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로 미안합니다.
미국 다녀온 게 언제인데 이제서야 올립니다.
그리고… 기행문을 사흘에 걸쳐 올리고 있습니다.
사무실의 컴퓨터가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홈페이지조차 꼼짝 않고 제멋대로라서 죽을 맛입니다.
컴퓨터를 바꾸고 홈페이지를 제대로 개편하려면
적어도 수백이 들 텐데 지금 코리아글로브 재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글로벌 민간외교의 창'(Window)인
코리아글로브에 투자할 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 먼저 올린 글, 수정이 아니 되어 지우고 다시 올립니다 ㅜㅜ
홈페이지 Zero board 감당이 아니 되어 둘로 쪼개어 올립니다.
* 바라는 분께는 자료집을 Ring 제본하여 드립니다. 연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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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새로운 60년,
대체 불가능한
동맹을 위하여!
단기 4346년, 서기 2013년 3월9일부터 3월31일까지
미 국무부의 초청으로
‘Post Election U.S.-Korea Relations' 주제로
워싱턴과 미니애폴리스와 앨버커키와 호놀룰루를
다녀온 기록입니다.
삼가 통일 대한민국의 제단에 바칩니다.
(사)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김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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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의 새로운 60년,
대체 불가능한 동맹을 위하여!
(사)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김석규
단기 4346년, 서기 2013년 3월9일 새벽 서울을 떠나 미국의 워싱턴과 미니애폴리스와 앨버커키와 호놀룰루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3월의 마지막 날 저녁이다. IVLP(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 시퀘스터에 시달리는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미 국무부에서 초청한 자리다. 주제는 ‘선거 이후 한미관계’ 즉, 앞으로 동맹을 어찌 발전시킬까 화두였다.
그 화두를 제대로 소화하지는 못했다. 참가자들이 제각각이고 우리를 맞이하는 미국의 곳곳도 아직은 마음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현안 몇 가지를 뒤지다 이내 만남이 끝나곤 하였다. 그 화두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겨졌다. 벌써 답 못한 영문 메일이 한 가득이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내게는 시지푸스의 바위덩이처럼 무겁다.
지구마을의 1/7은 돌고 온 듯하다. 갈 때는 북극항로로, 올 때는 태평양을 가로질렀으니 말이다. 그 뿐인가. 미국의 동서남북과 네 계절을 맛봤다. 이른 봄 워싱턴에서는 한국 관련 싱크탱크를 K-Street를 따라 웬만큼 다 만났다. 5대호 아래, 늦겨울의 눈 덮인 미니애폴리스는 몽족을 비롯한 온갖 이민자들의 도시다. 가을볕 아른한 뉴멕시코 앨버커키는 거룩한 인디언들의 땅이다. 초여름의 호놀룰루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의 나라로 바뀐 미국 지정학의 핵심이다. 미니애폴리스 대신 알래스카에 갔으면 더 확실했겠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다.
서울에 돌아오니 오랜 빈자리를 어찌 채울까 걱정과는 달리 시간이 멈춰서 있었다. 정부조직 개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평양은 ‘짖는 개는 두렵지 않다.’ 격언을 코리안은 물론 온 누리에 되새겨주고 있었다. 드디어 붓을 드는 오늘 4월17일, 미국의 영혼 보스턴에서는 9.11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평양은 워싱턴과 뉴욕에까지 삿대질을 하고 있다.
보스턴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혈맹 60주년을 맞은 한미 두 나라가 오늘의 위기를 발판으로 다음 60년, 지구마을을 함께 챙기는 글로벌 동맹으로 거듭 나기를 빈다. 공식일정은 열아흐레, 오고감까지 더하면 꽉 찬 스무사흘의 기행문을 테러 희생자들의 영전과 대한민국 재통일의 제단에 바친다.
* 덧붙이는 말
난 게으른 사람이다. 그러나 기행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IVLP에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자격으로 초대받았으며 가는 곳마다 두 나라와 지구마을의 오늘과 다가올 날을 코리아글로브의 이름으로 말하였다. 하여 KoreaGlobe.org 공지사항 들머리에 민간외교의 소명으로 기행문을 올린다. 또한 이렇게 기행문을 남겨두어야 앞으로 미국의 재정이 설사 더 어려워지더라도 70년을 이어온 이 귀중한 행사에 코리안이 제외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될 것이다. 한미 두 나라는 앞으로 더 많은 친한파와 친미파를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이웃 나라 일본과 차이나도 따라하지 않겠는가.
IVLP는 모든 게 비공개다. 그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서 그리고 예민한 이야기가 흘러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부러 만난 이들의 이름과 예민한 이야기들을 자주 뺐음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기행문에 실린 글은 모두 다 내 맘대로 쓴 글이니 그를 그 기관이나 해당 인사의 입장이나 발언으로 이해하는 바보가 없기를 더불어 바란다.
<일정>
2013년 3월9일(토) ~ 3월16일(토) Washington, DC
2013년 3월16일(토) ~ 3월20일(수) Minneapolis, Minnesota
2013년 3월20일(수) ~ 3월26일(화) Albuquerque, New Mexico
2013년 3월26일(화) ~ 3월30일(토) Honolulu, Hawaii
<참가자>
- Mr. Seok Kyu KIM
Standing Member, Board of Directors, KoreaGlobe
- Ms. Eunsuk SEO
Chair, Planning and General Affairs Committee,
Busanjin-gu Ward Council, Busan Metropolitan City
- Mr. Jemin SON
Political News Reporter, Kyunghyang Shinmun Daily
- Mr. Hui Wung YUN
Director of Research and Analysis, Korea Society Opinion Institute
- 표 끊고 못간 이: Mr. Sangmin Lee
Secretary to Rep. Suh Byung-soo, National Assembly (New Frontier Party)
IVLP 첫날 2013년 3월9일 토요일>
[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왜 미국민 세금으로… ]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간다. 인천에서 3월9일 오전 10시 반에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쳤는데 워싱턴 덜레스공항에 오니 오전 9시 반이다. 13시간을 왔고 한국보다 14시간이 빠르다. 서울은 자정이 코앞이다.

우리와 스무하루를 같이 할 교포 앤 아줌마를 만났다. 포토맥 강을 건너 호텔로 가는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손 기자가 전한 공항직원의 말.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왜 미국민 세금으로 이런 프로그램에 오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재정절벽에 시퀘스터까지 몰린 워싱턴은 더 이상 ‘늙은 유럽’을 조롱하던 럼스펠드 때의 미국이 아니다. "우리가 끝물 아니냐."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늙은 미국의 회춘을 위해 코리아가 무엇을 할 것인지 말머리를 던진다.
클럽쿼터에 짐을 풀고 점심을 들러 블랙핀에 갔다. 미디엄웰로 12달러 수제 햄버거를, 그리고 7달러 DC브라운맥주를 시킨다. 택스에 15% 팁까지 더하니 무려 24.4달러. 그렇게라도 서비스경제를 지켜야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그뿐이랴. 살찌기 딱 좋다. 먹다 마시다 끝내 끄트머리는 남긴다. 이 느글느글을 스무하루 먹을 생각하니 빠뜨리고 온 고추장과 김치가 어른댄다.
백악관 뒤와 앞을 두루 거닌다. 아담한 이곳이 지구마을을 뒤흔드니 구중궁궐 청와대가 배울 일이다. 하늘은 파랗고 날은 따뜻한 상춘에 넓은 거리가 한가롭기 그지없다. 들고뛰는 사람들과 틈날 때마다 입술 붙이는 이들로 심심할 틈은 없다.

오벨리스크를 본뜬 워싱턴기념비를 지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머문다. 이 또한 껍데기는 고만고만하되 속은 미어터진다. 우리가 배울 게 아닌가. 싸이월드란 손꼽히는 물건을 만들고도 SNS세상에선 뒷북이었던 코리아다.
낮밤이 뒤바뀐 시차에 다들 홍냥홍냥. 그래도 슬쩍 재우고 저녁은 건너뛴 뒤 워싱턴의 첫 밤 소주 잔치를 벌인다. 우릴 버리고 푸른기와집에 들어선 이 선생을 욕하고 미얀마를 휘저을 서의원의 장도를 감축하며 윤선생의 컵라면으로 이미 불어터진 배를 달랜다. "좀 있다 아침 먹읍시다."
IVLP 둘째 날 2013년 3월10일 일요일>
[ Post Rome, 신화의 나라 USA ]
오늘부터 섬머 타임이다. 서울과의 시차가 한 시간 줄어 반갑다. 일요일이라 ‘늦은 아침’을 든다. 깔끔한 식단이지만 두렵다. 3월 내내 아침마다 얘들을 만나야 하겠구나. 미음 한 그릇이 벌써 그립다. 게을러 아침묵념을 빼먹었다. 오늘은 水雲 최제우 어른이 만 마흔으로 가신지 149년, 島山 안창호 어른이 진갑에 가신지 75년 그리고 티벳이 피로 물든지 54년 되는 날이다. 오늘 저녁에는 같이 묵념해야지. 내일은 동일본 대재앙의 2주기가 되는 날이다. 태평양과 열도를 떠도는 쓰나미의 원혼들을 어찌 잊으랴.
처음 들른 곳은 판테온 신전을 본떴지만 자신의 집 몬티첼로와도 닮은 토머스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이다. 타고난 천재 제퍼슨이 쓴, 합중국의 정신이 벽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첫 장은 ‘자유민’ 즉 ‘노예는 없다’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신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주인과 노예 사이의 거래는 압제다, 그러므로 모두를 자유롭게 함이 나라의 책무다 이리 적혀 있다. 둘째 장은 ‘時中’ 즉 ‘변화’다. 법과 기관은 시대변화와 함께 가야 한다, 문명사회가 야만스런 관습에 얽매이느니 차라리 아이 때 옷을 껴입고 사는 게 낫다 갈파했다.


셋째 장은 천부인권이다. 우리에게 자명한 진실이 있으니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다, 모두가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에게서 받았다 선언했다. 마지막 장은 ‘종교의 자유’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구에게도 어떤 종교나 하나의 도덕을 강요하면 아니 된다, 모두가 자유롭게 종교적 견해를 고백하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웅변했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가 종교보다 인류의 보편을 앞세웠다. 여기에 USA의 얼이 다 녹아있다 싶어서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건국 초기에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그 다툼이 갈무리되고 세월이 흐르면 아름다운 추억만 남는다. 제퍼슨과 아담스의 죽음 그리고 그에 앞선 워싱턴의 이야기는, 미국 건국 영웅의 신화가 되었다.
2백여 년을 2천년 Post Rome처럼 느끼게 하는 가슴 뭉클한 신화에서 미국의 주몽은 워싱턴이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이들이 제퍼슨과 아담스다. 건국 50주년을 하루 앞두고 오늘이냐 되뇌다 먼저 간 제퍼슨. 케네디가 말했듯 하늘이 내린 미국의 머리, 태왕으로 승격한 이. 그리고 정적이었지만 “제퍼슨이 아직 살아 기쁘다.”(몇 시간 앞서 갔다) 말을 남기고 저승 간,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도량의 애덤스. 을파소로 봐도 모자라지 않다. 건국의 때가 이들의 죽음과 함께 닫히고 미국은 영원한 신화로 남았다.
이쯤 해서 워싱턴의 땅을 살펴보자. 다른 이들은 워싱턴의 상징으로 워싱턴 기념비가 보인다던데 내 눈에는 그렇지 않다. 알짜는 링컨 기념관이다. 활을 쏘는 이를 눈에 떠올려보자.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포토맥 강을 등지고 -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미국의 기운이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활의 시위 자리에 링컨 기념관이 있다. 강 건너 명치에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고 배꼽에는 펜타곤이 떡 버티고 있다. 심장은 어딘가. 바로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National Memorial)다.

활시위 위 손가락에는 베트남전 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 아래 손가락에는 6.25 참전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가 어울려 있다. 화살 쏘기 앞서의 활대 머리에는 워싱턴 기념비가 있고 활대 위에는 백악관, 활대 아래에는 제퍼슨 기념관이 있다. 활대 뒤통수에는 2차 대전 참전 기념 메모리얼이 있는데 타이들 만(Tidal Basin)을 둘러서, 그와 제퍼슨 기념관 사이에 마린 루터 킹 메모리얼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관이 서 있다.
2백여 년 미국의 고뇌가 맺혀있음을 느낀다. 워싱턴-제퍼슨-애덤스가 건국 영웅이라면 남북전쟁을 이겨내고 나흘 뒤 저승에 간 링컨은 제2 건국의 신화다. 그러나 그 신화는 패자를 품어낼 때만 영원히 이어진다. 그래서 DC는 리 장군으로 대표되는 남부군을 심장과 명치로 삼았다. 그를 받쳐낼 현실은 펜타곤이다. 화살의 끝에 워싱턴과 2차 대전 메모리얼이 있다. 이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은 상징이다. 활시위의 두 손가락은 코리아와 베트남이니 곧 미래의 미국이다. 용광로를 웅변하는 마틴 루터 킹과 뉴딜의 루즈벨트는 제2, 제3의 화살이다.
두 다리는 어딜까. 공항을 비롯해 드넓은 레이건의 땅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럼 머리는 어딜까. 링컨 기념관 앞에 서니 이 모든 게 다 보인다. 부디 가시거든 타지마할 같은 '워싱턴의 거울'(Reflecting Pool)과 워싱턴 기념비에 마음 뺏기지 마시고 머리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실마리는 다음 글이다. “와해되는 공화국을 지킨 상징은 의자부터 통으로 파르테논 신전으로 부활했다. 기념관의 기둥은 당시 주의 수대로 36개이며 1922년 마침내 완공했을 때는 48개 주가 되었다. 1959년에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주로 승격시켜 마침내 태평양의 나라이자 북극의 나라가 되면서 유라시아 국가로 떠오르게 된다.” 활 쏘는 자세가 어디 한둘이랴.


삼가 6.25 참전 기념비 앞에 서다. 미국민의 여론이 반분되었던 베트남전과 달리 UN의 일원으로 미군이 참전한 6.25는 논란이 없는 추모의 전당이다. 이리 새겨져 있다. “우리 국민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혀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아들과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1950 ▼ KOREA ▼ 1953)” 열아홉 용사 그림자가 검은 벽에 비쳐 38선이 된다. 용사의 대열 끝까지 가면 세모꼴이 동그라미가 된다. 제단과 함께, 만감이 뒤섞이는 느낌표다.


베트남전 용사 기념비를 보니 쪼개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는 미국의 고뇌가 읽힌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의 세 용사가 서 있고 죽고 다친 이를 품은 간호병들이 있다. 추모공원 벽에 새겨진 고인들의 이름은 한가운데 머리에서 오른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고 또한 한가운데 발끝에서 왼쪽으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되돌아오는 연어 떼가 되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1959에서 1975의 기억이다.


홀로코스트박물관에 갔다. 마음이 아팠다. 지구문명이 제대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변두리가 아닌, 가장 선진화된 곳에서 최악의 야만이 일어날 수 있음을 웅변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남긴 말이 가슴을 지른다. “When we say 'Never again', What does it mean?" 그 아래 죄수복에 갇힌 유대인들과 얼굴을 난도질당한 아프리카 사람이 함께 있다. 아직도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홀로코스트는, 코리아글로브가 지닌 무등의 꿈과 홍익인간의 뜻과 공존공영의 길이 듣기 좋은 말이나 이상에 그쳐서는 아니 되며 반드시 국제정치의 현실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비극이다. 물론 그를 위해 우리부터 사랑방과 복덕방 나아가 선비의 마당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며, 당연히 몽골글로브든 베트남글로브든 아메리카글로브든 멋진 자웅을 겨루는 미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사당을 들렀다가 남는 시간은 통으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쏟아부었다. 귀족과 하녀가 만나 부부가 된 영국의 제임스 스미손은 50만 달러(지금 5천만 달러)를 기부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세웠단다. 다시 말해 스미소니언은 ‘열려있는 미국으로 몰려드는 유럽의 바람’을 상징한다. 특히 미술관은 알찼다. 내 다리가 뭐라 퉁을 놓든 넋이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어느덧 시간은 잦아들고 미국사 박물관에 갔을 때는 초치기다. 위는 오르지도 못하고 1층만 뛰어다니다 나왔다. 다시 워싱턴에 온다면 박물관을 샅샅이 뒤지리라. 그런데… 그리 좋은 때가 올까.


