. 나도 더 이상 쪽팔리고 싶지 않다”며 대구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도전은 지역감정, 이념의 대립, 소득의 격차 등 우리 사회 모든 분단을 잇기 위한 몸짓으로 읽힌다. 그가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전쟁 같은 선거를 치르면서도, 공감과 치유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얼굴 넓적하고, 넉살 좋고, 목소리 우렁우렁한 친구가 나타나 손을 내밀거든, 대구시민들이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다.
김의겸 사회부장 kyummy@hani.co.kr
꽤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벼랑에 몰린 여당은 어떻게든
인당수에 바칠 심청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고,
떡을 눈앞에 둔 야당은 온갖 고을서
몰려온 이들의 밥그릇 다툼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표밭에서만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여야의 불모지에서 자갈부터 줍는 이들입니다.
새누리당의 이정현 의원과 민주통합당의 김부겸 의원이 그들입니다.
오랫동안 말뚝만 박아도 당선이 된다는 광주와 대구에서
그들은 오늘도 한국정치의 길을 열기 위해 날마다 전쟁을 치릅니다.
1985년 2월12일 12대 총선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치 1번지는 세 곳이었습니다.
서울만 아니라 광주와 대구까지 경쟁을 벌이며
이 나라의 걸출한 인재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지역정당으로 굴러떨어진 지난 17년 동안
더 이상 정치 1번지의 영예는 고사하고
더 이상 광주와 대구에서 인재들이 나오질 않습니다.
지역균형발전은 노대통령만의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어느 대통령이든 그에 도전했지만
끝내 임기말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산 배정의 문제도 수도 이전의 문제도 아닙니다.
광주와 대구를 다시 정치 1번지로 만드는 길만이 해법입니다.
오늘도 그 해법을 풀기 위해 정치인생을 던져 싸우는
이정현 의원과 김부겸 의원께 찬사를 보내며
코리아글로브 님들과 함께 마음으로 성원하고자 합니다.
아래에 두 의원의 글을 싣습니다.
한 분 글은 짧고 한 분 글은 길어 고민을 했는데,
두 분 모습이 그래도 묻어난다 싶어 그냥 싣습니다.
글 쓸 시간마저 아끼고 무조건 현장에 파묻혀 사는 분.
조분조분 설득하다 때로는 화끈하게 포효하는 분.
바쁘시더라도 읽어보시길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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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예산 지킴이, 광주시민이 지켜주십시오
- 이정현의원, 광주시민에게 진정성 담은 편지로 호소 -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무등산 봄소식’이라는 제목으로 개인 홈페이지(http://www.leejh.or.kr) 발언대를 이용하여 ‘호남예산 지킴이, 광주시민이 지켜달라’는 내용의 편지글을 올렸다.
편지글에는 지난 2004년 총선 때 낮은 득표율로 당선되지 못했지만,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4년 동안 예결위 4번, 계수조정위 2번 참여하면서 묵묵히 호남예산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앞으로 고향을 위해 더 큰 일, 더 많은 일 하게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또한, “서남해안 관광산업, 광주문화사업, 광주전남 첨단산업으로 호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에는 당 보다는 인물을 봐 달라고 진정성을 담아 호소하고 있다.
이의원은 “그 동안 공천장 넣으면 당선증 받는 자판기 의원들이 공단 하나, 신도시 하나 제대로 해놨나요?“ 라며 ”광주에 정치경쟁을 살려야 합니다. 광주시장이, 전남지사가, 신안군수 여수 시장이 예산 철이면 찾아갈 여당의원 방 하나가 필요합니다. 노란 일색 땅에 파란 싹 하나만 틔워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무등산 봄소식 3
대한민국 민주화를 종결한 광주!
위대한 시민! 위대한 광주시민이여!
한사람은 보내 주십시오.
노란 일색 땅에 파란 싹 하나만 틔워주십시오.
광주시장이, 전남 지사가, 신안군수, 여수시장이
예산 철이면 찾아갈 여당의원 방 하나만 부탁합니다.
제발 이번에는 당 보다 인물을 봐 주십시오.
호남 예산 지킴이, 광주시민이 지켜주십시오.
4년 동안 예결위 4번, 계수조정위 2번 참여한 사람.
당에서는 호남출신이라고, 호남에서는 민주당 아니라고,
27년간 모진 냉대와 온갖 설움, 눈물을 삼키며 참았습니다.
묵묵히 호남 예산을 지켜 온 사람, 광주시민이 지켜주십시오.
호남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습니다.
서남해안 관광산업, 광주문화산업, 광주전남 첨단산업으로
호남의 새 시대를 맞을 준비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속는 셈 치고, 버린 셈 치고 한 석은 뽑아주십시오.
말꾼 29명을 부끄럽게 만들 자신 있습니다.
탕평인사에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실정은 지역차별 인사입니다.
편파편중 인사는 고문보다 더 사악한 인권 유린입니다.
실상을 낱낱이 알기에 저는 훨씬 더 분노합니다.
지역차별 없는 탕평인사 감시에 정치생명을 걸겠습니다.
미운오리가 아닙니다.
2004년 선거 때 저는 미운오리였습니다.
그러나 의원 되고 호남예산 제가 챙겼습니다.
