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희망을/ 1부 중병걸린 한국교육 ① 뒷전 밀린 학교

초·중·고 각급 교육과정에서 사교육이 필수로 자리잡으면서 공교육은 황폐화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이르고, 3년새 2배로 늘어난 사교육비로 가계는 위기에 놓였다. 특히 과거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은 ‘교육이 공급한 인재’였으나 최근에는 “교육이 사회 각 부문의 걸림돌로 전락했다”는 진단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왜곡된 교육 현장의 실태와 공교육이 부실해진 원인을 짚어보고, 외국의 성공적 사례 등을 통해 공교육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취재 기사를 10여차례 싣는다.
“학원 갈 시간” 단축수업
내년부턴 아예 학원강사 초청수업
교사들 학원 배치표 보고 진학지도
우리나라 공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사교육과의 입시 효율성 경쟁에 내몰리면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버린 탓이다. “학교는 학원을 닮으라”는 요구는 이제 일상화됐고, 학원 모방을 넘어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도입하는 경향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사교육이 교육을 대체하면서, 학생들은 학원·과외에 중독돼 이제 혼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는 ‘티처보이’가 돼버렸다. 생활에서는 마마보이, 학습에서는 티처보이를 양산하는 사회인 셈이다.
자립형사립고인 부산 해운대고 영어·수학 교사들은 올해 고약한 경험을 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우리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요구하자 학교 쪽이 밤에 학원강사를 학교로 불러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수강생이 점점 줄면서 3개월 만에 학원강사들은 철수했지만, 낮에 자신이 가르치던 그 교실에서 바로 그 학생들에게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강사를 지켜보면서 교사들의 가슴엔 멍이 들었다.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래 이 녀석들아, 나보다 낫더냐’고 묻고 싶었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젠 ‘남의 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내년 3월부터 ‘방과후 학교시설활용수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달부터 전국 96개 초·중·고교에서 시범 실시중이다. 이 수업은 교사, 학원강사, 학부모, 외국인 등이 담당하게 돼 있다. 정규수업시간에는 교사가, 방과 후에는 똑같은 자리에서 학원강사가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치는 사태가 전국 초·중·고교에서 벌어질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를 교육부에 제안한 한국교육개발원과 받아들인 교육부의 논리는 단순명쾌하다. “학원보다 싸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교육비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높아지자 공교육을 살릴 대안을 내놓는 대신 ‘사교육을 값싸게 공급하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시범학교로 지정받은 지방 ㅇ중 교장은 “교사들의 반발로 아직 학원강사를 데려오지 않았다”며 “이번 정책은 교육부가 교사를 불신하고, 학교를 사교육 뒤꽁무니를 좇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학생·학부모에 이르면 더욱 높아진다.
서울 ㅅ고교는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 “올해는 아이들에게 대입용 논술을 제대로 가르쳐보자”며 논술반을 구성해 학생을 모았다. 한반 정원도 16명으로 제한해 자세한 첨삭지도가 가능하도록 했다. 적어도 몇개 반은 구성되리란 기대감은 그러나 바로 깨졌다. 고3학생 540명 가운데 신청자는 12명에 불과했다. 학생들이 학원을 선택한 것이다. 완패였다. 김아무개 교사는 “잘 가르치는 논술강사도 있겠지만 학생이 논술학원에서 받아온 자기소개서를 보니 심지어 주어·술어 관계가 틀린 문장도 있었다”며 “그런데도 학원이라면 무조건 믿는다”고 답답해했다.
서울 목동의 김아무개 교사가 풀어놓은 경험은 더 압권이다. 할머니상을 당한 반 아이가 3일 동안 결석하고 장지인 충남 천안으로 내려갔는데, 3일 내내 이 아이가 학원에서 목격됐다는 말이 들렸다. 이상해서 알아보니 이 학생은 학교는 결석하면서도 학원은 빠지지 않으려고 할머니 장례식이 치러진 3일 동안 천안에서 서울로 학원을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불신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교육개발원 설문조사를 보면, “교사가 학업지도를 열심히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교사는 80.7%가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학생들은 44.8%만, 학부모들은 14.1%만 ‘그렇다’고 말했다. 반면 학원 강사들이 노력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64.4%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68%가 학원숙제를 학교에서 해본 경험이 있고, 49.4%는 학원수업·학원숙제가 많아서 학교에서 가끔 혹은 자주 잔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학원에 연전연패하다보니 학교가 학원 눈치를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울 강남 쪽에서는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학원가서 문제풀이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학교수업은 2~3교시만 끝내고 하교시키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공립고교들은 그나마 교육청이 무서워 단축수업을 꺼리지만, 어김없이 학부모회나 어머니회에서 “옆 사립고는 단축수업하는데 왜 안하느냐”거나 “학원 못 가서 대학 떨어지면 책임 질 거냐”는 등의 항의가 들어온다.
