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미국은 선제공격 `표적`원한다

by 이왕재 posted May 23, 2003
문화일보에 실릴 글 같은데 정작 문화일보 사이트에는 없더군요. 암튼 진보누리에서 보고 올립니다.
김용옥은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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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기자 현장속으로>미국은 선제공격 `표적`원한다


김용옥 기자/doholk@munhwa.co.kr



나는 지금 뉴욕 맨해튼 32가의, 어느 침침한 방구석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창문밖으로 내다 보이는 뉴욕의 뒷골목은 항상 스산하고 음산하다. 생각난다. 대학다닐 때, 보스턴에는 만만한 한국음식점이 없었기 때문에, 밤새 차를 몰고 와서 이곳 32가에서 해장국하나 시켜먹고 또 다섯시간이나 다시 차를 몰고 보스턴으로 가곤했던 젊은 날의 호기(豪氣)가. 이곳은 정말 한인들의 피땀이 서린 곳, 한집 두집 기구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노무현대통령의 방미성과를 두고 이말 저말이 많겠지만 뉴욕교민들의 대체적 반응은 좋았다는 얘기다. 교민들의 관심은 외교적 성과가 아니라 당장 서바이벌의 문제다. 행여 자극적 발언을 일삼아 그들의 생계에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한국놈들 핏대나게 군다고 점포에 와서 손가락질하지나 않을까, 하여튼 아부성 발언이 손해날 것은 없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미국이 손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수용소에 있을꺼라고 까지 말해야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과연 노무현대통령의 방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를 올렸는가? 지각있는 교포들은 불필요한 언어들의 남발이 결코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얻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개탄한다. 그리고 노무현의 대미인식이 너무 나이브하고 대통령 주변에 진정으로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복합적 전략을 구상하는 팀웍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염려하는 것이다.

문제는 가끔 튀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즉흥적 수사학의 실수일까, 아니면 면밀하게 휘둘러진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일까 하는 분석으로 시작되게 마련이다. 노무현이 즉흥성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아무리 즉흥적인 실언으로 보이는 말도 그 배경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을 것이라는 가정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어떠한 계산일까?

노무현은 후보시절 할말은 하겠다느니, 사진찍으러 가지는 않겠다느니, 대등한 한·미관계위에서 자주외교를 펼치겠다느니, 매우 주체적인 발언을 많이하여 젊은이들과 진보세력들의 신망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진보의 허울을 쓴 실속없는 허언(虛言)에 불과했다는 것을 대통령되고 나서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대체적으로 현실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부족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 감각을 가진자들은 대체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노무현의 실속없는 대미 주체적 발언은 결국 미국에게 한국정가를 뒤흔들 수 있는 백지수표만 잔뜩 선사한 꼴이 되고말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미국을 간다 안갈 수 없다! 그래 간다면 그 백지수표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레토릭을 구사하자! 아부하려면 화끈하게 해라! 이것이 현실감각있는 참모들의 충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런 화끈한 발언들이 과연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무엇을 얻어냈나? 남북공조·한미공조의 동등한 중요성을 한·미공조일변도의 편파된 중요성으로 전환시키고, 정경분리의 원칙을 정경연계로 전환시킴으로써 햇볕정책의 주요 두 축을 깨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바랐던 것, 그래서 ‘디스 맨’(this man)아닌 ‘이지 맨’(easy man)의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노무현의 “할말은 함”의 구극적 실상이 되고 만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극단적 아부성 발언이 과거의 공수표를 무산시킴으로써 보다 주체적인 전략을 가능케하는 시발적 계기의 새로운 전술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논의에 정답을 얻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작은 우물에서 바라보는 세계가 아닌 현재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체계에서 바라보는 세계를 명료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을 장악한 권좌의 사람들은 단지 우리가 보수정당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는 일반론으로써는 이해될 수가 없는 매우 독특한 자기들만의 세계인식의 정합적 구조(coherent structure)를 가진 사람들이며, 이들의 조직적 활동은 이미 1997년 봄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은 이미 부시정권을 창출하기 훨씬 이전에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The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라는 기구를 창설하고 치열한 정신의 헌장을 만들었다. 1997년 6월 3일자로 발표된 이 ‘헌장’(Statement of Principles)은 참으로 놀라운 문헌이다. 오늘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태의 원류적 원칙들이 아주 정연하게 기술되어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세계질서는 보통 ‘피낵(PNAC)헌장’이라고 불리우는 이 문헌의 한줄한줄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되는 것이다. 이 헌장에 사인한 사람들의 명단속에 체니(Dick Cheney), 럼즈펠드(Donald Rumsfeld), 울포위츠(Paul Wolfowitz) 등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매파들의 이름들이 영롱하게 아롱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은 우선 레이건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표명하며 클린턴의 치세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개탄한다. 그런데 이 문헌은 민주당정책을 비판하는 것으로 논리의 시발점을 삼지 않는다. 바로 민주당정책을 비판하는 보수파들의 논리가 미국의 세계역할에 관한 전략적 비젼(strategic vision)이나 외교정책에 관한 지도적 원리(guiding principles)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는데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건정권이 소련과 동구를 붕괴시킴으로써 초래한 새로운 세계질서의 국면, 미국에게 더없는 기회와 도전을 허용하는 20세기 미국문명의 성과를 새롭게 이끌어나갈 21세기의 새로운 인식체계가 도무지 보수파들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보수주의에 대한 정당하고도 일관된 이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념이란 과연 무엇일까?

