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박세일 VS 장하준 ‘대안적 세계화 가능한가’
세계화는 대세...공생적, 자주적 길 모색해야
세계화는 불가항력적인가,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가, 세계화에 대한 국가개입은 유용한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실체는 무엇인가, 공생적 세계화는 가능한가, 세계화 시대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세계화에 대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업코리아는 <쟁점대담>의 첫 번째 주제로 이 시대 뜨거운 화두인 ‘세계화’를 택했다.
세계화의 대세를 인정하면서도 평소 자주적 세계화의 가능성을 모색해온 서울대 박세일 교수와 후진국 입장에서 세계화를 조망한 대안적 세계화론으로 최근 한국인 최초 ‘뮈르달 상’을 수상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자리를 같이했다. <편집자>
“세계화란 무엇인가.... 정책적 개입으로 속도 조절 가능한가”
박세일 : 우선 세계화를 여러 형태로 정의할 수 있지만 아주 간단히 말하면 시장의 확대, 인간 대 인간의 교환관계와 거래관계의 확대로 볼 수 있다. 시장의 확대로서의 세계화를 보면 특히 과거 200~300년간 진행됐던 세계화가 인류의 물적 풍요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세 천 년간 1인당 GNP에는 큰 차이가 없다가 산업혁명 이후 지방시장이 국가시장으로 확대되고, 국가시장이 세계시장으로 확대되면서 물적 풍요가 엄청 증가했다. 물적 풍요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세계화는 하나의 기회다.
장하준 : 세계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유용한 출발점 중 하나가 ‘세계화는 20세기 후반 들어 수송과 통신의 발달로 생긴 현상’이라는 명제를 재검토 하는 것이다. 흔히들 이렇게 규정을 한다.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미 요즘과 비슷한 정도로 이미 진행되었던 경험이 있다.
물론 돛단배로 바다 건너던 시절 세계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19세기 말 있었던 기술이라야 증기선, 유선 전신 정도였는데도 세계화가 많이 됐었다. 오히려 1950 ~ 60년대는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인터넷만 빼고 현재의 통신, 송수신 기술 다 있었지만 19세기말 20세기 초에 비하면 훨씬 세계화가 덜 됐었다. 세계화가 진행되다 각국이 갑자기 내향적 발전으로 돌아섰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세계화라는 것이 기술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나 정책적 요소가 가미되어 그 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세계화가 기술발전에 정비례하는 것이라면 1950년에는 1900년보다 더 세계화되고 2000년에는 1950년보다 더 세계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따라서 세계화는 반드시 기술발전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다.
흔히 있는 관점 중 하나가 세계화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인데, 그 전제가 맞다면 기술은 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화는 불가항력적이다. 기술을 퇴보시키자는 것은 역사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이나 정치와 같은 인간의 의지로 세계화의 속도와 형태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세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박세일 :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세계화라는 것이 기술적인 요인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사실은 국가정책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데,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 1차 세계화는 실패했다. 과도한 시장주의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과도한 시장주의는 결국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고 정치적 불안을 초래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정치경제 시스템 자체가 세계화의 흐름을 수용할 수 없어 세계화는 실패한다. 정치적으로는 극좌나 극우, 집단주의가 등장하고 시장에 대해서는 계획이 들어간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과거처럼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많은 사람을 위한 세계화가 될 수 있다.
“70년대 중반 이후 금융위기 증대....하지만 세계화는 대세”
장하준 :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80년대 이후 - 여기서 세계화가 추진되었다는 것은 국내 정책이 바뀌고 기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개방주의 시장주의 정책을 폈다는 것인데- 세계 경제 성장률은 2% 밖에 안된다. 오히려 50 ~ 60년대 개입주의가 성행했던 시대엔 세계경제 성장율이 3.1%이었는데 말이다. 빈부격차도 많이 증가하고 경제 불안이 가중된 것도 큰 문제라고 본다.
역사학자들이 모은 통계를 보니까 1945년부터 1971년까지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38건 있었다. 하지만 1973년부터 1997년까지는 139건이 있었다. 45년부터 71년까지는 1년에 평균 1.5건 있었는데 70년대 중반부터 1년에 평균 4.5건으로 늘었다. 결국 성장도 안되고 빈부격차도 심해져 자꾸 불만이 터져 나오면 체제유지를 위해 다시 세계화를 되돌려야 할 상황이 오게 된다.
일부에서 반세계화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세계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세계화가 선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식으로 무리하게 일방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문제다. 결국 그렇게 하면 세계화가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극단적으로 저는 세계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세계화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미 한 번 실패했던 것처럼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하고 다 함께 가는 방향으로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세계화 이후 국내 소득 격차는 정부 정책에 따라 악화 또는 개선”
박세일 : 세계화가 국가 간 분배 혹은 국내 분배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를 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세계 인구 60억 중 10억은 세계화, 산업화, 정보화가 많이 된 국가에 산다. 세계화하려는 국가, 산업화 과정 중에 있는 국가에 30억이 산다. 나머지 20억은 세계화와 관계없이 살아간다.
