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미,영의 반테러 투쟁에 동참하고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기로 했다.
그의 이러한 변신 배후에는
서방 세계에 밝은 그의 아들 알 이슬람이 있다고 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극적인 전향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냥 괜히 박정희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박근혜는 그 아버지의 변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 처럼 아버지의 사상을 바꾸는 자식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 아버지가 친일파이면 자식도 친일파이고
그 아버지가 독재자이면 그 자식도 독재자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아버지가 빨치산이면 그 자식도 빨치산이라는
선동이 난무합니다.
경제의 근대화, 정치의 근대화는 상당히 진전되었으되
의식의 근대화, 가치의 근대화는 한참 멀었나 봅니다.
이제 의식과 가치의 근대화를 위해
힘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국 - 리비아 정상회담] 딴사람 된 카다피
▶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左)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5일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근교에 있는 영빈관용 베두인 천막 밖으로 걸어나오며 대화하고 있다. [트리폴리 AP=연합]
'테러의 대부'였던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25일 리비아에서 열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테러와의 단절'과 '서방과의 화해'를 선언하며 과거사의 질곡에서 벗어났다. 카다피의 변신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블레어 총리도 유능한 국가지도자들이 국익을 위해 통찰력과 지도력을 어떻게 결합해야하는지를 과시했다. 1951년 리비아 독립 이후 처음 열린 영.리비아 정상회담의 메시지를 짚어본다.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손님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 높다. 상대를 의식 않는 듯 혼자 말을 하고, 간혹 막말도 한다. 그러나 지난 25일 블레어 총리를 맞는 그의 모습은 달랐다.
카다피는 블레어를 맞을 '농장'(사막에 있는 천막식 영빈관)에 미리 와 기다렸다. 사막의 베두인족 출신인 카다피는 낙타가 주위에서 노니는 카키색 베두인 천막에서 지내길 좋아한다. 카다피는 긴장한 듯 블레어가 도착할 무렵 천막을 들추며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카다피는 덕담과 농담으로 대화를 부드럽게 끌었다. 그는 아랍어로 "비행기 여행이 힘들지 않았습니까"라며 준비된 말을 건넸다. 블레어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오게 돼 기쁩니다"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카다피는 "테러와의 싸움 때문에 피곤해 보입니다"라 했고 블레어는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카다피가 돌연 영어로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해 보입니다"라고 덕담했다. 카다피는 청년 장교 시절 영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아 영어를 한다. 그러나 아랍의 영도자임을 자부하는 카다피가, 그것도 정상회담에서 영어를 사용한 것은 의외로 비춰졌다. 블레어가 "그런데 영국 언론들은 그런 얘기를 안 합니다. 10년 전 내 사진을 들이밀며 지금은 늙었다고 하지요"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카다피는 "전혀 안 그런데요. 내 눈엔 아직 젊어요"라고 또 덕담했다. 지난해 심장 이상 박동으로 병원 신세를 진 블레어를 카다피가 시침 뚝 떼고 치켜세운 것이다. 블레어는 51세, 카다피는 62세다.
카다피의 공식 발언은 더 파격적이다. 그는 '세계 테러리스트의 대부'였다. 영국의 북아일랜드 공화파 테러리스트(IRA) 등 세계 테러집단을 후원했었다. 한때 "미군들은 양고기로 변화시켜 먹어치워야 돼""미국은 카우보이고 영국은 그걸 따라 해. 대처는 카우걸"이라며 적대감도 보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회담에서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다. 우리의 안전과 발전, 그리고 리비아 여권(女權)의 신장에도 알카에다는 걸림돌이다""우리나라의 미래와 안전은 서방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보장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회담 후 블레어가 "놀랐다"면서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우리의 새로운 동맹"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반서방.반자본주의의 정신개조운동으로 리비아판 문화혁명을 35년간 이끌어온 카다피는 이처럼 극적으로 변했다.
카다피의 변신을 이끌어 낸 일등공신으로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이 꼽힌다. 후계자 수업 중인 아들은 유럽을 오가며 서방과의 화해가 불가피함을 절감하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알 이슬람은 지난 24일 아랍계 방송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아랍은 미국을 비난하는 대신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아랍은 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의 힘에 의해 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도 했다. 리비아의 변신은 상당히 빠르게, 기대 이상으로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미,영의 반테러 투쟁에 동참하고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기로 했다.
