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회생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금,
한은과 정부에서는 내년 5.2% 성장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끄트머리에 조그만 글씨로 "소비와 설비투자의 회복을 전제로"라 적혀 있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선 빈정대는 소리가 들리고,
국내에서도 경총이나 여러 기관의 우려가 들린다.
이대로 가면 환란의 고통이 다시 오지 않으란 법이 없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그로기에 처했는데 외화만 쌓아놓았다고 만사태평이란 말인지.
오늘도 당국에서는 곧 고통이 끝날 것이란 태평가를 부르고 있다.
당국으로부터 재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뒷짐진 글쟁이들부터 그저 버티는 빚쟁이들까지,
온 나라의 경제주체들이 공생의 연대감과 책임성을 잃고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경고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앞서고 마음이 무겁다.
KG에서 출범 이후 이 문제에 관해서도 역할이 있었으면 한다.
아래에 카드채 문제와 관련한 도덕적 해이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
<시론> 책임은 누가 지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12월8일)은 ‘카드로 쌓은 집’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사회의 신용카드 위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크레디트카드 회사이건 재벌이건 아니면 일개 시민이건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을 저질렀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그냥 죽치고 앉아 누군가가 구해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카드채 위기는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외국의 매스컴조차 이미 눈감고도 답을 써낼 정도로 단순 명료하다. 그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고 적으면 된다. OK, 그대로 정답이다.
그래도 약간의 배경 설명을 덧붙이는게 좋을듯싶다. 이래야 진도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우선 우리나라 카드채 위기의 발단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5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월 70만원인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한도를 전격 폐지했다. 액수가 얼마든 마음대로 빌려쓰라는 정책 신호였다.
그러자 시중에 돈이 마구 풀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머물렀다면 다행이다. 이미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친 카드 소지자들에 한해 정부가 베푼 시혜조치였기 때문이다. 정작 황당한 광경은 카드회사들 스스로 연출했다. 정부가 유형 무형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카드사들은 아예 길거리마다 좌판을 벌여놓고 10대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뿌려댔다.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 유무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LG카드로서는 삼성카드보다 더 많은 회원을 모아야 했고, 삼성은 반대로 LG와 회원수 경쟁에서 지지않으려 했다. 돈장사, 다시 말해 신용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제조업에서 하듯 시장점유율 경쟁에 생명을 건 것이다. 회원 숫자와 신용의 차이를 구별할줄 몰랐다는 증거다.
이때부터 불행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흥청망청 경기활황’ 분위기 속에서 소수의 불길한 경고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2001년 당시 TV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였다. 일부 인사가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걱정을 하자 진념 당시 재경부 장관이 가계자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호언장담하던 모습이 지금껏 눈에 선하다.
하지만 얼마안가 정부조차 돌아가는 품새에 약간 겁을 먹은듯 최소한 카드남발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금감위가 카드회원 모집 규제조치를 만들자 강철규 당시 규제개혁위원장(현 공정거래위원장)이 영업자율 침해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규개위와 카드사가 힘을 합쳐 폭탄주를 돌린 셈이다.
시한폭탄은 참여정부 출범직후인 3월에 터졌다. 카드사 유동성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당국은 금융권을 다그쳐 무려 5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카드채도 무더기로 만기연장 혜택을 주었다. 그럼에도 연체율 10% 초과시 적기시정조치를 통한 카드사 퇴출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근은 있어도 채찍은 없었다.
카드채쇼의 클라이맥스는 당연히 ‘어린 백성을 사랑해마지않는’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이었다. 채무감면 등을 통한 구제책을 끊임없이 촉구하자 이를 눈치챈 신용불량자들이 대거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알아서 구해주리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 직격탄이 LG카드 머리 위에서 터졌고 지금의 카드채 위기 제2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이 카드위기의 본질을 캐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대한 특별 감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처벌하자는게 아니라 원인을 파악하고 싶을 뿐이란다.
외환카드 노조의 움직임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방만경영과 유동성위기에 처한 외환카드는 지금 외환은행과의 합병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할 판이다. 이런 외환카드 노조가 합병에 앞서 임금 7% 인상과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죽치고 앉아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이미 구식이다. 요즘엔 아예 내 인생까지 책임져달라고 한다.
