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차이나클럽을 운영하는 지해범 기자의 글입니다.
이 사람 글은 늘 보는데 나름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 2003/2/18

차이나클럽 회원 여러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저의 사견입니다만, 이라크전쟁 조짐과 국제유가의 폭등으로 한반도의 작은 배는 큰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데, 북쪽에서는 핵무기를 기어코 만들어 미국에 맞서겠다고 나오니, 이 나라가 장차 어디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대북 비밀지원문제로 국론은 양분되고, 새로운 정권담당자들과 재계는 힘겨루기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국내 세력간의 싸움은, 모두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투쟁으로 변질된 듯이 보입니다. 이것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해방직후의 좌우대립 상황과 비교하고 싶지도 않지만, 21세기 치열한 선전전과 상대방 약점잡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일본이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에 ‘이 기회를 놓칠새라’ 전력 증강과 핵 무장론을 슬슬 꺼내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특사파견이나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숟가락을 놓겠다’고 합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정부는 로또 복권을 만들어내어 온 국민을 ‘대박의 꿈’에 마비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IMF 경제위기가 오기전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 참사 등 여러 조짐을 미리 보았듯이, 지금 그런 조짐이 오는 것은 아닌가 걱정됩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저의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얼마 전 중국 조기유학 열풍과 관련된 글을 보내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저의 단상(斷想)을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최근 국내에 불고있는 ‘중국어 학습붐’과 ‘중국유학 열풍’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것이 21세기 한국이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향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중국어 학습붐’과 ‘중국유학 열풍’이 하나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조건’이란 의미는 여러분들도 잘 알 것입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했거나 하려는 상황에서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중국의 법률과 문화를 잘 아는 인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던 세대는 ‘대만-홍콩 교육세대’여서, 중국어를 할 줄은 알지만 유창하지가 않았고, 대륙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엉뚱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교 이후 중국에 들어갔던 상사주재원과 외교관 유학생들의 자녀들이 중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기업에 진입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중국어가 유창할 뿐만 아니라, 중국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창생이 각계에 뻗어있어, 상당한 인맥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 인재들은 앞으로 한국이 중국시장을 개척하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이 “중국의 기술수준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따라오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반도체의 경우도 5년 내에 중국에 역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과장됐을 수는 있지만, 결코 거짓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의 대표기업이 중국 기업에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내에 추월된다면, 그보다 기술경쟁력이 떨어지는 다른 기업들은 더 빨리 추월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한국 기업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요. 결코 그렇게 되길 바라지는 않지만 삼성전자가 중국 거대 기업의 하청기업이나 부품기업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요?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우리 기업이 기술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했을 때 중국시장에 진출하거나 투자하는 기업도 있게 되며,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재’들도 쓸모가 있을 거라는 얘깁니다. 90년대 한국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갈 때, 미국에 유학한 우리의 많은 학생들이 현지 한국기업에 채용되거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스카우트됐던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미 많이 지적된 바와 같이, 우리의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이공계 출신마저 사법-행정-외무고시에 매달리고, 기업에 들어간 이공계 인력마저 회사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미래가 없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중국유학도 좋고 중국어 공부도 좋지만,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대한민국의 기술-상품-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로 흘러가야 하고, 또 이 나라의 지도자와 정부는 그렇게 되도록 각종 유인장치를 통해 ‘인력의 물꼬’를 그렇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 철학과와 사학과와 심리학과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특정학과를 폄하하려는 뜻은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철학 심리학 역사학 공부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그런 공부는 오히려 더욱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양으로서 공부하고 개인적으로 뜻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 깊이 연구해야할 성질의 학문이지, 모든 대학에서 ‘철학학사’와 ‘심리학 학사’를 배출하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요컨대 국가의 10년 20년 대계를 내다보면서, 국가의 인력구조와 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교육체계를 고정된 틀이 아닌 유연한 틀로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번 학과를 만들어 놓으면 수십년 가는 그런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그런 ‘인력의 물길’을 제대로 터주지 않을 때, 그것이 막힌 곳에서 ‘둑’이 터져 숱한 부작용과 아픔이 나타납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학생이 자살하고,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범죄자가 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서울대 졸업생이 다시 2년제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 한의대에 입학하는 이런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교육비의 낭비이자 교육체계의 대실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얘기가 교육문제로 번졌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중국의 발전’이라는 큰 명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국가 지도자는 물론 ‘중국’이라는 화두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중국의 발전이 한국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의 얘깁니다. 우리가 경쟁력을 잃으면, 우리 경제는 중국에 흡수 내지 종속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에서 이런 글을 써보았습니다. / 지해범 드림 hbjee@chosun.com
