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같이 무역업을 중개로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객의 신뢰, 정보의 정확성과 의사결정의 신속성이라는 내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게 바로 그 나라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인데,급박하는 국제경제의 현실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면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합니다. 또한 그 나라의 정치적인 현실보다는 통상의 자유가 얼마나 확보가 되어있느냐에 따라 고객과 거래를 할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제2편 베네치아와 피렌체 - 이슬람과의 대결(1)
지중해유역의 지도를 펼쳐 이태리란 나라의 위치를 살펴보면, 그 지정학적인 위치가 참으로 절묘합니다. 북으로는 독일이 있고 서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있고 동으로는 터키,그리스 남으로는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세계와 접해있습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에 이들은 모두 이태리를 차지하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이태리반도를 차지하는 것이 유럽을 집어삼킬수 있고, 아랍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위치는 하나의 완충지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를 살아남게 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제국의 붕괴후에 이민족의 약탈과 방화로 팍스 로마나가 붕괴되고, 유럽은 대 혼란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때 아랍세계는 무하메드의 헤지라 이후 이슬람이라는 거대종교로 무장하여 분열되어 있던 아랍세계를 통일한 사라센제국의 출현이라는 호기를 맞게 됩니다. 원래 아랍민족은 유목민족입니다. 유목민족이라 함은 통일이 되어도 정착민족과는 달리 언제라도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흩어질 수 있는 민족들입니다. 오늘날의 쿠르드족이나 베두인족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유목민족을 끊임없이 잡아두는 방법을 강구하던 아랍인들은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힘을 쇠퇴시키지 않으면 언제라도 분열되기 때문에 사라센제국은 유럽의 침공이란 카드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들은 단숨에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일하고 스페인까지 삼켜버렸고 그 여세를 몰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왕국까지 쳐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투르전투에서 프랑크에게 어이없이 패하여 그 세력이 꺽이게 되었고 결국 사라센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크왕국은 졸지에 유럽의 수호자가 되어 오늘날의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북부지방까지 차지하여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였지만 그 힘도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분열되었고 다시 유럽세계는 훈족과 고트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이태리에서 태어난 나라가 바로 이태리의 도시국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도시국가를 선택하였습니다.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주변 강대국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이들로서는 강요받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태리를 대표하는 꽃의나라 피렌체, 물의 나라 베네치아, 제노바, 파도바 그리고 명분뿐이었던 나폴리공국도 이 시기에 탄생한 나라들입니다. 흔히 이태리의 문화를 경험하려면- 즉 관광객들은 피렌체를 가보고, 이태리의 부를 보려면 - 즉 장사를 배우려면 베네치아에 가보란 말이 있습니다. 전 애석하게도 피렌체는 가보지 못하였고 다만 취재차 베네치아에 두번 방문하였을뿐입니다.