이까지 일을 싸들고 온 불쌍한 손 기자와 윤 선생을 놔두고 숙소에서 10분을 걸어 볶음밥과 우동을 맛보니 이틀의 속이 다 풀린다. 내일부터 IVLP의 본론이다. 자료를 뒤척이다 워싱턴의 밤도 잠 못 들다.
* DC(District of Columbia) 이야기
1789년에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프랑스 건축가에 요청해 네모로 연방의 중심을 잡았고 이에 메릴랜드가 2/3, 버지니아가 1/3 땅 내놓았다. 그러나 담배 수출항 알렉산드리아 때문에 못 견딘 버지니아가 도로 가져가서 이제는 네모가 아니다. 게다가 연방파와 공화파의 타협에 의해 DC 거주자는 업저버 선출권 밖에 없다. (다니다보니 시위 차량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람들은 평평한 워싱턴의 기준점이 워싱턴기념비란다. 그 오벨리스크의 밑 길이 열 배가 높이인 550 feet다. DC 안의 모든 건물은 이보다 낮다. (포토맥 너머 버지니아 빼고)
IVLP 셋째 날 2013년 3월11일 월요일>
[ 대체 불가능한 동맹, 한미동맹을 위하여! ]
우릴 환영한다고 주말 내내 화창하던 하늘이 월요일이 되니 다시 워싱턴 날씨로 돌아가 우중충하다. 영화배우 뺨치게 분위기 있는 기사분이 아침 드라이브를 시켜주신다. 어쨌든 고맙다. 'Graduate School USA'. 국무부의 IVLP 일곱 에이전시 가운데 한 곳에서 첫발을 뗀다. 소냐와 빌 그리고 레슬리 세 분의 도움으로 미 대사관에서부터 들었던 매뉴얼을 복습한다.
IVLP를 통해 두 나라가 분야별 쌍무관계를 증진하길 바라는 취지부터, 대사관 국무부 에이전시 주별 CIV(Councils for International Visitors) 그리고 통역사에 이르는 다섯 지원 시스템과 토론 생산성의 문제 즉, '먼저 묻고 낱낱은 뒤에 덧붙여라.' '이해관계를 끌어내 스스로 얘기하게 하라.' '준비된 바를 넘어서면 다른 곳에서 풀어라.' 등을 확인한다.
그리고 IVLP가 공식보다는 민간 레벨의 Visitors란 점과 모든 토론이 보안상의 규제와 사안의 민감성 탓에 'Off the Record'임을 다시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여행자수표를 받았다. 극진한 대접에 고마움을 드리며 큰돈이라 내내 들고 다니기 엄청 부담스러웠음도 밝힌다. 환영오찬이다. 워싱턴 밥값으로 이틀 내내 먹을 70달러 상당의 재패니즈 레스토랑 코스다. 즐거운 만남에서 드린 말씀은 이렇다.
“공식논의에 앞서 제안 드리겠다. 오늘은 동일본의 끔찍한 재앙이 있은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후쿠시마 원전복구는 먼 미래의 일이며, 아직도 30만이 피난민으로 고향을 떠나있고 무엇보다 1억2천만이 희망을 잃었다. 코리아에게 일본은 2천년의 형제이자 이웃이다. 미국에는 둘도 없는 동맹. 그들을 위해 함께 묵념을 드리자.”
“먼저 오바마 정부 2기 출범을 축하드린다. 올해는 6.25가 끝나고 한미동맹이 일어선지 60주년이다. 이때 불러주신 님들께 감사드린다. 코리아에서 60주년을 한 갑자라 하여 한 세기만치 치고 개인도 만 60세면 진갑이라 새 삶을 사는 나이다. 동맹도 마찬가지다. 두 정부는 동맹의 역사를 UpGrade 시키는 소명을 이뤄야 한다. 그를 위해 미국이 먼저 '대담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 또한 피터팬 증후군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현안보다 동맹국의 고민을 먼저 묻고 도움을 모색하는, 어깨동무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다.”
“미국이 무엇을 바꿔야 할까. 두 나라는 공통의 가치를 지녔으며 여론이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최선진국이다. 통일 뒤에도 한국에게 한미동맹이 절실하게 하려면, 미국은 일관된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야 한다. 통일을 비롯한 한국 생존의 문제를 한국과 같이 기획하고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믿음을 주고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야 한다. 한국의 처지를 잘 알 텐데 미국이 한국에게 감당 못할 고민에 시달리게 해서는 아니 된다."
위의 이야기는 미국 체류 내내 이어진 질문이자 대답이자 화두였다. 그러나 아직도 서로 내려다보고 쳐다보는 오랜 버릇을 서로 못 고쳐서 그런지 워싱턴에 머무르는 내내 코리아 얘기만 하다 끝났다. 다음에는 반드시 "NASA 또는 Post NASA 그리고 중동 및 차이나 네트워크와의 만남"을 이루어 우리부터 혈맹을 승격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후에는 내내 국무부 동아태 담당자들과 만났다. 대뜸 나오는 말. “일행 가운데 언론인이 둘이나 되어 신경이 쓰인다.” 알고 보니 코리아글로브를 보스턴글로브 같은 곳으로 본 모양이다. 고맙다. 국무부의 코미디에 하루가 즐거웠다.
"KORUS의 가치동맹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 바탕에서 대북정책의 최우선은 동맹의 보호이다. 비핵화와 비확산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에 대한 멍군은 다음과 같다.
"'KORUS가 더없이 좋다' 공감하나 통일 대한민국을 염두에 둔다면 밑바닥을 봐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영원한 동맹은 없다. 통일 뒤 한국은 누구와 손잡나.' 다음으로 '혈맹임에도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배신감을 어찌 잊겠나.' 서로 이 두 가지 의심은 만만찮다. 최근 두 가지 예사롭지 않은 실수를 보라."
"먼저 역사왜곡과 관련된 미 의회 이야기. 한중을 동렬에 놓았다. 역사왜곡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워싱턴과 애덤스와 제퍼슨, 미 건국의 아버지 모두가 알고 보니 차이나타운의 핏줄이었다.’ 이 말을 미국에서 흥분하지 않고 들을 수 있겠나. 다음 사례를 보자. 한국의 전임 두 대통령 취임식 때 미 국무장관께서 늘 왔으나 이번에 빠지셨다. 한국은 실리보다 예우에 민감하다. 이는 유럽도 그렇지 않은가."
"이상을 한마디로 하면, 더없이 좋은 KORUS의 숙제는 '대체 불가능한 동맹'으로의 진화다. 그 길은 디테일이다. 쌓은 점수 까먹지 않고 서로의 예우까지 챙기는, 긴밀한 관계구축이다. 그런데 평양문제를 걱정하면서 기왕 그 길을 개척한 선구자집단, 민간레벨의 지원은 어찌 다 끊어졌나."


못 다한 이야기.
“레토릭을 넘어서는 대화로의 진전은 곧 비약이며, 그 비약이 이뤄졌을 때에야 KORUS는 참으로 더없이 좋은 나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략대화’란 말이 있다) 한국이 도울 게 뭐 있을까. 난민 문제가 떠오른다. 이 지구마을에서 북미와 호주대륙 및 영국 등 다섯 나라 권역이 가장 난민을 많이 받아들인다. 특히 미국은 시퀘스터로 곤란을 겪으면서도 난민은 이민문제와는 다른 보편의 문제로 바라보며 초당적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이는 KORUS 가치동맹을 진화시키기 위해 한국이 먼저 제안하고 나름의 몫을 할 수도 있는 영역이 아닐까.”
어스름 케네디센터에서 포토맥을 바라보며 워싱턴의 낭만을 즐겼다.
IVLP 넷째 날 2013년 3월12일 화요일>
[ 등 떠미는 북핵 그리고 원자력협정의 족쇄 ]
어제 내내 우중충하더만 아침부터 기어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처음에는 미음이나 쌀죽 한 그릇만 했는데‥ 먹다보니 어느새 입에 익는다. 게다가 비싼 호텔이라 그런지 가벼운 아메리칸 스타일임에도 음식도 좋다. 시퀘스터에 주눅 든 미국민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들이 비록 어려워지더라도 나그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푸른 하늘’의 전통을 이어가길 바란다.
조찬을 즐기는 바쁜 한국 기업인들처럼 미국 기업인들도 8시부터 보잔다. 한미재계협회와 미일재계협회 두 분이 나오셨다.
"아시아와의 FTA 가운데 KORUS가 가장 크고 성공적이다. 사흘 뒤 1주년 축하연에서 만나자. 그에 비해 TPP 진행과정은 답답하다. 한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USTR은 독립기구로서 미 상무부 산하가 아니다. 한국 또한 기업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줘 불황을 타개하길 바란다."
멍군은 이렇다.
"FTA를 비롯한 협력증진에서 여론 조성에 AMCHAM 제프리 존스 선생을 비롯한 여러분이 큰 몫을 했다. LA의 스펜서 김 선생을 비롯한 KORUS의 영웅들을 두 나라 사람들이 가까이 느끼게 협회를 비롯한 민간레벨에서 힘써주시길 바란다. 아베 정부에의 아쉬움을 푸는 길은 TPP의 확대도 좋지만 KORUS의 열매를 키우는 게 더 빠르다. 한국 또한 특정국가와의 무역비중이 압도함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외교관과 달리 이 기업인들은 화통하다. 아침이 즐겁다.
조지메이슨 대학 알링턴 캠퍼스의 마크 로젤 교수님 만난다고 점심이 이르다. 명함 대신 자료집 구석에 멋지게 Sign을 휘갈겨주신 님께서 미연방 정치제도사 개론을 말씀하신다. 왕정을 피해 자유의 땅으로 온 선조들은 독립 때 행정수반조차 두지 않는다. 조지 메이슨은 권력의 집중을 우려했다. 사리사욕을 탐하는 권력의지는 인간의 본성 아닌가. 하여, 정부 힘을 되도록 줄이며 이를 헌법에 명시한, 권리장전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비롯한 많은 얘기는 줄인다. 공화와 연방을 둘러싼 깊은 고뇌의 역사와 그 현재진행형을 알뜰히 들었다. 이어지는 토론‥
건국 237년, 내셔널 몰의 "나에게 꿈이 있다." 행진 반세기. 점차 연방과 대통령의 힘이 세어짐은 시대변화 못지않게 용광로 나라의 동질성이 강해짐이다. 그러나 히스패닉을 같은 동질성으로 품어 안을 수 있나? 무슬림은? 유럽에서 열려있다 자랑하던 프랑스는 사르코지 때 히잡을 벗니 마니 홍역을 앓지 않았나.
그럼에도 프랑스나 유럽과 달리 미국에는 이것이 미국식이다 규정이 없다. 지구촌에서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앞으로도 융성해야 할 존재가치이다. 코리아는 전혀 다르다. 옛 삼한도 아니고, 지구마을에서 가장 동질성이 강하고 좁으며 대가 센 이들이 사는 나라에서 미국식을 부러워함은 적절치 않다. 외려 이웃나라들을 코리아만큼 자유의 나라로 이끌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미국은 왼손으로 유럽, 오른손으로 캐나다에서 호주까지 영연방과 함께 손잡고 나아감을 명심해라.

대외관계위원회의 스콧 스나이더 박사를 만났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오간다. 문 앞에서 서로 들어가라 등 떠미는 동맹의 모습도 보인다. 맞는 말이다. 오바마 2기 정부도 아직 자리 잡는 중이고 한국정부는 더하다. 차이나의 양회가 끝나고 영도소조회의에서 입장이 나오려면 꽤 남았다. 결국 박대통령의 방미 즈음해 동맹과 한중의 답이 나올 것이다. 그를 앞두고 안에서 무엇이 꼬이는지 빈 수레마냥 바깥으로 큰소리를 일삼는 평양정권이 외려 유관국들의 큰 틀에서의 진전된 협력의 가능성을 높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무사태평이다. 지난 20년, 한국이 단 한번이라도 레드라인을 넘어 판을 흔든 적이 있던가. 오히려 울분이 터질 정도로 동맹의 뜻을 따르고 북경과도 협력하지 않았던가. 설마하니 앞뒤 가리지 않고 워싱턴에서 한 세대도 더 지난 엇박자의 트라우마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그때도 한국은 억울했다)
나아가, 머리는 물론 뱃속에도 핵을 품고 사는 한국이 궁지에 몰리지 않게 원자력협정의 족쇄를 풀도록 미국이 서둘러 성의를 보여야 할 때다. 한국에서 핵무장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음을 그저 평양의 도발에 관한 과잉반응으로 치부하면 큰 실책이 될 것이다. 반미가 아닌 친미세력이 마음으로부터 좌절감을 겪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말을 하는가. 참으로 무례한 로카쇼무라의 모욕까지 겪고 있는 혈맹에게, 번호표 뽑고 그들과 얘기 다 끝난 한참 뒤에야 보자면서, 하염없이 목을 매고 기다리게 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겠는가.

날이 제법 쌀쌀하다. 포토맥 강가 따라 워싱턴 여기저기로 바람 길이 뚫려있다. 지금 미니애폴리스는 밤낮으로 영점 아래라는데 하늘이 우리를 아끼사 미리 땅을 서늘히 식히는 듯하다. 조지타운을 거닐다 칼바람에 쫓겨 포토맥을 포기하고 그 너머 버지니아로 간다. 윤 선생의 벗, 한겨레 기자가 기다린다. 들머리부터 강남회집으로 도배된 한인마을 애난데일(‘애낳는데이’로 들린다)의 아난골(‘아낳고’로 들린다)에서 한국 떠나온 지 몇 달은 된 양 진하게 회포를 푼다. 버지니아의 밤이 이리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IVLP 다섯째 날 2013년 3월13일 수요일>
[ 한겨레보다 더 큰 대한민국, 반만년의 메모리얼은 언제? ]
미국의 소리 방송에 갔다. 존경하옵는 달라이 라마와 웨이징성(魏京生)의 글귀를 보니 반갑고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들의 말처럼 이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다. 앞으로도 VOA가 큰 몫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럼 코리아는? 정부가 못할 일은 민간이 해야 하는데 모택동과 제갈량에 눈먼 헛똑똑이 대한민국의 좌파와 우파의 목소리 큰 양반들을 어찌 하랴. 이동혁 국장과 동료 분들을 비롯한 교포들이 꽤 많다. 특파원으로 왔다 주저앉은 사람도 적잖다고 한다. 시간이 모자라 살갑게 맞아주는 님들과 함께 못하여 아쉬움이 크다.

기대를 품고 KEI(Korea Economic Institute of America)로 갔다. KIEP와 Korea Foundation이 받침 하는 곳답게 나눌 이야기가 많다. 동맹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졌음을 말한다. 기왕 한다면 우리가 먼저 제안하고 이끔도 좋으리라. 그러나 '동맹의 미래'란 엄청 큰 꼭지를 건드리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먹을 게 딱히 없다. 이 글에서 무얼 말하랴. 다만 서로 깊은 느낌을 주지 못한 탓이라 매듭지을 수밖에.
SAIS(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의 재구 박사를 만나 한미관계 및 권역안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차이나가 대세 아닌가. 여기도 차이나 연구자에 비하면 코리아는 1/3이다. 그러나 일본 연구자는 코리아의 1/5이란다. 격세지감이다.
재구 박사가 이끄는 'U.S.-Korea Institute'는 KIEP의 후원을 2/3 받지만 나머진 스스로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력 못잖게 중요한 게 인맥과 로비다. 용광로답게 미국의 시민사회에서 이민사회의 덩치는 크다. 잘 알려진 유대인은 물론 인디아 이민사회는 어떤가. 밀리네어가 아닌 빌리네어는 되어야 수퍼리치고 그들이 서넛은 되어야 이민사회가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쓸 수 있다. 허나 코메리칸은 그저 조막조막한 젊은 조직이 많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혈맹의 인연답지 않게 영향력이 적다. 정부 힘이 가장 센 한국에서 한미동맹이 당연히 1순위지만 의회 힘이 훨씬 센 워싱턴에서 그저 1/n일 뿐이다. 예전에 그를 모르고 대사관을 앞세워 될 일조차 그르치기도 했다.
미 대선에서 보듯이 결론은 펀딩 능력이다. 북한인권문제만 하더라도 프리덤 하우스는 2백만 달러로 판을 끌어나갔다. 그리 보면 미국처럼 대한민국의 통일을 바라는 나라도 없다. 실익이 없음에도 핵문제만으로 스무 해를 시달렸다. 그러다보니 이제 민주-공화당 모두 평양정권에 관한 이견이 없다. 조건 없는 대화는 끝났다. 최근 평양의 도발은, 중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빌미를 만들어주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다.

밖에서 외신으로 미국 얘기를 듣다보면 저런 데서 어찌 사나 할 수도 있다. 허나 미국이 둘로 쪼개지다시피 한 남북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보라. 그 짧은 동안에 미국은 놀랍도록 다이내믹했고 시스템의 균형을 이뤄냈다. 그 열쇠는 애국심이다. 곳곳의 메모리얼을 보라. 시골엄마가 인터뷰에서 "우리 열아홉 아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쳤다." 말하는 나라다. 코리아가 미국이 되어, 듣도 보도 못한 땅 코리아와 베트남과 걸프 만과 아프간에, 잊을 만하면 몇 만씩 젊은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그리 할 수 있겠나.
어디가 흔들려도 다른 곳은 모를 정도로 땅이 넓고 시장이 커서 그렇다 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비슷한 나라는 없다. 코리아가 이리 되려면 길은 하나뿐이다. 애족보다 더 큰 애국심으로 마음가짐을 바꿔먹어야 한다. 왜, 이렇게 70억 인류가 다 좋아하는 대한민국을 놔두고 굳이 8천만 밖에 아니 되는 한민족에 목숨을 걸려고 하는가. (그래서 코리아글로브는 한겨레가 아닌 옛 삼한의 되살림을 이야기한다)
재구 박사에게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워싱턴 시스템에 관한 깊은 고찰 그리고 애국심이란 선물을 받고 또 다른 메모리얼, 미국의 신화가 아로새겨진 의사당으로 간다. 2백여 년을 2천년 Post Rome처럼 느끼게 하는 가슴 뭉클한 신화에서 미국의 주몽은 워싱턴이다. 트라이앵글의 1은 독립전쟁에서 이기고도 사령관직을 내놓았다, 2는 네 해 뒤 대통령에 올라 연임하고 또 뒤돌아보지 않고 물러났다, 3은 나라의 아버지라서 의사당 밑 묻겠다 하여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미국의 별이 되었다 이야기로 매듭짓는다.


