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차르' 푸틴과 러시안 룰렛
푸틴 대통령 러시아 하원선거 압승...공산당, 좌파 몰락
러시아 민족주의 부활...푸틴 막강한 권력 행사할 듯
러시아 민족주의 부활...푸틴 막강한 권력 행사할 듯

구 소련과 러시아의 역대 최고 통치자들에게만 통하는 규칙이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 니키타 흐루시초프,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체르넨코,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 블라디미르 푸틴 등 역대 통치자들을 보면 대머리와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 교대로 집권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외모로 나타난 특징이지만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은 역대 통치자들은 모두 절대 권력을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소련 시대에는 권력투쟁과 숙청이 끊이질 않았고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사사건건 대립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공산당이 장악한 의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탱크를 동원해 의사당을 포격하기도 했다.
옐친의 후계자 푸틴 대통령은 2003년 12월 7일 실시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손쉽게 절대권력을 쥐게됐다. 이번 총선에서 푸틴을 지지하는 친(親) 크렘린계 정당인 러시아 단합당이 약 37%의 득표율을 기록, 1위를 차지했다. 또 친 푸틴 성향의 블라디미르 지리노브스키가 이끄는 자유민주당(LDPR)이 11.6%로 3위를, 크렘린이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해 3개월 전 급조한 조국당이 9.1%를 획득, 4위를 차지했다.
반면 공산당은 12.7%를 차지해 2위로 밀려났으며 자유성향의 우파연합(SPS)과 야블로코당을 포함한 다른 당들은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마지노 선인 5%의 장벽도 넘지 못했다. 지역구 225명과 비례대표 225명 등 모두 450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에서 정당별 잠정 확보 의석은 단합당 222, 공산당 53, LDPR 38, 조국당 45, 인민당19, 야블로코당 4, SPS 2, 농업당 2, 무소속 65석 등으로, 푸틴 을 직접 지지한 러시아 단합당-LDPR-조국당 등 3당의 의석만 해도 개헌선(300석)을 5석이나 초과했다.
이로써 소련 붕괴 이후 최대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해왔던 공산당과 좌파 세력들은 처음으로 몰락했으며 친 서방 계열의 정당들마저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등 의회가 푸틴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완전 물갈이 됐다. 푸틴은 내년 3월 14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재선이 확실시되며 2008년 임기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됐고 임기 중 개헌을 통해 3선을 노릴 수도 있다. 현행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며 한 차례 중임할 수 있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수당이 된 러시아 단합당은 물론 자유민주당과 조국당 등 범(汎) 여당이 모두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유권자들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다수당이었던 공산당과 민주 개혁을 이끌었던 SPS와 야블로코당을 동시에 외면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소련의 이데올로기도, 서방의 민주주의도 아닌 제 3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3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푸틴이 지난 4년 간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강한 러시아'이다. 일종의 민족주의인 셈이다.