사립은 단축수업·보충수업·야간자율학습·0교시수업 등 그때그때 편리하게 법을 어기면서 학생 요구를 수용하는데 공립고는 그렇게 못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사립고 선호 경향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사립고들은 실험·독후감·예체능 등 수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과과정을 빼먹는 경우도 많다. 지방 고교에서도 수능 뒤 학생이 서울로 논술학원이나 논술과외를 받으러 갈 경우 장기간 조퇴처리 해주는 것이 사실상 관행이 되다시피했다.
서울시교육청마저 올해 수능 전에 이렇게 단축수업을 실시한 강남쪽 고교를 다수 적발하고도 징계를 해야 할지, 현실을 인정해야 할지 몰라 고민중이다. 이아무개 장학사는 “아마 주의만 환기시키는 선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뒤에는 아예 학원만 있고 학교는 ‘없다’. 수능 다음날 수험생들은 학교에 등교해 대형학원이 나눠준 오엠아르 카드에 자신이 전날 체크한 답안을 표기하거나 자신의 영역별 가채점 점수를 써넣고 하교한다. 학원들은 이를 걷어 분석한 뒤 “몇점이면 어느 대학·학과를 갈 수 있다”는 내용의 배치표를 만들어 학교에 돌린다. 학교는 이를 받아 반마다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학생들은 “내 점수로 어딜 갈 수 있나” 궁리하고 교사들도 이를 토대로 진학지도를 한다. 학교의 진학지도 기능이 사실상 상실된 것이다. 또 교육 목표가 수능성적이기 때문에 수능이 끝나면 고3교실이 공동화되는 현상도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학원 의존형 파행 교육은 중학교에도 번졌다. 강남 ㅂ중 학생 2명은 “학원에서 외국어고 입학시험을 준비하겠다”며 한달 가량 학교수업을 빠졌다가 외고 시험이 끝난 지난달 초에야 학교에 나타났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이들에게 의사소견서를 받아오도록 해 내신성적에 불이익이 없도록 병결로 처리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ㅅ고 김아무개 교사는 “학생·학부모는 학교 대신 학원을 택하고, 학교는 그 요구에 굴복하고, 교육당국마저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게 현실”이라며 초라해진 공교육의 현주소에 씁쓸해했다. 황순구 기자 hsg1595@hani.co.kr

초·중·고 각급 교육과정에서 사교육이 필수로 자리잡으면서 공교육은 황폐화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불만은 임계점에 이르고, 3년새 2배로 늘어난 사교육비로 가계는 위기에 놓였다. 특히 과거 한국 경제성장의 동력은 ‘교육이 공급한 인재’였으나 최근에는 “교육이 사회 각 부문의 걸림돌로 전락했다”는 진단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왜곡된 교육 현장의 실태와 공교육이 부실해진 원인을 짚어보고, 외국의 성공적 사례 등을 통해 공교육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취재 기사를 10여차례 싣는다.
“학원 갈 시간” 단축수업
내년부턴 아예 학원강사 초청수업
교사들 학원 배치표 보고 진학지도
우리나라 공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사교육과의 입시 효율성 경쟁에 내몰리면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버린 탓이다. “학교는 학원을 닮으라”는 요구는 이제 일상화됐고, 학원 모방을 넘어 사교육을 학교 안으로 도입하는 경향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사교육이 교육을 대체하면서, 학생들은 학원·과외에 중독돼 이제 혼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는 ‘티처보이’가 돼버렸다. 생활에서는 마마보이, 학습에서는 티처보이를 양산하는 사회인 셈이다.
자립형사립고인 부산 해운대고 영어·수학 교사들은 올해 고약한 경험을 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우리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요구하자 학교 쪽이 밤에 학원강사를 학교로 불러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수강생이 점점 줄면서 3개월 만에 학원강사들은 철수했지만, 낮에 자신이 가르치던 그 교실에서 바로 그 학생들에게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학원강사를 지켜보면서 교사들의 가슴엔 멍이 들었다.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그래 이 녀석들아, 나보다 낫더냐’고 묻고 싶었지만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젠 ‘남의 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내년 3월부터 ‘방과후 학교시설활용수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이미 지난달부터 전국 96개 초·중·고교에서 시범 실시중이다. 이 수업은 교사, 학원강사, 학부모, 외국인 등이 담당하게 돼 있다. 정규수업시간에는 교사가, 방과 후에는 똑같은 자리에서 학원강사가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치는 사태가 전국 초·중·고교에서 벌어질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를 교육부에 제안한 한국교육개발원과 받아들인 교육부의 논리는 단순명쾌하다. “학원보다 싸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교육비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이 높아지자 공교육을 살릴 대안을 내놓는 대신 ‘사교육을 값싸게 공급하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시범학교로 지정받은 지방 ㅇ중 교장은 “교사들의 반발로 아직 학원강사를 데려오지 않았다”며 “이번 정책은 교육부가 교사를 불신하고, 학교를 사교육 뒤꽁무니를 좇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학생·학부모에 이르면 더욱 높아진다.