여기 이 문헌의 내용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나 이들이 믿는 것은 미국이 세계제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명백한 사실과, 이 사실과 부합되는 세계역할이다. 사실이란 자연의 질서를 말한다. 그런데 이 자연의 질서는 힘의 균형일 뿐이다. 이 힘의 균형을 어떤 도덕적 이념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자연의 질서 그 자체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강자는 확실하게 강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그래야만 세계질서가 바르게 잡힌다. 도덕적 이념을 빙자한 어중이 떠중이들의 자기기만이 이 세계를 어지럽게 만들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패권주의를 넘어서는 이들의 종교적 신념이며 역사적 소명이다. 이 소명을 위하여 그들은 다음의 4가지 결론을 제시한다.

1. 미국의 글로벌한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국방비지출을 괄목할만하게 증가시키며, 미래를 위하여 미국의 군사력을 끊임없이 현대화시킨다.

2. 민주우방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우리의 이익과 가치에 적대적인 정권에는 도전한다.

3. 정치적·경제적 자유의 대의명분을 국제적으로 선양한다.

4. 우리는 우리의 안보와 번영과 원리에 우호적인 국제질서를 보존하고 확대함에 있어서 미국의 유니크한 역할에 대한 책임을 수용한다.

20세기의 역사는 위기가 닥치기 전에 상황을 해결하며, 현실이 가혹하게 되기 이전에 위기를 해소시키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교훈을 주어왔다는 것이다. 전후 반세기의 미국의 기본정책은 억제정책(Deterrence Policy)이었다. 그런데 이 정책의 가장 큰 전환을 가져온 것이 선제공격론(Preemptive Strike)이며, 이것은 2002년 9월에 부시행정부가 미국의회에 제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보고서의 내용도 1997년 피낵헌장의 결론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 제1조가 국방비의 증가다! 국방비는 어떻게 증가되는가? 이 지구상의 어딘가에 항상 긴장이 고조되어 있어야 하며, 무력적 도발의 가능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 군사력은 어떻게 현대화되는가? 헌무기를 자꾸 팔아치우고 새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재고품 정리를 항상 할 수 있어야 신상품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피낵헌장의 제1의 항목, 현 부시정권의 파우어 스트럭처를 이끌고 있는 핵심 수뇌부가 다같이 신봉하고 있는 이 헌장의 제1항목에 의거하여 북한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매우 명백한 논리적 귀결에 도달케 된다. 현재의 미국이 원하는 것은 북한 핵무장화이며,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남·북한의 화해무드인 것이다. 미국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상황은 북한이 무조건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매우 아이러니컬하고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명철한 세계인식에서 도출되는 에두름이 없는 가장 솔직한 결론인 것이다. 이들의 인식론에 루소는 없다. 단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을 선포하는 홉스만 있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상태란 늑대와 늑대의 싸움(homo homini lupus)일 뿐이다. 이 현실의 인정만이 인간의 평등에 대한 가장 정직한 존중이라는 것이다.

