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균형잡힌 입장이 눈여겨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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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도전이자 기회
이성훈/ 인권운동가·팍스로마나 사무국장
유엔 인권위원회가 북한 정부에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다수결(찬성 28, 반대 10, 기권 14, 불참 1)로 채택한 지 한 주가 지났다. 나는 제네바의 국제 가톨릭 인권단체인 ‘팍스로마나’에서 일하는 인권 활동가로서 결의안 추진과 채택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 결의안의 의미와 배경, 그리고 한국사회, 특히 한국 정부와 인권운동에 던지는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이번 결의안의 가장 큰 의미는 북한 인권문제가 북한 내부 또는 남북의 민족문제이면서 동시에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의 문제로 확대되었다는 점에 있다. 인권운동가 이전에 같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필자는 ‘우리’ 문제를 유엔 마당에서 ‘남들이’ 논의하는 것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북한 인권 결의안은 인권의 보편성 원칙에 따른 것으로 한국사회 일부가 반응하듯이 당황하거나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유엔 인권위에서는 처음이지만, 정부 대표가 아닌 독립적인 26명의 인권 전문가로 구성된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이미 1997, 98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결의안은 그동안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권소위원회의 상급기관이라고 할 인권위에서 재확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에 인권위는 북한뿐만 아니라 버마(미얀마), 부룬디, 벨로루시, 투르크메니스탄 등 여러 나라에 대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번 결의안이 나라 안팎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채택 시기가 이라크 사태와 북핵 사건과 만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에 의해 제기된 중국 인권 결의안과 유럽연합이 주도해온 이란에 대한 결의안이 올해 빠지고 북한이 부각되면서 이중 잣대 시비와 음모론이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연합국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대량살상 무기 이외에도 인권 수호와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했다. 이런 현실과 그동안 미국의 외교관행을 볼 때 북한 인권 결의안을 ‘미국이 북한 목조르기와 침공의 명분’으로 삼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름대로 근거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결의안 내용을 살펴보면, 그런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 정작 국제사회가 힘을 합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탈북자에 대한 언급이 없고(‘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빠졌다고 함), 미국의 경제봉쇄가 북한 인민의 발전권과 식량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불가분성 원칙), 한반도 긴장·평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상호 의존성 원칙) 등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북한의 모든 인권문제가 경제봉쇄 조처에서 기인한다’ 또는 ‘북-미 불가침 협정이 맺어지면 모든 북한 인권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환원론을 정당화해주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결의안 내용은 관점에 따라서 현실을 다소 과장했거나 특정 부분을 부풀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접근 가능한 북한 인권에 관한 공식·비공식 자료에 비추어 볼 때 결의안의 정당성 자체를 훼손할 만한 심각한 의도적 조작이나 왜곡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결의안의 정당성보다는 실효성 문제다. 나는 이 결의안에 담긴 북한 인권에 대한 불균형 및 파편적 인식 때문에 북한의 인권개선에 장애는 아닐지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는 결의안을 추진했던 유럽연합과 인권단체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특히 지금까지의 북한 태도로 볼 때 이번 결의안 내용에 대해 협력보다는 거부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제네바의 인권 전문가들은 유엔인권위가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가장 ‘정치적’인 유엔기구라고 하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곧, 유엔 인권위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국익과 충돌하고, 인권을 명분으로 국익이 경쟁하고 타협하는 다자 외교의 현장이다. 인권외교에는 국익 증대를 위해 인권을 이용하는 ‘현실외교’와 외교적 수단을 이용해 인권을 증진시키는 ‘인권운동’의 양면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인권위의 결의안에는 원칙으로서의 인권과 현실로서의 정치가 뒤섞여 있다. 결의안의 의미를 침소봉대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번 결의안을 이용해 한국사회에서 이념논쟁이나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는 집단이 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결의안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결의안이 통과된 현실에서 결의안을 음모론 또는 정당성 결핍 등을 이유로 폄하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당사국인 북한은 결의안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감출수록 의혹은 더 커지고, 부정하고 배격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북한 결의안에 찬성한 대다수 국가가 결코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다. 