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한국사회에 왼쪽의 이념은 존재하는가?

by 윤여진 posted May 19, 2003
한국사회에 왼쪽의 이념이 존재하는가? / 주대환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정치철학의 흐름을 놓고 자유주의의 흐름을 오른편, 사회주의의 흐름을 왼편이라고 부르는 세계사 서술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좌와 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두고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각기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 주장을 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점점 더 크게 달라지고 있다.


-분단국 남한에서는 이념 스펙트럼이 모두 왜곡되어 있었다.


주대환 / 마산시 합포구지구당 위원장,'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저자



진보는 사회주의자, 보수는 자유주의자

무엇이 왼쪽이고 무엇이 오른쪽인가? 그 답변은 항상 사회 상황과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마땅할 것이다. 비근한 예로 국가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 전환해가던 90년대의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주도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왼편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국가사회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던 사람들을 왼편이라고 해야 할지 헛갈렸던 적도 있다. 그것은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타파하든지 고수해야 할 현상(現狀)이고 오히려 자본주의가 지향하든지 거부하든지 해야 할 그 무엇이었던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군사적 개발독재의 시절, 또는 그로부터 정상적인 부르주아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로 나아가는 과도기였던 시기에는 그런 변화를 주장하는 쪽이 왼쪽이고 그런 변화를 거부하는 쪽이 오른쪽이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이 진보파로 인식되고 극우 파시스트들이 보수파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에는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구분되지 않은 한 덩어리였으며, 따라서 진보와 개혁은 혼동되고, 무엇이 진정한 진보인지 무엇이 진정한 보수인지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말하는 것과 대중이 말하는 바가 달랐다.

지금 우리나라는 15년 간의 민주화 과도기를 막 벗어나 정상적인 국민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비로소 그런 개념적 혼란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자본주의라는 세계사의 한 시대에 통용되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조만간에 우리나라에서도 진보는 사회주의자, 보수는 자유주의자를 정확하게 가리키게 될 것이다.


조선로동당은 더 이상 좌우의 기준이 아니다

정상적 국민국가가 아니었던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오른쪽도 없었고 진정한 왼쪽도 없었다. 파쇼적인 개발독재를 벗어나고자 하면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구분 없이 모두 개혁이었으며 모두 진보였다. 우리나라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로 인식되고 분류되는 입장들은 사실상 일반적인 현대 민주주의나 인권의 범주, 아니면 우리나라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찬성하면 진보라고 분류되었으나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해야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할 때 극우적, 시대착오적 사고를 고집하는 자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이상한 양상이 나타났고 사회 전반의 흐름보다 뒤쳐진 이러한 정치권의 추세를 사회 전반의 흐름으로 오인하여 추수한 데서 지난 대선 시기 이회창이나 이인제의 실패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보수의 주류를 차지하지 못하고 보수 가운데 가장 오른편, 극우적인 부분, 아니면 반동적인 부분을 자기 색깔로 받아들임으로써 낭패를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대변하고자 했던 부르주아지의 주류가 이미 내버린 색깔로 승부를 보고자 설쳤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친(親)조선로동당이면 왼쪽이요, 반(反)조선로동당이면 오른쪽이라고 생각하는 오랜 습관도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5, 60년 전의 상황에서 비롯된 사고 습관인 것이다. 조선로동당이 모든 정치철학적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면, 그리고 조선로동당이 곧 왼쪽이라면 조선로동당이 훌륭하면 왼쪽도 훌륭할 것이고 조선로동당이 아름답지 못하면 왼쪽도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분단된 지 50년, 남북한이 각자의 길을 간지 오래되어 조선로동당이 남한 사회에서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 사고 습관을 애초부터 가지거나 물러 받은 세대가 5, 60대 이상이니 2, 30대에게 조선로동당이 더 이상 진리의 기준도 아니고 좌우의 기준도 아닌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는 반대로서가 아니라 주장함으로써 생긴다