21세기 미국중심의 세계질서 재건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가장 위협적 존재로서 간주되는 것은 역시 중국이다. 중국은 막강한 맨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막대한 강역과 심오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기초과학분야에 있어서도 리더십을 장악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사회주의의 강점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놀라운 사회진보를 이룩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을 견제하는 두가지 방편이 에너지와 군사력이다. 에너지는 이라크전쟁의 성공적 수행으로 일단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군사적 견제는 확연한 명분이 없이는 곤란하다. 그런데 고맙게도 북한이 그러한 명분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갇 블레스 체어맨 킴!(God bless Chairman Kim!)

이제 우리는 노무현의 방미성과에 관하여 그의 아부성 발언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엄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아부가 미국의 엄정한 정책적 현실을 직시하는데서 출발한 것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즉 그의 아부와 무관하게 이미 미국의 정책방향이 확고하게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의 아부의 의미는 센티멘털 어필밖에는 안되는 것인데, 과연 북한을 자극시키고 등돌리게 만드는 발언까지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은 정말 북한을 더 이상 믿을만한 상대로 생각지 않으며, 구시대의 체제와 가치를 고집하기 때문에 결코 파트너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말 그럴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적당히 밀고 땡기고 하면서 사태를 벼랑끝으로 진전시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전은 결코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데 소기의 목적이 있지 않다. 동북아에 있어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의 구축이나 재래식 무기의 판매에 도움을 주는 명분의 원천으로서 한반도의 긴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강화시키려는데 그 본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단적으로 북한의 허세는 이러한 미국매파의 전술의 방편역할을 수행해주는 의도적 제스처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을 제외시키는 북·미간의 밀담은 ‘짜고치는 고스톱’일 수도 있다. 미국매파의 명분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벼랑끝까지 수행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의 체제를 보장받는 위험한 게임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이러한 짜고치는 고스톱의 작태를 파악하고 북한에 경멸감을 표명한 것일까?

피낵의 부소장인 엘렌 보크(Ellen Bork)가 최근(2003. 4. 14.) ‘아시안 월 스트리트’에 기고한 문장도 북한과의 전쟁은 감당키 어려운 요소를 많이 포함하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는 긴장을 유지시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분석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햇볕정책 포기선언이나 북한에 대한 경멸감의 표시는 결론적으로 문제의 해결이나 조국의 미래를 위한 비젼의 제시에 있어서 너무도 치졸한 레토릭에 그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사려깊은 교포와 뜻있는 미국지식인들 사이에 너무도 강하게 남아있다. 미국에 아부하는 방식이 북한을 폄하하는 방식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고력은 지도력의 한계이거나, 논리구사 능력의 함량미달 내지 복합적 전략의 미비함을 드러낸 사태라는 것이다.

위태로운 벼랑끝 게임을 북한과 미국이 합동으로 벌이고 있다고 할지라도, 위험한 궤도에 한번 오르게 되면 북한은 도중하차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진정 북한이 핵무장화된다면 북한의 미래는 암담한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남한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는 벼랑길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과격하게 나가는 것은 남한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노무현이 현명했더라면 미국의 확고한 정책방향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북한의 문제에 관해서는 궁극적으로 핵무기화를 포기하는 선언을 유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염두에 두고 레토릭을 구사했어야 했다.

북한이 최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상대는 같은 동포인 남한밖에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안도감을 주는 자세를 우리는 하시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과 일본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핵포기를 하는 것만이 북한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북한 당사자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경제적 지원이나, 외교관계 정상화나, 체제보장의 인가를 얻어낼 수 있는 핵포기의 타이밍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결국 남한과 중국과 일본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질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와 타협의 의미를 미국은 끝까지 거부하려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냉정하게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딜렘마요 비극이다.

뉴욕에서 도올 김용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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