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정치를 극화한다 (문화)

by 永樂 posted Mar 16, 2004
미디어가 정치를 극화한다
‘탄핵정국 보도’를 통해 본 현대 미디어정치의 한계

양성희기자 cooly@munhwa.com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극적인 탄핵정국이 이어지면서 이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보도태도와 관련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KBS 등이 탄핵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자 민주당 등 야당은 방송이 탄핵반대 여론만을 집중 부각시켜 편파보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KBS와 기자협회 등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정치적 음모라고 맞섰고, 일부 보수 거대신문은 야권의 주장에 가세하고 나섰다. 이처럼 탄핵정국은 또한번 미디어간의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미디어의 정치적 성향, 혹은 그에 따른 편파·불공정 논란 등을 넘어, 차제에 현대사회 미디어정치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감정적이고 극적인 내용을 선호하는 미디어의 정치보도가 정치 자체를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이미지중심적인 미디어 이벤트, 미디어쇼로 바꾸어버린다는 것이다. 국회 탄핵가결을 TV로 지켜본 이들의 소감도 한결같았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탄핵정국과 미디어의 관계를 미디어정치라는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 본다.

탄핵정국의 한 축은 단연 미디어다. 총선을 한달여 앞두고 여론의 향배가 표로 직결되는 예민한 상황인 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이나 역할은 그 어느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또 미디어간 갈등양상도 극심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탄핵정국이 미디어와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는 현대 미디어정치의 문제와 한계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미디어, 특히 영상미디어를 배제한 정치는 있을 수 없지만, 모든 정치적 쟁점이나 계기가 미디어(영상)를 통해 제기되고 다루어짐으로써 점차 정치행위, 정치 자체가 미디어가 요구하는 극적이고 감성적인 미디어 이벤트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애초에 총선전략의 하나로 탄핵카드를 들고 나와 문제를 일으킨 야권이나 결과적으로 탄핵을 자초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11일), 의원들의 난투장이 된 탄핵가결 국회(12일) 등 정치적 전과정이, 극적이고 감정적 접근을 선호하는 미디어 보도와 중계를 거쳐 더욱 극적이고 감정적으로 전달됐다는 것.

지난 12일 방송된 탄핵가결 국회 현장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스포츠중계보다도 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이자 미디어정치의 결정판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의원, 옷이 벗겨진 채 끌려나가는 의원, 호통치는 의원, 느긋이 지켜보는 의원 등의 미세한 얼굴표정까지 TV카메라는 잡아냈다.

시시각각 진행상황을 흥분된 어조로 전하는 앵커는 마치 전장이나 싸움판을 중계하는 아나운서같았다. TV카메라는 난투극 속에서도 용케도 ‘스타의원’들을 찾아내 그들이 이 역사적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증명사진을 찍어 주었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그 어떤 의정활동에도 비할 수 없는 강렬한 정치적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난투극은 나와 적이 나뉘고 선악이 갈리며, 과연 누가 이기는가 보자는 선악대결의 드라마로 제시됐다. 만약 거기에 TV카메라가 없었다면 싸움은 덜 격렬했을 것이고, 선악구도의 감정대립도 덜 했을 것이며 시청자(국민)의 반응 또한 좀더 냉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탄핵국회란 국민의 알권리와 관련해 당연히 보도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미디어 전문가들은 ‘극적인 볼거리’를 선호하는 미디어를 거치면서 정치 자체가 정책이나 이념의 대결보다는, 이미지, 감정적 이벤트, 선악구도의 드라마로 재편되는 것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력 역시 이같은 미디어의 성격을 의식한 미디어용 정치카드들을 계속 내놓으면서 정치의 미디어쇼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야권의 탄핵밀어붙이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보도에 대해서도, 외국의 미디어들은 유명인의 자살에 대해 우리처럼 호들갑을 떨며 감정적으로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허태균 외국어대 교수는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하지만, 남 전사장의 투신과 노사모 회원의 분신자살 기도에 대한 보도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