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과 ‘昌 부메랑’ (문화)

by 永樂 posted Mar 10, 2004
盧대통령과 ‘昌 부메랑’



역시 노무현 대통령의 ‘담력’은 놀랍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과 같은 기라성의 철권 대통령도 판도라의 상자라고 하는 정적의 금고를 열어보지 못했다. 왜 그들이라고 열어보고 싶은 유혹이 없었겠는가. 이 쪽에 100원이 왔으면, 상식적으로 저 쪽에도 비슷한 액수가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담력으로 그 뚜껑을 열어버렸다. 여기에 김영삼, 김대중 시대에서 터득한 승부사적 기질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언어의 ‘조련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지금까지 대선자금의 격랑을 헤쳐나오는데 성공했다. 노 대통령을 연구하려면 ①담력 ②승부사적 갬블링 ③언어의 조련 능력이라는 세 가지 관찰 포인트를 동원해야 한다.

이것을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선자금 정국은 검찰 조연에 노 대통령 혼자 각본·감독·주연한 ‘모노 드라마’였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노 대통령의 탁월한 정치적 재능이다.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그것은 노 대통령과 정의와의 싸움으로 보였다.

그러나 6개월전 창당조차 어려웠던 열린우리당이 지금 4·15총선에서 제1당까지 내다볼 만큼 기세를 올리는 것을 보면 역시 노 대통령의 정치적 갬블링은 현존하는 정치인 가운데 가장 현란하다. 결국 한나라당에 대한 일반의 ‘반한나라당 정서’를 광풍으로 만들어 한나라당을 붕괴시켜 총선전을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 구도로 만들고, 이런 와중에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에 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땅을 치게 만들겠다는 거대한 전략이었다.

김대중 정권 때 반DJ정서로 어부지리를 얻었던 한나라당이 이젠 거꾸로 당하게 하면서 열린우리당이 뜨게 만드는 정치적 수완은 사실 ‘정치적 천재’에 가깝다. 당연히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수사를 벌인데에는 절묘한 ‘정치적 고려’가 숨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총선용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역시 본인의 표현대로 정치인이다. 반한나라당 정서가 투표일까지만 간다면 열린우리당은 당연히 승리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정치적 천재도 넘어지는 것이고, 이변의 싹은 엉뚱한데에서 오는 것이 한국정치의 본질 중 하나다. 노 대통령의 총선전략은 이제 중대한 시련에 부닥쳤다. 10분의 1 티코 수준에 불과했다는 노 캠프의 대선자금이 검찰수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8분의 1이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해도 그것은 리무진의 수준이지 티코 수준의 잡범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리무진 몇 차분인가일 뿐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모두 차떼기로 실어간 것이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이 말하듯 이 정권의 실세들이 대선전후 두 차례 돈벼락을 맞으면서 리무진으로 돈을 실어갔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다면 그동안 일방적이었던 반한나라당 정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말해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 쫓기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부터 열린우리당의 도덕성이 심대한 도전을 받게되는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수사에 정치적 고려가 없음을 입증하려한다면 반드시 이회창 전 대선후보를 교도소로 보내야 한다. 이 전 후보 본인의 고백도 그렇지만 한나라당의 내부 메커니즘상 그 엄청난 검은돈이 이씨의 권한밖에서 움직였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철저히 수사하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교도소에 보내야 한다. 노 대통령이 말하는 정의가 바로서는 나라를 위해서라면 이씨를 감옥에 보낸다해도 눈 하나 깜박할 국민이 없다.

왜 노 대통령은 거기까지 나가지 못하는가. 짐작컨대, 이씨 구속이 총선에 가져올 역풍 때문일 것이다. 총선에 도움이 된다면 이미 구속시켰거나 구속을 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씨를 사법처리해 그것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도 충분히 검토했을 것이다. 그것은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부메랑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정직한 자세가 아니라 정략인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이쯤에서 멈추려한다면 대선자금을 사법의 심판대에 올린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아니라 가장 정략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윤창중 / 문화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