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단상(3)
앞서 이야기하였지만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통일은 두 번이다. 신라에 의한 서기 668년의 통일 그리고 고려에 의한 서기 936년의 통일. 두 번 다 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나 오늘날의 우리가 유의해 보아야 할 두 번의 통일의 다른 점 또한 많다.
우선 첫 번째, 통일 당시의 민족 구성원에게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제시되었는가이다. 신라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약하지만 그래도 외세를 적절히 이용하고 축출하여 버림으로서 최소한의 역사적 명분은 세웠다. 고려는 알다시피 무력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적절히 평화포용정책을 구사하여 통일 당시 민족 구성원들의 불만을 최소화하였고 무엇보다도 자주적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역사가들로부터 "민족 최초의 완전한 통일국가 건립"이라는 칭송을 듣고있다.
두 번째, 통일 이후 내란의 재연을 어느 정도나 방지하였는가, 적어도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국가 지도층들이 어떤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였는가인데 사실 이런 점에서는 신라의 통일에 좀 더 많은 점수가 주어져야 할 것 같다. 알다시피 고려는 통일이후 수없이 많은 지방호족들의 반란이나 왕정쿠데타 기도에 시달려야 했다. 원인은 매우 분명하다. 고려의 이른바 평화통일 정책으로 수없이 많은 각양각색의 지방호족들이 살아남아 통일고려의 지도층을 형성하여 권력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력욕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결국 고려는 광종의 대규모 숙청이후 겨우 안정을 찾게된다. 이것을 지금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아서 그렇지 고려의 초기 당시로서는 내란의 가능성이 아주 높은 국가위기의 상황이 계속 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세 번째, 통일 이후의 후대들, 그리고 주변국들에게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하는 통일 이후의 평가에 대한 문제다. 이것은 그 우열이 너무나 명백하다. 우선 나도 앞서 고백했다시피 심정적으로는 신라에 의한 통일을 민족사에 있어서 바람직한 통일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최선이 아닌 차선, 차차선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에 의한 통일은 비록 무력을 바탕으로 했지만 가능한 한 적(후백제, 신라)을 포함한 지방호족을 평화적으로 포용하였고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하여 통일을 달성하였다는 의미에서는 역사상 거의 드문 최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 이 시대에 대하여 엄청나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
우선 우리의 국호에 대해서 인데 통상 그 민족 최초의 국가명을 외국에서는 왕조가 바뀌더라도 계속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이 최초의 통일 왕조 "진(친)"을 영문화한 "차이나"가 그것이고 "프랑스"는 "프랑크"의 명칭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진을 최초의 통일국가로 보는 것은 그 이전 하,은,주를 자기들 한족-중국인의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아마 맞지 않을까? 여기서 더 논할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국에서 부르는 국호가 시대를 막론하고 "신라"가 되지 않고 "코리아"(고려는 틀린 말이다. 고리가 맞다. 당시의 우리 발음으로 가우리가 맞을 것이다. 중국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고를 거의 된 발음인 까오로 읽는데 이렇게 보았을 때 코리아는 우리의 국호를 발음이 맞게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가 된 것은 이런 최초의 자주적 통일에 대한 민족적 공감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한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러시아의 우리동포들은 고려인으로 자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외의 얘기가 되겠지만 중국에 와서 느끼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고구려, 고려에 대하여는 상당한 콤플렉스를, 조선에 대하여는 자기들의 종속국 혹은 조공국이었다는(더 나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 턱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결국 조선시대에 자기나라의 자존심을 송두리채 내팽개치고 유교의 명분론에 입각한 사대외교를 일삼은 업보를 후손들이 톡톡히 치루고 있는 것이다.
샛길로 벗어난 김에 한마디 더하자면 통일 이후의 우리 국호에 대하여도 생각해 볼 필요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역대 국가명중에서 최악의 작품은 아무래도 "한국"이 아닐까? 중국의 고대국가명인 "한"을 그대로 국호로 삼은 이유를 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망조가 들린 조선왕조의 최후의 저항은 제목부터가 잘못 붙인 웃기는 해프닝이었다. (황제국? 곧 망할 판에??)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당시의 환경에서는 할 수없었다고 하더라도 해방이후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왜 이리 기나? 그리고 망한 조선을 다시 써??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워서???), 남은 "대한민국"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역시 무언가 양쪽 다 명칭에서부터서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로 연구해 볼 필요가 많이 있다고 보여진다.