지난 10년 간 통계를 보면 이미 세계화된 국가의 연평균 성장률은 2%대, 새로 세계화에 진입했거나 사회주의체제에서 시장주의로 돌아선 국가, 또 우리나라처럼 중진국에 들어선 국가들의 연평균 성장률은 5%대이다. 하지만 세계화와 전혀 관계없이 사는 국가의 연평균 성장률은 -1%이다. 이러한 통계 수치만 보더라도 세계화를 타야 한다는 당위가 나온다.
국가내 소득분배에 세계화가 도움을 주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세계화 흐름은 잘 탔지만 국내 소득분배가 악화된 경우도 있고 개선된 경우도 있다. 국내 분배 부분은 개별 국가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장하준 : 동의한다. 그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선진국은 복지혜택이 크기 때문에 사실 시장에서의 결정된 소득과 사람들이 실제로 누리는 생활수준의 일대일 관계가 없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그러한 기제가 없기 때문에 시장의 충격이 크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개입은 중요하다. 같은 선진국이고 시장 지향적 정책을 폈음에도 영국은 국내 소득 분배가 오히려 악화됐고 스웨덴은 소득분배가 악화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단기 자본 이동 제한하는 보호장치 마련해야”
박세일 : 시스템의 불안정성 증대도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다. 세계가 단일 시장화 되고 자본 시장도 단일화 되면서 돈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도 커졌다. 자본시장 내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했고 결국 국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불안정성 문제가 대두됐다.
장하준 : 금융 쪽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이는 개별 국가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주로 외화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무역을 한다든가, 외국에 투자를 한다든가 실물경제와 연결된 부분에서였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환투기를 포함해 실물경제와 괴리된 부분에서의 환거래가 늘어났다.
추산에 따라 다르지만 세계에 흘러 다니는 통화량 중 실물 경제와 관련된 통화량을 100분의 1까지 보는 사람도 있다. 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는 돈의 100분의 1만 실물경제와 연결되고 나머지는 금융투자와 관련해 움직인다는 것인데, 이런 추세라면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외환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도 자주 일어날 수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의 경우 80년대 말 부동산 바람이 불면서 금융위기가 왔던 적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개별국가에서 통제할 수 없다.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데 개별국가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엠에프(IMF)를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세일 : 실물 이동과 관계없이 돈 자체가 단기 수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문제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외환거래량 2조 중 40%가 이틀 사이에 거래 방향이 바뀐다. 이론적으로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단일화 되었지만 시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세계 정부(global governance)는 없다.
월드뱅크(World Bank)나 아이엠에프(IMF) 등 기존의 국제기구를 개혁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제 3의 글로벌 가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만들 수도 있다. 한편으론 지역주의(regionalism)를 강화해 충격흡수장치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별국가들도 외국인의 직접투자에 대해서는 장려를 해도 단기 자본 이동에 대해서는 문턱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장하준 : 후진국 입장에서 보면 금융 시장의 덩치가 너무 작다. 예를 들면 1-2년 전 통계이지만,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 총액이 미국의 1.5% 밖에 안된다. 남미 주식시장 시가 총액을 합쳐도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 총액보다 클까 말까이다. 주식시장 시가가 자주 변동해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너무 덩치가 작기 때문에 미국에서 잘못되면 후진국들 입장에서는 얻어맞는 현상이 생긴다.
보호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후진국 입장에서 경제운영이 어려워진다. 국가에 따라 어느 정도 단기자본을 막는 수단을 사용하기도 했다. 칠레나 콜롬비아, 말레이지아의 경우 요즘은 다시 자본을 끌어오는 것이 급해 폐지했다고 하지만, 예전에 금융자본이 자국으로 지나치게 들어온다 싶을 때 기탁금 제도를 활용했다. 일단 외자가 들어오면 그중 30~50% 정도를 기탁금으로 맡겨 놓게 했다. 1년 이상 있다 나가면 기탁금을 다 돌려줬고, 1년 내에 나가면 포기하게 했다. 단기자본과 장기자본의 비율이 8 : 2였다 2 : 8 로 역전되었다.
지금은 미국이 워낙 반대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제도인지 모르겠지만, 예전 예일 대 토빈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돈을 바꿀 때마다 소액의 거래세를 부과시키면 실물경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 돈을 자주 안 바꾸니까 부담이 안될 것이고, 환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틀에 한 번 이들의 돈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0.1%만 부과해도 큰 부담이 된다. 일 년에 백 번 이상 돈이 왔다 갔다 하면 거래한 돈의 10% 이상 세금을 매기니까 큰 부담이 된다.
