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박세일 교수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강하고 책임있는 야당을 만들기에는 너무 늦은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표체제가 한나라당의 변신이 아니라 도색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박세일 교수의 '개혁보수'의 충정이 탄핵역풍에 추풍낙엽 신세인 한나라당 관련자들의 심금을 사로잡을리 없다. 혹여 이전에 박세일교수를 따랐던 나라연을 비롯한 그 인재 pool이 한나라살리기에 나서면 모를까.
하지만 새로운 보수세력을 모으기엔 아직 이르다. 총선의 결과를 손에 쥐고 나서야 그동안 일색인 듯 모여있던 보수가 자기길을 찾아 흩어지지 않을까?
박세일 교수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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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입당한 박세일교수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25일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박 교수는 26일 공식 출범할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전을 지휘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던 94년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교육.사법개혁 등을 주도하다 김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98년 현실정치에서 물러난지 6년만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미국 코널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80-85년)을 거쳐 85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부임, 법 경제학을 강의했다.
법과 경제 분야를 함께 전공한 전형적인 학자의 길을 걷던 그는 94년말 YS로부터 국가의 장래를 위한 장기 정책수립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라는 길을 택한다.
박 교수는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직과 사회복지수석을 잇따라 맡으면서 사법, 교육개혁은 물론 복지, 노동, 재벌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주도했다. 물론 그의 개혁의지는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며 98년 김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결실을 보지 못했다.
98년 학계로 돌아간 그는 문민정부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란 책을 펴냈다. 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한 국회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올 초까지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에 적극나섰다.
그가 보수성향의 한나라당을 택한 것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그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 워낙 한쪽(열린우리당)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야당이 약해진다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나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나라당호(號) 선택배경을 설명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한나라당을 강하고 책임있는 야당을 만들기에는 너무 늦은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표체제가 한나라당의 변신이 아니라 도색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박세일 교수의 '개혁보수'의 충정이 탄핵역풍에 추풍낙엽 신세인 한나라당 관련자들의 심금을 사로잡을리 없다. 혹여 이전에 박세일교수를 따랐던 나라연을 비롯한 그 인재 pool이 한나라살리기에 나서면 모를까.
하지만 새로운 보수세력을 모으기엔 아직 이르다. 총선의 결과를 손에 쥐고 나서야 그동안 일색인 듯 모여있던 보수가 자기길을 찾아 흩어지지 않을까?
박세일 교수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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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입당한 박세일교수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25일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박 교수는 26일 공식 출범할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전을 지휘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던 94년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교육.사법개혁 등을 주도하다 김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98년 현실정치에서 물러난지 6년만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미국 코널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80-85년)을 거쳐 85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부임, 법 경제학을 강의했다.
법과 경제 분야를 함께 전공한 전형적인 학자의 길을 걷던 그는 94년말 YS로부터 국가의 장래를 위한 장기 정책수립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라는 길을 택한다.
박 교수는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직과 사회복지수석을 잇따라 맡으면서 사법, 교육개혁은 물론 복지, 노동, 재벌 등 각 분야의 개혁을 주도했다. 물론 그의 개혁의지는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며 98년 김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결실을 보지 못했다.
98년 학계로 돌아간 그는 문민정부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의 성공조건'이란 책을 펴냈다. 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한 국회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올 초까지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에 적극나섰다.
그가 보수성향의 한나라당을 택한 것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그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 워낙 한쪽(열린우리당)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단순히 야당이 약해진다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나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나라당호(號) 선택배경을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