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연변자치주지역 녹색경제문화발전과 생명 경제
김 지 하 (시 인,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하나: 21세기 조선 조선족의 녹색 민족문화경제 기반구축 전략 등에 관한 훈수 몇 마디.
서기 2004년 (단기 4337년) 유월 남한 경기도 일산에서 중국조선족 인사인 이 동춘 선생(차이나코리안 닷컴 집행회장)을 만나 중국 조선족의 현재상황과 녹색경제발전에로의 출로와 소망에 대해 간략한 전언을 들었고, 그에 관한 임 진철 선생(연변두레 에코폴리스 본부장,중앙민족대 객좌교수)의 논문 약간을 읽었다.
그 뒤 그분들의 청에 따라 8월에 열릴 심포지움에서 제기할 글과 몇 마디 도움말, 또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훈수 몇 마디를 적어보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진정한 연대와 상호관계는 이글 마지막에 쓰여진 내년의 예정행사를 통해서라야 비로소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녹색에 관하여
1.
중국조선족 대표의 전언과 임진철교수의 논문을 통해서 나는 현재 중국조선족의 미래계획의 핵심이 ‘녹색문화경제사회’ 건설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 계획은 목전에 박두한 중국전체사회의 미래에 연결될 것 같다.
중국전체 사회의 생태계오염과 생명파괴는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조선족의 녹색계획은 시기적절하고 예견성있는 계획인 듯 하다. 다만 여기서 한마디 훈수를 두고 싶은 것은 그 계획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보다 더 전문적인 예상과 견해에 기초해야한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할 중국과 조선의 ‘녹색’이 이미 수 십년 전에 시작되고 경험된바있는 유렵과 남한의 이른바 ‘녹색’을 처음부터 반복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유럽과 남한의 ‘녹색’은 공공경제학(公共經濟學)과 공해론(公害論)에서 시작하여 환경사회학(環境社會學)과 환경오염론을 거쳐 근본생태학과 사회생태학의 지구생태계 파괴론에 이르렀고 벌써 여러해 전부터 현실해석과 견해의 근본적 차원변화가 요구되기 시작하여 오늘에는 동서양철학과 사상전반 및 과학에 있어서 새로운 생명학(生命學) 성립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녹색도 아니고 무지개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평화’라는 명제 안에 압축된 새로운 철학과학과 새 문명창조의 요구로 변경되고 있다.
새로운 생명학은 물론 환경론이나 생태학의 경험을 참고할 것이나 도리어 그것은 유럽사상의 비주류에 해당하는 생명과학과 생성철학을 흡수하면서 동아시아와 한국사상의 전통 가운데 풍부하게 내장되어있는 생성과 생명, 과정과 변화의 철학 및 사상을 현대화함으로서 동아시아만 아니라 지구전체를 결정적으로 구출할 수 있는 ‘우주생명학’을 창조하고 그에 따른 참다운 삶과 평화의 새 문명을 건설하고자 한다.
나는 그 씨앗이 동아시아 특히 조선과 중국의 전통가운데에 풍부하게 숨어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조선과 중국의 이중적 삶과 사유와 감각을 지닌 중국조선족의 ‘녹색’이 이미 그 첫출발에서부터 생명학, 또는 ‘생명과 평화의 길’. 또는 새로운 문명창조의 선구적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감당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중국과 조선 사이의 경계상황에서 겪게 되는 피동을 거꾸로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뒤집는 실천과 공부와 논의를 이루어 나가주기를 바란다.
2.
생성과 생명, 과정과 변화의 사상과 과학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생태학보다는 오히려 혼돈이론(카오스과학과 철학 및 미학)안에 그 정수가 집결되어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통문화 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혼돈과 생명의 이론이 유.불.선 및 각종의 잡학(雜學-예컨대 풍수학)안에까지도 관통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들은 유교와 봉건적 관료지식인들에 의해 유럽의 존재론이나 실체론보다 더 고차적이고 유연한 코스몰로지에 의해 교묘하게 ‘봉합’되어버렸다.
이 봉합을 풀고 그 안에 사장되어있는 혼돈과 생명의 풍요한 전통을 인류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 중국 조선족이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아시아 고대문예부흥을 일으키는 일이다. 중국조선족이 그 일을 앞장 서 하려면 남북한 동포 및 지식인과 재일, 재로, 재미, 재유럽 등 모든 동포와 함께 중국인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민족들을 다같이 참여시켜야 한다. 왜 하필 한국인이, 더욱이 곤란한 경계상황에 빠진 중국조선족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중국조선족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으로 소급된다. 그 역사적 시간에 동아시아는 유럽운명의 대습격에 부딪혀 흔들리게 되는데 그때 한국과 중국과 일본 등에서 그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탄생한다. 그중에도 고대에 잃어버린 생성과 생명, 과정과 혼돈의 사상들이 다시 크게 부활했으니 바로 조선의 후천개벽(後天開闢)사상이다. 특히 동학(東學)과 정역(正易)등은 바로 중국의 관료지식인들이 봉합해버린 고대 동아시아의 혼돈과 생명의 사상을 근대적인 철학, 과학으로 생생하게 부활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민중민족혁명에까지 도달하였으나 이씨조선왕조와 연합한 봉건중국 및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의해서, 그리고 그 뒤로는 존재론, 실체론적인 유럽문명과 문화에 의해서 억압되어버리고 만다.
중국 조선족은 바로 이 같은 19세기, 20세기 초의 후천개벽사상의 새로운 해석학과 자주력에 의해 동아시아 전통사상위에 씌어진 낡은 존재론과 실체론의 봉합을 뜯어낼 사명을 가졌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현명한 유럽과 아메리카의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모두 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동풍(東風,이스트 터닝)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들의 예감의 안테나는 바로 중국이라기보다 중국과 깊은 연결성을 갖되 그 스스로 독자성을 가진 한국과 한국인, 특히 그 연결의 직접적 고리인 중국 조선족의 존재와 앞으로의 창조적 역할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중국조선족이 겪는 고통은 도리어 이 같은 창조적 사명을 숨겨가진 전야(前夜)의 고통일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이른바 ‘녹색’은 ‘혼돈의 질서(카오스모스)’를 찾아가는 전세계적 탐색인 것이니 동학과 정역의 새로운 개념인 ‘생명학’을 내용으로 자기조직화해 나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3.
그렇다면 이제부터 시작해야할 중국조선족의 교육문화운동은 단순한 녹색(생태학)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길’이 아닐까? 도리어 ‘생명학교운동’이 그 정확한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명은 이중적으로 생성한다.
동학과 정역이 혼돈과 질서의 이중적 교호결합 즉 ‘태극(太極)과 궁궁(弓弓)’ 또는 ‘율려(律呂)와 여율(呂律)’의 반대적인 상호보완성을 그 원형(原型)이자 ‘패러다임’으로 하듯이, 생명학은 정착과 이동, 농경과 유목, 농촌과 도시, 외면의 생명과 내면의 영성(靈性), 그리고 ‘에코(eco)’와 ‘디지털(digital)’의 결합을 요구한다.
중국조선족의 딜레마 즉 자본주의적 도시화와 아직도 공동체적인 농촌생활의 분열적 이중성에 대한 생명창조적 이중메시지의 결정적 해답을 얻으려면 단순한 ‘녹색’을 ‘생명’으로 전면 개념수정을 단행해야 되리라 믿는다.
동학과 정역은 중국학의 현대적 가능성인 기사상(氣思想)과 역학(易學) 즉 주역(周易) 등에 대한 조선문화 쪽의 독자적 해석학이요, 후천(後天)적 새 전개과정인 것이다.
동서양 사상의 통합
4.
새시대는 동아시아로부터 시작되는 동서양사상과 문화의 창조적 통합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인류문명에 의해 열린다. 아시아 고대 르네상스운동은 생명학을 해석학으로 하는 새세대와 새 주체에 의한 아시아 전통문화의 담대한 재창조이며 새로운 동서양사상융합이다. 그것은 동학, 정역 등에 의해 기철학과 주역 등을 살아 생동하도록 하고, 그로부터 광범위하고 심오하며 다종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새로운 수학(數學) 즉 고차원의 상수론(象數論)과 영성적 신비학(무의식에 대한 심리물리학 등)의 결합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이 과정이 자연히 하이테크, 하이터치, 벤처마킹과 함께 새로운 생명학적 영농() 및 생명공업을 촉발시키고 광범위하고 고차적인 서비스산업을 유도할 것이다.
중국조선족이 기획하는 ‘선진적 녹색문화경제기반’이라는 것은 그 내용으로서 생명학을 착안하고 연찬, 교육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성될 것이며, 사회주의이던 자본주의이던 속류유물론과 공리주의, 실용주의, 비극적 문화혁명의 후유증 등으로 과거 망각에 빠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주위사람들에게 도리어 큰 모범과 선진적 모형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아메리카, 러시아 및 모슬렘과 모든 민족들에게 중요한 새 문화, 새 문명의 길을 가르치게 된다.
‘생명과 평화의 길’은 목하 남한에서 여기저기 새 삶을 갈망하는 민중의 ‘캐치플레이즈’가 되어가고 있다. 지구문명의 대전환기에 전인류 앞에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할 성배(聖杯)의 민족이 곧 한민족이며 그중에도 고난의 역사 속에서 창조적 경계상황 안에 있는 중국조선족이라고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이미 고착되어가고 있는 중국역사학계의 ‘동북공정(東北工정)’에 대한 한민족과 중국조선족의 슬기로운 대답, ‘아니다.그렇다(不然其然, no-yes, 최수운의 동학논리이며 최근 진화론과 생명과학, 뇌과학 및 선(禪), 그리고 뇌를 모방하는 컴퓨터의 디지털적 이진법과 유럽의 모순어법을 다 포괄한다)’의 탄력있는 대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렇다’에 의해서만 중국의 ‘생극론(生克. 相生과 相克의 균형과 상호보완성)’은 현대적 생명논리, 생명 및 물질의 이중성과 차원 변화의 논리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호혜(互惠)
5.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집체주의가 파시즘과 각종 공동체주의의 전체주의와 함께 현대과학과 대중운동 등으로부터 전면 후퇴하고 있는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해야한다.
19세기, 20세기 생물학과 진화론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군집(群集)과 종(種)발생 선행이론, 즉 개체보다 전체와 집단이 먼저 발생하고 또 그만큼 개체보다 더 중요하며 가치가 있거나 적어도 개체와의 관계에서 변증법적 균형을 이룬다고 보았던 과학이론은 벌써 수십년 전부터 각 방면에서 퇴각하고 돌연변이, 다양성, 자유의 원리라는 기제(機制)에 의해 개체가 군집보다 먼저 발생할 뿐 아니라, 군집도다 더 근원적이고 더 깊이 존중되어야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대신 개체는 발생 당시부터 자기의 생물학적인 드러난 질서 안에 숨겨진 질서, 보이지 않는 내적 차원으로서의 제각각 나름대로의 독특한 군집성, 독특한 소규모의 전체성, 더 정확하게는 우주적 총유출의 벡타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숨겨진 차원의 새 질서를 실현하기 위해 진화과정 전체에서 ‘자기조직화(自己組織化)’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제3세계형 집단주의, 각종 종교적 공동체와 생태주의 공동체들이 예외없이 실패하거나 쇠퇴하는 것, 전 인류의 새 세대들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개체를 잃지 않고 자기조직화에 의해 도달하는 새로운 융합’현상(예컨대 2년여 전부터 남한에 발생하고 있는 ‘붉은 악마’나 ‘촛불’현상, 또는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시민운동 등)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극단 사이에서 희망의 표적이 되어왔던 버몬트 숲속의 근본생태주의 캠프나 스페인의 몬드라곤 공동체, 동아시아의 광범위한 시민생활협동조합운동에서의 공동체 실험등이 모두 쇠퇴하고 있다.
기이한 것은 19세기 한국의 후천개벽사상이었던 동학과 정역, 그리고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의 기철학(氣哲學)등에서 먼저 스스로 우주적으로 확장된 개체들이 전제되고 그 개체들에 의한 자발적인 새로운 소집단 소사회구성활동의 종교적(동학의 각지불이各知不移), 철학적(혜강의 교접운화交接運化), 그리고 과학적(정역의 십일일언十一一言) 전개와 제언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것을 현대의 맥락과 형편안 에서, 더욱이 자기조직화, 자기선택, 자유의 진화론과 신생물학, 뇌생리학등의 공세적 확장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게인과 개인 사이에 공동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새 원리로 협동적 삶을 추구할 것인가?
임진철교수의 논문을 통해서 중국조선족의 농촌생태공동체나 도시의 하이테크적 벤처공동체들이 제안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군집이 개체보다 더 강조되는 공동체주의의 하나라고 생각 안할 수가 없다면 이러한 견해는 최근 유럽에서도 수없이 시도되고 또 수없이 실패하는 생태사회주의자들의 생태소비에트들, 일본 등의 생활협동조합의 공동체주의 포기현상들은 어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미국 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기업경영의 벤처 흐름들이 사실 뇌 활동이나 생명발생 및 진화의 주류개념인 ‘자기조직화’와 ‘유연성’ ‘우발성’ ‘내부공생(endosymbiosis)’ 그리고 서부유럽에서 시작되는 자연과의 공생계약의 신문화론 등으로 기울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하이테크’류의 신자유주의적 과학적 음모에 불과하다면, 그 현상을 대신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법칙이 제기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우리민족의 경우 어떤 원리이며, 어떤 사상적 원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그런 것은 없었던 것일까? 바로 내가 우리 민족 전체와 동아시아 민족들, 특히 중국조선족이 선두에 서는 아시아 고대문예부흥을 현실적 대안과 연계해서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문제점들과 관련되어 있다.
6.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은 4천년 내지 5천년 전 지구온난화와 함께 남방으로부터 북상한 농경문화 이전부터 경영해왔던 천신숭배(天神崇拜)적인 유목이동문화의 한복판에 생명문화로서의 ‘풍류(風流)’, 인격교환과 생태계 및 신령숭배적인 호혜(互惠)경제로서의 ‘신시(神市)’ 그리고 전원일치적 직접민주주의라고 전해오는 정치체제로서의 ‘화백(和白)’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와 정치 및 경제인류학적 견해들은 남한에서 몇 년 전부터 자생하기 시작한 ‘생명학에 입각한 고대사 공부모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개체가 먼저 발생한다는 과학 앞에서 동학과 같이 만약 개인 개인을 ‘지극한 우주기운( 至氣, 이것은 곧 혼원지일기混元之一氣로서 ’혼돈한 근원의 태극질서‘ 즉 들뢰즈 류의 ’카오스모스 chaosmos.'를 뜻하는 신개념神槪念이다. 왜냐하면 일기一氣는 주역에서 태극을 뜻하는 우주질서이기 때문이다.)' 즉 ’한울‘로서 ’모심‘의 대상으로 본다면 그 모심의 행위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돈독한 상호혜택 즉 호혜(互惠)를 성립시키며 그 호혜는 상고대 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단의 또 하나의 시장(자본주의 교환시장이나 원시 공유제公有制와 함께 공존했던 또 하나의 인격교환시장)으로서 공급과 수요 사이에,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에 하나의 복합적 ’계(契)‘를 바탕으로 한, 마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트라치(potlach,제사경제)’와 비슷한 경제구조로서 지역단위의 협의(協議)제적인 생명경제(노동. 토지. 신용 등 생명과정의 생명가치를 되찾는 경제)로 발전할 수 있는 전형(剪型)의 하나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사실 ‘신시’는 우리민족만의 전통은 아니다. 이 ‘신시’의 호혜기능이 공동체대신 공급.수요자 사이에 현대적인 새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다시 성립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과 인간사이, 인간과 자연사이, 인간과 신령사이에 ‘성스러운 시장’으로, ‘흐르는 시장’으로, ‘솟대’ 안에서 행해졌다는 그 ‘신시’의 호혜관계망인 ‘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낡아빠진 고대 아시아적 삶의 잔영일 뿐인가?
개인을 하늘같이 공경하면서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 개인 내면에서부터 상호희망하고 필요로 하며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는 경제적 상호혜택관계망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전세계적으로 교환과 호혜의 이중경제, 이중시장은 불가능할까? 양자의 이중적 교호결합은 불가능 할까?
또한 화백과 같은 전원일치적 직접민주주의는 앞으로 다가올 사이버 민주주의 체제에서 하나의 효력있는 대안으로 재구성될 수는 없는가?
생명과 영성과 흥취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풍류’의 문화는 오직 전설일 뿐이고 술취한 조선족들의 굿거리 춤판에서만 적용되는 놀이문화에 불과할까?
7.
아시아 고대문예부흥이라는 생명학적 지향과 호혜시스템을 목표로 가진 ‘21세기 중국조선족 녹색민족문화경제 기반구축과 농촌경제발전전략’을 구상해보는 것은 과연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나와 나의 여러 벗들은 작년의 경기도 ‘세계생명문화포럼’에 이어 올해에는 남한과 한민족만의 생명학 및 생명문화, 아시아 고대문예부흥과 고질적 관료주의에 대한 대문화혁신의 기획포럼을 구성한다.
그러나 내년에는 광범위하고 이론-실천적인 ‘동아시아 생명과 평화포럼’을,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다시 ‘전세계 생명과 평화포럼’을 경기도에서 개최한다.
지금의 계획으로는 내년 동아시아 포럼 때에 아마도 중국 조선족대표들이 아주 중요한 손님으로 특별 초대되도록 이미 기획이 서있다.
그때 우리는 무슨 실천적 과제를 가지고 만날 것인가? 아마도 그 포럼을 전후해서 나의 연길방문도 실현되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한민족과 중국조선족의 날카로우면서도 미소로 가득한 ‘아니다-그렇다’의 슬기로운 대답이 이미 그때는 상식선으로 접근하지는 않을까?
다만 나의 이상과 같은 이야기들이 시인의 단순한 상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효성있는 몇 마디 훈수이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나의 마음 자체가 혹시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양력 6월 17일
남한 경기도 일산에서
김 지 하 모심
둘: 연변에 다녀온 이후 보충의견 몇마디.
8. 기이한 인연으로 임 진철교수와 리 동춘 회장, 그리고 정 병석사장을 만나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에 소재한 연변두레과학농목 유한공사(有限公司)인 ‘연변 두레마을’을 방문했다. 실제의 녹색 전략실험의 현장을 둘러보고 주체들의 고민과 구상, 그리고 잠시나마 연변의 동포들 및 중국 동북지방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보고 나서 앞서 서술한 나의 견해에 수정과 보충을 가하기로 했다. 긴 시간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삼축(三軸)’과 ‘이축(二軸)’의 두 방향을 혼성하는 계획에 합의했다.
