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가 엿보이는 조선일보 칼럼

by 이왕재 posted Jan 28, 2004
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투지보다는 피로가 엿보여서 옮겨봅니다.
정말 "판갈이"의 종착역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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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칼럼] '판갈이' 종착역은 어디인가

主敵이 미국으로 바뀌어 … 진보세력이 국회장악하는 법

  
▲ 양상훈 논설위원

  
얼마 전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가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미국을 꼽은 응답이 39%로 북한(33%)보다 더 많았다. 10년 전 같은 조사에서 미국은 1%였다. 미국을 최대 안보위협국으로 보는 사람이 10년 사이에 39배가 된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39배’가 갖는 의미는 그보다 훨씬 크고 깊다. 옳든 그르든 우리 사회 자체가 지난 10년 사이 이렇게 변한 것이다.

아직은 ‘좌파(左派)’라 부르면 화를 내지만 ‘진보(進步)’라고는 서로 불리고 싶어 안달인 세상이 됐다. “나는 사실은 보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정치에서는 사람이건 정당이건 오래됐다는 자체로 거부감의 대상이다. 중진, 중량(重量), 경륜(經綸) 등의 값어치는 땅에 떨어졌다.

이런 변화엔 필연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 수십년 사회체제에 대한 권태감이 누적된 데다 끊임없이 드러나는 부패가 기성의 것들에 대한 염증을 부채질했다. 문화적으로는 중요한 것, 큰 것, 심각한 것, 엄숙한 것들을 비꼬고 조롱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1996년 총선에서 이런 변화가 정치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지역 의원의 56%가 낙선했고 수도권에서 정치 신인의 당선율은 50%에 달했다. 모두 초유의 사태였다. 2000년 총선에선 본격적인 ‘바꿔’ 바람이 불어 5선 이상 중진 11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4명뿐이었다. 대신 ‘386’세대가 전면에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흐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 흐름을 노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이 상당 기간 계속 타고 갈 가능성이 높다. 4월 총선은 이런 가운데에 치러진다. 변화의 물결은 기존의 선거 분석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라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갈라선 선거 구도에서 한나라당 필승론이 나와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판세(版勢)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여론조사상 단연 선두로 나타나는 것은 한나라당 차떼기 파문의 반사이익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사회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당이든 이 흐름을 벗어나면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가 끝나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다시 합칠 것이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열린우리당+민주당’은 국회 원내 과반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학계, 출판계, 문화계, 교육계, 법조계, 시민단체를 장악한 진보세력이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까지 장악하게 된다. 이는 사회의 변화를 다시 가속화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확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바뀌어선 안 되는 것도 있다. 북한의 핵폭탄이 터진다면 그곳은 세계 어느 곳도 아닌 남한 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명백한 사실을 두고 우리 국민의 다수가 북한보다 미국이 더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 사회의 변화에 큰 왜곡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도(誤導)에 TV방송이 미친 영향은 실로 크다. 오도된 인식이 TV 방송을 업고 사회변화의 물줄기에 올라탄 채 이렇게 급속히 세(勢)를 키워간다면 그런 변화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지, 그곳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곳일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양상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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