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노무현 대통령 경제관련 면담 후기

by 이왕재 posted Jun 01, 2004
서프라이즈의 객원논설위원인 최용식씨가 엊그저께 청와대를 쳐들어가서 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한 내용을 올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중심으로 청와대의 경제문제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자료로 보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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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면담 후기
우리나라 경제 위기 없습니다
      
  등록 : 최용식  조회 : 3,877   점수 : 275   날짜 : 2004년 06월 01일 (14시 19분)    


국민 여러분, 대통령을 만나 뵌 결과

우리 경제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모처럼 잠을 푹 잤습니다. 어제(5월 31일) 대통령을 만나 뵌 뒤, 제 염려가 봄눈 녹듯이 사라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최근 국내 경기가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저는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잠을 자다가 밤중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벌어지곤 했었지요. 일부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이 '삼각 파도가 우리 경제를 침몰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아우성을 치자, 이것이 현실화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것이지요. 그래서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최용식, 청와대 쳐들어가다

지난 5월 25일 대통령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대통령이 되시면 제게 어떤 직책이나 직무도 주지 마십시오. 다만, 제가 면담을 신청할 때에는 꼭 만나주십시오. 많아야 서너 번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우리 경제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을 때일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고, 대통령께서는 그 때 제게 약속을 하셨지요. 그래서 이 약속을 지키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벌써 3년이 지난 후보시절의 약속이라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만큼 제 심정은 절실했습니다.

이런 심정이 하늘에 통했는지, 어제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주시는 그 마음 씀씀이가 여간 반갑지 않았습니다. 국민들과의 약속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아울러, 더 이상 우리 경제의 장래를 저 혼자 짊어진 것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대통령께서는 우리 경제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계시고, 어떤 경제위기라도 사전에 예방해주실 것이며, 설령 위기가 닥치더라도 훌륭하게 극복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모르지만, 오찬에서 오갔던 이야기 중 제가 한 말을 중심으로 글을 써서 이곳에 올리고자 합니다. 참고로, 오찬의 배석자는 정책기획수석비서관님과 정책기획비서관님, 경제보좌관님, 홍보수석님 등 네 분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더욱 영광스런 자리였습니다. 아니, 제가 주제넘게 그런 자리에 참석한 꼴이 되었지요.

처음 분위기는 미리 예상했던 대로 경직된 듯했습니다. 그래서 "후보시절에 뵈었을 때에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떨립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직책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고 미소와 함께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20여 년 전에 청와대에 들어올 때에는 경비가 삼엄했었고 검색도 여러 번 당하는 등 올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쳤었는데 오늘은 편하게 들어왔습니다"라는 말씀도 드렸더니, "고칠 일이 있으면 더 고쳐야지요"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날 청와대에서 비표를 달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 내외분을 제외하고는 제가 유일했을 정도로 경호상의 예우까지 받았습니다. 부속실에서는 문지방에서부터 저를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저 같이 하찮은 사람에게도 이런 예우를 해주시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 경제는 탄탄대로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비관주의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자꾸만 잡아채서 달리지 못하게 하고, 그 탄탄대로의 일부까지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이런 사실에 대해 이미 충분하게 인식하고 계신 듯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탄탄대로가 무너진다면 우리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은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우리 경제가 왜 탄탄대로에 올라섰는지 말씀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이 점 역시 굳이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잘 알고 계신 듯했지만, 여러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오찬 석상에서는 생략했던 내용까지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탄탄대로 경제'가 비관주의에 발목잡히다

'금년 수출 증가율은 4월까지 월평균 40%에 가깝다. 5월 25일까지는 63%에 이른다. 연간 수출증가율이 60%를 넘은 것은 역사적으로도 1960년과 1973년 두 번밖에 없었다. 1960년 수출실적은 33백만 달러에 불과했고, 1973년에도 32억 달러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런 높은 증가율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연간 수출규모가 2천억 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지금의 수출증가율은 기적적인 실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수출이 호조를 보인 기간이 벌써 23개월 째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수출이 오랜 기간 호조를 보인 것도 1980년대 이후로는 '3저 호황기'라고 불리던 1987년과 1988년 사이가 유일하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수출이 호조를 보이기 시작한 때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으로서 세계경제의 장래가 불투명하던 때였다는 사실이다. 해외수요가 크게 증가하던 때가 아닌 것이다. 또한 당시는 환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때였다. 2001년 말 환율은 1,326원이었는데,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하던 2002년 7월말의 환율은 1,197원으로 떨어져 있었다. 쉽게 말해서, 수출가격이 그만큼 오르던 때였던 것이다. 수요도 늘지 않고 가격도 오른다면 수출이 이처럼 크게 늘어날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 국민경제 전체의 국제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다. 견문이 짧아서인지는 모르지만, 그 밖의 이유는 하나도 찾을 길이 없다.