푸틴의 친위세력인 러시아 단합당은 소련 붕괴 이후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하다. 러시아 단합당은 말 그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가 혼합된 정강 정책을 내걸었다. 선거 슬로건도 '대통령과 함께'라는 간단한 것이었다. 푸틴을 위한 '일인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국민들이 이 당을 선택한 것은 푸틴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친 크렘린계 정당인 단합당과 조국-전러시아당이 2001년 합당해 만든 러시아 단합당은 실질적으로 크렘린궁이 관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국영 방송은 물론 행정부의 각종 기관 등은 러시아 단합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했었다. 또 선거자금도 역시 4억 달러 이상을 쓴 것으로 러시아 언론들은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의 최대 재벌인 유코스 석유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을 전격 구속한 것도 야당을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푸틴은 현재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았지만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자신을 지지한다면 러시아 단합당을 지지해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총선을 감시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선거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패한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이번 선거는 혐오스런 쇼였으며 민주주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렘린은 이번 총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러시아 단합당을 앞으로 일본의 자민당이나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처럼 집권 여당으로서 오랜 기간 러시아를 통치하려는 장기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 이는 당과 국가를 혼합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추진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보리스 그리즐로프 내무부 장관 겸 러시아 단합당 지도자는 '다른 정당들은 하원을 위해 싸웠지만 우리는 러시아를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아나톨리 추바이스 SPS 당수는'앞으로 러시아는 국가 사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의회를 장악하게 된 푸틴은 자신처럼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 등 측근세력을 대거 기용하는 등 친정체제를 강화해 나갈 전망이다. 또 경제재건과 부패척결, 전문 관료제의 강화 및 재벌총수들에 대한 통제강화 등 개혁정책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 조사기관들에 따르면 국민들 중 80%는 지난 4년 간 경제가 발전하고 질서가 회복됐으며 군과 교육 기관이 개혁되었고 연금과 임금이 올랐다면서 푸틴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10여 년 간 벌어졌던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법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질서를 바로 잡았던 푸틴은 더욱 강력한 법치주의를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푸틴이 민족주의를 이용해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면서 철권 통치를 통해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푸틴의 경력을 보면 그 같은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구 KGB 출신인 푸틴은 1996년 대통령 총무실 부실장, 1997년 대통령 행정실(크렘린궁) 제1부실장을 지냈으며 1998년 7월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임명된 후 1999년 3월 국가안보위원회 서기도 겸임했다. 1999년 8월 총리로 임명된 그는 같은 해 12월 31일 옐친 대통령이 임기를 남겨둔 채 전격 사임함에 따라 47세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2000년 3월 26일 실시된 대선에서 당선된 그는 이처럼 짧은 기간에 권력을 움켜쥔 것이다. 그의 집권에는 구 KGB의 개혁세력이 상당한 역할을 했었다.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 정책도 푸틴 등 젊은 엘리트 KGB 관리들이 주도했다는 말도 있었다. 때문에 명실공히 막강한 권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얻은 푸틴이 '관리 민주주의'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차르'(윗 사진, 차르-푸틴?)가 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푸틴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총선으로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화됐다'면서도 '총선 결과는 국민의 진실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정 러시아의 전제 군주제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겪은 러시아 국민들은 어느 정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권위주의 체제를 원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진실한 열망'이라는 푸틴의 말에 묘한 뉘앙스가 담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러시안 룰렛'게임일 수도 있다. 6연발 회전식권총(리볼버)에 총알 한 발을 넣고 자신의 머리에 쏘는, 일종의 생명을 건 도박이라는 말이다. 1991년 소련 붕괴이후 지난 10여 년 간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사회적 혼란, 초강대국의 지위 상실에 따른 국가 자존심의 실추, 정체성의 실종, 연방의 분리.독립 등을 겪은 국민들이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푸틴 카드'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남용의 위험도 커진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새로운 차르' 푸틴은 알고 있을까.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옐친의 후계자 푸틴 대통령은 2003년 12월 7일 실시된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손쉽게 절대권력을 쥐게됐다. 이번 총선에서 푸틴을 지지하는 친(親) 크렘린계 정당인 러시아 단합당이 약 37%의 득표율을 기록, 1위를 차지했다. 또 친 푸틴 성향의 블라디미르 지리노브스키가 이끄는 자유민주당(LDPR)이 11.6%로 3위를, 크렘린이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해 3개월 전 급조한 조국당이 9.1%를 획득, 4위를 차지했다.
반면 공산당은 12.7%를 차지해 2위로 밀려났으며 자유성향의 우파연합(SPS)과 야블로코당을 포함한 다른 당들은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마지노 선인 5%의 장벽도 넘지 못했다. 지역구 225명과 비례대표 225명 등 모두 450명의 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에서 정당별 잠정 확보 의석은 단합당 222, 공산당 53, LDPR 38, 조국당 45, 인민당19, 야블로코당 4, SPS 2, 농업당 2, 무소속 65석 등으로, 푸틴 을 직접 지지한 러시아 단합당-LDPR-조국당 등 3당의 의석만 해도 개헌선(300석)을 5석이나 초과했다.