개인적으론 결국 발전 단계가 낮은 중국 같은 나라의 자본통제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경우 내부 부실채권도 많고 문제가 많다. 그런데 미국이 원하는 자본자유화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성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발전 단계가 올라가면 물론 자본통제를 풀어야 하지 않나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후진국에겐 자본시장 개방은 시스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후진국의 문제 전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박세일 : 세계시장은 단일시장화 되는데, 정치는 국민국가(nation state) 중심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되면서 생긴 각종 문제, 예를 들어 금융시스템의 불안이나 환경문제, 테러나 국제범죄 등 여러 나라에서 겹쳐 발생하는 문제들은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이익의 관점에서 해결할 수 없다.
개별국가의 이익을 선진국은 선진국의 입장에서 후진국은 후진국의 입장에서 풀려고 하니까 모순이 생긴다. 세계화에 편입되지 못한 20억의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선진국이 후진국의 절대빈곤과 질병 문제에 대해 ‘너희들이 세계화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면 해결이 안된다.
세계 200명 최상위 부자 재산의 합이 가난한 20억의 재산 합계보다 많다는 통계가 있다. 후진국 사람들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은 글로벌 이슈(global issue)를 다룰 때 자국의 이익(national interest)을 넘어서 생각해야 한다.
장하준 :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동의한다. 후진국 사람들의 최후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이 에이즈 문제이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 중 국민의 30-40%가 에이즈 보균자다. 에이즈 환자 일년 약값이 원가로 300~400달러 정도다. 그런데 정작 약을 개발하는 선진국들의 특허권 때문에 일년 약값이 만 달러로 뛴다.
브라질이나 태국에 있는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약을 만들어 싼 값에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데, 선진국들이 WTO를 통해 ‘특허권 있으니 안된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 입장에서는 300~400달러만 되고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데 만 달러면 결국 국민의 30~40%가 죽는다. 여론이 안 좋으니까 클리턴 미 전 대통령이 압력을 넣어 결국 좀 싸게 했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물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 결국 체제가 망하면 자신도 망하지 않나. 후진국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렇게까지 우리를 누를 필요가 있나’ 반발을 하고 일부에서는 테러까지 일으킨다. 그러한 세계 체제에 대한 불만이 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정책에 월스트리트 시각 지나치게 반영”
박세일 : 세계의 경제정책을 짜는 주요한 경제 기구인 아이엠에프(IMF)나 월드뱅크, 미국 재무성의 시각에 월스트리트의 시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경제라는 것이 효율도 있고, 형평도 있다. 하지만 시장 효율의 관점에서만 세계경제를 바라보고, 금융자본의 이해 관계에서만 세계경제가 잘되느냐 안되느냐를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월스트리트 출신들 물론 좋은 인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를 금융 중심, 금융 중심의 이해관계에서 바라보는데 고용이나 소득 분배는 금융 교과서에 없다. 현재의 상황에선 실질적인 음모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세계 경제에 금융적 시각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다.
장하준 : 최근 브라질에 다녀왔다. 브라질은 국채를 포함해 외채가 많은 국가이다. 이유야 어떻든지 단기적으로도 돈을 자국에 잡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서 이자율을 높게 유지하는데 산업자본가들은 우는 소리를 한다. 실질이자율이 12-13% 정도 한다. 이 사람들은 ‘이것 가지고 어떻게 공장을 굴리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입장은 다르다. 이자율이 높다 하더라도 금방 콜롬비아로 움직이고 싱가포르로 움직여야 한다. 산업자본은 이동성이 약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궈서 발전시켜야 하는데, 금융자본은 워낙 빨리 이동한다. 이것은 세계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산업자본 입장에서 보면 금융자본 때문에 실물경제가 부도가 나더라도 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한다.
“세계화는 미국화가 아니다”
박세일 : 세계화의 방향이 ‘공생적(共生的) 세계화’이어야 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국내적으로 세계화로 얻는 열매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의미와 글로벌 차원에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자주적 세계화’이어야 한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장하준 : 현재 대다수가 가진 인식 중 하나는 세계화 시대 세계적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된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 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니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채택하는 것이 많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그러한 인식이 증대됐는데, 문제는 현재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것들이 진짜 글로벌 스탠더드이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이 영미식 제도다. 선진국을 보면 영미식 제도를 갖지 않은 국가들이 많다. 기업제도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가 있고 미국 영국의 제도는 사실상 예외에 속한다. 물론 미국 영국이 세계여론을 주도하고 힘이 세니까 먹혀드는 측면이 있지만, 다수 선진국들은 자주적 세계화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박세일 : 산업화가 서구화가 아닌 것처럼 세계화가 곧 미국화는 아니다. 세계화 된다는 것은 순수하게 국제 기준에 맞춘다는 것이 있고, 미국화된 국제 기준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장하준 : 또 하나 있다. 미국도 안 지키는 국제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해서 다른 나라에 강요되는 것도 있다.(웃음)
박세일 : 동의한다. 취사선택의 능력 없이 무조건 그러한 기준들을 받아들이면 우리 문화와 의식과 맞지 않기 때문에 제도가 들어와도 형해화 된다. 제도 실패(system failure)가 된다. 우리 문화에 적합한 보편성을 가진 제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외이사제도 등 미국적인 제도가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진국들 올챙이적 시절엔 외국인 투자에 규제”
장하준 :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외국인 투자 규제가 너무 많아 외국인이 투자를 안한다’며 ‘다른 선진들처럼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 많이 한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선진국들도 규제 안하는 척 하면서 하는 경우도 많다.
