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명'이후의 韓.美관계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지난해 4월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급부상할 때 한.미관계의 앞날을 내다보는 말을 했다. 그는 아시아협회 연설에서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 역할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한.미관계 성격을 재규정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그 연설을 들었다면 국방장관회의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면서 켈리의 선견지명에 놀랐을 것이다. 럼즈펠드는 노무현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라크 파병 규모는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한국의 입장이라고 전해들은 3천명에 머물렀다.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용산기지 협상에서도 그는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고 '추후 협상'이라는 여운만 남기고 갔다. 한국의 '그림자 시위대'는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파병 반대를 외쳐댔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50년의 한.미관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후보 때부터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하던 盧대통령은 아직은 관념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구상을 들고나와 미국을 긴장시킨다. 미국을 빼고 한국.중국.일본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그의 구상은 미.일동맹을 중심축으로 2030년께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전략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한다.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중.일 행사에 적극 참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용산기지 협상이 잘 안 풀릴 경우 미군사령부가 2사단을 따라 오산이나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쁠 것도 없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변 자주파(自主派)들의 입장도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더 이상 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주한미군을 이제는 한국 안보의 사활을 쥔 '산소 마스크'로 보지는 않는다. 동맹국의 의리로 따지면 한국은 적어도 5천명 규모의 치안유지군을 이라크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럼즈펠드를 맞은 한국 정부는 치안유지군 아닌 재건지원부대, 그것도 5천명이 아닌 3천명선을 고수했다. 결국 한국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 실속있는 도움을 주기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 한국의 3천명 파병안을 수용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그건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는 럼즈펠드의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에 미국의 실망이 역력하다.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켈리의 불길한 예언이 현실로 되어간다. 그것으로 그만인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한국은 럼즈펠드를 상대로 '대등하고 자주적인' 자세를 지킨 대신 미국에 미군 문제에 프리 핸드를 준 셈이다. 미국은 말로는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한다면서도 크게 한국 눈치 안 보고 미군을 철수하고 감축하거나 그 역할을 대북 억지력에서 동북아 지역 안전의 지렛대로 바꿀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서 이런 변화의 가능성은 한국 안보의 불안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미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라크 파병이 자주파들의 페이스에 밀려온 것은 유감이다. 그들의 뜻대로 3천명을 재건지원부대 위주로 보내면 한국군 부대 자체의 안전이 문제된다. 이제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없다. 조직적인 세력이 다국적군에 대한 공격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하는 단계에 이르면 테러 대상에서 전투병과 비전투병의 구분은 사라질 위험이 크다. 도쿄(東京)에 대한 테러위협이 그 증거다. 비전투병 위주의 3천명으로 자체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국가 이익에 따른다던 파병이 정치와 명분 중심으로 결정됐다. 심지어 이념의 냄새까지 난다. 미국의 압력을 뿌리쳤다니 우선 듣기는 참으로 후련하다. 그러나 북핵.안보.경제에서 한.미간에 협력은 필수적이다. 盧대통령과 그의 자주파 참모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미국의 협력을 구할 것인가 묻고 싶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지난해 4월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서 급부상할 때 한.미관계의 앞날을 내다보는 말을 했다. 그는 아시아협회 연설에서 말했다. "미국은 한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전통적 역할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한.미관계 성격을 재규정하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그 연설을 들었다면 국방장관회의를 마치고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면서 켈리의 선견지명에 놀랐을 것이다. 럼즈펠드는 노무현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라크 파병 규모는 워싱턴을 떠나기 전에 한국의 입장이라고 전해들은 3천명에 머물렀다.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용산기지 협상에서도 그는 한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고 '추후 협상'이라는 여운만 남기고 갔다. 한국의 '그림자 시위대'는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파병 반대를 외쳐댔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50년의 한.미관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후보 때부터 대등한 한.미관계를 강조하던 盧대통령은 아직은 관념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구상을 들고나와 미국을 긴장시킨다. 미국을 빼고 한국.중국.일본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그의 구상은 미.일동맹을 중심축으로 2030년께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전략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미국은 판단한다. 일본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중.일 행사에 적극 참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용산기지 협상이 잘 안 풀릴 경우 미군사령부가 2사단을 따라 오산이나 평택으로 이전하는 것이 반드시 나쁠 것도 없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변 자주파(自主派)들의 입장도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더 이상 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주한미군을 이제는 한국 안보의 사활을 쥔 '산소 마스크'로 보지는 않는다. 동맹국의 의리로 따지면 한국은 적어도 5천명 규모의 치안유지군을 이라크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럼즈펠드를 맞은 한국 정부는 치안유지군 아닌 재건지원부대, 그것도 5천명이 아닌 3천명선을 고수했다. 결국 한국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 실속있는 도움을 주기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이다. 한국의 3천명 파병안을 수용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그건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는 럼즈펠드의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에 미국의 실망이 역력하다.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켈리의 불길한 예언이 현실로 되어간다. 그것으로 그만인가. 결코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한국은 럼즈펠드를 상대로 '대등하고 자주적인' 자세를 지킨 대신 미국에 미군 문제에 프리 핸드를 준 셈이다. 미국은 말로는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한다면서도 크게 한국 눈치 안 보고 미군을 철수하고 감축하거나 그 역할을 대북 억지력에서 동북아 지역 안전의 지렛대로 바꿀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서 이런 변화의 가능성은 한국 안보의 불안요소가 아닐 수 없다.
한.미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라크 파병이 자주파들의 페이스에 밀려온 것은 유감이다. 그들의 뜻대로 3천명을 재건지원부대 위주로 보내면 한국군 부대 자체의 안전이 문제된다. 이제 이라크에 안전지대는 없다. 조직적인 세력이 다국적군에 대한 공격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하는 단계에 이르면 테러 대상에서 전투병과 비전투병의 구분은 사라질 위험이 크다. 도쿄(東京)에 대한 테러위협이 그 증거다. 비전투병 위주의 3천명으로 자체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국가 이익에 따른다던 파병이 정치와 명분 중심으로 결정됐다. 심지어 이념의 냄새까지 난다. 미국의 압력을 뿌리쳤다니 우선 듣기는 참으로 후련하다. 그러나 북핵.안보.경제에서 한.미간에 협력은 필수적이다. 盧대통령과 그의 자주파 참모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미국의 협력을 구할 것인가 묻고 싶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