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 의미 (이춘근)

by 永樂 posted Feb 21, 2004
용산 주둔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 의미
  
이춘근  李春根·政博·자유기업원 부원장



93년 탈냉전무드와 상황 달라

한미 양국간의 오랜 협상 이슈였던 용산 주둔 한미연합사 및 유엔사의 이전계획이 확정됐다. 사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용산기지 이전문제는 오래된 이슈였다. 1989년 당시 한국 국방장관과 주한미군사령관이 96년까지 용산기지를 한강이남으로 이전하는 데 기본적으로 합의했고, 1990년 6월 25일 용산기지이전 합의각서와 양해각서가 체결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말 90년대 초 서울 주둔 미군의 이동은 탈냉전과 국제공산주의의 급격한 붕괴라는 낙관적인 세계질서 하에서 제기됐던 문제였다.

결국 북한의 핵개발 위협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냉전시대보다도 오히려 더 위태롭게 된 1993년 5월, 한국정부는 이 문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1993년 3월 한미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위협에 대처해 그동안 쉬었던 팀 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을 재개했고,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NPT(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1994년 봄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결국1994년 7월 김일성은 사망했고 몇 달 후인 10월, 북핵문제는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 하는 수준에서 ‘해결’됐다.

2003년 2월 이번에 야기된 용산기지이전문제는 한국 측의 요구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 측의 요구였다. 2003년 2월 19일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을 서울에 배치하는 것은 불행한 일” 이라며 한국 대통령에게 재조정을 요청했던 것이다.


정부, 11만평 부지문제로 미군철수 불러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국제정치를 냉혹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기보다 오히려 이상주의적, 서정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번 용산 주둔 미군부대를 한강이남으로 이전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한국군과 다수의 국민은 용산주둔 미군의 완전이전 보다는 연합사 및 유엔사 등 주한미군의 일부 잔류를 원하고 있었고 시기상으로도 북한 핵문제등 안보문제가 해결된 후에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기를 기대했다.

실제로 2003년 7월 23일 미래한미동맹 3차 회의에서 연합사 및 유엔사 등 주한미군의 일부잔류가 합의됐다. 그러나 11만 평의 땅은 또 다른 문제가 됐다. 미국 측은 미군의 시설기준에 의거 81만 평 용산기지 중 28만 평이 필요하다고 요구했고, 한국 측은 17만 평 밖에는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미국 측이 완전철수로 입장을 정하자 한국 측은 부지 20만 평에 고층 건물을 지어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결국 2004년 1월 17일 미래한미동맹 제6차 회의는 용산미군기지가 2007년 말까지 한강이남으로 완전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됐음을 발표했다. 미국 측이 완전철수를 결정하자 한국 측에서 이번에는 ‘안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보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미군의 잔류를 요구하다,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찾아와야 한다’는 이유로 미군의 완전철수를 불러오더니 막상 완전철수로 결정되자 ‘안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장기전략 포석 측면도 있어

현재 급진전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는 9·11 테러 이후 엄청나게 변한 미국의 대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일환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2003년 이라는 특정시점, 특히 북한 핵문제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가 불안전한 상황에서 서울주둔 미군의 전면 철수 및 한강이남 재배치 주장이 나온 것은 미국의 對韓 정책에도 감정적 요인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는 요코다 공군기지 등 8곳의 미군기지가 있으며 도쿄만(東京灣 Tokyo Bay)의 요코하마 및 요코스카항은 미국 7함대의 보금자리다. 도쿄에 있는 미군기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3,959에이커, 약 485만 평이니 용산기지의 6배가 된다. 그렇지만 럼즈펠드가 일본인들에게 주일미군을 도쿄에 배치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 말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처럼 미국도 감정적으로 대처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으로 원했다면 용산 주둔 미군의 이전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지렛대는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대 세계전략 변화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은 군사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렸다. 미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한 이후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었던 기본적 군사전략은 억지전략이었다. 억지란 문자 그대로 상대방이 아예 공격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억지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보복능력을 보유하고 과시해야만 하고 그 능력은 진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억지전략의 한계는 엄청난 보복능력으로 공격을 자제할 수 있는 즉 합리적인 상대방일 경우에만 성공하는 심리(心理)전략이라는 데 있다.