이신우 / 문화일보 논설위원
한은과 정부에서는 내년 5.2% 성장률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끄트머리에 조그만 글씨로 "소비와 설비투자의 회복을 전제로"라 적혀 있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선 빈정대는 소리가 들리고,
국내에서도 경총이나 여러 기관의 우려가 들린다.
이대로 가면 환란의 고통이 다시 오지 않으란 법이 없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그로기에 처했는데 외화만 쌓아놓았다고 만사태평이란 말인지.
오늘도 당국에서는 곧 고통이 끝날 것이란 태평가를 부르고 있다.
당국으로부터 재벌개혁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뒷짐진 글쟁이들부터 그저 버티는 빚쟁이들까지,
온 나라의 경제주체들이 공생의 연대감과 책임성을 잃고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경고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앞서고 마음이 무겁다.
KG에서 출범 이후 이 문제에 관해서도 역할이 있었으면 한다.
아래에 카드채 문제와 관련한 도덕적 해이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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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책임은 누가 지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12월8일)은 ‘카드로 쌓은 집’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사회의 신용카드 위기를 전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크레디트카드 회사이건 재벌이건 아니면 일개 시민이건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을 저질렀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그냥 죽치고 앉아 누군가가 구해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카드채 위기는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외국의 매스컴조차 이미 눈감고도 답을 써낼 정도로 단순 명료하다. 그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고 적으면 된다. OK, 그대로 정답이다.
그래도 약간의 배경 설명을 덧붙이는게 좋을듯싶다. 이래야 진도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우선 우리나라 카드채 위기의 발단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5월,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월 70만원인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한도를 전격 폐지했다. 액수가 얼마든 마음대로 빌려쓰라는 정책 신호였다.
그러자 시중에 돈이 마구 풀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 정도에서 머물렀다면 다행이다. 이미 엄격한 자격심사를 거친 카드 소지자들에 한해 정부가 베푼 시혜조치였기 때문이다. 정작 황당한 광경은 카드회사들 스스로 연출했다. 정부가 유형 무형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한 카드사들은 아예 길거리마다 좌판을 벌여놓고 10대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뿌려댔다.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 유무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LG카드로서는 삼성카드보다 더 많은 회원을 모아야 했고, 삼성은 반대로 LG와 회원수 경쟁에서 지지않으려 했다. 돈장사, 다시 말해 신용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제조업에서 하듯 시장점유율 경쟁에 생명을 건 것이다. 회원 숫자와 신용의 차이를 구별할줄 몰랐다는 증거다.
이때부터 불행은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흥청망청 경기활황’ 분위기 속에서 소수의 불길한 경고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2001년 당시 TV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였다. 일부 인사가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걱정을 하자 진념 당시 재경부 장관이 가계자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며 호언장담하던 모습이 지금껏 눈에 선하다.
하지만 얼마안가 정부조차 돌아가는 품새에 약간 겁을 먹은듯 최소한 카드남발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금감위가 카드회원 모집 규제조치를 만들자 강철규 당시 규제개혁위원장(현 공정거래위원장)이 영업자율 침해라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규개위와 카드사가 힘을 합쳐 폭탄주를 돌린 셈이다.
시한폭탄은 참여정부 출범직후인 3월에 터졌다. 카드사 유동성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당국은 금융권을 다그쳐 무려 5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카드채도 무더기로 만기연장 혜택을 주었다. 그럼에도 연체율 10% 초과시 적기시정조치를 통한 카드사 퇴출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근은 있어도 채찍은 없었다.
카드채쇼의 클라이맥스는 당연히 ‘어린 백성을 사랑해마지않는’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이었다. 채무감면 등을 통한 구제책을 끊임없이 촉구하자 이를 눈치챈 신용불량자들이 대거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알아서 구해주리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 직격탄이 LG카드 머리 위에서 터졌고 지금의 카드채 위기 제2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감사원이 카드위기의 본질을 캐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대한 특별 감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처벌하자는게 아니라 원인을 파악하고 싶을 뿐이란다.
외환카드 노조의 움직임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방만경영과 유동성위기에 처한 외환카드는 지금 외환은행과의 합병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할 판이다. 이런 외환카드 노조가 합병에 앞서 임금 7% 인상과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죽치고 앉아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이미 구식이다. 요즘엔 아예 내 인생까지 책임져달라고 한다.
이신우 /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