베네치아란 나라.. 과거 유럽과 아랍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통상 하나만으로 1000년간 부의 영화를 누렸던 나라입니다. 지금이야 관광지로서 과거의 영화야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화려함만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성마르코 성당의 화려함과 수많은 성유물들, 리알토다리, 원수관저인 두칼레궁전의 호사스러움에서 그들의 과거의 번영을 짐작할 뿐입니다. 갯벌위에 세워진 바다의 도시라 그런지 철도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에 들어갔을때 유일한 운송수단은 곤돌라라고 불리는 배밖에 없었습니다. 물의 도시답게 모든 길은 수로였고 자동차란 그림자도 볼 수 었었던 도시. 7년전의 방문이었지만 아직도 그 아름다운 도시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 도시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극한 경지에 몰려도 살아남는게 인간이란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인구 15만정도로써 그들이 전성기에 가졌던 부가 유럽대륙의 부보다 컸고, 유럽에서 전쟁도 베네치아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치룰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란 항시 라이벌이라는 존재하는 법. 제노바라는 강적이 없었으면 아마 베네치아라는 나라도 성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베네치아는 통상으로 성립한 나라입니다. 중세의 통상이라 함은 바로 향신료였습니다. 이 향신료의 대부분이 후추였고요. 후추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여 정기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따라 무역과 국가의 성패가 달렸습니다. 하지만 후추란 것은 멀리 인도와 인도차이나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니 당연히 공급받기 위해서는 사막과 아랍세계를 건너와야 했습니다. 신대륙의 발견도 아랍인들의 통행로가 없는 신항로를 헤메다가 제노바인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중세의 음식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과는 판이합니다. 중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물의 저장이었습니다. 그들이 먹었던 것은 밀가루 빵과 절인고기와 생선이 주였습니다. 후추란 것을 맛 본이상 중세인들은 후추없이는 음식물을 조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신선한 야채라곤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들의 식생활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후추를 확보하기 위해선 유럽은 그 댓가를 지불해야 했고 그 댓가물을 싣고 다닌 사람들이 바로 베네치아, 제노바,피사, 아말피였습니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알렉산드리아 등 아랍세계의 항구에서 후추교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장사란 예나 지금이나 신용이 생명입니다. 물건을 파는 자,사는 자간에 원만한 관계가 없으면 거래란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비자인 유럽과 공급자인 아랍인들과 줄타기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통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로의 확보입니다. 따라서 아랍인들은 적대시한다는 것은 곧 국가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나빠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태리 사람들을 보면 참 별납니다. 피렌체인과 제노바사람 베네치아인들은 공통점이 없고 성격도 참 판이합니다하다.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입니다. 오늘날 축구를 봐도 첨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다음편에 설명하고 오늘은 여기까지....하겠습니다...
다음편에서는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성장과 피렌체라는 이태리 최대의 공국이 한사람의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자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나쁜 인물로 평가받는 로렌조 메디치에 대해서 기술하겠습니다. 피렌체의 멸망이 가져온 이태리의 분열등에 관해 기술하겠습니다. 그리고 축구와 피자이야기도 곁들이고 오늘날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이태리 명품의 진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태리편을 마칠까 합니다....
제2편 베네치아와 피렌체 - 이슬람과의 대결(1)
지중해유역의 지도를 펼쳐 이태리란 나라의 위치를 살펴보면, 그 지정학적인 위치가 참으로 절묘합니다. 북으로는 독일이 있고 서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있고 동으로는 터키,그리스 남으로는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세계와 접해있습니다. 로마제국 붕괴 이후에 이들은 모두 이태리를 차지하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이태리반도를 차지하는 것이 유럽을 집어삼킬수 있고, 아랍을 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위치는 하나의 완충지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를 살아남게 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제국의 붕괴후에 이민족의 약탈과 방화로 팍스 로마나가 붕괴되고, 유럽은 대 혼란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때 아랍세계는 무하메드의 헤지라 이후 이슬람이라는 거대종교로 무장하여 분열되어 있던 아랍세계를 통일한 사라센제국의 출현이라는 호기를 맞게 됩니다. 원래 아랍민족은 유목민족입니다. 유목민족이라 함은 통일이 되어도 정착민족과는 달리 언제라도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흩어질 수 있는 민족들입니다. 오늘날의 쿠르드족이나 베두인족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유목민족을 끊임없이 잡아두는 방법을 강구하던 아랍인들은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힘을 쇠퇴시키지 않으면 언제라도 분열되기 때문에 사라센제국은 유럽의 침공이란 카드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들은 단숨에 북아프리카 지역을 통일하고 스페인까지 삼켜버렸고 그 여세를 몰아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왕국까지 쳐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투르전투에서 프랑크에게 어이없이 패하여 그 세력이 꺽이게 되었고 결국 사라센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크왕국은 졸지에 유럽의 수호자가 되어 오늘날의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북부지방까지 차지하여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였지만 그 힘도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분열되었고 다시 유럽세계는 훈족과 고트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이태리에서 태어난 나라가 바로 이태리의 도시국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도시국가를 선택하였습니다.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면 주변 강대국들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이들로서는 강요받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태리를 대표하는 꽃의나라 피렌체, 물의 나라 베네치아, 제노바, 파도바 그리고 명분뿐이었던 나폴리공국도 이 시기에 탄생한 나라들입니다. 흔히 이태리의 문화를 경험하려면- 즉 관광객들은 피렌체를 가보고, 이태리의 부를 보려면 - 즉 장사를 배우려면 베네치아에 가보란 말이 있습니다. 전 애석하게도 피렌체는 가보지 못하였고 다만 취재차 베네치아에 두번 방문하였을뿐입니다.