로텐더 홀의 천장벽화에 워싱턴의 신성이 새겨있고 그 아래 나라를 빛낸 이들의 국장이 치러지니 여기야말로 국사당이다. 반만년 역사공동체임에도 딱 건국 65년 정도의 느낌밖에 못 주는 우리 국회의사당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새로 지은 신관에 쾌적함 말고 가슴 저미는 무슨 사연이 아로새겨져 있나. 이어지는 '속삭이는 방'의 여신상은 자유의 여신상보다 이르단다. 이 또한 신화의 역사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건국 과정의 연출이다. 방에는 주의 수에 맞게 쉰이나 되는 위인들이 둘러서서 지켜본다. 예서 대선 뒤 오바마와 롬니가 오찬도 하고 한때 시민들 누구나 들르게 농산물 바자회도 했단다.
우리로 치면, 백두산 국사당과 마니산 참성단과 태백산 천제단을 서울 도심에 숨 막히도록 신비로운 권위로 세우고, 바로 그 곳에서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옛 어른들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매듭을 짓기도 하고 풀게도 한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새로운 서울에 워싱턴 못잖은 반만년의 메모리얼을 세우리라 옛 어른들께 맹세하옵니다. 굽어 살피소서.
IVLP 여섯째 날 2013년 3월14일 목요일>
[ 대한민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유라시아 국가 미국이 만나야 ]
'동북아의 안전보장'이란 세부 주제로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원장을 만난다. 15년째 원장을 한다는 고든 박사는 듣던 대로 유쾌-상쾌-호쾌하다. 2/3는 일본, 나머지는 한국, 요새는 차이나까지 투자한다는 그에게 과녁은 현안이 아니라 관계였다. 하여 미 행정부에 한국 전문가가 제대로 없음을 걱정하며 그를 키우기 위한 계획을 쭉 펼치신다.

김정은이 안쓰럽다. 그 할비나 애비처럼 무한권력을 누리기는커녕 하기 싫어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쇼 비즈니스의 MC가 아닌가. 백두산 화산 폭발의 걱정이 땅만 아니라 평양정권 또한 마찬가지다. 김일성 조선의 ‘백두줄기’를 어찌 할까. 스무 해 동안은 늘 핵이니 미사일이니 식량이니 인권이니 하며 궁극의 목적으로 통일을 내걸었으나 이제 통일은 현안이자 유일한 길이다. 통일되지 않고서는 위 네 가지 어느 것도 해결불가다.
싫어도 붕괴의 때는 온다. '요란한 빈 수레'의 저 경황없는 공갈을 보라. 통일비용 협박도 이젠 접을 때가 되었다. 증권시장의 기저효과처럼 남북의 격차가 워낙 벌어져 외려 옛날보다 훨씬 적게 들게 되었다. 전제권력은 정보와 사람과 물자를 갖고 노는데 셋 다 약해지고 도리어 권력의 원천과 권위와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웃나라들이 겁먹을 까닭이 없다. 극단의 짓거리를 할 전제군주가 사라졌기에 가케무샤를 앞세운 권력의 동맹은 제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합리의 거래를 함이 역사의 상례다. 선동에 얽매임은 달은 보쟎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이다.
통일과 동맹의 정의는 벌써 내려졌다. 대한민국이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곧 한미동맹의 시현이다. 그러나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한다. 워싱턴에 동북아정책은 있지만 대북정책은 당연히 없기에 우리가 그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먼저 한미가 늘 같은 입장과 레토릭과 행동을 하게 할 것이며, 다음으로 대국인 차이나와 러시아의 체면을 살려줄 것이며, 끝으로 한일을 비롯한 우방의 틈을 메워야 한다. 인기 없는 이대통령의 외교를 한미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서랍에 넣어둔 KORUS를 불붙인 이는 그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TPP도 탄력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G20, 핵안보 정상회의 그리고 GCF까지 이대통령의 글로벌 리더십을 이어받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도 통일 대한민국의 길을 활짝 열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화두. 코리아가 이 말을 할 자신감을 어서 갖출 수 있겠나. "강하고 활달한 일본이 한국에도 절실하다."


다음으로 엄청나게 진지한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를 만난다. 두 해만에 뵈니 억수로 반갑다. 김정일이 중풍으로 쓰러지고 세 해나 살았던 탓에 그나마 권력승계가 순조로웠다. 북경의 양회가 끝난 뒤 영도소조회의가 열린다고 달라지겠나. 깡패아들 데리고 사는 애비는 경찰의 처벌을 바라지 않을뿐더러 외려 범죄은닉을 돕기까지 한다. 그동안 퍼주는 에미 역은 한국이, 애비는 차이나가, 경찰은 미국이 하지 않았나. 오바마 1기는 평양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끝내 워싱턴이 받은 쇼크는 심각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분명한 점은 미국은 단 한 번도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아울러 50개 주로 새 출발한 1959년부터, 아니 1941년 진주만 폭격 때부터 미국은 유라시아 국가가 되었다. 브루스 클링너는 이처럼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동맹이 서로의 주춧돌이 되기를 바랐다. 님께서 혈맹의 앞길에서 큰 몫을 하기를 바란다. 의사당 아카이브와 의회조사국을 거쳐 오후 내내 의회를 다시 주마간산하다.
IVLP 일곱째 날 2013년 3월15일 금요일>
[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가두지 마라! 더 이상 빼앗지 마라! ]
가슴 뭉클한 날이다. 그새 정든 워싱턴의 마지막 밤을 맞을 터라 그렇고 북한의 인류를 살리려 몸 던지는 인권의 보살들을 만날 터라 저렇다.
먼저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www.NCNK.org 카린 리 선생을 만났다. (감동만 하다가 사진도 못 찍었다 ㅜㅜ) 미국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다. 코리아글로브 홍상영 이사처럼 얼추 열여덟 해를 들락거렸는데 그 허실을 어찌 모르겠나. 그러나 늘 말을 삼간다. 고작 평양이 두려워서 그러겠나. 자신들이 발목 묶이면 곧 나락으로 떨어질 인류를 위해 모든 걸 삼킨다. 그 깊은 사랑 앞에서 감히 누가 ‘나이브’ 말을 입 밖에 내겠나.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당연히 오프더레코드라 그분 빼고 느낌만 말하면 이렇다. (이 글 모두가 똑같다. 시비 말길)
모니터링이 불가하니 종교계가 아니면 대다수 NGO가 식량지원을 접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래도 어찌 무슨 궤변으로 평양정권을 두호하겠는가. 평양에서 싸이 만나게 해 달라 조르는 로드먼의 거듭 된 쇼를 보는 마음 참담하다. 가장 중요한 역설은 평양정권의 권력이 약해지는 과도기에 2500만의 인도주의 위기는 극에 달한다는 점이다. 밥도 못 먹는, 노예보다 못한 이들에게 어느 누가 외람되이 국가흥망 필부유책을 입에 담으랴.
북경의 밥줄 기름줄 연탄 줄이 끊기기 전에는 목이 부러져도 무너지지 않고, 외화벌이 쪼그라들기 전에는 흔들리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 밥을 먹을 줄 알 수 없고 어느 세월에야 자유를 꿈이라도 꿀 수 있는지 가늠조차 불가능한 칠흑의 새벽, 1944년 같이 영상 3도 경성의 아침에도 얼어 죽게 되는 절망이 오늘 북한 인도주의 위기의 핵심이다. 이미 2500만은 스스로 먹고산 지 오래다. 지난해 황해도처럼 아예 묻어놓은 것까지 다 캐가는 약탈이 아니라면 죽지는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밥은 옥수수가 아니라 바깥세상의 실시간 소식이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이가 절대다수라는 기쁨의 이야기다.
한숨이 절로 터지지만, "희망이 있다기보다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자." 말씀을 감히 드리며 매듭을 짓는다. 많은 이가 박대통령에게 기대가 크다. 제대로 가닥을 잡아야지 워싱턴은 물론 북경까지 몫을 하게 될 것이다. 박대통령이 後光 김대중 대통령 다음으로 다시금 드라마틱 스토리를 펼치길 두 손 모아 빈다.
매사추세츠 대사관 길을 달리다. 바이든 부통령 관저부터 웬만한 대사관저가 길 따라 늘어선 이 거리는 아름다운 길이다. 한국 대사관과 문화원과 영사관이 띄엄띄엄 뵌다. 길이 이어지니 아메리칸 대학이 나올 수밖에. 워싱턴 인턴십을 많이 배출하는 이 학교는 사관학교 같다. 하여 우남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되기 전인 1943년 4월8일 교정에 벚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그 유서 깊은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저승에선 우남 몽양 백범 세 분이 때마다 만나 막걸리 한 사발 하실 텐데 왜 후손들은 아직도 앙앙불락인가 괴로운 상념에 젖어든다.


이지영 교수. 참 참한 분이다. (우리말 모르는 까막눈들 오해 말라. ‘멋있다’보다 더 높은 말이다) 빅터차와 데이빗강을 사부로 모신 젊은 한인학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이분도 당당하니 그 일익을 담당하겠다.

미 상공회의소로 간다. 오늘이 KORUS 한미 FTA 1주년이다. 웬디 커틀러가 축사를 한다. "난 KORUS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살 난 아이의 어머니다. 이 날을 기려 아베신조 총리도 TPP를 선언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아베총리여. 만만하니 한국 붙잡고 자존심 높일 허망한 생각일랑 접고 부디 일본을 갈라파고스에서 벗어나게 하시길 부탁드리오. 3대에 걸친 악연을, 당신께서 두 나라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청사의 기념비를 세우며 매듭지어야 하지 않겠소. 열도에서 당신이 아니면 뉘라서 하리이까.” 부디 아베총리가 역사에 남길 빈다.
숙소 앞 공원, Faragut Square 보니 진풍경이다. 날이 쌀쌀함에도 밥차가 줄지어 서있고 사람들은 그저 공원에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까고 있다. 백악관이 코앞이라 지난해는 'Occupy Wallstreet'도 예서 벌어진 모양이다. 하기야 나도 내 돈으로 왔다면 (그럴 재간도 없다만) 지금 저 어딘가 풀밭에 앉아 점심을 때우고 있으리라.
HRNK 북한인권위원회 그렉 상임이사를 만났다. (익히 알려진 수잔 숄티 여사와 먼저 만난 고든 플레이크 두 분이 부대표로 있다) 열세 해에 관한 노력을 보이듯 '성분'을 비롯한 묵직한 책 다섯 권을 받았다. 북한 인권에 관한 정의는 정태춘이 그 노래에서 일찍이 내렸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가두지 마라. 더 이상 빼앗지 마라." 좌파는 이제 되살아나 인권의 수호자로 서야 한다. 그래야 우파도 대한민국도 산다.

지난 20년. 핵과 미사일을 두고 씨름했다. 그를 위해 햇볕을 쬐여주고 도왔다. 그러나 이제는 굶기는 정도를 넘어서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두고 죽이는 앞에서 누구를 위해 자위를 두둔하겠나. 반면 촉촉이 적시자는 달빛은 인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반만년 나라와 겨레는 김일성조선과 김일성민족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인권이란 말도 거창하다. 단 한마디 "살리자" 말이 옳다. 9만여 북송교포에 이어 또다시 그보다 더 큰 재앙을 못 막은 한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문명세계도 함께 야만이 되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촌의 모델로 떠올랐다. 반면 이북은 유일한 생지옥이자 지구에 뚫린 블랙홀이 되었다. 차이나는 무엇을 골라야 하나? 더 이상 독일 모델이 어떻고 통일비용이 저떻고 한가한 이야기는 접고 공존공영의 동아시아를 우리 손으로 여는 시간표를 내놓을, 숙제 마감의 때가 왔다.

그렉 선생과 뜨겁게 만나고 워싱턴의 마지막 날을 쏘다닌다. 대통령을 빼고 존경받는 첫 손가락의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이 우뚝 선 옛 DC의 랜드마크 우체국 건물부터 시작해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까지 마음이 바쁘다. 박물관에서 눈 호강 한다. 역대 대통령을 기린 온갖 작품부터 로자 파크스와 레이첼 카슨 그리고 앤디 워홀이 그린 마릴린 먼로와 빌 게이츠까지. 아뿔사. 모자라는 영어 때문에 백남준 기념전 현수막을 보고도 여름에 하는 줄 알고 문 닫을 때 간신히 맛만 보고 나왔다. 아쉬움을 고명으로 얹어 워싱턴의 마지막 회포를, 어제에 이어 이틀째 한식당 ‘만두’에서 풀다.

IVLP 여덟째 날 2013년 3월16일 토요일>
[ 워싱턴에서 미니애폴리스로 - 나라면 IVLP 이렇게 ]
그새 담뿍 정이 든 워싱턴을 뒤로 하고 도널드레이건 워싱턴공항에 간다. 애 많이 쓴 기사 계림과 헤어지고 들어서니 나라 안만 다니는 공항이란다. 고풍스런 공항 건물 안에 티벳 탱화처럼 큼지막한 성조기가 걸린 게 눈에 깊이 남는다. 대한민국의 태극기 사랑 탓하기 앞서 돌아가면 우리 집 부서진 태극기 봉부터 바꿔야 쓰겄다.


우리 119가 여기선 911인데 하필 제2의 진주만 사건이 911에 터져버렸다. 여기 분들은 그 기막힌 하나 됨을 어찌 보나 자못 궁금하다. 포토맥 강 따라 백악관이 코앞이다. 펜타곤까지 들이박힌 뒤라 레이건 공항 옮기자 말이 무척 많았는데 끝내 의회의 묵묵부답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단다. 왜냐. 옮기면 그 님들이 너무 번거로우니까‥ 미국이 다시 융성하려면 무엇이 반드시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님들이 어쨌든 우리는 미국 서민들처럼 테러 검색에 기꺼이, 철저히 응했다. 검색하면서 바깥옷은 물론 양말까지 홀라당 벗었다. 그리고 따로 '사람 검색대'에 올라서서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춤을 춘다. 미국이 참으로 고생이 많다. 알카에다부터 무슬림 근본주의 정치세력들이 오로지 미국만 물고 늘어지는 통에 다른 나라들은 모두 두 발 뻗고 자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힘들제 도와줄까 얘기보다 그 말 나올까 봐 "너거가 까탈스러우니 아그들 뭐라 하는 게 아니냐." 선수를 치는데 듣는 미국은 복장이 터질 게다. 한미동맹이 깊어지려면 무슨 얘기를 나눠야하나, 그 답일 것이다. 워싱턴에서 평양정권 얘기만 엄청 해서 아쉬움이 컸다. 중동과 NASA부터 온갖 미국의 고민을 들어보자 했는데, 누굴 탓하기 앞서, 스스로 무식하고 생각이 짧아 딱딱 짚어 바람을 말하지 못해 그리 된 것이리라. 앞으로 북경 분들을 만날 때 다시 그러지 않으리라.
드디어 얼음의 도시 미니애폴리스다. Radisson 호텔에 짐을 부린다. 억수로 부담스럽다. 시퀘스터 애먹는 나라에서 손님 접대는 고맙지만 너무 고급스럽다. 두 침대를 밤새 오가며 쓸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날 만나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부터 지금도 새빠지는 마누라까지, 이 호사스럽고 우뚝허니 외로운 이역만리 호텔 방에서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도 조금 철이 들었나 보다.

윤 선생한테 한마디 했다. 나라면 이리 하지 않겠노라고. 세상에 돈 많이 쓰고 그럴싸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나. 그보다‥ 만약 서울에 불렀다‥ 월화수목금 가운데 수요일만 빼고 월화나 목금은 악 소리 나도록 돌린다. 역사든 문화든 과학이든 비즈니스든‥ 다만 제나라 돌아갔을 때 서울의 그 기획 그대로 베끼고픈 마음이 들게‥ 그렇다고 밤을 놔둘 소냐. 그 나라 온갖 사람들과 인맥을 만들어줘야 한다. 마지막 셋째는 선물을 안겨야 한다. 싸면서도 그 만남을 잊지 못할‥ 그리 보면 IVLP가 오래 되다보니 어느덧 억수록 비싼 패키지여행이 되지 않았나 싶어 혈맹인 미국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무개도 떠오른다. 예서 그리 오래 하원이나 상원에 계셨던 전관을 찾으려면 왜 없겠나. 허나 대사관 분들이 저처럼 가방끈 짧거나 영어가 딸리지도 않을 텐데, 만주가 어딘지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어떤지 금의 나라 신라가 어느 정도인지 말귀조차도 모르시는 분을 모셔 놨다. 이 경우는 대한민국의 혈세를 허투루 쓰는 거시기라 할 만하다.
늦은 점심을 든다. 여긴 서울과 달라 주말이라 죄다 문을 닫는다. 그래도 땅 밑 장터 구석에 뭘 파는 데가 있어 식어빠진 볶음밥과 불어터진 가락을 시킨다. 3~4달러. 싼 맛에 고맙게 묵는다. 모두들 선물 장만 걱정이라 경전철을 타고 'Mall of America'로 간다. 30분 경전철이 상큼하다. 그러제. 이리 땅 넓어 지하철 할 까닭 없는 데서 놔야 적자를 아니 보지, 한국에서 경전철 장난하다 날리고 또 날마다 뿌리는 세금이 얼마인가. 학살범 다음으로 중죄인이 세금 낭비범인데 나라가 반듯해지려면 그 도둑들을 전근대 시대처럼 梟首는 몰라도 圍籬安置라도 해야 기강이 바로 설 것이다.