앞서 이야기하였지만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통일은 두 번이다. 신라에 의한 서기 668년의 통일 그리고 고려에 의한 서기 936년의 통일. 두 번 다 무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나 오늘날의 우리가 유의해 보아야 할 두 번의 통일의 다른 점 또한 많다.
우선 첫 번째, 통일 당시의 민족 구성원에게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제시되었는가이다. 신라는 그런 측면에서 매우 약하지만 그래도 외세를 적절히 이용하고 축출하여 버림으로서 최소한의 역사적 명분은 세웠다. 고려는 알다시피 무력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적절히 평화포용정책을 구사하여 통일 당시 민족 구성원들의 불만을 최소화하였고 무엇보다도 자주적 통일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후대의 역사가들로부터 "민족 최초의 완전한 통일국가 건립"이라는 칭송을 듣고있다.
두 번째, 통일 이후 내란의 재연을 어느 정도나 방지하였는가, 적어도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국가 지도층들이 어떤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였는가인데 사실 이런 점에서는 신라의 통일에 좀 더 많은 점수가 주어져야 할 것 같다. 알다시피 고려는 통일이후 수없이 많은 지방호족들의 반란이나 왕정쿠데타 기도에 시달려야 했다. 원인은 매우 분명하다. 고려의 이른바 평화통일 정책으로 수없이 많은 각양각색의 지방호족들이 살아남아 통일고려의 지도층을 형성하여 권력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력욕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결국 고려는 광종의 대규모 숙청이후 겨우 안정을 찾게된다. 이것을 지금 우리가 역사책에서 보아서 그렇지 고려의 초기 당시로서는 내란의 가능성이 아주 높은 국가위기의 상황이 계속 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세 번째, 통일 이후의 후대들, 그리고 주변국들에게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가하는 통일 이후의 평가에 대한 문제다. 이것은 그 우열이 너무나 명백하다. 우선 나도 앞서 고백했다시피 심정적으로는 신라에 의한 통일을 민족사에 있어서 바람직한 통일로 보지 않는다.
적어도 최선이 아닌 차선, 차차선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에 의한 통일은 비록 무력을 바탕으로 했지만 가능한 한 적(후백제, 신라)을 포함한 지방호족을 평화적으로 포용하였고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의하여 통일을 달성하였다는 의미에서는 역사상 거의 드문 최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 이 시대에 대하여 엄청나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
우선 우리의 국호에 대해서 인데 통상 그 민족 최초의 국가명을 외국에서는 왕조가 바뀌더라도 계속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이 최초의 통일 왕조 "진(친)"을 영문화한 "차이나"가 그것이고 "프랑스"는 "프랑크"의 명칭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진을 최초의 통일국가로 보는 것은 그 이전 하,은,주를 자기들 한족-중국인의 국가로 보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아마 맞지 않을까? 여기서 더 논할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외국에서 부르는 국호가 시대를 막론하고 "신라"가 되지 않고 "코리아"(고려는 틀린 말이다. 고리가 맞다. 당시의 우리 발음으로 가우리가 맞을 것이다. 중국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고를 거의 된 발음인 까오로 읽는데 이렇게 보았을 때 코리아는 우리의 국호를 발음이 맞게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가 된 것은 이런 최초의 자주적 통일에 대한 민족적 공감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한다. 놀라운 것은 지금도 러시아의 우리동포들은 고려인으로 자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논외의 얘기가 되겠지만 중국에 와서 느끼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고구려, 고려에 대하여는 상당한 콤플렉스를, 조선에 대하여는 자기들의 종속국 혹은 조공국이었다는(더 나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 턱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결국 조선시대에 자기나라의 자존심을 송두리채 내팽개치고 유교의 명분론에 입각한 사대외교를 일삼은 업보를 후손들이 톡톡히 치루고 있는 것이다.
샛길로 벗어난 김에 한마디 더하자면 통일 이후의 우리 국호에 대하여도 생각해 볼 필요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역대 국가명중에서 최악의 작품은 아무래도 "한국"이 아닐까? 중국의 고대국가명인 "한"을 그대로 국호로 삼은 이유를 나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망조가 들린 조선왕조의 최후의 저항은 제목부터가 잘못 붙인 웃기는 해프닝이었다. (황제국? 곧 망할 판에??)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당시의 환경에서는 할 수없었다고 하더라도 해방이후 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왜 이리 기나? 그리고 망한 조선을 다시 써??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워서???), 남은 "대한민국"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역시 무언가 양쪽 다 명칭에서부터서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로 연구해 볼 필요가 많이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