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의 이공계 위기론>
이공계가 위기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공계 위기’를 걱정한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뿐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이공계 위기를 거론하고, 재계에서는 이공계 인력의 채용을 늘리겠다고 화답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위기인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이다. 양적으로는 자연계 지원자가 크게 줄고, 질적으로는 우수한 자연계 지원자가 이른바 ‘한의치’(한의대 의대 치과대) 계열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공계 대학에서는 실험실 운용이 힘들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공계 푸대접론이다. 연구 환경이 열악하고 과학 기술 인력에 대한 경제적 처우와 사회적 지위가 미흡해서 과학기술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진단이다. 지식 기반 경제 (knowledge-based economy)의 중추라고 할 과학 기술자들에 대한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크게 뚫렸다는 이야기다.
전자의 이공계 기피와 후자의 이공계 푸대접은 서로 맞물려 있다. 과학 기술인력이 푸대접받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것이고, 이공계 인력 유입에 빨간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과학 기술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이다.
OECD의 공급부족 위기론
눈을 밖으로 돌리면 이공계 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 1월 16일 OECD는 라는 연구자료를 내놓았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위기의 과학기술자: 무슨 위기인가>쯤 될까.
이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과학 기술 인력 부족에 따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거 10년 간 OECD의 과학 기술 인력이 늘어나기는 했다. 1990년 240만 명에서 2000년 340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이 자료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과학 기술 인력의 공급은 태부족이다. EU에서만 2010년까지 70만 명의 과학기술인력이 더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약 220만의 새로운 일자리, 특히 컴퓨터 관련 직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반면 과학 기술 인력의 공급 사이드는 꽉 막혀 있다. 한 예로 영국 대학에서는 화학 관련 학과의 등록 학생수가 과거 5년 간 16% 감소했다. 물리학 관련 전공 학생 수 또한 7%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OECD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부족한 이공계 인력을 중국과 인도에서 유입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의 5분의 1이 중국인과 인도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공계 인력의 전체 수요가 전체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특정 분야에서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호루라기를 불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공계에서도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나라다. 이공계 진학이 대부분 10%에서 20% 사이에 있는 OECD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이공계 학생은 전체 학생의 거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03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공학계가 31.6%, 자연계가 10.9% 이다.
문제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데 있다. 얼마전 교육부가 내놓은 통계 에 따르면 대입 수능시험 1등급 지원자의 이공계 지원은 해마다 떨어지고, 의약계 지원은 높아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뒤집어서 말하면 의약계 선호 현상인 셈이다.
보다 소득이 높고 보다 안정적인 곳으로 인력이 쏠리는 현상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원론적으로 볼 때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이공계 직업을 그 어떤 직업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들면 된다.
한국의 과학기술 푸대접론
우리 자신에게 인색한 평가 중 대표적인 사례가 수학과 과학 교육에 대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다. OECD와 유네스코 등에서 실시하는 전 세계 학생 학업 성취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은 항상 1,2 등을 오간다. OECD 국가의 과학기술 인력 부족 현상의 주원인이 어려운 수학과 과학 과목에 대한 기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국에서의 이공계 위기의 주원인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푸대접 때문으로 풀이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OECD 국가에서 과학기술자에 대한 보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수준은 의사 또는 변호사 소득 평균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는 그 정도의 대접을 받는 수준이 아니다.
대덕 연구단지에 몸담고 있는 50대 이상의 과학자들은 60년대 KIST가 세워질 무렵 과학자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를 종종 언급한다. 연구원에 있는 젊은 연구자 월급이 대학에 있는 노교수 월급에 비해 몇 배 많았다는 대목에 이르면,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과학기술자의 어깨를 축 처지게 하는 것은 경제적 보수가 세계 수준에 크게 미흡하거나 과거 불균형 성장시대의 화려했던 추억 때문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자로서의 자부심과 활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처방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공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요청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도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이공계 위기는 전체 학문의 위기
한편으로 과학기술 정책은 시장의 요구에 기민하게 적응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시장의 논리에서 한 발자국 벗어날 필요도 있다. 특히 산업으로서의 과학 기술이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과학 기술은 그런 측면이 더욱 요청된다.