장터가 엄청 넓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보는 듯하다. 땅 크기로 견주면 서울이 더 낫다. 어쨌든 시어스나 마샬 같은 데를 누비며 선물 고르다보니 어느덧 밤이 이슥하다. 멕시칸 음식으로 때운 저녁 자리, 내일이 성 패트릭 축일이라고 손 기자가 엄지 지문을 시퍼렇게 찍는다. 꽃샘추위에 시달리는 동포들이여.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IVLP 아홉째 날 2013년 3월17일 일요일>
[ 눈과 얼음을 뒤덮은 Sky Way 파운데이션 ]
일요일. 모처럼 늦잠 자고 나와 보니 허허벌판이다. 틈만 나면 산꼭대기 올라 호연지기 노래하던 코리아가 그립다. 여기도 그래서 마천루를 세웠나 보다. 바지런한 서 의원과 도심을 지르며 간신히 카페를 찾아 아침을 때운다. 4.3달러로 달걀 치즈 고기떡 넣은 조그만 버거와 커피 국을 든다. 호텔로 돌아와 새벽에 남긴 고추참치와 쇠주 한잔을 마시며 느글 속을 달랜다. 그조차도 못 드신 님들을 위해 시 한 수.
< 선재동자 00 >
추운 거리를
하이에나처럼 떠돌다
끝내 찾았어라
그 나물에 그 밥이어라
선재 선재라
영락주막의 곡차와 안주
축내지 말자 부러 던진
보살행 어찌 잊으리
그 단심에 절어
샌드위치 옥반가효
커피국 금존미주
기다릴지니
금발미인이
이몽룡 꿈에 보듯
오빠 하고 나타날지니
도심재개발로 유명한 도시란 말을 알겠다. 얼어 죽을까 봐 그런지 건물을 죄다 이어 곳곳마다 하늘 길 Sky Way가 이어져있다. 그 구름다리만 돌아다니면 추위도 모르고 살겠다. 정거장마다 다이아몬드 박스가 만들어져 추위를 피하게 한다. 야심가들이라면 인공도시를 만들 꿈을 꿀 수도 있겠다. 파운데이션이 바깥 행성에만 있겠나.
미네소타 조각공원과 워커미술관에 가다. '체리&숟가락' 작품이 떡하니 조각공원을 떠받친다. 누구 입에 넣어줄까. 이민자들의 도시가 부디 미국은 물론 지구마을의 희망이 되길 빈다. 온실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유리잉어와 얼추 만난 뒤 워커미술관의 현대미술로 빠져든다.

생각도 않았는데 IVLP라 그냥 들어오란다. 정부 산하에 있는 공공시설도 아닌데 이들의 애국심은 버릇이 된가 보다. (티 잡지 마라. 왜 버릇은 낮은 말이고 습관이란 한자어는 높임말인가) 배울 점이다. 미술관 시설이 훌륭하고 현대미술의 제반을 망라하고 있다. 비쥬얼에서 엑조틱까지, 해체에서 새로운 언어까지 오감이 호강한다.

특히 마지막 'Midnight Party'에서 본 클레이메이션은 충격이었다. 처녀지 아메리카를 어찌 유린했나 보여주는 듯한데 비위 강하기로 소문난 나조차 벅찰 정도로 잔혹했다. 뭘 모르고 들어온 미국 아이에게 'Get Out' 한마디 해 내쫓고 직원에게 잔소리 했다. (알아 들을라나)
미니애폴리스 문화순례다. 머리털 나고 처음 농구장에 갔다. 홈팀 Wolves와 뉴올리언스의 Hornets 팀의 격돌이다. 한판의 쇼다. 지금 밖에선 연중 한 번의 아일랜드 성패트릭 행진이 한창이라 안에도 초록 옷이 대세다. 치어리더가 뒤흔들고 재담꾼이 재치를 쏟으며 비보이와 남사당패가 재주를 부린다. 돌아다니는 마스코트가 사진모델이 되고 관중석을 누비는 이동농구대가 슛과 공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이벤트에, 현란한 조명부터 함성과 야유 그리고 톡톡 튀는 음악까지, 마실 운동회다.


결과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다섯 번의 뒤척거림 끝에, 늑대 울음소리 낭자하게 울려 퍼지며 홈팀이 2점차로 화끈하니 팬서비스를 하였다. 이 재미로 사람들이 오는구먼. 큰물 건너와 맛본 색다름이다.
늦은 저녁을 겸해 뒤풀이를 한다. 이리저리 자리는 많았지만 다 모인 자리는 지난 월화 워싱턴 쿼터호텔과 아난골 뒤로 처음이다. 서로 죽이 잘 맞고 궁합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돌아가면 반드시 이 행정관과 김 박사님과 어울리자 거듭 뜻을 모은다.
새벽에 (서울은 대낮) 이사장님을 비롯한 길동무 단골들 목소리를 들었다. 청진동 해장국처럼 제대로 우려 난 마음에 절로 눈이 밝아진다. 이왕 온 김에 미국 3억 인류의 고뇌를 깊이 읽자 다시 다짐하다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IVLP 열째 날 2013년 3월18일 월요일>
[ 세인트폴의 추억- HSEM, 中央高, ‘앤&존’의 만찬 ]
헬스를 하려 마음먹었건만 자료 읽다 내쳐 잤다. 瑞雪이 내린다. 하늘의 보살핌에 고개 숙여 고마움을 드린다. 이곳에 참전노병이 계신다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떠오르는 아침이다.
미네소타 주가 인구 5백만이고 트윈시티 350만이라는데 눈을 헤치며 그 강남으로 간다. 미국의 한강인 미시시피 강의 갈래인 미네소타 강 아래, 미니애폴리스의 자매도시 세인트폴이다. 첫 걸음은 국토안보부 산하 미네소타 주 재난관리센터 HSEM이다. (Minnesota Homeland Security and Emergency Management Office) "환영합니다." 한글현수막과 함께 조 켈리 부국장(예비역 준장)이 환대하신다.

주 공공안전부에만 2200여 사람이 일한다. 연방예산을 받는 HSEM은 조정자다. 예비, 방지, 방제, 복구의 순환을 이끌어야 한다. 'All Disasters are Local.' 미국사회에서 존경받는 군경과 소방대, 간호사, 엔지니어 출신들로 이뤄진 70여 사람들이 한해 내내 바쁘다. 서류작업에 엄청 시달리는가 보다. 'grants, grants more grants.' 마음이 짠하다. 행정직이 그 몫이고 유사시에는 주 방위군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아이티 등지 국제재난에는 국토안보부 요청과 지휘에 따른다.
정보공유를 위한 Fusion Center를 주마다 운영하는데 미 전역에 70여 곳이 있다 한다. 다 좋은데 미네소타 북서 남동에 버틴 한 세대에 이른 원전들의 고준위 폐기물을 어찌 할 거냐 물으니 아직 대책 없단다. 아무리 땅이 넓어도 숨 막히는 일, 땅 좁은 코리아는 어쩌나.
다음으로 공립 센트럴하이스쿨에 가서 10학년 인문지리를 참관하다. 1849년에 미네소타 주가 편입되고 1866년에 학교를 세웠으니 나름 유구하다.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35% 백인, 29% 흑인, 아시안 30%(대부분 몽족), 인디언 0.5%, 히스패닉 6% 이렇게 학생들이 참으로 골고루다. 집에서 쓰는 말도 39개 나랏말이라서 교사들도 라틴 러시아 만다린(Mandarin) 프렌치 도이치 등 여섯 권역의 말을 쓴단다. (하나가 빠졌다고? 그건 영어다)

학생들 58%가 연방기준 빈곤층이라 점심은 거저이고 올해부터 아침도 모두에게 거저다. 급식의 경우 각자 번호를 찍기에 프라이버시가 완벽히 보장된다. 한국에서도 급식(무상 또는 세금) 논란에서 방법을 얼마든 찾을 수 있었는데 장외에 마냥 끌려 다녔던 정치권이 한심할 따름이다. 종합고로서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어디든 이수하면 온데 통한다)가 있고 ‘college in school’이라고 대학 겸임교수도 와서 가르친다. AP란 대학 선이수과정도 있다. 한마디로 수월성 교육을 확실히 하는 실력 있는 학교다. 그래서 권역별 학생모집에도 40%는 스쿨버스가 못가는 곳에서 유학 온단다.

교장 선생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교장을 하고 교육청 고위직에 있었는데 다시 이리 와 스무 해를 봉직하고 계신다. 하여 순환근무도 건너뛴 셈이다. 어디든 지도자 한 사람에 따라 무리가 죽고 사는 법이다. 그 분과 몽족 그림을 뒷배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미닛맨(독립전쟁의 민병, Minutes Man) 잔까지 선물 받았다. 나오다보니 여기서도 왕따 문제로 고심하는가 보다. “아그들아. 제발 사이좋게 지내거라~ 으이! 커서 동창회에서 어찌 만나려 그러냐.” 한마디 해주고 나올 걸…
한식당에 갔다. 벽에 붙은 마흔아홉 차림표가 딱 서울 분식집이다. 다 좋은디 설탕 좀 고만 뿌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짬뽕 먹고 이리 개운한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월요일이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미네소타 대학의 와이즈만 미술관을 곁눈질만 한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작품인데 딱 깡통이다. 태권V의 힘줄과 식스팩을 보는 듯하다.




눈보라를 뚫고 저녁 가정방문 Home Hospitality 초대를 받았다. 세인트폴에서 한 세대 넘게 살아온 앤과 존의 집이다. 장가 간 아들 앤드루가 모는 차를 타고가면서 만다린과 칸토니즈부터 부산 얘기까지 콩글리쉬로 잔뜩 떠든다. 차이나에서 역사 공부를 했나 보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는 중산층 가정의 전형이다. 따뜻하고 예의 바르면서도 알뜰허니 정을 낸다. 깔끔한 식전요리와 와인을 들며 아르헨티나 출장 간 부산 며느리 얘기부터 한국 새 대통령과 한미관계 얘기까지 넓고 다채롭다. 알고 보니 사돈이 서병수 의원의 벗이란다. 끝내 못 온 이상민 보좌관이 안타깝다. 곧 이어진 만찬은 참으로 유쾌하다. 주인장의 손맛이 느껴지는 스테이크와 여러 음식들에 마음까지 배부르다. 웃고 떠들다 보드카로 불콰해지고 밤이 이슥해서야 아쉽게 돌아왔다.
IVLP 열한 날 2013년 3월19일 화요일>
[ 다문화의 도시, 활짝 핀 반전세대와 길 잃은 공화당 ]
아침에 미네소타 대학 로스쿨인 먼데일홀로 간다. 미얀마 출장 탓에 이북 전문가인 잭 렌들러를 못 만나고 데이비드 교수를 뵈었다. 1988년에 이미 북한 인권에 관한 책을 공저한, 전문가를 넘는 선구자이자 원로이시다. 러시아 쿠바 남아공을 비롯해 곳곳에도 이미 마음을 쏟았다.

인권의 되살림을 위한 애씀은 나름의 열매를 거두었으나 아직 아시아에서는 봄소식이 들려오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신다. 차이나 인권에 관한 런던의 국제사면위와 뉴욕과 홍콩의 휴먼라이트워치 등의 노력을 눈여겨보라 하시고 화답으로 9만여 명과 그 자식들까지 통째로 오길남 박사의 가족이 되었던 북송 재일교포들의 짓밟힌 인권의 역사를 살펴보시라 청한다. (이는 한일이 공범이다)
아름다운 만남이다. 미국의 이 연배가 68세대의 젖줄이었고 피비린내 나는 1971년의 쇼크를 거쳐 흑인민권운동과 동지애를 나누고 오늘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공화당은 이들처럼 젊은 세대에게 잊지 못할 어떤 추억을 줄 것인가 궁금하다.
곧이어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의 존 래쉬 편집자 겸 칼럼니스트를 만난다. 미국의 언론인들이 두 나라 사이의 튼튼한 다리가 되길 빌며 많은 말씀을 드렸다. 쓰신 글처럼 'State of the media: News gap widens' 맞다. 그런데 나라 밖도 그리 될까 봐 걱정이다. 오지랖도 넓고 서울에 특파원이 NYT WP CNN AP 정도라, 미국이 혈맹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많지 않겠는가. 그를 인정하고 한국에 넓은 재량권을 줘야 동맹도 더 발전하고 차이나도 안심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워싱턴 바라는 대로 다 하는 나라다 여겨지면 그 나라의 통일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젊은 세대들은 걱정할 까닭이 전혀 없다. 윗세대들과 달리 눈치를 보쟎는다. 그들에겐 지난 스무 해 평양정권은 전혀 납득불가하고 부끄러운 괴물(Monster)일 뿐이다. 그들을 징그러워하는 것을 통일을 꺼려함이라 단정함은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 때 되면 붉은악마들처럼 그 역사의 열망이 솟구쳐오를 것이다. 한국의 지난 대선처럼 한낱 여론조사로 그 심연을 어찌 읽어내겠는가.
'Pivot to Asia' 또한 한국에는 마찬가지다. 전혀 느낌이 없고 고작 레토릭으로 여겨지고 있다. 왜냐. 어찌 한국에 나카소네와 레이건 때만큼의 재량권을 주지 않는가. 그리 믿지 못하면서 어찌 '더 없이 좋을 수가 없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는가. 중동 핑계는 거시기하다. 그때도 이란은 얼마나 골치 아팠나. 그럼에도 많은 미국의 미디어가 한국은 물론 수많은 우방과의 외교를 넉넉히 또 깊이 다루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영향력이 앞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위험한 신호라 걱정이다.
점심을 들고, 서은숙 의원이 '이민자들의 911'이라 멋지게 이름지어준, 헤네핀 카운티 다문화센터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풍경이 달라진다. 워싱턴에선 거의 못 봤고 트윈시티에서도 어쩌다 봤던 히잡 쓴 무슬림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열정도 놀랍다. 한꺼번에 보스니아, 볼리비아, 케냐, 멕시코, 에디오피아 곳곳에서 오신, 우리 일행보다 훨씬 많은 일곱 빛깔 무지개 분들이 만남의 자리를 꽉 채웠다.

카운티에서 스무 일곱 해 일하며, 1996년부터 센터의 주춧돌을 놓고 이끌어온 여장부 줄리안의 카리스마가 큰물 건너온 나그네들을 사로잡는다. 센터는, 무지개의 본산이라 160여 나라 말이 오가는 미네소타에서 공공서비스로 들어가는 가교 몫을 하고 있다. 몸소 찾아가는 서비스야 여건의 한계로 카운티에 국한되지만 24시간 전화 상담이나 서비스 연결은 카운티와 주의 경계를 당연히 넘는다.
업무와 상관없이 급하면 누구든 통역에 나서다보니 퇴근시각을 지키기 어렵고 심지어 다른 주에서 이사까지 온단다. 소말리아와 몽족과 티벳 사람까지 넘치니 미네소타는 나름대로 적응해 나가지만 '누가 등 뒤에 칼을?' 그 걱정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출신을 넘어 서로 소중히 여기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줄곧 만드나보다. 한편으로는 서로의 역린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보인다. 모스크가 많은데 기존 건물의 용도를 바꿀 뿐, 대놓고 모스크를 세우는 경우는 없단다. 히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유럽을 비롯해 EU 곳곳에서 홍역을 앓은 지 오래인데 예서 배울 일이다. 무슬림은 굳이 티를 내지 않을 일이며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넓힐 일이다. 하여 '마을과 거리에서 그 꼴 못 보겠다.' '우리 아이와 어찌 학교 같이 다니게 하나.' 욱 하는 심사를 다스리고 협조 아래 테러의 뿌리를 뽑는다면, 다시 사르코지와 메르켈이 '다문화의 실패'를 선언하는 퇴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트윈시티에서 가장 오래 된 Hamline 대학의 갓 지은 학생회관 회의실에서 Joseph Peschek 교수를 만난다. 어른답게 지지여부를 떠나 공화당 걱정을 많이 하신다. 두 번 대선에서 잇달아 지면서 이제서야 이민개혁, 동성결혼, 외교방향에 관한 토론이 벌어진단다. 존 매케인이 "랜톤과 그 무리는 미친 새들이다." 포문을 열자마자 미친 새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선다.
어차피 중동, 서남아, 인디아, 차이나, 동남아, 이북 모두 현실주의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Pivot to Asia', 전혀 새롭지 않은 힘겨루기일 뿐이다. 더 어려운 것은, 재정절벽과 시퀘스트로 이어지는 증세 감세의 벽이다. 적이란 말까지 나오는, 낮과 밤의 차이다.
가장 난감한 대목은 동성결혼이다. 그대로 받든 절충해 받든, 대부분 찬성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라면 그들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나. 한숨과 함께 "변화, 적응할 수밖에 없지 않나." 맥 빠진 답이 나온다. 이 고비를 미국의 정계가 새로운 상상력과 역사의 재해석으로 뚫기를, 참으로 바란다.

저녁을 들고 문화체험, 다코타 재즈클럽에 가다. 베네수엘라, 이스라엘, 뉴질랜드 다국적의 재즈니언들이 두루두루 볼 만한 무지개다. 저녁노을보다 짙은 땅거미를 삼키더만 어느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도시의 몽환과 나른히 늘어지는 잿빛 우수를 뒤섞어 칵테일로 뿜어내고 있다. 귀가 호강한다.