이회창과 이인제의 실패는 그런 사고 습관이 이제 젊은 세대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모든‘진보’를 친조선로동당으로 몰아붙여 쉽게 무찌르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사실 김용갑 같은 사람들은 이회창의 표를 많이 깨었다. 이회창이 만약 김원웅을 앞장 세웠다면 노  무현이 이회창을 이길 수 있었을까? 부르주아지의 특정한 분파가 아닌 계급 전체의 입장은 이제는 자유주의자를 원하는 것이다. 재벌은 노무현을 거북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부르주아 계급 전체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이회창을 거북하게 느끼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반국가단체인 조선로동당을 찬양하는 일체의 언행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행동이니 만약 친조선로동당이 왼쪽이라면 남한에서 왼쪽은 존재하기 힘든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민족주의에 기대어 용케도 친조선로동당도 존재하고, 반조선로동당을 기치로 한 가짜 오른편도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북한을 일당 독재로 통치하고 비현실적 정책으로 수십만 백성들을 굶겨 죽인 조선로동당을 지지하는 어떤 세력도 결코 진보가 아니다. 한총련이나 한총련 출신 주사파 운동권은 결코 진보가 아니다. 그들은 극좌파도 아니다. 촌스런 민족주의자들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반조선로동당을 깃발로 하는 조갑제 같은 사람들은 조선로동당의 그림자 같은 존재이니 조선로동당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존재들이다. 그들 역시 일관된 극우파도 아니다. 분단국 남한에서는 이념 스펙트럼이 이렇게 모두 왜곡되어 있었다. 진정한 극좌파 아나키스트들이나 진정한 극우파 파시스트들도 모두 이제야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진정한 좌파 사회주의자도 우파 자유주의자도 이제야 자기의 정체성을 인식하거나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누군가를 반대하는 것을 자기의 존재의 이유로 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한 좌와 우가 나타나고 있다

과연 한국은 OECD 회원국이고 스페인 수준의, 부분적으로는 이탈리아 이상의 경제적 발전을 이룬 나라로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갈 예비군으로서 정치적으로도 이제 선진국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유럽식으로 진보와 보수의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들이 무지개처럼 나타나는 가운데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양대 정당이 중심을 잡는 그런 정치구도를 형성하게 될 가능성보다는 미국식으로 전반적인 자유주의 우세의 지형 속에서 자유주의의 두 분파가 양대 보수 정당을 형성하고, 사회주의적 진보파는 자유주의 좌파 정당에 포섭되거나 아니면 그를 통해서 주장을 드러내는 정도로 그치고, 마찬가지로 파시스트 극우파들도 자유주의 우파에 포섭되거나 그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낼 가능성이 보다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정치철학의 흐름을 놓고 자유주의의 흐름을 오른편, 사회주의의 흐름을 왼편이라고 부르는 세계사 서술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좌와 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두고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각기 다른 전망을 제시하고 주장을 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점점 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장하성 교수는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 책임자들에 대해 “경제팀 개혁 간 데 없고 안정만 남았다”고 비판한다. 장하성 교수는 진정한 자유주의자로서 자유주의적 개혁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장하성 교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좌(左)인가 우(右)인가? 장하성 교수는 우(右)다. 진정한 우(右)인 것이다. 자유주의적 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은 이제 ‘보수’라고, 보수 내의 개혁파라고 불러야 한다. 유시민은 스스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고 있거니와 새로운 우파, 진정한 우파의 이론가로 자리 매김할 것이다. 문성근과 명계남과 유시민과 강준만, 그들이 진정한 우파인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현대의 대승불교다

사회주의자들은 부유세를 신설하고, 간접세를 줄이고 직접세를 늘이고, 상속세나 재산세율을 높이거나 엄격한 법률적용으로 재산과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더 많이 걷은 세금으로 복지 예산을 크게 들이자는 주장을 한다. 그들은 또 군비를 축소하여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하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노동조합에 보다 많은 자유와 권한을 주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왼쪽이고 진보파인 것이다. 그들은 유럽의 진보정당들이 주장하고 실천해왔던 정책들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한국의 진보파들에게 지난 대선은 참으로 의의가 크다. 부유세라든지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슬로건이 진보의 내용을 채우고 진보의 정체성을 대중적 차원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이른바‘운동권’의 이데올로기적 공백을 메우고 있던 국가 사회주의적‘맑스-레닌주의’의 환상을 벗어나 한국의 사회주의자들, 좌파는 이제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사의 우여곡절 속에 좌파 이념들이 상호 교배와 생식을 거듭하고 진화를 거듭하여 나타난 현대 사회민주주의, 유럽 진보정당들의 이념과 정책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내건 슬로건과 정책들은 유럽 진보정당이 이미 이루어 놓은 것들이다. 유럽의 노동자에게 사회주의는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복지 예산을 의미하고, 실업과 산재와 질병과 노후생활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보장을 뜻한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보다 진지하게 사회민주주의적 정치철학을 받아들인다면 한국에서 ‘진보’도 대중적 정치 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의 선전(善戰)은 바로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자본주의와 한국 사회의 발전 단계와 그 모순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적 평등 이념과 정치철학,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적 정책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과 연대의 정신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더욱 절실하다.

사회민주주의는 현대의 대승불교다. 삼국시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승 불교를 열렬하게 받아들여 세계적 수준의 나라를 만들고 통일을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세계적 수준의 나라를 만들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나무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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