영국만 하더라도 외국기업이 투자를 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요구조건을 안 붙인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를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관리들을 만나면 ‘투자해줘서 고맙다’고는 말해도 점심 끝나기 5분 전에는 꼭 ‘이 동네 부품도 많이 사주고 고용도 많이 해달라’며 무언의 압력을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규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자신들 역시 자본 수입국의 입장에서 외국인 투자를 규제를 많이 했던 역사가 있다. 미국이 19세기에 영국이나 유럽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외국인이 이사가 되는 것을 제외했던 경험, 주에 따라 외국은행 지점 설치를 금지했던 경험, 외국인을 아예 고용하지 못하게 했던 경우도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규제를 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유럽의 지위가 역전됐다. 유럽이 자본수입국이 되고 미국이 투자국이 되었는데, 영국 독일 프랑스 이런 나라들에 비공식적 규제도 많았지만 70년대까지 공식적인 규제 역시 많았다.
가장 재미있는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요즘 세계화에 가장 성공적인 모범생으로 꼽힌다. 73년 유럽연합(EU) 가입할 때까지 외국인이 20% 이상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을 위험기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핀란드에 투자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던 태도가 일면 이해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핀란드는 스웨덴에 700년, 러시아에 100년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독립을 해도 외국인 알레르기가 있어 외국과 싸울 능력이 있을 때까지 개방을 미뤘고 외국인 투자를 엄격 규제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선진국들도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외국투자에 대한 규제를 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발전이 다 된 단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 해서 후진국에 맞지 않는 제도인데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계화에 성공한 나라들은 자신들의 발전 단계에 맞춰서 변신을 잘했던 나라들이다. 사실 보호무역 이론을 만든 사람도 미국의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아닌가. 무비판적으로 선진국에서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정말 우리의 발전 단계와 이익에 맞는 제도인가를 봐야 한다.
“우리 여건에 맞는 자주적 세계화를 해야”
박세일 : 재벌 구조에 대한 비판 상당 부분 수용하지만 재벌은 나름대로 한국경제의 강점이기도 하다. 역동성(dynamism)이 있지 않나.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다.
또한 우리는 외국의 경험 중 몇 나라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해 우리나라 기업의 구조개혁을 말한다. 노동시장 유연성 부분만 하더라도, 물론 우리나라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등 경직적인 부문이 있지만, 오히려 과도하게 유연한 부문도 있다. 업종에 따라 유연성의 정도를 달리 해야 한다. 안에서 기술 축적을 해야 하는 중화학공업이나 제조업 등은 그 정도를 약하게 해야 하지만, 서비스나 첨단정보산업 등은 유동성이 필요한 부문이다.
우리의 중심을 가지고 사물을 봐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의 지적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수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정책 책임자 뿐만 아니라 지식인이나 싱크탱크들도 이런 부분을 보완하지 않으면 자기 중심을 못 잡는다.
장하준 : 미국 같은 나라는 어차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니까 자신에 모든 기준을 맞추면 되니까 세계화 성공이 어렵지 않지만 그 외 세계화에 성공한 나라들 보면, 아까도 핀란드 예를 들었지만, 자주적 세계화를 하는 나라들이다. 세계화에 잘 적응했다고 말해지는 싱가포르 같은 나라도 도시 국가라는 자신들의 특수한 상황을 염두해 두고 토지는 국유화하고, 정부가 나서서 공공주택 공급을 했다. 이렇게 안하면 사회통합이 안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어떻든 간에 이렇게 해야 했다.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외국인에 대한 규제를 우리나라보다 더 한다. 결국 보면 자신들이 뭘 필요한가 파악해 거기에 맞춰 세계화를 한 나라가 성공했다. 그렇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개방했던 나라들은 실패했다.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자주적 세계화를 위해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박세일 : 우리 지식인들의 경우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자주적 세계화가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미국적 시각이 아닌 유럽의 시각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한국, 선진국과 후진국의 중재자 역할 맡아야”
장하준 :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한편으론 우리나라의 역할을 세계적 입장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좁은 의미에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우리 국익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자주적 세계화를 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후자는 구체적으로 산업정책이나 무역정책, WTO 체제 문제와 관련해 칠레 등 개발도상국 국가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들 후진국들은 한국을 안 좋게 생각한다. 같은 후진국이었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의 수혜를 본 한국 같은 나라가 선진국 편에 서서 더 강하게 ‘다국적 투자 협정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한국을 싫어한다.
물론 우리 국익이라는 것이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신망을 얻으려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진국의 문제를 한국이 포용해주었으면 하는 것도 선진국의 바람일 것이다.