그 고운 결을 따라 윤모는 게슴츠레 고개를 숙이다 막간 광고에 어안이 벙벙하다. 다시 맥박이 빨라짐을 보니 한 고비를 넘는가보다. 무대가 후끈 달아오르며 계산서가 날라든다. 달뜨는 마음을 기립박수로 달랜다. 재즈와 함께라면 이 밤도 달콤하다.
* 이렇게 IVLP 기행문의 前篇,
3월 9일에서 19일까지 열 하루의 워싱턴 DC와 미니애폴리스의 이야기를
천신만고 끝에 올렸다. 마지막 [글쓰기] 누르기 앞서 또 날라갈까 봐 두렵다.
차라리… 대낮에 귀신을 만난다 한들 이보다 무섭지 않으리라.
어쨌든 後篇도 어여 올리겠다 맹세하옵니다.
미국 다녀온 게 언제인데 이제서야 올립니다.
그리고… 기행문을 사흘에 걸쳐 올리고 있습니다.
사무실의 컴퓨터가 도통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홈페이지조차 꼼짝 않고 제멋대로라서 죽을 맛입니다.
컴퓨터를 바꾸고 홈페이지를 제대로 개편하려면
적어도 수백이 들 텐데 지금 코리아글로브 재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글로벌 민간외교의 창'(Window)인
코리아글로브에 투자할 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 먼저 올린 글, 수정이 아니 되어 지우고 다시 올립니다 ㅜㅜ
홈페이지 Zero board 감당이 아니 되어 둘로 쪼개어 올립니다.
* 바라는 분께는 자료집을 Ring 제본하여 드립니다. 연락하시길!
새로운 60년,
대체 불가능한
동맹을 위하여!
미 국무부의 초청으로
‘Post Election U.S.-Korea Relations' 주제로
워싱턴과 미니애폴리스와 앨버커키와 호놀룰루를
다녀온 기록입니다.
삼가 통일 대한민국의 제단에 바칩니다.
(사)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김석규
대체 불가능한 동맹을 위하여!
(사)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김석규
단기 4346년, 서기 2013년 3월9일 새벽 서울을 떠나 미국의 워싱턴과 미니애폴리스와 앨버커키와 호놀룰루를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3월의 마지막 날 저녁이다. IVLP(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 시퀘스터에 시달리는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미 국무부에서 초청한 자리다. 주제는 ‘선거 이후 한미관계’ 즉, 앞으로 동맹을 어찌 발전시킬까 화두였다.
그 화두를 제대로 소화하지는 못했다. 참가자들이 제각각이고 우리를 맞이하는 미국의 곳곳도 아직은 마음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현안 몇 가지를 뒤지다 이내 만남이 끝나곤 하였다. 그 화두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겨졌다. 벌써 답 못한 영문 메일이 한 가득이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내게는 시지푸스의 바위덩이처럼 무겁다.
지구마을의 1/7은 돌고 온 듯하다. 갈 때는 북극항로로, 올 때는 태평양을 가로질렀으니 말이다. 그 뿐인가. 미국의 동서남북과 네 계절을 맛봤다. 이른 봄 워싱턴에서는 한국 관련 싱크탱크를 K-Street를 따라 웬만큼 다 만났다. 5대호 아래, 늦겨울의 눈 덮인 미니애폴리스는 몽족을 비롯한 온갖 이민자들의 도시다. 가을볕 아른한 뉴멕시코 앨버커키는 거룩한 인디언들의 땅이다. 초여름의 호놀룰루는 대서양에서 태평양의 나라로 바뀐 미국 지정학의 핵심이다. 미니애폴리스 대신 알래스카에 갔으면 더 확실했겠지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다.
서울에 돌아오니 오랜 빈자리를 어찌 채울까 걱정과는 달리 시간이 멈춰서 있었다. 정부조직 개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평양은 ‘짖는 개는 두렵지 않다.’ 격언을 코리안은 물론 온 누리에 되새겨주고 있었다. 드디어 붓을 드는 오늘 4월17일, 미국의 영혼 보스턴에서는 9.11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평양은 워싱턴과 뉴욕에까지 삿대질을 하고 있다.
보스턴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혈맹 60주년을 맞은 한미 두 나라가 오늘의 위기를 발판으로 다음 60년, 지구마을을 함께 챙기는 글로벌 동맹으로 거듭 나기를 빈다. 공식일정은 열아흐레, 오고감까지 더하면 꽉 찬 스무사흘의 기행문을 테러 희생자들의 영전과 대한민국 재통일의 제단에 바친다.
* 덧붙이는 말
난 게으른 사람이다. 그러나 기행문을 남길 수밖에 없다. IVLP에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자격으로 초대받았으며 가는 곳마다 두 나라와 지구마을의 오늘과 다가올 날을 코리아글로브의 이름으로 말하였다. 하여 KoreaGlobe.org 공지사항 들머리에 민간외교의 소명으로 기행문을 올린다. 또한 이렇게 기행문을 남겨두어야 앞으로 미국의 재정이 설사 더 어려워지더라도 70년을 이어온 이 귀중한 행사에 코리안이 제외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될 것이다. 한미 두 나라는 앞으로 더 많은 친한파와 친미파를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이웃 나라 일본과 차이나도 따라하지 않겠는가.
IVLP는 모든 게 비공개다. 그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해서 그리고 예민한 이야기가 흘러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부러 만난 이들의 이름과 예민한 이야기들을 자주 뺐음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기행문에 실린 글은 모두 다 내 맘대로 쓴 글이니 그를 그 기관이나 해당 인사의 입장이나 발언으로 이해하는 바보가 없기를 더불어 바란다.
<일정>
2013년 3월9일(토) ~ 3월16일(토) Washington, DC
2013년 3월16일(토) ~ 3월20일(수) Minneapolis, Minnesota
2013년 3월20일(수) ~ 3월26일(화) Albuquerque, New Mexico
2013년 3월26일(화) ~ 3월30일(토) Honolulu, Hawaii
<참가자>
- Mr. Seok Kyu KIM
Standing Member, Board of Directors, KoreaGlobe
- Ms. Eunsuk SEO
Chair, Planning and General Affairs Committee,
Busanjin-gu Ward Council, Busan Metropolitan City
- Mr. Jemin SON
Political News Reporter, Kyunghyang Shinmun Daily
- Mr. Hui Wung YUN
Director of Research and Analysis, Korea Society Opinion Institute
- 표 끊고 못간 이: Mr. Sangmin Lee
Secretary to Rep. Suh Byung-soo, National Assembly (New Frontier Party)
IVLP 첫날 2013년 3월9일 토요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간다. 인천에서 3월9일 오전 10시 반에 비행기가 하늘로 솟구쳤는데 워싱턴 덜레스공항에 오니 오전 9시 반이다. 13시간을 왔고 한국보다 14시간이 빠르다. 서울은 자정이 코앞이다.


우리와 스무하루를 같이 할 교포 앤 아줌마를 만났다. 포토맥 강을 건너 호텔로 가는데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손 기자가 전한 공항직원의 말.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 왜 미국민 세금으로 이런 프로그램에 오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재정절벽에 시퀘스터까지 몰린 워싱턴은 더 이상 ‘늙은 유럽’을 조롱하던 럼스펠드 때의 미국이 아니다. "우리가 끝물 아니냐." 씁쓸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늙은 미국의 회춘을 위해 코리아가 무엇을 할 것인지 말머리를 던진다.
클럽쿼터에 짐을 풀고 점심을 들러 블랙핀에 갔다. 미디엄웰로 12달러 수제 햄버거를, 그리고 7달러 DC브라운맥주를 시킨다. 택스에 15% 팁까지 더하니 무려 24.4달러. 그렇게라도 서비스경제를 지켜야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그뿐이랴. 살찌기 딱 좋다. 먹다 마시다 끝내 끄트머리는 남긴다. 이 느글느글을 스무하루 먹을 생각하니 빠뜨리고 온 고추장과 김치가 어른댄다.
백악관 뒤와 앞을 두루 거닌다. 아담한 이곳이 지구마을을 뒤흔드니 구중궁궐 청와대가 배울 일이다. 하늘은 파랗고 날은 따뜻한 상춘에 넓은 거리가 한가롭기 그지없다. 들고뛰는 사람들과 틈날 때마다 입술 붙이는 이들로 심심할 틈은 없다.


오벨리스크를 본뜬 워싱턴기념비를 지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 머문다. 이 또한 껍데기는 고만고만하되 속은 미어터진다. 우리가 배울 게 아닌가. 싸이월드란 손꼽히는 물건을 만들고도 SNS세상에선 뒷북이었던 코리아다.
낮밤이 뒤바뀐 시차에 다들 홍냥홍냥. 그래도 슬쩍 재우고 저녁은 건너뛴 뒤 워싱턴의 첫 밤 소주 잔치를 벌인다. 우릴 버리고 푸른기와집에 들어선 이 선생을 욕하고 미얀마를 휘저을 서의원의 장도를 감축하며 윤선생의 컵라면으로 이미 불어터진 배를 달랜다. "좀 있다 아침 먹읍시다."
IVLP 둘째 날 2013년 3월10일 일요일>
오늘부터 섬머 타임이다. 서울과의 시차가 한 시간 줄어 반갑다. 일요일이라 ‘늦은 아침’을 든다. 깔끔한 식단이지만 두렵다. 3월 내내 아침마다 얘들을 만나야 하겠구나. 미음 한 그릇이 벌써 그립다. 게을러 아침묵념을 빼먹었다. 오늘은 水雲 최제우 어른이 만 마흔으로 가신지 149년, 島山 안창호 어른이 진갑에 가신지 75년 그리고 티벳이 피로 물든지 54년 되는 날이다. 오늘 저녁에는 같이 묵념해야지. 내일은 동일본 대재앙의 2주기가 되는 날이다. 태평양과 열도를 떠도는 쓰나미의 원혼들을 어찌 잊으랴.
처음 들른 곳은 판테온 신전을 본떴지만 자신의 집 몬티첼로와도 닮은 토머스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이다. 타고난 천재 제퍼슨이 쓴, 합중국의 정신이 벽에 뚜렷이 새겨져 있다. 첫 장은 ‘자유민’ 즉 ‘노예는 없다’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신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주인과 노예 사이의 거래는 압제다, 그러므로 모두를 자유롭게 함이 나라의 책무다 이리 적혀 있다. 둘째 장은 ‘時中’ 즉 ‘변화’다. 법과 기관은 시대변화와 함께 가야 한다, 문명사회가 야만스런 관습에 얽매이느니 차라리 아이 때 옷을 껴입고 사는 게 낫다 갈파했다.


셋째 장은 천부인권이다. 우리에게 자명한 진실이 있으니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다, 모두가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에게서 받았다 선언했다. 마지막 장은 ‘종교의 자유’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구에게도 어떤 종교나 하나의 도덕을 강요하면 아니 된다, 모두가 자유롭게 종교적 견해를 고백하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웅변했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가 종교보다 인류의 보편을 앞세웠다. 여기에 USA의 얼이 다 녹아있다 싶어서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건국 초기에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그 다툼이 갈무리되고 세월이 흐르면 아름다운 추억만 남는다. 제퍼슨과 아담스의 죽음 그리고 그에 앞선 워싱턴의 이야기는, 미국 건국 영웅의 신화가 되었다.
2백여 년을 2천년 Post Rome처럼 느끼게 하는 가슴 뭉클한 신화에서 미국의 주몽은 워싱턴이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이들이 제퍼슨과 아담스다. 건국 50주년을 하루 앞두고 오늘이냐 되뇌다 먼저 간 제퍼슨. 케네디가 말했듯 하늘이 내린 미국의 머리, 태왕으로 승격한 이. 그리고 정적이었지만 “제퍼슨이 아직 살아 기쁘다.”(몇 시간 앞서 갔다) 말을 남기고 저승 간,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도량의 애덤스. 을파소로 봐도 모자라지 않다. 건국의 때가 이들의 죽음과 함께 닫히고 미국은 영원한 신화로 남았다.
이쯤 해서 워싱턴의 땅을 살펴보자. 다른 이들은 워싱턴의 상징으로 워싱턴 기념비가 보인다던데 내 눈에는 그렇지 않다. 알짜는 링컨 기념관이다. 활을 쏘는 이를 눈에 떠올려보자.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포토맥 강을 등지고 -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흐르는 미국의 기운이다- 대서양을 바라보는 활의 시위 자리에 링컨 기념관이 있다. 강 건너 명치에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고 배꼽에는 펜타곤이 떡 버티고 있다. 심장은 어딘가. 바로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 The Robert E. Lee National Memorial)다.

활시위 위 손가락에는 베트남전 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 아래 손가락에는 6.25 참전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가 어울려 있다. 화살 쏘기 앞서의 활대 머리에는 워싱턴 기념비가 있고 활대 위에는 백악관, 활대 아래에는 제퍼슨 기념관이 있다. 활대 뒤통수에는 2차 대전 참전 기념 메모리얼이 있는데 타이들 만(Tidal Basin)을 둘러서, 그와 제퍼슨 기념관 사이에 마린 루터 킹 메모리얼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관이 서 있다.
2백여 년 미국의 고뇌가 맺혀있음을 느낀다. 워싱턴-제퍼슨-애덤스가 건국 영웅이라면 남북전쟁을 이겨내고 나흘 뒤 저승에 간 링컨은 제2 건국의 신화다. 그러나 그 신화는 패자를 품어낼 때만 영원히 이어진다. 그래서 DC는 리 장군으로 대표되는 남부군을 심장과 명치로 삼았다. 그를 받쳐낼 현실은 펜타곤이다. 화살의 끝에 워싱턴과 2차 대전 메모리얼이 있다. 이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은 상징이다. 활시위의 두 손가락은 코리아와 베트남이니 곧 미래의 미국이다. 용광로를 웅변하는 마틴 루터 킹과 뉴딜의 루즈벨트는 제2, 제3의 화살이다.
두 다리는 어딜까. 공항을 비롯해 드넓은 레이건의 땅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럼 머리는 어딜까. 링컨 기념관 앞에 서니 이 모든 게 다 보인다. 부디 가시거든 타지마할 같은 '워싱턴의 거울'(Reflecting Pool)과 워싱턴 기념비에 마음 뺏기지 마시고 머리를 찾아보시기 바란다. 실마리는 다음 글이다. “와해되는 공화국을 지킨 상징은 의자부터 통으로 파르테논 신전으로 부활했다. 기념관의 기둥은 당시 주의 수대로 36개이며 1922년 마침내 완공했을 때는 48개 주가 되었다. 1959년에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주로 승격시켜 마침내 태평양의 나라이자 북극의 나라가 되면서 유라시아 국가로 떠오르게 된다.” 활 쏘는 자세가 어디 한둘이랴.


삼가 6.25 참전 기념비 앞에 서다. 미국민의 여론이 반분되었던 베트남전과 달리 UN의 일원으로 미군이 참전한 6.25는 논란이 없는 추모의 전당이다. 이리 새겨져 있다. “우리 국민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혀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 아들과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1950 ▼ KOREA ▼ 1953)” 열아홉 용사 그림자가 검은 벽에 비쳐 38선이 된다. 용사의 대열 끝까지 가면 세모꼴이 동그라미가 된다. 제단과 함께, 만감이 뒤섞이는 느낌표다.


베트남전 용사 기념비를 보니 쪼개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려는 미국의 고뇌가 읽힌다. 백인과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의 세 용사가 서 있고 죽고 다친 이를 품은 간호병들이 있다. 추모공원 벽에 새겨진 고인들의 이름은 한가운데 머리에서 오른쪽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고 또한 한가운데 발끝에서 왼쪽으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되돌아오는 연어 떼가 되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1959에서 1975의 기억이다.


홀로코스트박물관에 갔다. 마음이 아팠다. 지구문명이 제대로 중심을 잡지 않으면 변두리가 아닌, 가장 선진화된 곳에서 최악의 야만이 일어날 수 있음을 웅변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남긴 말이 가슴을 지른다. “When we say 'Never again', What does it mean?" 그 아래 죄수복에 갇힌 유대인들과 얼굴을 난도질당한 아프리카 사람이 함께 있다. 아직도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홀로코스트는, 코리아글로브가 지닌 무등의 꿈과 홍익인간의 뜻과 공존공영의 길이 듣기 좋은 말이나 이상에 그쳐서는 아니 되며 반드시 국제정치의 현실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비극이다. 물론 그를 위해 우리부터 사랑방과 복덕방 나아가 선비의 마당이 되어야 함은 자명하며, 당연히 몽골글로브든 베트남글로브든 아메리카글로브든 멋진 자웅을 겨루는 미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사당을 들렀다가 남는 시간은 통으로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쏟아부었다. 귀족과 하녀가 만나 부부가 된 영국의 제임스 스미손은 50만 달러(지금 5천만 달러)를 기부해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세웠단다. 다시 말해 스미소니언은 ‘열려있는 미국으로 몰려드는 유럽의 바람’을 상징한다. 특히 미술관은 알찼다. 내 다리가 뭐라 퉁을 놓든 넋이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어느덧 시간은 잦아들고 미국사 박물관에 갔을 때는 초치기다. 위는 오르지도 못하고 1층만 뛰어다니다 나왔다. 다시 워싱턴에 온다면 박물관을 샅샅이 뒤지리라. 그런데… 그리 좋은 때가 올까.


