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는 세계사....이탈리아 -4

by 김준섭 posted Jul 29, 2003
전에 써놓았던 글을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다시 기억을 되살려 정리해 봅니다. 우리는 아마 세계사를 배우면서 백인들 위주로 유럽의 역사를 배워왔을 겁니다. 저 또한 그리 배웠구요.

현지 트리폴리에서 2년넘게 생활하면서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것이 아랍인들에게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서구의 중심으로 쓰여진 아랍의 역사를 배워왔기에 아마 저는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랍인부터 인식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현재 아랍인이라 하면 유태인과 이디오피아인을 제외한 나머지 셈족이 이슬람으로 통합되어진 민족을 아랍인이라고 하면 됩니다. 좁은 의미의 아랍인은 구약성경에도 나오는데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목하며 떠돌던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팔레스타인에서 갈라져 나온 이후에 그 후손들이 크게 불어나면서 오늘날 아랍인이라고 불리는 통합민족의 중심축이 됐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인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이란을 말하는데 아리아인의 원조격이 되는 원조 아리안족니다. 즉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유럽과 인도지배층,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이 모두 한뿌리입니다. 물론 서유럽은 이를 인정치않고 있습니다. 아랍인은 우리와 같은 황인종이 아닙니다. 셈족이 아예 황인종이 아니며 슈메르인도 역시 셈족 아닙니다. 현재의 아랍인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로 이슬람교도의 중심이 되며, 넓게는 중동.북아프리카에 걸처 살고 있는 이슬람국가의 사람들 전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페르시아(이란)인은 현재는 같은 이슬람교도이지만, 인종적으로도 아랍인들과 다르고, 역사적으로도 아랍인들과 오랜 갈등관계를 보여왔으며, 최근까지도 이란/이라크의 전쟁에서 보았듯이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슬람을 종교의 개념이고 아랍은 언어의 개념이라 보면 이해가 더 빠르실겁니다. 물론 현재의 터어키가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후손이기에 이들도 이슬람이지만 아랍인로는 보지 않습니다.

이슬람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교·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인 이슬람은 전지전능의 신 알라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마호메트에게 계시되었으며 유대교,그리스도교 등 유대계의 여러 종교를 완성시킨 유일신 종교임을 자처합니다.

유럽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마호메트교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위구르족을 통하여 전래되었으므로 회회교 또는 청진교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이슬람교 또는 회교라고 부릅니다.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알라)를 믿습니다. 또한, 모든 성서를 믿고, 모든 선각자들(훌륭한 사람)을 믿습니다. 이 선각자들을 무하메드라고 부릅니다.

특이하게도 예수님을 이 무하메드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는 구약성서를 믿지만 신약성서를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천년간 기독교와 이슬람간에 십자군전쟁을 비롯한 종교간에 많은 분쟁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파란눈에 노란색머리의 유럽사람이 아니라 현재의 이슬람교도들과 더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이는 성경을 고쳐가면서 까지 백인 우월주의를 만든 미국의 작품입니다.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사후, 교단은 신도의 장로 중에서 후계자인 칼리프를 선출하면서 그 후 아라비아반도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7세기 중엽경에 현재의 시리아 ·이라크 ·북부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집트 등을 차례로 정복하고 여러 곳에 기지도시를 건설하였으며. 7세기말에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다시 711년부터는 이베리아(에스파냐) 반도에 침입하였고, 동쪽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까지 그 지배력이 미쳤습니다.

한때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중추부까지 진출하여 푸아티에 북방의 싸움에서 패퇴하였지만, 동방에서는 탈라스강(江)의 싸움에서 당군을 대파하고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제 유럽과 아랍의 대결이 시작된 것입니다. 힘의 우위를 확보한 아랍과 다시 게르만족의 칩입에 유럽은 풍전등화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랍도 내분과 투르크족의 성장으로 그 힘을 점차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야기가 다시 길어졌습니다. 중세 해양 도시 국가의 대표격인 제노바와 베네치아로서 이들 두 나라는 아랍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성장 쇠퇴하였습니다 .즉 지중해의 중계무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두 국가는 상당히 경쟁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 성향으로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제노바와 모든 것을 국가의 통제 아래 조직의 효율성을 강조한 베네치아를 보면 오늘날의 홍콩과 싱가포르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두 도시국가는 초기엔 제노바가 힘의 우위를 확보하여 베네치아를 존폐위기까지 몰고 갔지만 결국 제노바는 내정의 불안(두가문간의 지배력싸움)으로 내리막 길을 걸었던 반면, 베네치아는 십자군 전쟁을 기화로 제노바를 누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에 필요한 수송선과 전투선을 제공하는 대신에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의 무역 독점권을 요구합니다. 당시 제노바의 국세하락으로 수송선을 구할 수 없었던 로마교황청에서는 그 안을 수용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4차 십자군 운동은 초기의 목적도 상실한채 베네치아에 지불해야할 돈도 마련하지 못하였고 병사조차 충분치 않았기에 결국 베네치아의 요구에 따라 십자군측에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줄 것을 요구하게 되고 돈을 지불할 수 없었던 십자군은 결국 베네치아의 이 안을 수용하여야만 했습니다.