9. 삼축
두레마을 공동체의 본래 기능인 사회주의적 공동체 기능 위에 자본주의적 교환 및 상품경제와 개별체성을 배합하고 그것을 또한 지역생명운동(또는 녹색·생태)의 협의체(協議體) 기능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내 견해를 수정 보충하기로 결정했다. 연변두레마을과 중국 동북지방, 그리고 중국 조선족의 구체적 삶에 관해서는 별도의 기회에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10. 여섯 가지의 이축
첫째, 농촌의 ‘에코(농촌 즉 연화촌 두레마을의 생태 또는 생명공동체 전략)’와 도시의 ‘디지털(도시 즉 연변과의 관련에서 디지털, 하이테크, 벤처공동체 전략)’ 사이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동시에 추진한다.
둘째, 공동체적 사유 및 경영과 동시에 비공동체적 사유와 경영을 이중적으로 교호결합(예컨대 개체성을 잃지 않는 분권적 융합)한다.
셋째, 호혜(互惠)경제에 의한 부분적 탈상품화(脫商品化)라는 가치추구를 통해 창조된 ‘생명가치’(*일본의 中村尙司의 지역 자립 경제학 참조)를 시장의 교환경제와의 경쟁에서 부분적 상품화(商品化)한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탈영토화(脫領土化)’와 결합되는 ‘재영토화(再領土化)’의 카오스적 전략에 연속된다.
넷째, 이상과 같은 생명가치 추구의 생명경제와 생명문화운동을 결합함으로써 안으로 의식과 영성(靈性)과 정신의 평화를 추구하고 밖으로 기운과 생명과 물질의 풍요한 변혁을 성취한다.
다섯째, 동아시아 고대 생명성의 문예부흥(그린 르네상스)을 통하여 동아시아 제민족의 생명과 평화연대 및 호혜관계망(互惠關係網)을 형성한다.
여섯째, 이 같은 이축운동을 통해 중국의 한족 및 여타소수민족과 조선족 사이의 간극과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통합적 연결성과 특수한 독자성을 의식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호보완적으로 현실화시키는 명제를 실현한다.
11. 중국 조선족의 녹색전략은 중국과 함께 조선족 자신의 미래를 세계사적 흐름의 차원변화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인류사적인 소명성취와 현재의 여러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계획임을 확실하게 선포해야 한다. 이것은 남·북한과 동아시아, 아메리카나 유럽 등의 조선족을 통한 인류 전체의 문화·경제적 대비약에 기여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크고 깊고 높은 소명(召命)에 연결된다.
12. 역사가 가르쳐주는 바에 의하면 이같은 문명전환적 운동은 언제나 그 주체와 지역과 상황에 어떤 지속성을 지닌 ‘전설(伝說)’이나 ‘신화(神話)’를 동반하는 법이다. 연화동촌의 두레마을에 도착하여 내 스스로 본 바로는 풍수(風水)에서 중요시하는 ‘산곡간개활(山谷間開活)’의 ‘명당혈처(明堂穴處)’로서 크고 새로운 운동의 근거지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거기에 항일민족해방운동의 근거지 중의 근거지라는 결정적 전설과 신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김좌진(金佐鎭) 장군의 사령부 자리이고 한 골짜기만 들어가면 만주의 전설적 영웅인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유격근거지가 있다는 점이다.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은 멕시코의 싸파티스타운동이 30여년전의 멕시코의 전설적 농민혁명가였던 에밀리아노 싸파타의 전설과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은 21세기 생명사회(녹색사회,순환사회)를 앞당기는 생명운동, 에코(ECO)와 디지털(DIGITAL)이 이중적 교호결합하면서 녹색문명을 촉발시키는 동북아의 그린르네상스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호조건을 갖추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13. 동서고금의 역사가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현대적인 문명조건에서 생명운동의 가장 큰 충족조건은 생명경제와 생명문화운동의 융합전개이다. 나와 나의 벗들이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문화운동을 ‘한살림’과 같은 생명정제협동운동과 함께 시작한 것도 바로 그 까닭이다.
그런데 바로 이 연변두레마을에 문인들의 창작실(創作室)이 버젓이 건설돼있고 내가 그곳에 도착한 초저녁에 이미 연변 조선족 작가협회의 주석 및 회원들(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십여명과 연변일보의 기자가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심으로 크게 놀랐다.
그분들과 담화를 나누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중국조선족에게는 자기민족의 종교가 없으므로 문학이 민중 전체에게 마치 종교와도 같은 정신적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셈은 끝났다.
밤늦어 연길로 돌아오면서 임 교수와 정 사장, 그리고 이튿날 돌아오기 전 리 동춘회장과 함께 나눈 긴 얘기 도중 나는 우리의 ‘생명과 평화의 길’과 연변두레마을의 중국 조선족 및 연변자치주 지역 녹색전략 사이에 여러 방면에서 합일점이 크게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20여년전부터 시작된 한국의 생명운동 또는 생활협동조합(生協)과 일본의 생활협동조합 및 생명 생태시민운동과의 깊은 동지적 관계 위에 무엇인가 심상치않은 ‘플러스’ 표식을 얹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끊임없이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들, 안개에 쌓여 천지(天池)가 보이지 않는 밤의 천문봉(天文峯) 위에 나타난 불광(佛光·스님들의 좌선 중 배경에 타오르는 진리의 살아 움직이는 불꽃), 그리고 장백 입구에서 두만강을 옆에 끼고 세 시간을 달린 광평(廣坪)까지의 무인지경, 자작나무 숲에서 어둠 속에 홀연히 나타난 큰 사슴과 함께 천문봉 꼭대기에서 잠들기 전 내내 내 가슴을 흔들던, 두려운 바람소리 속에서 계속 울리던 ‘외로운 변화의 신(獨化之神)’의 목소리-세계에 대한 한민족의 사명으로서의 원형(原型) 제시의 다짐-바로 그것이 곧 이 같은 ‘플러스’ 표식이었다.
어찌보면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이다.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양력 7월 5일
남한 경기도 일산에서
김 지 하 모심
셋 : 김 지하 선생의 훈수와 견해에 대하여 임 진철 교수가 보태는 말
글을 쓰게된 동기
1.지난 6월 필자는 “동북아녹색경제발전을 위한 중.한(한.중) 산(産)-학(學) 협동 심포지움”준비차 한국에 갔다가 심포지움 주제발표 청탁을 위하여 이 동춘회장과 함께 김 지하 선생을 찿아뵙게 되었다. 위에서 김지하선생께서 밝힌바대로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나서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심포지움때 꼭 간다는 장담을 못하기에 글을 먼저 보내주겠노라고 하셨다.
그후 열나흘이 채 못되어 글을 보내주셨는데, 묘하게도 부슬비가 내리던 날 연길 공항에서 마주치게 되었다.일정에 없던 가족들의 백두산관광 스케줄이 급작스럽게 잡혀 연변에 오게 되었노라고 하시면서 연변두레마을에 한번 들르시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장백산맥의 심산유곡에 자리잡은 연변두레마을에서 연변의 문인들과 문학담론을 나누고, 이후 필자와는 많은 시간동안 생명과 평화 그리고 동아시아에 대한 담론을 나누게 되었다.
이러한 담론과정에서 위의 “연변에 다녀온 이후의 보충의견”이라는 글에서 김 지하 선생께서 밝힌바대로, 생명운동과 공동체운동에 대한 삼축(三軸)과 여섯가지 이축(二軸)의 역동적 결합 및 혼성계획에 대하여 상호공유하였다.이에 대한 필자의 논지와 실천적 함의를 보충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듯싶어 이야기를 전개해보고자한다.
필자의 문제의식과 실천적 함의
2. 필자는 뭘 내세울만큼의 업적이나 불꽃튀는 치열함은 없었지만,시대의 문제의식과 궤를 함께하려고 노력하며 본인의 역량만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및 민주화운동 그리고 공동체운동의 맥락에서 일해온 것 같다.
8년전 참여연대 창립 및 활동을 끝으로 국내사회운동을 접고 연변두레마을(대표 김 진홍)설립작업과 북경의 중앙민족대학교 아.태경제문화연구소 설립작업을 시발로하여 연구소를 매개로 활동해왔다.북경에서 친환경농업과 벤처산업 국제심포지움을 열며 정보화사회이후의 사회,계급갈등과 민족갈등 그리고 환경문제와 앞으로 밀어닥칠 노령화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사회에 관심이 많아 이문제에 노력을 기울여온것같다.
“생명과 평화”를 축으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도시와 농촌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꿈의 녹색사회(GREEN-DREAM SOCIETY)”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며 나름으로 실천적 몸부림을 해왔다.몇년이 지난후 김지하시인의 생명학 저서를 읽어보니,김 지하시인은 이러한 필자의 문제의식을 상당수준에서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학계에서는 생명사회,순환사회등등의 이름으로 이와비슷한 논의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판단컨대 인문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매개로 논의되는 이러한 담론과 실천적 함의들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속담에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생명과 평화”를 축으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도시와 농촌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꿈의 녹색공동체사회(GREEN-DREAM SOCIETY)”에 대한 밑그림은 누군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부터 실천적 발걸음을 떼어야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이러한 밑그림을 실험할 모판을 모색하던중 “소수민족사회로서의 중국조선족사회”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혈통상의 동포사회인 중국조선족사회를 민족문제적 입장에서 접근할수있으나 보다 큰 인류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관점,“생명과 평화와 공동번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본다.왜냐하면 민족문제는 잘못 접근하게되면 자칫 협애한 민족주의적 입장에 빠져들게되어 자신을 겨누는 독화살이 되어 되돌아와 “아(我)-타(他) 공멸의 게임”으로 몰고갈수있기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잘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의 녹색공동체사회(GREEN-DREAM SOCIETY)”에 대한 밑그림을 실험할 모판으로서 중국조선족사회를 선택한이유는 다음과같은것이다.
첫째로,인류학적 관점에서 볼때 참새같이 작은새라할지라도 오장육부룰 다갖추고 있듯이 소수민족사회역시 해당거주국사회에서 그규모가 아주 작지만 그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은 오장육부를 다갖추고 있다는 점이다.중국조선족사회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중국주류사회와 “함께 따로(和而不同)”이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축소판과같기때문이다.
두 번째로,소수민족은 그 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지역적 공간을 매개로한 지역적 유대와 공동체적 유대가 비교적 강한편인데 여기서 중국조선족사회도 그예외가 아니다.중국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계획경제씨스템과 시장경제씨스템을 결합시킨 인류사의 새로운 실험인데,이 새로운 실험으로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씨스템이 지역을 매개로 어떻게 관철되며,지역성과 공동체성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씨스템속에서 어떻게 담보되어가는가를 잘 살펴볼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때문이다.
세 번째로,소수민족사회로서의 조선족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가 자치촌인데,사회주의 계획경제시절에 이 자치촌은 사회주의 집체경제와 촌민자치(풀뿌리 직접민주주의 정치)를 양날개로 해서 운영되어왔다.
그런데 개혁개방후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들어서 시장경제씨스템이 인입되면서 집체경제(공동체경제)가 파괴되면서 많은 혼란이 노정되었다.현재의 조선족사회는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시장경제체제로의 급속한 전환에 따른 이농현상과 가족분산등 기존의 전통적인 조선족사회가 점차 붕괴되는 정체성의 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심각한 배금주의, 이기주의 ,윤리의 실종,자포자기,열등감과 내부적 감정대립등 많은 자체적인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조선족 지성인들 스스로도 진단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세례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선족들역시 물질만능주의나 경제지상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하지만 자신들의 집체적 문화와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파괴와 마찬가지로 이를 다시 복구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댓가를 지불해야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할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일부의 선각적인 조선족 지성인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며 대안적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개혁개방 20년이 지나면서 농촌에서는 여러개촌이 합병되고 재조합되면서 촌민주체의 자발적인 민족집체경제가 복원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음을 볼수있다.
한때 계획경제씨스템과 집체경제씨스템의 혼성씨스템으로 그 명성을 자랑했던 이스라엘의 키부츠공동체모델은 쇠퇴,붕괴되고있다.그 대신에 계획경제씨스템과 집체(공동체)경제씨스템,협의 경제씨스템,시장경제씨스템의 역동적 결합모델로 평가되고있는 모샤브 공동체모델은 급속히 성장하는데 바로 이와 비슷한 유형을 보이고 있는듯하다.
이렇게 재조합,재정착되는 촌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계획경제씨스템과 촌민주체의 자발적 집체(공동체)경제 그리고 시장경제씨스템이 역동적으로 교호결합하는 맹아적 씨앗을 잉태하고 있음을 볼수있다.여기서 계획경제씨스템과 협의경제씨스템(이는 소규모의 자치촌지역단위에서는 공동체경제씨스템적 성격으로 나타나며, 광역적인 지역단위에서는 협의경제 씨스템적 성격이 강하게 작동될것으로 보여지는바 생명문화운동의 정착은 이를 굉장히 앞당길수 있으리라 판단되어진다) 그리고 시장경제씨스템의 3중적 교호결합의 작동과정을 볼수있으리라 생각되기때문이다.
네 번째로,중국조선족사회는 모국인 한국의 존재로 말미암아 해외노무(흔히 불법체류노무자라 일컫는)와 연해지구 대도시 진출(한국기업의 중국진출로 인하여 재중국 한국기업에의 취업과 궤를 함께하는)이 중국의 여타농촌보다 이농현상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중국조선족은 중국 연해도시(북경,천진,상해,심천,대련,청도,위해,연태,심양등)어디에도 전세계 어느나라에도(한국,일본,러시아,미국,유럽등) 노무와 유학으로 진출함으로 인해서 그 유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는 중국조선족의 핸드폰과 컴퓨터보급율에서 단적으로 잘알수있다.이러한 사회적 격류로 말미암아 중국조선족의 전통적 농촌사회가 많이 붕괴됨으로서 중국조선족사회의 해체붕괴론까지 나온바있다.그러나 이를 부정적인 각도에서만 보지말고,“생명과 평화”라는 화두와 “꿈의 녹색공동체사회(GREEN-DREAM SOCIETY)”라는 관점에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을 역동적으로 결합시키고 재조합한다는 관점에서 향도한다면 오히려 중국조선족이 도약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수있다고 보여진다.
지금 중국조선족사회는 농촌에서는 여러개촌이 합병,재조합되는 농촌형 집중촌/도농인접형 집중촌/대도시 신흥조선족 산업군체중심의 대도시형 집중촌(이는 문화언어적 동질성,경제합작의 편의성으로 인하여 중국진출 한국인 주거집단과 인접하는 특징을 보임)의 3가지 형태로 재조합되며 유목과 정착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노정하고 있음을 볼수있다.
다섯 번째로,김지하 선생은 “지구문명의 대전환기에 전인류 앞에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할 성배(聖杯)의 민족이 곧 한민족이며 그중에도 고난의 역사 속에서 창조적 경계상황 안에 있는 중국조선족”이라고 얘기했다.
중국조선족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역사의 희생물이었지만 전쟁의 포연에서도 살아남는 민들레처럼 꿋꿋이 살아남았다.중국조선족은 이렇게 살아남은자로서 어쩌면 생명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한 군체일 가능성이 높다. “죽어나는 것은 조조군사”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간의 민족적,정치적 긴장이 발생할 때 중국조선족들은 자의든 타의든 긴장체감도가 제일 민감할 수밖에 없음을 잘알고 있기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중국과 남/북조선 사이의 경계상황에서 겪게 되는 피동을 거꾸로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뒤집는 실천,즉 협애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인류보편가치인 생명평화 실현의 녹색운동과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 실현의 동아시아 공동체운동을 통해 새로운 문명창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을 보기때문이다.
필자는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도시와 농촌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며 재조합,재정착하는 가능성을 본다.필자는 지금 북경에의 녹색대학,테크노폴리스 조성과 연변에 녹색대학,에코폴리스(ECO-POLIS)를 조성하는 것을 연계통합시키는 구상을 해본바 있다. 현재는 역량이 안되어 연변에 있는 장백산맥의 깊은 골짜기를 오가며 150여만평의 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조성에 열을 올리며,이 에코폴리스안에 동북아 녹색대학을 세울 준비를 한걸음씩 한걸음씩 해가고 있다.그 시간이 10년,20년이 걸리면 어떤가? 세월이 흐르면 누군가 북경과 연변을 연계통합시키는 이구상을 실현할것이라 기대해본다.
필자가 이일에 열정을 기울이는 것은 중국의 심각한 환경문제는 중국만의 재앙이 아니라 동북아지역의 재앙일뿐만아니라 인류의 재앙이라고 보기때문이다.그러기에 생명과 평화를 생각하는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중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함께 힘을 모아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앞으로 세워질 북경의 테크노폴리스와 북경녹색대학,연변의 동북아녹색대학과 산(産)-학(學)-주(住)가 일체화되는 연변두레 에코폴리스가 동북아 그린르네상스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쓰임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북경과 연변으로 대표되는 도농통합 그리고 에코와 디지털이 결합되는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이다.
삼축(三軸)과 이축(二軸)의 역동적 결합에 대한 첨언
3.김 지하선생께서는 필자와의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생명운동과 공동체운동을 전개해나가는데 있어서 삼축(三軸)과 이축(二軸)의 역동적 결합”이라는 개념으로 명쾌하게 정리하였다.
공동체성과 개별체성그리고 협의체성,즉 계획경제 씨스템과 시장경제 씨스템 그리고 협의경제 씨스템이라는 삼축,솟다리가 세 개로 지탱될때 균형과 안정을 이루듯이 위 3개의 씨스템이,김 지하선생의 표현으로 말하면 삼축의 삼위일체적인 역동적 결합을 이룰때, 조직으로서는 최적을 이루는 상태일것이다.
이에대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한 사전 지식과도 같은 설명이 필요할 듯 싶어, 자크 아탈리와 이와다 마사유끼의 생각을 빌어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한다.
자크 아탈리(jacgues Attali)는 그의 저서『합리적 미치광이(Fraternites) 이세욱 譯, 서울: 중앙 M&B, 2001.』에서 “글로벌 경제화의 끝은 시장 자본주의의 극대화이다.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의 시작을 부추겼지만, 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는 순간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디지털 신경제와 글로벌화는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광기어린 형제애(우애)만이 21세기 새로운 유토피아의 출현을 앞당길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인류사의 유토피아(utopia)를 그것이 지향한 핵심적 목표를 중심으로 네 개의 큰 범주,곧 영생, 자유, 평등, 우애(형제애, 박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영생, 자유, 평등, 이 세 종류의 유토피아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종교는 영생을 약속하는 대가로 자유를 제한한다. 자유가 존재하는 곳에는 불평등과 불안정의 심화를 막을 수 없다. 자유를 기치로 삼고 있는 자본시장은 양심이나 공동체적 가치따위는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역으로 평등은 오로지 자유의 폐허위에서만 나타난다. 어쨌거나 그 유토피아들 가운데 어느것도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래에 혹자는 종교성의 회귀를 예언할 것이고, 혹자는 평등이나 자유를 향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이들은 공포나 이기주의나 질투심에 바탕을 둔 위의 세 유토피아 모두를 초월하여 각 자가 남을 행복하게 하는 데서 자기의 행복을 찾는 유토피아를 상상할 것이다. 그것을 우애의 유토피아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우애는 개인적인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결합시키는 유일한 이타적 유토피아이다.