그런데 국제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성장잠재력 즉, 잠재성장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잠재성장률이란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성장률을 뜻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경제성장을 지속가능하지 못하도록 하는 부작용과 후유증에는 물가불안과 국제수지 악화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수출이 호조를 보인다는 것은 국제수지도 호조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지금 우리 경제로서는 국제수지 악화라는 부작용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때이다. 그리고 국제수지가 호조를 보인다는 것은 환율이 장차 떨어질 것을 예약하는 것이고, 환율이 떨어지면 원자재와 시설재를 포함한 수입품의 가격이 떨어져 국내 물가안정에도 기여한다. 따라서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것은 곧 국제경쟁력은 물론이고 성장잠재력도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온갖 고난을 거치면서, 경제전문가들이 몰라보는 사이에,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여놓은 것이다.'

이상의 논지를 요약해서 말씀드렸더니, 대통령께서는 "경쟁국의 환율이 우리나라 수출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냐?"고 되물으셨습니다. 저는 "많은 수출품이 일본 수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엔화에 대한 우리 환율이 떨어질 때에도 수출은 호조를 보였습니다. 따라서 엔화 환율의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곧 수긍을 하시더군요. 사실, 엔화 환율을 거론할 정도이면 경제에 대한 이해가 상당한 수준이고, 그렇다면 반론을 펼 수도 있었지만, 곧바로 수긍하시는 자세에서 대통령의 열린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곧 "비관적인 분위기가 국민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정도로 위력적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물음에도 간단한 답변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잘 알고 계셨습니다. 최근에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시기도 했지요. 더 호소력 있는 논리적인 근거를 원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제 설명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일반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점도 더 자세하게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계대공황, 심리공황에서 출발했다

'모든 경제활동의 결과는 미래에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재화의 구매가 만족스러운지, 전체 소비가 소득에 비해서 너무 과도한 것은 아닌지 등은 미래에 나타난다. 생산이 이익을 남겨줄 것인지도 팔려봐야 알 수 있으며, 투자는 위험성이 더 커서 생산이 이뤄진 다음에도 그 결과를 미리 알기가 어렵다. 따라서 모든 경제인은 잠재적으로나마 미래를 예측해가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예측이란 자주 틀리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심리적인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는 세계대공황도 심리적 공황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 등 선진국 언론은 경제문제의 보도에 있어서 대단히 조심스럽다. 경기후퇴(Recession)란 용어는 두 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에나 사용하고, 경기침체(Depression)이라는 용어는 두 해에 걸쳐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때에 사용한다. 연착륙(Soft-landing)이나 경착륙(Hard-landing) 등의 용어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도 심리적인 영향을 우려해서 이다. 선진국 언론에서는 위기, 파국, 붕괴, 재앙, 침몰, 공황 등의 용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환란 때와 같은 경우에나 위기라는 용어를 쓸 뿐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지금 어떤 용어들을 사용하는가?

우리 경제 현실에서도 비관주의의 폐해는 쉽게 증명된다. 금년 1/4분기의 국내총소득(GDI)은 4.6%가 증가했는데, 소비는 0.6%가 감소했고, 투자는 0.3%가 감소했다. 소비와 투자가 감소할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감소한 것이다. 오직 비관적인 분위기가 소비자의 지갑을 열지 않게 했고, 기업인의 투자를 망설이게 했을 뿐이다. 특히, 기업은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데, 상장기업의 순이익은 1/4분기 중 무려 100%나 증가했다(매출액은 14% 증가). 이처럼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도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비관적인 분위기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애로사항 중 첫째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경제의 불확실한 전망이다.' 대통령께서는 "빚을 갚느라고 소비와 투자가 줄어든 것은 아니냐?"고 물으셨고, 이에 대해서는 경제보좌관께서 "꼭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저를 대신하여 답변해주셨습니다.
  
비관주의 유형에 따른 대응 필요

다음으로, 비관주의를 퍼뜨리는 유형에 대해서 대통령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유형에 따라서 서로 다른 대응방안을 세워야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유형의 첫째로는, 대통령께서도 가끔 언급하시는 바와 같은 악의적인 보도 또는 분석을 들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국민의 정부'도 싫었지만 '참여정부'도 싫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이런 유형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고 원래부터 소수였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종말론을 내세우는 것과 같은 유형을 들 수 있습니다. 언론사 경제부 기자나 경제학자 등 경제전문가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지요. 이들은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다. 나를 믿으면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겠다"는 사이비 교주의 상투적인 수법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언론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이런 유형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이비 교주의 종말론이 호소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이미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어딘가 불안하고 어수선할 때에 사이비 종교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셋째 유형을 낳고 있습니다.