이로써 소련 붕괴 이후 최대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해왔던 공산당과 좌파 세력들은 처음으로 몰락했으며 친 서방 계열의 정당들마저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등 의회가 푸틴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완전 물갈이 됐다. 푸틴은 내년 3월 14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재선이 확실시되며 2008년 임기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게 됐고 임기 중 개헌을 통해 3선을 노릴 수도 있다. 현행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임기가 4년이며 한 차례 중임할 수 있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수당이 된 러시아 단합당은 물론 자유민주당과 조국당 등 범(汎) 여당이 모두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유권자들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다수당이었던 공산당과 민주 개혁을 이끌었던 SPS와 야블로코당을 동시에 외면했다. 이는 유권자들이 소련의 이데올로기도, 서방의 민주주의도 아닌 제 3의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 3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푸틴이 지난 4년 간 강력하게 주장해왔던 '강한 러시아'이다. 일종의 민족주의인 셈이다.
푸틴의 친위세력인 러시아 단합당은 소련 붕괴 이후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하다. 러시아 단합당은 말 그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가 혼합된 정강 정책을 내걸었다. 선거 슬로건도 '대통령과 함께'라는 간단한 것이었다. 푸틴을 위한 '일인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 국민들이 이 당을 선택한 것은 푸틴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친 크렘린계 정당인 단합당과 조국-전러시아당이 2001년 합당해 만든 러시아 단합당은 실질적으로 크렘린궁이 관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국영 방송은 물론 행정부의 각종 기관 등은 러시아 단합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했었다. 또 선거자금도 역시 4억 달러 이상을 쓴 것으로 러시아 언론들은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의 최대 재벌인 유코스 석유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을 전격 구속한 것도 야당을 지원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푸틴은 현재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았지만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자신을 지지한다면 러시아 단합당을 지지해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총선을 감시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선거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패한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이번 선거는 혐오스런 쇼였으며 민주주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렘린은 이번 총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러시아 단합당을 앞으로 일본의 자민당이나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처럼 집권 여당으로서 오랜 기간 러시아를 통치하려는 장기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 이는 당과 국가를 혼합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추진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보리스 그리즐로프 내무부 장관 겸 러시아 단합당 지도자는 '다른 정당들은 하원을 위해 싸웠지만 우리는 러시아를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아나톨리 추바이스 SPS 당수는'앞으로 러시아는 국가 사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의회를 장악하게 된 푸틴은 자신처럼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 등 측근세력을 대거 기용하는 등 친정체제를 강화해 나갈 전망이다. 또 경제재건과 부패척결, 전문 관료제의 강화 및 재벌총수들에 대한 통제강화 등 개혁정책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 조사기관들에 따르면 국민들 중 80%는 지난 4년 간 경제가 발전하고 질서가 회복됐으며 군과 교육 기관이 개혁되었고 연금과 임금이 올랐다면서 푸틴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소련 붕괴 이후 10여 년 간 벌어졌던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법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질서를 바로 잡았던 푸틴은 더욱 강력한 법치주의를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푸틴이 민족주의를 이용해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면서 철권 통치를 통해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푸틴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총선으로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더욱 강화됐다'면서도 '총선 결과는 국민의 진실한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정 러시아의 전제 군주제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겪은 러시아 국민들은 어느 정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권위주의 체제를 원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진실한 열망'이라는 푸틴의 말에 묘한 뉘앙스가 담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러시안 룰렛'게임일 수도 있다. 6연발 회전식권총(리볼버)에 총알 한 발을 넣고 자신의 머리에 쏘는, 일종의 생명을 건 도박이라는 말이다. 1991년 소련 붕괴이후 지난 10여 년 간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사회적 혼란, 초강대국의 지위 상실에 따른 국가 자존심의 실추, 정체성의 실종, 연방의 분리.독립 등을 겪은 국민들이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푸틴 카드'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남용의 위험도 커진다'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새로운 차르' 푸틴은 알고 있을까.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