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권의 레드 라인
정치적 상상력과 의문의 합리성이라는 차원에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낙마 위기가 갖고 있는 근원을 생각하면서 떠올려보는 것은 ‘안희정’이라는 인물이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동업자’라고 표현한 안씨가 현재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자리에 있다면 어떤 정치적 상황에 직면해 있을까. 여전히 청와대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민주당과 정 대표가 알아서 할 문제다. 검찰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고 중립을 외치고 있을까. 노 대통령이 정 대표에 대해서도 자신의 ‘동업자’라고 했다면, 검찰이 출석 예정일 하루전에 집권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을 요청할 수 있을까.
까마득하게 먼 ‘안희정의 추억’을 뜬금없이 들이대려는 것이 아니다. 안씨가 문제가 된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은 불과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고, 나라종금에서 받았다고 하는 3억9000만원도 어느 한 푼 서민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있지 않은 돈이 없다. 정 대표가 대선자금과 대표 경선자금으로 받았다는 4억2000만원과 마찬가지다. 그 때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의 실세들은 검찰의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데도 안씨의 무죄를 ‘열변’했다. 그런 ‘안희정 구하기’분위기가 검찰에 흘러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고, 마침내 강금실 법무장관이 청와대의 침묵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불과 한달전의 일이었다.
이런 지적을 ‘정대철 구하기’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금 이 정권이 강조하는 원칙의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다.
검찰이 한 달 사이에 칼날 검찰로 바뀌었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그래야만 된다고 국민은 바라기 때문에 지금 민주당이 ‘정대철 감싸기’를 위해 검찰에 간섭하려는데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바뀐 쪽은 청와대인 것으로 보인다. 더 정직한 눈으로 보면 청와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차별 대응하는 것이 눈에 띈다. 청와대가 진정으로 일관된 정직의 잣대를 갖고 있다면 정 대표의 정계은퇴까지 거론하다가 정대표가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왜 부랴부랴 카페에서 만났는가. 그런 미묘한, 때로는 노골적인 편가르기와 자기논리가 여권을 이 지경으로 분열하게 만들고, 사회를 친노·반노로 나누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더니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에 대해 “지난번 대선은 유례없이 깨끗한 선거였다”고 자평했다. 그렇게 평가할 만한 기준은 무엇인가. YS·DJ 정권 때 대선자금 문제만 나오면 “나는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깨끗한 선거”라고 했던 그런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 논리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반복하는 모습에서 정치가 달라졌다고 믿을 수는 없다. 여기에 내면적으로는 자기편 봐주기에는 절대 양보하지 않고 있다. 양 김씨들과는 달리 가신이 없다더니 그보다 몇배나 많은 386 동업자들이 청와대로 들어간 것은 이젠 뉴스도 아니다. 수많은 선거 공신들이 벼락출세의 끈을 잡아 행정부, 정부투자기관, 공기업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요즘 주변에서는 원칙이 무너져 내린 이 나라에서 말그대로 짜증이 나서 살기 어렵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거리는 시위대로 넘쳐나고 시내 택시 정류장이든 길거리 어디든 손님이 없는 빈 택시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포장마차 주인들이 텅빈 포장 밑에서 나누는 대화는 끔찍하다. 지금 국민은 원칙없는 국정과 숨막히는 안보·경제 상황에 절망할 지경에 있다.
국민이 짜증을 자제하지 못할 정도라면 정부는 이른바 위험선(red line)을 넘었다. 벌써 ‘탈노무현’을 해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얘기가 여권에서부터 들리고 있다. 청와대, 집권당, 행정부 모두 원칙을 지키고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이는 체제로 다시 짜야 한다. 몇 개월만 더 허송하면 새 출발의 기회마저 놓친다. 노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바꿔야 한다. 지금이 바로 결단을 내릴 때이다.
/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
정치적 상상력과 의문의 합리성이라는 차원에서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낙마 위기가 갖고 있는 근원을 생각하면서 떠올려보는 것은 ‘안희정’이라는 인물이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동업자’라고 표현한 안씨가 현재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자리에 있다면 어떤 정치적 상황에 직면해 있을까. 여전히 청와대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민주당과 정 대표가 알아서 할 문제다. 검찰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고 중립을 외치고 있을까. 노 대통령이 정 대표에 대해서도 자신의 ‘동업자’라고 했다면, 검찰이 출석 예정일 하루전에 집권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출석을 요청할 수 있을까.
까마득하게 먼 ‘안희정의 추억’을 뜬금없이 들이대려는 것이 아니다. 안씨가 문제가 된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은 불과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고, 나라종금에서 받았다고 하는 3억9000만원도 어느 한 푼 서민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있지 않은 돈이 없다. 정 대표가 대선자금과 대표 경선자금으로 받았다는 4억2000만원과 마찬가지다. 그 때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의 실세들은 검찰의 수사가 한창 진행중인데도 안씨의 무죄를 ‘열변’했다. 그런 ‘안희정 구하기’분위기가 검찰에 흘러가지 않았을 리가 없었고, 마침내 강금실 법무장관이 청와대의 침묵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불과 한달전의 일이었다.
이런 지적을 ‘정대철 구하기’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금 이 정권이 강조하는 원칙의 문제를 얘기하려는 것이다.
검찰이 한 달 사이에 칼날 검찰로 바뀌었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그래야만 된다고 국민은 바라기 때문에 지금 민주당이 ‘정대철 감싸기’를 위해 검찰에 간섭하려는데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바뀐 쪽은 청와대인 것으로 보인다. 더 정직한 눈으로 보면 청와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차별 대응하는 것이 눈에 띈다. 청와대가 진정으로 일관된 정직의 잣대를 갖고 있다면 정 대표의 정계은퇴까지 거론하다가 정대표가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왜 부랴부랴 카페에서 만났는가. 그런 미묘한, 때로는 노골적인 편가르기와 자기논리가 여권을 이 지경으로 분열하게 만들고, 사회를 친노·반노로 나누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더니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에 대해 “지난번 대선은 유례없이 깨끗한 선거였다”고 자평했다. 그렇게 평가할 만한 기준은 무엇인가. YS·DJ 정권 때 대선자금 문제만 나오면 “나는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깨끗한 선거”라고 했던 그런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 논리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반복하는 모습에서 정치가 달라졌다고 믿을 수는 없다. 여기에 내면적으로는 자기편 봐주기에는 절대 양보하지 않고 있다. 양 김씨들과는 달리 가신이 없다더니 그보다 몇배나 많은 386 동업자들이 청와대로 들어간 것은 이젠 뉴스도 아니다. 수많은 선거 공신들이 벼락출세의 끈을 잡아 행정부, 정부투자기관, 공기업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요즘 주변에서는 원칙이 무너져 내린 이 나라에서 말그대로 짜증이 나서 살기 어렵다는 사람이 너무 많다. 거리는 시위대로 넘쳐나고 시내 택시 정류장이든 길거리 어디든 손님이 없는 빈 택시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포장마차 주인들이 텅빈 포장 밑에서 나누는 대화는 끔찍하다. 지금 국민은 원칙없는 국정과 숨막히는 안보·경제 상황에 절망할 지경에 있다.
국민이 짜증을 자제하지 못할 정도라면 정부는 이른바 위험선(red line)을 넘었다. 벌써 ‘탈노무현’을 해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얘기가 여권에서부터 들리고 있다. 청와대, 집권당, 행정부 모두 원칙을 지키고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이는 체제로 다시 짜야 한다. 몇 개월만 더 허송하면 새 출발의 기회마저 놓친다. 노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바꿔야 한다. 지금이 바로 결단을 내릴 때이다.
/ 윤창중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