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미국 以後

by 이왕재 posted May 14, 2004
한국의 보수는 이제 한미관계에 있어서 한국 측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 김대중 조선일보 이사기자의 다음 칼럼은 그 상실감의 고백이다. 이제 한국의 보수는 한매동맹 해체 또는 재조정에 대하여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일도 이제 포기한 듯 싶다. 이들에게 체념과 저주는 동의어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공을 넘겨받은 개혁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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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미국 以後
종착역으로 가는 韓美관계

한·미 동맹관계는 그 어느 쪽의 호불호(好不好)와 상관없이 종착역으로 가고 있다. 이제 한·미관계의 복원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한·미관계는 50여년간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기능을 다하고 새로운 세대에 다른 형태의 ‘관계’를 과제로 남긴 채 스러지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변화는 시대와 흐름을 함께 한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두나라가 동맹으로 갔던 주변 상황은 이제 크게 달라졌다. 중국과 러시아의 위치가 달라졌다. 한국에서는 동맹관계의 중요성 때문에 가려졌던 불평등한 요인들이 민족주의의 새삼스런 대두와 함께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미국으로서는 굳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해외 주둔을 강제할 이유가 없어졌다. 두나라 모두 6·25전쟁을 겪지않은 세대로 완전교체된 상황은 동맹의식을 희박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최근 미국의 조야를 만난 고위 인사의 한 보고서는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이 공개적으로 반미감정을 표출하고 있는데 대해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한국의 지도부가 반미감정을 조장해 국내정치에 활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한국이 반미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집권당의 대다수 의원들이 미국보다 중국이 더 중요한 국가라고 한데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한·미 동맹관계가 이런 결별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특히 현집권세력과 4·15 총선에서 당선된 집권당 대다수 의원들이 기존 한·미 관계의 청산을 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과 한국국민은 당연히 ‘그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 말로만 반미를 유행처럼 떠들고 속으로는 설마하는 자세는 국익에 지극히 해악적이다. 기존 한미관계가 친북좌파세력들이 희구해온대로 머지않아 청산될 것이라면 더더욱 대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우선 즉각적인 과제는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다. 미군의 전면철수에 따른 군사적 공백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미국의 북한침공에 의한 것이든, 북한의 적화의욕에 따른 군사행동이든 한국은 전쟁, 또는 그 유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엄청난 액수의 군비부담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보에는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이 아닌 누구와 합종연횡을 할 것인지 지도부의 예리한 판단력과 능력이 필수적이다.

안보에 못지않은 문제는 경제다. 미국이 동맹으로서는 아니더라도 그저 단순한 친선이웃으로 남는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의 경제와 경쟁력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혹자는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철수와 경제적 철수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주가폭락 사태는 미국이나 중국의 ‘기침소리’가 얼마나 큰 위력을 지닌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또다른 문제는 북한의 정치적 공세 또는 한국이 친북세력의 노골적 행동에 대한 한국으로서의 대응이다. 이미 4월말에 소위 ‘남북제(諸) 정당·사회단체 대표 자연적 회의’를 위한 ‘남측추진준비위’가 발족됐다거나 추진중이라는 보도가 있고 보면 4·15 이후 이런 방향의 움직임들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여 한국은 정체성 혼돈에 빠질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지난 50년간 정치·경제·사회·국제·문화·체육면에서 우리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다시피한 대미(對美)의존심리를 어떻게 다루고 극복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유학이다, 사업이다, 파견이다, 이민이다 해서 이런저런 이유와 인연으로 미국에 가족이나 친척을 두지 않은 집이 없다시피 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관계의 청산이나 한·미관계의 재조정은 국민 전체에 어떤 심적(心的) 공황상태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에서 미국이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굳이 어떤 선택을 주문하거나 예견하고 싶지 않다. 재조정이나 청산의 길이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다만 지도층과 집권세력은 그런 선택에 따른 우리의 대비책과 대응방안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김대중 이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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