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더이상 방관말라
최근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남이 우리 문제에 개입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잘못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안보(한반도 평화)와 영토적 관할권 행사 등 우리의 국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조차 이러한 무신경이 일상화된다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중재자 역할 언급, 결과만 좋으면 됐지 다자회담의 형식이 중요치 않다는 사고, 북·미가 싸우면 말리겠다는 발언, ‘당사자간 대화’ 논란 등은 모두 우리 안보 문제의 ‘직접 당사자’성에 대한 인식 결여를 반영하는 사례들이다.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 문제는 ‘조용한 외교’라는 이름 아래 우리 문제를 정공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동안 중국은 탈북자 문제는 조(북한)·중 간의 변경(邊境)질서 관리에 관한 것인 만큼, 한국은 여기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
美 난민법안 '한국적' 인정 하지 않아
우리 정부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이른바 기획망명 사건 외에는 이 문제를 외교 협상의 의제로 삼는 것을 꺼렸다. 이같은 소극적 자세는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후진타오(胡金濤) 국가주석과의 첫 대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탈북자 문제를 방기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실망스러운 대목이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최근 미국의 탈북자 정책 변화이다. 미국 상원은 9일 탈북자들의 미국 정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공화당 샘 브라운백 의원이 제출한 ‘북한난민구호법안’을 수정안 형태로 본회의에서 구두 표결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이 난민지위 적격 여부 심사 때 탈북자들을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탈북자들이 처한 열악한 인권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이처럼 인도적 차원의 보호 및 지원을 제공하는 데 반대할 순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탈북자 문제를 이용해 북한을 압박하려 한다는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를 음모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앞으로 미국의 ‘북한난민구호법안’ 실시와 관련해서 “탈북자들을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가볍게 봐선 안 될 것이다. 이 조항이 갖는 법적 함의와 정치적 파급 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제3조(영토 조항)에 따라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북한 주민은 내국민으로 간주된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탈북자 국내 정착 지원을 위해 97년에 제정된 ‘북한이탈주민법’도 똑같은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북한난민구호법안’의 탈북자 관련 조항은 바로 이러한 우리 헌법 규정에 명백히 저촉된다. 따라서 미국이 향후 이 법의 적용을 강행할 경우 한국의 영토와 국민, 즉 공간적 및 속인적 관할권의 범위를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으로 축소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는 미국이 ‘두 개의 한국’ 정책을 법적으로 공식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도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미국의 국내법만으로…. 이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두 개의 한국' 기정사실화 위험
‘유엔사/연합사 작계 5027’이란 것이 있다. 북한이 남침했을 경우 한·미 연합군이 이를 격퇴하고 반격에 나서 북한 지역을 수복하는 작전 계획을 가리킨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지역은 한국의 영토가 아니므로 수복된 지역에 미군이 독자적으로 군정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북한내 급변 사태가 발생한 경우 우리 정부의 대북 개입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북한은 한국의 일부가 아니다’는 입장이 기정 사실화된다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외과수술적 공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예에 비추어 미국의 탈북자 관련 입법 동향을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넘어갈 경우 대북 정책에 결정적인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탈북자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인권 사안의 하나로서, 정부가 헌법 제2조 2항 재외국민보호 조항에 따라 국제법적·외교적 보호를 제공해야 할 영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중국으로부터는 ‘제3자’라고 배제당하고 있고, 미국으로부터는 탈북자는 ‘비한국인’이라면서 국가영토의 범위까지 일방적으로 축소되는 무시(?)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탈북자를 보호하고 미국내 정착을 허용하는 데 있어 탈북자를 반드시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당위성이 있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정부는 미국에 대해 영토관할권의 범위와 더불어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한 특수관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탈북자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의 통일외교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몫이라고 하겠다.
