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단상(1)

by 이용찬 posted May 23, 2003
통일에 대한 단상(1)

-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얻는 교훈 -

흔히 우리 민족사에서 이야기하는 통일은 두 번이다. 신라에 의한 서기 668년의 통일 그리고 고려에 의한 서기 936년의 통일이다. 두 번 다 무력에 의한 통일인데 첫번째 신라에 의한 통일은 외세가 개입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오늘날 특히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도 심정적으로는 신라에 의한 통일을 민족사에 있어서 바람직한 통일로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상 최선이 승리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신라에 의한 통일은 차선 아니 차차선의 승리다.

그래도 신라의 통일이 의미가 없을 수 없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누구나 알다시피 신라는 통일후 통일을 이루기까지 연합했던 당나라의 세력을 적어도 한반도내에서는 축출했다. 따라서 당나라는 고구려라는 강대한 적대세력의 소멸이라는 정치적 소득외에 새로운 영토 혹은 식민지 획득이라는 경제적 소득은 달성치 못하였다.
그 후 고구려의 영토였던 북방은 북방대로 여전히 당나라가 정치적으로 지배하지 못하였고 고구려의 유민들의 계속된 저항과 이후 서기 698년 발해의 성립이 있었음을 보면 사실 당나라는 신라의 통일작업에서 거의 이용당하였다고 밖에는 역사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두 번째는 통일 이후 신라가 하나의 정권으로 유지한 약 250년간의 기간 때문이다. 이 기간 신라가 골품제등 치졸한 차별주의를 버리지 않아 고구려, 백제의 문화와 유민들을 대통합하는데는 실패했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이 기간을 통하여 미약하나마 하나의 민족의식을 태동케 했다는 것은 거의 틀림없고 이를 바탕으로 그 후 고려의 통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책으로만 읽어서 그렇지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런 시대적 상황은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해결과제였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생사를 가름하는 일대 기로였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렇게 되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둥 하는 말들은 그야말로 권투시합에서의 해설자보다도 못한 객담에 불과할 것이다.
사실 당시의 급박한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생존이 중요했을 것이고 그 너머의 어떤 이상을 논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의 통일을 이룬후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과 힘을 합쳐 다시 당나라를 축출한다는 거시적 전략을 신라가 세우고 통일전쟁에 돌입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신라의 지도층들은 오늘날 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신라가 계획하였든 어쨌든 죽을 힘을 다하여 진행된 이 통일전쟁에서 신라는 빛나는 승리를 거머쥐었고 이것은 이제 오늘날의 우리에게 역사적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가증스럽게도(?) 신라는 전쟁전에 이미 당나라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상당히 문화적으로 중국화를 진행시키고 있었고 최대한의 외교적 수사로 당나라 조정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신라의 외교적 목표는 분명했다. 자신들의 파멸 이전에 백제와 고구려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지도부가 과연 거기까지만 내다보고서 움직였을까? 과연 당나라가 그동안 자기들이 흘린 피를 당연히 우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치부하고 백제와 고구려 멸망 이후 순순히 한반도에서 물러나리라고 생각했을까?
당시 신라의 지도부는 적어도 이런 점에서 조선의 사대부들(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군대 파견을 그저 감사하기만 했던, 그리고 그 이후 청나라에 대해 명나라에 의리를 지킨다고 삽질을 서슴치 않았던)에 비해 훨씬 똑똑하고 영악했던 것 같다.  

일단 신라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당나라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신라가 택했던 작전도 결과적으로는 옳았다. 그 당시에는 중국의 어떤 나라도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에서 성공했던 나라가 없었다. 수나라도 당나라도 당시 거대한 습지였다고 기록된 요동반도를 무사히 지나치지 못했다. 설사 습지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끝이 안보이는 평원이 많은 만주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지고 단련된 고구려의 기마병을 당해 냈을 리는 만무하다.
바다건너 한반도에서 합류한 나당 연합군은 평지가 적은 한반도의 이점을 이용 고구려의 강력한 기마병을 피하고 일사천리 평양으로 진격하여 고구려 수뇌부를 제거해 버린다.
(그래도 평양성 공방에 2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당나라가 통일 후에도 안동도호부를 통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한반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노골화하자 신라는 망설이지 않고 당장 대당전쟁에 나선다. 여간한 준비가 있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당나라의 야욕이 드러나기 그 이전에 이미 신라의 지도층은 이런 당나라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빨리 당나라의 원정군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당나라 군대의 수뇌부를 연회에 초청하여 전부 독살해 버렸다고 한다. 이것 또한 당시 당나라의 세력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대담무쌍한 도전이 아닐수 없다.)

당나라로서는 실컷 이용만 당하고 얼굴에 똥 맞은 격이 되었지만 신라는 그것도 뺨치고 배 만져주는 격으로 어찌어찌 넘긴 것 같다. 아무튼 당시 신라의 국제외교력이 대단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중 당시 신라 지도층이 당나라에 바친 국서에 최대한의 아부를 아끼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무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당나라를 실컷 이용하고 그 전쟁동지들을 연회로 꾀어 독살해 버린 신라인들의 영악함을 비난하는 사람도 없다.

국가와 국가간의 생존경쟁에서 개인적 도덕성을 가지고 따진다는 것은 조선왕조 말기의 한심한 사대부들이나 했던 짓들이지 우리 조상들의 강대했던 나라의 지도층들은 결코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 현실은 책상에 앉아서 책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냉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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