박세일 : 우리 사회의 닫힌 민족주의, 폐쇄적 사고를 빨리 극복해야 한다. 열린 민족주의의 자세를 가지고 세계적인 흐름을 타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뭘 배워올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이제는 뭘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21세기에는 남을 많이 도와주는 나라가 성공한다.
장하준 : 한 가지 덧붙이면 지금 후진국들 중 코너에 몰려있는 국가들이 많다. 선진국들의 원조도 줄어들고 무역 개방하라는 압력은 들어오고 위기의식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한때 같은 배를 탔던 한국, 지금은 선진국의 입장을 더 대변하는 한국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던진다.
편협한 자기 이익을 찾는 것을 버릴 때 국제 사회에서 더 존경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인구 800~900만명의 구석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평화주의, 빈곤주의 퇴폐 등에 앞장선다.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익에 무엇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세계화의 대세를 인정하면서도 평소 자주적 세계화의 가능성을 모색해온 서울대 박세일 교수와 후진국 입장에서 세계화를 조망한 대안적 세계화론으로 최근 한국인 최초 ‘뮈르달 상’을 수상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자리를 같이했다. <편집자>
“세계화란 무엇인가.... 정책적 개입으로 속도 조절 가능한가”
박세일 : 우선 세계화를 여러 형태로 정의할 수 있지만 아주 간단히 말하면 시장의 확대, 인간 대 인간의 교환관계와 거래관계의 확대로 볼 수 있다. 시장의 확대로서의 세계화를 보면 특히 과거 200~300년간 진행됐던 세계화가 인류의 물적 풍요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중세 천 년간 1인당 GNP에는 큰 차이가 없다가 산업혁명 이후 지방시장이 국가시장으로 확대되고, 국가시장이 세계시장으로 확대되면서 물적 풍요가 엄청 증가했다. 물적 풍요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세계화는 하나의 기회다.
장하준 : 세계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유용한 출발점 중 하나가 ‘세계화는 20세기 후반 들어 수송과 통신의 발달로 생긴 현상’이라는 명제를 재검토 하는 것이다. 흔히들 이렇게 규정을 한다.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미 요즘과 비슷한 정도로 이미 진행되었던 경험이 있다.
물론 돛단배로 바다 건너던 시절 세계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19세기 말 있었던 기술이라야 증기선, 유선 전신 정도였는데도 세계화가 많이 됐었다. 오히려 1950 ~ 60년대는 지금과 비교해 볼 때 인터넷만 빼고 현재의 통신, 송수신 기술 다 있었지만 19세기말 20세기 초에 비하면 훨씬 세계화가 덜 됐었다. 세계화가 진행되다 각국이 갑자기 내향적 발전으로 돌아섰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세계화라는 것이 기술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나 정책적 요소가 가미되어 그 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만약 세계화가 기술발전에 정비례하는 것이라면 1950년에는 1900년보다 더 세계화되고 2000년에는 1950년보다 더 세계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따라서 세계화는 반드시 기술발전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다.
흔히 있는 관점 중 하나가 세계화는 기술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인데, 그 전제가 맞다면 기술은 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화는 불가항력적이다. 기술을 퇴보시키자는 것은 역사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이나 정치와 같은 인간의 의지로 세계화의 속도와 형태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세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박세일 :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세계화라는 것이 기술적인 요인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사실은 국가정책이 결합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데,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 1차 세계화는 실패했다. 과도한 시장주의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과도한 시장주의는 결국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고 정치적 불안을 초래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정치경제 시스템 자체가 세계화의 흐름을 수용할 수 없어 세계화는 실패한다. 정치적으로는 극좌나 극우, 집단주의가 등장하고 시장에 대해서는 계획이 들어간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과거처럼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많은 사람을 위한 세계화가 될 수 있다.
“70년대 중반 이후 금융위기 증대....하지만 세계화는 대세”
장하준 :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80년대 이후 - 여기서 세계화가 추진되었다는 것은 국내 정책이 바뀌고 기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개방주의 시장주의 정책을 폈다는 것인데- 세계 경제 성장률은 2% 밖에 안된다. 오히려 50 ~ 60년대 개입주의가 성행했던 시대엔 세계경제 성장율이 3.1%이었는데 말이다. 빈부격차도 많이 증가하고 경제 불안이 가중된 것도 큰 문제라고 본다.
역사학자들이 모은 통계를 보니까 1945년부터 1971년까지 전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38건 있었다. 하지만 1973년부터 1997년까지는 139건이 있었다. 45년부터 71년까지는 1년에 평균 1.5건 있었는데 70년대 중반부터 1년에 평균 4.5건으로 늘었다. 결국 성장도 안되고 빈부격차도 심해져 자꾸 불만이 터져 나오면 체제유지를 위해 다시 세계화를 되돌려야 할 상황이 오게 된다.