북한은 이들의 ‘선의’를 ‘선용’해서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결의안의 권고대로 북한의 개선되지 않는 기아상황과 관련하여 ‘식량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방문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정부도 북한의 노력을 돕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북 모두 유엔이 설정한 국제적 인권기준을 통일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하냐’는 체제 경쟁이 아니라 ‘남북 모두 국제기준으로부터 얼마나 뒤져 있느냐’는 반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권이 통일과정에서 정치화·수단화하는 것을 막고 목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인권은 통일에서 장애나 장식이 아니라 안전장치 또는 나침반 구실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남북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한국도 나라별 결의안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초까지 유엔 인권위에서 주요 인권 침해국으로 국제 인권단체의 비판을 받아 왔고, 한국 인권운동은 남한의 인권상황 개선에 유엔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 특히 인권운동도 더 적극적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시민사회 안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북한을 민족보다는 국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든 국가 사회주의이든 나라는 헌법상 모든 국민의 인권보장을 의무로 지니지만 시민정치적 권리의 현실에서는 주된 인권 침해자다. 유엔 인권위에서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인권단체들에 의해 비판 대상이 되며, 이는 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이른바 ‘인권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서유럽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외국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동일한 잣대로 북한의 인권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 감정에 기댄 ‘북한 눈감아주기’ 또는 냉전적인 반북한 정서를 등에 업은 지나친 ‘북한 때리기’ 두루 북한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과 평화통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북한 인권문제에(만) 전념하고 있는 인권단체와 남한 인권문제에(만) 전념하는 인권단체 사이에 이해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좌편향’과 ‘우편향’은 사상과 이념의 다양성 및 관용의 차원에서 인권운동에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양자는 공통 기반을 만들어서 아직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에 취해 있는 극우와 극좌세력이 한국 시민사회를 이념투쟁의 장으로 몰아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철저하게 피해자의 눈으로 현실을 보면, 민족·체제·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모든 인권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공분이라는 보편적 인권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바탕으로 관심은 있어도 역량의 한계와 과거의 관성 때문에 미처 실천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른 단체가 대신하고 있다는 ‘역할 분담론’ 관점에서 서로 이해와 수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내편 아니면 적’에서 ‘적이 아니면 친구’라는 좀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권운동은 진흙탕 속의 수레바퀴와도 같다. 그 수레바퀴는 ‘양쪽 바퀴로 기우뚱한 균형’ 속에 전진하는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바퀴가 인권의 축을 매개로 튼튼히 연결될 때 진흙탕을 벗어나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북한 인권문제는 한국사회가 동북아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이자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직면해야 할 도전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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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도전이자 기회
이성훈/ 인권운동가·팍스로마나 사무국장
유엔 인권위원회가 북한 정부에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다수결(찬성 28, 반대 10, 기권 14, 불참 1)로 채택한 지 한 주가 지났다. 나는 제네바의 국제 가톨릭 인권단체인 ‘팍스로마나’에서 일하는 인권 활동가로서 결의안 추진과 채택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 결의안의 의미와 배경, 그리고 한국사회, 특히 한국 정부와 인권운동에 던지는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이번 결의안의 가장 큰 의미는 북한 인권문제가 북한 내부 또는 남북의 민족문제이면서 동시에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의 문제로 확대되었다는 점에 있다. 인권운동가 이전에 같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필자는 ‘우리’ 문제를 유엔 마당에서 ‘남들이’ 논의하는 것을 보면서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북한 인권 결의안은 인권의 보편성 원칙에 따른 것으로 한국사회 일부가 반응하듯이 당황하거나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유엔 인권위에서는 처음이지만, 정부 대표가 아닌 독립적인 26명의 인권 전문가로 구성된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이미 1997, 98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결의안은 그동안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권소위원회의 상급기관이라고 할 인권위에서 재확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번에 인권위는 북한뿐만 아니라 버마(미얀마), 부룬디, 벨로루시, 투르크메니스탄 등 여러 나라에 대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번 결의안이 나라 안팎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채택 시기가 이라크 사태와 북핵 사건과 만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에 의해 제기된 중국 인권 결의안과 유럽연합이 주도해온 이란에 대한 결의안이 올해 빠지고 북한이 부각되면서 이중 잣대 시비와 음모론이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연합국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대량살상 무기 이외에도 인권 수호와 민주주의 회복을 주장했다. 이런 현실과 그동안 미국의 외교관행을 볼 때 북한 인권 결의안을 ‘미국이 북한 목조르기와 침공의 명분’으로 삼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름대로 근거가 없다고 보지 않는다.