이 사람 글은 늘 보는데 나름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 2003/2/18

차이나클럽 회원 여러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저의 사견입니다만, 이라크전쟁 조짐과 국제유가의 폭등으로 한반도의 작은 배는 큰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데, 북쪽에서는 핵무기를 기어코 만들어 미국에 맞서겠다고 나오니, 이 나라가 장차 어디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대북 비밀지원문제로 국론은 양분되고, 새로운 정권담당자들과 재계는 힘겨루기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국내 세력간의 싸움은, 모두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투쟁으로 변질된 듯이 보입니다. 이것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해방직후의 좌우대립 상황과 비교하고 싶지도 않지만, 21세기 치열한 선전전과 상대방 약점잡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일본이 북한의 핵개발 움직임에 ‘이 기회를 놓칠새라’ 전력 증강과 핵 무장론을 슬슬 꺼내고 있고, 러시아와 중국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특사파견이나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숟가락을 놓겠다’고 합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정부는 로또 복권을 만들어내어 온 국민을 ‘대박의 꿈’에 마비되게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IMF 경제위기가 오기전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 참사 등 여러 조짐을 미리 보았듯이, 지금 그런 조짐이 오는 것은 아닌가 걱정됩니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저의 우려가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얼마 전 중국 조기유학 열풍과 관련된 글을 보내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저의 단상(斷想)을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최근 국내에 불고있는 ‘중국어 학습붐’과 ‘중국유학 열풍’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것이 21세기 한국이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향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중국어 학습붐’과 ‘중국유학 열풍’이 하나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조건’이란 의미는 여러분들도 잘 알 것입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했거나 하려는 상황에서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중국의 법률과 문화를 잘 아는 인재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던 세대는 ‘대만-홍콩 교육세대’여서, 중국어를 할 줄은 알지만 유창하지가 않았고, 대륙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엉뚱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교 이후 중국에 들어갔던 상사주재원과 외교관 유학생들의 자녀들이 중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기업에 진입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중국어가 유창할 뿐만 아니라, 중국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창생이 각계에 뻗어있어, 상당한 인맥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 인재들은 앞으로 한국이 중국시장을 개척하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의 한 계열사 사장이 “중국의 기술수준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따라오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반도체의 경우도 5년 내에 중국에 역전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과장됐을 수는 있지만, 결코 거짓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의 대표기업이 중국 기업에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내에 추월된다면, 그보다 기술경쟁력이 떨어지는 다른 기업들은 더 빨리 추월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한국 기업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요. 결코 그렇게 되길 바라지는 않지만 삼성전자가 중국 거대 기업의 하청기업이나 부품기업으로 전락하지는 않을까요?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될까요.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우리 기업이 기술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했을 때 중국시장에 진출하거나 투자하는 기업도 있게 되며,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재’들도 쓸모가 있을 거라는 얘깁니다. 90년대 한국기업들이 세계로 뻗어나갈 때, 미국에 유학한 우리의 많은 학생들이 현지 한국기업에 채용되거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스카우트됐던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미 많이 지적된 바와 같이, 우리의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이공계 출신마저 사법-행정-외무고시에 매달리고, 기업에 들어간 이공계 인력마저 회사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미래가 없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중국유학도 좋고 중국어 공부도 좋지만,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대한민국의 기술-상품-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로 흘러가야 하고, 또 이 나라의 지도자와 정부는 그렇게 되도록 각종 유인장치를 통해 ‘인력의 물꼬’를 그렇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 철학과와 사학과와 심리학과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특정학과를 폄하하려는 뜻은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철학 심리학 역사학 공부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그런 공부는 오히려 더욱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양으로서 공부하고 개인적으로 뜻과 관심이 있는 사람이 깊이 연구해야할 성질의 학문이지, 모든 대학에서 ‘철학학사’와 ‘심리학 학사’를 배출하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요컨대 국가의 10년 20년 대계를 내다보면서, 국가의 인력구조와 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교육체계를 고정된 틀이 아닌 유연한 틀로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번 학과를 만들어 놓으면 수십년 가는 그런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그런 ‘인력의 물길’을 제대로 터주지 않을 때, 그것이 막힌 곳에서 ‘둑’이 터져 숱한 부작용과 아픔이 나타납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학생이 자살하고,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범죄자가 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서울대 졸업생이 다시 2년제 대학을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 한의대에 입학하는 이런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교육비의 낭비이자 교육체계의 대실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얘기가 교육문제로 번졌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중국의 발전’이라는 큰 명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국가 지도자는 물론 ‘중국’이라는 화두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중국의 발전이 한국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의 얘깁니다. 우리가 경쟁력을 잃으면, 우리 경제는 중국에 흡수 내지 종속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에서 이런 글을 써보았습니다. / 지해범 드림 hbj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