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떠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도, 애 부모들도, 기업가도 모두들 떠날 태세라서
대한민국이 통째로 텅 빌 지경입니다.
IMF를 넘어서고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2만달러 시대를 외치고 있건만,
참으로 공허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은 빠르게 이 나라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고뇌의 출발점은 공동체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가 어떻고,
장래의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정치리더쉽을 놓고 격한 토론을 벌이고 하는 모든 노력이
공동체와 자신을 동일시하든지 아니면 깊은 이해관계와 애착에 기인하는 게 아닙니까.
디지털과 미디어의 시대, 홀로그램으로 범벅이 될 假面의 시대에,
역사인식이든 전망이든 준거집단과 인물의 확보이든,
공동체를 공동체로서 결속시킬 새롭고도 큰 공정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오는 28일, 2차 헌정사기행의 장에서 그 이야길 나눴으면 합니다...
아래 칼럼은 참고하시길...
~~~~~~~~~~~~~~~~~~~~~~~~~~~~~~~~~~~~~~~~~
<문화> 한국사회의 이탈열풍 /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 교수
한국 사회가 이탈(離脫) 열풍에 휩싸여 있다. 신문·방송에 의해 다분히 과장된 듯하지만 그러한 과장 역시 시민들의 잠재적 이탈 욕구에 영합한 행태다. 원정출산, 조기유학, 기러기아빠, 청년층의 이민대열 가세, 기업의 해외이전, 빈곤자살 등 일련의 세태는 모두 현실로부터의 이탈 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이탈 시도들은 한국인들이 세계화 시대를 사는 방식이다.
원정출산처럼 더러는 노골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이탈이고, 빈곤자살처럼 더러는 극단적 항의나 실의의 이탈이며, 기업의 해외이전처럼 더러는 항의로 포장된 기회주의적 이탈이다. 어떤 형식과 내용이든 이런 이탈의 집합적 결과는 사회의 지속적 발전 기반의 와해다. 노동력을 가진 이도, 자본을 가진 이도, 후세를 둔 이도 떠날 생각에 골몰하는 가운데 사회 공동화(空洞化)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외국 생활이 정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 외에 철밥통 덕에 한창 주가가 오른 공무원과 한국 땅을 한 발만 떠나도 권력 행사는커녕 생계에 애를 먹을 정치인·언론인, 과학보다는 연고로 행세하는 한국적 지식인 등이 다수 잔류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이면 어떤 생산 활동이 이뤄지겠는가.
여러 관료·정치인·언론인·지식인이 앞장서서 세계화를 떠들었지만 막상 자신들은 세계화 시대를 스스로 살아내는 데 부적합한 부류들이다. 진정한 세계화의 기대이익은 극히 작고 기회비용만 극히 큰 집단들이 주도한 세계화는 애초부터 기만적이었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면서 무자비한 고용 불안과 빈곤을 구조화하는 식으로 세계화를 주장해 왔다.
이런 기만적 세계화에 대한 흥미로운 대응 방식이 ‘간접이탈’이다. 원정출산, 조기유학, 기러기아빠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간접이탈은 자신의 몸은 한국에 있지만 외국으로 이미 떠난 자녀나 아내 혹은 외국 시민권자인 자녀를 통해 마음이 한국을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신의 몸이 한국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아직 외국보다는 이곳에서 더 나은 수입을 올리거나 이곳에서만의 권리·권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서 자신이 있는 한국보다는 자녀나 처자가 있는 외국의 안정과 발전이 더 신경쓰일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또 다른 간접이탈은 이농 자녀를 둔 농민들 사이에서 나타났었다. 극히 도시중심적인 경제 발전 과정에서 대다수 농민은 주로 자녀를 도시에 보내 경제적 성공을 모색했다. 이들 자녀 가운데 상당수는 학업·취업·사업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농촌의 부모들은 이를 최대의 효행으로 여겼다. 이들 농촌 부모는 자신의 농사보다는 도시 자녀의 성공이 훨씬 중요했고, 이를 위해 농가의 온갖 자원을 털어가며 지원했다.
