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파멸로 들어선 기독우파의 궐기<대자보>

by 永樂 posted Sep 02, 2003

자기파멸로 들어선 기독우파의 궐기
대형 비리교회와 조선일보의 만남은 반DJ 반북
조용기, 김홍도, 조갑제 삼각동맹의 결속은 반핵 반정부
 

8·15궐기대회와 U대회 폭거는 우파세력의 생존권 투쟁

▲지난 삼일절 시청앞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 삼일독립만세날 나온 성조기, 누구를 위한 친미인지 기독교인들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다시금 생각케 한다     ©대자보 자료사진

지난 8·15와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보수 기독교인사들이 벌인 '반북·반김정일 행사'가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말았다. 이들은 올해 네차례-1월에 두 번, 3월 1일, 6월 25일에 각1회씩-에 걸쳐 대규모 친미·반북집회를 개최하면서 작년 12월 시청앞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채웠던 촛불시위를 반미집회로 규정지으며 "미국의 힘은 정의로운 힘"이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미국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지켜준다"고 주장하는 집회를 개최한바 있다.

보수기독교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그동안 철저한 반공주의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아이덴디티)를 구축하고 숭미사대주의안에서 거대한 물적토대를 구축해온 상황에서 지난해 2월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금메달박탈사건과 부시의 악의축 발언, 미선·효순양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확산된데다 이른바 코드가 안맞는(?) 개혁적이고 반미혐의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위기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세력화하기 시작한 것은 DJ정권과의 악연때문이었다. 사실 DJ정권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김대중 정권시절 MBC와 SBS등 공중파방송은 한국의 빌리 그래함으로 불리며 '언터처블'이었던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와 금란교회를 세계최대 감리교회를 키워낸 김홍도 목사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비리를 폭로했다. 이들 대형교회 목사들은 드러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억울하게 매도당했다며 교회신도들을 동원해 방송국을 점거하거나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좌파적인 DJ정권이 방송을 통해 보수적 입장을 가진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탄압했다며 DJ정부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비슷한 시기에 언론사 세무사찰을 통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등 이른바 극우신문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사주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물론 조선·동아 두신문의 사주는 물론 기자들까지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극렬 저항했고 보수신문과 김대중 정권은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였다.

이때 월간조선은 DJ정권을 용공정권·친북정권으로 규정하면서 보수기독교의 궐기를 촉구했다. 월간조선은 2001년 9월호에서 '친북 세력에 대항할 세력은 반공 기독교 뿐'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독재자 김정일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기독교의 적이다’이라고 강조하며, ‘김대중 정부의 통일 정책은 보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라면서‘보수 기독교 교단이 왜 친북세력에 대해 침묵하고 있느냐’면서 교계를 자극했다.

[관련기사] 이창익, 악마주의 정치학과 종교적 파시즘-<월간조선>과 개신교의 완전한 만남, 대자보(2003. 4. 24)

▲한손에 성조기, 다른 한손에는 썩은 펜으로 극우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는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     ©이대로
조갑제사장은 더 나아가 보수기독교가 장악한 대형교회를 직접 방문해 DJ정권이 방송을 동원해 반공의 보루인 한국교회와 민족지인 조선일보를 탄압했다면서 한국교회가 반DJ·반공산주의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조선일보의 지지와 월간조선의 이론적 지원을 받은 보수기독교세력은 본격적으로 세력화하면서 작년 대선에서 야당후보에 대한 지지를 노골화했고 낙선대상이었던 노무현후보가 당선되자 단순한 보수집단에서 이념적 색채를 확고하게 드러내는 우파세력으로 탈바꿈했다.