이런 면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억제할 수 있는 전략이 없다. 보복도 불가능하다.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자들을 보복할 방안이 있을 수 없다. 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는 테러리스트라고 의혹이 되는 사람 혹은 집단을 선제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최선이다.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기 위한 선제공격전략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파괴무기를 제공할 능력과 의도를 가진 나라, 미국이 지정한 악의 축 3개국의 정권을 향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전략이 돼버렸다.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바로 미국의 대 한반도 군사전략이 ‘억지전략(Strategy of Deterrence)’에서 ‘선제공격전략’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과거 미국은 북한을 억지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바로 미국의 대 북한 군사전략을 바꾸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일이다. 기존의 전쟁억지전략 하에서는 북한이 전쟁과 평화의 선택권을 가졌지만, 이제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략적 유연성과 주도권을 가지려 한다.
50년 동안 한반도 전쟁재발을 억지해왔던 미군의 억지전략이 서울 북방의 2사단과 더불어 용산의 사령부마저 한강이남으로 이전함으로써 이제 완전히 바뀌려 하는 것이다.

한미방위조약은 자동개입이 문서상으로 보장된 북대서양조약(NATO) 조약과 달리 자동개입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이 역사상 가장 막강한 동맹의 하나가 된 것은 바로 한국의 최전선과 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정부, 동두천의 미군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자동개입 될 수밖에 없었고 서울주둔 미군은 전쟁 발발 시 한국에 파견될 막강한 미군의 증원보증장치였다. 그러나 이제 그간 인계철선(Trip Wire)이었던 주한미군이 후방으로 철수하면서 궁극적으로 북한의 공격을 억지하기 위한 미군의 배치상태도 변화하는 것이다.

한편 주한미군 재배치는 세계를 주도하는 패권국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포석이라는 측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이 상정하는 라이벌은 중국이지 북한이 아니다. 용산 미군기지를 대체할 오산·평택의 미군기지는 동두천, 서울의 기지들과는 달리 북한 보다는 중국을 상대하는 데 더욱 유용한 지정학적(Geopolitical)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전략은 비관론에서 수립해야 안전

용산 주둔 미군의 전면 철수 및 한강이남 재배치 결정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란이 많다. 한국정부는 발상을 바꿔야 하며 용산미군이 전면 재배치돼도 안보에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측이 완전철수 쪽으로 가닥을 잡은 직후인 지난 12월 1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한국군 장성은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연합사의 용산잔류를 희망한다고 요구했고, 용산기지 완전철수가 발표된 후인 1월 18일 국회의원 133명은 이를 적극 저지할 것임을 선언했다. 북한과의 오랜 핵협상의 미국측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는 주한미군의 위치변경에 대해 “시점이 나쁘며 제정신이 아닌(insane)짓” 이라고 혹평했다.

이러한 논란의 핵심이 있다. 용산 미군기지의 폐쇄가 정말로 한국안보에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군 복무기간 단축, 과학군 건설을 통한 병력의 감축 등 낙관론이 말해지고 있지만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용산의 미군부대가 완전철수 후 한강이남으로 재배치된다는 것은 한국 스스로의 맡아야 할 안보 부담이 결정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수도권 방위임무를 100% 한국군이 담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군의 전투력이 한국군 보다 훨씬 막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미군이 빠져나간 수도권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적지 않은 숫자의 한국군 병력이 필요할 것이다. 2002년 기준으로 한국의 방위비 총액이 118억 달러였는데 같은 기간 주한 미군의 군사비 지출은 106억 달러였다는 사실은 한국안보에 주한미군이 차지하는 비중을 극적으로 설명해준다. 비록 철군은 아니지만 재배치 역시 한국이 담당해야 할 병력수와 국방비 증가부담을 안겨주는 일이다.

한국은 미군이 수도권에서 담당했던 특정임무를 이양받을 준비를 철저히 갖추어야 한다. “우리 전력을 잘 아는 미국이 북한 장사정포(長射程砲, 54km 사정 거리의 170mm포, 60km 사정 거리의 방사포 등) 에 대한 무력화 작전이나 북한의 해상 침투저지, 후방지역 화생방 오염저지 등의 임무를 2005년까지 넘겨주겠다고 해서 난리가 났었다…” 는 한국 국방부 고위관계자의 언급은 현재 한국군의 솔직한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용산의 미군이 한강이남 지역으로 전면 철수하는 것은 안보 이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충격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 대한 해외 투자가 줄어든다고 우려되는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권의 미군이 완전 철수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외국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자주외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주외교의 기반이 되는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보자. 전략은 낙관론에 근거하기보다 비관론에 근거하여 수립하는 것이 언제라도 더욱 안전하기 때문이다.


미래한국  200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