오늘날에는 영생과 자유와 평등의 세유토피아가 실패함으로써, 우애 유토피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유토피아는 다른 모든 유토피아들이 그랬듯이 필연적이면서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애원리의 도래와 그 싹은 디지털경제 내부에서 돋보인다. 그것은 디지털경제 내부에서 서로가 상대의 성공을 필요로 하는 상황 즉 넌제로섬게임(Non-zerosum game)이나 윈윈 시츄에이션(win-win situation.호혜관계)이라는 상황들이다.
사람들은 개인적 이익이 전혀 걸려있지 않은데도 남에게 주는 기쁨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연대하는 제3섹터(The third sector)영역의 민간단체들, 생태환경 및 인권문제 등을 중심으로 지구촌 시민공동체를 형성시켜가려는 국제 NGO, NPO들의 급속한 증가를 보게 된다. 우애는 사람들이 도시생활의 고독을 거부하고 인간형제이든, 애완동물이든 타자를 열렬히 찾게 되면서 갈수록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될 가능성이 많다.
지식사회가 고도화될수록 형제애는 더욱 활짝 피어날 것이다. 지식은 그것을 평가해주고 나누어가질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식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 남과 자기를 비교하는 능력 그리고 남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잃지 않게 하는 우애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애란 자기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남의 중요성을 인정하는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생, 자유, 평등의 유토피아는 그 생성의 존재이유와 필연성이 있겠지만, 온전한 의미에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애의 유토피아 역시 산업 문명시대에서 정보문명 및 창조혁명시대로의 전환기에 생성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한 의미의 실현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는 그것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과 새로운 문명 전환의 성격규명에 기초하여 그에 따른 해결대안들을 마련해나가고 실천해나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문명전환기의 새로운 문명시대에 걸맞는 대안들을 마련해 나가지 못하면 그 사회는 혼란과 침체의 늪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기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와 미래학자들은 산업문명시대에서 정보문명, 창조문명시대로 이동하는 다중적 문명 전환기에 처해있다고들 말하고 있다. 벌써 탈정보화 창조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데이터를 주고 받는 속도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속도가 돈이 되고, 더 빠른 속도가 최고의 목표였다. 그러나 속도는 이제,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 이리하여 창조화시대에는 상상력(imagination) 을 통한 컨셉(concept)이 돈이 되고 기업의 목표가 된다. 창조화 사회에서는 남과 다른 생각(독창성과 개성)을 만들어내고 실천해야 성공할 수 있다. 창조화 사회에서는 컨셉(concept)이 기술과 속도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창조화 사회가 전면화되면, 가격경쟁 및 기능경쟁의 경제 법칙보다는 인간 중심과 생태를 앞세우는 문화법칙이 우세를 보이게 될 것이다. 특히 새롭게 불어오는 신자연주의, 생태주의의 영향으로 자연보호차원을 넘어서서 지구촌의 자연생태계와 조화, 공생하는 High-touch, High-Nature비지니스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되어진다. 이런 크레비즈(crebiz)시대에는 개성과 독창성이 가장 존중되는 가치로 작용할 것이다.앞으로 지구촌 시민사회형성발전이란 측면에서 특기할만한 사실이 현실화 될 것이다. '
그 동안은 유형자원에 대한 '양의 경제', '소유의 경제'가 주도했지만, 개성과 독창성, 문화가 중심이 되면서 '질의 경제', '즐거움의 경제'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생태와 자연을 중시하는 에코경제(eco-economics), High-Nature경제도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소위 그린 드림 소싸이어티(Green-Dream Society,꿈의 녹색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패러다임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거나 금새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완전한 형태의 창조화 사회와 크레비즈시대가 오기전에 15%의 크레비즈시대, 30%의 크레비즈시대, 60%의 크레비즈시대로 성큼성큼 바뀌게 될 것이다.
원시공산사회 이후 공동체와 공동체의 틈 사이에서 시장경제 시스템이 생겨났다. 그후 토지시장과 노동시장 그리고 신용 (자본)시장이 성립되고 급기야는 공동체가 해체되어버렸다. 또한, 러시아 자본주의의 해체로부터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이 생겨나 결국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미성숙한 자본주의가 해체되어버렸던 역사가 있었다.
현재 맹아적으로 생성, 발전되고 있는 공동체경제시스템(협의경제 씨스템) 역시 현존하는 두 시스템의 틈바구니 속에서 성장, 발전해나갈 것이다. 현대 경제사회의 생산구조에서 볼 때, GNP의 공적부문은 계획경제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으며 GNP의 사적부문은 시장경제 시스템이 작동된다. 그런데 반하여 비화폐적 생산부문인 공동체 경제 영역과 자연계 영역은 협의경제씨스템(생태적 공동체경제 시스템)과 생명경제문화운동에 의해 추동되고 대변 될것이다.
이와다 마사유키(岩田昌征)는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우애'는 인간해방의 목표이며 동시에 심오한 경제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岩田昌征, 現代社會主義の新地平 日本評會社, 1983.P.157).
“18세기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이룩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시장경제 시스템이다. 근대 유럽시민사회의 '자유로운 경제인' 즉 호모에코노믹스는 그후 시장경제 시스템의 이념적 인간상이 되었다. 그리고 '평등'을 실현하는 계획경제 시스템은 20세기 러시아 혁명과 중국혁명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애'를 담당하는 공동체경제 시스템은 아직 인류사적인 규모의 사회경제혁명을 이룩하지 못했다. 기존의 시장경제 시스템이나 계획경제 시스템과 비교하면, 실제로 보편적 현실성으로 존재해 본적이 없는 경제 시스템이다. 다만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이전에 '자유'와 '평등'을지향하는 사회경제운동이 었었던 것처럼, '우애'의 경우도 아직 경제시스템이나 사회경제제도로 정착되지는 못했지만 각 국가와 지역마다 맹아적인 사회경제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역동적인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는 구소련의 영향을 받아 계획경제시스템을 개발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계획경제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면서 이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동자들의 '자유노동조합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은 서방진영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유'가아닌 '연대', 즉 '노동자 자주관리 공화국'을 내걸었다. '연대 (Solidarity)'가 '우애(Fraternity)'와 같은 맥락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이후 이군돌기 (異軍突起: 새로운 세력이 갑자기 출현함)의 향진기업 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역 공동체 기업운동인 향진기업운동은, 계획경제씨스템과 시장경제 시스템을 혼융, 조화시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 그리고 소성진(小城鎭) 정책과 결합하여 민관합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경제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이러한 향진기업운동은 지역촌민공동체 정치구조인 촌민위원회와 결합되어 운영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개혁개방후에 나타나 발전한 향진기업의 형태는 경제씨스템적으로 볼때 다종다양한 형태를 띠는데,철저한 계획(집체)경제중심의 모델,시장경제씨스템중심의 모델,이두개의 혼융결합모델로 분류해볼수있다.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권에서는 정부-기업-시민사회라는 3중적 분립구도 하에서, 시민사회의 영역을 담보하는 제3섹터 (The Third sector)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 제3섹터 운동은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의 사회정치부문중심의 NGO (Non-government organization, 비 정부적 민간단체)운동과 사회경제 부문중심의 NPO (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공익사업체)운동으로 크게 대별된다.
특히 경제민주주의와 소유권의 대중적 확산전략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노동자 생산협동조합 (노동자공동소유 주식회사) 운동과 종업원 주식소유제도 (ESOP)운동은 이미 오랜 기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침체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체는 한때 세계적 대기업과도 어깨를 견주는 정도까지 발전한 적이 있다.요즘은 노동자생산협동조합운동의 경직성을 보완하기위하여 시장경제씨스템과 협의경제씨스템을 결합시키는 협동조합형 주식회사운동,이스라엘의 모샤브공동체모델등이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 주목할 일은 세계적인 사회운동으로 자리잡아나가고 있는 녹색 운동이다. 스웨덴
의 경제학자 Mato Friberg와 Bjorn Hettne는 세계적인 '녹색운동(綠色運動)'을 '靑(시장
경제, 자유, 자본주의)'과 '赤(계획경제, 평등,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선택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가 항상 경제개발과정에 있어서 유일한 사회적 주체이다”라는 개발주류파적 사고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녹색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간 또는 인간의 작은 공동체가 제일의 행위체이고 국가는 이 궁극의 행위체의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보다는 세계의 부족이나 민족단위 또는 지역단위가 보다 기본적인 사회경제개발의 단위라는 것이다.
녹색운동의 접근을 개발에 적용할 때, 녹색의 개발 주체들은 인간의 욕구에 그 기본을 두면서 '문화적 동일성, 자립, 사회정의, 생태계의 균형'이라는 가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운동의 목적은 국가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보다 좋게 충족시키고 생태계와 조화로운 삶을 살게 하는데 있어서, 국가를 훌륭한 도구로 기능케 하려는 것이다.
전술한 사회경제운동을 살펴볼 때, 이 운동들은 계획경제 시스템이나 시장 경제시스템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면서 대안적 형태로 표출되며 성장발전되어가고 있다. 이 시스템은 우애의 원리, 공동체의 원리, 생명계의 원리를 기초로 해서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개념화시켜, 생태적 협동공동체경제시스템 (약칭 공동체경제시스템)으로 명명한 바 있다.
헤이젤 핸더슨(Hazel Henderson)은 이를 사회적 협동대항경제(social co-operatve counter-EConomy)로 명명하면서, 그 성격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1995, P.209.)
1. 대항매체(Counter media)의 성장
2. 새로운 시장의 대두 3.비영리적 교역관계의 확대
4. 가정경제와 여성에 대한 재 평가(시장가치,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서의 경제)
5. 대체기술(alternative technology), 생태적 적정기술의 발달
6. 이웃관계와 공동체적 신뢰관계에 기초한 경제활동
7.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자주관리의 요구
8. 민족권리의 확대주장
9. 생태운동(Ecology)과 여성운동의 확대
10.시민운동(NGO, NPO)단체간의 연대
11.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이와다 마사유끼(岩田昌征)는 경제체제를 비교연구하여, 시장, 계획, 협의 경제
시스템이라는 세 가지 시스템을 사회생활의 13가지 차원에 대응시켜 각각의 특성을 고
찰한바 있다.( 공생의 사회생명의 경제, 1995, P.116.) 그는 다음의 <표>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것을 통해 기존의 시장경제시스템과 계획경제시스템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경제
씨스템으로서 협의경제시스템이 갖는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표>시장, 계획, 협의 시스템의 특성
특성 유 형
시장시스템
계획시스템
협의시스템
1)경제인류학
2)근대적 가치
3)경제 메커니즘
4)소유형태
5)경영방식
6)분배양식
7)인간유형
8)책임과권리소재
9)사회문제
10)인간관계
11)사회구조
12)정치적결정
13)가족관계(중심)
교환
자유
시장
사적소유
사적경영
임금,이윤배분
극대화 타입
개인
불만
원자화
계급사회
다수결
부부관계
재분배
평등
계획
국가소유
국가경영
고정임금제
표준화 타입
집단
불만
위계화
계층사회
집단지도제
부자관계
상호부조
우애
제3메커니즘
사회적, 공동체적소유
자주관리
소득분배협의
적정화 타입
공동
불화
상호규제
관계사회
다수결
형제자매관계
14)대표국가/집단
15)총칭
미국, 영국
개인주의
(구)소련,군대집단
전체주의
(구)유고,몬드라곤그룹
연대(공동체)주의
<표>에서 보는 바와같이 시장경제시스템, 계획경제시스템, 협의(협동)경제시스템은 각각
의 장단점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나카무라 히라시(中村尙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공
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1995, P.112-115).
먼저 시장경제시스템은 반복재생산된 노동생산물을 생산단체가 직접 소비하지 않고 다른
사회집단과 교환하는데 있어 가장 효율적이다. 시장시스템에서는 각각의 경제주체가 교환
하는 상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시장에서 얻고,시장밖에서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 경쟁을 하
지 않을 수 없으며, 경쟁을 통하여 점차 효율을 높이는 경제시스템이다. 시장의 수요에 따
라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고객의 욕구수준에 따라 상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가장 유효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겨야 생산의 질과 양이 확보된다는 것은, 동시에 경쟁에서 패배하
여 시장에서 축출된 생산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하기에 이 시장시스템
과 교환양식은 “생활의 근거를 지역이나 공동체에 둔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적 약자이거나
패배자일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활인들과 서로
도우며 풍요로운 생활을 지속한다”는 지역자립의 기본이념이나 공동체의 이념과는 대립한
다. 사람들가운데는 아이와 노약자들이 있고,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완전할 수는
없으며 몸과 마음 어딘가에는 장애를 가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의 모든 영역을
시장경제시스템만으로 채울수는 없는것이다.
두번째로 계획경제시스템은, 단일 목적을 위해 집단의 구성원을 통합하는 양식으로서는 가장 뛰어나다. 이 시스템은 집단내부의 경쟁관계를 억제함으로써 내부의 화합을 이루는 동시에 외부조직들과는 치열하게 경쟁한다. 일본의 기업들은 각각 회사내부에서는 화합을 중시하고 회사밖의 시장에서는 격렬한 경쟁을 벌이면서 효율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해왔다. 일본 기업들은 회사라는 조직에 계획 시스템과 시장 시스템을 조화시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왔던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일본식 기업경영을 배우려 했던 것은 정치적인 제스츠어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상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부 세력과 싸우면서도 내적으로 가장 통합과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군대조직인데, 전체주의적인 국가들이 군대조직 모델을 채용하는 것은 군대조직의 이러한 성격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획 시스템은 집단 자체의 효율성은 높지만 구성원의 창발성과 자유를 억압한다. 따라서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점점 더 통제나 관리가 곤란해진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경제활동을 온통 계획시스템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억지로 계획 시스템을 이식하려고 하면 그 사회의 규모에 비례하여 급속하게 효율이 떨어져 집단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연유 때문에 소련의 페레스트로아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구 동독과 북한보다 규모가 큰 소련과 중국이 더 열심히 시장과 계획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조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세번째로 협의(협동)시스템은 효율이나 통합이라는 점에서 시장이나 계획시스템보다 열등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서는 자립한 경제단위가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 시스템의 가격과 계획시스템의 규격에 대응하여, 협의(협동)시스템은 직접적인 인격을 통한 자주관리와 민주주의에 의해 유지된다.
직접적인 인격을 통한 자주관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각각의 경제단위가 서로 끈질기게 자주적으로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통하여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교섭할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정상적인 조건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필요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면서 순환성의 유지와 다양성의 존중 그리고 관계성의 창출을 중시하는 협의시스템이 강한 지속성을 발휘한다.
설득과 협의를 거듭해서 얻은 합의가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좁은 의미의 경제와 넓은 의미의 경제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단절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협의(협동)시스템이 우월한 지역 공동체는 각 종 외부의 경제력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 이것이 협의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이다.
생산의 흐름과 극대이윤의 추구가 아니라 경제외적 분야를 포함한 전 인격적인 생명활동을 충족시키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500년간 아시아-아프리카의 수많은 원주민들이 외부의 식민지 지배세력에게 패배했던 것이다.
지역자원을 활용하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이 지역주민의 생활필수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유고슬라비아처럼 외국과의 경쟁에서 패해 부채가 누적되기 쉽상이다.협의경제시스템은 대체로 지역단위나 특정공동체를 매개로 운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속한 지역주민이나 공동체구성원들은 의존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가는데 반하여 , 경제생활만은 지역생활단위나 공동체 생활단위에서 분리되어 상품적인 경쟁관계아래 놓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협의(협동)경제시스템의 약점이자 딜렘마이다.
이러한 약점과 딜렘마속에서도 협의경제시스템은 우애유토피아에 대한 대중적 갈망에 부응하여, 소유의 양극화 위기, 지구생태계의 위기, 인간삶의 파편화 위기 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경제 시스템으로 정착되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협의경제시스템(생태적 협동공동체경제시스템)을 어떻게 인류사적 규모의 사회경제시스템으로 성장발전시켜 나가며, 생태적 협동공동체 사회(인류사적 규모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생명사회,순환사회,녹색사회등 다양한 이름으로 명명될것이다)를 건설해나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시장, 계획 그리고 협의 경제시스템의 공존과 혼융 그리고 역동적 조화속에서 협의 경제시스템이 지역단위나 국가단위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해나가도록 추동하는 실천적 운동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이전에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경제운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함께 잘사는 우애의 유토피아에 착근하고 있는 협의 경제시스템 역시, 각 지역 및 국가마다의 고유한 사회경제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21세기에는 그 운동이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그 단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 조합그룹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운동 및 협동조합형 주식회사운동,이스라엘의 모샤브공동체운동, 중국의 지역 공동체형 소유권제도와 향진기업운동, 선진자본주의 국가권의 제3섹터 (NGO, NPO)운동과 지구촌시민사회운동, 녹색생활협동조합운동과 녹색사회정치운동 및 생태공동체운동 등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운동들이 보다 구체화된 발전전망을 가지려면, 이러한 운동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대안사회모델과 이념을 개념화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경제운동이 추구하는 대안 사회모델의 이념적 범주를 '생태적 협동 공동체사회'로 개념화 해본바있다.
이 생태적 협동 공동체사회란, "기존의 사회가 순환성. 다양성. 관계성의 생태적 원리,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적 원리, 의미와 가치회복의 정신문명중시의 원리, 참여민주주의원리에 입각해서 변혁되고 재구조화(창조)되고, 시장, 계획 그리고 협의시스템의 공존과 혼융을 통한 역동적 조화속에서 협의경제시스템이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사회이다."라고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라는 대안(代案)적 이념이 국가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실시된 적은 없지만, 소유의 양극화 위기, 지구생태계의 위기, 인간삶의 파편화 위기를 해결해보려는 사회경제적 운동속에서 생성 발전되어왔고 그추세는 앞으로 더 왕성하게 추진될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21세기 생명과 평화의 가치,사회주의적 가치 연대블럭이 지향해야할 대안적
사회전망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든 사회주의 체제든간에 시민사회의 제3섹터(The
third sector)영역에서 협의경제 씨스템의 재구축을 통한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적
전망일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인류문명발전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으로 평가되기도하는 중국사회
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주의의 이행과 건설과정에서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패러다임의
합리적핵심과 접목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에로의 이행과 건설의 두가지 전제가 생산력발전과 인민의 자주적 능력고양이라할때, 생산력발전이 일정정도에 이르러 사회주의 이행과 건설의 수준을 높이려면 두번째 전제인 인민의 자주적능력의 고양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때 인민의 자주적 능력고양과 사회주의적 덕성의 자발적함양은 사회주의적 시민사회의 성장과 협의경제 시스템의 구축 및 발전에서 찿아질수밖에 없을 것이다.이 시점에서의 중국사회주의는 협의 경제시스템을 하나의 중심으로 하고(一個中心) 시장경제시스템과 계획경제시스템을 양날개 기본점(兩個基本点)으로 하는 전략을 중국사회주의 발전제고전략으로 숙고해보아야할것이다
다음으로 김 지하선생은 운동과 경영의 과정은 끊임없이 서로다른 대립물(二軸)간의 모순이 생기는데,이 모순을 대립물로만 보지말고 二軸간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통해서 모순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계기로 삼아야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역설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사람의 몸에서 열이 나면 동양에서는 담요나 옷으로 덮어서 따뜻하게 해주지만,서양에서는 옷을 벗기고 찬물이나 얼음으로 식혀준다.