베네치아란 나라.. 과거 유럽과 아랍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통상 하나만으로 1000년간 부의 영화를 누렸던 나라입니다. 지금이야 관광지로서 과거의 영화야 그 도시가 가지고 있는 화려함만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성마르코 성당의 화려함과 수많은 성유물들, 리알토다리, 원수관저인 두칼레궁전의 호사스러움에서 그들의 과거의 번영을 짐작할 뿐입니다. 갯벌위에 세워진 바다의 도시라 그런지 철도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에 들어갔을때 유일한 운송수단은 곤돌라라고 불리는 배밖에 없었습니다. 물의 도시답게 모든 길은 수로였고 자동차란 그림자도 볼 수 었었던 도시. 7년전의 방문이었지만 아직도 그 아름다운 도시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 도시를 바라보면서 인간은 무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극한 경지에 몰려도 살아남는게 인간이란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인구 15만정도로써 그들이 전성기에 가졌던 부가 유럽대륙의 부보다 컸고, 유럽에서 전쟁도 베네치아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치룰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란 항시 라이벌이라는 존재하는 법. 제노바라는 강적이 없었으면 아마 베네치아라는 나라도 성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베네치아는 통상으로 성립한 나라입니다. 중세의 통상이라 함은 바로 향신료였습니다. 이 향신료의 대부분이 후추였고요. 후추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여 정기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따라 무역과 국가의 성패가 달렸습니다. 하지만 후추란 것은 멀리 인도와 인도차이나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니 당연히 공급받기 위해서는 사막과 아랍세계를 건너와야 했습니다. 신대륙의 발견도 아랍인들의 통행로가 없는 신항로를 헤메다가 제노바인 크리스토퍼 콜롬버스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중세의 음식은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과는 판이합니다. 중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물의 저장이었습니다. 그들이 먹었던 것은 밀가루 빵과 절인고기와 생선이 주였습니다. 후추란 것을 맛 본이상 중세인들은 후추없이는 음식물을 조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신선한 야채라곤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들의 식생활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후추를 확보하기 위해선 유럽은 그 댓가를 지불해야 했고 그 댓가물을 싣고 다닌 사람들이 바로 베네치아, 제노바,피사, 아말피였습니다.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알렉산드리아 등 아랍세계의 항구에서 후추교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원래 장사란 예나 지금이나 신용이 생명입니다. 물건을 파는 자,사는 자간에 원만한 관계가 없으면 거래란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비자인 유럽과 공급자인 아랍인들과 줄타기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통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로의 확보입니다. 따라서 아랍인들은 적대시한다는 것은 곧 국가의 멸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나빠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태리 사람들을 보면 참 별납니다. 피렌체인과 제노바사람 베네치아인들은 공통점이 없고 성격도 참 판이합니다하다.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입니다. 오늘날 축구를 봐도 첨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다음편에 설명하고 오늘은 여기까지....하겠습니다...
다음편에서는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성장과 피렌체라는 이태리 최대의 공국이 한사람의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만 자국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나쁜 인물로 평가받는 로렌조 메디치에 대해서 기술하겠습니다. 피렌체의 멸망이 가져온 이태리의 분열등에 관해 기술하겠습니다. 그리고 축구와 피자이야기도 곁들이고 오늘날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이태리 명품의 진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이태리편을 마칠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