결의안 내용을 살펴보면, 그런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 정작 국제사회가 힘을 합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탈북자에 대한 언급이 없고(‘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빠졌다고 함), 미국의 경제봉쇄가 북한 인민의 발전권과 식량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불가분성 원칙), 한반도 긴장·평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상호 의존성 원칙) 등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북한의 모든 인권문제가 경제봉쇄 조처에서 기인한다’ 또는 ‘북-미 불가침 협정이 맺어지면 모든 북한 인권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환원론을 정당화해주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결의안 내용은 관점에 따라서 현실을 다소 과장했거나 특정 부분을 부풀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접근 가능한 북한 인권에 관한 공식·비공식 자료에 비추어 볼 때 결의안의 정당성 자체를 훼손할 만한 심각한 의도적 조작이나 왜곡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결의안의 정당성보다는 실효성 문제다. 나는 이 결의안에 담긴 북한 인권에 대한 불균형 및 파편적 인식 때문에 북한의 인권개선에 장애는 아닐지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이는 결의안을 추진했던 유럽연합과 인권단체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특히 지금까지의 북한 태도로 볼 때 이번 결의안 내용에 대해 협력보다는 거부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제네바의 인권 전문가들은 유엔인권위가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가장 ‘정치적’인 유엔기구라고 하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곧, 유엔 인권위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국익과 충돌하고, 인권을 명분으로 국익이 경쟁하고 타협하는 다자 외교의 현장이다. 인권외교에는 국익 증대를 위해 인권을 이용하는 ‘현실외교’와 외교적 수단을 이용해 인권을 증진시키는 ‘인권운동’의 양면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인권위의 결의안에는 원칙으로서의 인권과 현실로서의 정치가 뒤섞여 있다. 결의안의 의미를 침소봉대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번 결의안을 이용해 한국사회에서 이념논쟁이나 정치 쟁점화를 시도하는 집단이 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결의안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결의안이 통과된 현실에서 결의안을 음모론 또는 정당성 결핍 등을 이유로 폄하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당사국인 북한은 결의안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감출수록 의혹은 더 커지고, 부정하고 배격할수록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북한 결의안에 찬성한 대다수 국가가 결코 북한에 적대적이지 않다. 북한은 이들의 ‘선의’를 ‘선용’해서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결의안의 권고대로 북한의 개선되지 않는 기아상황과 관련하여 ‘식량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방문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정부도 북한의 노력을 돕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북 모두 유엔이 설정한 국제적 인권기준을 통일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하냐’는 체제 경쟁이 아니라 ‘남북 모두 국제기준으로부터 얼마나 뒤져 있느냐’는 반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권이 통일과정에서 정치화·수단화하는 것을 막고 목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인권은 통일에서 장애나 장식이 아니라 안전장치 또는 나침반 구실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남북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한국도 나라별 결의안 대상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90년대 초까지 유엔 인권위에서 주요 인권 침해국으로 국제 인권단체의 비판을 받아 왔고, 한국 인권운동은 남한의 인권상황 개선에 유엔을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 특히 인권운동도 더 적극적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시민사회 안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북한을 민족보다는 국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든 국가 사회주의이든 나라는 헌법상 모든 국민의 인권보장을 의무로 지니지만 시민정치적 권리의 현실에서는 주된 인권 침해자다. 유엔 인권위에서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인권단체들에 의해 비판 대상이 되며, 이는 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이른바 ‘인권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서유럽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외국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동일한 잣대로 북한의 인권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 감정에 기댄 ‘북한 눈감아주기’ 또는 냉전적인 반북한 정서를 등에 업은 지나친 ‘북한 때리기’ 두루 북한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과 평화통일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북한 인권문제에(만) 전념하고 있는 인권단체와 남한 인권문제에(만) 전념하는 인권단체 사이에 이해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좌편향’과 ‘우편향’은 사상과 이념의 다양성 및 관용의 차원에서 인권운동에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양자는 공통 기반을 만들어서 아직 과거 냉전 이데올로기에 취해 있는 극우와 극좌세력이 한국 시민사회를 이념투쟁의 장으로 몰아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철저하게 피해자의 눈으로 현실을 보면, 민족·체제·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모든 인권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공분이라는 보편적 인권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바탕으로 관심은 있어도 역량의 한계와 과거의 관성 때문에 미처 실천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른 단체가 대신하고 있다는 ‘역할 분담론’ 관점에서 서로 이해와 수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내편 아니면 적’에서 ‘적이 아니면 친구’라는 좀더 적극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권운동은 진흙탕 속의 수레바퀴와도 같다. 그 수레바퀴는 ‘양쪽 바퀴로 기우뚱한 균형’ 속에 전진하는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바퀴가 인권의 축을 매개로 튼튼히 연결될 때 진흙탕을 벗어나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북한 인권문제는 한국사회가 동북아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이자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직면해야 할 도전이자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