알콜은 일반적으로 흥분제로 알고 있지만 흥분제일수도 반면에 진정제일수도 있다.알콜은 잠깐동안에는 인간의 억제력을 약화시킴으로서 흥분제 역할을 하지만,화학적으로 보자면 강력한 진정제이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
이와같이 두가지의 상호대립되는 사고나 가정,법칙등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우리는 역설이라고 부른다.그런데 이 역설은 모순되고 서로 배척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이들은 동시에 존재하며 작용한다.이러한 역설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거의 일상적인 현상이 되고있다.
역설적인 현상이 지배하는데 있어서 비즈니스세계나 사회운동조직도 매니지먼트라는 차원에서 예외가 아니다.우리는 세계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이어야 하고,어떤방식으로는 작아야하면서 다른방식으로는 커야하며,어떤때는 중앙집중화되어야하면서 또 어떤때는 탈집중화되어야할필요가 있다.
기업이든 사회운동조직이든 계획에 의하여 움직여야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연성에 대처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며,차별화되어야함과 동시에 통합되어져야 하는것이다.요컨대 어떤조직이든간에 상반된것들사이에서 어느하나를 선택하려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동시에 추진하거나 역동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찿아야할것이다.
브리콜라지(bricolage)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도상의 나그네처럼.......
4.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과 조화! 이론적으로는 참으로 옳은말이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천의 현장에서는 그게 어디 쉬운가?
평균대위의 체조선수가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온신경을 집중하는 떨림의 무게중심을 잡아야한다.떨림의 무게중심을 잡는 모습이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과 조화의 형상이라 할것이다.평균대에서 한번 잘못 삐끗하여 발을 헛디디거나 균형을 못잡으면 그대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질수있는것과 같이 우리네의 인간삶과 비즈니스 그리고 사회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역설과 격동이 지배하는 복잡계적 현실에서는, 떨림의 무게중심과도 같은 중용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과 조화를 이루어 낼수있을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모든 것의 첫번째는 사람이라는데 귀일된다.곧 영성과 경제성 그리고 운동성의 역동적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리더쉽(leadership)과 팔로워십(followership)이 결합되어야 공동체운동도 생명운동도 성공할수 있다는 얘기이다.
두번째로는 자신에게 맞는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배합이라는 전략적 유연성일것이다.남이 성공한 모델과 전략이 나에게는 치명적인 실패를 안겨다줄수 있는것이며,남에게 실패한 모델과 전략이 나에게는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줄수도 있는것이다.아무리 훌륭한 성공모델이나성공전략도 상황이 바뀌면 실패할수있기 때문에 상황전개와 추이에 따라 성공모델이나 성공전략 또한 지속적으로 재평가되어야할것이다.
역설과 격동이 지배하는 복잡계적 현실에서, 경영자나 공동체의 지도자는 전략적 유연성을 위하여 브리콜라지(bricolage)를 해나가는 방법외에는 만병통치약같은 처방전은 없을것이다.브리콜라지는 매일매일의 경험으로부터 지식을 축적하는 원시사회의 지식축적과정을 말한다.원시인들은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에서 자라는 식용식물과 꽃들을 계속 실험함으로서 마침내 자신들의 병을 치료하기위한 올바른 제조법을 발견하였다.
브리콜라지를 행하는 지도자들이나 경영자들은 절대 고정된 패러다임에 매이지도 않으며 고정된 경영방식만을 채택하지 않는다.이런 사람들은 수행하고 있는 운영방식이나 경영방식의 개선된 형태를 찿아내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관련된 변수들을 만지작 거린다.
즉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 떨림의 무게중심을 잡기위해서 복잡계적 현실과 관련된 변수들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면서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를 만들어나가는것이다.
김 지하선생은 위글에서 중국조선족의 딜레마 즉 자본주의적 도시화와 아직도 공동체적인 농촌생활의 분열적 이중성에 대한 생명창조적 이중메시지의 결정적 해답을 얻으려면 단순한 '녹색'을 '생명'으로 전면 개념수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충고하고있다.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조선족사회의 “녹색경제기반구축과 초록민족 문화재구성 전략”이나 필자의 “시장,계획,협의경제씨스템의 역동적 혼융과 조화의 공동체 모델과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 대안이념에 대한 탐색 이에 기초한 연변두레에코폴리스 조성 실험”모두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와도 같은 시도인것이다.이론영역에서는 본질과 원형 및 목표를 제시할수있지만, 그에 도달하기위한 실천영역에서는 복잡계적 현실과 관련된 변수들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면서 목표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징검다리를 필요로 하는것이다.
오늘 우리시대에 주어진 문명전환의 생명운동도 녹색(공동체)운동도 하늘에서 뚝떨어지는 지름길은 없는것이다. 삼축과 이축의 역동적 결합!.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징검다리를 만들어나가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도상의 나그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것외에는 실천적 왕도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양력 7월 14일
장백산 자락 연변두레마을에서
임 진 철 모심
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 조성 기획안
목 차
1.조성 취지와 목적.
2.조성 추진배경과 그 의의.
3.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 개요
4.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조성계획과 방식.
5.연변두레마을 토지이용 계획
1. 조성 취지와 목적.
연변두레마을은 1997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인 연길시에서 45km 떨어진 연화촌지역에 120만평의 토지를 마련하면서 설립되었다.
초기3년(1997-1999년)이 연변두레마을의 인프라를구축하는기간이었다면,지난3년(2000-2002년)은 연변두레마을의 생활,산업의 기초를 다지는 기간이었다고 볼수 있다.이러한 발전과정을 거쳐 연변두레마을은 이제 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라는 개념하에서 마스터플랜을 세우며 추구하는바를 가시적으로 실현하려는 도상에 놓여있다.
연변두레마을은 “ 사람과 땅을 살리는 두레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나눔과 섬김을 실현하려는 21세기형 녹색사회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번영과 발전의 도상에 있는 연변두레마을은 이제 産-學-住-休가 일체화된 에코폴리스 건설을 통하여 연변지역사회발전과 21세기 녹색문명의 창출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2. 조성 추진배경과 그 의의.
오늘 21세기 지구촌은 정보화사회의 파고를 넘어 이제 에코(ECO)와 디지털(DIGITAL)이 융합되는 하이터치(HIGH-TOUCH)형 녹색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산업사회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계는 휘황찬란한 발전을 가져온 반면 파괴된 지구촌의 생태기반과 인류의 생존환경은 미래 인류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인류 삶의 질은 자연과 환경에 달려있다. 이제 인류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면서까지 눈앞의 경제이익과 일시적인 향락을 취하는 행위를 자제하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은 인류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바, 그 길은 생태환경을 보존하면서 친환경적인 녹색산업을 발전시키는데서 찿아져야할것이다. 이일이야말로 인류 생존공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명전환적인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지구촌 방방곡곡에서는 삽과 곡괭이로 상징되는 전통농업과 트랙터와 대규모 영농으로 상징되는 기계화 농업을 뒤로하면서 새로운 녹색산업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녹색대안의 철학으로 무장한 선각자들은 고부가가치 생태농업과 생태마을/생태도시를 기반으로 문화예술(CT)/디지털(IT)/바이오(BT)가 융합하는 녹색경제를 일구어 나가는데 열정을 쏟아 붇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중국도 개혁개방 초기의 몰골사나운 반생태적인 개발단계를 벗어나, 바야흐로 인류와 자연이 조화되는 친환경적인 사회를 지향하여 농업/에너지/ 환경/식품/ 건설 등 각분야에서 녹색산업의 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자치주역시 이러한 시대적 추이와 사회적인 풍조에 부응하여, 푸른 연변자치주를 건설해야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 하지않을수없다.
연변자치주는 중국조선족의 최대 집거지 이며 정치적 수부이기도하다.그러나 현재의 연변자치주는 개혁개방의 몸살을 가장 많이 앓고있는 지역이다.전통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다가 개혁개방의 급류를 타고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나가고 한중수교 이후에는 코리안 드림을 타고 노동 인구들이 한국으로 빠져나갔다.
이럼으로써 연변자치주는 농업의 다각화를 토대로한 자생적인 산업발전보다는 한국인등의 백두산 관광붐으로 인한 관광경제와 출국노무자의 송금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러하다 보니 이로 인한 부정적인 현상은 전통적인 미풍양속은 해체되고 소비풍조의 만연으로 인한 퇴폐향락의 수준은 위험수위에 이르게 되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면 연변자치주가 잘 살수 있는 길은 없는 것 인가? 아니다.연변자치주의 지경학적 여건과 역사문화적 토대를 21세기적으로 재조합 시키고 재창조하면 될 것 인바,바로 그것은 고부가가치형 생태농업에 기반한 녹색산업과 문화관광업,그리고 물류의 제약을 덜받는 IT산업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생산기반 없이 관광업을 발전시키면 그 지역은 일시적으로 흥청거릴수는 있지만 건강하고 생산적인 활력과 정신문화적 기반이 고갈되어 그 도시는 흉측스러운 몰골로 죽어버릴 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연변두레마을은 연변두레마을의 120여만평(한국평단위)에 생태마을과 문화관광기지-대학캠퍼스-생태농업/녹색산업 기지가 일체화된,즉 産-學-住-休 일체형의 에코폴리스(ECO-POLIS)를 건설함으로써, 연변지역의 녹색경제발전에 기여하는동시에 동북아 그린 르네상스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장원한 관점에서 볼 때 두레마을 집단 차원에서만 진행해나갈 문제이기보다는 민관협동의 제3섹터방식과 다자합작 방식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국내외의 많은 뜻있는 기업 및 NGO들과 함께해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이프로젝트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성질의것이 아니라서 시간이야 다소 걸리겠지만 다음과 같은 연유로해서 전도유망한 발전전망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는 연변과 동북3성의 조선족은 전통적으로 농업과 고유의 식품산업이 발전해온 토대가 있으므로 기술과 자금이 인입되는 중외 합작을 통하여, 이를 고부가가치형 생태농업과 바이오 식품산업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맛과 브랜드의 중국화/세계화를 도모해나간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스사태를 계기로 김치와 된장/청국장이 중국과 동남아지역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인기식품이 되어가고 있는 시장기초를 토대로, 우리의 전통식품을 기능성 식품화하여 13억 중국인의 입맛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해나간다면 가히 승산이 있을것이다.
둘째로 예로부터 중국조선족은 교육과 문화를 중시했기에 지금도 여전히 연변은 지식문화 잠재력이 대단히 높은 곳 이다.이러한 지식문화기반을 하이터치형(HIGH-TOUCH)문화/관광/써비스 산업 그리고 하이테크형 IT산업인력풀로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중국중앙정부의 “동북 대개발 프로젝트” . “철의 실크로드시대 개막” 과 연계되어 “백두산과 연화촌 에코밸리 ”를 매개로 연변자치주는 하이터치형 생태문화관광도시로 재탄생 할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수전농업과 선진교육문화수준으로 선진민족으로 칭찬 받던 그 이전의 명성을 되찿고, 21세기의 녹색문화경제민족으로서 재 탄생하여 중국대륙과 세계속에서 녹색기수와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계속의 중국조선족으로서 자리 매김 하자는 것이다.
연변자치주와 중국조선족사회의 환경문제와 녹색산업에 대한 인식은 전국적 차원에서 볼 때 비교적 앞서있다고 볼수있다. 그래서 생태환경보호사업과 녹색산업 개발에서도 일정한 공력을 들여왔었다. 그러나 지난 시기 개혁개방의 동풍을 타고 단순 경제성장이란 기치아래 자연과 자원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수탈했던 오류를 범해왔던 것 또한 자인하지않을수 없을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대가 남긴 삶의 터전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와 자연의 조화 그리고 생태자연공간과 최첨단 과학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녹색산업을 창출시켜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나가야 할것이다.
이는 산업사회의 무한경쟁속에서 찌들린 삶을 영위해 갈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메마른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것이며,도.농간 분절된 경제를 도.농간 통합경제로 전환시키는것이며, 이후 노령화사회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것이다.
더나아가 새로운 녹색산업 기반구축과 녹색문화민족으로의 재도약 이론을 정립함은 21세기 초입의 중국조선족 발전사에 있어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게할 뿐만아니라, 중국녹색산업발전과 인류문명발전사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남길수있을것이다.
3.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 개요
1) 위치와 입지조건:
* 연변자치주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지역.
* 연길시 중심에서 45km거리이며,승용차로 1시간 거리.
2)에코폴리스(ECO-POLIS)의 개념.
産(산업기지)-學(교육기지)-住(주거 단지)-休(휴양단지) 일체형의 생태문명촌.
3)취지와 목적
*친환경마을 대안모델 창조.
*푸른 연변 조성과 지역 녹색경제발전 기여.
*동북아 그린르네상스운동의 거점 조성.
4)비전(VISION)
*21세기 녹색문명의 理想 伴侶.
*녹색산업 창조와 연구개발 중심.
*산(産)-학(學)-주(住)-휴(休) 일체형 생태문명촌.
5)조성원칙(PRINCIPLE)
*최소개발과 최대 보존의 원칙
*지속가능한 녹색문명 창조의 원칙
*자연과 인간과 지역사회가 더블어 함께하는 공동체적 원칙
6)조성의 기대효과.
*연변두레마을 에코폴리스를 핵심으로 연화촌지역전체의 에코밸리(ECO-VALLY)화.
*연변자치주 연길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수민족의 모델적인 생태관광도시와 녹색산업도시로 발전하는데 기폭제 역할.
4.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조성계획과 방식.
1) 조성의 단계별 계획(총조성기간:10년)
*제1단계 조성계획기간(2004.1~2006.12)
가) 복합생활마을/두레마을공동체 생태영성단지/유기농업단지 기본윤곽 완성.
나) 녹색대학과 산학협동단지/녹색산업단지/생태.휴양.치유단지 인프라 구축.
다) 연변두레 에코폴리스 마스터플랜완성 및 생태개발특구 지정 완료
*제2단계 조성계획기간(2007.1~2009.12)
라) 녹색대학/산학협동단지/녹색산업단지개발 착수
마) 생태.휴양.치유단지 일부계획 개발착수
*제3단계 조성계획기간(2010.1~2014.12)
바) 생태.휴양.치유단지 본격착수 및 완성
사) 앞의 제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으로 연변두레 에코폴리스 기본사업완성.
2)조성방식과 합작개발방식
가)연변두레 에코폴리스 150만평(산을 제외한 실제 개발 이용부지는 120만평)을 자연수목원 및 생태공원화한다는 생각으로 식재 및 조경사업에 투자하면서, 생태관광(먹거리,볼거리,놀거리 제공등)/교육연수(프로그램운영과 숙박시설 대여등)사업으로 자립과 재투자의 기틀 마련해나감.
나)어설픈 합작투자유치나 계획성없는 개발은 난개발과 불협화음만 일으킬소지가 있으므로,두레마을이 재정능력이 담보되거나 확실한 투자주체가 나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술한바와 같은 자립을 기초로 조경사업 및 생태환경조성사업에만 주력하며 서두르지않는 것을 원칙으로 함(왜냐하면 섣부른 개발보다는 보존 그자체가 부가가치가 훨씬 높으며,이후 제대로된 합작투자자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일이 되기때문이다).
다)NPO적 마인드와 철학 그리고 자금,노하우등을 갖춘 합작주체가 나설경우,합작주체와의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거쳐 차분하게 추진해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함.
5.연변두레마을 토지이용 계획
1)복합 생활마을(업무단지,자립마을등 제시설기능이 연계/복합된 형태)
가) 업무 및 교육연수 단지(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업무시설,교육연수용 숙소등)
나) 자립마을(마을 일꾼 및 정주자들의 주택)
다) 청소년/학생 그린캠프장
라) 건강마을단지(실버 펜션,휴양펜션,요양원등)
마) 문화관광시설(주말농장,야생화식물원,야생 동물원,승마장등)
바) 근린 편의시설(식당,찜질방,매점,헬스클럽등)
2)두레마을 공동체 생태영성단지
가) 연변두레마을 공동체 본부
나) 생태영성수련원
다) 그린 게스트 하우스
3)연변 동북아 녹색대학 및 녹색 산학협동 연구단지
가)캠퍼스와 부속기관(녹색산업개발원,여성개발원,생태농업 연구소등)
나)녹색 산학협동 연구단지(국내외 대학교 및 기업그룹과 합작)
다)녹색대안학교(유치원,소학교,중고등학교):한국의 대안학교와 합작
라)유기농 실험 및 시범농장(국내외 농과대학 및 기업과 합작)
4)유기농업단지
5)녹색산업단지(개발구)
6)생태.휴양. 치유단지(자연 생태공원과 유기적 연계)
가)생태휴양공원과 산림욕장(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전체를 자연수목원화하고,생태휴양공원집중지구 획정하여 생태체험장화)
나)생태산촌마을과 생태농업시범구(약초 및 허브재배등)
다)자연치유센터(자연의학 병원,요양원등):국내외 유명자연의학 병원과 합작
라)에코 컨벤션 센터(회의실,생태도서관과 박물관,수영장,리조트등):국내외 유명 개발회사와 합작
김 지 하 (시 인,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하나: 21세기 조선 조선족의 녹색 민족문화경제 기반구축 전략 등에 관한 훈수 몇 마디.
서기 2004년 (단기 4337년) 유월 남한 경기도 일산에서 중국조선족 인사인 이 동춘 선생(차이나코리안 닷컴 집행회장)을 만나 중국 조선족의 현재상황과 녹색경제발전에로의 출로와 소망에 대해 간략한 전언을 들었고, 그에 관한 임 진철 선생(연변두레 에코폴리스 본부장,중앙민족대 객좌교수)의 논문 약간을 읽었다.
그 뒤 그분들의 청에 따라 8월에 열릴 심포지움에서 제기할 글과 몇 마디 도움말, 또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훈수 몇 마디를 적어보내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진정한 연대와 상호관계는 이글 마지막에 쓰여진 내년의 예정행사를 통해서라야 비로소 실현되리라고 생각한다.