일부에서 반세계화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세계화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세계화가 선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식으로 무리하게 일방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문제다. 결국 그렇게 하면 세계화가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극단적으로 저는 세계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세계화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미 한 번 실패했던 것처럼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하고 다 함께 가는 방향으로 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세계화 이후 국내 소득 격차는 정부 정책에 따라 악화 또는 개선”

지난 10년 간 통계를 보면 이미 세계화된 국가의 연평균 성장률은 2%대, 새로 세계화에 진입했거나 사회주의체제에서 시장주의로 돌아선 국가, 또 우리나라처럼 중진국에 들어선 국가들의 연평균 성장률은 5%대이다. 하지만 세계화와 전혀 관계없이 사는 국가의 연평균 성장률은 -1%이다. 이러한 통계 수치만 보더라도 세계화를 타야 한다는 당위가 나온다.
국가내 소득분배에 세계화가 도움을 주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세계화 흐름은 잘 탔지만 국내 소득분배가 악화된 경우도 있고 개선된 경우도 있다. 국내 분배 부분은 개별 국가가 어떤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장하준 : 동의한다. 그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선진국은 복지혜택이 크기 때문에 사실 시장에서의 결정된 소득과 사람들이 실제로 누리는 생활수준의 일대일 관계가 없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그러한 기제가 없기 때문에 시장의 충격이 크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부의 개입은 중요하다. 같은 선진국이고 시장 지향적 정책을 폈음에도 영국은 국내 소득 분배가 오히려 악화됐고 스웨덴은 소득분배가 악화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단기 자본 이동 제한하는 보호장치 마련해야”
박세일 : 시스템의 불안정성 증대도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다. 세계가 단일 시장화 되고 자본 시장도 단일화 되면서 돈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규모도 커졌다. 자본시장 내 예측 불가능성이 증대했고 결국 국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불안정성 문제가 대두됐다.
장하준 : 금융 쪽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이는 개별 국가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주로 외화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무역을 한다든가, 외국에 투자를 한다든가 실물경제와 연결된 부분에서였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환투기를 포함해 실물경제와 괴리된 부분에서의 환거래가 늘어났다.
추산에 따라 다르지만 세계에 흘러 다니는 통화량 중 실물 경제와 관련된 통화량을 100분의 1까지 보는 사람도 있다. 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는 돈의 100분의 1만 실물경제와 연결되고 나머지는 금융투자와 관련해 움직인다는 것인데, 이런 추세라면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가 외환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도 자주 일어날 수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의 경우 80년대 말 부동산 바람이 불면서 금융위기가 왔던 적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개별국가에서 통제할 수 없다.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데 개별국가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엠에프(IMF)를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세일 : 실물 이동과 관계없이 돈 자체가 단기 수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문제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외환거래량 2조 중 40%가 이틀 사이에 거래 방향이 바뀐다. 이론적으로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단일화 되었지만 시장에서 생기는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세계 정부(global governance)는 없다.
월드뱅크(World Bank)나 아이엠에프(IMF) 등 기존의 국제기구를 개혁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제 3의 글로벌 가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만들 수도 있다. 한편으론 지역주의(regionalism)를 강화해 충격흡수장치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별국가들도 외국인의 직접투자에 대해서는 장려를 해도 단기 자본 이동에 대해서는 문턱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보호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후진국 입장에서 경제운영이 어려워진다. 국가에 따라 어느 정도 단기자본을 막는 수단을 사용하기도 했다. 칠레나 콜롬비아, 말레이지아의 경우 요즘은 다시 자본을 끌어오는 것이 급해 폐지했다고 하지만, 예전에 금융자본이 자국으로 지나치게 들어온다 싶을 때 기탁금 제도를 활용했다. 일단 외자가 들어오면 그중 30~50% 정도를 기탁금으로 맡겨 놓게 했다. 1년 이상 있다 나가면 기탁금을 다 돌려줬고, 1년 내에 나가면 포기하게 했다. 단기자본과 장기자본의 비율이 8 : 2였다 2 : 8 로 역전되었다.
지금은 미국이 워낙 반대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제도인지 모르겠지만, 예전 예일 대 토빈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돈을 바꿀 때마다 소액의 거래세를 부과시키면 실물경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 돈을 자주 안 바꾸니까 부담이 안될 것이고, 환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틀에 한 번 이들의 돈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0.1%만 부과해도 큰 부담이 된다. 일 년에 백 번 이상 돈이 왔다 갔다 하면 거래한 돈의 10% 이상 세금을 매기니까 큰 부담이 된다.
개인적으론 결국 발전 단계가 낮은 중국 같은 나라의 자본통제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경우 내부 부실채권도 많고 문제가 많다. 그런데 미국이 원하는 자본자유화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성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발전 단계가 올라가면 물론 자본통제를 풀어야 하지 않나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후진국에겐 자본시장 개방은 시스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후진국의 문제 전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박세일 : 세계시장은 단일시장화 되는데, 정치는 국민국가(nation state) 중심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되면서 생긴 각종 문제, 예를 들어 금융시스템의 불안이나 환경문제, 테러나 국제범죄 등 여러 나라에서 겹쳐 발생하는 문제들은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이익의 관점에서 해결할 수 없다.