고향 위해 더 큰 일, 더 많은 일 하게 해주십시오.
미운오리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저는 백조입니다.
23년 호남 여당을 심판합시다.
호남차별 문제는 광주시민도 다 압니다.
그것 바로 잡으라고 국회의원 시켜줬는데
공단 하나, 신도시 하나 제대로 해놨나요?
못하면 심판해야 민주시민입니다.
광주 선거혁명을 일으킵시다.
광주가 먼저 선거혁명을 일으킵시다.
경상남도는 도지사가 김두관이고,
권영길, 강기갑, 조승수는 진보성향 의원,
부산 조경태, 김해 최철국은 민주당입니다.
광주에 정치경쟁을 살립시다.
85년 고귀남, 이영일 2등 당선이 끝입니다.
일당독점, 일당독식이 23년째입니다.
그 결과 독선, 오만으로 군림하고 시민 무시합니다.
경쟁시켜야 시민이 대접받고 지역이 발전합니다.
약체 호남정치를 살립시다.
공천장 넣으면 당선증 받는 자판기 의원은 약체입니다.
2012, 2017 유력한 호남출신 대선주자 있나요?
지도부에 호남은 4등 한 명, 도로 열린당 됐습니다.
호남 5선 대신 충북 3선이 국회부의장을 합니다.
광주 의인 1만 명께 도움을 청합니다.
싹쓸이는 광주민주화의 퇴보 아닐까요?
광주 의인 1만 명이 일어섭시다.
바다가 갈라진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선거기적도 기적입니다.
의식 있는 광주시민 1만 명이 나서서
10명씩 만 설득하면 선거기적 일어납니다.
무등산에 새 봄 오면 기적의 꽃망울은 터지고 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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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아! 김부겸 / 김의겸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김부겸 의원과 알고 지낸 지 꽤 됐는데도 가끔씩 이해가 안 됐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일 때다. 이선실 간첩사건으로 호되게 당해놓고도 그는 엉뚱하게 한나라당과 합의처리를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우리 공동체가 갈라져서 멱살잡이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한가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란 결국 세 싸움인데, 쯧쯧….” 난 혀를 차고 말았다. 그 뒤로 그는 싸움만 나면 말리려 들었고, 타협안이랍시고 내놓았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론을 내놓았을 때 중뿔나게 혼자만 환영하고 나섰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전설 속의 김부겸’은 전혀 달랐다. 1980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사자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서울의 봄을 열어젖힌 야전사령관이 김부겸이었다. 특히 심재철이 이끌던 학생회가 서울역 앞 10만 군중을 해산하려 들자 “여기서 흩어지면 신군부가 나선다”며 끝까지 싸우자던 게 그였다. 실제 그의 말대로 서울역에서 흘리지 못한 피는 사흘 뒤 광주에서 흘리게 된다.
이런 차이를 놓고 사람들은 쉽게 단정지었다. “한나라당에 있다 와서 그래”라고. 그런 혐의는 그의 마당발 친화력 때문에 더 짙어졌다. 모난 돌멩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보니 반들반들한 조약돌이 된 듯한 느낌 말이다. 사실 여의도 바닥에서 가장 흔한 말이 상생과 통합이다. 희생이나 고뇌는 실리지 않은 채 빈껍데기로만 돌아다니니 가장 진부한 단어가 돼버렸다. 김부겸의 상생·통합도 으레 그러려니 한 거다. 나도 그런 평가에 동조했었나 보다. 그의 대구 출마 소식을 접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그냥 군포에 눌러앉아 있으면 4~5선은 무난할 것이고, 국회의장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옛날 디제이가 자주 하던 말대로,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대구로 내려간다니, “아! 순정이었구나”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부겸은 항시 양쪽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는 경계인이었다. 지역적으로는 경북고를 나온 티케이 성골이면서도 호남이 뿌리인 민주통합당에 몸담고 있다. “그 넓은 민주당사에 경상도 사투리 쓰는 자가 나 말고 딱 두명 더 있더라”는 게 그의 푸념이었다. 이념적으로는 정통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속 터질 정도로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 또 그는 항상 비주류였으면서도 주류 사회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이 약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이쪽저쪽 친구가 많은 이유다.
그는 이렇게 늘 이쪽에 완전히 발 담그지도 못하고 저쪽에 몸을 싣지도 못하는 어정쩡함 속에 살아왔다. 좋게 보면, 양극단의 정서와 논리를 이해하니, 이를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아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힘 있을 때 얘기다. 힘없으면 양쪽으로부터 몰매 맞기 십상이다.
그는 끼어서 눈치보며 국회의원 선수나 늘려가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군포에서 4선을 하면 그건 월급쟁이다. 영화 <친구>를 보니 주인공이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아서 사실대로 털어놓고 중형을 받는다. 나도 더 이상 쪽팔리고 싶지 않다”며 대구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도전은 지역감정, 이념의 대립, 소득의 격차 등 우리 사회 모든 분단을 잇기 위한 몸짓으로 읽힌다. 그가 성공한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전쟁 같은 선거를 치르면서도, 공감과 치유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얼굴 넓적하고, 넉살 좋고, 목소리 우렁우렁한 친구가 나타나 손을 내밀거든, 대구시민들이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다.
김의겸 사회부장 kyu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