이까지 일을 싸들고 온 불쌍한 손 기자와 윤 선생을 놔두고 숙소에서 10분을 걸어 볶음밥과 우동을 맛보니 이틀의 속이 다 풀린다. 내일부터 IVLP의 본론이다. 자료를 뒤척이다 워싱턴의 밤도 잠 못 들다.
* DC(District of Columbia) 이야기
1789년에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프랑스 건축가에 요청해 네모로 연방의 중심을 잡았고 이에 메릴랜드가 2/3, 버지니아가 1/3 땅 내놓았다. 그러나 담배 수출항 알렉산드리아 때문에 못 견딘 버지니아가 도로 가져가서 이제는 네모가 아니다. 게다가 연방파와 공화파의 타협에 의해 DC 거주자는 업저버 선출권 밖에 없다. (다니다보니 시위 차량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람들은 평평한 워싱턴의 기준점이 워싱턴기념비란다. 그 오벨리스크의 밑 길이 열 배가 높이인 550 feet다. DC 안의 모든 건물은 이보다 낮다. (포토맥 너머 버지니아 빼고)
IVLP 셋째 날 2013년 3월11일 월요일>
우릴 환영한다고 주말 내내 화창하던 하늘이 월요일이 되니 다시 워싱턴 날씨로 돌아가 우중충하다. 영화배우 뺨치게 분위기 있는 기사분이 아침 드라이브를 시켜주신다. 어쨌든 고맙다. 'Graduate School USA'. 국무부의 IVLP 일곱 에이전시 가운데 한 곳에서 첫발을 뗀다. 소냐와 빌 그리고 레슬리 세 분의 도움으로 미 대사관에서부터 들었던 매뉴얼을 복습한다.
IVLP를 통해 두 나라가 분야별 쌍무관계를 증진하길 바라는 취지부터, 대사관 국무부 에이전시 주별 CIV(Councils for International Visitors) 그리고 통역사에 이르는 다섯 지원 시스템과 토론 생산성의 문제 즉, '먼저 묻고 낱낱은 뒤에 덧붙여라.' '이해관계를 끌어내 스스로 얘기하게 하라.' '준비된 바를 넘어서면 다른 곳에서 풀어라.' 등을 확인한다.
그리고 IVLP가 공식보다는 민간 레벨의 Visitors란 점과 모든 토론이 보안상의 규제와 사안의 민감성 탓에 'Off the Record'임을 다시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여행자수표를 받았다. 극진한 대접에 고마움을 드리며 큰돈이라 내내 들고 다니기 엄청 부담스러웠음도 밝힌다. 환영오찬이다. 워싱턴 밥값으로 이틀 내내 먹을 70달러 상당의 재패니즈 레스토랑 코스다. 즐거운 만남에서 드린 말씀은 이렇다.
“공식논의에 앞서 제안 드리겠다. 오늘은 동일본의 끔찍한 재앙이 있은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후쿠시마 원전복구는 먼 미래의 일이며, 아직도 30만이 피난민으로 고향을 떠나있고 무엇보다 1억2천만이 희망을 잃었다. 코리아에게 일본은 2천년의 형제이자 이웃이다. 미국에는 둘도 없는 동맹. 그들을 위해 함께 묵념을 드리자.”
“먼저 오바마 정부 2기 출범을 축하드린다. 올해는 6.25가 끝나고 한미동맹이 일어선지 60주년이다. 이때 불러주신 님들께 감사드린다. 코리아에서 60주년을 한 갑자라 하여 한 세기만치 치고 개인도 만 60세면 진갑이라 새 삶을 사는 나이다. 동맹도 마찬가지다. 두 정부는 동맹의 역사를 UpGrade 시키는 소명을 이뤄야 한다. 그를 위해 미국이 먼저 '대담한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 또한 피터팬 증후군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현안보다 동맹국의 고민을 먼저 묻고 도움을 모색하는, 어깨동무로 자리 잡아 나갈 것이다.”
“미국이 무엇을 바꿔야 할까. 두 나라는 공통의 가치를 지녔으며 여론이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최선진국이다. 통일 뒤에도 한국에게 한미동맹이 절실하게 하려면, 미국은 일관된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야 한다. 통일을 비롯한 한국 생존의 문제를 한국과 같이 기획하고 결정하고 책임진다는 믿음을 주고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야 한다. 한국의 처지를 잘 알 텐데 미국이 한국에게 감당 못할 고민에 시달리게 해서는 아니 된다."
위의 이야기는 미국 체류 내내 이어진 질문이자 대답이자 화두였다. 그러나 아직도 서로 내려다보고 쳐다보는 오랜 버릇을 서로 못 고쳐서 그런지 워싱턴에 머무르는 내내 코리아 얘기만 하다 끝났다. 다음에는 반드시 "NASA 또는 Post NASA 그리고 중동 및 차이나 네트워크와의 만남"을 이루어 우리부터 혈맹을 승격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후에는 내내 국무부 동아태 담당자들과 만났다. 대뜸 나오는 말. “일행 가운데 언론인이 둘이나 되어 신경이 쓰인다.” 알고 보니 코리아글로브를 보스턴글로브 같은 곳으로 본 모양이다. 고맙다. 국무부의 코미디에 하루가 즐거웠다.
"KORUS의 가치동맹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 바탕에서 대북정책의 최우선은 동맹의 보호이다. 비핵화와 비확산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에 대한 멍군은 다음과 같다.
"'KORUS가 더없이 좋다' 공감하나 통일 대한민국을 염두에 둔다면 밑바닥을 봐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영원한 동맹은 없다. 통일 뒤 한국은 누구와 손잡나.' 다음으로 '혈맹임에도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배신감을 어찌 잊겠나.' 서로 이 두 가지 의심은 만만찮다. 최근 두 가지 예사롭지 않은 실수를 보라."
"먼저 역사왜곡과 관련된 미 의회 이야기. 한중을 동렬에 놓았다. 역사왜곡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워싱턴과 애덤스와 제퍼슨, 미 건국의 아버지 모두가 알고 보니 차이나타운의 핏줄이었다.’ 이 말을 미국에서 흥분하지 않고 들을 수 있겠나. 다음 사례를 보자. 한국의 전임 두 대통령 취임식 때 미 국무장관께서 늘 왔으나 이번에 빠지셨다. 한국은 실리보다 예우에 민감하다. 이는 유럽도 그렇지 않은가."
"이상을 한마디로 하면, 더없이 좋은 KORUS의 숙제는 '대체 불가능한 동맹'으로의 진화다. 그 길은 디테일이다. 쌓은 점수 까먹지 않고 서로의 예우까지 챙기는, 긴밀한 관계구축이다. 그런데 평양문제를 걱정하면서 기왕 그 길을 개척한 선구자집단, 민간레벨의 지원은 어찌 다 끊어졌나."


못 다한 이야기.
“레토릭을 넘어서는 대화로의 진전은 곧 비약이며, 그 비약이 이뤄졌을 때에야 KORUS는 참으로 더없이 좋은 나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전략대화’란 말이 있다) 한국이 도울 게 뭐 있을까. 난민 문제가 떠오른다. 이 지구마을에서 북미와 호주대륙 및 영국 등 다섯 나라 권역이 가장 난민을 많이 받아들인다. 특히 미국은 시퀘스터로 곤란을 겪으면서도 난민은 이민문제와는 다른 보편의 문제로 바라보며 초당적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이는 KORUS 가치동맹을 진화시키기 위해 한국이 먼저 제안하고 나름의 몫을 할 수도 있는 영역이 아닐까.”
어스름 케네디센터에서 포토맥을 바라보며 워싱턴의 낭만을 즐겼다.
IVLP 넷째 날 2013년 3월12일 화요일>
어제 내내 우중충하더만 아침부터 기어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처음에는 미음이나 쌀죽 한 그릇만 했는데‥ 먹다보니 어느새 입에 익는다. 게다가 비싼 호텔이라 그런지 가벼운 아메리칸 스타일임에도 음식도 좋다. 시퀘스터에 주눅 든 미국민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들이 비록 어려워지더라도 나그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푸른 하늘’의 전통을 이어가길 바란다.
조찬을 즐기는 바쁜 한국 기업인들처럼 미국 기업인들도 8시부터 보잔다. 한미재계협회와 미일재계협회 두 분이 나오셨다.
"아시아와의 FTA 가운데 KORUS가 가장 크고 성공적이다. 사흘 뒤 1주년 축하연에서 만나자. 그에 비해 TPP 진행과정은 답답하다. 한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USTR은 독립기구로서 미 상무부 산하가 아니다. 한국 또한 기업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줘 불황을 타개하길 바란다."
멍군은 이렇다.
"FTA를 비롯한 협력증진에서 여론 조성에 AMCHAM 제프리 존스 선생을 비롯한 여러분이 큰 몫을 했다. LA의 스펜서 김 선생을 비롯한 KORUS의 영웅들을 두 나라 사람들이 가까이 느끼게 협회를 비롯한 민간레벨에서 힘써주시길 바란다. 아베 정부에의 아쉬움을 푸는 길은 TPP의 확대도 좋지만 KORUS의 열매를 키우는 게 더 빠르다. 한국 또한 특정국가와의 무역비중이 압도함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외교관과 달리 이 기업인들은 화통하다. 아침이 즐겁다.
조지메이슨 대학 알링턴 캠퍼스의 마크 로젤 교수님 만난다고 점심이 이르다. 명함 대신 자료집 구석에 멋지게 Sign을 휘갈겨주신 님께서 미연방 정치제도사 개론을 말씀하신다. 왕정을 피해 자유의 땅으로 온 선조들은 독립 때 행정수반조차 두지 않는다. 조지 메이슨은 권력의 집중을 우려했다. 사리사욕을 탐하는 권력의지는 인간의 본성 아닌가. 하여, 정부 힘을 되도록 줄이며 이를 헌법에 명시한, 권리장전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비롯한 많은 얘기는 줄인다. 공화와 연방을 둘러싼 깊은 고뇌의 역사와 그 현재진행형을 알뜰히 들었다. 이어지는 토론‥
건국 237년, 내셔널 몰의 "나에게 꿈이 있다." 행진 반세기. 점차 연방과 대통령의 힘이 세어짐은 시대변화 못지않게 용광로 나라의 동질성이 강해짐이다. 그러나 히스패닉을 같은 동질성으로 품어 안을 수 있나? 무슬림은? 유럽에서 열려있다 자랑하던 프랑스는 사르코지 때 히잡을 벗니 마니 홍역을 앓지 않았나.
그럼에도 프랑스나 유럽과 달리 미국에는 이것이 미국식이다 규정이 없다. 지구촌에서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앞으로도 융성해야 할 존재가치이다. 코리아는 전혀 다르다. 옛 삼한도 아니고, 지구마을에서 가장 동질성이 강하고 좁으며 대가 센 이들이 사는 나라에서 미국식을 부러워함은 적절치 않다. 외려 이웃나라들을 코리아만큼 자유의 나라로 이끌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미국은 왼손으로 유럽, 오른손으로 캐나다에서 호주까지 영연방과 함께 손잡고 나아감을 명심해라.


대외관계위원회의 스콧 스나이더 박사를 만났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 오간다. 문 앞에서 서로 들어가라 등 떠미는 동맹의 모습도 보인다. 맞는 말이다. 오바마 2기 정부도 아직 자리 잡는 중이고 한국정부는 더하다. 차이나의 양회가 끝나고 영도소조회의에서 입장이 나오려면 꽤 남았다. 결국 박대통령의 방미 즈음해 동맹과 한중의 답이 나올 것이다. 그를 앞두고 안에서 무엇이 꼬이는지 빈 수레마냥 바깥으로 큰소리를 일삼는 평양정권이 외려 유관국들의 큰 틀에서의 진전된 협력의 가능성을 높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무사태평이다. 지난 20년, 한국이 단 한번이라도 레드라인을 넘어 판을 흔든 적이 있던가. 오히려 울분이 터질 정도로 동맹의 뜻을 따르고 북경과도 협력하지 않았던가. 설마하니 앞뒤 가리지 않고 워싱턴에서 한 세대도 더 지난 엇박자의 트라우마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그때도 한국은 억울했다)
나아가, 머리는 물론 뱃속에도 핵을 품고 사는 한국이 궁지에 몰리지 않게 원자력협정의 족쇄를 풀도록 미국이 서둘러 성의를 보여야 할 때다. 한국에서 핵무장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음을 그저 평양의 도발에 관한 과잉반응으로 치부하면 큰 실책이 될 것이다. 반미가 아닌 친미세력이 마음으로부터 좌절감을 겪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말을 하는가. 참으로 무례한 로카쇼무라의 모욕까지 겪고 있는 혈맹에게, 번호표 뽑고 그들과 얘기 다 끝난 한참 뒤에야 보자면서, 하염없이 목을 매고 기다리게 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겠는가.

날이 제법 쌀쌀하다. 포토맥 강가 따라 워싱턴 여기저기로 바람 길이 뚫려있다. 지금 미니애폴리스는 밤낮으로 영점 아래라는데 하늘이 우리를 아끼사 미리 땅을 서늘히 식히는 듯하다. 조지타운을 거닐다 칼바람에 쫓겨 포토맥을 포기하고 그 너머 버지니아로 간다. 윤 선생의 벗, 한겨레 기자가 기다린다. 들머리부터 강남회집으로 도배된 한인마을 애난데일(‘애낳는데이’로 들린다)의 아난골(‘아낳고’로 들린다)에서 한국 떠나온 지 몇 달은 된 양 진하게 회포를 푼다. 버지니아의 밤이 이리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다.
IVLP 다섯째 날 2013년 3월13일 수요일>
미국의 소리 방송에 갔다. 존경하옵는 달라이 라마와 웨이징성(魏京生)의 글귀를 보니 반갑고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들의 말처럼 이는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다. 앞으로도 VOA가 큰 몫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럼 코리아는? 정부가 못할 일은 민간이 해야 하는데 모택동과 제갈량에 눈먼 헛똑똑이 대한민국의 좌파와 우파의 목소리 큰 양반들을 어찌 하랴. 이동혁 국장과 동료 분들을 비롯한 교포들이 꽤 많다. 특파원으로 왔다 주저앉은 사람도 적잖다고 한다. 시간이 모자라 살갑게 맞아주는 님들과 함께 못하여 아쉬움이 크다.


기대를 품고 KEI(Korea Economic Institute of America)로 갔다. KIEP와 Korea Foundation이 받침 하는 곳답게 나눌 이야기가 많다. 동맹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졌음을 말한다. 기왕 한다면 우리가 먼저 제안하고 이끔도 좋으리라. 그러나 '동맹의 미래'란 엄청 큰 꼭지를 건드리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먹을 게 딱히 없다. 이 글에서 무얼 말하랴. 다만 서로 깊은 느낌을 주지 못한 탓이라 매듭지을 수밖에.
SAIS(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의 재구 박사를 만나 한미관계 및 권역안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차이나가 대세 아닌가. 여기도 차이나 연구자에 비하면 코리아는 1/3이다. 그러나 일본 연구자는 코리아의 1/5이란다. 격세지감이다.
재구 박사가 이끄는 'U.S.-Korea Institute'는 KIEP의 후원을 2/3 받지만 나머진 스스로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력 못잖게 중요한 게 인맥과 로비다. 용광로답게 미국의 시민사회에서 이민사회의 덩치는 크다. 잘 알려진 유대인은 물론 인디아 이민사회는 어떤가. 밀리네어가 아닌 빌리네어는 되어야 수퍼리치고 그들이 서넛은 되어야 이민사회가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쓸 수 있다. 허나 코메리칸은 그저 조막조막한 젊은 조직이 많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혈맹의 인연답지 않게 영향력이 적다. 정부 힘이 가장 센 한국에서 한미동맹이 당연히 1순위지만 의회 힘이 훨씬 센 워싱턴에서 그저 1/n일 뿐이다. 예전에 그를 모르고 대사관을 앞세워 될 일조차 그르치기도 했다.
미 대선에서 보듯이 결론은 펀딩 능력이다. 북한인권문제만 하더라도 프리덤 하우스는 2백만 달러로 판을 끌어나갔다. 그리 보면 미국처럼 대한민국의 통일을 바라는 나라도 없다. 실익이 없음에도 핵문제만으로 스무 해를 시달렸다. 그러다보니 이제 민주-공화당 모두 평양정권에 관한 이견이 없다. 조건 없는 대화는 끝났다. 최근 평양의 도발은, 중동에서 벗어나고 싶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빌미를 만들어주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다.


밖에서 외신으로 미국 얘기를 듣다보면 저런 데서 어찌 사나 할 수도 있다. 허나 미국이 둘로 쪼개지다시피 한 남북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보라. 그 짧은 동안에 미국은 놀랍도록 다이내믹했고 시스템의 균형을 이뤄냈다. 그 열쇠는 애국심이다. 곳곳의 메모리얼을 보라. 시골엄마가 인터뷰에서 "우리 열아홉 아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쳤다." 말하는 나라다. 코리아가 미국이 되어, 듣도 보도 못한 땅 코리아와 베트남과 걸프 만과 아프간에, 잊을 만하면 몇 만씩 젊은 목숨을 바쳐야 한다면, 그리 할 수 있겠나.
어디가 흔들려도 다른 곳은 모를 정도로 땅이 넓고 시장이 커서 그렇다 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비슷한 나라는 없다. 코리아가 이리 되려면 길은 하나뿐이다. 애족보다 더 큰 애국심으로 마음가짐을 바꿔먹어야 한다. 왜, 이렇게 70억 인류가 다 좋아하는 대한민국을 놔두고 굳이 8천만 밖에 아니 되는 한민족에 목숨을 걸려고 하는가. (그래서 코리아글로브는 한겨레가 아닌 옛 삼한의 되살림을 이야기한다)
재구 박사에게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워싱턴 시스템에 관한 깊은 고찰 그리고 애국심이란 선물을 받고 또 다른 메모리얼, 미국의 신화가 아로새겨진 의사당으로 간다. 2백여 년을 2천년 Post Rome처럼 느끼게 하는 가슴 뭉클한 신화에서 미국의 주몽은 워싱턴이다. 트라이앵글의 1은 독립전쟁에서 이기고도 사령관직을 내놓았다, 2는 네 해 뒤 대통령에 올라 연임하고 또 뒤돌아보지 않고 물러났다, 3은 나라의 아버지라서 의사당 밑 묻겠다 하여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 미국의 별이 되었다 이야기로 매듭짓는다.