서울 ㅅ고교는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 “올해는 아이들에게 대입용 논술을 제대로 가르쳐보자”며 논술반을 구성해 학생을 모았다. 한반 정원도 16명으로 제한해 자세한 첨삭지도가 가능하도록 했다. 적어도 몇개 반은 구성되리란 기대감은 그러나 바로 깨졌다. 고3학생 540명 가운데 신청자는 12명에 불과했다. 학생들이 학원을 선택한 것이다. 완패였다. 김아무개 교사는 “잘 가르치는 논술강사도 있겠지만 학생이 논술학원에서 받아온 자기소개서를 보니 심지어 주어·술어 관계가 틀린 문장도 있었다”며 “그런데도 학원이라면 무조건 믿는다”고 답답해했다.
서울 목동의 김아무개 교사가 풀어놓은 경험은 더 압권이다. 할머니상을 당한 반 아이가 3일 동안 결석하고 장지인 충남 천안으로 내려갔는데, 3일 내내 이 아이가 학원에서 목격됐다는 말이 들렸다. 이상해서 알아보니 이 학생은 학교는 결석하면서도 학원은 빠지지 않으려고 할머니 장례식이 치러진 3일 동안 천안에서 서울로 학원을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불신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한국교육개발원 설문조사를 보면, “교사가 학업지도를 열심히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교사는 80.7%가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학생들은 44.8%만, 학부모들은 14.1%만 ‘그렇다’고 말했다. 반면 학원 강사들이 노력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64.4%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68%가 학원숙제를 학교에서 해본 경험이 있고, 49.4%는 학원수업·학원숙제가 많아서 학교에서 가끔 혹은 자주 잔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학원에 연전연패하다보니 학교가 학원 눈치를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울 강남 쪽에서는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학원가서 문제풀이 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학교수업은 2~3교시만 끝내고 하교시키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공립고교들은 그나마 교육청이 무서워 단축수업을 꺼리지만, 어김없이 학부모회나 어머니회에서 “옆 사립고는 단축수업하는데 왜 안하느냐”거나 “학원 못 가서 대학 떨어지면 책임 질 거냐”는 등의 항의가 들어온다.
사립은 단축수업·보충수업·야간자율학습·0교시수업 등 그때그때 편리하게 법을 어기면서 학생 요구를 수용하는데 공립고는 그렇게 못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사립고 선호 경향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사립고들은 실험·독후감·예체능 등 수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교과과정을 빼먹는 경우도 많다. 지방 고교에서도 수능 뒤 학생이 서울로 논술학원이나 논술과외를 받으러 갈 경우 장기간 조퇴처리 해주는 것이 사실상 관행이 되다시피했다.
서울시교육청마저 올해 수능 전에 이렇게 단축수업을 실시한 강남쪽 고교를 다수 적발하고도 징계를 해야 할지, 현실을 인정해야 할지 몰라 고민중이다. 이아무개 장학사는 “아마 주의만 환기시키는 선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뒤에는 아예 학원만 있고 학교는 ‘없다’. 수능 다음날 수험생들은 학교에 등교해 대형학원이 나눠준 오엠아르 카드에 자신이 전날 체크한 답안을 표기하거나 자신의 영역별 가채점 점수를 써넣고 하교한다. 학원들은 이를 걷어 분석한 뒤 “몇점이면 어느 대학·학과를 갈 수 있다”는 내용의 배치표를 만들어 학교에 돌린다. 학교는 이를 받아 반마다 게시판에 붙여놓으면, 학생들은 “내 점수로 어딜 갈 수 있나” 궁리하고 교사들도 이를 토대로 진학지도를 한다. 학교의 진학지도 기능이 사실상 상실된 것이다. 또 교육 목표가 수능성적이기 때문에 수능이 끝나면 고3교실이 공동화되는 현상도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학원 의존형 파행 교육은 중학교에도 번졌다. 강남 ㅂ중 학생 2명은 “학원에서 외국어고 입학시험을 준비하겠다”며 한달 가량 학교수업을 빠졌다가 외고 시험이 끝난 지난달 초에야 학교에 나타났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이들에게 의사소견서를 받아오도록 해 내신성적에 불이익이 없도록 병결로 처리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ㅅ고 김아무개 교사는 “학생·학부모는 학교 대신 학원을 택하고, 학교는 그 요구에 굴복하고, 교육당국마저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게 현실”이라며 초라해진 공교육의 현주소에 씁쓸해했다. 황순구 기자 hsg15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