따지고 보면 학문으로서의 이공계의 위기는 몇 년 전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될 때 예고된 셈이다. 이 점에서 이공계 위기는 기초 학문의 위기이기도 하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초 학문은 응용 학문에 비해 시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의학 안에서도 기초 분야인 외과가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비해 선호도가 떨어진다. 이공계 안에서는 기초적인 이(理)학이 공(工)학에 비해 시장 민감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시장친화력이 떨어지는 기초 분야가 시장 논리의 칼날에 상처를 입는 순간, 시장 수요가 큰 응용 분야도 역시 다치게 마련이다. 그 귀결은 학문의 파행성을 넘어 시장의 파행성으로 나타난다.
학문간의 균형 발전이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처방이 자칫 의학 분야에 대한 폄훼로 나타나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공계 위기는 인문계 위기의 맞은 편에 있거나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어느 한 편이 무너질 때 다른 한 편도 위기에 내몰린다. 그런 점에서 이공계 학문의 위기는 기초 학문의 위기이면서 학문 전체에 대한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과와 문과의 칸막이가 심하다. 중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그 때 선택한 길이 평생 고착되는 곳은 세계 어디서도 쉽게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문과 계열 학문으로 흔히 분류되는 경제학에서는 그 어떤 이과 계열 학문보다 수학이 더 요청되고, 이과 계열 학문으로 분류되는 건축공학과 도시공학은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이공계 위기를 거론하고 있는 일련의 OECD 보고서를 보면 인문계와 자연계의 벽 허물기는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교육 현장과 산업 현장의 벽 허물기, 그리고 학문과 학문의 장벽을 뛰어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가 새로운 화두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통합교과(cross-curricular) 교육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로 통한다.
이공계 위기가 더 이상 이공계만의 위기가 아니라면,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 또한 이공계 안에서만 찾는다면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이 되기 쉽다. 이공계 위기는 특정 직업 또는 특정 학문의 위기가 아니다. 산학과 교육의 균형 발전 위기, 그리고 학문과 학문의 균형 발전 위기로 봐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다.
/정재영(칼럼니스트, 업코리아 편집기획위원)
철학박사(영국 워릭대, 사회존재론)
1984-1995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1983-1984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이공계가 위기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공계 위기’를 걱정한다. 과학기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뿐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이공계 위기를 거론하고, 재계에서는 이공계 인력의 채용을 늘리겠다고 화답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위기인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이다. 양적으로는 자연계 지원자가 크게 줄고, 질적으로는 우수한 자연계 지원자가 이른바 ‘한의치’(한의대 의대 치과대) 계열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공계 대학에서는 실험실 운용이 힘들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공계 푸대접론이다. 연구 환경이 열악하고 과학 기술 인력에 대한 경제적 처우와 사회적 지위가 미흡해서 과학기술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는 진단이다. 지식 기반 경제 (knowledge-based economy)의 중추라고 할 과학 기술자들에 대한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크게 뚫렸다는 이야기다.
전자의 이공계 기피와 후자의 이공계 푸대접은 서로 맞물려 있다. 과학 기술인력이 푸대접받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것이고, 이공계 인력 유입에 빨간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과학 기술계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이다.
OECD의 공급부족 위기론
눈을 밖으로 돌리면 이공계 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 1월 16일 OECD는 라는 연구자료를 내놓았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위기의 과학기술자: 무슨 위기인가>쯤 될까.
이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과학 기술 인력 부족에 따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과거 10년 간 OECD의 과학 기술 인력이 늘어나기는 했다. 1990년 240만 명에서 2000년 340만 명으로 증가했다고 이 자료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과학 기술 인력의 공급은 태부족이다. EU에서만 2010년까지 70만 명의 과학기술인력이 더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약 220만의 새로운 일자리, 특히 컴퓨터 관련 직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반면 과학 기술 인력의 공급 사이드는 꽉 막혀 있다. 한 예로 영국 대학에서는 화학 관련 학과의 등록 학생수가 과거 5년 간 16% 감소했다. 물리학 관련 전공 학생 수 또한 7% 감소했다. 이러한 추세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OECD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부족한 이공계 인력을 중국과 인도에서 유입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의 5분의 1이 중국인과 인도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공계 인력의 전체 수요가 전체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특정 분야에서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호루라기를 불고는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이공계에서도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나라다. 이공계 진학이 대부분 10%에서 20% 사이에 있는 OECD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이공계 학생은 전체 학생의 거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03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공학계가 31.6%, 자연계가 10.9% 이다.