그의 이러한 변신 배후에는
서방 세계에 밝은 그의 아들 알 이슬람이 있다고 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극적인 전향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냥 괜히 박정희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박근혜는 그 아버지의 변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 처럼 아버지의 사상을 바꾸는 자식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 아버지가 친일파이면 자식도 친일파이고
그 아버지가 독재자이면 그 자식도 독재자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아버지가 빨치산이면 그 자식도 빨치산이라는
선동이 난무합니다.
경제의 근대화, 정치의 근대화는 상당히 진전되었으되
의식의 근대화, 가치의 근대화는 한참 멀었나 봅니다.
이제 의식과 가치의 근대화를 위해
힘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국 - 리비아 정상회담] 딴사람 된 카다피
▶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左)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5일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근교에 있는 영빈관용 베두인 천막 밖으로 걸어나오며 대화하고 있다. [트리폴리 AP=연합]
'테러의 대부'였던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25일 리비아에서 열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테러와의 단절'과 '서방과의 화해'를 선언하며 과거사의 질곡에서 벗어났다. 카다피의 변신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블레어 총리도 유능한 국가지도자들이 국익을 위해 통찰력과 지도력을 어떻게 결합해야하는지를 과시했다. 1951년 리비아 독립 이후 처음 열린 영.리비아 정상회담의 메시지를 짚어본다.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손님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 높다. 상대를 의식 않는 듯 혼자 말을 하고, 간혹 막말도 한다. 그러나 지난 25일 블레어 총리를 맞는 그의 모습은 달랐다.
카다피는 블레어를 맞을 '농장'(사막에 있는 천막식 영빈관)에 미리 와 기다렸다. 사막의 베두인족 출신인 카다피는 낙타가 주위에서 노니는 카키색 베두인 천막에서 지내길 좋아한다. 카다피는 긴장한 듯 블레어가 도착할 무렵 천막을 들추며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카다피는 덕담과 농담으로 대화를 부드럽게 끌었다. 그는 아랍어로 "비행기 여행이 힘들지 않았습니까"라며 준비된 말을 건넸다. 블레어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렇게 오게 돼 기쁩니다"라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카다피는 "테러와의 싸움 때문에 피곤해 보입니다"라 했고 블레어는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카다피가 돌연 영어로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해 보입니다"라고 덕담했다. 카다피는 청년 장교 시절 영국에서 군사훈련을 받아 영어를 한다. 그러나 아랍의 영도자임을 자부하는 카다피가, 그것도 정상회담에서 영어를 사용한 것은 의외로 비춰졌다. 블레어가 "그런데 영국 언론들은 그런 얘기를 안 합니다. 10년 전 내 사진을 들이밀며 지금은 늙었다고 하지요"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카다피는 "전혀 안 그런데요. 내 눈엔 아직 젊어요"라고 또 덕담했다. 지난해 심장 이상 박동으로 병원 신세를 진 블레어를 카다피가 시침 뚝 떼고 치켜세운 것이다. 블레어는 51세, 카다피는 62세다.
카다피의 공식 발언은 더 파격적이다. 그는 '세계 테러리스트의 대부'였다. 영국의 북아일랜드 공화파 테러리스트(IRA) 등 세계 테러집단을 후원했었다. 한때 "미군들은 양고기로 변화시켜 먹어치워야 돼""미국은 카우보이고 영국은 그걸 따라 해. 대처는 카우걸"이라며 적대감도 보였던 인물이다.
그런데 회담에서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다. 우리의 안전과 발전, 그리고 리비아 여권(女權)의 신장에도 알카에다는 걸림돌이다""우리나라의 미래와 안전은 서방 세계와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보장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회담 후 블레어가 "놀랐다"면서 "그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우리의 새로운 동맹"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반서방.반자본주의의 정신개조운동으로 리비아판 문화혁명을 35년간 이끌어온 카다피는 이처럼 극적으로 변했다.
카다피의 변신을 이끌어 낸 일등공신으로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이 꼽힌다. 후계자 수업 중인 아들은 유럽을 오가며 서방과의 화해가 불가피함을 절감하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알 이슬람은 지난 24일 아랍계 방송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아랍은 미국을 비난하는 대신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아랍은 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의 힘에 의해 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도 했다. 리비아의 변신은 상당히 빠르게, 기대 이상으로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