결국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탈환한다던 십자군은 오히려 그리스도국인 동로마의 수도를 점령하고 라틴제국을 창설하게 되는 초유의 이상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결국 베네치아라는 도시국가의 경제론에 십자군이 끌려다니고 말았습니다.

당시 제노바나 베네치아는 그야말로 해상에서는 왕이었습니다. 그들의 전성기 시절 항해술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고 그들의 항해술은 워낙 뛰어나 유럽 내에서도 표본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한 예로 세계의 절반 이상을 발견하고, 지리상의 위대한 발견을 해내고, 신항로의 개척을 앞장서서 했던 포르투갈을 아실겁니다. 그 포르투갈 선원들이 쓰는 항해용어는 대부분이 중세 이탈리아어에서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근세의 해상왕국 영국을 탄생시켰습니다. 현재 영국의 항해용어는 전세계에 퍼져나가서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제노바인들은 뱃사람으로서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수 있었습니다. 제노바 선원인 콜럼버스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무역이 성행했고 해적이나 사략선의 습격을 받아도 혼자서 잘 헤쳐나갔습니다. 이에 비해 베네치아 인들은 항해 하나 하더라도 조합을 세우고 상선대를 만들고, 항해 루트를 짜는등 계획이 치밀했습니다. 이것이 결국 100년전쟁에서 제노바를 물리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베네치아인의 해상 무역은 굉장히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진 조직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베네치아의 영어발음이 베니스입니다.

베네치아는 통상로의 확보를 위하여 이교도국가의 한가운데인 크레타섬과 키프러스(사이프러스)섬에 항해기지를 세웁니다. 물론 카톨릭 국가인 베네치아로서는 그들의 존폐를 위해 즉 안전한 교역을 위해 로마교황청이 뭐라하든 전혀 개의치 않고 이렇게 계획적인 행동을 해나가면서 그들의 천년왕국을 지켜나갔습니다.

당시 서유럽은 아랍에 비해 발전이 늦었기 때문에 해상무역을 해서 이윤을 크게 남기려면 동방의 향료, 비단, 융단, 상아, 노예 등 진귀한 물품을 무역해야 했고, 제노바나 베네치아 둘다 흑해 연안의 콘스탄티노플, 카파, 트라브존, 타나, 시노페 등의 항구도시를 상업기지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생존을 위해 각축전을 벌여나가게 되고,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서로 사이가 안좋아지고 두국가간에 해적질은 기본이 되고 서로 중상모략도 일삼게 됩니다. 완전히 견원지간이 됩니다.

그러다가 13세기경 갑자기 베네치아가 우세를 띠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까도 일부 설명드렸듯이 베네치아의 공화국 대통령 단도로가 계략을 써서 4차 십자군을 회유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게 합니다, 결국 단도로의 계책으로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어 베네치아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베네치아인들은 제노바인들을 추방합니다. 그러다보니 제노바인들의 흑해무역은 세력이 약해졌고- 콘스탄티노플은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지금도 흑해에서 지중해로 빠져나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가야 됩니다.

무역역의 황금거점을 잃게된 제노바는 결국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흑해무역도 몇세기가 지나서 완전히 망해버립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때 베네치아인들은 발빠르게 이미 무역 거점을 동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로 옮겼습니다. 동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야파(현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같은 도시의 무역도 흑해 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제노바는 그리 하지 못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몬순을 이용한 아랍인의 무역의 총 거점지였습니다. 동방에서 오는 육두구나 향료가 모두 이곳에서 모였습니다. 후추나 육두구는 당시 고기가 주식이던 유럽인에게는 절대적인 필수품이었지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 고기를 보관하려면 후추를 이것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황금값보다 비쌌습니다. 이곳에 모인 향료를 베네치아인들이 산다음 유럽에 가져다 파는 무역을 하고 있었지만 베네치아인이 독점하는 상태라 제노바인은 낄 자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는 제노바인이 이스탄불에서 무역하는 건 금지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교도가 제 나라 수도까지 와서 무역하는 것은 싫었던 모양입니다. 흑해무역은 이로써 종결되었고 제노바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노바인들은 스페인이나 포르투칼로 건너가게 되며 결국 대항해 제국들이 이들을 바탕으로 해군력을 성장시켜 결국은 베네치아를 쇠퇴시키고 맙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이 상황때문에 신대륙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 제노바인들은 동쪽이 막혀서 서쪽으로밖에 나갈수가 없었기때문에- 그래서 제노바인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빈센테 야네즈 핀손 같은 사람이 베라크루즈를 발견한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운명이 이렇게 엇갈린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 마인드의 차이와, 조직력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 볼수 있습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관한 이야기는 시오노나나미의 바다의도시이야기를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통상을 주로 하여 사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읽고 참고해야하는 책입니다..

이제 피렌체로 넘어가겠습니다.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국가라면 피렌체는 아시다시피 마이아벨리의 나라로서 르네상스의 근간을 이룬 도시국가입니다.