한 공식 추계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본격적 산업화 및 경제성장기에 농촌에서 도시로의 순자본이출을 밝혔다. 국가의 경제자원이 대부분 도시 지역에 투입됐고 경제 성장이 거의 도시산업에 의한 것임을 감안할 때, 가히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이농인들을 통한 가족내 도·농간 자원 이전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여윳돈이 있으면 농사 개선보다는 도시 자녀의 학업·취업·사업을 위해 쓰던 태도가 심해져 심지어 농업지원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도 도시 자녀에게 이전된 것 같다.
이런 자원 이전의 이면에 농업·농촌 발전에 대한 사회적 열의와 정치적 노력의 감퇴가 뒤따랐다. 자식이 농사를 대물림하려면 불효로 인식하고 오히려 도시로 떠날 때 물적·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대다수 농민은 농촌보다는 도시의 경제 사정에 더 예민했다. 그리고 농촌 퇴락과 농업 위축에 대해 배수(背水)의 진을 친 항거를 못했다. 이는 ‘농민 없는 농민운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최근 기러기아빠가 된 친분 있는 교수의 토로가 흥미롭다. 처자를 미국에 보내고 나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갑자기 무관심해지고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간접이탈이 주는 선물이다. 자신조차 아예 한국을 뜨면 마음이 더 편해질지 모르지만 처자 부양을 위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여러 엘리트층에 확산됐고 최근 많은 일반인까지 대열에 합류하는 중이다. 간접이탈에는 각 가정 나름의 사정과 목적이 있겠지만 집합적으로는 엄청난 자본 이출에 덧붙여 사회 발전의 공동체적 동기 상실이라는 위험이 도사린다. 몸은 있으되 마음은 자녀나 아내와 함께 떠난 한국인들 사이에서 공동체가 나보다, 내일이 오늘보다 중요해지기가 어렵다.
젊은이도, 애 부모들도, 기업가도 모두들 떠날 태세라서
대한민국이 통째로 텅 빌 지경입니다.
IMF를 넘어서고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2만달러 시대를 외치고 있건만,
참으로 공허합니다. 국민들의 마음은 빠르게 이 나라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고뇌의 출발점은 공동체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백년지대계가 어떻고,
장래의 인재집단을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정치리더쉽을 놓고 격한 토론을 벌이고 하는 모든 노력이
공동체와 자신을 동일시하든지 아니면 깊은 이해관계와 애착에 기인하는 게 아닙니까.
디지털과 미디어의 시대, 홀로그램으로 범벅이 될 假面의 시대에,
역사인식이든 전망이든 준거집단과 인물의 확보이든,
공동체를 공동체로서 결속시킬 새롭고도 큰 공정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오는 28일, 2차 헌정사기행의 장에서 그 이야길 나눴으면 합니다...
아래 칼럼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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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사회의 이탈열풍 /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 교수
한국 사회가 이탈(離脫) 열풍에 휩싸여 있다. 신문·방송에 의해 다분히 과장된 듯하지만 그러한 과장 역시 시민들의 잠재적 이탈 욕구에 영합한 행태다. 원정출산, 조기유학, 기러기아빠, 청년층의 이민대열 가세, 기업의 해외이전, 빈곤자살 등 일련의 세태는 모두 현실로부터의 이탈 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이탈 시도들은 한국인들이 세계화 시대를 사는 방식이다.
원정출산처럼 더러는 노골적으로 기회주의적인 이탈이고, 빈곤자살처럼 더러는 극단적 항의나 실의의 이탈이며, 기업의 해외이전처럼 더러는 항의로 포장된 기회주의적 이탈이다. 어떤 형식과 내용이든 이런 이탈의 집합적 결과는 사회의 지속적 발전 기반의 와해다. 노동력을 가진 이도, 자본을 가진 이도, 후세를 둔 이도 떠날 생각에 골몰하는 가운데 사회 공동화(空洞化)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외국 생활이 정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 외에 철밥통 덕에 한창 주가가 오른 공무원과 한국 땅을 한 발만 떠나도 권력 행사는커녕 생계에 애를 먹을 정치인·언론인, 과학보다는 연고로 행세하는 한국적 지식인 등이 다수 잔류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이면 어떤 생산 활동이 이뤄지겠는가.