/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
최근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남이 우리 문제에 개입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잘못들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안보(한반도 평화)와 영토적 관할권 행사 등 우리의 국익과 깊은 관련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조차 이러한 무신경이 일상화된다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중재자 역할 언급, 결과만 좋으면 됐지 다자회담의 형식이 중요치 않다는 사고, 북·미가 싸우면 말리겠다는 발언, ‘당사자간 대화’ 논란 등은 모두 우리 안보 문제의 ‘직접 당사자’성에 대한 인식 결여를 반영하는 사례들이다.
북한 이탈 주민(탈북자) 문제는 ‘조용한 외교’라는 이름 아래 우리 문제를 정공법으로 접근하지 않고 임기응변적으로 대처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동안 중국은 탈북자 문제는 조(북한)·중 간의 변경(邊境)질서 관리에 관한 것인 만큼, 한국은 여기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
美 난민법안 '한국적' 인정 하지 않아
우리 정부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이른바 기획망명 사건 외에는 이 문제를 외교 협상의 의제로 삼는 것을 꺼렸다. 이같은 소극적 자세는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나타났다. 후진타오(胡金濤) 국가주석과의 첫 대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탈북자 문제를 방기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실망스러운 대목이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최근 미국의 탈북자 정책 변화이다. 미국 상원은 9일 탈북자들의 미국 정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공화당 샘 브라운백 의원이 제출한 ‘북한난민구호법안’을 수정안 형태로 본회의에서 구두 표결해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이 난민지위 적격 여부 심사 때 탈북자들을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탈북자들이 처한 열악한 인권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이처럼 인도적 차원의 보호 및 지원을 제공하는 데 반대할 순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탈북자 문제를 이용해 북한을 압박하려 한다는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를 음모론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앞으로 미국의 ‘북한난민구호법안’ 실시와 관련해서 “탈북자들을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가볍게 봐선 안 될 것이다. 이 조항이 갖는 법적 함의와 정치적 파급 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제3조(영토 조항)에 따라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며, 북한 주민은 내국민으로 간주된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탈북자 국내 정착 지원을 위해 97년에 제정된 ‘북한이탈주민법’도 똑같은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북한난민구호법안’의 탈북자 관련 조항은 바로 이러한 우리 헌법 규정에 명백히 저촉된다. 따라서 미국이 향후 이 법의 적용을 강행할 경우 한국의 영토와 국민, 즉 공간적 및 속인적 관할권의 범위를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으로 축소시키는 결과가 된다. 이는 미국이 ‘두 개의 한국’ 정책을 법적으로 공식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도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미국의 국내법만으로…. 이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두 개의 한국' 기정사실화 위험
‘유엔사/연합사 작계 5027’이란 것이 있다. 북한이 남침했을 경우 한·미 연합군이 이를 격퇴하고 반격에 나서 북한 지역을 수복하는 작전 계획을 가리킨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지역은 한국의 영토가 아니므로 수복된 지역에 미군이 독자적으로 군정을 실시할 수 있게 된다. 북한내 급변 사태가 발생한 경우 우리 정부의 대북 개입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북한은 한국의 일부가 아니다’는 입장이 기정 사실화된다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일방적인 ‘외과수술적 공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예에 비추어 미국의 탈북자 관련 입법 동향을 수수방관해선 안 된다. 정부가 이를 방치하고 넘어갈 경우 대북 정책에 결정적인 과오를 범하게 될 것이다. 탈북자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인권 사안의 하나로서, 정부가 헌법 제2조 2항 재외국민보호 조항에 따라 국제법적·외교적 보호를 제공해야 할 영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중국으로부터는 ‘제3자’라고 배제당하고 있고, 미국으로부터는 탈북자는 ‘비한국인’이라면서 국가영토의 범위까지 일방적으로 축소되는 무시(?)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탈북자를 보호하고 미국내 정착을 허용하는 데 있어 탈북자를 반드시 한국 국민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당위성이 있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정부는 미국에 대해 영토관할권의 범위와 더불어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한 특수관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탈북자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의 통일외교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몫이라고 하겠다.
/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