셋째 유형으로는, 증세는 비록 약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집단적인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정신질환이 그것이지요. 큰 사건이나 사고를 당한 뒤에는, 작은 일에도 놀라고,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가끔 불안심리가 불현듯 찾아들고, 심각한 경우에는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의 증세를 나타내기도 한답니다. 우리 국민들도 외환위기라는 대형 사고를 당한 바 있고, 이에 따라 집단적인 정신질병에 걸려 있는 상태라는 것이지요. 참여정부에 비교적 우호적인 방송언론조차 비관적인 보도를 자주 내보내는 것도 이런 유형이 크게 작용한 결과일 것입니다. 다만,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이런 현실을 사이비 교주나 다름 없이 악용하고 있다는 점은 한번 더 지적해두어야겠군요.

국가경제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책당국이라면, 반드시 위와 같은 경제현실에 맞추어서 경제정책을 채택해야 합니다. 집단적 정신질환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니,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완치시켰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국민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집단적 정실질환, 즉 비관적 분위기만 해소한다면,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탄탄대로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21세기경제학연구소]는 금년 성장률을 8% 이상으로 예측해두고 있습니다. 이런 전망이 틀리지 않도록 해주시기 위해서도 비관주의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점을 대통령께 말씀드렸더니, 웃음으로 화답하시더군요. 사실, 저는 웬만한 비관적인 일이 벌어지더라도 경기흐름을 바꿔놓지는 못할 것으로 봤었고, 그래서 위와 같이 높은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습니다. 수출이 이끄는 경기상승은 비교적 강력한 추동력을 갖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고, 수출을 좌우하는 해외시장은 국내의 비관주의와 무관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소위 '삼각 파도' 사태를 들여다보면

그러나 소위 '삼각 파도'라고 불리는 세 가지 사태가 한꺼번에 겹칠 줄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중국의 경기진정 정책,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 석유가 급등 등이 그것으로서, 우리 경제가 이런 삼각파도에 걸려서 침몰할지도 모른다고 여러 경제전문가들이 한꺼번에 떠들고 나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의제들도 자세히 따져보면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우선, 중국 경기는 심각하게 과열되는 양상을 보였고, 방치하다가는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 틀림없으며, 조만간 경기가 급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중국은 이것을 사전적으로 예방한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는 중국의 경제정책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선진적이라고 평가해야 합니다. 중국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금리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경기는 상승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은 아닌가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린스펀은 경기가 여전히 비교적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경기상승속도를 줄여주려고 했던 것이지요. 이것이 진짜 경제정책입니다. 경기가 부진하더라도 상승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면 그 속도를 줄여주어야 하며, 그래야 경기 상승기간이 길어지고 본격적인 경기호조도 곧 부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미국의 현 금리는 2%로서 불과 3년 전보다 1/3에 불과합니다. 미국 금리가 6%였을 때에도 우리 경제에는 큰 타격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0.25%나 0.5% 정도 금리를 올린다고 무슨 큰 일이 벌어질까요?

석유가의 급등은 우리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석유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정도는 우리 경제의 체력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1차 석유파동 때와 제2차 석유파동 등 두 차례의 위기를 겪은 뒤에 과거에 비해서나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 경제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었고, 더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진상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오로지 비관적 분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신이 난 듯 떠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관주의가 얼마나 큰 손실을 남기고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남기는 줄을 그들은 전혀 모르는 듯 했습니다. 비관주의가 무섭다는 사실은 이미 증권시장에서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외국인들만 큰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언론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원인을 먼저 파악해야 진상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장래가 그만큼 밝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언론보도를 보거나 듣지 않고, 오로지 경제지표들만 분석하여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반면에, 국내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언론보도를 믿고 주식을 내다 팔기에 바빴으며, 외국인들은 그만큼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요?