녹색에 관하여
1.
중국조선족 대표의 전언과 임진철교수의 논문을 통해서 나는 현재 중국조선족의 미래계획의 핵심이 ‘녹색문화경제사회’ 건설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 계획은 목전에 박두한 중국전체사회의 미래에 연결될 것 같다.
중국전체 사회의 생태계오염과 생명파괴는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조선족의 녹색계획은 시기적절하고 예견성있는 계획인 듯 하다. 다만 여기서 한마디 훈수를 두고 싶은 것은 그 계획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보다 더 전문적인 예상과 견해에 기초해야한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할 중국과 조선의 ‘녹색’이 이미 수 십년 전에 시작되고 경험된바있는 유렵과 남한의 이른바 ‘녹색’을 처음부터 반복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유럽과 남한의 ‘녹색’은 공공경제학(公共經濟學)과 공해론(公害論)에서 시작하여 환경사회학(環境社會學)과 환경오염론을 거쳐 근본생태학과 사회생태학의 지구생태계 파괴론에 이르렀고 벌써 여러해 전부터 현실해석과 견해의 근본적 차원변화가 요구되기 시작하여 오늘에는 동서양철학과 사상전반 및 과학에 있어서 새로운 생명학(生命學) 성립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녹색도 아니고 무지개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평화’라는 명제 안에 압축된 새로운 철학과학과 새 문명창조의 요구로 변경되고 있다.
새로운 생명학은 물론 환경론이나 생태학의 경험을 참고할 것이나 도리어 그것은 유럽사상의 비주류에 해당하는 생명과학과 생성철학을 흡수하면서 동아시아와 한국사상의 전통 가운데 풍부하게 내장되어있는 생성과 생명, 과정과 변화의 철학 및 사상을 현대화함으로서 동아시아만 아니라 지구전체를 결정적으로 구출할 수 있는 ‘우주생명학’을 창조하고 그에 따른 참다운 삶과 평화의 새 문명을 건설하고자 한다.
나는 그 씨앗이 동아시아 특히 조선과 중국의 전통가운데에 풍부하게 숨어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조선과 중국의 이중적 삶과 사유와 감각을 지닌 중국조선족의 ‘녹색’이 이미 그 첫출발에서부터 생명학, 또는 ‘생명과 평화의 길’. 또는 새로운 문명창조의 선구적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감당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중국과 조선 사이의 경계상황에서 겪게 되는 피동을 거꾸로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뒤집는 실천과 공부와 논의를 이루어 나가주기를 바란다.
2.
생성과 생명, 과정과 변화의 사상과 과학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생태학보다는 오히려 혼돈이론(카오스과학과 철학 및 미학)안에 그 정수가 집결되어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통문화 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혼돈과 생명의 이론이 유.불.선 및 각종의 잡학(雜學-예컨대 풍수학)안에까지도 관통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들은 유교와 봉건적 관료지식인들에 의해 유럽의 존재론이나 실체론보다 더 고차적이고 유연한 코스몰로지에 의해 교묘하게 ‘봉합’되어버렸다.
이 봉합을 풀고 그 안에 사장되어있는 혼돈과 생명의 풍요한 전통을 인류 앞에 드러내기 위해서 중국 조선족이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아시아 고대문예부흥을 일으키는 일이다. 중국조선족이 그 일을 앞장 서 하려면 남북한 동포 및 지식인과 재일, 재로, 재미, 재유럽 등 모든 동포와 함께 중국인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민족들을 다같이 참여시켜야 한다. 왜 하필 한국인이, 더욱이 곤란한 경계상황에 빠진 중국조선족이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중국조선족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쯤으로 소급된다. 그 역사적 시간에 동아시아는 유럽운명의 대습격에 부딪혀 흔들리게 되는데 그때 한국과 중국과 일본 등에서 그 충격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탄생한다. 그중에도 고대에 잃어버린 생성과 생명, 과정과 혼돈의 사상들이 다시 크게 부활했으니 바로 조선의 후천개벽(後天開闢)사상이다. 특히 동학(東學)과 정역(正易)등은 바로 중국의 관료지식인들이 봉합해버린 고대 동아시아의 혼돈과 생명의 사상을 근대적인 철학, 과학으로 생생하게 부활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민중민족혁명에까지 도달하였으나 이씨조선왕조와 연합한 봉건중국 및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의해서, 그리고 그 뒤로는 존재론, 실체론적인 유럽문명과 문화에 의해서 억압되어버리고 만다.
중국 조선족은 바로 이 같은 19세기, 20세기 초의 후천개벽사상의 새로운 해석학과 자주력에 의해 동아시아 전통사상위에 씌어진 낡은 존재론과 실체론의 봉합을 뜯어낼 사명을 가졌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 현명한 유럽과 아메리카의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모두 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이른바 동풍(東風,이스트 터닝)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들의 예감의 안테나는 바로 중국이라기보다 중국과 깊은 연결성을 갖되 그 스스로 독자성을 가진 한국과 한국인, 특히 그 연결의 직접적 고리인 중국 조선족의 존재와 앞으로의 창조적 역할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중국조선족이 겪는 고통은 도리어 이 같은 창조적 사명을 숨겨가진 전야(前夜)의 고통일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이른바 ‘녹색’은 ‘혼돈의 질서(카오스모스)’를 찾아가는 전세계적 탐색인 것이니 동학과 정역의 새로운 개념인 ‘생명학’을 내용으로 자기조직화해 나가야 할 것으로 믿는다.
3.
그렇다면 이제부터 시작해야할 중국조선족의 교육문화운동은 단순한 녹색(생태학)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의 길’이 아닐까? 도리어 ‘생명학교운동’이 그 정확한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명은 이중적으로 생성한다.
동학과 정역이 혼돈과 질서의 이중적 교호결합 즉 ‘태극(太極)과 궁궁(弓弓)’ 또는 ‘율려(律呂)와 여율(呂律)’의 반대적인 상호보완성을 그 원형(原型)이자 ‘패러다임’으로 하듯이, 생명학은 정착과 이동, 농경과 유목, 농촌과 도시, 외면의 생명과 내면의 영성(靈性), 그리고 ‘에코(eco)’와 ‘디지털(digital)’의 결합을 요구한다.
중국조선족의 딜레마 즉 자본주의적 도시화와 아직도 공동체적인 농촌생활의 분열적 이중성에 대한 생명창조적 이중메시지의 결정적 해답을 얻으려면 단순한 ‘녹색’을 ‘생명’으로 전면 개념수정을 단행해야 되리라 믿는다.
동학과 정역은 중국학의 현대적 가능성인 기사상(氣思想)과 역학(易學) 즉 주역(周易) 등에 대한 조선문화 쪽의 독자적 해석학이요, 후천(後天)적 새 전개과정인 것이다.
동서양 사상의 통합
4.
새시대는 동아시아로부터 시작되는 동서양사상과 문화의 창조적 통합을 토대로 한 새로운 인류문명에 의해 열린다. 아시아 고대 르네상스운동은 생명학을 해석학으로 하는 새세대와 새 주체에 의한 아시아 전통문화의 담대한 재창조이며 새로운 동서양사상융합이다. 그것은 동학, 정역 등에 의해 기철학과 주역 등을 살아 생동하도록 하고, 그로부터 광범위하고 심오하며 다종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새로운 수학(數學) 즉 고차원의 상수론(象數論)과 영성적 신비학(무의식에 대한 심리물리학 등)의 결합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이 과정이 자연히 하이테크, 하이터치, 벤처마킹과 함께 새로운 생명학적 영농() 및 생명공업을 촉발시키고 광범위하고 고차적인 서비스산업을 유도할 것이다.
중국조선족이 기획하는 ‘선진적 녹색문화경제기반’이라는 것은 그 내용으로서 생명학을 착안하고 연찬, 교육함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성될 것이며, 사회주의이던 자본주의이던 속류유물론과 공리주의, 실용주의, 비극적 문화혁명의 후유증 등으로 과거 망각에 빠져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주위사람들에게 도리어 큰 모범과 선진적 모형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아메리카, 러시아 및 모슬렘과 모든 민족들에게 중요한 새 문화, 새 문명의 길을 가르치게 된다.
‘생명과 평화의 길’은 목하 남한에서 여기저기 새 삶을 갈망하는 민중의 ‘캐치플레이즈’가 되어가고 있다. 지구문명의 대전환기에 전인류 앞에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할 성배(聖杯)의 민족이 곧 한민족이며 그중에도 고난의 역사 속에서 창조적 경계상황 안에 있는 중국조선족이라고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이미 고착되어가고 있는 중국역사학계의 ‘동북공정(東北工정)’에 대한 한민족과 중국조선족의 슬기로운 대답, ‘아니다.그렇다(不然其然, no-yes, 최수운의 동학논리이며 최근 진화론과 생명과학, 뇌과학 및 선(禪), 그리고 뇌를 모방하는 컴퓨터의 디지털적 이진법과 유럽의 모순어법을 다 포괄한다)’의 탄력있는 대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렇다’에 의해서만 중국의 ‘생극론(生克. 相生과 相克의 균형과 상호보완성)’은 현대적 생명논리, 생명 및 물질의 이중성과 차원 변화의 논리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호혜(互惠)
5.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집체주의가 파시즘과 각종 공동체주의의 전체주의와 함께 현대과학과 대중운동 등으로부터 전면 후퇴하고 있는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해야한다.
19세기, 20세기 생물학과 진화론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군집(群集)과 종(種)발생 선행이론, 즉 개체보다 전체와 집단이 먼저 발생하고 또 그만큼 개체보다 더 중요하며 가치가 있거나 적어도 개체와의 관계에서 변증법적 균형을 이룬다고 보았던 과학이론은 벌써 수십년 전부터 각 방면에서 퇴각하고 돌연변이, 다양성, 자유의 원리라는 기제(機制)에 의해 개체가 군집보다 먼저 발생할 뿐 아니라, 군집도다 더 근원적이고 더 깊이 존중되어야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대신 개체는 발생 당시부터 자기의 생물학적인 드러난 질서 안에 숨겨진 질서, 보이지 않는 내적 차원으로서의 제각각 나름대로의 독특한 군집성, 독특한 소규모의 전체성, 더 정확하게는 우주적 총유출의 벡타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리고 이 숨겨진 차원의 새 질서를 실현하기 위해 진화과정 전체에서 ‘자기조직화(自己組織化)’한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제3세계형 집단주의, 각종 종교적 공동체와 생태주의 공동체들이 예외없이 실패하거나 쇠퇴하는 것, 전 인류의 새 세대들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개체를 잃지 않고 자기조직화에 의해 도달하는 새로운 융합’현상(예컨대 2년여 전부터 남한에 발생하고 있는 ‘붉은 악마’나 ‘촛불’현상, 또는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전 세계적 시민운동 등)이 일반화되기 시작했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극단 사이에서 희망의 표적이 되어왔던 버몬트 숲속의 근본생태주의 캠프나 스페인의 몬드라곤 공동체, 동아시아의 광범위한 시민생활협동조합운동에서의 공동체 실험등이 모두 쇠퇴하고 있다.
기이한 것은 19세기 한국의 후천개벽사상이었던 동학과 정역, 그리고 혜강(惠崗) 최한기(崔漢綺)의 기철학(氣哲學)등에서 먼저 스스로 우주적으로 확장된 개체들이 전제되고 그 개체들에 의한 자발적인 새로운 소집단 소사회구성활동의 종교적(동학의 각지불이各知不移), 철학적(혜강의 교접운화交接運化), 그리고 과학적(정역의 십일일언十一一言) 전개와 제언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것을 현대의 맥락과 형편안 에서, 더욱이 자기조직화, 자기선택, 자유의 진화론과 신생물학, 뇌생리학등의 공세적 확장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게인과 개인 사이에 공동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새 원리로 협동적 삶을 추구할 것인가?
임진철교수의 논문을 통해서 중국조선족의 농촌생태공동체나 도시의 하이테크적 벤처공동체들이 제안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군집이 개체보다 더 강조되는 공동체주의의 하나라고 생각 안할 수가 없다면 이러한 견해는 최근 유럽에서도 수없이 시도되고 또 수없이 실패하는 생태사회주의자들의 생태소비에트들, 일본 등의 생활협동조합의 공동체주의 포기현상들은 어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미국 뿐만 아니라 남한 내에서도 기업경영의 벤처 흐름들이 사실 뇌 활동이나 생명발생 및 진화의 주류개념인 ‘자기조직화’와 ‘유연성’ ‘우발성’ ‘내부공생(endosymbiosis)’ 그리고 서부유럽에서 시작되는 자연과의 공생계약의 신문화론 등으로 기울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하이테크’류의 신자유주의적 과학적 음모에 불과하다면, 그 현상을 대신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법칙이 제기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우리민족의 경우 어떤 원리이며, 어떤 사상적 원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그런 것은 없었던 것일까? 바로 내가 우리 민족 전체와 동아시아 민족들, 특히 중국조선족이 선두에 서는 아시아 고대문예부흥을 현실적 대안과 연계해서까지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문제점들과 관련되어 있다.
6.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은 4천년 내지 5천년 전 지구온난화와 함께 남방으로부터 북상한 농경문화 이전부터 경영해왔던 천신숭배(天神崇拜)적인 유목이동문화의 한복판에 생명문화로서의 ‘풍류(風流)’, 인격교환과 생태계 및 신령숭배적인 호혜(互惠)경제로서의 ‘신시(神市)’ 그리고 전원일치적 직접민주주의라고 전해오는 정치체제로서의 ‘화백(和白)’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와 정치 및 경제인류학적 견해들은 남한에서 몇 년 전부터 자생하기 시작한 ‘생명학에 입각한 고대사 공부모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개체가 먼저 발생한다는 과학 앞에서 동학과 같이 만약 개인 개인을 ‘지극한 우주기운( 至氣, 이것은 곧 혼원지일기混元之一氣로서 ’혼돈한 근원의 태극질서‘ 즉 들뢰즈 류의 ’카오스모스 chaosmos.'를 뜻하는 신개념神槪念이다. 왜냐하면 일기一氣는 주역에서 태극을 뜻하는 우주질서이기 때문이다.)' 즉 ’한울‘로서 ’모심‘의 대상으로 본다면 그 모심의 행위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돈독한 상호혜택 즉 호혜(互惠)를 성립시키며 그 호혜는 상고대 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단의 또 하나의 시장(자본주의 교환시장이나 원시 공유제公有制와 함께 공존했던 또 하나의 인격교환시장)으로서 공급과 수요 사이에,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에 하나의 복합적 ’계(契)‘를 바탕으로 한, 마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포트라치(potlach,제사경제)’와 비슷한 경제구조로서 지역단위의 협의(協議)제적인 생명경제(노동. 토지. 신용 등 생명과정의 생명가치를 되찾는 경제)로 발전할 수 있는 전형(剪型)의 하나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사실 ‘신시’는 우리민족만의 전통은 아니다. 이 ‘신시’의 호혜기능이 공동체대신 공급.수요자 사이에 현대적인 새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다시 성립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과 인간사이, 인간과 자연사이, 인간과 신령사이에 ‘성스러운 시장’으로, ‘흐르는 시장’으로, ‘솟대’ 안에서 행해졌다는 그 ‘신시’의 호혜관계망인 ‘계’는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낡아빠진 고대 아시아적 삶의 잔영일 뿐인가?
개인을 하늘같이 공경하면서도 개인과 개인 사이에 개인 내면에서부터 상호희망하고 필요로 하며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는 경제적 상호혜택관계망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전세계적으로 교환과 호혜의 이중경제, 이중시장은 불가능할까? 양자의 이중적 교호결합은 불가능 할까?
또한 화백과 같은 전원일치적 직접민주주의는 앞으로 다가올 사이버 민주주의 체제에서 하나의 효력있는 대안으로 재구성될 수는 없는가?
생명과 영성과 흥취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풍류’의 문화는 오직 전설일 뿐이고 술취한 조선족들의 굿거리 춤판에서만 적용되는 놀이문화에 불과할까?
7.
아시아 고대문예부흥이라는 생명학적 지향과 호혜시스템을 목표로 가진 ‘21세기 중국조선족 녹색민족문화경제 기반구축과 농촌경제발전전략’을 구상해보는 것은 과연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나와 나의 여러 벗들은 작년의 경기도 ‘세계생명문화포럼’에 이어 올해에는 남한과 한민족만의 생명학 및 생명문화, 아시아 고대문예부흥과 고질적 관료주의에 대한 대문화혁신의 기획포럼을 구성한다.
그러나 내년에는 광범위하고 이론-실천적인 ‘동아시아 생명과 평화포럼’을,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다시 ‘전세계 생명과 평화포럼’을 경기도에서 개최한다.
지금의 계획으로는 내년 동아시아 포럼 때에 아마도 중국 조선족대표들이 아주 중요한 손님으로 특별 초대되도록 이미 기획이 서있다.
그때 우리는 무슨 실천적 과제를 가지고 만날 것인가? 아마도 그 포럼을 전후해서 나의 연길방문도 실현되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한민족과 중국조선족의 날카로우면서도 미소로 가득한 ‘아니다-그렇다’의 슬기로운 대답이 이미 그때는 상식선으로 접근하지는 않을까?
다만 나의 이상과 같은 이야기들이 시인의 단순한 상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효성있는 몇 마디 훈수이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나의 마음 자체가 혹시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양력 6월 17일
남한 경기도 일산에서
김 지 하 모심
둘: 연변에 다녀온 이후 보충의견 몇마디.
8. 기이한 인연으로 임 진철교수와 리 동춘 회장, 그리고 정 병석사장을 만나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에 소재한 연변두레과학농목 유한공사(有限公司)인 ‘연변 두레마을’을 방문했다. 실제의 녹색 전략실험의 현장을 둘러보고 주체들의 고민과 구상, 그리고 잠시나마 연변의 동포들 및 중국 동북지방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보고 나서 앞서 서술한 나의 견해에 수정과 보충을 가하기로 했다. 긴 시간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삼축(三軸)’과 ‘이축(二軸)’의 두 방향을 혼성하는 계획에 합의했다.
9. 삼축
두레마을 공동체의 본래 기능인 사회주의적 공동체 기능 위에 자본주의적 교환 및 상품경제와 개별체성을 배합하고 그것을 또한 지역생명운동(또는 녹색·생태)의 협의체(協議體) 기능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내 견해를 수정 보충하기로 결정했다. 연변두레마을과 중국 동북지방, 그리고 중국 조선족의 구체적 삶에 관해서는 별도의 기회에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10. 여섯 가지의 이축
첫째, 농촌의 ‘에코(농촌 즉 연화촌 두레마을의 생태 또는 생명공동체 전략)’와 도시의 ‘디지털(도시 즉 연변과의 관련에서 디지털, 하이테크, 벤처공동체 전략)’ 사이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동시에 추진한다.