피렌체는 로마제국시대부터 카피아가도의 거점으로서 12세기 무렵부터 산업, 특히 모직물공업이 발전하여 많은 직물상인이나 귀금속상인이 각기 조합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번영하였고 피렌체는 유럽의 상공업,금융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피렌체를 설명하려면 메디치 가문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 메디치가문은 15세기 초부터 메디치가가 시정에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는데, 코지모 및 손자인 대로렌츠 - 로랜초 데메디치 -는 실질적으로 메디치가의 독재체제를 확립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으로서 그 황금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메디치가문은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보호자로서뿐만 아니라, 유럽 굴지의 금융업자로서, 또 피렌체공화국과 토스카나공국의 지배자였습니다. 원래 피렌체 동북의 지방 출신인 메디치가는 상업으로 성공하여 14세기부터 피렌체의 정치계에 등장하였습니다. 조반니 데 비치는 상업과 교황청의 은행가로서 거금을 모으자, 이를 발판으로 정치계에 투신하여 활약하였고, 그의 아들 코시모 데 메디치는 구지배층과 대립하여 수년동안 추방을 당하였지만 민중의 지지와 상업자본에 힘입어 정권을 장악하고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부의 칭호를 받았으며 그는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우는 한편, 교황청의 재정을 장악하여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며, 사재를 시정에 투입하고 학예를 보호 ·장려하였습니다.르네상스의 근간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일명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때에 피렌체와 메디치가의 번영은 정점에 달하고, 그의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피렌체가 이탈리아 정치의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였습니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문화가 최고조에 이른 것도 이 때이고, 인문주의적 교양을 폭넓게 지녔던 그는 학예, 특히 철학 연구를 장려하였습니다. 하지만 피렌체도 로렌초데메디치의 사후 이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근데 르네상스의 위대한 후원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였지만 자국에서는 그리 인정을 못받습니다. 원래 이탈리아인들은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렌초 데 메디치를 위대한 독재자라 비아냥거립니다. 겉으로는 공화제였지만 실질적으로 1인독재시대의 피렌체는 막강하였지만 그의 사후에 펼쳐진 이태리 공화국들의 뼈아픈 역사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 평가받습니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비록 여러 도시국가로 이루어졌지만 그들이 소유한 부는 막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웃의 프랑스,독일의 못사는 육지형국가의 표적이 되었으니까요..

결국 그의 사후 뛰어난 후계자가 없었기에 메디치가문은 서서히 쇠했고 결국 피렌체도 쇠퇴하였으며 그 파급효과로 유럽열강의 각축장이 되버린 이탈리아는 하나의 통일국가가 되기위해서는 많은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었고 많은 피를 흘려야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축구와 피자이야기 해드릴께요..유럽의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이곳 사람들 대부분 하루를 축구이야기로 시작해서 끝을 맺습니다..지난 월드컵때 한국에 역전패한 악몽은 아직도 이사람들에겐 치욕일겁니다..세리에A로 대표되는 이 나라의 자국리그를 보면 전쟁터를 방불합니다. 인터밀란이니 AC밀란,유벤투스등 세계 명문클럽을 보유했지만 이들의 리그를 보면 상당히 거칩니다. 특히 홈에서의 패배는 거의 선수들에게는 비상사태가 걸릴 정도입니다..이 축구에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이어온 도시국가들의 경쟁이 그대로 축구에 담겨져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 유럽의 강대국과 손잡고 동포를 짓밟았던 그 기억이 축구에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아직도 프랑스나 독일에 지면 별 반응이 없지만 자국의 라이벌에 지면 우리가 일본전 패배보다 더 심한 난리를 칩니다. 한국에 이들 표현대로 억울하게 졌다고 생각했을때 돌아가던 축구선수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유색인종에게 특히 어이없게도 한민족에게 두번을 졌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피자 이야기입니다. 피자란 뜻이 원래 둥글고 납작하다는 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피자는 원래 나폴리 음식으로 시작되었지만 현재이탈리아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며, 나폴리나 이탈리아에서 상품화된 피자는 이제 미국에서 더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피자의 원조는 18세기에 엔쵸비와 마늘, 기름등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이며 토마토를 사용하지 않고 올리버와 양파를 사용합니다. 이태리피자는 원래 전채요리 즉 에피타이저이기에 빵도 아주 얇습니다. 참 담백한 것이 아주 맛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호떡이라 할까요..

반면 미국식 피자는 이태리인들이 건너가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주식으로 먹게 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그래서 빵도 커지고 토핑도 듬뿍 치즈도 듬뿍 들어갔죠. 언젠가 미국의 피자헛이 이태리로 진출한다고 했었는데 진짜 장사하고있나 모르겠습니다. 이태리피자는 엄청 고열의 오븐에서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구워내기 때문에 밀가루판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답니다..

다음엔 대항해시대의 제국 스페인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스페인의 근대역사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가장 한국인과 민족성이 비슷한 민족이기도 합니다..다음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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