로텐더 홀의 천장벽화에 워싱턴의 신성이 새겨있고 그 아래 나라를 빛낸 이들의 국장이 치러지니 여기야말로 국사당이다. 반만년 역사공동체임에도 딱 건국 65년 정도의 느낌밖에 못 주는 우리 국회의사당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새로 지은 신관에 쾌적함 말고 가슴 저미는 무슨 사연이 아로새겨져 있나. 이어지는 '속삭이는 방'의 여신상은 자유의 여신상보다 이르단다. 이 또한 신화의 역사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건국 과정의 연출이다. 방에는 주의 수에 맞게 쉰이나 되는 위인들이 둘러서서 지켜본다. 예서 대선 뒤 오바마와 롬니가 오찬도 하고 한때 시민들 누구나 들르게 농산물 바자회도 했단다.
우리로 치면, 백두산 국사당과 마니산 참성단과 태백산 천제단을 서울 도심에 숨 막히도록 신비로운 권위로 세우고, 바로 그 곳에서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옛 어른들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매듭을 짓기도 하고 풀게도 한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새로운 서울에 워싱턴 못잖은 반만년의 메모리얼을 세우리라 옛 어른들께 맹세하옵니다. 굽어 살피소서.
IVLP 여섯째 날 2013년 3월14일 목요일>
'동북아의 안전보장'이란 세부 주제로 맨스필드 재단의 고든 플레이크 원장을 만난다. 15년째 원장을 한다는 고든 박사는 듣던 대로 유쾌-상쾌-호쾌하다. 2/3는 일본, 나머지는 한국, 요새는 차이나까지 투자한다는 그에게 과녁은 현안이 아니라 관계였다. 하여 미 행정부에 한국 전문가가 제대로 없음을 걱정하며 그를 키우기 위한 계획을 쭉 펼치신다.

김정은이 안쓰럽다. 그 할비나 애비처럼 무한권력을 누리기는커녕 하기 싫어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쇼 비즈니스의 MC가 아닌가. 백두산 화산 폭발의 걱정이 땅만 아니라 평양정권 또한 마찬가지다. 김일성 조선의 ‘백두줄기’를 어찌 할까. 스무 해 동안은 늘 핵이니 미사일이니 식량이니 인권이니 하며 궁극의 목적으로 통일을 내걸었으나 이제 통일은 현안이자 유일한 길이다. 통일되지 않고서는 위 네 가지 어느 것도 해결불가다.
싫어도 붕괴의 때는 온다. '요란한 빈 수레'의 저 경황없는 공갈을 보라. 통일비용 협박도 이젠 접을 때가 되었다. 증권시장의 기저효과처럼 남북의 격차가 워낙 벌어져 외려 옛날보다 훨씬 적게 들게 되었다. 전제권력은 정보와 사람과 물자를 갖고 노는데 셋 다 약해지고 도리어 권력의 원천과 권위와 영향력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웃나라들이 겁먹을 까닭이 없다. 극단의 짓거리를 할 전제군주가 사라졌기에 가케무샤를 앞세운 권력의 동맹은 제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합리의 거래를 함이 역사의 상례다. 선동에 얽매임은 달은 보쟎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이다.
통일과 동맹의 정의는 벌써 내려졌다. 대한민국이 이끄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곧 한미동맹의 시현이다. 그러나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한다. 워싱턴에 동북아정책은 있지만 대북정책은 당연히 없기에 우리가 그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먼저 한미가 늘 같은 입장과 레토릭과 행동을 하게 할 것이며, 다음으로 대국인 차이나와 러시아의 체면을 살려줄 것이며, 끝으로 한일을 비롯한 우방의 틈을 메워야 한다. 인기 없는 이대통령의 외교를 한미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서랍에 넣어둔 KORUS를 불붙인 이는 그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TPP도 탄력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뿐인가. G20, 핵안보 정상회의 그리고 GCF까지 이대통령의 글로벌 리더십을 이어받지 못하면 어떤 대통령도 통일 대한민국의 길을 활짝 열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화두. 코리아가 이 말을 할 자신감을 어서 갖출 수 있겠나. "강하고 활달한 일본이 한국에도 절실하다."


다음으로 엄청나게 진지한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를 만난다. 두 해만에 뵈니 억수로 반갑다. 김정일이 중풍으로 쓰러지고 세 해나 살았던 탓에 그나마 권력승계가 순조로웠다. 북경의 양회가 끝난 뒤 영도소조회의가 열린다고 달라지겠나. 깡패아들 데리고 사는 애비는 경찰의 처벌을 바라지 않을뿐더러 외려 범죄은닉을 돕기까지 한다. 그동안 퍼주는 에미 역은 한국이, 애비는 차이나가, 경찰은 미국이 하지 않았나. 오바마 1기는 평양에게 마지막 기회였다. 끝내 워싱턴이 받은 쇼크는 심각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분명한 점은 미국은 단 한 번도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다.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아울러 50개 주로 새 출발한 1959년부터, 아니 1941년 진주만 폭격 때부터 미국은 유라시아 국가가 되었다. 브루스 클링너는 이처럼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동맹이 서로의 주춧돌이 되기를 바랐다. 님께서 혈맹의 앞길에서 큰 몫을 하기를 바란다. 의사당 아카이브와 의회조사국을 거쳐 오후 내내 의회를 다시 주마간산하다.
IVLP 일곱째 날 2013년 3월15일 금요일>
가슴 뭉클한 날이다. 그새 정든 워싱턴의 마지막 밤을 맞을 터라 그렇고 북한의 인류를 살리려 몸 던지는 인권의 보살들을 만날 터라 저렇다.
먼저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 www.NCNK.org 카린 리 선생을 만났다. (감동만 하다가 사진도 못 찍었다 ㅜㅜ) 미국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다. 코리아글로브 홍상영 이사처럼 얼추 열여덟 해를 들락거렸는데 그 허실을 어찌 모르겠나. 그러나 늘 말을 삼간다. 고작 평양이 두려워서 그러겠나. 자신들이 발목 묶이면 곧 나락으로 떨어질 인류를 위해 모든 걸 삼킨다. 그 깊은 사랑 앞에서 감히 누가 ‘나이브’ 말을 입 밖에 내겠나.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당연히 오프더레코드라 그분 빼고 느낌만 말하면 이렇다. (이 글 모두가 똑같다. 시비 말길)
모니터링이 불가하니 종교계가 아니면 대다수 NGO가 식량지원을 접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래도 어찌 무슨 궤변으로 평양정권을 두호하겠는가. 평양에서 싸이 만나게 해 달라 조르는 로드먼의 거듭 된 쇼를 보는 마음 참담하다. 가장 중요한 역설은 평양정권의 권력이 약해지는 과도기에 2500만의 인도주의 위기는 극에 달한다는 점이다. 밥도 못 먹는, 노예보다 못한 이들에게 어느 누가 외람되이 국가흥망 필부유책을 입에 담으랴.
북경의 밥줄 기름줄 연탄 줄이 끊기기 전에는 목이 부러져도 무너지지 않고, 외화벌이 쪼그라들기 전에는 흔들리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 밥을 먹을 줄 알 수 없고 어느 세월에야 자유를 꿈이라도 꿀 수 있는지 가늠조차 불가능한 칠흑의 새벽, 1944년 같이 영상 3도 경성의 아침에도 얼어 죽게 되는 절망이 오늘 북한 인도주의 위기의 핵심이다. 이미 2500만은 스스로 먹고산 지 오래다. 지난해 황해도처럼 아예 묻어놓은 것까지 다 캐가는 약탈이 아니라면 죽지는 않는다. 이제 그들에게 밥은 옥수수가 아니라 바깥세상의 실시간 소식이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이가 절대다수라는 기쁨의 이야기다.
한숨이 절로 터지지만, "희망이 있다기보다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자." 말씀을 감히 드리며 매듭을 짓는다. 많은 이가 박대통령에게 기대가 크다. 제대로 가닥을 잡아야지 워싱턴은 물론 북경까지 몫을 하게 될 것이다. 박대통령이 後光 김대중 대통령 다음으로 다시금 드라마틱 스토리를 펼치길 두 손 모아 빈다.
매사추세츠 대사관 길을 달리다. 바이든 부통령 관저부터 웬만한 대사관저가 길 따라 늘어선 이 거리는 아름다운 길이다. 한국 대사관과 문화원과 영사관이 띄엄띄엄 뵌다. 길이 이어지니 아메리칸 대학이 나올 수밖에. 워싱턴 인턴십을 많이 배출하는 이 학교는 사관학교 같다. 하여 우남 이승만 대통령이 독립되기 전인 1943년 4월8일 교정에 벚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그 유서 깊은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저승에선 우남 몽양 백범 세 분이 때마다 만나 막걸리 한 사발 하실 텐데 왜 후손들은 아직도 앙앙불락인가 괴로운 상념에 젖어든다.


이지영 교수. 참 참한 분이다. (우리말 모르는 까막눈들 오해 말라. ‘멋있다’보다 더 높은 말이다) 빅터차와 데이빗강을 사부로 모신 젊은 한인학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이분도 당당하니 그 일익을 담당하겠다.


미 상공회의소로 간다. 오늘이 KORUS 한미 FTA 1주년이다. 웬디 커틀러가 축사를 한다. "난 KORUS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살 난 아이의 어머니다. 이 날을 기려 아베신조 총리도 TPP를 선언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아베총리여. 만만하니 한국 붙잡고 자존심 높일 허망한 생각일랑 접고 부디 일본을 갈라파고스에서 벗어나게 하시길 부탁드리오. 3대에 걸친 악연을, 당신께서 두 나라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청사의 기념비를 세우며 매듭지어야 하지 않겠소. 열도에서 당신이 아니면 뉘라서 하리이까.” 부디 아베총리가 역사에 남길 빈다.
숙소 앞 공원, Faragut Square 보니 진풍경이다. 날이 쌀쌀함에도 밥차가 줄지어 서있고 사람들은 그저 공원에 퍼질러 앉아 도시락을 까고 있다. 백악관이 코앞이라 지난해는 'Occupy Wallstreet'도 예서 벌어진 모양이다. 하기야 나도 내 돈으로 왔다면 (그럴 재간도 없다만) 지금 저 어딘가 풀밭에 앉아 점심을 때우고 있으리라.
HRNK 북한인권위원회 그렉 상임이사를 만났다. (익히 알려진 수잔 숄티 여사와 먼저 만난 고든 플레이크 두 분이 부대표로 있다) 열세 해에 관한 노력을 보이듯 '성분'을 비롯한 묵직한 책 다섯 권을 받았다. 북한 인권에 관한 정의는 정태춘이 그 노래에서 일찍이 내렸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 이상 가두지 마라. 더 이상 빼앗지 마라." 좌파는 이제 되살아나 인권의 수호자로 서야 한다. 그래야 우파도 대한민국도 산다.

지난 20년. 핵과 미사일을 두고 씨름했다. 그를 위해 햇볕을 쬐여주고 도왔다. 그러나 이제는 굶기는 정도를 넘어서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두고 죽이는 앞에서 누구를 위해 자위를 두둔하겠나. 반면 촉촉이 적시자는 달빛은 인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반만년 나라와 겨레는 김일성조선과 김일성민족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인권이란 말도 거창하다. 단 한마디 "살리자" 말이 옳다. 9만여 북송교포에 이어 또다시 그보다 더 큰 재앙을 못 막은 한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문명세계도 함께 야만이 되었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촌의 모델로 떠올랐다. 반면 이북은 유일한 생지옥이자 지구에 뚫린 블랙홀이 되었다. 차이나는 무엇을 골라야 하나? 더 이상 독일 모델이 어떻고 통일비용이 저떻고 한가한 이야기는 접고 공존공영의 동아시아를 우리 손으로 여는 시간표를 내놓을, 숙제 마감의 때가 왔다.


그렉 선생과 뜨겁게 만나고 워싱턴의 마지막 날을 쏘다닌다. 대통령을 빼고 존경받는 첫 손가락의 벤자민 프랭클린 동상이 우뚝 선 옛 DC의 랜드마크 우체국 건물부터 시작해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까지 마음이 바쁘다. 박물관에서 눈 호강 한다. 역대 대통령을 기린 온갖 작품부터 로자 파크스와 레이첼 카슨 그리고 앤디 워홀이 그린 마릴린 먼로와 빌 게이츠까지. 아뿔사. 모자라는 영어 때문에 백남준 기념전 현수막을 보고도 여름에 하는 줄 알고 문 닫을 때 간신히 맛만 보고 나왔다. 아쉬움을 고명으로 얹어 워싱턴의 마지막 회포를, 어제에 이어 이틀째 한식당 ‘만두’에서 풀다.


IVLP 여덟째 날 2013년 3월16일 토요일>
그새 담뿍 정이 든 워싱턴을 뒤로 하고 도널드레이건 워싱턴공항에 간다. 애 많이 쓴 기사 계림과 헤어지고 들어서니 나라 안만 다니는 공항이란다. 고풍스런 공항 건물 안에 티벳 탱화처럼 큼지막한 성조기가 걸린 게 눈에 깊이 남는다. 대한민국의 태극기 사랑 탓하기 앞서 돌아가면 우리 집 부서진 태극기 봉부터 바꿔야 쓰겄다.


우리 119가 여기선 911인데 하필 제2의 진주만 사건이 911에 터져버렸다. 여기 분들은 그 기막힌 하나 됨을 어찌 보나 자못 궁금하다. 포토맥 강 따라 백악관이 코앞이다. 펜타곤까지 들이박힌 뒤라 레이건 공항 옮기자 말이 무척 많았는데 끝내 의회의 묵묵부답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단다. 왜냐. 옮기면 그 님들이 너무 번거로우니까‥ 미국이 다시 융성하려면 무엇이 반드시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 님들이 어쨌든 우리는 미국 서민들처럼 테러 검색에 기꺼이, 철저히 응했다. 검색하면서 바깥옷은 물론 양말까지 홀라당 벗었다. 그리고 따로 '사람 검색대'에 올라서서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춤을 춘다. 미국이 참으로 고생이 많다. 알카에다부터 무슬림 근본주의 정치세력들이 오로지 미국만 물고 늘어지는 통에 다른 나라들은 모두 두 발 뻗고 자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힘들제 도와줄까 얘기보다 그 말 나올까 봐 "너거가 까탈스러우니 아그들 뭐라 하는 게 아니냐." 선수를 치는데 듣는 미국은 복장이 터질 게다. 한미동맹이 깊어지려면 무슨 얘기를 나눠야하나, 그 답일 것이다. 워싱턴에서 평양정권 얘기만 엄청 해서 아쉬움이 컸다. 중동과 NASA부터 온갖 미국의 고민을 들어보자 했는데, 누굴 탓하기 앞서, 스스로 무식하고 생각이 짧아 딱딱 짚어 바람을 말하지 못해 그리 된 것이리라. 앞으로 북경 분들을 만날 때 다시 그러지 않으리라.
드디어 얼음의 도시 미니애폴리스다. Radisson 호텔에 짐을 부린다. 억수로 부담스럽다. 시퀘스터 애먹는 나라에서 손님 접대는 고맙지만 너무 고급스럽다. 두 침대를 밤새 오가며 쓸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날 만나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부터 지금도 새빠지는 마누라까지, 이 호사스럽고 우뚝허니 외로운 이역만리 호텔 방에서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도 조금 철이 들었나 보다.


윤 선생한테 한마디 했다. 나라면 이리 하지 않겠노라고. 세상에 돈 많이 쓰고 그럴싸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나. 그보다‥ 만약 서울에 불렀다‥ 월화수목금 가운데 수요일만 빼고 월화나 목금은 악 소리 나도록 돌린다. 역사든 문화든 과학이든 비즈니스든‥ 다만 제나라 돌아갔을 때 서울의 그 기획 그대로 베끼고픈 마음이 들게‥ 그렇다고 밤을 놔둘 소냐. 그 나라 온갖 사람들과 인맥을 만들어줘야 한다. 마지막 셋째는 선물을 안겨야 한다. 싸면서도 그 만남을 잊지 못할‥ 그리 보면 IVLP가 오래 되다보니 어느덧 억수록 비싼 패키지여행이 되지 않았나 싶어 혈맹인 미국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아무개도 떠오른다. 예서 그리 오래 하원이나 상원에 계셨던 전관을 찾으려면 왜 없겠나. 허나 대사관 분들이 저처럼 가방끈 짧거나 영어가 딸리지도 않을 텐데, 만주가 어딘지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어떤지 금의 나라 신라가 어느 정도인지 말귀조차도 모르시는 분을 모셔 놨다. 이 경우는 대한민국의 혈세를 허투루 쓰는 거시기라 할 만하다.
늦은 점심을 든다. 여긴 서울과 달라 주말이라 죄다 문을 닫는다. 그래도 땅 밑 장터 구석에 뭘 파는 데가 있어 식어빠진 볶음밥과 불어터진 가락을 시킨다. 3~4달러. 싼 맛에 고맙게 묵는다. 모두들 선물 장만 걱정이라 경전철을 타고 'Mall of America'로 간다. 30분 경전철이 상큼하다. 그러제. 이리 땅 넓어 지하철 할 까닭 없는 데서 놔야 적자를 아니 보지, 한국에서 경전철 장난하다 날리고 또 날마다 뿌리는 세금이 얼마인가. 학살범 다음으로 중죄인이 세금 낭비범인데 나라가 반듯해지려면 그 도둑들을 전근대 시대처럼 梟首는 몰라도 圍籬安置라도 해야 기강이 바로 설 것이다.