개별국가의 이익을 선진국은 선진국의 입장에서 후진국은 후진국의 입장에서 풀려고 하니까 모순이 생긴다. 세계화에 편입되지 못한 20억의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선진국이 후진국의 절대빈곤과 질병 문제에 대해 ‘너희들이 세계화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면 해결이 안된다.
세계 200명 최상위 부자 재산의 합이 가난한 20억의 재산 합계보다 많다는 통계가 있다. 후진국 사람들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은 글로벌 이슈(global issue)를 다룰 때 자국의 이익(national interest)을 넘어서 생각해야 한다.
장하준 :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동의한다. 후진국 사람들의 최후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이 에이즈 문제이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 중 국민의 30-40%가 에이즈 보균자다. 에이즈 환자 일년 약값이 원가로 300~400달러 정도다. 그런데 정작 약을 개발하는 선진국들의 특허권 때문에 일년 약값이 만 달러로 뛴다.
브라질이나 태국에 있는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약을 만들어 싼 값에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데, 선진국들이 WTO를 통해 ‘특허권 있으니 안된다’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 입장에서는 300~400달러만 되고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데 만 달러면 결국 국민의 30~40%가 죽는다. 여론이 안 좋으니까 클리턴 미 전 대통령이 압력을 넣어 결국 좀 싸게 했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물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 결국 체제가 망하면 자신도 망하지 않나. 후진국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렇게까지 우리를 누를 필요가 있나’ 반발을 하고 일부에서는 테러까지 일으킨다. 그러한 세계 체제에 대한 불만이 테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 경제정책에 월스트리트 시각 지나치게 반영”

월스트리트 출신들 물론 좋은 인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제를 금융 중심, 금융 중심의 이해관계에서 바라보는데 고용이나 소득 분배는 금융 교과서에 없다. 현재의 상황에선 실질적인 음모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세계 경제에 금융적 시각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다.
장하준 : 최근 브라질에 다녀왔다. 브라질은 국채를 포함해 외채가 많은 국가이다. 이유야 어떻든지 단기적으로도 돈을 자국에 잡아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서 이자율을 높게 유지하는데 산업자본가들은 우는 소리를 한다. 실질이자율이 12-13% 정도 한다. 이 사람들은 ‘이것 가지고 어떻게 공장을 굴리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자본의 입장은 다르다. 이자율이 높다 하더라도 금방 콜롬비아로 움직이고 싱가포르로 움직여야 한다. 산업자본은 이동성이 약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궈서 발전시켜야 하는데, 금융자본은 워낙 빨리 이동한다. 이것은 세계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산업자본 입장에서 보면 금융자본 때문에 실물경제가 부도가 나더라도 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한다.
“세계화는 미국화가 아니다”
박세일 : 세계화의 방향이 ‘공생적(共生的) 세계화’이어야 한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국내적으로 세계화로 얻는 열매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의미와 글로벌 차원에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자주적 세계화’이어야 한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장하준 : 현재 대다수가 가진 인식 중 하나는 세계화 시대 세계적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된다는 것이다. 우리 현실 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니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채택하는 것이 많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그러한 인식이 증대됐는데, 문제는 현재의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것들이 진짜 글로벌 스탠더드이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이 영미식 제도다. 선진국을 보면 영미식 제도를 갖지 않은 국가들이 많다. 기업제도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가 있고 미국 영국의 제도는 사실상 예외에 속한다. 물론 미국 영국이 세계여론을 주도하고 힘이 세니까 먹혀드는 측면이 있지만, 다수 선진국들은 자주적 세계화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박세일 : 산업화가 서구화가 아닌 것처럼 세계화가 곧 미국화는 아니다. 세계화 된다는 것은 순수하게 국제 기준에 맞춘다는 것이 있고, 미국화된 국제 기준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장하준 : 또 하나 있다. 미국도 안 지키는 국제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해서 다른 나라에 강요되는 것도 있다.(웃음)
박세일 : 동의한다. 취사선택의 능력 없이 무조건 그러한 기준들을 받아들이면 우리 문화와 의식과 맞지 않기 때문에 제도가 들어와도 형해화 된다. 제도 실패(system failure)가 된다. 우리 문화에 적합한 보편성을 가진 제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사외이사제도 등 미국적인 제도가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이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진국들 올챙이적 시절엔 외국인 투자에 규제”

영국만 하더라도 외국기업이 투자를 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요구조건을 안 붙인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를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관리들을 만나면 ‘투자해줘서 고맙다’고는 말해도 점심 끝나기 5분 전에는 꼭 ‘이 동네 부품도 많이 사주고 고용도 많이 해달라’며 무언의 압력을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규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자신들 역시 자본 수입국의 입장에서 외국인 투자를 규제를 많이 했던 역사가 있다. 미국이 19세기에 영국이나 유럽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때, 외국인이 이사가 되는 것을 제외했던 경험, 주에 따라 외국은행 지점 설치를 금지했던 경험, 외국인을 아예 고용하지 못하게 했던 경우도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규제를 했다.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유럽의 지위가 역전됐다. 유럽이 자본수입국이 되고 미국이 투자국이 되었는데, 영국 독일 프랑스 이런 나라들에 비공식적 규제도 많았지만 70년대까지 공식적인 규제 역시 많았다.
