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더이상 만화가 아니다 | IT혁명 통해 공간 재창출…수십개 공간서 사는 디지털 유목민 출현 | 글 라도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언론학 박사
|  | 디지털 컨버전스.모바일.가상현실 영상화을 통해 만들어질 유비쿼터스는 편리함의 극대화를 가져오지만,반대로 자아.공간관계의 개념을 뒤바꾸는 새로운 사회혁명을 초래할 것으로도 보인다 |  | | “유비쿼터스(Ubi quitous) 혁명에 대비하자.” 21세기 가장 큰 혁명은 생활의 혁명이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컴퓨팅 환경을 지향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혁명은 컴퓨터를 넘어 IT가 생활 전반을 개혁하고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를 약속한다. 모든 기기가 컴퓨팅 되고 컴퓨팅을 통해 통제되는 생활의 혁명, ‘유비쿼터스 혁명’은 지금 우리 곁에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기술의 방향은 세 가지다. 하나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고, 다른 하나는 모바일(Mobile)이며, 마지막은 비주얼, 즉 가상현실을 동반한 영상화다.
온라인 게임 비교 안될 ‘합의적 환각’ 즐긴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예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TV가 인터넷을 수행하고 컴퓨터가 TV 기능을 수행하는 등.
그러나 그것은 초보적 수준이다. TV 시청은 물론 인터넷까지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냉장고’가 나오는가 하면, 손목시계와 호출기, 위성 위치추적 시스템(GPS)을 결합한 제품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휴대폰으로 심장박동 소리를 잴 수 있는 제품이 나오고 있고, 변기를 통해 변의 색깔을 구별하고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한 제품이 하나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통합하는 현상을 디지털 컨버전스라고 부른다.
미국의 ‘바텔연구소’는 ‘10대 미래기술’이란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가전은 TV와 통신, 컴퓨터가 복합적으로 융합되는 통합제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으며, 올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ICBS)’에서 빌 게이츠 회장을 포함한 소니와 델컴퓨터 등 세계 선도 IT기업들은 ‘입는 컴퓨터’와 ‘스며드는 컴퓨터’를 말하면서 한결같이 디지털 컨버전스를 얘기했다.
현재까지의 단계는 홈 네트워크 단계다. 즉, 가전을 중심으로 각각의 기기가 컴퓨팅 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가전은 물론 가구나 벽, 건물 자체까지 움직이고 연결되는 시대로 나갈 것이다.
IPv6에 의해 주소를 부여받는 건물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벽을 만들 것이고, 가전과 가구를 배치하며 원하는 가장 편한 환경으로 공간을 구성할 것이다.
죽은 객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로 각각의 대상물이 서로 컴퓨팅 하는 현실, ‘매트릭스’ 같은 미래 영화에서나 본 듯한 꿈 같은 현실은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곧 실현될 전망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을 만드는 또 다른 흐름은 모바일이다. ‘5년 안에 세상을 바꿀 신기술’ 등 가장 첫 번째로 꼽히는 ‘초고속 무선 네트워크’는 현재 저급한 전송망과 좁은 인터페이스로 아이들 장난감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5년 안에 최고급의 멀티미디어로 변화될 전망이다.
우선 전송속도에서 현재의 VDSL 수준인 30∼50Mbps 정도로 빨라질 전망이며, 각종 홈 네트워크 장치들과 결합, 거리나 사무실, 자동차 안 그 어디서든 각종 기기들을 컴퓨팅 하는 장치로 사용할 것이다.
필립스는 무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해 원격 조정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선정보 단말기를 내놓았으며, 파나소닉도 초소형의 홈 서버를 공개한 바 있다. 컴퓨팅 환경이 이동체화됨으로써 사람들의 생활 패턴도 이동체화된다.
집에 있기보다는 거리를 배회하며, 한 장소에 있기보다는 여러 장소에 거처하게 된다. 한 장소에 머무르며 공간에 구속받던 방식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유목민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의 기술은 비주얼, 즉 영상화다. 1980년대 텔레비전의 발전과 함께 시작된 영상화는 컴퓨터를 만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고, 이제는 가상공간(Cyberspace)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오고 있다.
즉 깁슨(W. Gibson)이 얘기한 바와 같이 수천만이 행하는 ‘합의적 환각’ 상태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즐기는 새로운 영상과 가상현실의 세계는 초보적 수준의 문제다.
앞으로 영상은 액정으로 변한 벽면과 거리 자체에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시청 앞에 조성될 새로운 광장 조형에 뽑힌 수상작은 광장 자체가 액정화면으로 되어 있다. 50Mbps를 통해 휴대폰으로 전달된 영상은 각종 기기를 통해 액정화면으로, 3차원 홀로그램으로 재현될 전망이다.
여기에 냄새를 코드화해 영상신호와 더불어 전송하는 시스템이 생기면, 밤늦은 시간의 라면 광고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과거에 있어서는 전송 장치와 인터페이스가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갖고 있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IT 혁명은 생활의 혁명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 그 자체도 변화시킨다. 가장 큰 변화는 원격재현(tele-presence)의 문제다. 원래 가상현실 기술에서 사용된 이 말은 이제 컴퓨터의 세계를 넘어 생활 속으로 파고들 전망이다.
‘마치 거기 있는 것과 같이(being there)’란 말 그대로, 온라인의 공간에서 그리고 거리와 가정, 사무실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형성하며 자기를 재현하고 행동할 것이다. 하나의 공간이 아닌 수십 개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새로운 유형의 유목민(nomad)들이 수도 없이 출현할 것이라는 얘기다.
공간의 재편, 혹은 공간의 재형성은 21세기가 갖는 가장 커다란 화두다. 20세기가 자동차와 네트워크를 통해 ‘거리(distance)‘를 0(zero)으로 만드는, 공간을 파괴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단연 공간 재창출의 시대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며, 생활의 공간에서 구조화된 파티션과 벽을 허물고 새롭게 공간을 형성하려는 시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관계(relationship)’다. 사회적 관계는 더 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겠지만, 가족 관계나 ‘나’와 관계없는 사이는 아무런 힘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정보에 대한 편식증과 편집증적 집착 현상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이미지화된 이벤트 관계로 사회적 관계는 재편될 것이다. 매우 중차대한 문제는 가족의 해체다.
가족 해체와 디지털 격차의 심화
유목적인 장치가 늘어남과 동시에 사람들은 가족을 넘어 거리를 배회할 것이다. 핵가족 시대를 넘어 탈가족 시대의 가정(home)이 집(house)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최후의 사회보장 시스템인 가족은 사라진다. 그것은 위기다.
작게 보아 생활의 혁명은 ‘편리함’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멀게 보아 생활의 혁명은 ‘자아의 개념’과 ‘공간의 개념’ ‘관계의 개념’을 파괴시킨다.
더 많은 활동력(activity)과 생산력(product-ability)을 가져다주겠지만, 사회적인 보장과 ‘관계’면에서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닥치기 시작한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문제나 가족해체 문제, 사회성을 상실한 개인들과 배타적인 계층구조의 문제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미래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푸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은 시장을 낳고, 시장은 기술은 낳지만 사회적 문제는 기술과 시장 속에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인간이고 정치지만,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문제를 풀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생활 속의 혁명이 세상 속의 혁명을 만들어 낼지, 그것은 좀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입력날짜 2003.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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