무엇보다 심각한 사실은, 비관주의의 전파가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하고 기업인의 투자를 얼어붙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론의 비관적 보도가 악의적 의도로 이뤄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최근의 경기흐름과 언론보도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1998년과 2001년 그리고 2003년 상반기처럼 경기가 부진의 늪에 빠져 있을 때에는 비관주의가 비교적 잠잠하다가, 1999년과 2000년 하반기 그리고 2002년 하반기처럼 경기가 빠르게 상승할 때에는 어김없이 비관적 보도가 홍수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보도에 부화뇌동하여, 경기가 급상승할 때에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기부양정책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경제의 체력을 탈진시켰고 곧바로 경기를 다시 하강시키곤 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경기의 상승과 하강이 너무 자주 그리고 폭넓게 교차하는 일이 발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이제, 국민의 정부가 비교적 양호한 경제성적을 기록하고도 국민들로부터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 이유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실책을 빼더라도,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이 우리 경제를 비관적 분위기로 몰고 갈 때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었는데, 이것을 못하였던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우리 경제를 사실과 다르게 비관적으로 그리고 나쁘게 인식하게 되자,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이것을 경제정책의 실패로 몰고 갔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경제홍보에 있어서 거의 빵점이나 다름없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여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도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경제를 비관적으로 몰아가고 있고, 이것은 장차 경제정책을 실패로 매도하기 위한 전주곡인지도 모릅니다.
  
수출과 관련된 몇가지 오해들

그런데 대통령께서는 비관적인 의제들 중 상당수가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 산업공동화, 중국 위협론, 체감경기와 경기 양극화, 국부유출, 빈부격차 등이 그것들입니다. 아마 신동아 6월호에 제가 기고한 글을 읽으신 듯 했습니다(여러분께서도 이 글을 한번쯤 읽어보시면 이해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출과 관련한 문제 몇 가지만 구체적으로 말씀드렸지요.

첫째는 '대기업 수출만 잘된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2003년 중소기업의 수출비중은 44%로서 2002년의 42%보다 2%나 증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소기업 수출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소기업 수출이 대기업보다 훨씬 더 잘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이지요.

둘째, '주력 품목 몇 개만 수출이 잘된다'고들 하는데, 이것도 틀렸습니다. 수출품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면, 우리나라 수출은 단 한 개의 품목만 잘나가고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비교적 단순한 품목인 반도체만 따져도, 그 종류가 수십 수백 가지에 달하고, 여기에 소재와 부품까지 포함하면 그 품목수는 훨씬 많아집니다. 자동차나 이동전화 등은 그 부품과 소재까지 따지면 품목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최근 수출이 급증하고 있는 기계류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셋째,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이 줄 것이고 우리 경제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비관적 의제도 조만간 등장할 것이 뻔하며, 여기에 대해서도 정책당국이 미리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수출이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국제수지도 흑자가 너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수출은 가격탄력성이 비교적 낮습니다. 이런 사실은 환율이 낮았을 때에 수출이 오히려 잘되었다는 과거 실적에 의해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끝으로, 비관주의를 해소하지 않고는 우리 경제가 탄탄대로를 걷기 어렵다고 대통령께 거듭거듭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미 형성된 비관적인 의제들도 깨뜨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이용해 먹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런 의제들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싸움꾼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도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고위 경제관료가 '중국의 경기진정은 우리 경제에도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펼쳤다가, 기자들의 반격을 받고 물러서는 바람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바도 있습니다. 반론이 제기되면 즉각적으로 재반론하고 끝까지 싸워서라도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제의 선점이라는 말씀도 드렸지만, 이 문제는 자세하게 언급하기가 어렵군요.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사람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들이 이에 대응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통령께서는 우리 경제를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정확히 파악하고 계시고, 혹 벌어질지도 모를 위기상황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비하고 계시더라는 점만은 이 자리를 빌어서 밝혀두는 바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민 여러분께, 경제문제에 관한 한 우리 대통령을 믿어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최소한 경제위기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경제학자의 이름을 걸고 밝혀두고자 합니다. 정치적으로야 거부감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이고, 저도 불만스런 면을 좀 가지고 있지만, 경제라는 면에 있어서는 대통령을 믿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찬이 끝날 무렵에는 대통령께서 참여정부의 실책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지적해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난해를 잘 참아낸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이것은 어떤 중대한 실책도 덮고 남음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002년 하반기에 가계부채를 갑자기 억제하는 악순환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지난해 우리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그 어려움을 참아서 이겨낸 것은 참으로 위대한 결단이라는 것이지요. 가장 큰 용기는 비굴함을 감수하고 참는 것이듯이,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결정인지를 아는 분이라면, 그리고 경제원리를 제대로 아시는 분이라면, 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저는 대통령께, 1980년대 후반에 가계부채와 재정적자 그리고 국제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경제가 우리와 같은 악순환 정책이 아니라 선순환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명심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최용식 (서프라이즈 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