가장 재미있는 나라가 핀란드다. 핀란드는 요즘 세계화에 가장 성공적인 모범생으로 꼽힌다. 73년 유럽연합(EU) 가입할 때까지 외국인이 20% 이상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을 위험기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핀란드에 투자를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던 태도가 일면 이해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핀란드는 스웨덴에 700년, 러시아에 100년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독립을 해도 외국인 알레르기가 있어 외국과 싸울 능력이 있을 때까지 개방을 미뤘고 외국인 투자를 엄격 규제했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독일 선진국들도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외국투자에 대한 규제를 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발전이 다 된 단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라 해서 후진국에 맞지 않는 제도인데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계화에 성공한 나라들은 자신들의 발전 단계에 맞춰서 변신을 잘했던 나라들이다. 사실 보호무역 이론을 만든 사람도 미국의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아닌가. 무비판적으로 선진국에서 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정말 우리의 발전 단계와 이익에 맞는 제도인가를 봐야 한다.
“우리 여건에 맞는 자주적 세계화를 해야”
박세일 : 재벌 구조에 대한 비판 상당 부분 수용하지만 재벌은 나름대로 한국경제의 강점이기도 하다. 역동성(dynamism)이 있지 않나.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다.
또한 우리는 외국의 경험 중 몇 나라의 특수한 경험을 일반화해 우리나라 기업의 구조개혁을 말한다. 노동시장 유연성 부분만 하더라도, 물론 우리나라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등 경직적인 부문이 있지만, 오히려 과도하게 유연한 부문도 있다. 업종에 따라 유연성의 정도를 달리 해야 한다. 안에서 기술 축적을 해야 하는 중화학공업이나 제조업 등은 그 정도를 약하게 해야 하지만, 서비스나 첨단정보산업 등은 유동성이 필요한 부문이다.
우리의 중심을 가지고 사물을 봐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의 지적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식인의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 수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정책 책임자 뿐만 아니라 지식인이나 싱크탱크들도 이런 부분을 보완하지 않으면 자기 중심을 못 잡는다.
장하준 : 미국 같은 나라는 어차피 정치적 영향력이 크니까 자신에 모든 기준을 맞추면 되니까 세계화 성공이 어렵지 않지만 그 외 세계화에 성공한 나라들 보면, 아까도 핀란드 예를 들었지만, 자주적 세계화를 하는 나라들이다. 세계화에 잘 적응했다고 말해지는 싱가포르 같은 나라도 도시 국가라는 자신들의 특수한 상황을 염두해 두고 토지는 국유화하고, 정부가 나서서 공공주택 공급을 했다. 이렇게 안하면 사회통합이 안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어떻든 간에 이렇게 해야 했다.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외국인에 대한 규제를 우리나라보다 더 한다. 결국 보면 자신들이 뭘 필요한가 파악해 거기에 맞춰 세계화를 한 나라가 성공했다. 그렇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개방했던 나라들은 실패했다.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자주적 세계화를 위해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박세일 : 우리 지식인들의 경우 미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자주적 세계화가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미국적 시각이 아닌 유럽의 시각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한국, 선진국과 후진국의 중재자 역할 맡아야”
장하준 :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한편으론 우리나라의 역할을 세계적 입장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좁은 의미에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우리 국익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자주적 세계화를 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후자는 구체적으로 산업정책이나 무역정책, WTO 체제 문제와 관련해 칠레 등 개발도상국 국가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들 후진국들은 한국을 안 좋게 생각한다. 같은 후진국이었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의 수혜를 본 한국 같은 나라가 선진국 편에 서서 더 강하게 ‘다국적 투자 협정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한국을 싫어한다.
물론 우리 국익이라는 것이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신망을 얻으려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진국의 문제를 한국이 포용해주었으면 하는 것도 선진국의 바람일 것이다.
박세일 : 우리 사회의 닫힌 민족주의, 폐쇄적 사고를 빨리 극복해야 한다. 열린 민족주의의 자세를 가지고 세계적인 흐름을 타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뭘 배워올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이제는 뭘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21세기에는 남을 많이 도와주는 나라가 성공한다.
장하준 : 한 가지 덧붙이면 지금 후진국들 중 코너에 몰려있는 국가들이 많다. 선진국들의 원조도 줄어들고 무역 개방하라는 압력은 들어오고 위기의식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한때 같은 배를 탔던 한국, 지금은 선진국의 입장을 더 대변하는 한국에 대해 차가운 시선을 던진다.
편협한 자기 이익을 찾는 것을 버릴 때 국제 사회에서 더 존경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인구 800~900만명의 구석에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평화주의, 빈곤주의 퇴폐 등에 앞장선다.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익에 무엇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