여러 관료·정치인·언론인·지식인이 앞장서서 세계화를 떠들었지만 막상 자신들은 세계화 시대를 스스로 살아내는 데 부적합한 부류들이다. 진정한 세계화의 기대이익은 극히 작고 기회비용만 극히 큰 집단들이 주도한 세계화는 애초부터 기만적이었다.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면서 무자비한 고용 불안과 빈곤을 구조화하는 식으로 세계화를 주장해 왔다.
이런 기만적 세계화에 대한 흥미로운 대응 방식이 ‘간접이탈’이다. 원정출산, 조기유학, 기러기아빠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간접이탈은 자신의 몸은 한국에 있지만 외국으로 이미 떠난 자녀나 아내 혹은 외국 시민권자인 자녀를 통해 마음이 한국을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신의 몸이 한국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아직 외국보다는 이곳에서 더 나은 수입을 올리거나 이곳에서만의 권리·권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서 자신이 있는 한국보다는 자녀나 처자가 있는 외국의 안정과 발전이 더 신경쓰일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또 다른 간접이탈은 이농 자녀를 둔 농민들 사이에서 나타났었다. 극히 도시중심적인 경제 발전 과정에서 대다수 농민은 주로 자녀를 도시에 보내 경제적 성공을 모색했다. 이들 자녀 가운데 상당수는 학업·취업·사업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농촌의 부모들은 이를 최대의 효행으로 여겼다. 이들 농촌 부모는 자신의 농사보다는 도시 자녀의 성공이 훨씬 중요했고, 이를 위해 농가의 온갖 자원을 털어가며 지원했다.
한 공식 추계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본격적 산업화 및 경제성장기에 농촌에서 도시로의 순자본이출을 밝혔다. 국가의 경제자원이 대부분 도시 지역에 투입됐고 경제 성장이 거의 도시산업에 의한 것임을 감안할 때, 가히 놀라운 사실이다.
이는 이농인들을 통한 가족내 도·농간 자원 이전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여윳돈이 있으면 농사 개선보다는 도시 자녀의 학업·취업·사업을 위해 쓰던 태도가 심해져 심지어 농업지원 정책자금의 상당 부분도 도시 자녀에게 이전된 것 같다.
이런 자원 이전의 이면에 농업·농촌 발전에 대한 사회적 열의와 정치적 노력의 감퇴가 뒤따랐다. 자식이 농사를 대물림하려면 불효로 인식하고 오히려 도시로 떠날 때 물적·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대다수 농민은 농촌보다는 도시의 경제 사정에 더 예민했다. 그리고 농촌 퇴락과 농업 위축에 대해 배수(背水)의 진을 친 항거를 못했다. 이는 ‘농민 없는 농민운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최근 기러기아빠가 된 친분 있는 교수의 토로가 흥미롭다. 처자를 미국에 보내고 나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갑자기 무관심해지고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간접이탈이 주는 선물이다. 자신조차 아예 한국을 뜨면 마음이 더 편해질지 모르지만 처자 부양을 위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여러 엘리트층에 확산됐고 최근 많은 일반인까지 대열에 합류하는 중이다. 간접이탈에는 각 가정 나름의 사정과 목적이 있겠지만 집합적으로는 엄청난 자본 이출에 덧붙여 사회 발전의 공동체적 동기 상실이라는 위험이 도사린다. 몸은 있으되 마음은 자녀나 아내와 함께 떠난 한국인들 사이에서 공동체가 나보다, 내일이 오늘보다 중요해지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