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한국 사회 종합 상사 문제의 역사적 근원

by 民主 posted May 14, 2003
2회에 걸쳐 재벌과 한국 경제에 대해
연구모임을 했네요.
참 유익했습니다.

어제 조선일보에 실린 서울대 조동성 교수의 글을
하나 옮깁니다.

한국 사회 종합 상사 문제의 역사적 근원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비록 그 해법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요.


[기고] 종합상사의 그늘, SK글로벌....... 조동성


오늘날 세인들의 뇌리를 벗어난 단어 중 하나가 “종합상사”다. 10여 년 전만해도 삼성물산, ㈜대우, 현대종합상사, ㈜선경 등의 종합무역상사는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국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대통령은 종합상사 사장들을 불러 자문을 구했고, 대학 졸업생들은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종합상사를 선택했다. 그렇던 종합상사가 오늘날에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급기야는 최근 분식회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SK글로벌같이 사회에서 지탄받는 기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종합상사야말로 한국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하면서 수출입국의 선봉장 역할을 한 기업이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침체된 세계 경제 속에서 만들어진 종합무역상사가 선진국의 보호무역장벽을 뚫고 들어가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기에, 한국경제는 연평균 10%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철강, 자동차, 가전제품에서 완구, 신발, 의류에 이르기까지 매년 1500억달러어치에 달하는 한국제품이 200여 국가 60억 소비자를 찾아가고 있는 것도 종합상사 덕분이다.

이런 국가적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종합상사들은 속으로 골병이 들었다. 해마다 0.1~1% 수준의 매출 이익을 보이던 종합상사가 실은 자본잠식 상태라는 것을 전문가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장부상으로 이익이 나지 않는 회사는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없는 관행 속에서 종합상사는 분식회계를 통해 가공이익을 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74년 한국 정부에 종합상사 설립을 강력히 권고한 스미토모 상사의 세지마 류조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가의 요구는 수출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종합상사는) 수출실적을 제1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종합상사는 해외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을 적자라고 해서 모두 철수하면 한국의 수출은 전부 정지하여 버린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종합상사는 적자구조를 면할 수 없었다. 한때 정부는 종합무역상사 인가 조건으로 해외지사를 20개 이상 설립하도록 했었다. 이에 대해 세지마 회장은 “한국의 종합상사는 비록 적자라 할지라도 수출을 성장시키기 위해 해외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이와 같은 과정에서 나온 적자를 정부가 생각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해외지사는 5~10년 적자를 볼 각오를 하고 설립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종합상사는 해외지사 20개를 5년간 운영하는 비용에 해당하는 1억달러를 기초 자본금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와 사업가들은 종합상사라는 무역회사는 전화기와 팩스 몇 대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서 소액의 자본금만으로 덤벼들었다. 그 결과 종합상사들은 이익이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매년 수천만 달러씩 들어가는 해외지사의 운영비를 재고자산이나 매출채권 등의 가공 자산으로 분식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문제가 된 SK글로벌의 회계분식은 어제오늘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과거 ㈜선경이라는 이름으로 종합상사 역할을 하던 시절부터 내려온 ‘마이너스 유산’이다. 혹자는 계열사들이 지원을 해주던 시절에 왜 부실을 떨지 못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왔는가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타계한 최종현(崔鍾賢) 회장 시절부터 자율경영을 강조해온 SK그룹에는 계열기업이 어려움에 빠진 다른 기업을 지원해주는 관행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20여년간 누적되어 있는 적자가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오다가 최근 투명경영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은 현 경영진이 아니라 과거 경영진이 져야 한다.

개발연대에 수출입국이라는 국가적 사명을 수행한 종합상사가 오늘날 늙고 병든 말이 되어 누워있다. 과연 우리는 종합상사에게 돌을 던질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조동성)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71 <김용옥>미국은 선제공격 `표적`원한다 이왕재 2003.05.23 1449
70 펌) 재벌 개혁,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전제 조건 民主 2003.05.22 1578
69 가장(家長)에 대한 단상 이용찬 2003.05.22 1408
68 우리의 태극기가 정말 자랑스러울려면 民主 2003.05.22 1451
67 국가와 기회주의 民主 2003.05.21 1428
66 (펌) 한국사회에 왼쪽의 이념은 존재하는가? 윤여진 2003.05.19 1555
» 펌) 한국 사회 종합 상사 문제의 역사적 근원 民主 2003.05.14 1922
64 나의 여러가지 의문(해결요망) 이용찬 2003.05.12 1404
63 [re] 같이 해결해 나갑시다... 永樂 2003.05.13 1426
62 주한미군에 대한 칼럼 民主 2003.05.12 1612
61 워싱턴, 베이징에서 참고할 만한 논평 永樂 2003.05.10 1401
60 핵보유만이 북한이 살 길인가? 이왕재 2003.05.10 1463
59 [re] 이 글을 칼럼 코너로... 이윤주원 2003.05.10 1358
58 [re] 칼럼으로 옮겼습니다.(내용 없음) 이왕재 2003.05.10 1124
57 (향락성)접대비에 대한 단상 이용찬 2003.05.08 152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5 26 27 28 29 30 31 32 Next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