둘째, 공동체적 사유 및 경영과 동시에 비공동체적 사유와 경영을 이중적으로 교호결합(예컨대 개체성을 잃지 않는 분권적 융합)한다.
셋째, 호혜(互惠)경제에 의한 부분적 탈상품화(脫商品化)라는 가치추구를 통해 창조된 ‘생명가치’(*일본의 中村尙司의 지역 자립 경제학 참조)를 시장의 교환경제와의 경쟁에서 부분적 상품화(商品化)한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탈영토화(脫領土化)’와 결합되는 ‘재영토화(再領土化)’의 카오스적 전략에 연속된다.
넷째, 이상과 같은 생명가치 추구의 생명경제와 생명문화운동을 결합함으로써 안으로 의식과 영성(靈性)과 정신의 평화를 추구하고 밖으로 기운과 생명과 물질의 풍요한 변혁을 성취한다.
다섯째, 동아시아 고대 생명성의 문예부흥(그린 르네상스)을 통하여 동아시아 제민족의 생명과 평화연대 및 호혜관계망(互惠關係網)을 형성한다.
여섯째, 이 같은 이축운동을 통해 중국의 한족 및 여타소수민족과 조선족 사이의 간극과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통합적 연결성과 특수한 독자성을 의식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호보완적으로 현실화시키는 명제를 실현한다.
11. 중국 조선족의 녹색전략은 중국과 함께 조선족 자신의 미래를 세계사적 흐름의 차원변화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인류사적인 소명성취와 현재의 여러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계획임을 확실하게 선포해야 한다. 이것은 남·북한과 동아시아, 아메리카나 유럽 등의 조선족을 통한 인류 전체의 문화·경제적 대비약에 기여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크고 깊고 높은 소명(召命)에 연결된다.
12. 역사가 가르쳐주는 바에 의하면 이같은 문명전환적 운동은 언제나 그 주체와 지역과 상황에 어떤 지속성을 지닌 ‘전설(伝說)’이나 ‘신화(神話)’를 동반하는 법이다. 연화동촌의 두레마을에 도착하여 내 스스로 본 바로는 풍수(風水)에서 중요시하는 ‘산곡간개활(山谷間開活)’의 ‘명당혈처(明堂穴處)’로서 크고 새로운 운동의 근거지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거기에 항일민족해방운동의 근거지 중의 근거지라는 결정적 전설과 신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김좌진(金佐鎭) 장군의 사령부 자리이고 한 골짜기만 들어가면 만주의 전설적 영웅인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유격근거지가 있다는 점이다.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은 멕시코의 싸파티스타운동이 30여년전의 멕시코의 전설적 농민혁명가였던 에밀리아노 싸파타의 전설과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은 21세기 생명사회(녹색사회,순환사회)를 앞당기는 생명운동, 에코(ECO)와 디지털(DIGITAL)이 이중적 교호결합하면서 녹색문명을 촉발시키는 동북아의 그린르네상스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호조건을 갖추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13. 동서고금의 역사가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현대적인 문명조건에서 생명운동의 가장 큰 충족조건은 생명경제와 생명문화운동의 융합전개이다. 나와 나의 벗들이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문화운동을 ‘한살림’과 같은 생명정제협동운동과 함께 시작한 것도 바로 그 까닭이다.
그런데 바로 이 연변두레마을에 문인들의 창작실(創作室)이 버젓이 건설돼있고 내가 그곳에 도착한 초저녁에 이미 연변 조선족 작가협회의 주석 및 회원들(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십여명과 연변일보의 기자가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심으로 크게 놀랐다.
그분들과 담화를 나누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중국조선족에게는 자기민족의 종교가 없으므로 문학이 민중 전체에게 마치 종교와도 같은 정신적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셈은 끝났다.
밤늦어 연길로 돌아오면서 임 교수와 정 사장, 그리고 이튿날 돌아오기 전 리 동춘회장과 함께 나눈 긴 얘기 도중 나는 우리의 ‘생명과 평화의 길’과 연변두레마을의 중국 조선족 및 연변자치주 지역 녹색전략 사이에 여러 방면에서 합일점이 크게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20여년전부터 시작된 한국의 생명운동 또는 생활협동조합(生協)과 일본의 생활협동조합 및 생명 생태시민운동과의 깊은 동지적 관계 위에 무엇인가 심상치않은 ‘플러스’ 표식을 얹고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끊임없이 나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들, 안개에 쌓여 천지(天池)가 보이지 않는 밤의 천문봉(天文峯) 위에 나타난 불광(佛光·스님들의 좌선 중 배경에 타오르는 진리의 살아 움직이는 불꽃), 그리고 장백 입구에서 두만강을 옆에 끼고 세 시간을 달린 광평(廣坪)까지의 무인지경, 자작나무 숲에서 어둠 속에 홀연히 나타난 큰 사슴과 함께 천문봉 꼭대기에서 잠들기 전 내내 내 가슴을 흔들던, 두려운 바람소리 속에서 계속 울리던 ‘외로운 변화의 신(獨化之神)’의 목소리-세계에 대한 한민족의 사명으로서의 원형(原型) 제시의 다짐-바로 그것이 곧 이 같은 ‘플러스’ 표식이었다.
어찌보면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이다.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양력 7월 5일
남한 경기도 일산에서
김 지 하 모심
셋 : 김 지하 선생의 훈수와 견해에 대하여 임 진철 교수가 보태는 말
글을 쓰게된 동기
1.지난 6월 필자는 “동북아녹색경제발전을 위한 중.한(한.중) 산(産)-학(學) 협동 심포지움”준비차 한국에 갔다가 심포지움 주제발표 청탁을 위하여 이 동춘회장과 함께 김 지하 선생을 찿아뵙게 되었다. 위에서 김지하선생께서 밝힌바대로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나서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심포지움때 꼭 간다는 장담을 못하기에 글을 먼저 보내주겠노라고 하셨다.
그후 열나흘이 채 못되어 글을 보내주셨는데, 묘하게도 부슬비가 내리던 날 연길 공항에서 마주치게 되었다.일정에 없던 가족들의 백두산관광 스케줄이 급작스럽게 잡혀 연변에 오게 되었노라고 하시면서 연변두레마을에 한번 들르시겠다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장백산맥의 심산유곡에 자리잡은 연변두레마을에서 연변의 문인들과 문학담론을 나누고, 이후 필자와는 많은 시간동안 생명과 평화 그리고 동아시아에 대한 담론을 나누게 되었다.
이러한 담론과정에서 위의 “연변에 다녀온 이후의 보충의견”이라는 글에서 김 지하 선생께서 밝힌바대로, 생명운동과 공동체운동에 대한 삼축(三軸)과 여섯가지 이축(二軸)의 역동적 결합 및 혼성계획에 대하여 상호공유하였다.이에 대한 필자의 논지와 실천적 함의를 보충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듯싶어 이야기를 전개해보고자한다.
필자의 문제의식과 실천적 함의
2. 필자는 뭘 내세울만큼의 업적이나 불꽃튀는 치열함은 없었지만,시대의 문제의식과 궤를 함께하려고 노력하며 본인의 역량만큼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및 민주화운동 그리고 공동체운동의 맥락에서 일해온 것 같다.
8년전 참여연대 창립 및 활동을 끝으로 국내사회운동을 접고 연변두레마을(대표 김 진홍)설립작업과 북경의 중앙민족대학교 아.태경제문화연구소 설립작업을 시발로하여 연구소를 매개로 활동해왔다.북경에서 친환경농업과 벤처산업 국제심포지움을 열며 정보화사회이후의 사회,계급갈등과 민족갈등 그리고 환경문제와 앞으로 밀어닥칠 노령화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사회에 관심이 많아 이문제에 노력을 기울여온것같다.
“생명과 평화”를 축으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도시와 농촌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꿈의 녹색사회(GREEN-DREAM SOCIETY)”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며 나름으로 실천적 몸부림을 해왔다.몇년이 지난후 김지하시인의 생명학 저서를 읽어보니,김 지하시인은 이러한 필자의 문제의식을 상당수준에서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학계에서는 생명사회,순환사회등등의 이름으로 이와비슷한 논의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판단컨대 인문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매개로 논의되는 이러한 담론과 실천적 함의들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인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속담에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생명과 평화”를 축으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도시와 농촌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는 “꿈의 녹색공동체사회(GREEN-DREAM SOCIETY)”에 대한 밑그림은 누군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부터 실천적 발걸음을 떼어야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이러한 밑그림을 실험할 모판을 모색하던중 “소수민족사회로서의 중국조선족사회”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혈통상의 동포사회인 중국조선족사회를 민족문제적 입장에서 접근할수있으나 보다 큰 인류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관점,“생명과 평화와 공동번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고 본다.왜냐하면 민족문제는 잘못 접근하게되면 자칫 협애한 민족주의적 입장에 빠져들게되어 자신을 겨누는 독화살이 되어 되돌아와 “아(我)-타(他) 공멸의 게임”으로 몰고갈수있기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잘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의 녹색공동체사회(GREEN-DREAM SOCIETY)”에 대한 밑그림을 실험할 모판으로서 중국조선족사회를 선택한이유는 다음과같은것이다.
첫째로,인류학적 관점에서 볼때 참새같이 작은새라할지라도 오장육부룰 다갖추고 있듯이 소수민족사회역시 해당거주국사회에서 그규모가 아주 작지만 그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은 오장육부를 다갖추고 있다는 점이다.중국조선족사회는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중국주류사회와 “함께 따로(和而不同)”이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축소판과같기때문이다.
두 번째로,소수민족은 그 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지역적 공간을 매개로한 지역적 유대와 공동체적 유대가 비교적 강한편인데 여기서 중국조선족사회도 그예외가 아니다.중국사회주의 시장경제는 계획경제씨스템과 시장경제씨스템을 결합시킨 인류사의 새로운 실험인데,이 새로운 실험으로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씨스템이 지역을 매개로 어떻게 관철되며,지역성과 공동체성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씨스템속에서 어떻게 담보되어가는가를 잘 살펴볼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때문이다.
세 번째로,소수민족사회로서의 조선족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가 자치촌인데,사회주의 계획경제시절에 이 자치촌은 사회주의 집체경제와 촌민자치(풀뿌리 직접민주주의 정치)를 양날개로 해서 운영되어왔다.
그런데 개혁개방후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들어서 시장경제씨스템이 인입되면서 집체경제(공동체경제)가 파괴되면서 많은 혼란이 노정되었다.현재의 조선족사회는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시장경제체제로의 급속한 전환에 따른 이농현상과 가족분산등 기존의 전통적인 조선족사회가 점차 붕괴되는 정체성의 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심각한 배금주의, 이기주의 ,윤리의 실종,자포자기,열등감과 내부적 감정대립등 많은 자체적인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조선족 지성인들 스스로도 진단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세례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선족들역시 물질만능주의나 경제지상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하지만 자신들의 집체적 문화와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환경파괴와 마찬가지로 이를 다시 복구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댓가를 지불해야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할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일부의 선각적인 조선족 지성인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며 대안적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개혁개방 20년이 지나면서 농촌에서는 여러개촌이 합병되고 재조합되면서 촌민주체의 자발적인 민족집체경제가 복원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음을 볼수있다.
한때 계획경제씨스템과 집체경제씨스템의 혼성씨스템으로 그 명성을 자랑했던 이스라엘의 키부츠공동체모델은 쇠퇴,붕괴되고있다.그 대신에 계획경제씨스템과 집체(공동체)경제씨스템,협의 경제씨스템,시장경제씨스템의 역동적 결합모델로 평가되고있는 모샤브 공동체모델은 급속히 성장하는데 바로 이와 비슷한 유형을 보이고 있는듯하다.
이렇게 재조합,재정착되는 촌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계획경제씨스템과 촌민주체의 자발적 집체(공동체)경제 그리고 시장경제씨스템이 역동적으로 교호결합하는 맹아적 씨앗을 잉태하고 있음을 볼수있다.여기서 계획경제씨스템과 협의경제씨스템(이는 소규모의 자치촌지역단위에서는 공동체경제씨스템적 성격으로 나타나며, 광역적인 지역단위에서는 협의경제 씨스템적 성격이 강하게 작동될것으로 보여지는바 생명문화운동의 정착은 이를 굉장히 앞당길수 있으리라 판단되어진다) 그리고 시장경제씨스템의 3중적 교호결합의 작동과정을 볼수있으리라 생각되기때문이다.
네 번째로,중국조선족사회는 모국인 한국의 존재로 말미암아 해외노무(흔히 불법체류노무자라 일컫는)와 연해지구 대도시 진출(한국기업의 중국진출로 인하여 재중국 한국기업에의 취업과 궤를 함께하는)이 중국의 여타농촌보다 이농현상이 급속도로 진전되었다.중국조선족은 중국 연해도시(북경,천진,상해,심천,대련,청도,위해,연태,심양등)어디에도 전세계 어느나라에도(한국,일본,러시아,미국,유럽등) 노무와 유학으로 진출함으로 인해서 그 유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는 중국조선족의 핸드폰과 컴퓨터보급율에서 단적으로 잘알수있다.이러한 사회적 격류로 말미암아 중국조선족의 전통적 농촌사회가 많이 붕괴됨으로서 중국조선족사회의 해체붕괴론까지 나온바있다.그러나 이를 부정적인 각도에서만 보지말고,“생명과 평화”라는 화두와 “꿈의 녹색공동체사회(GREEN-DREAM SOCIETY)”라는 관점에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을 역동적으로 결합시키고 재조합한다는 관점에서 향도한다면 오히려 중국조선족이 도약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수있다고 보여진다.
지금 중국조선족사회는 농촌에서는 여러개촌이 합병,재조합되는 농촌형 집중촌/도농인접형 집중촌/대도시 신흥조선족 산업군체중심의 대도시형 집중촌(이는 문화언어적 동질성,경제합작의 편의성으로 인하여 중국진출 한국인 주거집단과 인접하는 특징을 보임)의 3가지 형태로 재조합되며 유목과 정착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노정하고 있음을 볼수있다.
다섯 번째로,김지하 선생은 “지구문명의 대전환기에 전인류 앞에 새 삶의 원형을 제시할 성배(聖杯)의 민족이 곧 한민족이며 그중에도 고난의 역사 속에서 창조적 경계상황 안에 있는 중국조선족”이라고 얘기했다.
중국조선족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역사의 희생물이었지만 전쟁의 포연에서도 살아남는 민들레처럼 꿋꿋이 살아남았다.중국조선족은 이렇게 살아남은자로서 어쩌면 생명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한 군체일 가능성이 높다. “죽어나는 것은 조조군사”라는 말이 있듯이, 한.중간의 민족적,정치적 긴장이 발생할 때 중국조선족들은 자의든 타의든 긴장체감도가 제일 민감할 수밖에 없음을 잘알고 있기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중국과 남/북조선 사이의 경계상황에서 겪게 되는 피동을 거꾸로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뒤집는 실천,즉 협애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인류보편가치인 생명평화 실현의 녹색운동과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 실현의 동아시아 공동체운동을 통해 새로운 문명창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을 보기때문이다.
필자는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에코와 디지털,유목과 정착,도시와 농촌이 역동적으로 결합하며 재조합,재정착하는 가능성을 본다.필자는 지금 북경에의 녹색대학,테크노폴리스 조성과 연변에 녹색대학,에코폴리스(ECO-POLIS)를 조성하는 것을 연계통합시키는 구상을 해본바 있다. 현재는 역량이 안되어 연변에 있는 장백산맥의 깊은 골짜기를 오가며 150여만평의 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조성에 열을 올리며,이 에코폴리스안에 동북아 녹색대학을 세울 준비를 한걸음씩 한걸음씩 해가고 있다.그 시간이 10년,20년이 걸리면 어떤가? 세월이 흐르면 누군가 북경과 연변을 연계통합시키는 이구상을 실현할것이라 기대해본다.
필자가 이일에 열정을 기울이는 것은 중국의 심각한 환경문제는 중국만의 재앙이 아니라 동북아지역의 재앙일뿐만아니라 인류의 재앙이라고 보기때문이다.그러기에 생명과 평화를 생각하는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중국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함께 힘을 모아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앞으로 세워질 북경의 테크노폴리스와 북경녹색대학,연변의 동북아녹색대학과 산(産)-학(學)-주(住)가 일체화되는 연변두레 에코폴리스가 동북아 그린르네상스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쓰임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북경과 연변으로 대표되는 도농통합 그리고 에코와 디지털이 결합되는 모형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이다.
삼축(三軸)과 이축(二軸)의 역동적 결합에 대한 첨언
3.김 지하선생께서는 필자와의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생명운동과 공동체운동을 전개해나가는데 있어서 삼축(三軸)과 이축(二軸)의 역동적 결합”이라는 개념으로 명쾌하게 정리하였다.
공동체성과 개별체성그리고 협의체성,즉 계획경제 씨스템과 시장경제 씨스템 그리고 협의경제 씨스템이라는 삼축,솟다리가 세 개로 지탱될때 균형과 안정을 이루듯이 위 3개의 씨스템이,김 지하선생의 표현으로 말하면 삼축의 삼위일체적인 역동적 결합을 이룰때, 조직으로서는 최적을 이루는 상태일것이다.
이에대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한 사전 지식과도 같은 설명이 필요할 듯 싶어, 자크 아탈리와 이와다 마사유끼의 생각을 빌어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한다.
자크 아탈리(jacgues Attali)는 그의 저서『합리적 미치광이(Fraternites) 이세욱 譯, 서울: 중앙 M&B, 2001.』에서 “글로벌 경제화의 끝은 시장 자본주의의 극대화이다. 시장경제는 민주주의의 시작을 부추겼지만, 시장경제가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는 순간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디지털 신경제와 글로벌화는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광기어린 형제애(우애)만이 21세기 새로운 유토피아의 출현을 앞당길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인류사의 유토피아(utopia)를 그것이 지향한 핵심적 목표를 중심으로 네 개의 큰 범주,곧 영생, 자유, 평등, 우애(형제애, 박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영생, 자유, 평등, 이 세 종류의 유토피아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 도달해 있다. 종교는 영생을 약속하는 대가로 자유를 제한한다. 자유가 존재하는 곳에는 불평등과 불안정의 심화를 막을 수 없다. 자유를 기치로 삼고 있는 자본시장은 양심이나 공동체적 가치따위는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역으로 평등은 오로지 자유의 폐허위에서만 나타난다. 어쨌거나 그 유토피아들 가운데 어느것도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미래에 혹자는 종교성의 회귀를 예언할 것이고, 혹자는 평등이나 자유를 향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이들은 공포나 이기주의나 질투심에 바탕을 둔 위의 세 유토피아 모두를 초월하여 각 자가 남을 행복하게 하는 데서 자기의 행복을 찾는 유토피아를 상상할 것이다. 그것을 우애의 유토피아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우애는 개인적인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결합시키는 유일한 이타적 유토피아이다.