문제는 우수한 인적 자원이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데 있다. 얼마전 교육부가 내놓은 통계 에 따르면 대입 수능시험 1등급 지원자의 이공계 지원은 해마다 떨어지고, 의약계 지원은 높아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뒤집어서 말하면 의약계 선호 현상인 셈이다.
보다 소득이 높고 보다 안정적인 곳으로 인력이 쏠리는 현상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원론적으로 볼 때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해법은 간단하다. 이공계 직업을 그 어떤 직업보다 더 매력적으로 만들면 된다.
한국의 과학기술 푸대접론
우리 자신에게 인색한 평가 중 대표적인 사례가 수학과 과학 교육에 대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다. OECD와 유네스코 등에서 실시하는 전 세계 학생 학업 성취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능력은 항상 1,2 등을 오간다. OECD 국가의 과학기술 인력 부족 현상의 주원인이 어려운 수학과 과학 과목에 대한 기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한국에서의 이공계 위기의 주원인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푸대접 때문으로 풀이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OECD 국가에서 과학기술자에 대한 보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 수준은 의사 또는 변호사 소득 평균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는 그 정도의 대접을 받는 수준이 아니다.
대덕 연구단지에 몸담고 있는 50대 이상의 과학자들은 60년대 KIST가 세워질 무렵 과학자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를 종종 언급한다. 연구원에 있는 젊은 연구자 월급이 대학에 있는 노교수 월급에 비해 몇 배 많았다는 대목에 이르면,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과학기술자의 어깨를 축 처지게 하는 것은 경제적 보수가 세계 수준에 크게 미흡하거나 과거 불균형 성장시대의 화려했던 추억 때문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자로서의 자부심과 활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처방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공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요청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도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이공계 위기는 전체 학문의 위기
한편으로 과학기술 정책은 시장의 요구에 기민하게 적응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시장의 논리에서 한 발자국 벗어날 필요도 있다. 특히 산업으로서의 과학 기술이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과학 기술은 그런 측면이 더욱 요청된다.
따지고 보면 학문으로서의 이공계의 위기는 몇 년 전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될 때 예고된 셈이다. 이 점에서 이공계 위기는 기초 학문의 위기이기도 하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기초 학문은 응용 학문에 비해 시장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의학 안에서도 기초 분야인 외과가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비해 선호도가 떨어진다. 이공계 안에서는 기초적인 이(理)학이 공(工)학에 비해 시장 민감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시장친화력이 떨어지는 기초 분야가 시장 논리의 칼날에 상처를 입는 순간, 시장 수요가 큰 응용 분야도 역시 다치게 마련이다. 그 귀결은 학문의 파행성을 넘어 시장의 파행성으로 나타난다.
학문간의 균형 발전이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공계 위기에 대한 처방이 자칫 의학 분야에 대한 폄훼로 나타나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공계 위기는 인문계 위기의 맞은 편에 있거나 무관한 것이 결코 아니다. 어느 한 편이 무너질 때 다른 한 편도 위기에 내몰린다. 그런 점에서 이공계 학문의 위기는 기초 학문의 위기이면서 학문 전체에 대한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과와 문과의 칸막이가 심하다. 중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그 때 선택한 길이 평생 고착되는 곳은 세계 어디서도 쉽게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문과 계열 학문으로 흔히 분류되는 경제학에서는 그 어떤 이과 계열 학문보다 수학이 더 요청되고, 이과 계열 학문으로 분류되는 건축공학과 도시공학은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이공계 위기를 거론하고 있는 일련의 OECD 보고서를 보면 인문계와 자연계의 벽 허물기는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교육 현장과 산업 현장의 벽 허물기, 그리고 학문과 학문의 장벽을 뛰어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가 새로운 화두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통합교과(cross-curricular) 교육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로 통한다.
이공계 위기가 더 이상 이공계만의 위기가 아니라면,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 또한 이공계 안에서만 찾는다면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이 되기 쉽다. 이공계 위기는 특정 직업 또는 특정 학문의 위기가 아니다. 산학과 교육의 균형 발전 위기, 그리고 학문과 학문의 균형 발전 위기로 봐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다.
/정재영(칼럼니스트, 업코리아 편집기획위원)
철학박사(영국 워릭대, 사회존재론)
1984-1995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1983-1984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