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머리를 비우고 가슴으로 채우려 노력합니다. 제 생각의 잣대를 가지고 보면 여행의 참맛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름난 관광지보다는 비록 말을 통하지 않하도 그 나라 사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스페인에 가기 위해서 6개월을 준비했습니다. 1995년 가을에 가보았으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아직까지 2주간의 스페인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문화였던 나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코르도바등 가는 곳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를 가진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참 닮은게 많은 나라였습니다.
정이 많고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들, 유럽 다른 나라와는 달리 유달리 술을 많이 마시고 노래도 즐겨 부르고, 흡연가의 천국이며 투우로 대표되는 나라로 비록 유럽에서는 천대받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감어린 나라였습니다. 포르투갈과 함께 대항해시대의 주역이었던 나라. 하지만 오늘날 유럽에서 쇠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으론 이러한 다양성이 하나로 통일된 힘이 되지 못한게 바로 그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로 들어가기 위하여 밀라노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지만 2,000년전에 로마군단이 이ㅔ리아반도 정벌을 위하여 이 길로 지나갔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그 지루한 시간을 달랬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오랜만에 깨끗한 침대에서 뒹굴면서 여행계획을 세우고 샤워도 하면서 하루를 지낸다음 3일간의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은 관광대국답게 철도와 지하철,버스등이 촘촘히 깔려 있는 나라입니다. 여행객의 편의시설도 물론 잘 되어있고요..
제가 처음 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라는 천재화가가 활동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옥수수모양의 성가족성당, 까딸루냐광장, 레알광장,구엘공원,가우디의 건축작품들 등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가우디라는 천재 조각가가 도시 전체를 마치 조각하듯이 조성해 놓은 곳,이곳 저곳 다니면서 어찌 저런 건물들이 있을까 싶도록 감탄사를 내밀면서 다니다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광인 몬주익 언덕에 이르서서는 아름다운 청년도 떠올렸습니다.
스페인에는 유난히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언어때문인지 콜롬비아, 페루 등 많은 남미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까딸루냐 광장에서는 콜롬비아에서 온 거리의 악단들이 남미 특유의 음악연주 다시 말해 거리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남미 관광객들은 그 리듬에 맞춰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스페인 여행에서 제일 기억이 남았던 장소가 바르(Bar)였습니다. 바르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카페이며, 식당이며, 선술집이며, 사교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보통 바르에서는 타파스(Tapas)라고 부르는 안주류를 큰 접시에 담아 진열해 놓고 파는데,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주문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주문은 접시에 따라 Racion(大), Mediaracion(中), Tapa(小)로 구분하며, 선 채로 먹는 것보다 테이블에 앉는 것이 가격이 비쌉니다. 보통 바르는 연중 무휴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거의 바르만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스페인을 한번쯤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아실겁니다. 골목 구석구석,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동네라 할 지라도 어김없이 Bar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의 바르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유흥가 지역의 멋진 바들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예쁘고 분위기있는 까페들을 기대한다면 스페인의 바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멋진 인테리어에 음악이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스페인에서 그런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음악이 있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 떠드는 소리에 어차피 들리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분식집 분위기의 테이블 몇 개와 지저분한 바닥, 한가롭게 앉아 단골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주인아저씨 이것이 바르의 모습입니다. 깨끗이 쓸고 닦는 우리와는 달리 이 곳의 바르는 가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지,쓰레기의 양으로 그 바르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기에 어느 곳에서는 일부러 가게 바닥에 쓰레기를 버려놓기도 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가게 분위기를 위해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니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적은 돈으로 커피와 맥주 한 잔을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이동하기 위하여 밤기차를 탔습니다. 네시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비가L광장으로 가 근처에 있는 유레카호텔이라는 곳에 짐을 풀고 씻고 정리하고 여독으로 인해 먼저 잠을 청했습니다. 일어나니 오후 4시 근처 환전상에 가서 환전하고 중국식당을 찾아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거나 또 밥이 너무도 먹고플때 세계 어디가도 있는 중국 볶음밥을 전 애용합니다.
