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定論)은 'dogma'이고, 정론(正論)은 'fair view'이다.
옳고그름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正論을 세우는 일이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이 모두 정론일리 없고, 그렇다고 서로 다른 두 의견의 중간에 서는 것이 정론일리 없다.
도대체 공평한 시각으로서의 正論이란 무엇인가?
正論은 생명체이다. 창조되고 반응하고 성장하며 번식한다. 발신자와 수신자로 구분된 세계에서 正論은 형성되지 않는다.
正論은 중용이다. 치우치지 않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숱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그 다툼을 모두 수용하고서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원칙이다.
正論은 머리에서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에서 나온다. 정론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서사이며 삶의 현장이며 진심의 교감이다.
正論은 같은 가치를 공유한 다른 실천에 대한 관용이다.
正論은 과거의 회복이 아니라 미래의 창조이다.
正論은 동조자나 반대자가 아니라 발화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작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옳고그름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正論을 세우는 일이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확신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이 모두 정론일리 없고, 그렇다고 서로 다른 두 의견의 중간에 서는 것이 정론일리 없다.
도대체 공평한 시각으로서의 正論이란 무엇인가?
正論은 생명체이다. 창조되고 반응하고 성장하며 번식한다. 발신자와 수신자로 구분된 세계에서 正論은 형성되지 않는다.
正論은 중용이다. 치우치지 않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숱한 논란이 있어왔지만, 그 다툼을 모두 수용하고서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원칙이다.
正論은 머리에서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에서 나온다. 정론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의 서사이며 삶의 현장이며 진심의 교감이다.
正論은 같은 가치를 공유한 다른 실천에 대한 관용이다.
正論은 과거의 회복이 아니라 미래의 창조이다.
正論은 동조자나 반대자가 아니라 발화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작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