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또 하나의 北核

by 永樂 posted Jul 14, 2003
<시론>또 하나의 北核


국가의 덕목은 국민의 생명과 함께 재산을 보호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가면 어떻게 될까. 국가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 지금 북한에서 이런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 주목된다. 북핵(北核)만큼이나 경제상황을 주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정부는 얼마전 인민생활공채라는 이름의 채권을 발행했다. 북한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중앙부처는 물론 각 시·도·군에 상무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기관과 기업체, 리·읍·구·동에까지 국채발행 협조사무소를 설치했다. 당국은 또 공채구입을 ‘애국행동’이라고 선전하면서 구입을 적극 권유했다. 건국 이래 채권을 “착취적, 약탈적 성격을 띠는 자본주의적 방식”이라고 규탄해왔던 만큼 참으로 의외의 사태였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채권에는 복권방식을 가미해 1년에 한두번 추첨을 통해 당첨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1등 당첨금은 액면가의 50배로 돼 있다. 한마디로 북한판 로또다. 채권 발행 다음날 하루동안 수억원어치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나? 글쎄~ 정부의 발표문안을 눈여겨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사실 공채가 그토록 인기있다면 일부러 전국 기관 및 기업체 등에까지 협조사무소를 설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로또에 당첨된다해도 현금으로 즉각 지급해주는 것인지 아니면 채권형식으로 저축될 뿐인지, 전혀 설명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채는 10년 만기이면서도 무이자다. 김정일 정권이 1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마당에 2013년까지 무이자로 돈을 맡기라면 아무리 순진한 북한 주민이라해도 쉽게 넘어갈리가 없다. 결국 임금에서 얼마간씩 강제 저축 형식으로 모금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러기에 각 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말단 세포조직에까지 협조사무소를 설치하지 않는가. 독재국가에서 협조는 강제와 동의어다.

북한 정부가 이렇게까지 국민을 몰아세우는 절박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2002년 7월1일 시행된 가격현실화 조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북한의 배급경제는 사실상 파산상태다. 무너진 국영상점의 기능을 대신하는 것은 자유시장 내지 암시장이다. 농민들 역시 농산물을 더 비싼 가격에 내다팔 수 있는 암시장을 선호한다. 여기서는 달러화나 엔화가 자유롭게 유통된다고 한다.

북한정부는 7·1조치를 통해 쌀 1㎏을 북한돈 0.08원에서 44원으로 인상했다. 그러나 시장은 이미 정부의 통제력을 벗어난 상태. 암시장 쌀가격은 4개월만에 80원으로 오르더니 올들어서는 200원까지 급등한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농산물 판매루트를 국영상점쪽으로 되돌리려했던 애초 의도와 달리 농민들은 더욱 더 국영상점으로 돌아갈 동기를 상실한 셈이다.

북한 당국은 7·1가격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것을 북한주민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양의 달러화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지난해말에는 달러화 유통금지령을 내렸다.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한 보복조치라면서 이제부터는 유로화로 대신하겠다는 그럴싸한 핑계까지 댔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유로화가 없다면서 북한 돈으로 환전해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누가 일부러 베개 속 달러화를 꺼내 은행으로 갖고 가겠는가. 더군다나 암시장에서는 달러화가 금지령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유통된다는데.

달러화 회수마저 실패로 끝나자 당국이 마지막 수단으로 꺼낸게 가장 자본주의적인 채권 발행이었다. 하지만 애초의 목적인 유동성 환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궁핍과 악성 인플레가 물러섰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물자공급이 필수적인데 오히려 경제봉쇄는 날로 고삐를 더해가고 있다. 주민 불만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에는 지금 군사용 핵무기 논란만 있는게 아니다. ‘경제 핵폭탄’도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색다른게 있다면 경제핵폭탄은 군사용 핵무기와 반대로 북한 정권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신우 문화일보 논설위원 / 200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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