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 불고 있는 改憲 회오리

by 永樂 posted Nov 25, 2003
동북아에 불고 있는 改憲 회오리
생존과 국익 위해 타이완,중국,일본 개헌 움직임
우리나라의 개헌론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류(韓流) 열풍’으로 한국을 찾아오는 중국과 대만의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이들이 대거 몰려와 돈을 쓰고 가니 우리에게는‘진객(珍客)’임에 틀림없다. 고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문득 “중국인과 대만인 중 누가 돈을 더 많이 쓸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은 없을까.

답을 알려면 먼저 중국 사람과 대만 사람을 구별해야 한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도 식별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들이 갖고 다니는 여권을 보면 안다. 대만은 지난 9월부터‘中華民國(ROC)’이라고 표기된 여권에‘타이완(Taiwan)’이라는 영어 단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때때로 대만 여권이 ‘중화인민공화국(RPC)’여권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알지만 외국인들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면서‘타이완’이라는 영어 단어를 여권에 병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요즘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 국무원(내각) 대만 판공실(대 대만 정책기관)은“대만 독립은 곧 전쟁이며 무력 행사가 불가피하다”면서 강력한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이 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공개 경고한 것은 최근 3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이 발끈하고 있는 것은 대만이 독립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 대만 총통은 2004년 3월 20일 총통선거에서 재선되면 대만 독립을 헌법에 명시한 개헌 국민투표를 2006년 12월 10일 실시하고 2008년 5월 20일 개헌안을 발효시킬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한 바 있다.

천 총통은 “대만은 특정 국가의 1개 성(省)이 아니며 특별행정구도 아니다”라면서“대만과 중국은 일변일국(一邊一國)이며 대만은 하나의 중국을 반대한다”고 주장해왔다. 194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중국을 대만의 영토로 포함하고 있지만 새 헌법은 대만 정부가 통치하는 지역만 영토로 한정하고, 국호도 현행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에서‘대만공화국(Republic of Taiwan)’으로 바꾸며, 새 국기(國旗)도 만든다는 것이다. 대만이 일종의 제헌 헌법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이 갈수록 대국으로 성장함에 따라 중국에‘흡수 통일’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예 독립을 선언해 중국과는 다른 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자는 의도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거쳐 대만과의 통일을 완수, ‘새로운 중화(新中華)’를 건설하려는 중국으로서는 당연히 대만은 자국 영토인 만큼 이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만은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에 이어 2005년께 달 착륙을 추진하는 등 욱일 승천하고 있는 중국에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다. 일본을 제치고 조만간 아시아의 경제 맹주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체제가 들어서면서 성장의 가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도처에 중국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돈을 펑펑 쓰는데도 외환 보유고는 올 10월말 현재 4천 10억 달러로 일본의 6천49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개혁·개방을 주도해온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현재의 성장을 유지하고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더욱 과감한 조치를 구상하고 있다. 그 계획은 바로 헌법에 민간 기업의 재산권 보호조항을 신설한다는 것이다. 명백한 사유재산제의 도입이다. 후 주석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민간 기업이 경제 성장의 핵심 주체인 만큼 이들 기업의 사유 재산 보호는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운 바 있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10월 열린 제 16기 중앙위원회 제 3차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헌법 개정의 원칙을 확인하고 2004년 3월 개최될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에서 이를 통과시킬 방침이다. 경제 대국이 라는 국익을 위해서는 공산당의 이념마저 수정하겠다는 대단한 도박인 셈이다. 중국은 이처럼 급성장하고 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머지 않아 정치·군사대국으로 변신,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정치·군사대국화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 역시 1947년 제정된 후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평화 헌법을 고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제9조를 개정한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침략을 저지하는 집단인 자위대가 군대가 아니라는 헌법 규정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헌법 개정을 주장해왔다. 아사히(朝日) 신문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 9일 실시된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의원들 중 자민당과 민주당에서 각각 88%, 62%가 개헌에 찬성했다.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창당 50주년이 되는 2005년 11월까지 헌법개정안 초안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을 처음 내세운 바 있다. 민주당도 ‘헌법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창헌(創憲)’을 공언하고 있어 헌법 개정은 대세가 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3년 임기 중 개헌안을 만들고, 후임 총리가 개헌하도록 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일본이 개헌을 통해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들고 재무장하려는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동북아에 개헌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생존과 국익을 위해, 번영과 발전을 위해 국가의 대계인 헌법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3국의 개헌 움직임은 매우 용의주도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21세기 변혁의 중심인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전략이다.

개헌의 바람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지만 그 성격은 다르기만 하다. 오로지 권력을 잡으려는 ‘묘책’으로 헌법 개정을 상정하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개헌안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내각을 장악하자는 의도이다. 물론 노 대통령도 헌법에 위반될 수도 있는 재신임 문제를 들고 나와 정국을 돌파하려는 ‘꼼수’를 두기도 했다. 하기야 우리의 헌법 개정사는 모두 권력을 잡으려는 당리당략으로 점철돼왔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대계를 담은 헌법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된 한반도를 지향하면서 국제관계도 고려하고 정치 개혁도 완수할 수 있는 국익을 위한 헌법이 필요하다. 이는 결코 노대통령의 말 처럼 ‘통박’을 굴려서는 안 된다. 철저한 공론화와 주도 면밀한 준비 및 전략, 그리고 국시(國是)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장훈(칼럼니스트)

약력
한국일보 모스크바 주재 초대 특파원을 지냈고 사회부 차장, 국제부 수석 차장, 주간한국 부장을 역임했다. 한국 신문협회 기자 대상, 한국 기자협회 기자상, 백상 기자 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네오콘-팍스 아메리카나의 전사들>, <유러화의 출범과 21세기 유럽합중국>, <유럽의 문화도시들>, <러시아 곰은 웅담이 없다> 등이 있으며 현재 국제 분야의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176 고구려는 한국과 중국의 공통의 역사 民主 2003.12.10 1827
175 [re] 고구려는 한국과 중국의 공통의 역사 : 황당하군요 이용찬 2003.12.12 1710
174 교육문제 토론 한 번 합시다... 永樂 2003.12.09 2056
173 '새로운 차르' 푸틴? <업코리아> 永樂 2003.12.09 1789
172 무서운 중국의 노림수 <다음> 永樂 2003.12.08 1928
171 양성자가속기의 이중성-최종목적은 핵폐기물 변환사업 사랑과정의 2003.12.06 1798
170 부안, 반핵민주투쟁, 전쟁기계 사랑과정의 2003.12.02 1917
169 일독을 권합니다... 永樂 2003.11.29 1756
168 세 겹의 反휴머니즘 <최정호> 永樂 2003.11.28 1879
167 신행정수도 논란... 永樂 2003.11.27 1837
166 정보 안 주는 미국, 무조건 최대치 한국 永樂 2003.11.26 1881
165 이라크 베트남과 다르다(이라크, 국회 조사단 인터뷰) 民主 2003.11.25 1720
» 동북아에 불고 있는 改憲 회오리 永樂 2003.11.25 1532
163 [대담] 박세일 VS 장하준 ‘대안적 세계화 가능한가’ 永樂 2003.11.25 1898
162 부안이 제2의 광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사랑과정의 2003.11.22 164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 32 Next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