유럽에서 제일 초라한(?)왕궁을 구경하고 마요르광장으로 갔습니다. 커다란 대들보로 둘러쌓인 곳으로 기념품점, 카페 그리고 벼룩시장을 둘러보고 플라밍고를 보기위해 플라밍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페인의 민속주와도 같은 샹그리라를 시켜놓고 감상에 들어갔습니다. 샹그리라는 포도주와 흡사한 주류로 오렌지에 포도주를 섞은 것이라고 하는데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히더군요. 적당한 도수의 알콜에 알싸하고 상큼한 맛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플라밍고는 자유분방함과 정열 그리고 서로의 살내음으로 이뤄진 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강렬한 몸짓과 눈빛 서로를 탐닉하고 또 의지하고 희롱하는 묘한 느낌의 춤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부담스럽거나 지저분하지 않은 사람내음을 맡을 수 있는 그런 어떤 것 참으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톨레도로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두시간 거리로서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스페인의 고도입니다. 강이 흐리고 언덕에 성곽이 둘러친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형상으로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었습니다.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요르광장, 알칸타라다리, 대사원, 산타크루즈미술관 등을 대충 둘러보고 주로 기념품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기념품가게 같이 재미있는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내음이 물씬 나는 톨레도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톨레도는 스페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중세의 성과 흙내음만이 기억이 나지만, 테조강의 아름다운 낙조도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다음날 마드리드로 돌아와 먼저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맑은 날씨에 일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고야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벌거벗은 마야로 대표되는 고야덕에 그림 공부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으로는 기대하고 기대하던 투우장에 들어갔습니다. 당일 출전하는 투우사들이 모두 나와 팡파르와 함께 인사를 하고 경기를 시작하더군요. 4-5명의 투우사가 먼저 나와 한마리의 소를 상대하는데 투우사들이 빨강천으로 소를 성나게 하고 몰아붙여 어느정도 기운을 빼놓고 다시 팡파르가 울리면 창을 들고 말을 탄 자가 등장해 소의 심장부위 등에 구멍을 냅니다. 다음으로는 투우사들이 갈고리 6개를 구멍 부위에 박아놓고 이후 소가 거의 탈진할 때쯤 메인투우사가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등장해 우리가 TV에서 보는 바와 처럼 온갖 곡예로 소를 희롱하다가 구멍뚤린 심장에 메인 투우사가 칼을 박는 것으로 칼이 박힘과 동시에 소는 풀썩 주저앉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경기, 위험하고 강렬한 경기였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더군요. 투우를 마지막으로 기차에 올라 세비아로 향했습니다
정이 많고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들, 유럽 다른 나라와는 달리 유달리 술을 많이 마시고 노래도 즐겨 부르고, 흡연가의 천국이며 투우로 대표되는 나라로 비록 유럽에서는 천대받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감어린 나라였습니다. 포르투갈과 함께 대항해시대의 주역이었던 나라. 하지만 오늘날 유럽에서 쇠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으론 이러한 다양성이 하나로 통일된 힘이 되지 못한게 바로 그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르셀로나로 들어가기 위하여 밀라노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지만 2,000년전에 로마군단이 이ㅔ리아반도 정벌을 위하여 이 길로 지나갔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그 지루한 시간을 달랬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오랜만에 깨끗한 침대에서 뒹굴면서 여행계획을 세우고 샤워도 하면서 하루를 지낸다음 3일간의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은 관광대국답게 철도와 지하철,버스등이 촘촘히 깔려 있는 나라입니다. 여행객의 편의시설도 물론 잘 되어있고요..
제가 처음 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라는 천재화가가 활동한 지역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옥수수모양의 성가족성당, 까딸루냐광장, 레알광장,구엘공원,가우디의 건축작품들 등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가우디라는 천재 조각가가 도시 전체를 마치 조각하듯이 조성해 놓은 곳,이곳 저곳 다니면서 어찌 저런 건물들이 있을까 싶도록 감탄사를 내밀면서 다니다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영광인 몬주익 언덕에 이르서서는 아름다운 청년도 떠올렸습니다.