장터가 엄청 넓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보는 듯하다. 땅 크기로 견주면 서울이 더 낫다. 어쨌든 시어스나 마샬 같은 데를 누비며 선물 고르다보니 어느덧 밤이 이슥하다. 멕시칸 음식으로 때운 저녁 자리, 내일이 성 패트릭 축일이라고 손 기자가 엄지 지문을 시퍼렇게 찍는다. 꽃샘추위에 시달리는 동포들이여.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IVLP 아홉째 날 2013년 3월17일 일요일>
일요일. 모처럼 늦잠 자고 나와 보니 허허벌판이다. 틈만 나면 산꼭대기 올라 호연지기 노래하던 코리아가 그립다. 여기도 그래서 마천루를 세웠나 보다. 바지런한 서 의원과 도심을 지르며 간신히 카페를 찾아 아침을 때운다. 4.3달러로 달걀 치즈 고기떡 넣은 조그만 버거와 커피 국을 든다. 호텔로 돌아와 새벽에 남긴 고추참치와 쇠주 한잔을 마시며 느글 속을 달랜다. 그조차도 못 드신 님들을 위해 시 한 수.
추운 거리를
하이에나처럼 떠돌다
끝내 찾았어라
그 나물에 그 밥이어라
선재 선재라
영락주막의 곡차와 안주
축내지 말자 부러 던진
보살행 어찌 잊으리
그 단심에 절어
샌드위치 옥반가효
커피국 금존미주
기다릴지니
금발미인이
이몽룡 꿈에 보듯
오빠 하고 나타날지니
도심재개발로 유명한 도시란 말을 알겠다. 얼어 죽을까 봐 그런지 건물을 죄다 이어 곳곳마다 하늘 길 Sky Way가 이어져있다. 그 구름다리만 돌아다니면 추위도 모르고 살겠다. 정거장마다 다이아몬드 박스가 만들어져 추위를 피하게 한다. 야심가들이라면 인공도시를 만들 꿈을 꿀 수도 있겠다. 파운데이션이 바깥 행성에만 있겠나.
미네소타 조각공원과 워커미술관에 가다. '체리&숟가락' 작품이 떡하니 조각공원을 떠받친다. 누구 입에 넣어줄까. 이민자들의 도시가 부디 미국은 물론 지구마을의 희망이 되길 빈다. 온실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유리잉어와 얼추 만난 뒤 워커미술관의 현대미술로 빠져든다.


생각도 않았는데 IVLP라 그냥 들어오란다. 정부 산하에 있는 공공시설도 아닌데 이들의 애국심은 버릇이 된가 보다. (티 잡지 마라. 왜 버릇은 낮은 말이고 습관이란 한자어는 높임말인가) 배울 점이다. 미술관 시설이 훌륭하고 현대미술의 제반을 망라하고 있다. 비쥬얼에서 엑조틱까지, 해체에서 새로운 언어까지 오감이 호강한다.


특히 마지막 'Midnight Party'에서 본 클레이메이션은 충격이었다. 처녀지 아메리카를 어찌 유린했나 보여주는 듯한데 비위 강하기로 소문난 나조차 벅찰 정도로 잔혹했다. 뭘 모르고 들어온 미국 아이에게 'Get Out' 한마디 해 내쫓고 직원에게 잔소리 했다. (알아 들을라나)
미니애폴리스 문화순례다. 머리털 나고 처음 농구장에 갔다. 홈팀 Wolves와 뉴올리언스의 Hornets 팀의 격돌이다. 한판의 쇼다. 지금 밖에선 연중 한 번의 아일랜드 성패트릭 행진이 한창이라 안에도 초록 옷이 대세다. 치어리더가 뒤흔들고 재담꾼이 재치를 쏟으며 비보이와 남사당패가 재주를 부린다. 돌아다니는 마스코트가 사진모델이 되고 관중석을 누비는 이동농구대가 슛과 공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이벤트에, 현란한 조명부터 함성과 야유 그리고 톡톡 튀는 음악까지, 마실 운동회다.



결과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다섯 번의 뒤척거림 끝에, 늑대 울음소리 낭자하게 울려 퍼지며 홈팀이 2점차로 화끈하니 팬서비스를 하였다. 이 재미로 사람들이 오는구먼. 큰물 건너와 맛본 색다름이다.
늦은 저녁을 겸해 뒤풀이를 한다. 이리저리 자리는 많았지만 다 모인 자리는 지난 월화 워싱턴 쿼터호텔과 아난골 뒤로 처음이다. 서로 죽이 잘 맞고 궁합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돌아가면 반드시 이 행정관과 김 박사님과 어울리자 거듭 뜻을 모은다.
새벽에 (서울은 대낮) 이사장님을 비롯한 길동무 단골들 목소리를 들었다. 청진동 해장국처럼 제대로 우려 난 마음에 절로 눈이 밝아진다. 이왕 온 김에 미국 3억 인류의 고뇌를 깊이 읽자 다시 다짐하다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IVLP 열째 날 2013년 3월18일 월요일>
헬스를 하려 마음먹었건만 자료 읽다 내쳐 잤다. 瑞雪이 내린다. 하늘의 보살핌에 고개 숙여 고마움을 드린다. 이곳에 참전노병이 계신다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떠오르는 아침이다.
미네소타 주가 인구 5백만이고 트윈시티 350만이라는데 눈을 헤치며 그 강남으로 간다. 미국의 한강인 미시시피 강의 갈래인 미네소타 강 아래, 미니애폴리스의 자매도시 세인트폴이다. 첫 걸음은 국토안보부 산하 미네소타 주 재난관리센터 HSEM이다. (Minnesota Homeland Security and Emergency Management Office) "환영합니다." 한글현수막과 함께 조 켈리 부국장(예비역 준장)이 환대하신다.


주 공공안전부에만 2200여 사람이 일한다. 연방예산을 받는 HSEM은 조정자다. 예비, 방지, 방제, 복구의 순환을 이끌어야 한다. 'All Disasters are Local.' 미국사회에서 존경받는 군경과 소방대, 간호사, 엔지니어 출신들로 이뤄진 70여 사람들이 한해 내내 바쁘다. 서류작업에 엄청 시달리는가 보다. 'grants, grants more grants.' 마음이 짠하다. 행정직이 그 몫이고 유사시에는 주 방위군의 도움을 받는다. 물론 아이티 등지 국제재난에는 국토안보부 요청과 지휘에 따른다.
정보공유를 위한 Fusion Center를 주마다 운영하는데 미 전역에 70여 곳이 있다 한다. 다 좋은데 미네소타 북서 남동에 버틴 한 세대에 이른 원전들의 고준위 폐기물을 어찌 할 거냐 물으니 아직 대책 없단다. 아무리 땅이 넓어도 숨 막히는 일, 땅 좁은 코리아는 어쩌나.
다음으로 공립 센트럴하이스쿨에 가서 10학년 인문지리를 참관하다. 1849년에 미네소타 주가 편입되고 1866년에 학교를 세웠으니 나름 유구하다. 이민자들의 도시답게 35% 백인, 29% 흑인, 아시안 30%(대부분 몽족), 인디언 0.5%, 히스패닉 6% 이렇게 학생들이 참으로 골고루다. 집에서 쓰는 말도 39개 나랏말이라서 교사들도 라틴 러시아 만다린(Mandarin) 프렌치 도이치 등 여섯 권역의 말을 쓴단다. (하나가 빠졌다고? 그건 영어다)


학생들 58%가 연방기준 빈곤층이라 점심은 거저이고 올해부터 아침도 모두에게 거저다. 급식의 경우 각자 번호를 찍기에 프라이버시가 완벽히 보장된다. 한국에서도 급식(무상 또는 세금) 논란에서 방법을 얼마든 찾을 수 있었는데 장외에 마냥 끌려 다녔던 정치권이 한심할 따름이다. 종합고로서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어디든 이수하면 온데 통한다)가 있고 ‘college in school’이라고 대학 겸임교수도 와서 가르친다. AP란 대학 선이수과정도 있다. 한마디로 수월성 교육을 확실히 하는 실력 있는 학교다. 그래서 권역별 학생모집에도 40%는 스쿨버스가 못가는 곳에서 유학 온단다.


교장 선생님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교장을 하고 교육청 고위직에 있었는데 다시 이리 와 스무 해를 봉직하고 계신다. 하여 순환근무도 건너뛴 셈이다. 어디든 지도자 한 사람에 따라 무리가 죽고 사는 법이다. 그 분과 몽족 그림을 뒷배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미닛맨(독립전쟁의 민병, Minutes Man) 잔까지 선물 받았다. 나오다보니 여기서도 왕따 문제로 고심하는가 보다. “아그들아. 제발 사이좋게 지내거라~ 으이! 커서 동창회에서 어찌 만나려 그러냐.” 한마디 해주고 나올 걸…
한식당에 갔다. 벽에 붙은 마흔아홉 차림표가 딱 서울 분식집이다. 다 좋은디 설탕 좀 고만 뿌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짬뽕 먹고 이리 개운한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월요일이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미네소타 대학의 와이즈만 미술관을 곁눈질만 한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 작품인데 딱 깡통이다. 태권V의 힘줄과 식스팩을 보는 듯하다.




눈보라를 뚫고 저녁 가정방문 Home Hospitality 초대를 받았다. 세인트폴에서 한 세대 넘게 살아온 앤과 존의 집이다. 장가 간 아들 앤드루가 모는 차를 타고가면서 만다린과 칸토니즈부터 부산 얘기까지 콩글리쉬로 잔뜩 떠든다. 차이나에서 역사 공부를 했나 보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는 중산층 가정의 전형이다. 따뜻하고 예의 바르면서도 알뜰허니 정을 낸다. 깔끔한 식전요리와 와인을 들며 아르헨티나 출장 간 부산 며느리 얘기부터 한국 새 대통령과 한미관계 얘기까지 넓고 다채롭다. 알고 보니 사돈이 서병수 의원의 벗이란다. 끝내 못 온 이상민 보좌관이 안타깝다. 곧 이어진 만찬은 참으로 유쾌하다. 주인장의 손맛이 느껴지는 스테이크와 여러 음식들에 마음까지 배부르다. 웃고 떠들다 보드카로 불콰해지고 밤이 이슥해서야 아쉽게 돌아왔다.
IVLP 열한 날 2013년 3월19일 화요일>
아침에 미네소타 대학 로스쿨인 먼데일홀로 간다. 미얀마 출장 탓에 이북 전문가인 잭 렌들러를 못 만나고 데이비드 교수를 뵈었다. 1988년에 이미 북한 인권에 관한 책을 공저한, 전문가를 넘는 선구자이자 원로이시다. 러시아 쿠바 남아공을 비롯해 곳곳에도 이미 마음을 쏟았다.



인권의 되살림을 위한 애씀은 나름의 열매를 거두었으나 아직 아시아에서는 봄소식이 들려오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신다. 차이나 인권에 관한 런던의 국제사면위와 뉴욕과 홍콩의 휴먼라이트워치 등의 노력을 눈여겨보라 하시고 화답으로 9만여 명과 그 자식들까지 통째로 오길남 박사의 가족이 되었던 북송 재일교포들의 짓밟힌 인권의 역사를 살펴보시라 청한다. (이는 한일이 공범이다)
아름다운 만남이다. 미국의 이 연배가 68세대의 젖줄이었고 피비린내 나는 1971년의 쇼크를 거쳐 흑인민권운동과 동지애를 나누고 오늘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공화당은 이들처럼 젊은 세대에게 잊지 못할 어떤 추억을 줄 것인가 궁금하다.
곧이어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의 존 래쉬 편집자 겸 칼럼니스트를 만난다. 미국의 언론인들이 두 나라 사이의 튼튼한 다리가 되길 빌며 많은 말씀을 드렸다. 쓰신 글처럼 'State of the media: News gap widens' 맞다. 그런데 나라 밖도 그리 될까 봐 걱정이다. 오지랖도 넓고 서울에 특파원이 NYT WP CNN AP 정도라, 미국이 혈맹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많지 않겠는가. 그를 인정하고 한국에 넓은 재량권을 줘야 동맹도 더 발전하고 차이나도 안심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워싱턴 바라는 대로 다 하는 나라다 여겨지면 그 나라의 통일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겠나.

젊은 세대들은 걱정할 까닭이 전혀 없다. 윗세대들과 달리 눈치를 보쟎는다. 그들에겐 지난 스무 해 평양정권은 전혀 납득불가하고 부끄러운 괴물(Monster)일 뿐이다. 그들을 징그러워하는 것을 통일을 꺼려함이라 단정함은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 때 되면 붉은악마들처럼 그 역사의 열망이 솟구쳐오를 것이다. 한국의 지난 대선처럼 한낱 여론조사로 그 심연을 어찌 읽어내겠는가.
'Pivot to Asia' 또한 한국에는 마찬가지다. 전혀 느낌이 없고 고작 레토릭으로 여겨지고 있다. 왜냐. 어찌 한국에 나카소네와 레이건 때만큼의 재량권을 주지 않는가. 그리 믿지 못하면서 어찌 '더 없이 좋을 수가 없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는가. 중동 핑계는 거시기하다. 그때도 이란은 얼마나 골치 아팠나. 그럼에도 많은 미국의 미디어가 한국은 물론 수많은 우방과의 외교를 넉넉히 또 깊이 다루지 않는다. 이는 미국의 영향력이 앞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위험한 신호라 걱정이다.
점심을 들고, 서은숙 의원이 '이민자들의 911'이라 멋지게 이름지어준, 헤네핀 카운티 다문화센터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풍경이 달라진다. 워싱턴에선 거의 못 봤고 트윈시티에서도 어쩌다 봤던 히잡 쓴 무슬림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열정도 놀랍다. 한꺼번에 보스니아, 볼리비아, 케냐, 멕시코, 에디오피아 곳곳에서 오신, 우리 일행보다 훨씬 많은 일곱 빛깔 무지개 분들이 만남의 자리를 꽉 채웠다.


카운티에서 스무 일곱 해 일하며, 1996년부터 센터의 주춧돌을 놓고 이끌어온 여장부 줄리안의 카리스마가 큰물 건너온 나그네들을 사로잡는다. 센터는, 무지개의 본산이라 160여 나라 말이 오가는 미네소타에서 공공서비스로 들어가는 가교 몫을 하고 있다. 몸소 찾아가는 서비스야 여건의 한계로 카운티에 국한되지만 24시간 전화 상담이나 서비스 연결은 카운티와 주의 경계를 당연히 넘는다.
업무와 상관없이 급하면 누구든 통역에 나서다보니 퇴근시각을 지키기 어렵고 심지어 다른 주에서 이사까지 온단다. 소말리아와 몽족과 티벳 사람까지 넘치니 미네소타는 나름대로 적응해 나가지만 '누가 등 뒤에 칼을?' 그 걱정까지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출신을 넘어 서로 소중히 여기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줄곧 만드나보다. 한편으로는 서로의 역린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보인다. 모스크가 많은데 기존 건물의 용도를 바꿀 뿐, 대놓고 모스크를 세우는 경우는 없단다. 히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유럽을 비롯해 EU 곳곳에서 홍역을 앓은 지 오래인데 예서 배울 일이다. 무슬림은 굳이 티를 내지 않을 일이며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넓힐 일이다. 하여 '마을과 거리에서 그 꼴 못 보겠다.' '우리 아이와 어찌 학교 같이 다니게 하나.' 욱 하는 심사를 다스리고 협조 아래 테러의 뿌리를 뽑는다면, 다시 사르코지와 메르켈이 '다문화의 실패'를 선언하는 퇴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트윈시티에서 가장 오래 된 Hamline 대학의 갓 지은 학생회관 회의실에서 Joseph Peschek 교수를 만난다. 어른답게 지지여부를 떠나 공화당 걱정을 많이 하신다. 두 번 대선에서 잇달아 지면서 이제서야 이민개혁, 동성결혼, 외교방향에 관한 토론이 벌어진단다. 존 매케인이 "랜톤과 그 무리는 미친 새들이다." 포문을 열자마자 미친 새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선다.
어차피 중동, 서남아, 인디아, 차이나, 동남아, 이북 모두 현실주의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Pivot to Asia', 전혀 새롭지 않은 힘겨루기일 뿐이다. 더 어려운 것은, 재정절벽과 시퀘스트로 이어지는 증세 감세의 벽이다. 적이란 말까지 나오는, 낮과 밤의 차이다.
가장 난감한 대목은 동성결혼이다. 그대로 받든 절충해 받든, 대부분 찬성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라면 그들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나. 한숨과 함께 "변화, 적응할 수밖에 없지 않나." 맥 빠진 답이 나온다. 이 고비를 미국의 정계가 새로운 상상력과 역사의 재해석으로 뚫기를, 참으로 바란다.



저녁을 들고 문화체험, 다코타 재즈클럽에 가다. 베네수엘라, 이스라엘, 뉴질랜드 다국적의 재즈니언들이 두루두루 볼 만한 무지개다. 저녁노을보다 짙은 땅거미를 삼키더만 어느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도시의 몽환과 나른히 늘어지는 잿빛 우수를 뒤섞어 칵테일로 뿜어내고 있다. 귀가 호강한다.


그 고운 결을 따라 윤모는 게슴츠레 고개를 숙이다 막간 광고에 어안이 벙벙하다. 다시 맥박이 빨라짐을 보니 한 고비를 넘는가보다. 무대가 후끈 달아오르며 계산서가 날라든다. 달뜨는 마음을 기립박수로 달랜다. 재즈와 함께라면 이 밤도 달콤하다.
* 이렇게 IVLP 기행문의 前篇,
3월 9일에서 19일까지 열 하루의 워싱턴 DC와 미니애폴리스의 이야기를
천신만고 끝에 올렸다. 마지막 [글쓰기] 누르기 앞서 또 날라갈까 봐 두렵다.
차라리… 대낮에 귀신을 만난다 한들 이보다 무섭지 않으리라.
어쨌든 後篇도 어여 올리겠다 맹세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