오늘날에는 영생과 자유와 평등의 세유토피아가 실패함으로써, 우애 유토피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유토피아는 다른 모든 유토피아들이 그랬듯이 필연적이면서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애원리의 도래와 그 싹은 디지털경제 내부에서 돋보인다. 그것은 디지털경제 내부에서 서로가 상대의 성공을 필요로 하는 상황 즉 넌제로섬게임(Non-zerosum game)이나 윈윈 시츄에이션(win-win situation.호혜관계)이라는 상황들이다.
사람들은 개인적 이익이 전혀 걸려있지 않은데도 남에게 주는 기쁨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를 돌보고 연대하는 제3섹터(The third sector)영역의 민간단체들, 생태환경 및 인권문제 등을 중심으로 지구촌 시민공동체를 형성시켜가려는 국제 NGO, NPO들의 급속한 증가를 보게 된다. 우애는 사람들이 도시생활의 고독을 거부하고 인간형제이든, 애완동물이든 타자를 열렬히 찾게 되면서 갈수록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될 가능성이 많다.
지식사회가 고도화될수록 형제애는 더욱 활짝 피어날 것이다. 지식은 그것을 평가해주고 나누어가질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식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능력, 남과 자기를 비교하는 능력 그리고 남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잃지 않게 하는 우애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우애란 자기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남의 중요성을 인정하는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영생, 자유, 평등의 유토피아는 그 생성의 존재이유와 필연성이 있겠지만, 온전한 의미에서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애의 유토피아 역시 산업 문명시대에서 정보문명 및 창조혁명시대로의 전환기에 생성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지만, 온전한 의미의 실현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류는 그것이 생성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과 새로운 문명 전환의 성격규명에 기초하여 그에 따른 해결대안들을 마련해나가고 실천해나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문명전환기의 새로운 문명시대에 걸맞는 대안들을 마련해 나가지 못하면 그 사회는 혼란과 침체의 늪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기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경제학자와 미래학자들은 산업문명시대에서 정보문명, 창조문명시대로 이동하는 다중적 문명 전환기에 처해있다고들 말하고 있다. 벌써 탈정보화 창조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데이터를 주고 받는 속도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속도가 돈이 되고, 더 빠른 속도가 최고의 목표였다. 그러나 속도는 이제,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 이리하여 창조화시대에는 상상력(imagination) 을 통한 컨셉(concept)이 돈이 되고 기업의 목표가 된다. 창조화 사회에서는 남과 다른 생각(독창성과 개성)을 만들어내고 실천해야 성공할 수 있다. 창조화 사회에서는 컨셉(concept)이 기술과 속도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창조화 사회가 전면화되면, 가격경쟁 및 기능경쟁의 경제 법칙보다는 인간 중심과 생태를 앞세우는 문화법칙이 우세를 보이게 될 것이다. 특히 새롭게 불어오는 신자연주의, 생태주의의 영향으로 자연보호차원을 넘어서서 지구촌의 자연생태계와 조화, 공생하는 High-touch, High-Nature비지니스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되어진다. 이런 크레비즈(crebiz)시대에는 개성과 독창성이 가장 존중되는 가치로 작용할 것이다.앞으로 지구촌 시민사회형성발전이란 측면에서 특기할만한 사실이 현실화 될 것이다. '
그 동안은 유형자원에 대한 '양의 경제', '소유의 경제'가 주도했지만, 개성과 독창성, 문화가 중심이 되면서 '질의 경제', '즐거움의 경제'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생태와 자연을 중시하는 에코경제(eco-economics), High-Nature경제도 새로운 분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소위 그린 드림 소싸이어티(Green-Dream Society,꿈의 녹색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패러다임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거나 금새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완전한 형태의 창조화 사회와 크레비즈시대가 오기전에 15%의 크레비즈시대, 30%의 크레비즈시대, 60%의 크레비즈시대로 성큼성큼 바뀌게 될 것이다.
원시공산사회 이후 공동체와 공동체의 틈 사이에서 시장경제 시스템이 생겨났다. 그후 토지시장과 노동시장 그리고 신용 (자본)시장이 성립되고 급기야는 공동체가 해체되어버렸다. 또한, 러시아 자본주의의 해체로부터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이 생겨나 결국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미성숙한 자본주의가 해체되어버렸던 역사가 있었다.
현재 맹아적으로 생성, 발전되고 있는 공동체경제시스템(협의경제 씨스템) 역시 현존하는 두 시스템의 틈바구니 속에서 성장, 발전해나갈 것이다. 현대 경제사회의 생산구조에서 볼 때, GNP의 공적부문은 계획경제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으며 GNP의 사적부문은 시장경제 시스템이 작동된다. 그런데 반하여 비화폐적 생산부문인 공동체 경제 영역과 자연계 영역은 협의경제씨스템(생태적 공동체경제 시스템)과 생명경제문화운동에 의해 추동되고 대변 될것이다.
이와다 마사유키(岩田昌征)는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우애'는 인간해방의 목표이며 동시에 심오한 경제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岩田昌征, 現代社會主義の新地平 日本評會社, 1983.P.157).
“18세기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이룩한 '자유'를 실현하는 것은 시장경제 시스템이다. 근대 유럽시민사회의 '자유로운 경제인' 즉 호모에코노믹스는 그후 시장경제 시스템의 이념적 인간상이 되었다. 그리고 '평등'을 실현하는 계획경제 시스템은 20세기 러시아 혁명과 중국혁명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애'를 담당하는 공동체경제 시스템은 아직 인류사적인 규모의 사회경제혁명을 이룩하지 못했다. 기존의 시장경제 시스템이나 계획경제 시스템과 비교하면, 실제로 보편적 현실성으로 존재해 본적이 없는 경제 시스템이다. 다만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이전에 '자유'와 '평등'을지향하는 사회경제운동이 었었던 것처럼, '우애'의 경우도 아직 경제시스템이나 사회경제제도로 정착되지는 못했지만 각 국가와 지역마다 맹아적인 사회경제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역동적인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는 구소련의 영향을 받아 계획경제시스템을 개발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였다. 그런데 계획경제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면서 이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동자들의 '자유노동조합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노동자들은 서방진영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유'가아닌 '연대', 즉 '노동자 자주관리 공화국'을 내걸었다. '연대 (Solidarity)'가 '우애(Fraternity)'와 같은 맥락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이후 이군돌기 (異軍突起: 새로운 세력이 갑자기 출현함)의 향진기업 운동이 일어났다. 이 지역 공동체 기업운동인 향진기업운동은, 계획경제씨스템과 시장경제 시스템을 혼융, 조화시키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 그리고 소성진(小城鎭) 정책과 결합하여 민관합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 경제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이러한 향진기업운동은 지역촌민공동체 정치구조인 촌민위원회와 결합되어 운영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개혁개방후에 나타나 발전한 향진기업의 형태는 경제씨스템적으로 볼때 다종다양한 형태를 띠는데,철저한 계획(집체)경제중심의 모델,시장경제씨스템중심의 모델,이두개의 혼융결합모델로 분류해볼수있다.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권에서는 정부-기업-시민사회라는 3중적 분립구도 하에서, 시민사회의 영역을 담보하는 제3섹터 (The Third sector)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 제3섹터 운동은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의 사회정치부문중심의 NGO (Non-government organization, 비 정부적 민간단체)운동과 사회경제 부문중심의 NPO (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공익사업체)운동으로 크게 대별된다.
특히 경제민주주의와 소유권의 대중적 확산전략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노동자 생산협동조합 (노동자공동소유 주식회사) 운동과 종업원 주식소유제도 (ESOP)운동은 이미 오랜 기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침체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 협동조합복합체는 한때 세계적 대기업과도 어깨를 견주는 정도까지 발전한 적이 있다.요즘은 노동자생산협동조합운동의 경직성을 보완하기위하여 시장경제씨스템과 협의경제씨스템을 결합시키는 협동조합형 주식회사운동,이스라엘의 모샤브공동체모델등이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늘날 주목할 일은 세계적인 사회운동으로 자리잡아나가고 있는 녹색 운동이다. 스웨덴
의 경제학자 Mato Friberg와 Bjorn Hettne는 세계적인 '녹색운동(綠色運動)'을 '靑(시장
경제, 자유, 자본주의)'과 '赤(계획경제, 평등,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선택을
제시하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가 항상 경제개발과정에 있어서 유일한 사회적 주체이다”라는 개발주류파적 사고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녹색의 관점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간 또는 인간의 작은 공동체가 제일의 행위체이고 국가는 이 궁극의 행위체의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보다는 세계의 부족이나 민족단위 또는 지역단위가 보다 기본적인 사회경제개발의 단위라는 것이다.
녹색운동의 접근을 개발에 적용할 때, 녹색의 개발 주체들은 인간의 욕구에 그 기본을 두면서 '문화적 동일성, 자립, 사회정의, 생태계의 균형'이라는 가치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운동의 목적은 국가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보다 좋게 충족시키고 생태계와 조화로운 삶을 살게 하는데 있어서, 국가를 훌륭한 도구로 기능케 하려는 것이다.
전술한 사회경제운동을 살펴볼 때, 이 운동들은 계획경제 시스템이나 시장 경제시스템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면서 대안적 형태로 표출되며 성장발전되어가고 있다. 이 시스템은 우애의 원리, 공동체의 원리, 생명계의 원리를 기초로 해서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개념화시켜, 생태적 협동공동체경제시스템 (약칭 공동체경제시스템)으로 명명한 바 있다.
헤이젤 핸더슨(Hazel Henderson)은 이를 사회적 협동대항경제(social co-operatve counter-EConomy)로 명명하면서, 그 성격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1995, P.209.)
1. 대항매체(Counter media)의 성장
2. 새로운 시장의 대두 3.비영리적 교역관계의 확대
4. 가정경제와 여성에 대한 재 평가(시장가치,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서의 경제)
5. 대체기술(alternative technology), 생태적 적정기술의 발달
6. 이웃관계와 공동체적 신뢰관계에 기초한 경제활동
7.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자주관리의 요구
8. 민족권리의 확대주장
9. 생태운동(Ecology)과 여성운동의 확대
10.시민운동(NGO, NPO)단체간의 연대
11.생활양식과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이와다 마사유끼(岩田昌征)는 경제체제를 비교연구하여, 시장, 계획, 협의 경제
시스템이라는 세 가지 시스템을 사회생활의 13가지 차원에 대응시켜 각각의 특성을 고
찰한바 있다.( 공생의 사회생명의 경제, 1995, P.116.) 그는 다음의 <표>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것을 통해 기존의 시장경제시스템과 계획경제시스템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경제
씨스템으로서 협의경제시스템이 갖는 의미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표>시장, 계획, 협의 시스템의 특성
특성 유 형
시장시스템
계획시스템
협의시스템
1)경제인류학
2)근대적 가치
3)경제 메커니즘
4)소유형태
5)경영방식
6)분배양식
7)인간유형
8)책임과권리소재
9)사회문제
10)인간관계
11)사회구조
12)정치적결정
13)가족관계(중심)
교환
자유
시장
사적소유
사적경영
임금,이윤배분
극대화 타입
개인
불만
원자화
계급사회
다수결
부부관계
재분배
평등
계획
국가소유
국가경영
고정임금제
표준화 타입
집단
불만
위계화
계층사회
집단지도제
부자관계
상호부조
우애
제3메커니즘
사회적, 공동체적소유
자주관리
소득분배협의
적정화 타입
공동
불화
상호규제
관계사회
다수결
형제자매관계
14)대표국가/집단
15)총칭
미국, 영국
개인주의
(구)소련,군대집단
전체주의
(구)유고,몬드라곤그룹
연대(공동체)주의
<표>에서 보는 바와같이 시장경제시스템, 계획경제시스템, 협의(협동)경제시스템은 각각
의 장단점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나카무라 히라시(中村尙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공
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 1995, P.112-115).
먼저 시장경제시스템은 반복재생산된 노동생산물을 생산단체가 직접 소비하지 않고 다른
사회집단과 교환하는데 있어 가장 효율적이다. 시장시스템에서는 각각의 경제주체가 교환
하는 상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시장에서 얻고,시장밖에서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 경쟁을 하
지 않을 수 없으며, 경쟁을 통하여 점차 효율을 높이는 경제시스템이다. 시장의 수요에 따
라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고객의 욕구수준에 따라 상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가장 유효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겨야 생산의 질과 양이 확보된다는 것은, 동시에 경쟁에서 패배하
여 시장에서 축출된 생산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하기에 이 시장시스템
과 교환양식은 “생활의 근거를 지역이나 공동체에 둔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적 약자이거나
패배자일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다른 생활인들과 서로
도우며 풍요로운 생활을 지속한다”는 지역자립의 기본이념이나 공동체의 이념과는 대립한
다. 사람들가운데는 아이와 노약자들이 있고,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완전할 수는
없으며 몸과 마음 어딘가에는 장애를 가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의 모든 영역을
시장경제시스템만으로 채울수는 없는것이다.
두번째로 계획경제시스템은, 단일 목적을 위해 집단의 구성원을 통합하는 양식으로서는 가장 뛰어나다. 이 시스템은 집단내부의 경쟁관계를 억제함으로써 내부의 화합을 이루는 동시에 외부조직들과는 치열하게 경쟁한다. 일본의 기업들은 각각 회사내부에서는 화합을 중시하고 회사밖의 시장에서는 격렬한 경쟁을 벌이면서 효율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해왔다. 일본 기업들은 회사라는 조직에 계획 시스템과 시장 시스템을 조화시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왔던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일본식 기업경영을 배우려 했던 것은 정치적인 제스츠어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상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부 세력과 싸우면서도 내적으로 가장 통합과 통제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군대조직인데, 전체주의적인 국가들이 군대조직 모델을 채용하는 것은 군대조직의 이러한 성격때문이다.
그런데 이 계획 시스템은 집단 자체의 효율성은 높지만 구성원의 창발성과 자유를 억압한다. 따라서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점점 더 통제나 관리가 곤란해진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경제활동을 온통 계획시스템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억지로 계획 시스템을 이식하려고 하면 그 사회의 규모에 비례하여 급속하게 효율이 떨어져 집단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연유 때문에 소련의 페레스트로아카와 중국의 개혁개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구 동독과 북한보다 규모가 큰 소련과 중국이 더 열심히 시장과 계획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조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세번째로 협의(협동)시스템은 효율이나 통합이라는 점에서 시장이나 계획시스템보다 열등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서는 자립한 경제단위가 서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시장 시스템의 가격과 계획시스템의 규격에 대응하여, 협의(협동)시스템은 직접적인 인격을 통한 자주관리와 민주주의에 의해 유지된다.
직접적인 인격을 통한 자주관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각각의 경제단위가 서로 끈질기게 자주적으로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통하여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교섭할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정상적인 조건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필요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면서 순환성의 유지와 다양성의 존중 그리고 관계성의 창출을 중시하는 협의시스템이 강한 지속성을 발휘한다.
설득과 협의를 거듭해서 얻은 합의가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좁은 의미의 경제와 넓은 의미의 경제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단절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협의(협동)시스템이 우월한 지역 공동체는 각 종 외부의 경제력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 이것이 협의시스템의 가장 큰 약점이다.
생산의 흐름과 극대이윤의 추구가 아니라 경제외적 분야를 포함한 전 인격적인 생명활동을 충족시키는 것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500년간 아시아-아프리카의 수많은 원주민들이 외부의 식민지 지배세력에게 패배했던 것이다.
지역자원을 활용하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이 지역주민의 생활필수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유고슬라비아처럼 외국과의 경쟁에서 패해 부채가 누적되기 쉽상이다.협의경제시스템은 대체로 지역단위나 특정공동체를 매개로 운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속한 지역주민이나 공동체구성원들은 의존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가는데 반하여 , 경제생활만은 지역생활단위나 공동체 생활단위에서 분리되어 상품적인 경쟁관계아래 놓이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협의(협동)경제시스템의 약점이자 딜렘마이다.
이러한 약점과 딜렘마속에서도 협의경제시스템은 우애유토피아에 대한 대중적 갈망에 부응하여, 소유의 양극화 위기, 지구생태계의 위기, 인간삶의 파편화 위기 등을 해결하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경제 시스템으로 정착되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협의경제시스템(생태적 협동공동체경제시스템)을 어떻게 인류사적 규모의 사회경제시스템으로 성장발전시켜 나가며, 생태적 협동공동체 사회(인류사적 규모로 정착되기 이전에는 생명사회,순환사회,녹색사회등 다양한 이름으로 명명될것이다)를 건설해나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시장, 계획 그리고 협의 경제시스템의 공존과 혼융 그리고 역동적 조화속에서 협의 경제시스템이 지역단위나 국가단위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해나가도록 추동하는 실천적 운동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이전에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경제운동이 일어났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함께 잘사는 우애의 유토피아에 착근하고 있는 협의 경제시스템 역시, 각 지역 및 국가마다의 고유한 사회경제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21세기에는 그 운동이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그 단적인 예를 들자면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 조합그룹으로 대표되는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운동 및 협동조합형 주식회사운동,이스라엘의 모샤브공동체운동, 중국의 지역 공동체형 소유권제도와 향진기업운동, 선진자본주의 국가권의 제3섹터 (NGO, NPO)운동과 지구촌시민사회운동, 녹색생활협동조합운동과 녹색사회정치운동 및 생태공동체운동 등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운동들이 보다 구체화된 발전전망을 가지려면, 이러한 운동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대안사회모델과 이념을 개념화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경제운동이 추구하는 대안 사회모델의 이념적 범주를 '생태적 협동 공동체사회'로 개념화 해본바있다.
이 생태적 협동 공동체사회란, "기존의 사회가 순환성. 다양성. 관계성의 생태적 원리,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적 원리, 의미와 가치회복의 정신문명중시의 원리, 참여민주주의원리에 입각해서 변혁되고 재구조화(창조)되고, 시장, 계획 그리고 협의시스템의 공존과 혼융을 통한 역동적 조화속에서 협의경제시스템이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사회이다."라고 정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라는 대안(代案)적 이념이 국가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실시된 적은 없지만, 소유의 양극화 위기, 지구생태계의 위기, 인간삶의 파편화 위기를 해결해보려는 사회경제적 운동속에서 생성 발전되어왔고 그추세는 앞으로 더 왕성하게 추진될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21세기 생명과 평화의 가치,사회주의적 가치 연대블럭이 지향해야할 대안적
사회전망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든 사회주의 체제든간에 시민사회의 제3섹터(The
third sector)영역에서 협의경제 씨스템의 재구축을 통한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적
전망일것이다.