올해 열린 네 번의 친미반공 우익궐기대회에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와 김홍도 목사의 금란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우파기독교의 등장에 혁혁한 공을 세운 월간조선은 지난 2월호 표지를 '젊은 우파와 애국적 기독교의 궐기'로 장식하며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를 자축하기도 했다. 조갑제 사장은 여전히 대형교회를 돌면서 우익궐기 강연회를 갖고 있다. 순복음교회 장로회가 지난 4월 16일 개최한  '북핵문제와 한국의 안보상황’주제의 강연회에 참석한 조씨는 "지난 4번에 걸친 구국기도회에 참석해 기도하는 성도들을 본 후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을 가지게 됐다”며 “반핵의 기치 아래 자유통일을 위해 단결하는 평화세력으로 집결해야 한다" 면서 한국기독교의 반공의식 확산과 단결을 촉구했다.

다음주인 4월 25일에는 주한 미군사령관인 리어 라포트가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방문해 조용기 목사에게 한국과 미국의 외교채널 구축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친미집회에 대한 감사를 표명했고 이 자리에는 미국통인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도 동석했다.

우파기독교의 신학과 신앙은 어떻게 태동했는가

최근까지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파기독교의 신학적 기반은 근본주의 신학(Fundamentalism)이다. 근본주의신학은 원래 17세기 장로교 칼빈주의와 청교도적 경건주의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불어닥친 자유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자기 방어적인 수구신학이다. 근본주의는 현대적 성경연구나 자연과학의 연구결과에 따른 교리해석에 문을 열면 기독교는 뿌리부터 붕괴된다는 위기의식 가운데 형성되어 온 것이다.

사실 근본주의라는 신학 용어와 신앙 현상은 철저히 미국적인 것이다. 근본주의의 핵심 교리인 '성서의 무오류설'은 1881년에 프린스턴 신학대학의 하지(A. Hodge)와 워필드(B. Warfield)에 의해 처음으로 고안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조차도 성서의 문자적 무오류설을 믿지 않았는데 근본주의자들은 ①성서무오류②마리아의 처녀잉태 ③육체적 부활 ④예수의 대속 ⑤기적신앙이라는 5대신조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였고 이러한 신앙은 2천년대인 오늘날 한국교회에 그대로 남아있다.

미국내 기독교 근본주의가 처음으로 조직화되고 영향력을 끼친 것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이다. 이 시기는 정치 군사적으로 미국이 스페인전쟁과 멕시코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적인 팽창을 계속하고 종교적으로는 이른바 제3차 대각성운동(1875-1914)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1898년에 일어난 미국-스페인 전쟁은 미국역사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군도를 지배하게 되었고 수많은 선교사들이 해외로 파견되어 미국식 기독교를 전 세계에 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884년 한국에 처음 선교사로 들어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도 같은 맥락에서 파송되었다. 이 시기에 오순절교회(조용기 목사가 소속된 교파), 성결교, 말일성도 그리스도교회(몰몬교), 제7일재림교회, 여호와의 증인, 나사렛교회, 다수의 흑인교단이 기성교단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이 당시 가장 유명한 인물은 한국 보수 기독교목사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D.L 무디(1837-99)였다.

대각성 운동이후 미국 기독교는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주의와 근본주의 기독교가 대립하였지만 대중적으로는 보수주의가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미국제국주의의 이념으로 무장하고 신학적으로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 선교사들에 의해 지배를 받던 한국교회는 일정정도 조선왕조의 봉건적인 잔재를 털고 민족운동의 기반이 되기도 했지만 기형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선교초기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교회를 택했던 민족주의자들은 3·1운동이 실패로 끝난 후 20~30년대 한국에 온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교회에서 축출되거나 사회주의자로 전향했다. 이때 선교사들의 대부분은 흑인에 대한 차별을 암묵적으로 인정해온 남부출신으로 교회의 사명은 신앙생활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주장한 자들이었다.

평양주재 미국선교사 불레비는 "조선교회는 일본을 미워하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원수를 사랑하는 맹목적 순종(?)을 강요했다.

이후 한국 기독교는 미국식 대각성운동을 그대로 모방한 대부흥운동을 통해 초월적 신비주의 신앙으로 경사 되었다. 일부에서 `계몽주의적 사회참여신앙'을 전개했지만 이 운동은 주로 교회 내 지식인계층에 의해 주도되었을 뿐이다. 해방이후 한국사회는 좌우익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되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안겨준 기독교국가였기 때문이다. 당시 남한내 기독교계 지도급 인사들은 기독교신자인 이승만을 지지해 단정수립에 앞장섰으며 북한정권과 마찰을 빚고 내려온 기독교인들-대표적 인물이 영락교회 한경직이다-과 결합해 강력한 반공블록을 형성했다.