스페인에는 유난히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언어때문인지 콜롬비아, 페루 등 많은 남미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까딸루냐 광장에서는 콜롬비아에서 온 거리의 악단들이 남미 특유의 음악연주 다시 말해 거리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남미 관광객들은 그 리듬에 맞춰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스페인 여행에서 제일 기억이 남았던 장소가 바르(Bar)였습니다. 바르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카페이며, 식당이며, 선술집이며, 사교장과 같은 존재입니다. 보통 바르에서는 타파스(Tapas)라고 부르는 안주류를 큰 접시에 담아 진열해 놓고 파는데,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주문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주문은 접시에 따라 Racion(大), Mediaracion(中), Tapa(小)로 구분하며, 선 채로 먹는 것보다 테이블에 앉는 것이 가격이 비쌉니다. 보통 바르는 연중 무휴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열기 때문에 거의 바르만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스페인을 한번쯤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아실겁니다. 골목 구석구석,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동네라 할 지라도 어김없이 Bar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곳의 바르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유흥가 지역의 멋진 바들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예쁘고 분위기있는 까페들을 기대한다면 스페인의 바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멋진 인테리어에 음악이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스페인에서 그런 건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음악이 있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 떠드는 소리에 어차피 들리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분식집 분위기의 테이블 몇 개와 지저분한 바닥, 한가롭게 앉아 단골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주인아저씨 이것이 바르의 모습입니다. 깨끗이 쓸고 닦는 우리와는 달리 이 곳의 바르는 가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휴지,쓰레기의 양으로 그 바르의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기에 어느 곳에서는 일부러 가게 바닥에 쓰레기를 버려놓기도 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가게 분위기를 위해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니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적은 돈으로 커피와 맥주 한 잔을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로 이동하기 위하여 밤기차를 탔습니다. 네시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비가L광장으로 가 근처에 있는 유레카호텔이라는 곳에 짐을 풀고 씻고 정리하고 여독으로 인해 먼저 잠을 청했습니다. 일어나니 오후 4시 근처 환전상에 가서 환전하고 중국식당을 찾아 볶음밥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거나 또 밥이 너무도 먹고플때 세계 어디가도 있는 중국 볶음밥을 전 애용합니다.
유럽에서 제일 초라한(?)왕궁을 구경하고 마요르광장으로 갔습니다. 커다란 대들보로 둘러쌓인 곳으로 기념품점, 카페 그리고 벼룩시장을 둘러보고 플라밍고를 보기위해 플라밍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스페인의 민속주와도 같은 샹그리라를 시켜놓고 감상에 들어갔습니다. 샹그리라는 포도주와 흡사한 주류로 오렌지에 포도주를 섞은 것이라고 하는데 맛이 참으로 기가 막히더군요. 적당한 도수의 알콜에 알싸하고 상큼한 맛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플라밍고는 자유분방함과 정열 그리고 서로의 살내음으로 이뤄진 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강렬한 몸짓과 눈빛 서로를 탐닉하고 또 의지하고 희롱하는 묘한 느낌의 춤이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부담스럽거나 지저분하지 않은 사람내음을 맡을 수 있는 그런 어떤 것 참으로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톨레도로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두시간 거리로서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곳으로 스페인의 고도입니다. 강이 흐리고 언덕에 성곽이 둘러친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형상으로 낯선 이방인을 반겨주었습니다.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요르광장, 알칸타라다리, 대사원, 산타크루즈미술관 등을 대충 둘러보고 주로 기념품가게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기념품가게 같이 재미있는 곳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옛내음이 물씬 나는 톨레도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톨레도는 스페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며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중세의 성과 흙내음만이 기억이 나지만, 테조강의 아름다운 낙조도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다음날 마드리드로 돌아와 먼저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맑은 날씨에 일요일이라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고야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벌거벗은 마야로 대표되는 고야덕에 그림 공부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으로는 기대하고 기대하던 투우장에 들어갔습니다. 당일 출전하는 투우사들이 모두 나와 팡파르와 함께 인사를 하고 경기를 시작하더군요. 4-5명의 투우사가 먼저 나와 한마리의 소를 상대하는데 투우사들이 빨강천으로 소를 성나게 하고 몰아붙여 어느정도 기운을 빼놓고 다시 팡파르가 울리면 창을 들고 말을 탄 자가 등장해 소의 심장부위 등에 구멍을 냅니다. 다음으로는 투우사들이 갈고리 6개를 구멍 부위에 박아놓고 이후 소가 거의 탈진할 때쯤 메인투우사가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등장해 우리가 TV에서 보는 바와 처럼 온갖 곡예로 소를 희롱하다가 구멍뚤린 심장에 메인 투우사가 칼을 박는 것으로 칼이 박힘과 동시에 소는 풀썩 주저앉습니다. 참으로 잔인한 경기, 위험하고 강렬한 경기였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더군요. 투우를 마지막으로 기차에 올라 세비아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