그리고 21세기 인류문명발전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으로 평가되기도하는 중국사회
주의 시장경제는 사회주의의 이행과 건설과정에서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패러다임의
합리적핵심과 접목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에로의 이행과 건설의 두가지 전제가 생산력발전과 인민의 자주적 능력고양이라할때, 생산력발전이 일정정도에 이르러 사회주의 이행과 건설의 수준을 높이려면 두번째 전제인 인민의 자주적능력의 고양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때 인민의 자주적 능력고양과 사회주의적 덕성의 자발적함양은 사회주의적 시민사회의 성장과 협의경제 시스템의 구축 및 발전에서 찿아질수밖에 없을 것이다.이 시점에서의 중국사회주의는 협의 경제시스템을 하나의 중심으로 하고(一個中心) 시장경제시스템과 계획경제시스템을 양날개 기본점(兩個基本点)으로 하는 전략을 중국사회주의 발전제고전략으로 숙고해보아야할것이다
다음으로 김 지하선생은 운동과 경영의 과정은 끊임없이 서로다른 대립물(二軸)간의 모순이 생기는데,이 모순을 대립물로만 보지말고 二軸간의 이중적 교호결합을 통해서 모순을 해결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계기로 삼아야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는 역설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사람의 몸에서 열이 나면 동양에서는 담요나 옷으로 덮어서 따뜻하게 해주지만,서양에서는 옷을 벗기고 찬물이나 얼음으로 식혀준다.
알콜은 일반적으로 흥분제로 알고 있지만 흥분제일수도 반면에 진정제일수도 있다.알콜은 잠깐동안에는 인간의 억제력을 약화시킴으로서 흥분제 역할을 하지만,화학적으로 보자면 강력한 진정제이기 때문에 흥분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한다.
이와같이 두가지의 상호대립되는 사고나 가정,법칙등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우리는 역설이라고 부른다.그런데 이 역설은 모순되고 서로 배척하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이들은 동시에 존재하며 작용한다.이러한 역설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거의 일상적인 현상이 되고있다.
역설적인 현상이 지배하는데 있어서 비즈니스세계나 사회운동조직도 매니지먼트라는 차원에서 예외가 아니다.우리는 세계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이어야 하고,어떤방식으로는 작아야하면서 다른방식으로는 커야하며,어떤때는 중앙집중화되어야하면서 또 어떤때는 탈집중화되어야할필요가 있다.
기업이든 사회운동조직이든 계획에 의하여 움직여야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연성에 대처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며,차별화되어야함과 동시에 통합되어져야 하는것이다.요컨대 어떤조직이든간에 상반된것들사이에서 어느하나를 선택하려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동시에 추진하거나 역동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찿아야할것이다.
브리콜라지(bricolage)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도상의 나그네처럼.......
4.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과 조화! 이론적으로는 참으로 옳은말이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천의 현장에서는 그게 어디 쉬운가?
평균대위의 체조선수가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온신경을 집중하는 떨림의 무게중심을 잡아야한다.떨림의 무게중심을 잡는 모습이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과 조화의 형상이라 할것이다.평균대에서 한번 잘못 삐끗하여 발을 헛디디거나 균형을 못잡으면 그대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질수있는것과 같이 우리네의 인간삶과 비즈니스 그리고 사회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역설과 격동이 지배하는 복잡계적 현실에서는, 떨림의 무게중심과도 같은 중용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과 조화를 이루어 낼수있을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모든 것의 첫번째는 사람이라는데 귀일된다.곧 영성과 경제성 그리고 운동성의 역동적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리더쉽(leadership)과 팔로워십(followership)이 결합되어야 공동체운동도 생명운동도 성공할수 있다는 얘기이다.
두번째로는 자신에게 맞는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배합이라는 전략적 유연성일것이다.남이 성공한 모델과 전략이 나에게는 치명적인 실패를 안겨다줄수 있는것이며,남에게 실패한 모델과 전략이 나에게는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줄수도 있는것이다.아무리 훌륭한 성공모델이나성공전략도 상황이 바뀌면 실패할수있기 때문에 상황전개와 추이에 따라 성공모델이나 성공전략 또한 지속적으로 재평가되어야할것이다.
역설과 격동이 지배하는 복잡계적 현실에서, 경영자나 공동체의 지도자는 전략적 유연성을 위하여 브리콜라지(bricolage)를 해나가는 방법외에는 만병통치약같은 처방전은 없을것이다.브리콜라지는 매일매일의 경험으로부터 지식을 축적하는 원시사회의 지식축적과정을 말한다.원시인들은 자기가 살고있는 지역에서 자라는 식용식물과 꽃들을 계속 실험함으로서 마침내 자신들의 병을 치료하기위한 올바른 제조법을 발견하였다.
브리콜라지를 행하는 지도자들이나 경영자들은 절대 고정된 패러다임에 매이지도 않으며 고정된 경영방식만을 채택하지 않는다.이런 사람들은 수행하고 있는 운영방식이나 경영방식의 개선된 형태를 찿아내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관련된 변수들을 만지작 거린다.
즉 三軸과 二軸의 역동적 결합! 떨림의 무게중심을 잡기위해서 복잡계적 현실과 관련된 변수들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면서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를 만들어나가는것이다.
김 지하선생은 위글에서 중국조선족의 딜레마 즉 자본주의적 도시화와 아직도 공동체적인 농촌생활의 분열적 이중성에 대한 생명창조적 이중메시지의 결정적 해답을 얻으려면 단순한 '녹색'을 '생명'으로 전면 개념수정을 단행해야 한다고 충고하고있다.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조선족사회의 “녹색경제기반구축과 초록민족 문화재구성 전략”이나 필자의 “시장,계획,협의경제씨스템의 역동적 혼융과 조화의 공동체 모델과 생태적 협동공동체사회 대안이념에 대한 탐색 이에 기초한 연변두레에코폴리스 조성 실험”모두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와도 같은 시도인것이다.이론영역에서는 본질과 원형 및 목표를 제시할수있지만, 그에 도달하기위한 실천영역에서는 복잡계적 현실과 관련된 변수들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리면서 목표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수많은 징검다리를 필요로 하는것이다.
오늘 우리시대에 주어진 문명전환의 생명운동도 녹색(공동체)운동도 하늘에서 뚝떨어지는 지름길은 없는것이다. 삼축과 이축의 역동적 결합!.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징검다리를 만들어나가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도상의 나그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것외에는 실천적 왕도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단기 4337년
서기 2004년
양력 7월 14일
장백산 자락 연변두레마을에서
임 진 철 모심
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 조성 기획안
목 차
1.조성 취지와 목적.
2.조성 추진배경과 그 의의.
3.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 개요
4.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조성계획과 방식.
5.연변두레마을 토지이용 계획
1. 조성 취지와 목적.
연변두레마을은 1997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인 연길시에서 45km 떨어진 연화촌지역에 120만평의 토지를 마련하면서 설립되었다.
초기3년(1997-1999년)이 연변두레마을의 인프라를구축하는기간이었다면,지난3년(2000-2002년)은 연변두레마을의 생활,산업의 기초를 다지는 기간이었다고 볼수 있다.이러한 발전과정을 거쳐 연변두레마을은 이제 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라는 개념하에서 마스터플랜을 세우며 추구하는바를 가시적으로 실현하려는 도상에 놓여있다.
연변두레마을은 “ 사람과 땅을 살리는 두레공동체 운동을 통하여 나눔과 섬김을 실현하려는 21세기형 녹색사회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번영과 발전의 도상에 있는 연변두레마을은 이제 産-學-住-休가 일체화된 에코폴리스 건설을 통하여 연변지역사회발전과 21세기 녹색문명의 창출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2. 조성 추진배경과 그 의의.
오늘 21세기 지구촌은 정보화사회의 파고를 넘어 이제 에코(ECO)와 디지털(DIGITAL)이 융합되는 하이터치(HIGH-TOUCH)형 녹색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산업사회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계는 휘황찬란한 발전을 가져온 반면 파괴된 지구촌의 생태기반과 인류의 생존환경은 미래 인류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인류 삶의 질은 자연과 환경에 달려있다. 이제 인류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면서까지 눈앞의 경제이익과 일시적인 향락을 취하는 행위를 자제하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방향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은 인류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바, 그 길은 생태환경을 보존하면서 친환경적인 녹색산업을 발전시키는데서 찿아져야할것이다. 이일이야말로 인류 생존공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문명전환적인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지구촌 방방곡곡에서는 삽과 곡괭이로 상징되는 전통농업과 트랙터와 대규모 영농으로 상징되는 기계화 농업을 뒤로하면서 새로운 녹색산업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녹색대안의 철학으로 무장한 선각자들은 고부가가치 생태농업과 생태마을/생태도시를 기반으로 문화예술(CT)/디지털(IT)/바이오(BT)가 융합하는 녹색경제를 일구어 나가는데 열정을 쏟아 붇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중국도 개혁개방 초기의 몰골사나운 반생태적인 개발단계를 벗어나, 바야흐로 인류와 자연이 조화되는 친환경적인 사회를 지향하여 농업/에너지/ 환경/식품/ 건설 등 각분야에서 녹색산업의 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조선족 자치주인 연변자치주역시 이러한 시대적 추이와 사회적인 풍조에 부응하여, 푸른 연변자치주를 건설해야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 하지않을수없다.
연변자치주는 중국조선족의 최대 집거지 이며 정치적 수부이기도하다.그러나 현재의 연변자치주는 개혁개방의 몸살을 가장 많이 앓고있는 지역이다.전통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다가 개혁개방의 급류를 타고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나가고 한중수교 이후에는 코리안 드림을 타고 노동 인구들이 한국으로 빠져나갔다.
이럼으로써 연변자치주는 농업의 다각화를 토대로한 자생적인 산업발전보다는 한국인등의 백두산 관광붐으로 인한 관광경제와 출국노무자의 송금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이러하다 보니 이로 인한 부정적인 현상은 전통적인 미풍양속은 해체되고 소비풍조의 만연으로 인한 퇴폐향락의 수준은 위험수위에 이르게 되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면 연변자치주가 잘 살수 있는 길은 없는 것 인가? 아니다.연변자치주의 지경학적 여건과 역사문화적 토대를 21세기적으로 재조합 시키고 재창조하면 될 것 인바,바로 그것은 고부가가치형 생태농업에 기반한 녹색산업과 문화관광업,그리고 물류의 제약을 덜받는 IT산업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생산기반 없이 관광업을 발전시키면 그 지역은 일시적으로 흥청거릴수는 있지만 건강하고 생산적인 활력과 정신문화적 기반이 고갈되어 그 도시는 흉측스러운 몰골로 죽어버릴 수 있는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연변두레마을은 연변두레마을의 120여만평(한국평단위)에 생태마을과 문화관광기지-대학캠퍼스-생태농업/녹색산업 기지가 일체화된,즉 産-學-住-休 일체형의 에코폴리스(ECO-POLIS)를 건설함으로써, 연변지역의 녹색경제발전에 기여하는동시에 동북아 그린 르네상스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장원한 관점에서 볼 때 두레마을 집단 차원에서만 진행해나갈 문제이기보다는 민관협동의 제3섹터방식과 다자합작 방식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국내외의 많은 뜻있는 기업 및 NGO들과 함께해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이프로젝트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성질의것이 아니라서 시간이야 다소 걸리겠지만 다음과 같은 연유로해서 전도유망한 발전전망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는 연변과 동북3성의 조선족은 전통적으로 농업과 고유의 식품산업이 발전해온 토대가 있으므로 기술과 자금이 인입되는 중외 합작을 통하여, 이를 고부가가치형 생태농업과 바이오 식품산업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맛과 브랜드의 중국화/세계화를 도모해나간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스사태를 계기로 김치와 된장/청국장이 중국과 동남아지역 심지어 미국에서까지 인기식품이 되어가고 있는 시장기초를 토대로, 우리의 전통식품을 기능성 식품화하여 13억 중국인의 입맛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해나간다면 가히 승산이 있을것이다.
둘째로 예로부터 중국조선족은 교육과 문화를 중시했기에 지금도 여전히 연변은 지식문화 잠재력이 대단히 높은 곳 이다.이러한 지식문화기반을 하이터치형(HIGH-TOUCH)문화/관광/써비스 산업 그리고 하이테크형 IT산업인력풀로 업그레이드 시킨다면, 중국중앙정부의 “동북 대개발 프로젝트” . “철의 실크로드시대 개막” 과 연계되어 “백두산과 연화촌 에코밸리 ”를 매개로 연변자치주는 하이터치형 생태문화관광도시로 재탄생 할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수전농업과 선진교육문화수준으로 선진민족으로 칭찬 받던 그 이전의 명성을 되찿고, 21세기의 녹색문화경제민족으로서 재 탄생하여 중국대륙과 세계속에서 녹색기수와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계속의 중국조선족으로서 자리 매김 하자는 것이다.
연변자치주와 중국조선족사회의 환경문제와 녹색산업에 대한 인식은 전국적 차원에서 볼 때 비교적 앞서있다고 볼수있다. 그래서 생태환경보호사업과 녹색산업 개발에서도 일정한 공력을 들여왔었다. 그러나 지난 시기 개혁개방의 동풍을 타고 단순 경제성장이란 기치아래 자연과 자원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수탈했던 오류를 범해왔던 것 또한 자인하지않을수 없을것이다.
이제 우리는 시대가 남긴 삶의 터전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와 자연의 조화 그리고 생태자연공간과 최첨단 과학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녹색산업을 창출시켜 안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나가야 할것이다.
이는 산업사회의 무한경쟁속에서 찌들린 삶을 영위해 갈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메마른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것이며,도.농간 분절된 경제를 도.농간 통합경제로 전환시키는것이며, 이후 노령화사회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것이다.
더나아가 새로운 녹색산업 기반구축과 녹색문화민족으로의 재도약 이론을 정립함은 21세기 초입의 중국조선족 발전사에 있어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게할 뿐만아니라, 중국녹색산업발전과 인류문명발전사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남길수있을것이다.
3.연변두레 에코폴리스(ECO-POLIS) 개요
1) 위치와 입지조건:
* 연변자치주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지역.
* 연길시 중심에서 45km거리이며,승용차로 1시간 거리.
2)에코폴리스(ECO-POLIS)의 개념.
産(산업기지)-學(교육기지)-住(주거 단지)-休(휴양단지) 일체형의 생태문명촌.
3)취지와 목적
*친환경마을 대안모델 창조.
*푸른 연변 조성과 지역 녹색경제발전 기여.
*동북아 그린르네상스운동의 거점 조성.
4)비전(VISION)
*21세기 녹색문명의 理想 伴侶.
*녹색산업 창조와 연구개발 중심.
*산(産)-학(學)-주(住)-휴(休) 일체형 생태문명촌.
5)조성원칙(PRINCIPLE)
*최소개발과 최대 보존의 원칙
*지속가능한 녹색문명 창조의 원칙
*자연과 인간과 지역사회가 더블어 함께하는 공동체적 원칙
6)조성의 기대효과.
*연변두레마을 에코폴리스를 핵심으로 연화촌지역전체의 에코밸리(ECO-VALLY)화.
*연변자치주 연길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수민족의 모델적인 생태관광도시와 녹색산업도시로 발전하는데 기폭제 역할.
4.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조성계획과 방식.
1) 조성의 단계별 계획(총조성기간:10년)
*제1단계 조성계획기간(2004.1~2006.12)
가) 복합생활마을/두레마을공동체 생태영성단지/유기농업단지 기본윤곽 완성.
나) 녹색대학과 산학협동단지/녹색산업단지/생태.휴양.치유단지 인프라 구축.
다) 연변두레 에코폴리스 마스터플랜완성 및 생태개발특구 지정 완료
*제2단계 조성계획기간(2007.1~2009.12)
라) 녹색대학/산학협동단지/녹색산업단지개발 착수
마) 생태.휴양.치유단지 일부계획 개발착수
*제3단계 조성계획기간(2010.1~2014.12)
바) 생태.휴양.치유단지 본격착수 및 완성
사) 앞의 제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으로 연변두레 에코폴리스 기본사업완성.
2)조성방식과 합작개발방식
가)연변두레 에코폴리스 150만평(산을 제외한 실제 개발 이용부지는 120만평)을 자연수목원 및 생태공원화한다는 생각으로 식재 및 조경사업에 투자하면서, 생태관광(먹거리,볼거리,놀거리 제공등)/교육연수(프로그램운영과 숙박시설 대여등)사업으로 자립과 재투자의 기틀 마련해나감.
나)어설픈 합작투자유치나 계획성없는 개발은 난개발과 불협화음만 일으킬소지가 있으므로,두레마을이 재정능력이 담보되거나 확실한 투자주체가 나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술한바와 같은 자립을 기초로 조경사업 및 생태환경조성사업에만 주력하며 서두르지않는 것을 원칙으로 함(왜냐하면 섣부른 개발보다는 보존 그자체가 부가가치가 훨씬 높으며,이후 제대로된 합작투자자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일이 되기때문이다).
다)NPO적 마인드와 철학 그리고 자금,노하우등을 갖춘 합작주체가 나설경우,합작주체와의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거쳐 차분하게 추진해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함.
5.연변두레마을 토지이용 계획
1)복합 생활마을(업무단지,자립마을등 제시설기능이 연계/복합된 형태)
가) 업무 및 교육연수 단지(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업무시설,교육연수용 숙소등)
나) 자립마을(마을 일꾼 및 정주자들의 주택)
다) 청소년/학생 그린캠프장
라) 건강마을단지(실버 펜션,휴양펜션,요양원등)
마) 문화관광시설(주말농장,야생화식물원,야생 동물원,승마장등)
바) 근린 편의시설(식당,찜질방,매점,헬스클럽등)
2)두레마을 공동체 생태영성단지
가) 연변두레마을 공동체 본부
나) 생태영성수련원
다) 그린 게스트 하우스
3)연변 동북아 녹색대학 및 녹색 산학협동 연구단지
가)캠퍼스와 부속기관(녹색산업개발원,여성개발원,생태농업 연구소등)
나)녹색 산학협동 연구단지(국내외 대학교 및 기업그룹과 합작)
다)녹색대안학교(유치원,소학교,중고등학교):한국의 대안학교와 합작
라)유기농 실험 및 시범농장(국내외 농과대학 및 기업과 합작)
4)유기농업단지
5)녹색산업단지(개발구)
6)생태.휴양. 치유단지(자연 생태공원과 유기적 연계)
가)생태휴양공원과 산림욕장(연변두레 에코폴리스 전체를 자연수목원화하고,생태휴양공원집중지구 획정하여 생태체험장화)
나)생태산촌마을과 생태농업시범구(약초 및 허브재배등)
다)자연치유센터(자연의학 병원,요양원등):국내외 유명자연의학 병원과 합작
라)에코 컨벤션 센터(회의실,생태도서관과 박물관,수영장,리조트등):국내외 유명 개발회사와 합작