한국교회는 52년 8월의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혼연일체'가 되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했고 56년 2월 정동교회는 이승만을 장로로 추대했다. 그 해 5월에 있은 정부통령 선거때는 교계 지도자들이 정·부통령 선거 추진 기독교 중앙위원회를 결성하여 대통령에 이승만을, 부통령에는 역시 교회권사인 이기붕을 추대하였다.

자유당정권이 3·15부정선거로 국민들에게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었음에도 교회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들의 계보를 이어받은 김준곤 목사는 미국 보수 기독교의 친위대인 CCC(대학생선교회)를 한국에 수입해 군부독재반대의 근거지인 대학내 보수화에 앞장섰고 조용기 목사 역시 성령과 은사를 강조하며 미국 내에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던 오순절 신학을 바탕으로 순복음교회를 창립했다. 이들은 유신독재와 신군부가 득세할 때 미국 보수기독교의 거두인 빌리 그래함을 초청해 '엑스폴로 74', '80년 세계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해 한국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을 마비시켰고 이들이 오늘날 극우기독교의 역사적 토대를 쌓았던 것이다.

비리혐의로 구속된 김홍도목사, 정권탄압으로 몰아가

조용기 목사와 함께 '반핵·반김정일 국민대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우파기독교내의 강경파인 김홍도 목사가 지난 8월 14일 수십억원에 이르는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김목사의 구속은 지난 6월 같은 교회 교인이었던 곽모장로 등의 고소에 따른 것인데 김목사는 교회 관련 재산을 가족명의로 등기해 놓은 것을 비롯해 과거 소송에 든 변호사 비용, 교계 로비자금 등을 교회헌금에서 지출했다는 혐의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사법처리가 된 것이다.

이번에도 김목사와 그가 소속한 금란교회 교인들은 이번 수사가 '반핵·반김'을 주창하는 애국인사에 대한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목사와 함께 반핵·반김대회를 주최한 보수교단의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을 지낸 지덕 목사도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던 강남제일교회 교인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고 있다. 이같은 사태는 지목사가 둘째아들 지병윤 목사를 후계자로 내정한 데 따른 것이다. 교인들의 과반수가 세습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교인들은 퇴진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도덕성과 윤리를 앞세우며 세력을 확장해온 대형교회 목사들의 이중적 행태로 보수파 교회는 목회자의 타락과 함께 교인수의 정체 또는 감소로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실제로 보수파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교회의 성장은 60년대 41.2%라는 폭발적인 성장세에서 70년대 12.5%, 80년대 4.4%, 90년대 3%미만으로 떨어지고 정체상태에 있다. 전체 종교인수에서도 1991년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8.6%을 차지했는데 지난 6월 발표된 문광부 자료에도 역시 18.6 %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감신대 종교사회학과 이원규 교수는 작년 6월 기독교, 불교. 천주교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이미지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독교는‘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교세 확장에 더 관심이 있다’,‘지나치게 헌금을 강요한다’,‘믿지 않은 사람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는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또‘종교지도자 자질 우수',‘개인적 영적문제에 해답',‘개종하고 싶은 종교 선호도’부분에서는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교수는 한국교회의 정체현상에 대해 "21세기 한국교회의 과제는 물적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숙에 있다는 것을 개교회는 물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모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화석화된 신학과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왜곡하고 평신도들의 삶의 현장과는 유리된 물신주의와 성직자 중심의 교권주의에 매몰돼 '영혼주식회사'로 전락한 수구기독교세력은 지금이라도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집회를 중단하고 민족과 역사앞에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반민족·반통일적 행동을 계속한다면 변화와 개혁이라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들이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 자명이다.

* 필자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 집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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